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밤
김동민2024-07-05조회 146추천 19
2024년 7월 5일 금밤
찬송: 90장, 121장
본문: 시편 119편 105절 ~ 107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한 토막을 8절씩 잡아서 176절까지 되어있고 한 절 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된 표현이 빠짐없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제가 읽으면서 살펴보니까 몇 절은 아니다 싶은데 한 절도 빠짐없이 말씀과 관련된 것이 다 들어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읽어보면 말씀과 관련된 표현이 다 되어있습니다. 말씀과 관련된 표현이 다 들어있다고 합니다. 119편은 말씀에 대해 기록한 말씀입니다. 본문에 보니까 주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발과 길은 뗄 수 없는 관계지요. 기른 사람이 살아가는 걸 나그네 길 인생 길입니다. 발로 걸어갑니다. 길을 걸어가는 것은 사람의 발로 걸어가는 겁니다.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발, 주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해석한 많은 교리도 있고 해석도 있고 말씀을 바탕해서 하나님 말씀에 맞는 말씀이면 간접이라도 말씀입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내 발에 등이요 등이 있으면 어두워도 밝아집니다. 등이라는 것은 어두울 때 필요한 것입니다. 낮에는 등일 필요가 없는 거지요. 밝아야할 곳에 필요한 것입니다.
등과 빛은 어떤 면에서 같은건데 굳이 생각하면 등은 인위적인 면이 있는 거지요, 이것만 말하자면 형광등 전구 인위적인 것으로 사람의 힘으로 밝히는 게 등이겠고 태양빛 하늘에서 비춰주는 빛이다. 그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내가 걸어가는 나의 길에 나의 등입니다. 여기 발이란 길을 걸어가는 것이고 모든 언행심사겠고 활동이겠고 사람이 모든 움직임이 발이라, 길을 걸어가는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길을 살아가는 발이라, 그것을 밝히 비추는 게 등이고 등대가 있습니다. 우리 예배당에도 형광등 등을 다 켜놨습니다. 밝혀주는 겁니다. 사람을 보고 사물을 보고 길을 보고 모든 것을 바로 보고 알 수 있도록 밝혀주는 게 빛입니다. 밝힌다는 것은 빛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바로 보게 하는 것이 빛입니다. 빛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보지못하면 모르는거지요. 그 말은 다시 말하면 무슨 말입니까. 알게 하는 게 빛입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을 바로 대할 수 있고 할 수 있습니다.
알면 뭐든지 할 수 있고 모르면 할 수 없는 겁니다. 아는 것은 빛이고 아는 것은 밝음이 되는 것이고 어둠이 되는 것이다. 10절, 106절, 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주의 의로운 규레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게 의로 행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의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 그러면 범위가 굉장히 넓은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면 어떤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소원이고 마음이고 원하는 바인데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뜻을 이루는 게 의인데 뜻을 이루는 게 하나님의 말씀이고 규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주신 하나의 방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 말씀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하지 말라는 맹세가 아닙니다. 성경에 그만 맹세는 최종 주인되는 걸 말합니다.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결정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너가 주권자가 되지 말아라는 것이고 여기서 맹세하는 것은 사람이 할 때까지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시편 119편을 앞에는 안 나와있는데 다윗의 시라고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규례가 바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말할 때 말씀이라고 하고 이걸 어기면 벌이 될 때 명령이라고 하고 계명적으로 지킬 명령으로 주실 때 계명이라고 하고 법으로 주실 때 율법이라고 하고 그 율법을 적어놓으셨을 때 법률이라고 하고 여기는 규례라 그랬습니다. 세밀하게 알려주시는 것을 규레라고 합니다. 나의 고난이 막심하고니 마음의 고난, 욥처럼 몸의 고난을 받았습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 한이라 그럴까고 자기 생애를 저주하고 원망한게 나오는데 마음의 고난이었습니다. 몸의 고난 때문에 마음의 고난을 크게 받았는데 그게 이해를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자기가 살아온 생활고 고난이 너무 안 맞는 겁니다. 거기다가 세 친구가 욥을 공격하는데 그 세 친구의 말을 반박하다 보니까 욥의 세 친구는 근처도 가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말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욥의 깊은 신앙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권선징악의 하나님이다. 이렇게 혹독한 고난 받는 거 보니까 의인을 이렇게 벌 줄 리가 없다. 너는 죄인이다. 그토록 의인인척 했는데 엄청나게 많은 죄를 지은 사람이다. 욥은 계속해서 나는 죄가 없는 사람이다. 원수의 소송장이 있으면 어깨에 메고 다닐거다. 그 소송장 가져와봐라 어깨에 메고 다닐거다. 그만큼 당당하게 소리를 쳤습니다. 살아오면서 실질적으로 욥은 죄를 안 지었으니까.
죄가 없는데 이렇게까지 고난을 받으니까 마음의 고난이 된 거지요. 나의 고난이 막심하오니 다윗의 고난도 막심했습니다. 외부적인 그런 연단적인 시련적인 고난이었고 그런 고난 다 이긴 다음에 진짜 큰 고난은 자기 실수로 받은 고난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보다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만왕의 왕 다윗이 되다 보니까 징계를 내리게 되는 거지요. 사람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난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인생은 고해입니다. 몸의 권한 마음의 권한 별의 별 고난이 다 있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도 고난을 다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에게만 고난을 주시지 않습니다. 여러 고난을 다 받는데 남다르게 받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고난을 받았는데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말씀대로 소성케 하소서. 주의 말씀이 있잖습니까. 하나님께서 여호와로 계약을 맺지 않았습니까. 죄 없는 사람은 징계하지 죄 없는 사람에게 연단을 주시면 연단입니다. 죄로 인해서 막심한 고난을 받습니다. 그런지 확실하지 않으나 죄를 지었으므로 징계를 받아서 큰 막심한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대로 회계하면은 소성시킨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나를 소성케하소서 힘을 주소서 여기까지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했습니다. 그런데 50일만에 모세를 불러서 10계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10계명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갈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 가나안을 향해서 가는 그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법을 주셨다. 십계명없을 때도 아브라함 때에도 말씀으로 있었습니다. 모세 이전에 개인적으로 인도하실 때 다 말씀하고 가르쳤고 그때부터 백성들 숫자가 많아지니까 체계적으로 많아진 것입니다. 그 말씀 속에 십계명 간단합니다. 사람에 대한 계명 간단한데 전체로 하나님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알아야할 것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알아라.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십니다. 어떻게 섬길 것인가. 하나님을 섬기는 법칙에 대해서 말씀으로 세밀하게 알려주십니다. 사람이 누구냐, 사람도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셨습니다. 이 세상이 뭐냐, 세상도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셨습니다.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섬기는 사람이 있고 세상이 있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말씀에 담아 주셨고 하나님을 섬기며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결혼도 해야하고 아이들 학생들도 해야하고 직장도 다녀야하고 사람사람 관계도 맺어야하고 사물도 접촉을 해야하고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때 그때 따지고 사리판단해서 그렇게 대처하고 나가겠지만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크든 작든 어떤 일이든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살펴라.
가정을 이루었느냐 부부사이가 되었느냐 이 세상은 엉망이지요, 도덕 따라가지 말고 석가모니 따라가지 말고 철학자 말 따라가지 말고 부부의 위치를 알고 부부 관계를 잘 맺어서 가정 교회를 이루어라. 자녀가 낳았으면 기를 때도 상대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낳고 길러가라. 자녀가 부모를 만났냐 말씀으로 상대해 나가라. 사회 생활도 말씀으로 살펴 나가라. 직장생활도 말씀으로 상대해서 살펴 나가라. 행복하면 말씀을 가지고 그 행복한 상황을 잘 감사하면서 고요한 때를 주셨으니까 다윗의 유언을 생각했으니까 요압이 전쟁의 피를 흘렸다고 했습니다. 구원을 이뤄갈 고요할 때입니다. 이 많은 학생들 어떻게 구원해야겠습니까. 주일 학생들을 담대하게 기도하셔서 오랜 세월 평안하게 살아왔습니다. 구원을 이뤄갈 때입니다. 전도하고 심방하고 힘 쓸 때가 태평시대입니다. 행복하냐 열심히 성경을 읽어라. 열심히 예배를 참석하고 전력해라 고요한 때입니까 얼마든지 힘쓰면 됩니다. 그런 고요한 때는 준비의 때입니다. 문으로 들어가서 일반 사람이든 왕이든 무엇이 없습니까. 직진만 있습니다. 돌아가는 수가 없는 겁니다. 언제까지 계속되지 아니한다. 내가 열흘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까지 가지는 게 열흘입니다. 그 시험이 언제까지 계속되지 아니한다. 언제까지 평화만 있지 않는다. 준비의 때입니다. 고요한 때를 맞이했느냐 부지런히 준비해라. 평안할 때 고요할 때 고난을 당합니다. 평소에 공부하지 않으면 시험칠 때 답을 모르게 됩니다. 말은 쉬운데 실제하기는 어렵지요. 원칙대로 안하니까 보통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말씀으로 기록해놨습니다.
너를 돌아보라는 때다. 혹시 둘이 너무 좋아서 푹 빠져서 주님 잊어버린 거 아니냐. 부부 재미도 좋지만은 주님과 사귀는 게 더 중요한데 그게 더 멀어지면 벌여놓습니다. 나는 안 보냐하고. 주님은 시기가 굉장히 강한 분입니다. 그래서 어려움 왔느냐 돌아봐라 경제에서 어려우냐 돌아봐라, 자녀에게 어려우면 돌아봐라, 어려움을 만나면 그 면으로 돌아봐라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잘못된 거 있으면 회개해라, 일단 돌아보고 회개할 거 찾아보고 없으면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회개할 것이 안 보이면 욥이 그렇게 소리쳤는데 욥이 의인은 의인인데 하나님보다 어렵지 않는데 이유가 있어서 주시는 환란인데 이렇게 되어야하는데 자기의 의만 강조하다 보니까 불의한 것을 만들어버리는 것처럼 회개하는 사람이 있어야합니까. 계속되면은요 더 나은 사람을 향해서 연단시키는 거니까 고난스럽겠지만은 달게 받아라. 이걸 다 기록해놨고 이 말씀을 믿고 이 말씀으로 살아갈 때 그때에 예외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어가는 우리 생활에 예외를 두게 되면 믿음 생활을 못하게 되고 하나님 편에 예외를 두면 기독교가 공중분해가 되게 되고 그 말씀에서 빼버리면 그때부터 신앙생활은 구멍이 생겨서 끝까지 가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어떤 어려움을 만날찌라도 일단 돌아봐라 회개할 것 찾아봐라 없으면 거기서 너 자신을 보배롭게 만들어라. 그래 나가면 가면 갈수록 더 귀하게 되는 수가 있는 겁니다. 남의 말은 쉽게 합니다. 설교자는 받을 심판이 클 수 있습니다. 교인들의 어려움을 쉽게 생각하고 쉽게 설교하면 자기는 그러지 않으면 심판 받는데 원칙적인 설교를 안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양심의 가책이 되어도 교인들이 목사 당신은 할 말 하고 있습니까. 견디겠습니다 하면 저도 자신없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그러니까 전하는 것이지요.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입니까.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까 그들의 말은 듣고 지켜라 그러면 복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본받지 말아라, 말은 지켜라 목사가 교인들 마음에 안 들어도 행동은 따라가면 안됩니다. 말은 들어보고 순종하는 게 자기에게 복입니다. 말이 틀렸으면 설교가 틀렸습니다 해야합니다. 맞으면 복입니다. 듣는 사람이 난제를 만나면 어디가서 해결할까 예수믿는 사람들의 난제는 어떤 복잡한 일이든 말씀 속에서 답을 찾는 겁니다. 어찌 되었든 예수 믿는 사람들의 난제는 말씀에서 말씀을 찾고 길을 찾고 해결을 해야 해결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믿음의 도라고 합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말씀을 찾고 믿고 그대로 따라야 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게 이런 의미로 주신 게 십계명입니다. 가다가 그때는 십계명 받기 전인데 홍해 바다를 만났느냐 진퇴양난입니다. 반석에서 목이 마른데 바위를 칩니다. 물이 나옵니다. 물이 써서 마시니까 죽겠습니다. 나뭇가지 던져라 그러니 해결이 되는 겁니다.
말씀에서 답을 찾고 해결하지 않으면 난제 해결하는 길은 없는 겁니다. 믿음을 가지면 믿음으로 사는 자는 무슨 일로 만나든지 만사가 통하고 모든 것은 근심 걱정 염려 불안 초조 의심 낙망 낙심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봐도 할 수 없는 것이 있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건 사람이 할 수 없는 겁니다 하면 말씀에서 찾는 겁니다. 찾아보니까 할 수 없는 겁니다. 십자가 고난의 쓴 잔이 너무 무거워서 아버지여 이 잔을 꼭 내가 마셔야합니까. 주님만 대속을 하실 수 있으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지고가면은 영육의 마지막에 복이 됩니다. 하루도 아니고 일년도 아니고 십년도 아니고 어떻게하나 싶은데 그 짐을 지고 가면 세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늘의 신비한 기쁨을 얻는 게 그런 것이고 그 사람에게 연단받고 빛나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기묘한 것이 그런 겁니다. 이런 신비한 역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세상이 알지못하는 그런 역사 이런 전부다가 말씀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회개햐아합니까 회개하겠습니다. 견뎌야합니까 견뎌야겠습니다. 가다보면 하나님께서 사람도 운행에 피곤하다고 중간 중간에 휴개소를 만들어놨습니다. 대동교회 오래되었습니다. 그때 뭣 모르고 차를 탔는데 세 시간 네 시간을 달리는데 달려도 달려도 휴개소가 없습니다. 피곤하고, 그래서 얼마나 힘들었던지 그리고 차를 안 가지고 갑니다. 고속도로 달리다가 휴개소 없으면 힘듭니다. 보통 한 두 시간 마다 하는 것이고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들의 고난을 몰아쳐서 만들지 않습니다. 고난의 길을 가다보면 능가할 수 있는 힘도 주시고 신비스러운 역사를 하시는 것이 하나님 역사입니다. 믿음으로 가면 되는 것이고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그 찬송이 나오는 겁니다. 믿음을 떠나서 가다가 근심 걱정 염려 낙망낙심하면 더 안 좋은 고난으로 가게 됩니다. 이 말씀 기억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90장, 121장
본문: 시편 119편 105절 ~ 107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한 토막을 8절씩 잡아서 176절까지 되어있고 한 절 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된 표현이 빠짐없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제가 읽으면서 살펴보니까 몇 절은 아니다 싶은데 한 절도 빠짐없이 말씀과 관련된 것이 다 들어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읽어보면 말씀과 관련된 표현이 다 되어있습니다. 말씀과 관련된 표현이 다 들어있다고 합니다. 119편은 말씀에 대해 기록한 말씀입니다. 본문에 보니까 주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발과 길은 뗄 수 없는 관계지요. 기른 사람이 살아가는 걸 나그네 길 인생 길입니다. 발로 걸어갑니다. 길을 걸어가는 것은 사람의 발로 걸어가는 겁니다.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발, 주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해석한 많은 교리도 있고 해석도 있고 말씀을 바탕해서 하나님 말씀에 맞는 말씀이면 간접이라도 말씀입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내 발에 등이요 등이 있으면 어두워도 밝아집니다. 등이라는 것은 어두울 때 필요한 것입니다. 낮에는 등일 필요가 없는 거지요. 밝아야할 곳에 필요한 것입니다.
등과 빛은 어떤 면에서 같은건데 굳이 생각하면 등은 인위적인 면이 있는 거지요, 이것만 말하자면 형광등 전구 인위적인 것으로 사람의 힘으로 밝히는 게 등이겠고 태양빛 하늘에서 비춰주는 빛이다. 그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내가 걸어가는 나의 길에 나의 등입니다. 여기 발이란 길을 걸어가는 것이고 모든 언행심사겠고 활동이겠고 사람이 모든 움직임이 발이라, 길을 걸어가는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길을 살아가는 발이라, 그것을 밝히 비추는 게 등이고 등대가 있습니다. 우리 예배당에도 형광등 등을 다 켜놨습니다. 밝혀주는 겁니다. 사람을 보고 사물을 보고 길을 보고 모든 것을 바로 보고 알 수 있도록 밝혀주는 게 빛입니다. 밝힌다는 것은 빛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바로 보게 하는 것이 빛입니다. 빛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보지못하면 모르는거지요. 그 말은 다시 말하면 무슨 말입니까. 알게 하는 게 빛입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을 바로 대할 수 있고 할 수 있습니다.
알면 뭐든지 할 수 있고 모르면 할 수 없는 겁니다. 아는 것은 빛이고 아는 것은 밝음이 되는 것이고 어둠이 되는 것이다. 10절, 106절, 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주의 의로운 규레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게 의로 행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의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 그러면 범위가 굉장히 넓은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면 어떤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소원이고 마음이고 원하는 바인데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뜻을 이루는 게 의인데 뜻을 이루는 게 하나님의 말씀이고 규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주신 하나의 방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 말씀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하지 말라는 맹세가 아닙니다. 성경에 그만 맹세는 최종 주인되는 걸 말합니다.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결정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너가 주권자가 되지 말아라는 것이고 여기서 맹세하는 것은 사람이 할 때까지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시편 119편을 앞에는 안 나와있는데 다윗의 시라고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규례가 바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말할 때 말씀이라고 하고 이걸 어기면 벌이 될 때 명령이라고 하고 계명적으로 지킬 명령으로 주실 때 계명이라고 하고 법으로 주실 때 율법이라고 하고 그 율법을 적어놓으셨을 때 법률이라고 하고 여기는 규례라 그랬습니다. 세밀하게 알려주시는 것을 규레라고 합니다. 나의 고난이 막심하고니 마음의 고난, 욥처럼 몸의 고난을 받았습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 한이라 그럴까고 자기 생애를 저주하고 원망한게 나오는데 마음의 고난이었습니다. 몸의 고난 때문에 마음의 고난을 크게 받았는데 그게 이해를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자기가 살아온 생활고 고난이 너무 안 맞는 겁니다. 거기다가 세 친구가 욥을 공격하는데 그 세 친구의 말을 반박하다 보니까 욥의 세 친구는 근처도 가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말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욥의 깊은 신앙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권선징악의 하나님이다. 이렇게 혹독한 고난 받는 거 보니까 의인을 이렇게 벌 줄 리가 없다. 너는 죄인이다. 그토록 의인인척 했는데 엄청나게 많은 죄를 지은 사람이다. 욥은 계속해서 나는 죄가 없는 사람이다. 원수의 소송장이 있으면 어깨에 메고 다닐거다. 그 소송장 가져와봐라 어깨에 메고 다닐거다. 그만큼 당당하게 소리를 쳤습니다. 살아오면서 실질적으로 욥은 죄를 안 지었으니까.
죄가 없는데 이렇게까지 고난을 받으니까 마음의 고난이 된 거지요. 나의 고난이 막심하오니 다윗의 고난도 막심했습니다. 외부적인 그런 연단적인 시련적인 고난이었고 그런 고난 다 이긴 다음에 진짜 큰 고난은 자기 실수로 받은 고난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보다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만왕의 왕 다윗이 되다 보니까 징계를 내리게 되는 거지요. 사람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난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인생은 고해입니다. 몸의 권한 마음의 권한 별의 별 고난이 다 있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도 고난을 다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에게만 고난을 주시지 않습니다. 여러 고난을 다 받는데 남다르게 받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고난을 받았는데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말씀대로 소성케 하소서. 주의 말씀이 있잖습니까. 하나님께서 여호와로 계약을 맺지 않았습니까. 죄 없는 사람은 징계하지 죄 없는 사람에게 연단을 주시면 연단입니다. 죄로 인해서 막심한 고난을 받습니다. 그런지 확실하지 않으나 죄를 지었으므로 징계를 받아서 큰 막심한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대로 회계하면은 소성시킨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나를 소성케하소서 힘을 주소서 여기까지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했습니다. 그런데 50일만에 모세를 불러서 10계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10계명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갈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 가나안을 향해서 가는 그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법을 주셨다. 십계명없을 때도 아브라함 때에도 말씀으로 있었습니다. 모세 이전에 개인적으로 인도하실 때 다 말씀하고 가르쳤고 그때부터 백성들 숫자가 많아지니까 체계적으로 많아진 것입니다. 그 말씀 속에 십계명 간단합니다. 사람에 대한 계명 간단한데 전체로 하나님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알아야할 것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알아라.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십니다. 어떻게 섬길 것인가. 하나님을 섬기는 법칙에 대해서 말씀으로 세밀하게 알려주십니다. 사람이 누구냐, 사람도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셨습니다. 이 세상이 뭐냐, 세상도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셨습니다.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섬기는 사람이 있고 세상이 있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말씀에 담아 주셨고 하나님을 섬기며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결혼도 해야하고 아이들 학생들도 해야하고 직장도 다녀야하고 사람사람 관계도 맺어야하고 사물도 접촉을 해야하고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때 그때 따지고 사리판단해서 그렇게 대처하고 나가겠지만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크든 작든 어떤 일이든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살펴라.
가정을 이루었느냐 부부사이가 되었느냐 이 세상은 엉망이지요, 도덕 따라가지 말고 석가모니 따라가지 말고 철학자 말 따라가지 말고 부부의 위치를 알고 부부 관계를 잘 맺어서 가정 교회를 이루어라. 자녀가 낳았으면 기를 때도 상대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낳고 길러가라. 자녀가 부모를 만났냐 말씀으로 상대해 나가라. 사회 생활도 말씀으로 살펴 나가라. 직장생활도 말씀으로 상대해서 살펴 나가라. 행복하면 말씀을 가지고 그 행복한 상황을 잘 감사하면서 고요한 때를 주셨으니까 다윗의 유언을 생각했으니까 요압이 전쟁의 피를 흘렸다고 했습니다. 구원을 이뤄갈 고요할 때입니다. 이 많은 학생들 어떻게 구원해야겠습니까. 주일 학생들을 담대하게 기도하셔서 오랜 세월 평안하게 살아왔습니다. 구원을 이뤄갈 때입니다. 전도하고 심방하고 힘 쓸 때가 태평시대입니다. 행복하냐 열심히 성경을 읽어라. 열심히 예배를 참석하고 전력해라 고요한 때입니까 얼마든지 힘쓰면 됩니다. 그런 고요한 때는 준비의 때입니다. 문으로 들어가서 일반 사람이든 왕이든 무엇이 없습니까. 직진만 있습니다. 돌아가는 수가 없는 겁니다. 언제까지 계속되지 아니한다. 내가 열흘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까지 가지는 게 열흘입니다. 그 시험이 언제까지 계속되지 아니한다. 언제까지 평화만 있지 않는다. 준비의 때입니다. 고요한 때를 맞이했느냐 부지런히 준비해라. 평안할 때 고요할 때 고난을 당합니다. 평소에 공부하지 않으면 시험칠 때 답을 모르게 됩니다. 말은 쉬운데 실제하기는 어렵지요. 원칙대로 안하니까 보통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말씀으로 기록해놨습니다.
너를 돌아보라는 때다. 혹시 둘이 너무 좋아서 푹 빠져서 주님 잊어버린 거 아니냐. 부부 재미도 좋지만은 주님과 사귀는 게 더 중요한데 그게 더 멀어지면 벌여놓습니다. 나는 안 보냐하고. 주님은 시기가 굉장히 강한 분입니다. 그래서 어려움 왔느냐 돌아봐라 경제에서 어려우냐 돌아봐라, 자녀에게 어려우면 돌아봐라, 어려움을 만나면 그 면으로 돌아봐라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잘못된 거 있으면 회개해라, 일단 돌아보고 회개할 거 찾아보고 없으면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회개할 것이 안 보이면 욥이 그렇게 소리쳤는데 욥이 의인은 의인인데 하나님보다 어렵지 않는데 이유가 있어서 주시는 환란인데 이렇게 되어야하는데 자기의 의만 강조하다 보니까 불의한 것을 만들어버리는 것처럼 회개하는 사람이 있어야합니까. 계속되면은요 더 나은 사람을 향해서 연단시키는 거니까 고난스럽겠지만은 달게 받아라. 이걸 다 기록해놨고 이 말씀을 믿고 이 말씀으로 살아갈 때 그때에 예외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어가는 우리 생활에 예외를 두게 되면 믿음 생활을 못하게 되고 하나님 편에 예외를 두면 기독교가 공중분해가 되게 되고 그 말씀에서 빼버리면 그때부터 신앙생활은 구멍이 생겨서 끝까지 가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어떤 어려움을 만날찌라도 일단 돌아봐라 회개할 것 찾아봐라 없으면 거기서 너 자신을 보배롭게 만들어라. 그래 나가면 가면 갈수록 더 귀하게 되는 수가 있는 겁니다. 남의 말은 쉽게 합니다. 설교자는 받을 심판이 클 수 있습니다. 교인들의 어려움을 쉽게 생각하고 쉽게 설교하면 자기는 그러지 않으면 심판 받는데 원칙적인 설교를 안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양심의 가책이 되어도 교인들이 목사 당신은 할 말 하고 있습니까. 견디겠습니다 하면 저도 자신없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그러니까 전하는 것이지요.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입니까.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까 그들의 말은 듣고 지켜라 그러면 복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본받지 말아라, 말은 지켜라 목사가 교인들 마음에 안 들어도 행동은 따라가면 안됩니다. 말은 들어보고 순종하는 게 자기에게 복입니다. 말이 틀렸으면 설교가 틀렸습니다 해야합니다. 맞으면 복입니다. 듣는 사람이 난제를 만나면 어디가서 해결할까 예수믿는 사람들의 난제는 어떤 복잡한 일이든 말씀 속에서 답을 찾는 겁니다. 어찌 되었든 예수 믿는 사람들의 난제는 말씀에서 말씀을 찾고 길을 찾고 해결을 해야 해결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믿음의 도라고 합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말씀을 찾고 믿고 그대로 따라야 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게 이런 의미로 주신 게 십계명입니다. 가다가 그때는 십계명 받기 전인데 홍해 바다를 만났느냐 진퇴양난입니다. 반석에서 목이 마른데 바위를 칩니다. 물이 나옵니다. 물이 써서 마시니까 죽겠습니다. 나뭇가지 던져라 그러니 해결이 되는 겁니다.
말씀에서 답을 찾고 해결하지 않으면 난제 해결하는 길은 없는 겁니다. 믿음을 가지면 믿음으로 사는 자는 무슨 일로 만나든지 만사가 통하고 모든 것은 근심 걱정 염려 불안 초조 의심 낙망 낙심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봐도 할 수 없는 것이 있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건 사람이 할 수 없는 겁니다 하면 말씀에서 찾는 겁니다. 찾아보니까 할 수 없는 겁니다. 십자가 고난의 쓴 잔이 너무 무거워서 아버지여 이 잔을 꼭 내가 마셔야합니까. 주님만 대속을 하실 수 있으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지고가면은 영육의 마지막에 복이 됩니다. 하루도 아니고 일년도 아니고 십년도 아니고 어떻게하나 싶은데 그 짐을 지고 가면 세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늘의 신비한 기쁨을 얻는 게 그런 것이고 그 사람에게 연단받고 빛나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기묘한 것이 그런 겁니다. 이런 신비한 역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세상이 알지못하는 그런 역사 이런 전부다가 말씀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회개햐아합니까 회개하겠습니다. 견뎌야합니까 견뎌야겠습니다. 가다보면 하나님께서 사람도 운행에 피곤하다고 중간 중간에 휴개소를 만들어놨습니다. 대동교회 오래되었습니다. 그때 뭣 모르고 차를 탔는데 세 시간 네 시간을 달리는데 달려도 달려도 휴개소가 없습니다. 피곤하고, 그래서 얼마나 힘들었던지 그리고 차를 안 가지고 갑니다. 고속도로 달리다가 휴개소 없으면 힘듭니다. 보통 한 두 시간 마다 하는 것이고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들의 고난을 몰아쳐서 만들지 않습니다. 고난의 길을 가다보면 능가할 수 있는 힘도 주시고 신비스러운 역사를 하시는 것이 하나님 역사입니다. 믿음으로 가면 되는 것이고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그 찬송이 나오는 겁니다. 믿음을 떠나서 가다가 근심 걱정 염려 낙망낙심하면 더 안 좋은 고난으로 가게 됩니다. 이 말씀 기억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