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1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4-08-11조회 91추천 8
2024년 8월 11일 주일 오후
찬송: 61장, 185장
본문: 에스겔 40장 2절 ~ 5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신약 시대에 출발이 초대 교회로 출발합니다. 예수님 가신 후에 열두 사도가 가롯 유다는 빠지고 나중에 사도 바울이 들어가는데 복음을 전파합니다. 하루에 3000명이 회개합니다. 하루에 3000명. 뭘 했다고요. 회개를 했습니다. 이건 굉장한 겁니다. 얼마나 은혜가 넘쳤으면 하루에 3000명이 일어났으니까. 방언 역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유다 나라 말로 하는데 각국 사람들이 자기 지방 언어로 들렸습니다. 방언 역사입니다. 울고 불고 가슴을 쥐어뜯고 난리가 났습니다. 회개한다고. 그게 사람들에게 감정 이런 것보다도 성경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모습을 회개하고 있는데 한 쪽 곁에서 뒷짐을 지고 한 짝 다리 걸치고 있는 사람들이 술을 먹었나 왜 그래 이런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 자리에서. 한 쪽에서는 그 사람보고 귀신이 들어가서 그래서 베드로가 이 사람들 취한게 아니다. 성령에 붙들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자리 한 자리 예배를 들려도 장난 치는 사람 있고 마음은 다른 간 사람이 있고 너 그날 예배 봤을 때 장난쳤잖아 그림만 그렸잖아. 저는 요즘 집회가서 생각하는게 오늘이 가장 젊다.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하루 하루가 달라지기 때문에 늙어봐야 인생을 알겠구나. 몸에 고장이 나야 아는 것이고 병도 생기고 사고도 나보고 연단이라는 것은 참 중요한 것이고 성전 안에 보니까 양쪽에 문이 있습니다. 남쪽 북쪽에 문이 있습니다. 북향은 남쪽문 남향은 북쪽문 남쪽은 은혜 세계 북쪽을 바라봅니다. 환란의 곳입니다. 그게 언제까지 계속될 리 없는 겁니다. 고인물을 썩는다고 합니다. 따뜻함이 계속되면 반드시 타락합니다.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다 그렇습니다. 거스를 수 없습니다. 법칙이라서.
지금은 고요한 때입니다. 언제 우리 가정을 연단할지 모릅니다. 각오 결심하고 계속되기를 기도하면서 징계로 편안을 주지 않도록 평안을 계속 하는 것이고 환란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통스럽고 아프면 연단되겠지요. 그 고난이 언제까지 연단되지 않습니다. 열흘동안 환란을 받습니다. 또 평안은 주시는 겁니다. 환란을 소망하면서 지나가면 안되는 겁니다. 집회 말씀 중요한 것은 바벨론이 산채로 적국에 잡혀갔습니다. 노에로, 종으로,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것이 노예입니다. 죽으면 가져다 버리는 게 노예입니다. 기본적으로 겨우 연명할 수 있을 정도로만 먹고 입힙니다. 있는대로 다 빨아먹습니다. 그게 노예입니다. 그렇게 노예로 살아도 자기들의 생활이 노예인줄을 모르면 당연히 그런 줄 압니다. 모르는 사람도 있고 적응해서 사는 사람도 있고 거기서 노예로 살면서 성공한 사람도 있습니다.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다니엘 전부 바벨론에서 출세한 사람들입니다. 바벨론에 붙어 출세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나라에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내는 사람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애굽에 살 때 종 노릇하면서 자기 동족들을 때리면서 부려먹는 일본 앞잡이처럼 출세하는 겁니다. 출세했는데 매국노가 되는 거지요. 동족 피빨아먹는 매국노가 되는 거지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따라 잡히고 그러면 그리 되는 겁니다. 주일을 팔고 좋은 직장을 지켰다. 돈을 벌었다. 새벽기도를 팔고 점수를 높이 받았다. 알고보니 주일 팔았고 예배 팔았고 기도 팔아먹었고 자기 구원 팔아먹었고 세상을 샀으니까 동족 피 빨아먹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지키면서 사는 것은 좋은 겁니다. 그런데 신앙을 팔아서 출세를 하면 매국노가 되는데 그게 출세인줄 압니다. 거꾸로 아는 거 문제지요. 중요한 것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던 거처럼 사로잡혀 가는 신세에서 한탄할 줄 모르고 원인도 찾지 않고 적응해서 사는 거지요. 문제는 마찬가지입니다. 오전에 어떤 세상에 사로잡혔을까 향락이다. 마음과 고기덩어리를 즐겁게 하는 게 향락입니다. 먹는 거, 입는 거 보는 거, 듣는 거 느끼는 거 별별 이런 것들로 눈을 즐겁게 입을 즐겁게 향락 또는 취미 여행이니 등산이니 음악이니 이런 것들 그리고 세상 출세 성공 돈 벌어보겠다. 노후보장 별별 게 있습니다. 이런 전체적인 게 있으나 개개인으로 들어가면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거 하나 음식 하나를 조절 못하고 조심하는데 커피에 붙들리고 먹지 말아야하는데 붙들리고 그런 것이 있는데 자신이 아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짚어보고 내가 나를 붙드는 것이 무엇인가. 기록하면 좋고 안할지라도 내 원수는 요놈이다. 이걸 집어서 알아야합니다.
나를 사로잡은 세상 내가 붙든 세상 그거 앞에만 나가면 걸려 넘어지는 세상. 이게 취미냐 음식이냐 마실 것이냐 취미냐 뭐냐 각자 자기 속에 자기를 들여다보고 알아야합니다. 그게 자기 주변에 세상 자기를 붙든 대적을 아는 겁니다 알아야 대책을 세우는 겁니다. 알기 위해서 생각해봐야합니다. 그로 인한 손해, 얼마나 자기는 약한지 느낌이 있어야합니다. 느껴야 뭘 하는 거지요. 이걸 할려면 관점을 바로 가져야겠지요. 신앙을 다 팔아먹어도 가정만 평안하면 관점이 틀리기 때문에 답답한 노릇입니다. 내 신앙을 붙들고 있는 내 원수 세상이 뭐냐. 세상에 수 많은 것 중에서 어떤 사람은 자존심 걸리면 설쳐버립니다. 자존심이 그의 세상이고 포로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배고픔을 못견뎌서 찾아먹는 사람도 있고 친구한테 붙들어있는 사람도 있고 별별게 다 있습니다. 나는 나를 붙든 나의 바벨론은 무엇이냐. 그로 인해서 내가 손해보는 손해라는 게 돈 손해겠습니까. 하늘의 사람이 아니면 알아들리지가 않는 겁니다. 내 구원이 얼마나 절단나는지 알아야하고 느껴야합니다.
세 번째는 알고 느끼면은 발버둥이 나옵니다. 이겨내야겠다 싸워내야겠다 노력합니다. 악성악습을 할려고 인간 노력으로 안되기 때문에 네 번째는 애절하게 애절하게 간구를 하는 겁니다. 이 전부가 하나님의 은혜라야하고 발버둥에 한 만큼 그 은혜받고 주셔서 되게 되는 겁니다. 길을 열어주셨다가 하나님께 또 기회를 보시는 겁니다. 풀어지면 옛날로 돌아갑니다. 그때 옛날로 돌아가는 게 개나 돼지가 나를 바가 없습니다. 저는 요즘 개나 돼지보다 낫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찬송가 105장에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쓰러져 보셨습니까. 육신이 쓰러져보셨습니까. 못 견뎌서 넘어져보셨습니까. 그분이 기도를 좀 과하게 요구했습니다. 기도는 하긴 해야겠으니까 목사님이 예배 전 30분 예배 후 30분 강당에서 무릎꿇고 기도했습니다. 절단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니까 무릎에 고장이 생겨버렸습니다. 마지막은 앉아서 하셨습니다. 그게 무거운 짐을 지고 쓰러지는 거지요. 죄 짐을 지고 어떤 무거운 짐을 지고 견디다 못해서 쓰러질 때 도와주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쓰러질 정도가 되는 겁니다. 지나치고 치우치면 되는거지만은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그게 사람의 노력입니다. 사람도 그걸 보면 애가 타서 도와주고 싶은데 그냥 두실 리가 없는 거지요. 실제 실상이 중요한 겁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바벨론에 포로된 이스라엘 여러 가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는 사람은 애가 탔습니다. 애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나중에는 목숨 걸고 기도했습니다. 계명을 지켰습니다. 느헤미야는 성전이 불탔다는 말을 듣고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알아야하고 그로 인한 손해가 큰지 느껴야합니다. 그 손해라는 것은 돈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서도 많은 피해가 가게 되어있습니다. 느끼고 발버둥치고 무거운 짐을 견디다 못해 쓰러질 정도를 했고 마지막 결론은 뜻대로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되는거지요. 에스겔이 그렇게 기도할 때 절망 중에 소망을 주신 겁니다.
하나님이 이상 중에 신앙 양심입니다. 자기라는 게 들어가지 않습니다. 인간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세상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 자기 주관, 자기 선입관념, 자기 입장, 욕심 감정 다 버리고 하는 겁니다. 말씀만 받아들이고 양심을 쓰고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역사하셔서 이상 중에 정상이 아닌 겁니다. 인간을 초월했으니까. 사람을 부인하고 하나님 말씀으로만 받아들이니까 그의 생각이 깨달음이 관점이 달라지는 거지요. 보통 사람과 달라지게 보이는 겁니다. 그 땅에 이르러 급히 높은 산, 하나님의 이상 중에 붙들려서 극히 높은 산에 올라갔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상에 붙들려 기도해서 말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듣고 내려옵니다. 기도 중에 명상 중에 마음을 데려오셨는지 사람이 알 수 없는 볼 수 없는 것을 하는 겁니다. 에스겔도 보여주셨습니다.
자기 정도에서, 이상 중에 보이는 겁니다. 말하기 어렵고 흉내내기 어렵지만 어느정도 감을 잡고 가져봐야합니다. 동감이 되는 것이고 비우는 겁니다. 이런 생활이 계속 될 때 오로지 하나님의 뜻만 찾고 말씀으로만 삼아서 들어가볼 때 사람을 초월합니다. 세상을 초월합니다. 그 사람 자체가 자기 주관적으로 초월해서 객관이신 하나님을 다 받아들이니 함께 하시니까 이상이 초월이 되는겁니다. 깨달음이 초월합니다. 제가 설교하는 것은 근본 지식 수준 가지고 못하는 겁니다. 이 정도라도 배우는 것이 있지만 설교하기 위해서 회개하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그리되는 건데 관점이 초월하게 되는 거지요.
극히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산은 올라갈수록 멀어지고 하늘으로 가는 겁니다. 가장 높은 데 가면 세상입니다. 이론적으로 그렇다 이 말입니다. 인간들 온갖 다툼하는 지옥같은 세상을 벗어나서 세상과 점점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겁니다. 이것처럼 극히 높은 곳에서 초월의 세계입니다. 인간 지식과 역사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관점으로 그 말씀이 나의 주인이 되고 성령이 내 주인이 되어서 내려다 보는 것입니다. 초월의 세계로 올라가는 겁니다. 거기서 극히 높은 산 위에 데려놓으시는데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같은 것이 있더라. 성읍이 있는 겁니까. 성읍 형상 같은 겁니까. 에스겔 눈에 그렇게 보인 겁니다. 실제로 있는 게 아닌 겁니다.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그게 바로 예루살렘이고 성전입니다. 예루살렘 중심에 성전이 있고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 모든 것이 다 되어있고 끝에 가면 성읍 이름을 뭐라고 하시는 줄 아십니까. 여호와 산나라 그렇게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국의 이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루어 가야할 것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우리의 구원, 신앙 생활을 가지는 것으로 이상 세계로 보여주신 겁니다. 극히 높은 산 위에서 성읍의 모습입니다.
천국이라는 것은 영계인데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육은 흙으로 가고 영과 마음은 낙원에 가고 육을 가지고 부활을 하는데 신령한 몸이 되고 물질계는 새로운 것으로 변화를 시킨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보고 듣고 만지고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실존의 존재고 이 세상도 변화된 세상으로 새 하늘 새 땅으로 되어있는데 그 새 하늘 새 땅이 우리들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 것처럼 시공을 초월한 것이 고차원이 되어서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그 나라는 지금같은 물질적인 나라는 아닐 것이고 고차원적인 나라가 될 것이다.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인간 세계지만 다 있는 것이고 나라는 자아가 있는 것이고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면서 고차원의 나라니까 시공을 초월한 세계이기 때문에 영원토록 이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에스겔을 통해서 성읍 형상 같은 것으로 보여주셨으나 우리의 나라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은 형상을 아는 거지요.
우리의 영은 무형의 존재입니다. 무형일 수도 있고 유형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몸은 나타나기도 하고 안 나타나기도 합니다. 육을 가진채로 가졌는데 내 눈으로 보고 옆구리에 넣어봐라 그러면 지금 잡은 생선을 같이 먹자, 그런데 이거에 갇히지 않고 신령한 몸으로 된 것첨 성읍의 이상이라는 것은 그런 차원의 성읍의 이상이다. 아득하게 초월한다는 게 그런 것이고 우리의 인격으로 우리 생활로 지식이 앞서가면서 내 마음와 믿음과 몸의 행동에서 건설에 나가야하는 것. 이게 성읍 현상이라 보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서 놋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집회 때 배웠으니까 누구입니까. 두 글자로 대답한 사람은 틀렸습니다. 고난 받으신 주님. 놋이라는 게 연단이라고 했습니다. 날 위해서 고난 받으신 위해서 주님이 삼줄과 장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멀리 보는 겁니다. 어디까지 보는 게 멀리 보는 겁니까. 성경에 삼줄로 계산하는 건 어디로 보는걸까요. 하늘, 천국, 영원까지 계산하는 겁니다. 장대는 현재입니다.
현재를 살아라. 새 출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재라는 것은 생각해보면 과거의 종점입니다. 미래의 출발점이 현재입니다. 어제까지의 종착점이고 내일을 향한 출발이 오늘입니다. 우리들의 현실에 이 순간 이 시점입니다. 내일 보지 말고 믿는 사람이 내일하겠습니다. 내년에 하겠습니다. 맹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손의 삼줄과 척량하는 잣대를 가지고 영원한 것을 보고 종점을 계산하고 주님 앞에 설 그날까지 계산하고 현대를 살아라. 손에 삼줄과 측량 장대를 가지고 계산하더니, 내가 네가 보이는 모든 것을 내 마음으로 생각할 찌어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니까 보는 겁니다. 에스겔이 볼 수 없는 걸 보여주신 겁니다. 보여주실 수 있도록 노력을 했습니다. 똑같은 사람을 뽑아주신 게 아닙니다. 영원 전 택함이 있었지만 지난 나를 돌아보고 짊어지고 용서해주옵소서 간과할 때에 밝혀서 이상중에 데려가서 보여주신 겁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을 보여주신 겁니다. 우리 눈에 안 보이면 안 보여주신다는 거지요. 또는 안 보이는 거라고 하지요. 그 느낌이 특별합니다. 일반 사람들이 모르는 걸 알게 되고 느끼게 되고 다 가져와 버립니다. 예사로 생각했는데 세월 지나서 보니까 다 보배가 되는 것이고 가면 갈수록 더 귀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에 골동품이라는 거 가치가 굉장히 올라가는데 귀한 것이면 더 그런 겁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서부교회 갔다가 79년도 반사 했고 5년은 매주 얼굴뵈었습니다. 귀한 분이다 막연하게 알았지. 아브라함 같은 분이다. 노래를 부르는데 저는 못느꼈지요. 지금은 실감이 나는 거지요. 그 가치를 알고 느끼니까 그쪽으로 자꾸 파고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전문가가 되는 겁니다. 한쪽으로 파고 들어가면 그쪽 전문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에 미친 사람, 성경 전문가 그렇게 되어야 정상입니다. 에스겔에게 역사하셔서 그런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해서 해야하고 건설해야하는 것이다. 이상 세계로 보여주신 것이다. 주님의 주관하고 계시면서 보여주시니까 되고 말씀을 하는 것을 보고 귀로 들으라. 그리고 내 마음으로 생각할 지어다.
지식이 중요하고 지식을 가지고 생각하면 느낌 감각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작용이 생겨지는 겁니다. 귀로 듣고 생각할지어다. 그러면 마음이 있으면 되는 것이고 우리가 보고 듣고 마음에 느낀 것을 내 동족에게 정해라, 전하는 사명, 여기까지 가야하지요. 당장 구분하는 거지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분 구별 이스라엘이 담장이 무너졌기 때문에 엉망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합시대 때 이스라엘 왕이지요. 그 아합은 이스라엘 왕이니까 하나님의 백성 왕입니다. 그러니까 아달리아가 아합의 딸이죠. 우상 섬기는 그런 아합의 아내는 이세벨이고 이방 족속입니다. 이방의 나라가 왕비로 들어앉았으니 그리되는거지요.
오늘날 이 시대에 할 말은 아니지만 교회들의 담이 다 무너져버린겁니다. 시대가 그렇더라도 교회가 다 그래도 우리는 그래선 안되는 겁니다. 나에게는 어떤 것도 침범하지 못하게 내게 주신 범위 가정들에게 침범하지 못하게 최선을 다해서 지켜지는 것이고 무너지는 것이면 다 세상 따라서 가는 겁니다. 어디에 계신다 그랬습니까. 내가 어디간다고요, 속화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리 되지 마십시다. 오늘 말씀, 양심을 써서 잡힌 자신을 보고 애절하게 기도하고 인간을 초월할 때 하나님을 이상 중에 붙들려서 극히 높은 산에 올라가서 성읍같은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성전에 우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담을 쌓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립니다.
찬송: 61장, 185장
본문: 에스겔 40장 2절 ~ 5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신약 시대에 출발이 초대 교회로 출발합니다. 예수님 가신 후에 열두 사도가 가롯 유다는 빠지고 나중에 사도 바울이 들어가는데 복음을 전파합니다. 하루에 3000명이 회개합니다. 하루에 3000명. 뭘 했다고요. 회개를 했습니다. 이건 굉장한 겁니다. 얼마나 은혜가 넘쳤으면 하루에 3000명이 일어났으니까. 방언 역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유다 나라 말로 하는데 각국 사람들이 자기 지방 언어로 들렸습니다. 방언 역사입니다. 울고 불고 가슴을 쥐어뜯고 난리가 났습니다. 회개한다고. 그게 사람들에게 감정 이런 것보다도 성경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모습을 회개하고 있는데 한 쪽 곁에서 뒷짐을 지고 한 짝 다리 걸치고 있는 사람들이 술을 먹었나 왜 그래 이런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 자리에서. 한 쪽에서는 그 사람보고 귀신이 들어가서 그래서 베드로가 이 사람들 취한게 아니다. 성령에 붙들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자리 한 자리 예배를 들려도 장난 치는 사람 있고 마음은 다른 간 사람이 있고 너 그날 예배 봤을 때 장난쳤잖아 그림만 그렸잖아. 저는 요즘 집회가서 생각하는게 오늘이 가장 젊다.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하루 하루가 달라지기 때문에 늙어봐야 인생을 알겠구나. 몸에 고장이 나야 아는 것이고 병도 생기고 사고도 나보고 연단이라는 것은 참 중요한 것이고 성전 안에 보니까 양쪽에 문이 있습니다. 남쪽 북쪽에 문이 있습니다. 북향은 남쪽문 남향은 북쪽문 남쪽은 은혜 세계 북쪽을 바라봅니다. 환란의 곳입니다. 그게 언제까지 계속될 리 없는 겁니다. 고인물을 썩는다고 합니다. 따뜻함이 계속되면 반드시 타락합니다.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다 그렇습니다. 거스를 수 없습니다. 법칙이라서.
지금은 고요한 때입니다. 언제 우리 가정을 연단할지 모릅니다. 각오 결심하고 계속되기를 기도하면서 징계로 편안을 주지 않도록 평안을 계속 하는 것이고 환란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통스럽고 아프면 연단되겠지요. 그 고난이 언제까지 연단되지 않습니다. 열흘동안 환란을 받습니다. 또 평안은 주시는 겁니다. 환란을 소망하면서 지나가면 안되는 겁니다. 집회 말씀 중요한 것은 바벨론이 산채로 적국에 잡혀갔습니다. 노에로, 종으로,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것이 노예입니다. 죽으면 가져다 버리는 게 노예입니다. 기본적으로 겨우 연명할 수 있을 정도로만 먹고 입힙니다. 있는대로 다 빨아먹습니다. 그게 노예입니다. 그렇게 노예로 살아도 자기들의 생활이 노예인줄을 모르면 당연히 그런 줄 압니다. 모르는 사람도 있고 적응해서 사는 사람도 있고 거기서 노예로 살면서 성공한 사람도 있습니다.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다니엘 전부 바벨론에서 출세한 사람들입니다. 바벨론에 붙어 출세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나라에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내는 사람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애굽에 살 때 종 노릇하면서 자기 동족들을 때리면서 부려먹는 일본 앞잡이처럼 출세하는 겁니다. 출세했는데 매국노가 되는 거지요. 동족 피빨아먹는 매국노가 되는 거지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따라 잡히고 그러면 그리 되는 겁니다. 주일을 팔고 좋은 직장을 지켰다. 돈을 벌었다. 새벽기도를 팔고 점수를 높이 받았다. 알고보니 주일 팔았고 예배 팔았고 기도 팔아먹었고 자기 구원 팔아먹었고 세상을 샀으니까 동족 피 빨아먹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지키면서 사는 것은 좋은 겁니다. 그런데 신앙을 팔아서 출세를 하면 매국노가 되는데 그게 출세인줄 압니다. 거꾸로 아는 거 문제지요. 중요한 것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던 거처럼 사로잡혀 가는 신세에서 한탄할 줄 모르고 원인도 찾지 않고 적응해서 사는 거지요. 문제는 마찬가지입니다. 오전에 어떤 세상에 사로잡혔을까 향락이다. 마음과 고기덩어리를 즐겁게 하는 게 향락입니다. 먹는 거, 입는 거 보는 거, 듣는 거 느끼는 거 별별 이런 것들로 눈을 즐겁게 입을 즐겁게 향락 또는 취미 여행이니 등산이니 음악이니 이런 것들 그리고 세상 출세 성공 돈 벌어보겠다. 노후보장 별별 게 있습니다. 이런 전체적인 게 있으나 개개인으로 들어가면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거 하나 음식 하나를 조절 못하고 조심하는데 커피에 붙들리고 먹지 말아야하는데 붙들리고 그런 것이 있는데 자신이 아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짚어보고 내가 나를 붙드는 것이 무엇인가. 기록하면 좋고 안할지라도 내 원수는 요놈이다. 이걸 집어서 알아야합니다.
나를 사로잡은 세상 내가 붙든 세상 그거 앞에만 나가면 걸려 넘어지는 세상. 이게 취미냐 음식이냐 마실 것이냐 취미냐 뭐냐 각자 자기 속에 자기를 들여다보고 알아야합니다. 그게 자기 주변에 세상 자기를 붙든 대적을 아는 겁니다 알아야 대책을 세우는 겁니다. 알기 위해서 생각해봐야합니다. 그로 인한 손해, 얼마나 자기는 약한지 느낌이 있어야합니다. 느껴야 뭘 하는 거지요. 이걸 할려면 관점을 바로 가져야겠지요. 신앙을 다 팔아먹어도 가정만 평안하면 관점이 틀리기 때문에 답답한 노릇입니다. 내 신앙을 붙들고 있는 내 원수 세상이 뭐냐. 세상에 수 많은 것 중에서 어떤 사람은 자존심 걸리면 설쳐버립니다. 자존심이 그의 세상이고 포로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배고픔을 못견뎌서 찾아먹는 사람도 있고 친구한테 붙들어있는 사람도 있고 별별게 다 있습니다. 나는 나를 붙든 나의 바벨론은 무엇이냐. 그로 인해서 내가 손해보는 손해라는 게 돈 손해겠습니까. 하늘의 사람이 아니면 알아들리지가 않는 겁니다. 내 구원이 얼마나 절단나는지 알아야하고 느껴야합니다.
세 번째는 알고 느끼면은 발버둥이 나옵니다. 이겨내야겠다 싸워내야겠다 노력합니다. 악성악습을 할려고 인간 노력으로 안되기 때문에 네 번째는 애절하게 애절하게 간구를 하는 겁니다. 이 전부가 하나님의 은혜라야하고 발버둥에 한 만큼 그 은혜받고 주셔서 되게 되는 겁니다. 길을 열어주셨다가 하나님께 또 기회를 보시는 겁니다. 풀어지면 옛날로 돌아갑니다. 그때 옛날로 돌아가는 게 개나 돼지가 나를 바가 없습니다. 저는 요즘 개나 돼지보다 낫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찬송가 105장에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쓰러져 보셨습니까. 육신이 쓰러져보셨습니까. 못 견뎌서 넘어져보셨습니까. 그분이 기도를 좀 과하게 요구했습니다. 기도는 하긴 해야겠으니까 목사님이 예배 전 30분 예배 후 30분 강당에서 무릎꿇고 기도했습니다. 절단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니까 무릎에 고장이 생겨버렸습니다. 마지막은 앉아서 하셨습니다. 그게 무거운 짐을 지고 쓰러지는 거지요. 죄 짐을 지고 어떤 무거운 짐을 지고 견디다 못해서 쓰러질 때 도와주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쓰러질 정도가 되는 겁니다. 지나치고 치우치면 되는거지만은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그게 사람의 노력입니다. 사람도 그걸 보면 애가 타서 도와주고 싶은데 그냥 두실 리가 없는 거지요. 실제 실상이 중요한 겁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바벨론에 포로된 이스라엘 여러 가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는 사람은 애가 탔습니다. 애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나중에는 목숨 걸고 기도했습니다. 계명을 지켰습니다. 느헤미야는 성전이 불탔다는 말을 듣고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알아야하고 그로 인한 손해가 큰지 느껴야합니다. 그 손해라는 것은 돈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서도 많은 피해가 가게 되어있습니다. 느끼고 발버둥치고 무거운 짐을 견디다 못해 쓰러질 정도를 했고 마지막 결론은 뜻대로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되는거지요. 에스겔이 그렇게 기도할 때 절망 중에 소망을 주신 겁니다.
하나님이 이상 중에 신앙 양심입니다. 자기라는 게 들어가지 않습니다. 인간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세상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 자기 주관, 자기 선입관념, 자기 입장, 욕심 감정 다 버리고 하는 겁니다. 말씀만 받아들이고 양심을 쓰고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역사하셔서 이상 중에 정상이 아닌 겁니다. 인간을 초월했으니까. 사람을 부인하고 하나님 말씀으로만 받아들이니까 그의 생각이 깨달음이 관점이 달라지는 거지요. 보통 사람과 달라지게 보이는 겁니다. 그 땅에 이르러 급히 높은 산, 하나님의 이상 중에 붙들려서 극히 높은 산에 올라갔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상에 붙들려 기도해서 말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듣고 내려옵니다. 기도 중에 명상 중에 마음을 데려오셨는지 사람이 알 수 없는 볼 수 없는 것을 하는 겁니다. 에스겔도 보여주셨습니다.
자기 정도에서, 이상 중에 보이는 겁니다. 말하기 어렵고 흉내내기 어렵지만 어느정도 감을 잡고 가져봐야합니다. 동감이 되는 것이고 비우는 겁니다. 이런 생활이 계속 될 때 오로지 하나님의 뜻만 찾고 말씀으로만 삼아서 들어가볼 때 사람을 초월합니다. 세상을 초월합니다. 그 사람 자체가 자기 주관적으로 초월해서 객관이신 하나님을 다 받아들이니 함께 하시니까 이상이 초월이 되는겁니다. 깨달음이 초월합니다. 제가 설교하는 것은 근본 지식 수준 가지고 못하는 겁니다. 이 정도라도 배우는 것이 있지만 설교하기 위해서 회개하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그리되는 건데 관점이 초월하게 되는 거지요.
극히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산은 올라갈수록 멀어지고 하늘으로 가는 겁니다. 가장 높은 데 가면 세상입니다. 이론적으로 그렇다 이 말입니다. 인간들 온갖 다툼하는 지옥같은 세상을 벗어나서 세상과 점점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겁니다. 이것처럼 극히 높은 곳에서 초월의 세계입니다. 인간 지식과 역사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관점으로 그 말씀이 나의 주인이 되고 성령이 내 주인이 되어서 내려다 보는 것입니다. 초월의 세계로 올라가는 겁니다. 거기서 극히 높은 산 위에 데려놓으시는데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같은 것이 있더라. 성읍이 있는 겁니까. 성읍 형상 같은 겁니까. 에스겔 눈에 그렇게 보인 겁니다. 실제로 있는 게 아닌 겁니다.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그게 바로 예루살렘이고 성전입니다. 예루살렘 중심에 성전이 있고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 모든 것이 다 되어있고 끝에 가면 성읍 이름을 뭐라고 하시는 줄 아십니까. 여호와 산나라 그렇게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국의 이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루어 가야할 것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우리의 구원, 신앙 생활을 가지는 것으로 이상 세계로 보여주신 겁니다. 극히 높은 산 위에서 성읍의 모습입니다.
천국이라는 것은 영계인데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육은 흙으로 가고 영과 마음은 낙원에 가고 육을 가지고 부활을 하는데 신령한 몸이 되고 물질계는 새로운 것으로 변화를 시킨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보고 듣고 만지고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실존의 존재고 이 세상도 변화된 세상으로 새 하늘 새 땅으로 되어있는데 그 새 하늘 새 땅이 우리들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 것처럼 시공을 초월한 것이 고차원이 되어서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그 나라는 지금같은 물질적인 나라는 아닐 것이고 고차원적인 나라가 될 것이다.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인간 세계지만 다 있는 것이고 나라는 자아가 있는 것이고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면서 고차원의 나라니까 시공을 초월한 세계이기 때문에 영원토록 이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에스겔을 통해서 성읍 형상 같은 것으로 보여주셨으나 우리의 나라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은 형상을 아는 거지요.
우리의 영은 무형의 존재입니다. 무형일 수도 있고 유형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몸은 나타나기도 하고 안 나타나기도 합니다. 육을 가진채로 가졌는데 내 눈으로 보고 옆구리에 넣어봐라 그러면 지금 잡은 생선을 같이 먹자, 그런데 이거에 갇히지 않고 신령한 몸으로 된 것첨 성읍의 이상이라는 것은 그런 차원의 성읍의 이상이다. 아득하게 초월한다는 게 그런 것이고 우리의 인격으로 우리 생활로 지식이 앞서가면서 내 마음와 믿음과 몸의 행동에서 건설에 나가야하는 것. 이게 성읍 현상이라 보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서 놋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집회 때 배웠으니까 누구입니까. 두 글자로 대답한 사람은 틀렸습니다. 고난 받으신 주님. 놋이라는 게 연단이라고 했습니다. 날 위해서 고난 받으신 위해서 주님이 삼줄과 장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멀리 보는 겁니다. 어디까지 보는 게 멀리 보는 겁니까. 성경에 삼줄로 계산하는 건 어디로 보는걸까요. 하늘, 천국, 영원까지 계산하는 겁니다. 장대는 현재입니다.
현재를 살아라. 새 출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재라는 것은 생각해보면 과거의 종점입니다. 미래의 출발점이 현재입니다. 어제까지의 종착점이고 내일을 향한 출발이 오늘입니다. 우리들의 현실에 이 순간 이 시점입니다. 내일 보지 말고 믿는 사람이 내일하겠습니다. 내년에 하겠습니다. 맹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손의 삼줄과 척량하는 잣대를 가지고 영원한 것을 보고 종점을 계산하고 주님 앞에 설 그날까지 계산하고 현대를 살아라. 손에 삼줄과 측량 장대를 가지고 계산하더니, 내가 네가 보이는 모든 것을 내 마음으로 생각할 찌어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니까 보는 겁니다. 에스겔이 볼 수 없는 걸 보여주신 겁니다. 보여주실 수 있도록 노력을 했습니다. 똑같은 사람을 뽑아주신 게 아닙니다. 영원 전 택함이 있었지만 지난 나를 돌아보고 짊어지고 용서해주옵소서 간과할 때에 밝혀서 이상중에 데려가서 보여주신 겁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을 보여주신 겁니다. 우리 눈에 안 보이면 안 보여주신다는 거지요. 또는 안 보이는 거라고 하지요. 그 느낌이 특별합니다. 일반 사람들이 모르는 걸 알게 되고 느끼게 되고 다 가져와 버립니다. 예사로 생각했는데 세월 지나서 보니까 다 보배가 되는 것이고 가면 갈수록 더 귀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에 골동품이라는 거 가치가 굉장히 올라가는데 귀한 것이면 더 그런 겁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서부교회 갔다가 79년도 반사 했고 5년은 매주 얼굴뵈었습니다. 귀한 분이다 막연하게 알았지. 아브라함 같은 분이다. 노래를 부르는데 저는 못느꼈지요. 지금은 실감이 나는 거지요. 그 가치를 알고 느끼니까 그쪽으로 자꾸 파고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전문가가 되는 겁니다. 한쪽으로 파고 들어가면 그쪽 전문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에 미친 사람, 성경 전문가 그렇게 되어야 정상입니다. 에스겔에게 역사하셔서 그런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해서 해야하고 건설해야하는 것이다. 이상 세계로 보여주신 것이다. 주님의 주관하고 계시면서 보여주시니까 되고 말씀을 하는 것을 보고 귀로 들으라. 그리고 내 마음으로 생각할 지어다.
지식이 중요하고 지식을 가지고 생각하면 느낌 감각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작용이 생겨지는 겁니다. 귀로 듣고 생각할지어다. 그러면 마음이 있으면 되는 것이고 우리가 보고 듣고 마음에 느낀 것을 내 동족에게 정해라, 전하는 사명, 여기까지 가야하지요. 당장 구분하는 거지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분 구별 이스라엘이 담장이 무너졌기 때문에 엉망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합시대 때 이스라엘 왕이지요. 그 아합은 이스라엘 왕이니까 하나님의 백성 왕입니다. 그러니까 아달리아가 아합의 딸이죠. 우상 섬기는 그런 아합의 아내는 이세벨이고 이방 족속입니다. 이방의 나라가 왕비로 들어앉았으니 그리되는거지요.
오늘날 이 시대에 할 말은 아니지만 교회들의 담이 다 무너져버린겁니다. 시대가 그렇더라도 교회가 다 그래도 우리는 그래선 안되는 겁니다. 나에게는 어떤 것도 침범하지 못하게 내게 주신 범위 가정들에게 침범하지 못하게 최선을 다해서 지켜지는 것이고 무너지는 것이면 다 세상 따라서 가는 겁니다. 어디에 계신다 그랬습니까. 내가 어디간다고요, 속화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리 되지 마십시다. 오늘 말씀, 양심을 써서 잡힌 자신을 보고 애절하게 기도하고 인간을 초월할 때 하나님을 이상 중에 붙들려서 극히 높은 산에 올라가서 성읍같은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성전에 우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담을 쌓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