2024년 8월 25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4-08-25조회 122추천 14
2024년 8월 25일 주일 오후
찬송: 47장, 61장
본문: 에스겔 40장 3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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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문을 들어가고 2차 문으로 들어가는데 1차문의 목적이랄까요 바깥 뜰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바깥 세상에서 성전 담을 경계로 해서 바깥 세상을 떠나서 초월해서 담을 안으로 들어가서 일곱 천계 하나님의 세계로 올라오고 문통을 통해서 문지기 방을 통과하고 또 현관을 통과하고 바깥뜰에 들어갑니다. 거기 방이 30개 있었습니다. 그러면 바깥 뜰은 무엇이냐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세계는 어떤 것을 의미합니까. 설교 안하면 듣고 넘어갔겠지요. 어떤 걸 말하는 것일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세계란 공간적으로 장소적으로 예배당인가요. 신풍 교회인가요 동천 교회인가요 시간이 주일입니까. 생각해 보셨나요. 은혜의 세계, 은혜가 충만한 세계, 장소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말할까. 상황이라 그럴까요. 환경, 형편, 환경이겠습니다. 이건 은혜 세계로 연결시켜볼 수 있겠습니다. 고요해지고 잠잠해집니다. 은혜의 세계라 말할 수 있겠지요. 이게 전부냐, 그렇다면은 또 다른 게 있다면 무엇이 있으실까. 알고 계시는지요. 우리가 집회 때도 양성원 때도 그랬는데 듣고, 그리고 이해가 되면 좋고 이해가 안되면 생각해봐야하고 생각해도 안되면 물어봐야하고 기다려 봐야합니다. 공부할 때 그리하지 않는지요. 그래서 공부잘한 학생은 대개 뭐가 많습니까. 선생님들 계시는데 뭐가 많습니까. 질문이 많지요. 공부 잘하는 학생은 질문이 많습니다. 머리 좋은 학생들이 질문이 많다고 합니다. 에디슨은 하도 질문이 많아서 못 가르쳤다고 했지요. 알고보니 어릴 때부터 선생님을 뛰어넘었다고 했지요.
은혜 세계라 설명을 해야하는데 그게 뭐지 집회 때 들은 말씀 중에서 바깥 뜰은 은혜 세계입니다. 거기까지 설명하셨는데 어떤 것을 말하는가. 혼자 연구 한 번 해보는 거지요. 앞에 말씀 드린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형편입니다. 건강형편 거기에 마음쓰고 근심걱정하지 않고 고요한 환경의 세계가 있다고 하고 내 신앙이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와서 2차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것으로 그렇게 되어진 것이 되었다. 내 마음을 열어두신 것이고 자라가는 것이 은혜의 세계겠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모두 생각하시고 아니다 싶으면 연구해보시고, 믿는 사람의 모든 세계는 말씀이 바탕이 되어야합니다. 이런 걸로 살아갈려고 하면은 못사니까 찾게 되는 것이고 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일차문, 일차 문은 바깥 세상과 안을 구분하는 겁니다. 이차문은 안에 들어와서 더 깊은 신앙세계로 들어가고 올라가는 게 이차 문입니다. 일차문 들어갈 때는 전부 순서가 동북남이지요. 전부 담을 끼고 있지요.
문마다 올라가는데 천계가 다 있습니다. 이차문은 들어갈 때 남동북입니다. 남문 동문 북문입니다. 이 이차문은 천계가 몇 개 씩 있더라, 여덟 천계가 있습니다. 하나인데 그것 참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은혜 세계 거기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니까 더 진실하고 그러니까 새롭게 출발한다 그 말이지요. 팔이란 숫자는 주일이 팔입니다. 이런 의미가 그래서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왔는데 새 가구 새 결심으로 하는 거다. 그런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등지는 곳이 서쪽입니다. 하나님과 안 계신 곳 거기는 구원과 생명 빛 소망 다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게 된다는 겁니다. 문 자체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전체 문간의 모습이 그리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일차문 일차문이라는 말은 바깥에 말하자면 뺑 돌아서 바깥에 있고 안에 들어가면 뜰이 있고 들어가면 2차문이 나오고 안뜰이 나오고 그런 구조로 되어있는거지요. 그 중에 지금까지 공부한 건 전부 동향을 동문을 공부했습니다. 동쪽 문, 먼저 측량을 하는 것이더라. 그리고 북문 남문 바깥 일차문 다 똑같고 먼저 척량한 거 같더라. 다 똑같은데 북문 하나만 달라서 공부하는 겁니다. 안쪽 북문을 공부하는 겁니다.
북문은 북쪽입니다. 동쪽은 빛의 세계 광명의 세계고 하나님이 계신 동향 이게 동쪽이고 동문이고 남쪽은 따뜻한 곳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따뜻한 곳 그런 곳입니다. 북쪽은 문을 공부하는 것은 거기에 재단 번제 드리는 모든 시설들이 거기 다 있습니다.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릴 때는 북쪽 문에서 잡습니다. 왜 하필 북쪽 문에서 잡을까. 고난 속에서 잡는 것이다. 자기 잡을 자기를 발견하는 곳이 고난의 때다. 자기를 잡는 것은 고난의 길이다. 그리 말할 수 있겠지요. 잡을 자기를 말하는 것은 자기를 잡는 길은 고난의 길이다. 북쪽 문에서 모든 시설이 다 되어있다고 하는 겁니다. 북문을 보니까 그 문, 무슨 문인가요. 무슨 문입니까. 오전에 비슷할지도 모르겠는데 여반은 말씀을 좀 듣는 거 같고 남반은 다 잡니다. 제 준비가 부족하니까 답답하고, 잠마귀는 왕마귀입니다.
35절부터 그가 나를 데리고 이게 이어지면서 38절로 이어집니다. 36절에 북문을 말합니다. 북쪽 문 그 벽 곁에 문이 있으니까 벽이 있고 벽이 있으니 문이 있습니다. 문 없는 벽은 감옥이고 벽 없는 문은 필요도 없는 것이고 벽이란 벽이 밖에 나오면 뭐가 되겠습니까. 담이 됩니다. 담이 되면 벽이 됩니다. 북쪽 문 벽 곁에 북쪽 문이 있는데 일차문입니까 이차문입니까. 안쪽 이차문입니다. 벽이 있는데 벽 곁에 방이 있다. 방은 방이지만 방 역할 제대로 못하는거지요. 굳이 문이 있는 방이라고 꼭 집어 표를 했습니다. 문이 있는 방이 있는데 어디있느냐 북문 벽 곁에 방이 있습니다. 북문도 성소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꼭 찍어놓은 것은 칸막이니까 벽이 있고 그 벽 곁에 방이 있다 그랬으니까 문은 문이고 방은 방일겁니다. 일부러 구별하는 겁니다. 번제를 씻는 방이다. 그러면 일부러 문벽 곁이라고 했으니까 이건 준비과정인데 주님을 만나러 가는 것은 따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 뜻이 됩니다. 벽 곁에 따로 준비가 필요하다. 무조건 들어가는 게 아니다. 그 말입니다. 별도의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만나기 전 알아보는 곳이다. 그런 의미로 벽 곁이라고 해놨습니다.
문이라는 것은 방이 있다고 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과연 현재 내 모습이 주님 앞에 바칠 수 있는 번제는 충성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번제는 배설물까지 다 태워서 드리는 게 번지입니다. 이어지는 제물들은 전부 다 나를 제무롤 바치는 겁니다. 나를 잡는 겁니다. 잡는 것은 드리기 위해서 잡는 겁니다. 나를 잡기 위해서는 다른 말로 뭘 할 수 있을까요. 자기를 잡는다. 잡다니요 어떻게 잡습니까. 소를 잡아라 돼지를 잡아라 개를 잡아라. 잡는다는 말은 목을 딴다는 겁니다. 사람 잡는다 할 때 참 무서운 말인데 잡아서 죽이는 걸 잡는다고 합니다. 나를 잡는다 어떤 것이 나를 잡는 겁니까. 우리 제사는 어떤 제사라고요. 산제사입니다. 그 산제사를 바치는 걸 뭐라고 하나요. 재물이 되는 게 잡는 겁니다. 자기를 잡는 것이 무엇이라고 할까요. 아무도 모르지요. 자기를 산제물로 잡는 걸 뭐라고 하겠습니까. 짐작이라도 해보시지요. 회개라고 합니다. 자기 잡는 걸 회개라고 합니다. 잡는다는 말은 고친다는 말입니다. 나쁜 것은 고치는 것을 회개라 합니다. 회개 생활을 의미하는 겁니다. 회개입니다. 번제물을 씻는 것입니다. 나를 바쳐야하겠는데 드릴겁니다. 나의 시간 내 모든 생애를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게 바치는 건데 씻는겁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받을 수 있을까. 현재 자기 모습을 바라보며 씻는 겁니다. 자기를 깨끗하게 씻는 회개생활을 하는 겁니다.
걸레가 깨끗해야 방이 깨끗해지지 걸레가 더러우면 방은 닦을수록 더 더러워집니다. 누구 구원이 우선이라고요. 내 구원이 일차입니다. 안전해집니다. 자기가 된만큼 되어지게 됩니다. 목회자를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사울이 목회자고 다윗이 교인이었는데 다윗이 커졌습니다. 그런데 시기 때문에 그렇게 됐습니다. 자기를 돌아보는 게 다 있는데 39절입니다. 현관이란 준비 단계입니다. 예배당 들어오기 전에 준비의 과정이 현관입니다. 현관, 뭐하는 곳입니까. 나오면서 돌아보고 들어가기 전에 살피고 나오면서 손해보지 않게 하고 성막도 그렇고 일회성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성전 생활은 지성소를 성소를 조심하지만은 주일은 일년에 52번이고 10년이면 520번이고 100년은 5200번 지켰다는 겁니다. 들어올 때 은혜받을 준비가 현관 생활이고 그렇습니다. 39절, 북문의 현관입니다. 그 일차 문에는 현관이 문통 안에 들어가기 전 바깥 뜰 나가기 전에 안을 향했습니다. 안뜰 현관 그 들어가기 전 준비가 안됩니다.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모릅니다. 현관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둘 왼쪽에 둘 좌우로 말씀하지 않았지만 이쪽에 저쪽에 둘씩있고 이편에 둘 있고 저 편에 둘 있는데 번제 속죄제 속건제.
희생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동사로 쓸 수도 있고 명사로 쓸 수도 있는데 한문 글자는 명사 희생과 같습니다. 동사의 희생도 명사의 희생도 한문 글자가 같습니다. 희생이란 피를 흘려서 죽는 걸말합니다. 자기 목숨을 바칠만큼 그런 것을 희생이라고 말하지요. 그 희생하는 그게 성경을 희생을 잡는 걸 전제로 깔고 있습니다. 현과 좌우에 두 개씩 있습니다. 그 북문 바깥입니다. 북문 바깥이니까 현관보다 더 나왔겠지요. 여덟 천계 밑입니다. 올라가는 곳, 여덟 천계로 올라가는 그게 양쪽에 있습니다. 한쪽에 오른쪽에 네 개 왼쪽에 네 개 희생을 잡는 것, 제단을 잡는 소용이다. 문에 들어가기 전 현관이니까 양쪽이니까 기다리는 곳이니까 드나들면서 현관이니까 평소 우리 생활에서 모든 것 예배 생활이든 기도 생활이든 예배 생활이면 예배를 위해서 기도를 위해서 기도를 해야겠다. 기도할 준비를 할려면 돌아보는거지요. 기도 끝나면 돌아보는 것이고. 이걸 계산하는 것이겠고 돌아보는 게 현관이겠고 신앙생활과 연관된 그런 생활들을 준비하고 돌아보는 게 생활인데 양편에 두 개씩 있습니다. 현관 생활하면서 자기를 잡는데 자기를 잡으니까 치우치지 않으려고 하라. 준비 단계에서 북쪽 문에 들어가서 잡는 게 아니고 잡고 난다음에 들어가는 거지요. 자기를 잡아야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자기를 잡아야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겁니다. 자기를 잡아야 주님을 만나러 들어갈 수 있는거다. 자기를 잡되 지나가지 말아라. 무엇을 잡을겁니까. 말을 좀 빨리해서 많은 분들이 저보고 온화하다고 합니다. 참 듣기 좋은 말이지요. 주남선 목사님은 평안하다는 겁니다. 날카롭게 따지는 겁니다. 주남선 목사님은 기도합시다. 능력으로 참 능력자인데 말이 빠르다는 말은 성질이 급하다는 말이되지요. 설교하면서도 좀처럼 잘 안되지요. 못된 속아지 좀 고쳐라, 너 이치영이 너 못된 속아지 자존심 좀 고쳐라. 세상 소식 꼭 들어야합니까. 저도 뉴스를 자주보는 편이거든요. 이거 좀 끊어버려야겠다. 9시 안 보고 자면 교인들이 새벽기도 자주나옵니다. 끊어야겠지요. 그거 들으면 듣고 말면 마는 건데 끊어버려야겠다. 모든게 자기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신앙생활과 손해되는 안 믿는 불신자들이 누리는 그런 재미들 취미들 가족의 재미들 참 쉽게 끊기 어려운 그런 사람인데 자기와 연관된 사람을 잡는건데, 지나치지 말아라 치우치지 말아라 그런 뜻입니다. 그렇지만은 치우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오른쪽 두 개 왼쪽 두 개 이걸 가르켜서 현관 양쪽에 두 개씩 있고 계단 밑에 두 개씩 있습니다. 잡아야 올라가는거다. 잡아야 성화가 있습니다. 깊은 진리의 깨달음은 새로운 깨달음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새로운 세계로 올라가는 겁니다. 그 잡는 만큼 새로운 걸 배우는 게 되는 겁니다.
이거 잡는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거 잡는데 왜 그렇게 힘든지. 그걸 잡아야 올라갑니다. 나쁜 성질 나쁜 습관 무책임한 거 무계획한 거 전부다 자기 중심 잡아야 올라가는 겁니다. 잡지 못하면 안되는 겁니다. 8개니까 새로운 출발입니다. 새롭게 된다. 그렇게 되는 거지요. 41절입니다. 42절, 또 크게 보니까 북문이 있는데 북문 곁에 뭐가 있습니까. 북문 곁에 뭐가 있던가요. 방이 있습니다. 번제를 씻는 방입니다. 그리고 현관 좌우에 상이 두 개씩 있습니다. 번제물을 희생을 잡는 그런 것을 41절에 다듬은 돌이라. 성전에 쓴 돌은 원래 다듬지 않고 그냥 쓰게 되어있는데 다듬는 돌입니다. 돌은 다듬으면 무슨 뜻입니까. 거기에 맞춰서 만드는 겁니다. 성전에 쓰는 돌은 다듬지 못하게 되어있는데 다듬는 돌이 있습니다. 돌을 보니까 성전에 쓰인 돌은 무엇을 의미한다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이 말라서 갈증이 나서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했나요. 모세가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이 광야 사막에서 물을 어디서 구합니까. 다 죽을 지경인데 모세가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반석을 쳐라 물이 나올 것이다. 반석이 넓고 큰 돌이 반석이지요. 반석을 치니까 물이 팡팡 나왔습니다. 성경에는 전설같은 이야기인데 지하수를 깊이 파고 올라는 물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십니까. 암반수입니다. 그게 진짜 좋은 물입니다. 지하수 파서 내려가서 바위를 뚫고 올라오는 물이 암반수입니다.
고린도전서 보니까 그 물이 곳 예수 그리스도더라. 에스겔 성전에 이게 예수님을 상징입니다. 생긴 모양대로 두지 않고 깎아버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대로 순종해서 만들어진 걸 가르켜서 다듬은 돌이라고 말합니다. 순종의 재단 다하여 만든 순종의 제단, 하나님 아버지 말씀에 100프로 순종하고 제단입니다. 주님이 당신을 순족으로 잡은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을 말씀으로 가꾸어서 만드는데 전부 다 현실에 있다. 이걸 가르켜서 그렇게 보는 겁니다. 특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길이가 1척 반이고 넓이가 1척 반인데 자기 정도로 잡아야하지 자기 범위를 벗어나면 문제가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못된 악습을 잡으려고 나쁜 악습을 잡는 특효약이 뭔지 아십니까. 악습을 잡는 특효약이 뭔지 아십니까. 안해보셨습니까. 금식입니다. 쫄쫄 굶어서 힘이 빠져버리면 저절로 없어져버립니다.
내가 굶어서 두 끼를 굶어도 되겠다, 세 끼 굶다가 진짜 아예 잡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자기로써 그러는 건 괜찮으나 치우치지 않도록 넉넉하게 잡는게 척수입니다. 42절에 보니까 내가 희생입니다. 제물입니다. 주님이 제물이고 희생이고 내가 제물인데 나를 잡을 도구가 어디있느냐 그게 바로 제단 현실에 있다는 겁니다. 그 대속으로 나를 잡고 그 대속을 응용하고 적응시키는 게 전부 현실에 다 있다고 합니다. 현관 안에는 준비 생활입니다. 거기는 보니까 길이가 손바닥 넓이만한 갈고리가 있습니다. 길이가 그렇습니다. 알맞은 정도 할 수 있는 정도, 이런 면이 맞도록 각자 자기한테 맞도록 잡는 겁니다. 그게 자기 현실에 다 있는 겁니다 그게 현관에 다 있습니다. 준비생활에 다 있고 갈고리가 사면에 박혔습니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무엇에서나 우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겁니다. 특정되어있지 않습니다. 공부할 때던지 일할 때던지 잡을 수 있는 겁니다. 내가 사는 그 현실에 잡고 나면 현실에 나타납니다. 그 역사가 잡은 자기의 모양 효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자기 잡은 그 모습이 나타나게 됩니다. 자기를 잡은 사람으로 공부하면 나타납니다. 저를 잡은 사람으로 설교하면 그 모습으로 나옵니다. 주일학교 오늘 오후예배 누군가요. 한주동안 잡고 설교하는 거지요. 기도도 찬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떨 때는 은혜롭고 그럴 때가 있는데 은혜가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 공부했습니다. 안쪽 북문 곁에 있습니다. 방이 있고 주님 만날 때 씻는 방입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깨끗하게 회개하는 겁니다. 현관, 들어가고 나오고 돌아보고 살피는 곳입니다. 속죄제 속건제 잡는 산이 양쪽에 두 개씩 있습니다. 자기를 잡아야 주님만난다. 잡기 전에는 무엇을 잡을까 생각해봐야합니다. 신앙 생활에 할 게 가장 많은 겁니다. 입구로 들어가는 계단 밑에 있으니까 자기를 잡아야 위로 올라간다. 다듬은 돌로 만든 순종으로 다듬는 겁니다. 잡는 것은 전부 잡는 데에 있고 설교하려고 연구했고 생각해봤습니다. 받은 말씀 기억하고 그렇게 살아가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47장, 61장
본문: 에스겔 40장 38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1차문을 들어가고 2차 문으로 들어가는데 1차문의 목적이랄까요 바깥 뜰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바깥 세상에서 성전 담을 경계로 해서 바깥 세상을 떠나서 초월해서 담을 안으로 들어가서 일곱 천계 하나님의 세계로 올라오고 문통을 통해서 문지기 방을 통과하고 또 현관을 통과하고 바깥뜰에 들어갑니다. 거기 방이 30개 있었습니다. 그러면 바깥 뜰은 무엇이냐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세계는 어떤 것을 의미합니까. 설교 안하면 듣고 넘어갔겠지요. 어떤 걸 말하는 것일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세계란 공간적으로 장소적으로 예배당인가요. 신풍 교회인가요 동천 교회인가요 시간이 주일입니까. 생각해 보셨나요. 은혜의 세계, 은혜가 충만한 세계, 장소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말할까. 상황이라 그럴까요. 환경, 형편, 환경이겠습니다. 이건 은혜 세계로 연결시켜볼 수 있겠습니다. 고요해지고 잠잠해집니다. 은혜의 세계라 말할 수 있겠지요. 이게 전부냐, 그렇다면은 또 다른 게 있다면 무엇이 있으실까. 알고 계시는지요. 우리가 집회 때도 양성원 때도 그랬는데 듣고, 그리고 이해가 되면 좋고 이해가 안되면 생각해봐야하고 생각해도 안되면 물어봐야하고 기다려 봐야합니다. 공부할 때 그리하지 않는지요. 그래서 공부잘한 학생은 대개 뭐가 많습니까. 선생님들 계시는데 뭐가 많습니까. 질문이 많지요. 공부 잘하는 학생은 질문이 많습니다. 머리 좋은 학생들이 질문이 많다고 합니다. 에디슨은 하도 질문이 많아서 못 가르쳤다고 했지요. 알고보니 어릴 때부터 선생님을 뛰어넘었다고 했지요.
은혜 세계라 설명을 해야하는데 그게 뭐지 집회 때 들은 말씀 중에서 바깥 뜰은 은혜 세계입니다. 거기까지 설명하셨는데 어떤 것을 말하는가. 혼자 연구 한 번 해보는 거지요. 앞에 말씀 드린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형편입니다. 건강형편 거기에 마음쓰고 근심걱정하지 않고 고요한 환경의 세계가 있다고 하고 내 신앙이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와서 2차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것으로 그렇게 되어진 것이 되었다. 내 마음을 열어두신 것이고 자라가는 것이 은혜의 세계겠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모두 생각하시고 아니다 싶으면 연구해보시고, 믿는 사람의 모든 세계는 말씀이 바탕이 되어야합니다. 이런 걸로 살아갈려고 하면은 못사니까 찾게 되는 것이고 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일차문, 일차 문은 바깥 세상과 안을 구분하는 겁니다. 이차문은 안에 들어와서 더 깊은 신앙세계로 들어가고 올라가는 게 이차 문입니다. 일차문 들어갈 때는 전부 순서가 동북남이지요. 전부 담을 끼고 있지요.
문마다 올라가는데 천계가 다 있습니다. 이차문은 들어갈 때 남동북입니다. 남문 동문 북문입니다. 이 이차문은 천계가 몇 개 씩 있더라, 여덟 천계가 있습니다. 하나인데 그것 참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은혜 세계 거기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니까 더 진실하고 그러니까 새롭게 출발한다 그 말이지요. 팔이란 숫자는 주일이 팔입니다. 이런 의미가 그래서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왔는데 새 가구 새 결심으로 하는 거다. 그런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등지는 곳이 서쪽입니다. 하나님과 안 계신 곳 거기는 구원과 생명 빛 소망 다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게 된다는 겁니다. 문 자체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전체 문간의 모습이 그리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일차문 일차문이라는 말은 바깥에 말하자면 뺑 돌아서 바깥에 있고 안에 들어가면 뜰이 있고 들어가면 2차문이 나오고 안뜰이 나오고 그런 구조로 되어있는거지요. 그 중에 지금까지 공부한 건 전부 동향을 동문을 공부했습니다. 동쪽 문, 먼저 측량을 하는 것이더라. 그리고 북문 남문 바깥 일차문 다 똑같고 먼저 척량한 거 같더라. 다 똑같은데 북문 하나만 달라서 공부하는 겁니다. 안쪽 북문을 공부하는 겁니다.
북문은 북쪽입니다. 동쪽은 빛의 세계 광명의 세계고 하나님이 계신 동향 이게 동쪽이고 동문이고 남쪽은 따뜻한 곳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따뜻한 곳 그런 곳입니다. 북쪽은 문을 공부하는 것은 거기에 재단 번제 드리는 모든 시설들이 거기 다 있습니다.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릴 때는 북쪽 문에서 잡습니다. 왜 하필 북쪽 문에서 잡을까. 고난 속에서 잡는 것이다. 자기 잡을 자기를 발견하는 곳이 고난의 때다. 자기를 잡는 것은 고난의 길이다. 그리 말할 수 있겠지요. 잡을 자기를 말하는 것은 자기를 잡는 길은 고난의 길이다. 북쪽 문에서 모든 시설이 다 되어있다고 하는 겁니다. 북문을 보니까 그 문, 무슨 문인가요. 무슨 문입니까. 오전에 비슷할지도 모르겠는데 여반은 말씀을 좀 듣는 거 같고 남반은 다 잡니다. 제 준비가 부족하니까 답답하고, 잠마귀는 왕마귀입니다.
35절부터 그가 나를 데리고 이게 이어지면서 38절로 이어집니다. 36절에 북문을 말합니다. 북쪽 문 그 벽 곁에 문이 있으니까 벽이 있고 벽이 있으니 문이 있습니다. 문 없는 벽은 감옥이고 벽 없는 문은 필요도 없는 것이고 벽이란 벽이 밖에 나오면 뭐가 되겠습니까. 담이 됩니다. 담이 되면 벽이 됩니다. 북쪽 문 벽 곁에 북쪽 문이 있는데 일차문입니까 이차문입니까. 안쪽 이차문입니다. 벽이 있는데 벽 곁에 방이 있다. 방은 방이지만 방 역할 제대로 못하는거지요. 굳이 문이 있는 방이라고 꼭 집어 표를 했습니다. 문이 있는 방이 있는데 어디있느냐 북문 벽 곁에 방이 있습니다. 북문도 성소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꼭 찍어놓은 것은 칸막이니까 벽이 있고 그 벽 곁에 방이 있다 그랬으니까 문은 문이고 방은 방일겁니다. 일부러 구별하는 겁니다. 번제를 씻는 방이다. 그러면 일부러 문벽 곁이라고 했으니까 이건 준비과정인데 주님을 만나러 가는 것은 따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 뜻이 됩니다. 벽 곁에 따로 준비가 필요하다. 무조건 들어가는 게 아니다. 그 말입니다. 별도의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만나기 전 알아보는 곳이다. 그런 의미로 벽 곁이라고 해놨습니다.
문이라는 것은 방이 있다고 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과연 현재 내 모습이 주님 앞에 바칠 수 있는 번제는 충성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번제는 배설물까지 다 태워서 드리는 게 번지입니다. 이어지는 제물들은 전부 다 나를 제무롤 바치는 겁니다. 나를 잡는 겁니다. 잡는 것은 드리기 위해서 잡는 겁니다. 나를 잡기 위해서는 다른 말로 뭘 할 수 있을까요. 자기를 잡는다. 잡다니요 어떻게 잡습니까. 소를 잡아라 돼지를 잡아라 개를 잡아라. 잡는다는 말은 목을 딴다는 겁니다. 사람 잡는다 할 때 참 무서운 말인데 잡아서 죽이는 걸 잡는다고 합니다. 나를 잡는다 어떤 것이 나를 잡는 겁니까. 우리 제사는 어떤 제사라고요. 산제사입니다. 그 산제사를 바치는 걸 뭐라고 하나요. 재물이 되는 게 잡는 겁니다. 자기를 잡는 것이 무엇이라고 할까요. 아무도 모르지요. 자기를 산제물로 잡는 걸 뭐라고 하겠습니까. 짐작이라도 해보시지요. 회개라고 합니다. 자기 잡는 걸 회개라고 합니다. 잡는다는 말은 고친다는 말입니다. 나쁜 것은 고치는 것을 회개라 합니다. 회개 생활을 의미하는 겁니다. 회개입니다. 번제물을 씻는 것입니다. 나를 바쳐야하겠는데 드릴겁니다. 나의 시간 내 모든 생애를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게 바치는 건데 씻는겁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받을 수 있을까. 현재 자기 모습을 바라보며 씻는 겁니다. 자기를 깨끗하게 씻는 회개생활을 하는 겁니다.
걸레가 깨끗해야 방이 깨끗해지지 걸레가 더러우면 방은 닦을수록 더 더러워집니다. 누구 구원이 우선이라고요. 내 구원이 일차입니다. 안전해집니다. 자기가 된만큼 되어지게 됩니다. 목회자를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사울이 목회자고 다윗이 교인이었는데 다윗이 커졌습니다. 그런데 시기 때문에 그렇게 됐습니다. 자기를 돌아보는 게 다 있는데 39절입니다. 현관이란 준비 단계입니다. 예배당 들어오기 전에 준비의 과정이 현관입니다. 현관, 뭐하는 곳입니까. 나오면서 돌아보고 들어가기 전에 살피고 나오면서 손해보지 않게 하고 성막도 그렇고 일회성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성전 생활은 지성소를 성소를 조심하지만은 주일은 일년에 52번이고 10년이면 520번이고 100년은 5200번 지켰다는 겁니다. 들어올 때 은혜받을 준비가 현관 생활이고 그렇습니다. 39절, 북문의 현관입니다. 그 일차 문에는 현관이 문통 안에 들어가기 전 바깥 뜰 나가기 전에 안을 향했습니다. 안뜰 현관 그 들어가기 전 준비가 안됩니다.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모릅니다. 현관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둘 왼쪽에 둘 좌우로 말씀하지 않았지만 이쪽에 저쪽에 둘씩있고 이편에 둘 있고 저 편에 둘 있는데 번제 속죄제 속건제.
희생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동사로 쓸 수도 있고 명사로 쓸 수도 있는데 한문 글자는 명사 희생과 같습니다. 동사의 희생도 명사의 희생도 한문 글자가 같습니다. 희생이란 피를 흘려서 죽는 걸말합니다. 자기 목숨을 바칠만큼 그런 것을 희생이라고 말하지요. 그 희생하는 그게 성경을 희생을 잡는 걸 전제로 깔고 있습니다. 현과 좌우에 두 개씩 있습니다. 그 북문 바깥입니다. 북문 바깥이니까 현관보다 더 나왔겠지요. 여덟 천계 밑입니다. 올라가는 곳, 여덟 천계로 올라가는 그게 양쪽에 있습니다. 한쪽에 오른쪽에 네 개 왼쪽에 네 개 희생을 잡는 것, 제단을 잡는 소용이다. 문에 들어가기 전 현관이니까 양쪽이니까 기다리는 곳이니까 드나들면서 현관이니까 평소 우리 생활에서 모든 것 예배 생활이든 기도 생활이든 예배 생활이면 예배를 위해서 기도를 위해서 기도를 해야겠다. 기도할 준비를 할려면 돌아보는거지요. 기도 끝나면 돌아보는 것이고. 이걸 계산하는 것이겠고 돌아보는 게 현관이겠고 신앙생활과 연관된 그런 생활들을 준비하고 돌아보는 게 생활인데 양편에 두 개씩 있습니다. 현관 생활하면서 자기를 잡는데 자기를 잡으니까 치우치지 않으려고 하라. 준비 단계에서 북쪽 문에 들어가서 잡는 게 아니고 잡고 난다음에 들어가는 거지요. 자기를 잡아야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자기를 잡아야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겁니다. 자기를 잡아야 주님을 만나러 들어갈 수 있는거다. 자기를 잡되 지나가지 말아라. 무엇을 잡을겁니까. 말을 좀 빨리해서 많은 분들이 저보고 온화하다고 합니다. 참 듣기 좋은 말이지요. 주남선 목사님은 평안하다는 겁니다. 날카롭게 따지는 겁니다. 주남선 목사님은 기도합시다. 능력으로 참 능력자인데 말이 빠르다는 말은 성질이 급하다는 말이되지요. 설교하면서도 좀처럼 잘 안되지요. 못된 속아지 좀 고쳐라, 너 이치영이 너 못된 속아지 자존심 좀 고쳐라. 세상 소식 꼭 들어야합니까. 저도 뉴스를 자주보는 편이거든요. 이거 좀 끊어버려야겠다. 9시 안 보고 자면 교인들이 새벽기도 자주나옵니다. 끊어야겠지요. 그거 들으면 듣고 말면 마는 건데 끊어버려야겠다. 모든게 자기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신앙생활과 손해되는 안 믿는 불신자들이 누리는 그런 재미들 취미들 가족의 재미들 참 쉽게 끊기 어려운 그런 사람인데 자기와 연관된 사람을 잡는건데, 지나치지 말아라 치우치지 말아라 그런 뜻입니다. 그렇지만은 치우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오른쪽 두 개 왼쪽 두 개 이걸 가르켜서 현관 양쪽에 두 개씩 있고 계단 밑에 두 개씩 있습니다. 잡아야 올라가는거다. 잡아야 성화가 있습니다. 깊은 진리의 깨달음은 새로운 깨달음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새로운 세계로 올라가는 겁니다. 그 잡는 만큼 새로운 걸 배우는 게 되는 겁니다.
이거 잡는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거 잡는데 왜 그렇게 힘든지. 그걸 잡아야 올라갑니다. 나쁜 성질 나쁜 습관 무책임한 거 무계획한 거 전부다 자기 중심 잡아야 올라가는 겁니다. 잡지 못하면 안되는 겁니다. 8개니까 새로운 출발입니다. 새롭게 된다. 그렇게 되는 거지요. 41절입니다. 42절, 또 크게 보니까 북문이 있는데 북문 곁에 뭐가 있습니까. 북문 곁에 뭐가 있던가요. 방이 있습니다. 번제를 씻는 방입니다. 그리고 현관 좌우에 상이 두 개씩 있습니다. 번제물을 희생을 잡는 그런 것을 41절에 다듬은 돌이라. 성전에 쓴 돌은 원래 다듬지 않고 그냥 쓰게 되어있는데 다듬는 돌입니다. 돌은 다듬으면 무슨 뜻입니까. 거기에 맞춰서 만드는 겁니다. 성전에 쓰는 돌은 다듬지 못하게 되어있는데 다듬는 돌이 있습니다. 돌을 보니까 성전에 쓰인 돌은 무엇을 의미한다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이 말라서 갈증이 나서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했나요. 모세가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이 광야 사막에서 물을 어디서 구합니까. 다 죽을 지경인데 모세가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반석을 쳐라 물이 나올 것이다. 반석이 넓고 큰 돌이 반석이지요. 반석을 치니까 물이 팡팡 나왔습니다. 성경에는 전설같은 이야기인데 지하수를 깊이 파고 올라는 물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십니까. 암반수입니다. 그게 진짜 좋은 물입니다. 지하수 파서 내려가서 바위를 뚫고 올라오는 물이 암반수입니다.
고린도전서 보니까 그 물이 곳 예수 그리스도더라. 에스겔 성전에 이게 예수님을 상징입니다. 생긴 모양대로 두지 않고 깎아버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대로 순종해서 만들어진 걸 가르켜서 다듬은 돌이라고 말합니다. 순종의 재단 다하여 만든 순종의 제단, 하나님 아버지 말씀에 100프로 순종하고 제단입니다. 주님이 당신을 순족으로 잡은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을 말씀으로 가꾸어서 만드는데 전부 다 현실에 있다. 이걸 가르켜서 그렇게 보는 겁니다. 특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길이가 1척 반이고 넓이가 1척 반인데 자기 정도로 잡아야하지 자기 범위를 벗어나면 문제가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못된 악습을 잡으려고 나쁜 악습을 잡는 특효약이 뭔지 아십니까. 악습을 잡는 특효약이 뭔지 아십니까. 안해보셨습니까. 금식입니다. 쫄쫄 굶어서 힘이 빠져버리면 저절로 없어져버립니다.
내가 굶어서 두 끼를 굶어도 되겠다, 세 끼 굶다가 진짜 아예 잡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자기로써 그러는 건 괜찮으나 치우치지 않도록 넉넉하게 잡는게 척수입니다. 42절에 보니까 내가 희생입니다. 제물입니다. 주님이 제물이고 희생이고 내가 제물인데 나를 잡을 도구가 어디있느냐 그게 바로 제단 현실에 있다는 겁니다. 그 대속으로 나를 잡고 그 대속을 응용하고 적응시키는 게 전부 현실에 다 있다고 합니다. 현관 안에는 준비 생활입니다. 거기는 보니까 길이가 손바닥 넓이만한 갈고리가 있습니다. 길이가 그렇습니다. 알맞은 정도 할 수 있는 정도, 이런 면이 맞도록 각자 자기한테 맞도록 잡는 겁니다. 그게 자기 현실에 다 있는 겁니다 그게 현관에 다 있습니다. 준비생활에 다 있고 갈고리가 사면에 박혔습니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무엇에서나 우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겁니다. 특정되어있지 않습니다. 공부할 때던지 일할 때던지 잡을 수 있는 겁니다. 내가 사는 그 현실에 잡고 나면 현실에 나타납니다. 그 역사가 잡은 자기의 모양 효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자기 잡은 그 모습이 나타나게 됩니다. 자기를 잡은 사람으로 공부하면 나타납니다. 저를 잡은 사람으로 설교하면 그 모습으로 나옵니다. 주일학교 오늘 오후예배 누군가요. 한주동안 잡고 설교하는 거지요. 기도도 찬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떨 때는 은혜롭고 그럴 때가 있는데 은혜가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 공부했습니다. 안쪽 북문 곁에 있습니다. 방이 있고 주님 만날 때 씻는 방입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깨끗하게 회개하는 겁니다. 현관, 들어가고 나오고 돌아보고 살피는 곳입니다. 속죄제 속건제 잡는 산이 양쪽에 두 개씩 있습니다. 자기를 잡아야 주님만난다. 잡기 전에는 무엇을 잡을까 생각해봐야합니다. 신앙 생활에 할 게 가장 많은 겁니다. 입구로 들어가는 계단 밑에 있으니까 자기를 잡아야 위로 올라간다. 다듬은 돌로 만든 순종으로 다듬는 겁니다. 잡는 것은 전부 잡는 데에 있고 설교하려고 연구했고 생각해봤습니다. 받은 말씀 기억하고 그렇게 살아가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