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1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4-07-21조회 113추천 27
2024년 7월 21일 주일 오전
찬송: 165장, 5장
본문: 시편 62편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특별히 시편을 공부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글 중에서 시가 가장 어렵다는 말이 있고 시편이 많이 좀 어렵습니다.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하지 못했고 부분적으로 하면서 하나씩 공부하는 중입니다. 119편 중 한 부분을 공부했고 1편을 공부해봤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명하고 우리 공회 사람들은 외우다시피 하는 말씀입니다. 복이라는 것은 원하고 받으려고 애를 쓰고 좋아하는 게 복입니다. 그런데 뭐든지 그렇습니다.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사람이 뒤꼭지만 보고 아닌데 하면 곤란합니다. 잘 아는 사람은 뒤만 봐도 알겠는데 사진만 보고 찾아와라 하면 곤란하지요. 보기는 봤습니다. 그런데 방향이 다르니까 엉뚱한 답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사람을 보는 관점, 행복을 보는 관점, 가정을 보는 관점 시대에 따라 관점은 다 달라지게 되고 사람마다 다 관점은 달라지게 됩니다.
이게 연결이 되겠는데 뿌리 박힌 곳에 없고 기초가 없고 원동이 없고 시대따라 형편 따라 입장 따라 변하게 되면 그 사람의 인생 걸음은 왔다갔다하는 그런 사람이 되게 됩니다.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볼 때 생각하는 것을 본다고 합니다. 보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뭘 생각하느냐 그 말입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깨닫고 느끼는 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게 됩니다. 지난 주에는 복을 생각했는데 복도 생각마다 달라지게 됩니다. 돈이 많아야 복이다. 가정도 행복해야하고 사람마다 사이가 좋아야하지 원수처럼 싸우면 행복하겠습니까. 행복이라고 하진 않습니다. 돈도 있어야하고 몸도 건강해야하고 사람사람 화목해야하고 이런 걸 복이라고 하는데 그걸 생각하는 걸 가르켜 세상 관점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만 보면 그런 겁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복이 뭐냐 돈이 많다고 복 되는 게 아니다.
돈 때문에 형제 간에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돈 때문에 자식놈들이 효도 안하고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 가지고 죄 짓고 하면 불행인가 화목에서 남편이 가니까 아내가 따라가서 잘못된 길 따라가니까 불행입니다. 악인의 꾀를 쫓지 않는 사람, 자기 중심으로 사지 않는 사람, 피조물 중심으로 살지 않는 사람, 자기의 원동이 되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내 중심은 하나님이고 원동은 하나님 삼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복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거짓이 없습니다. 태평양 바다에 그래선 안되는데 세상을 비관하거나 억장이 무너지거나 그런 사람이 퐁 뛰어내려서 죽어버렸습니다. 태평양 바다가 한 사람 빠져 죽는다고 너무너무 괴로워서 억울해서 태평양 한 가운데 빠져 죽었습니다. 그런데 태평양 바다는 꼼지락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아무 감각이 없는 겁니다. 거인의 몸에 먼지가 달라붙으면 사람에게도 붙어버리면 불어버리면 그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안 믿어봐야 저만 불행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과의 관계는 구별하고 생각을 해서 손해보지 않아야합니다. 사람 관계는 세상일은 다 그렇습니다. 여기는 무조건 순종하는 게 복입니다. 그게 가장 큰 복입니다. 사람 몸에 먼지 하나 들러붙는게 감각이 있습니까. 저는 억울하고 분하고 그러는데 아무런 감각이 없는 겁니다. 저만 손해인겁니다.
내 중심을 버리자 내 주관을 버리자 이 사람 복 있는 사람이고 세 번째는요. 오만한 자의 자리, 지식적으로 이만하면 됐다고 합니다. 이만큼 배웠는데 이만큼 충성했는데 회개했는데 이 세상은 장단점이 있는데 목회자 은퇴가 없습니다. 은퇴 제도가 없습니다. 80이 되어도 치매가 걸리지 않을 정도면 그렇습니다. 저도 65입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스스로 물러나야하고 교인들이 봤을 때 없으면 쫓아내야합니다. 반대로 백목사님은 80세까지 충성하셨습니다. 죽는 날까지 가도 모세같은 분은 늘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를 못합니다. 그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다. 다섯가지가 되는 사람은 하나님이 챙긴다고 했습니다. 군인에게 공무원에게 대통령이 그 사람 잘 있나 근무 잘하나 그때부터 아무도 못 건드립니다. 장군이 부대장에게 전화해서 청탁이라고 난리날지 모르겠으나 그러면 그 졸병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챙겨서 믿음이 부족하고 감각이 없는 겁니다. 이런 말씀 듣고 다윗같은 사람은 기절초풍하는 겁니다. 백 목사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그래서 평생 공경하고 살았습니다. 어떤 상황이 있어도 구원만 생각하지 기쁨도 슬픔도 그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의 결과입니다. 늘 감사로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우리는 올라갔다 내려갔다해서 이게 안되는데 짧은 기간이라도 감사만 가득 찹니다. 복있는 사람이고 믿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다윗의 시, 시라는 것은 그 시인 시를 지은 그 사람 속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든지 뭐든지 보면서 들으면서 깨닫고 느끼는 바를 밖으로 토해내는 게 시인이지요. 기도며 고백이며 감사의 표시며 그 식구들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인들은 사물을 보는 거기서 캐내거든요. 보니까 보이니까 표현해내는겁니다. 시인들은 문학 쪽 속에서도 특별하게 높이본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다윗의 시는 신앙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세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 소망 이런 걸 해서 찾아볼 수 있는 겁니다. 시인의 모든 깊은 것이 들어있습니다. 우리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겁니다.
다윗의 시, 여두둔의 법에 따라서 노래하라. 사람 이름입니다. 이 사람이 정한 법칙을 따라서 노래하라는 표시가 있는 것이고 나의 영혼이 영혼이란 마음을 말합니다. 마음인데 마음 중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마음이고 이걸 영혼이라고 합니다. 물 속에 들어가서 깊이 잠긴 상태. 고요하게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을 알고 믿고 의지하니까. 마음이 밝고 맑아집니다. 태풍의 눈이라고 있습니다. 중심은 고요하다고 하지요. 바다 밖에는 폭풍이 몰아치는데 가운데는 고요하다고 하지요. 사업이 부도가 났다 사고 났다 병이 났다 이런 게 생겨졌는데 바람 불고 비오고 난리가 났는데 이 사람은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욥이 그랬지요. 하루 아침에 와서 양이 다 죽었습니다. 소가 죽었습니다. 종들이 다 죽었습니다. 자녀들이 다 죽었습니다. 난리가 났는데 욥은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다윗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주신 분이 하나님이니 나의 구원이 가난에서 질병에서 고난에서 건져내는. 이 사람은 고요하게 있는 겁니다. 참 부럽지 않습니까. 저렇게 침착할 수가 있는가.
일이 생겼을 때 침착하게 처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이 나고 물난리 났을 때 당황하는 사람 침착하게 하나씩 처리해가는 사람. 이 다윗의 시가 평안할 때가 아닙니다. 환란할 때지. 2절 오직이라는 말은 오로지 하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만 저만 반석이시오. 늙고 평평한 바위를 반석이라고 합니다. 반석이라는 말의 의미는 기초, 터, 뿌리 혹은 근본 원인을 말합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기초다. 그 위에서 건설한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은 튼튼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 뿌리 깊게 받으면 부러질언정 뽑히진 않습니다. 그 분이 나의 원인이다. 하나님만 나의 반석이시오, 그 다음 나의 구원이시오 가난에서 건지고 고난에서 건지고 환란에서 건지고 건져내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합니다. 신앙 생활은 전부 구원입니다. 할 일은 환경을 바꾸는게 할 일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환경을 바꾸는 게 할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가 생기면 자기 주변을 바꾸려고 애를 씁니다. 부부가 문제 생기면 양쪽이 비슷할 때 하는 말입니다. 옳은 쪽으로 가는게 맞지요. 부부가 싸움나면 상대가 고치려고 합니다. 환경을 탓하고 바꾸려고 합니다. 동선을 다스리라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런 환경이 몰아칠 때 환경에 영향받지 말라는 뜻입니다. 바람이 부니까 가지가 흔들립니다. 큰 바위는 태풍분다고 요동하지 않습니다. 구원이란 구원이니까 건져내는 것입니다. 질병에서 건지고 그러는데 가난을 없애고 고난을 없애고 질병을 없앤다는 말이 아닙니다. 고난은 그대로고 그대로인데 환란 속에서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그 사람을 만드는 게 하나님의 구원이고 가난한 나라를 도와줄 때 쓰는 말이 있지요.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교육률이 대단합니다. 밥은 굶어도 도둑을 시킵니다. 도둑질을 해서라도 교육은 시킵니다. 625때도 길거리에서 학교 만들어놓습니다. 그렇게 교육이 되어져있기 때문에 이남은 지하자원이 없습니다. 인적자원밖에 없다. 오늘 경제대국이 된겁니다. 무슨 말인가 질병 없애주고 가난 없애주고 고난 없애주고 다른 데 가면 또 고난 받습니다. 가난에 흔들리는 사람은 그때마다 흔들립니다. 시험 들리는 사람은 무슨 말씀으로 달래도 방법이 없습니다. 시험드는 사람은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바꾸는 겁니다.
집회 장소에서 일을 시켜 보시더니 벌써 30대 됐다고 힘든 일 못시키겠습니다 합니다. 젊은 게 좋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하나님만 반석입니다. 다윗과 위로 올라가는 아브라함과 사도 바울과 백목사님과 하나님 뿐입니다. 그분이 나의 전부다. 그분이 구원이다. 깨달았기 때문에 나오는 겁니다. 그분만 구원으로 삼았기 때문에 외부 환경에 피동되지 않습니다. 장마철이 되어서 비가 많이 와서 그러니까 담들이 무너지지 않습니까. 산도 산사태가 나곤 합니다. 울타리 세웠는데 흔들립니다.
다윗도 욥도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믿어가다보면 누구든지 넘어지는 닭처럼 흔들리는 것이 있습니다. 받쳐서 안 넘어지게 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서 안 흔들리도록 만들어줄 생각은 안하고 밀어 넘어트려버리고 그렇게 박격을 한다는 말은 달려들어 두드려 패는 걸 말하는 겁니다. 이게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이 다윗이 반석삼은 하나님 그를 그 높은 위에서 떨어지길 원합니다. 그분은 자존자고 주권자고 창조인데 믿음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데 자존자고 창조주 주권자이기 때문에 그런데 사람인재가 약해서 흔들릴 때 마귀와 사람들은 떨어트리려고 그럽니다.
아기가 웁니다. 아직 말은 못하고 왜 울어. 배가 고파서. 말을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말을 들을 때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봐야 속지 않습니다. 저희가 그를 떨어트리기 위해서 하고 그리고 그 짓을 즐겨하니 축복합니다. 인간 보니까 저주하는 겁니다.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되는 겁니다. 저는 나의 반석이시오 산성이시라. 하나님만 반석입니다. 하나님만 구원입니다. 오늘 말씀 기억하십시다. 하나님만 반석이시다. 반석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넓고 평평한 바위입니다. 기초, 터, 뿌리, 근본 더 나아가면 원동, 원인 그 뜻입니다. 그 위에 건설한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나의 터로 삼고 자라가는 겁니다. 원동으로 삼아서 그 분의 의인이 되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을 반석으로 하는 겁니다. 하나님만 반석이시오 그럴 때 요동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나의 영광이 시작과 과정입니다. 구원의 결과는 영광입니다. 어떤 환란 고난인 것에 영광입니다. 시가 그런 시가 된거지요. 이런 소망이 있어서 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말씀에서 다윗의 시를 생각하면 다윗의 신앙 우리도 이런 신앙 가지도록 소원하고 노력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65장, 5장
본문: 시편 62편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특별히 시편을 공부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글 중에서 시가 가장 어렵다는 말이 있고 시편이 많이 좀 어렵습니다.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하지 못했고 부분적으로 하면서 하나씩 공부하는 중입니다. 119편 중 한 부분을 공부했고 1편을 공부해봤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명하고 우리 공회 사람들은 외우다시피 하는 말씀입니다. 복이라는 것은 원하고 받으려고 애를 쓰고 좋아하는 게 복입니다. 그런데 뭐든지 그렇습니다.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사람이 뒤꼭지만 보고 아닌데 하면 곤란합니다. 잘 아는 사람은 뒤만 봐도 알겠는데 사진만 보고 찾아와라 하면 곤란하지요. 보기는 봤습니다. 그런데 방향이 다르니까 엉뚱한 답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사람을 보는 관점, 행복을 보는 관점, 가정을 보는 관점 시대에 따라 관점은 다 달라지게 되고 사람마다 다 관점은 달라지게 됩니다.
이게 연결이 되겠는데 뿌리 박힌 곳에 없고 기초가 없고 원동이 없고 시대따라 형편 따라 입장 따라 변하게 되면 그 사람의 인생 걸음은 왔다갔다하는 그런 사람이 되게 됩니다.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볼 때 생각하는 것을 본다고 합니다. 보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뭘 생각하느냐 그 말입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깨닫고 느끼는 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게 됩니다. 지난 주에는 복을 생각했는데 복도 생각마다 달라지게 됩니다. 돈이 많아야 복이다. 가정도 행복해야하고 사람마다 사이가 좋아야하지 원수처럼 싸우면 행복하겠습니까. 행복이라고 하진 않습니다. 돈도 있어야하고 몸도 건강해야하고 사람사람 화목해야하고 이런 걸 복이라고 하는데 그걸 생각하는 걸 가르켜 세상 관점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만 보면 그런 겁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복이 뭐냐 돈이 많다고 복 되는 게 아니다.
돈 때문에 형제 간에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돈 때문에 자식놈들이 효도 안하고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 가지고 죄 짓고 하면 불행인가 화목에서 남편이 가니까 아내가 따라가서 잘못된 길 따라가니까 불행입니다. 악인의 꾀를 쫓지 않는 사람, 자기 중심으로 사지 않는 사람, 피조물 중심으로 살지 않는 사람, 자기의 원동이 되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내 중심은 하나님이고 원동은 하나님 삼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복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거짓이 없습니다. 태평양 바다에 그래선 안되는데 세상을 비관하거나 억장이 무너지거나 그런 사람이 퐁 뛰어내려서 죽어버렸습니다. 태평양 바다가 한 사람 빠져 죽는다고 너무너무 괴로워서 억울해서 태평양 한 가운데 빠져 죽었습니다. 그런데 태평양 바다는 꼼지락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아무 감각이 없는 겁니다. 거인의 몸에 먼지가 달라붙으면 사람에게도 붙어버리면 불어버리면 그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안 믿어봐야 저만 불행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과의 관계는 구별하고 생각을 해서 손해보지 않아야합니다. 사람 관계는 세상일은 다 그렇습니다. 여기는 무조건 순종하는 게 복입니다. 그게 가장 큰 복입니다. 사람 몸에 먼지 하나 들러붙는게 감각이 있습니까. 저는 억울하고 분하고 그러는데 아무런 감각이 없는 겁니다. 저만 손해인겁니다.
내 중심을 버리자 내 주관을 버리자 이 사람 복 있는 사람이고 세 번째는요. 오만한 자의 자리, 지식적으로 이만하면 됐다고 합니다. 이만큼 배웠는데 이만큼 충성했는데 회개했는데 이 세상은 장단점이 있는데 목회자 은퇴가 없습니다. 은퇴 제도가 없습니다. 80이 되어도 치매가 걸리지 않을 정도면 그렇습니다. 저도 65입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스스로 물러나야하고 교인들이 봤을 때 없으면 쫓아내야합니다. 반대로 백목사님은 80세까지 충성하셨습니다. 죽는 날까지 가도 모세같은 분은 늘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를 못합니다. 그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다. 다섯가지가 되는 사람은 하나님이 챙긴다고 했습니다. 군인에게 공무원에게 대통령이 그 사람 잘 있나 근무 잘하나 그때부터 아무도 못 건드립니다. 장군이 부대장에게 전화해서 청탁이라고 난리날지 모르겠으나 그러면 그 졸병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챙겨서 믿음이 부족하고 감각이 없는 겁니다. 이런 말씀 듣고 다윗같은 사람은 기절초풍하는 겁니다. 백 목사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그래서 평생 공경하고 살았습니다. 어떤 상황이 있어도 구원만 생각하지 기쁨도 슬픔도 그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의 결과입니다. 늘 감사로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우리는 올라갔다 내려갔다해서 이게 안되는데 짧은 기간이라도 감사만 가득 찹니다. 복있는 사람이고 믿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다윗의 시, 시라는 것은 그 시인 시를 지은 그 사람 속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든지 뭐든지 보면서 들으면서 깨닫고 느끼는 바를 밖으로 토해내는 게 시인이지요. 기도며 고백이며 감사의 표시며 그 식구들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인들은 사물을 보는 거기서 캐내거든요. 보니까 보이니까 표현해내는겁니다. 시인들은 문학 쪽 속에서도 특별하게 높이본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다윗의 시는 신앙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세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 소망 이런 걸 해서 찾아볼 수 있는 겁니다. 시인의 모든 깊은 것이 들어있습니다. 우리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겁니다.
다윗의 시, 여두둔의 법에 따라서 노래하라. 사람 이름입니다. 이 사람이 정한 법칙을 따라서 노래하라는 표시가 있는 것이고 나의 영혼이 영혼이란 마음을 말합니다. 마음인데 마음 중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마음이고 이걸 영혼이라고 합니다. 물 속에 들어가서 깊이 잠긴 상태. 고요하게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을 알고 믿고 의지하니까. 마음이 밝고 맑아집니다. 태풍의 눈이라고 있습니다. 중심은 고요하다고 하지요. 바다 밖에는 폭풍이 몰아치는데 가운데는 고요하다고 하지요. 사업이 부도가 났다 사고 났다 병이 났다 이런 게 생겨졌는데 바람 불고 비오고 난리가 났는데 이 사람은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욥이 그랬지요. 하루 아침에 와서 양이 다 죽었습니다. 소가 죽었습니다. 종들이 다 죽었습니다. 자녀들이 다 죽었습니다. 난리가 났는데 욥은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다윗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주신 분이 하나님이니 나의 구원이 가난에서 질병에서 고난에서 건져내는. 이 사람은 고요하게 있는 겁니다. 참 부럽지 않습니까. 저렇게 침착할 수가 있는가.
일이 생겼을 때 침착하게 처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이 나고 물난리 났을 때 당황하는 사람 침착하게 하나씩 처리해가는 사람. 이 다윗의 시가 평안할 때가 아닙니다. 환란할 때지. 2절 오직이라는 말은 오로지 하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만 저만 반석이시오. 늙고 평평한 바위를 반석이라고 합니다. 반석이라는 말의 의미는 기초, 터, 뿌리 혹은 근본 원인을 말합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기초다. 그 위에서 건설한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은 튼튼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 뿌리 깊게 받으면 부러질언정 뽑히진 않습니다. 그 분이 나의 원인이다. 하나님만 나의 반석이시오, 그 다음 나의 구원이시오 가난에서 건지고 고난에서 건지고 환란에서 건지고 건져내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합니다. 신앙 생활은 전부 구원입니다. 할 일은 환경을 바꾸는게 할 일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환경을 바꾸는 게 할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가 생기면 자기 주변을 바꾸려고 애를 씁니다. 부부가 문제 생기면 양쪽이 비슷할 때 하는 말입니다. 옳은 쪽으로 가는게 맞지요. 부부가 싸움나면 상대가 고치려고 합니다. 환경을 탓하고 바꾸려고 합니다. 동선을 다스리라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런 환경이 몰아칠 때 환경에 영향받지 말라는 뜻입니다. 바람이 부니까 가지가 흔들립니다. 큰 바위는 태풍분다고 요동하지 않습니다. 구원이란 구원이니까 건져내는 것입니다. 질병에서 건지고 그러는데 가난을 없애고 고난을 없애고 질병을 없앤다는 말이 아닙니다. 고난은 그대로고 그대로인데 환란 속에서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그 사람을 만드는 게 하나님의 구원이고 가난한 나라를 도와줄 때 쓰는 말이 있지요.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교육률이 대단합니다. 밥은 굶어도 도둑을 시킵니다. 도둑질을 해서라도 교육은 시킵니다. 625때도 길거리에서 학교 만들어놓습니다. 그렇게 교육이 되어져있기 때문에 이남은 지하자원이 없습니다. 인적자원밖에 없다. 오늘 경제대국이 된겁니다. 무슨 말인가 질병 없애주고 가난 없애주고 고난 없애주고 다른 데 가면 또 고난 받습니다. 가난에 흔들리는 사람은 그때마다 흔들립니다. 시험 들리는 사람은 무슨 말씀으로 달래도 방법이 없습니다. 시험드는 사람은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바꾸는 겁니다.
집회 장소에서 일을 시켜 보시더니 벌써 30대 됐다고 힘든 일 못시키겠습니다 합니다. 젊은 게 좋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하나님만 반석입니다. 다윗과 위로 올라가는 아브라함과 사도 바울과 백목사님과 하나님 뿐입니다. 그분이 나의 전부다. 그분이 구원이다. 깨달았기 때문에 나오는 겁니다. 그분만 구원으로 삼았기 때문에 외부 환경에 피동되지 않습니다. 장마철이 되어서 비가 많이 와서 그러니까 담들이 무너지지 않습니까. 산도 산사태가 나곤 합니다. 울타리 세웠는데 흔들립니다.
다윗도 욥도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믿어가다보면 누구든지 넘어지는 닭처럼 흔들리는 것이 있습니다. 받쳐서 안 넘어지게 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서 안 흔들리도록 만들어줄 생각은 안하고 밀어 넘어트려버리고 그렇게 박격을 한다는 말은 달려들어 두드려 패는 걸 말하는 겁니다. 이게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이 다윗이 반석삼은 하나님 그를 그 높은 위에서 떨어지길 원합니다. 그분은 자존자고 주권자고 창조인데 믿음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데 자존자고 창조주 주권자이기 때문에 그런데 사람인재가 약해서 흔들릴 때 마귀와 사람들은 떨어트리려고 그럽니다.
아기가 웁니다. 아직 말은 못하고 왜 울어. 배가 고파서. 말을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말을 들을 때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봐야 속지 않습니다. 저희가 그를 떨어트리기 위해서 하고 그리고 그 짓을 즐겨하니 축복합니다. 인간 보니까 저주하는 겁니다.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되는 겁니다. 저는 나의 반석이시오 산성이시라. 하나님만 반석입니다. 하나님만 구원입니다. 오늘 말씀 기억하십시다. 하나님만 반석이시다. 반석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넓고 평평한 바위입니다. 기초, 터, 뿌리, 근본 더 나아가면 원동, 원인 그 뜻입니다. 그 위에 건설한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나의 터로 삼고 자라가는 겁니다. 원동으로 삼아서 그 분의 의인이 되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을 반석으로 하는 겁니다. 하나님만 반석이시오 그럴 때 요동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나의 영광이 시작과 과정입니다. 구원의 결과는 영광입니다. 어떤 환란 고난인 것에 영광입니다. 시가 그런 시가 된거지요. 이런 소망이 있어서 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말씀에서 다윗의 시를 생각하면 다윗의 신앙 우리도 이런 신앙 가지도록 소원하고 노력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