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9일 금밤
김동민2024-07-19조회 154추천 21
2024년 7월 19일 금밤
찬송: 5장, 198장
본문: 시편 1편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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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과 2절은 우리의 할 일입니다. 3절은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어떻게 챙겨주시느냐 보살펴주시느냐 이걸 비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4절과 5절은 의인의 반대인 악인, 죄인의 결과를 말하는 거고 의인과 죄인의 겉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복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두 가지를 하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여러 면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생각하는 관점, 판단하는 관점, 기준이라는 말이 되고 시각이다. 그렇게 되는 것이다.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 도형을 두고 단면이다 입체다 위에서 보는 모양 옆에서 보는 모양 뒤에서 보는 모양 대각선으로 보는 모양 그 모양에 따라서 그림이 달라지게 됩니다. 사람도 앞에서 보면 정면이 보이고 옆에서 보면 옆모습이 보입니다.
이걸 보는 각도라고 말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난사 모든 전부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관점은 어떤 관점이냐 구원 관점입니다. 구원의 각도에서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말씀 속에 기록해놓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세계를 인간이 알 수 있도록 인간 수준에 맞춰주셨습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전부 영어를 씁니다. 의대 출신들이 어느 지방대라도 머리가 특출난 사람들입니다. 영어는 달통하다 싶은 사람이라서 게다가 전문용어는 더 어렵습니다. 그 사람들은 말을 해도 사람 인체도 영어로 씁니다. 글을 쓸 때도 그냥 영어로 쓰니까 일반인들이 알기 어렵죠. 그래서 의학 전문 용어로 대화를 하면 무시를 못한다고 합니다.
요즘은 판결문도 조금 바뀐다고 합니다. 법 전문 용어입니다. 쉽게 풀면 되는데 어렵게 어렵게 씁니다. 고체화가 되어서 바뀌기 싶지 않은데 기술자들을 요즘은 기능사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심신이 탁월하게 남다른 기능 가진만큼 연습하고 숙달했기 때문에 인내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실력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용어를 쓰고 표시를 냅니다. 목사들도 저는 못 배워서 무식하기 때문에 표를 못 내는데 유식한 사람들은 신학하고 박사학위 받은 사람은 원어를 배워서 표시를 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알려주실 때 사람이 모르는 언어로 할려면 얼마든지 하시겠지요. 그런데 사랑이시기 때문에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성경 어렵다고 핑계대지 못합니다. 한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거든요. 받은대로 실행하면 주신 것 다 해주시는대로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알 수 있도록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구원의 도리를 해놓으셨기 때문에 말씀 속에 구원의 관점이 들었습니다.
사람을 살필 때에도 가정을 살필 때에도 돈이라는 물질을 살필 때에도 행복을 살필 때에도 무엇을 보든지 믿는 사람을 보는 관점을 구원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구원의 관점. 관점이라는 말의 뜻은 어디서 보느냐. 복도 그런 관점에서 보는 겁니다. 구원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복을 보는 겁니다. 돈이 많아야한다. 돈 없는 행복도 있냐. 세상에 돈이 없는데 가난한데 행복하다. 몸이 약한데 행복하다. 지금은 대장암은 완치도 많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80년대 이복순 권사님이라고 부친이 아주 의사인지 굉장히 부유한 집안의 딸인데 그런데 같이 서부교회 구역장이고 예사로 권사님 그렇게 불렀지 그렇게 귀한 분인지 몰랐습니다. 평양의 최부자의 딸도 있었고 옛날에는 우리나라 총리 부인도 있었고 장관 분들 아주 그냥 많았는데 그분이 마지막에 뭐라그럴까 지적으로 고급스럽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가실 때 장암으로 가셨거든요. 늘 기도하고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떠나서 서부교회식으로 장을 치뤘습니다.
병문안 가는 분이 힘을 얻어서 온다. 암이 장암이 걸려서 투병 중에도 웃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송하고 병문안 가는 사람 설교록에 그런 내용이 있을 겁니다. 몸에 병이 들었는데 행복하다, 또 직장이 흔들흔들해도 행복하다.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겨도 행복하다. 전혀 다른 각도이기 때문에. 신앙 걸음을 걸어가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는 거지요. 먹어봐야 맛을 알 듯이 꿀 안 먹어본 사람 안 계시겠지요. 꿀 먹은 벙어리, 신앙의 걸음을 걸음가본 사람들이 설명을 해도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복이라는 것은 그런 면이 있습니다. 관점이 모르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면 성경 가지고 내가 믿으면 됩니다. 말씀대로 실행하는 건 두 번째에 두고 그게 믿음인데 내가 이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우선입니다. 내가 잘 안될찌라도 건강도 말하지 않았고 가정 화목도 말하지 않았고 다섯 가지 말씀하셨으니까 복있는 사람이구나 이리 받아들이고 이런 사람이 되면 되겠구나.
89년도 5월 집회가 마지막 집회인데 그때 하신 말씀 중에 신앙 노선 말씀하시면서 실행하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옳다고 인정하는 게 우선이 아니냐. 그렇지 않으면 여기 있으면 안되는 거 아니냐. 여기보다 더 옳고 바른 길이 있으면 이 세상이야 이렇든 저럴 수 있는데 일생 바치는 사람들이 여기보다 옳고 바른 곳에 갈려면 가는 게 양심이 아니냐. 여기 이 노선대로 실행하라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생각에 자기 주관에 확신이 있어야하는 거 아니냐. 복이라는 것은 성경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게 좋은 겁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않아야하는데 좇을 수 있는 거지요. 내 중심으로 살면 안되는데 그리 살 때가 있는 겁니다. 죄인의 길에 서면 안되는데 그럴 때가 있잖습니까.
악인의 꾀를 좇지 않아야 복이 되는구나. 이걸 그대로 가질 때 복의 관점을 바로 가진 사람이 되는거지요. 죄인의 길에 서지 않아야 복있는 사람이 되는구나. 복의 관점을 알아야합니다. 악인의 꾀, 꾀라는 것은 모의입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이런 거 한 번 해볼까 이 사람은 자기 중심인데 외식을 해볼까 집에서 먹을까. 오늘 의논합니다. 두 사람이 뭘 하지요. 의논합니다. 점심 먹었습니까 안 먹었습니까. 계획입니다. 그러면 계획한 그것이 음식을 안 먹었으니 죄냐. 악인의 죄를 쫓지 않는다는 건 그런 뜻이 있습니다. 자기 중심의 계획 도모 거기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쁜 걸 보면 그쪽은 쳐다보지도 말아라. 쳐다보면 죕니까. 아예 그쪽은 쳐다보지 말아라. 동참 자체 안 하는 게 복이다. 악인이 되는 게 악인이 안 되는 게 아니고 악인이 될 출발 조차도 안하는 그런 겁니다. 죄인의 길에 섰습니다.
롯이 소돔 고모라로 했습니다. 죄입니까 죄 아닙니까. 선택해갔습니다. 죄입니까 죄 아닙니까. 롯이 소돔 고모라 갔습니다. 고차원적으로 구별해서 자기가 선택하지 않아야 할 것을 했기 때문에 먼저 양보해줘야하고 떠나면 안되는건데 떠났기 때문에 불행이지만 그거 자체가 죄라고 하기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자체가 불행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죄인들이 그쪽으로 간 그건 죄는 아닙니다. 복이 없는 겁니다. 죄인의 길에 안 섰습니다. 가지 않은 게 아니고 서지 않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길에 섰으면 뭐하러 섰습니까. 출발조차 안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내 속에 죄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오만한 자의 자리 되었다. 의를 두고 충성을 두고 회계를 두고 그런 생각 인식 오만한 자의 자리인데 일이 될려면 항상 자기는 죄인입니다. 늘 하나님 앞에 고칠 게 있는 사람입니다. 기준이 바로 되어야지 잘못되면 안되는겁니다.
하나님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을 수 없는 겁니다. 이 세가지는 어디에서 나오느냐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겁니다. 연결이 되는 겁니다. 밤낮 그 생각만 나는 거지요. 결혼의 첫사랑 부부가 아침에 출근하면 각각 출근해서 남편은 남편 직장에서 아내는 아내 직장에서 남편은 아내 생각 아내는 남편 생각만 하는 게 정상적인 신혼 생활입니다. 그게 좋은 겁니다. 즐겁고. 벌이 꿀을 찾아달려들 듯이 즐거워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우리 학생들 공부가 재미있는 사람도 있습니까. 그런데 공부가 재미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국어사전 외우는 게 재미가 있답니다. 그런 사람들이 공부하는 겁니다. 운동이던지 일이던지 죽도록 연습하는 사람보다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만화책이면 소설책이면 즐거워하겠는데 성경말씀이 즐겁다 그건 도인이 되어야하지요. 노력할 때가 되어야합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듯이 만들어두셨습니다. 환경의 사람이 되도록 아무리 성자 성녀라도 소돔 고모라에 가 놓으니까 상해버렸습니다.
롯은 소돔 고모라 성에 가서 죄를 많이 안 지었습니다. 의로운 심정이 상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에 비참하게 되었지만 안 갈 곳에 갔기 때문에 그리 되었는데 거기서 죄를 별로 짓지 않았는데 천사도 영접을 했고 천사 말들고 도망도 치고 사위들 같이 데려갈려고 하고 그런 게 있었는데 환경 전부가 다 되었으니 그렇게 된 거였지요. 네 심신의 뭘 익혀나가느냐, 변화가 되어져나가는 겁니다. 빠져나가면 되는데 안하면 그렇게 되는거지요. 이렇게 하면 비유로 말씀드립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이건 비유인데 이건 결과에 절대성을 두고 말씀하십니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복 있는 사람이 되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그렇게 되어있는거고 다 되었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보살피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므로 역사도 사랑이고 생각도 사랑이고 전부 다 사랑이라서 하나님의 목적은 사랑이고 주권 섭리도 사랑입니다. 다 사랑입니다. 지옥을 만드신 것도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사랑은 이것도 사람도 어느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게 되는데 구원 관점에서 이럴 수 있는데 타락한 시점의 관점에서 안 맞는 겁니다. 지옥도 사랑이다. 죄를 짓게 만든 것도 사랑입니다.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전부 사랑으로 역사하시는데 여기 하나님 사랑하실 때 그 사랑이라는 거 자체가 하나님을 닮은 온전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는 방향이기 때문에 다 좋게 만드는건데 하나님께서 다 사랑하시는데 악인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심으로 챙겨주시는 게 3절인데 하나님의 사랑인데 챙겨 주실 때 어떤 사람을 챙겨야하느냐 무조건 챙기지 않습니다. 전부 품어서 강도도 품고 살인자도 품고 다 용서해주고 이게 세상적인 사랑이라. 그러는데 하나님은 죄인은 지옥에 다 보내시고 악인도 지옥에 다 보내시고 이게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하심으로 사랑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용납할 수 없는 죄를 다 빼버려라. 눈에서 입에서 귀에서 행동에서 죄는 다 빼버려라. 이게 사랑입니다. 자기 중심이 없는 사람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사람, 자기 중심이 없고 악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그거지요. 죄는 아예 생각지도 않는 사람. 챙기는 겁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챙기는 그 사람,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찬송가 198장 했는데 믿음으로 가는 겁니다. 구원의 열매는 누가 맺습니까. 하나님이 관리하시는데 하나님의 관리라는 것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사람이고 죄인의 꾀를 좇지 않는 사람이면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는건데 필연적으로 구원의 열매를 맺는 겁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그런 사람이 되기 때문에 기뻐도 슬퍼도 되지 않습니다. 구원에 성공을 하는거지요.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은, 겉모습입니다. 나무의 잎사귀는 무엇의 표시라고 했던가요. 우리 저 주차장에 왼쪽에 계단 만들면서 바깥으로 옮겨심었습니다. 보나마나 오래 안 가겠다. 자기는 흙이 없거든요. 다 죽어갑니다. 뿌리가 없으니 잎사귀가 마르는 거지요.
사람의 속이 깨끗하면 관상이라든지 관상은 우리가 안 보지만은 믿고 맡기는게 우리가 되는건데 얼굴 상을 봅니다. 평생을 살아온 이력이 얼굴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예배 참석 횟수가 줄어들면 신앙은 가라앉고 있는 겁니다. 이건 보나마나 뿌리가 문제있는 겁니다. 그런데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속에 가득차있으니까 깊이 뭍힌 보배라. 이 보화를 캐어갈자 어디있으랴 안심이랴. 아무도 가져갈 수 없는 게 신앙의 보배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말씀으로 가득찬 감사기쁨으로 잎사귀로 마르지 않는 것입니다. 악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챙기시는 것과 다르다고합니다. 아무도 챙겨주는 사람 없고 그러니까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합니다. 한 여름에 얼음을 내놓으면 다 녹아버리는 겁니다. 불이 타면 다 타는 겁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지으면 다 무너지는 겁니다. 이게 악인의 심판입니다. 악인은 심판을 견디지못합니다. 피조물 중심이 안되는거지요. 원형 틀에 어떤 모양을 넣어야 원형 틀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10cm 되는 원형틀 안에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뭘 집어야 됩니까. 꼭 같은 원형이라야 들어가야합니다. 닭으로 자란 닭은 물을 만나면 안 들어갑니다. 물
찬송: 5장, 198장
본문: 시편 1편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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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과 2절은 우리의 할 일입니다. 3절은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어떻게 챙겨주시느냐 보살펴주시느냐 이걸 비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4절과 5절은 의인의 반대인 악인, 죄인의 결과를 말하는 거고 의인과 죄인의 겉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복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두 가지를 하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여러 면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생각하는 관점, 판단하는 관점, 기준이라는 말이 되고 시각이다. 그렇게 되는 것이다.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 도형을 두고 단면이다 입체다 위에서 보는 모양 옆에서 보는 모양 뒤에서 보는 모양 대각선으로 보는 모양 그 모양에 따라서 그림이 달라지게 됩니다. 사람도 앞에서 보면 정면이 보이고 옆에서 보면 옆모습이 보입니다.
이걸 보는 각도라고 말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난사 모든 전부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관점은 어떤 관점이냐 구원 관점입니다. 구원의 각도에서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말씀 속에 기록해놓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세계를 인간이 알 수 있도록 인간 수준에 맞춰주셨습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전부 영어를 씁니다. 의대 출신들이 어느 지방대라도 머리가 특출난 사람들입니다. 영어는 달통하다 싶은 사람이라서 게다가 전문용어는 더 어렵습니다. 그 사람들은 말을 해도 사람 인체도 영어로 씁니다. 글을 쓸 때도 그냥 영어로 쓰니까 일반인들이 알기 어렵죠. 그래서 의학 전문 용어로 대화를 하면 무시를 못한다고 합니다.
요즘은 판결문도 조금 바뀐다고 합니다. 법 전문 용어입니다. 쉽게 풀면 되는데 어렵게 어렵게 씁니다. 고체화가 되어서 바뀌기 싶지 않은데 기술자들을 요즘은 기능사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심신이 탁월하게 남다른 기능 가진만큼 연습하고 숙달했기 때문에 인내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실력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용어를 쓰고 표시를 냅니다. 목사들도 저는 못 배워서 무식하기 때문에 표를 못 내는데 유식한 사람들은 신학하고 박사학위 받은 사람은 원어를 배워서 표시를 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알려주실 때 사람이 모르는 언어로 할려면 얼마든지 하시겠지요. 그런데 사랑이시기 때문에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성경 어렵다고 핑계대지 못합니다. 한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거든요. 받은대로 실행하면 주신 것 다 해주시는대로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알 수 있도록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구원의 도리를 해놓으셨기 때문에 말씀 속에 구원의 관점이 들었습니다.
사람을 살필 때에도 가정을 살필 때에도 돈이라는 물질을 살필 때에도 행복을 살필 때에도 무엇을 보든지 믿는 사람을 보는 관점을 구원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구원의 관점. 관점이라는 말의 뜻은 어디서 보느냐. 복도 그런 관점에서 보는 겁니다. 구원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복을 보는 겁니다. 돈이 많아야한다. 돈 없는 행복도 있냐. 세상에 돈이 없는데 가난한데 행복하다. 몸이 약한데 행복하다. 지금은 대장암은 완치도 많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80년대 이복순 권사님이라고 부친이 아주 의사인지 굉장히 부유한 집안의 딸인데 그런데 같이 서부교회 구역장이고 예사로 권사님 그렇게 불렀지 그렇게 귀한 분인지 몰랐습니다. 평양의 최부자의 딸도 있었고 옛날에는 우리나라 총리 부인도 있었고 장관 분들 아주 그냥 많았는데 그분이 마지막에 뭐라그럴까 지적으로 고급스럽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가실 때 장암으로 가셨거든요. 늘 기도하고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떠나서 서부교회식으로 장을 치뤘습니다.
병문안 가는 분이 힘을 얻어서 온다. 암이 장암이 걸려서 투병 중에도 웃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송하고 병문안 가는 사람 설교록에 그런 내용이 있을 겁니다. 몸에 병이 들었는데 행복하다, 또 직장이 흔들흔들해도 행복하다.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겨도 행복하다. 전혀 다른 각도이기 때문에. 신앙 걸음을 걸어가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는 거지요. 먹어봐야 맛을 알 듯이 꿀 안 먹어본 사람 안 계시겠지요. 꿀 먹은 벙어리, 신앙의 걸음을 걸음가본 사람들이 설명을 해도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복이라는 것은 그런 면이 있습니다. 관점이 모르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면 성경 가지고 내가 믿으면 됩니다. 말씀대로 실행하는 건 두 번째에 두고 그게 믿음인데 내가 이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우선입니다. 내가 잘 안될찌라도 건강도 말하지 않았고 가정 화목도 말하지 않았고 다섯 가지 말씀하셨으니까 복있는 사람이구나 이리 받아들이고 이런 사람이 되면 되겠구나.
89년도 5월 집회가 마지막 집회인데 그때 하신 말씀 중에 신앙 노선 말씀하시면서 실행하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옳다고 인정하는 게 우선이 아니냐. 그렇지 않으면 여기 있으면 안되는 거 아니냐. 여기보다 더 옳고 바른 길이 있으면 이 세상이야 이렇든 저럴 수 있는데 일생 바치는 사람들이 여기보다 옳고 바른 곳에 갈려면 가는 게 양심이 아니냐. 여기 이 노선대로 실행하라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생각에 자기 주관에 확신이 있어야하는 거 아니냐. 복이라는 것은 성경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게 좋은 겁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않아야하는데 좇을 수 있는 거지요. 내 중심으로 살면 안되는데 그리 살 때가 있는 겁니다. 죄인의 길에 서면 안되는데 그럴 때가 있잖습니까.
악인의 꾀를 좇지 않아야 복이 되는구나. 이걸 그대로 가질 때 복의 관점을 바로 가진 사람이 되는거지요. 죄인의 길에 서지 않아야 복있는 사람이 되는구나. 복의 관점을 알아야합니다. 악인의 꾀, 꾀라는 것은 모의입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이런 거 한 번 해볼까 이 사람은 자기 중심인데 외식을 해볼까 집에서 먹을까. 오늘 의논합니다. 두 사람이 뭘 하지요. 의논합니다. 점심 먹었습니까 안 먹었습니까. 계획입니다. 그러면 계획한 그것이 음식을 안 먹었으니 죄냐. 악인의 죄를 쫓지 않는다는 건 그런 뜻이 있습니다. 자기 중심의 계획 도모 거기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쁜 걸 보면 그쪽은 쳐다보지도 말아라. 쳐다보면 죕니까. 아예 그쪽은 쳐다보지 말아라. 동참 자체 안 하는 게 복이다. 악인이 되는 게 악인이 안 되는 게 아니고 악인이 될 출발 조차도 안하는 그런 겁니다. 죄인의 길에 섰습니다.
롯이 소돔 고모라로 했습니다. 죄입니까 죄 아닙니까. 선택해갔습니다. 죄입니까 죄 아닙니까. 롯이 소돔 고모라 갔습니다. 고차원적으로 구별해서 자기가 선택하지 않아야 할 것을 했기 때문에 먼저 양보해줘야하고 떠나면 안되는건데 떠났기 때문에 불행이지만 그거 자체가 죄라고 하기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자체가 불행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죄인들이 그쪽으로 간 그건 죄는 아닙니다. 복이 없는 겁니다. 죄인의 길에 안 섰습니다. 가지 않은 게 아니고 서지 않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길에 섰으면 뭐하러 섰습니까. 출발조차 안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내 속에 죄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오만한 자의 자리 되었다. 의를 두고 충성을 두고 회계를 두고 그런 생각 인식 오만한 자의 자리인데 일이 될려면 항상 자기는 죄인입니다. 늘 하나님 앞에 고칠 게 있는 사람입니다. 기준이 바로 되어야지 잘못되면 안되는겁니다.
하나님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을 수 없는 겁니다. 이 세가지는 어디에서 나오느냐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겁니다. 연결이 되는 겁니다. 밤낮 그 생각만 나는 거지요. 결혼의 첫사랑 부부가 아침에 출근하면 각각 출근해서 남편은 남편 직장에서 아내는 아내 직장에서 남편은 아내 생각 아내는 남편 생각만 하는 게 정상적인 신혼 생활입니다. 그게 좋은 겁니다. 즐겁고. 벌이 꿀을 찾아달려들 듯이 즐거워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우리 학생들 공부가 재미있는 사람도 있습니까. 그런데 공부가 재미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국어사전 외우는 게 재미가 있답니다. 그런 사람들이 공부하는 겁니다. 운동이던지 일이던지 죽도록 연습하는 사람보다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만화책이면 소설책이면 즐거워하겠는데 성경말씀이 즐겁다 그건 도인이 되어야하지요. 노력할 때가 되어야합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듯이 만들어두셨습니다. 환경의 사람이 되도록 아무리 성자 성녀라도 소돔 고모라에 가 놓으니까 상해버렸습니다.
롯은 소돔 고모라 성에 가서 죄를 많이 안 지었습니다. 의로운 심정이 상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에 비참하게 되었지만 안 갈 곳에 갔기 때문에 그리 되었는데 거기서 죄를 별로 짓지 않았는데 천사도 영접을 했고 천사 말들고 도망도 치고 사위들 같이 데려갈려고 하고 그런 게 있었는데 환경 전부가 다 되었으니 그렇게 된 거였지요. 네 심신의 뭘 익혀나가느냐, 변화가 되어져나가는 겁니다. 빠져나가면 되는데 안하면 그렇게 되는거지요. 이렇게 하면 비유로 말씀드립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이건 비유인데 이건 결과에 절대성을 두고 말씀하십니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복 있는 사람이 되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그렇게 되어있는거고 다 되었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보살피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므로 역사도 사랑이고 생각도 사랑이고 전부 다 사랑이라서 하나님의 목적은 사랑이고 주권 섭리도 사랑입니다. 다 사랑입니다. 지옥을 만드신 것도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사랑은 이것도 사람도 어느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게 되는데 구원 관점에서 이럴 수 있는데 타락한 시점의 관점에서 안 맞는 겁니다. 지옥도 사랑이다. 죄를 짓게 만든 것도 사랑입니다.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전부 사랑으로 역사하시는데 여기 하나님 사랑하실 때 그 사랑이라는 거 자체가 하나님을 닮은 온전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는 방향이기 때문에 다 좋게 만드는건데 하나님께서 다 사랑하시는데 악인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심으로 챙겨주시는 게 3절인데 하나님의 사랑인데 챙겨 주실 때 어떤 사람을 챙겨야하느냐 무조건 챙기지 않습니다. 전부 품어서 강도도 품고 살인자도 품고 다 용서해주고 이게 세상적인 사랑이라. 그러는데 하나님은 죄인은 지옥에 다 보내시고 악인도 지옥에 다 보내시고 이게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하심으로 사랑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용납할 수 없는 죄를 다 빼버려라. 눈에서 입에서 귀에서 행동에서 죄는 다 빼버려라. 이게 사랑입니다. 자기 중심이 없는 사람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사람, 자기 중심이 없고 악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그거지요. 죄는 아예 생각지도 않는 사람. 챙기는 겁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챙기는 그 사람,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찬송가 198장 했는데 믿음으로 가는 겁니다. 구원의 열매는 누가 맺습니까. 하나님이 관리하시는데 하나님의 관리라는 것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사람이고 죄인의 꾀를 좇지 않는 사람이면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는건데 필연적으로 구원의 열매를 맺는 겁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그런 사람이 되기 때문에 기뻐도 슬퍼도 되지 않습니다. 구원에 성공을 하는거지요.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은, 겉모습입니다. 나무의 잎사귀는 무엇의 표시라고 했던가요. 우리 저 주차장에 왼쪽에 계단 만들면서 바깥으로 옮겨심었습니다. 보나마나 오래 안 가겠다. 자기는 흙이 없거든요. 다 죽어갑니다. 뿌리가 없으니 잎사귀가 마르는 거지요.
사람의 속이 깨끗하면 관상이라든지 관상은 우리가 안 보지만은 믿고 맡기는게 우리가 되는건데 얼굴 상을 봅니다. 평생을 살아온 이력이 얼굴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예배 참석 횟수가 줄어들면 신앙은 가라앉고 있는 겁니다. 이건 보나마나 뿌리가 문제있는 겁니다. 그런데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속에 가득차있으니까 깊이 뭍힌 보배라. 이 보화를 캐어갈자 어디있으랴 안심이랴. 아무도 가져갈 수 없는 게 신앙의 보배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말씀으로 가득찬 감사기쁨으로 잎사귀로 마르지 않는 것입니다. 악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챙기시는 것과 다르다고합니다. 아무도 챙겨주는 사람 없고 그러니까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합니다. 한 여름에 얼음을 내놓으면 다 녹아버리는 겁니다. 불이 타면 다 타는 겁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지으면 다 무너지는 겁니다. 이게 악인의 심판입니다. 악인은 심판을 견디지못합니다. 피조물 중심이 안되는거지요. 원형 틀에 어떤 모양을 넣어야 원형 틀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10cm 되는 원형틀 안에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뭘 집어야 됩니까. 꼭 같은 원형이라야 들어가야합니다. 닭으로 자란 닭은 물을 만나면 안 들어갑니다.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