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9일 수밤
김동민2024-06-19조회 218추천 16
2024년 6월 19일 수밤
찬송: 19장, 18장
본문: 에스겔 40장 16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전체적으로 에스겔 성전은 우리 신앙의 이상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 성막도 솔로몬의 성전도 우리 자신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모세 성막도 재료로 비교적 상대적으로 허술하게 만들었고 그 모세 성막도 우리 자신을 가르치는 것이고 하나님을 모신 우리가 되어야한다 그 뜻이고 솔로몬의 성전은 주로 구조가 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금과 은과 동과 크고 귀한 돌 놋 이런 것으로 만들어졌는데 구조가 굉장히 복잡해서 우리들이 가르치는 그런 말이 되겠습니다. 모세의 성막도 그러하고 그보다 더 복잡하고 더 화려한 솔로몬의 성전도 그런데 그보다 더 복잡한게 에스겔 성전이고 물질로 만든 게 아니고 신앙의 이상이라고 처음부터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 성전은 재료가 없지요. 무엇으로 만들었다 그런 게 보이지 않지요. 모세 성막도 솔로몬 성전도 재료가 있는데 에스겔 성전은 금이다 은이다 동이다 돌이다 이런 게 별로 보이지를 아니하는 거 같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목표, 이런 신앙이 되어야한다는 뜻이고 믿고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믿고 바라보는 게 신앙입니다. 신앙이라는 말 자체를 말을 존재 자체라기 보다 인격체에 행위가 되는 것이다. 신앙이란 믿고 바라보는 겁니다. 짐승을 인격체라고 그러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물입니다. 동물 중에 가장 고급 존재 동물은 스스로 움직이는 것으로 하지요. 사람은 영이 있어서 고차원적인 짐승과는 다른 것이 있어서 인격체라고 합니다. 인격체는 생각이 있습니다. 알 수 있고 생각이 있고 느낌이 있고 자기들의 뜻이 있고 이것을 가지고 작용을 하는거지요. 믿는다 바라본다 이건 행위적인 것입니다.
죄는 형체를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누가 있는 곳에 죄가 있습니까. 사람이 있는 곳에만 죄가 있습니다. 사람이 없는 곳에는 죄가 없는 겁니다. 짐승은 죄짓는다 그렇지 않습니다. 인격가진, 천사는 두고, 사람만 죄를 짓습니다. 인격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는 건 행위적인 작용입니다. 계속해서 반복을 하게 되면 연습이 하게 되어지는 거지요. 신앙은 바로 하면 신앙의 사람이 됩니다. 신앙생활을 잘못하면 잘못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안한 사람은 믿음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믿는게 중요하고 믿고 난 다음에는 바로 믿는게 중요합니다. 그 첫걸음이 바로 아는 것입니다. 성경을 바로 깨닫고 바른 교리와 신조를 가지는 게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합니다. 자기 아는대로의 사람이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지식의 지배를 받는 게 양심이기 때문에 그래서 에스겔 성전은 신앙의 이상이다, 신앙의 목표다 믿고 바라보는 그렇게 걸어가는 생활이기 때문에 모든 언행심사와 걸음걸음과 그런 것을 사람이 되는고로 에스겔 성전은 이런 사람이 되어라 이게 에스겔 성전의 목표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천국의 모습을 그려놨습니다. 천국을 그렇게 알 수 있도록 그러나 지극히 제한적으로 가장 비싸고 귀한 그런 보석들로 금으로 그렇게 되어있는 게 하늘나라입니다. 영원성 불변성 보배로움 이런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에스겔 성전은 믿는 사람이 이렇게 살아서 걸어가서 하나님을 모신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서 에스겔이 성전에서 기록된 모든 일은 구조물이라기 보다도 장치라 그럴까요 어떤 것들은 직접 우리 속에 있어야하는 것도 있고 이런 원리 작용 이런 게 있어야한다는 뜻이지요. 에스겔 성전을 맨처음에 내가 본 즉 집 바깥 사면으로 담이 있더라. 그러면 우리가 이런 담을 가져야한다는 거지요. 담이 뭘까.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이번 공과 제목의 창입니다. 저번에 창을 설명드리지 않아서 이걸 할려고 시작하는 겁니다. 담이 뭘까, 담은 사면으로 막은 게 담이지요 세상과 성전을 분리시켜서 구분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 넘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고 어떤 것도 같이 평가적이겠지요. 그러면 이 성전은 우리 자신도 되는데 내 안에 이 성전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담이 뭘까. 우리가 담을 쳐놔야합니다. 그물로 담 치는 건 쉬운데 내 안에 담이 있어야합니다. 나의 무엇 안에 내 마음 안에 내 행동 안에 내 생활 안에 내 모든 관계 내 심신의 활동에 담이 있어야겠지요. 세상에게 넘어오지 못하도록 해야합니다. 대속을 고소하는 것은 누가 어떻게 고소합니까. 핵폭탄으로 지킵니까 창칼로 지킵니까 뭘로 지킵니까. 결국 그 담이란 대속을 지키는 심신의 노력인거죠. 중심, 마음 자세, 노력, 대속을 알고 깨닫고 믿는 믿음도 되겠고 하나님의 도우심도 되겠고 담이 있는데 동문에 보니까 천계가 있습니다. 계단은 뭘까. 우리 속에 있어야하는 것일까 올라가는 것입니다.
일곱 계단이기 때문에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야한다는 거지요. 하나님에게까지 나아간 우리들의 노력이겠죠. 털어버리고 올라가는 겁니다. 또 천계, 올라가니까 문통이 있습니다. 문을 다는 문통이 있습니다. 이렇게 걸어가는거니까 우리들의 모든 언행심사 생활이다. 문지기의 방이 있습니다. 또 하나 들어가봅시다. 문지기에 방이 있는데 요한복음 10장을 해서 예수님이고 성령으로 해석합니다. 문는 현실이라고 해석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 예수님의 문이라고 했는데 맞지 않는냐 그래서 백목사님 현실이라고 하신 것을 보여드리니까 딱 됐습니다. 문지기가 있습니다. 문지기의 방이 있는데 그 문지기의 방은 우리 속에 무엇이 이게 방입니까. 에스겔 성전은 우리 자신을 가르킵니다. 앞에서 담은 무엇이며 막연하게 나와 분리시키지 말고 내게 담은 무엇이며 천계는 내게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천계 올라가는거냐. 문지기 방이랍니다. 문지기는 성령입니다. 성령에 계시는 방이다. 내 속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내 안에 영은 동행이고 내 마음이겠습니다. 내 마음은 문지기 방이 되겠다 할 수 있겠습니다. 벽이 있고 막는 겁니다.
나의 무엇이 담이며 나의 무엇이 계단이며 무엇이 문통이며 무엇이 문지기방이며 벽이며 현관이며 창이냐 그 말이지요. 그러면 오늘밤에 창이니까 창이란 역할을 먼저 생각해봐야하지요. 방에 있어서 창이란 필수 요소고 도시에서 있는 게 정상인데 그게 살 수 있습니다. 방 문이 없으면 필수요소고 어찌보면은 보조역할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이 이걸로 연결시킬 수 없는데 생활을 바로하도록 사람답게 사는 게 창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창이란 바람과 공기와 햇빛이 드나드는 게 창이다. 그런데 이 창은 닫힌 창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닫힌 창이니까 닫혀있으니까 해석이 이번에 보니까 지난 주 설교한 거 하고 또 신풍목사님 해석하신거하고 다른 게 있어서 의문이 있었는데 각도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마지막 꼭 같은 게 다르면 같아야합니다. 이리 저리 해석할 수 있으면 그리 볼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창이 닫힌 창인데 창이란 바람과 공기와 햇빛이 하는 창인데 닫혀있으면 공기 들어올 수 있습니까. 우아실에 오래 전에 어떤 나쁜 사람이 불을 질렀습니다. 불을 지르고 갔는데 다행스렇게 창문이 다 닫혀있었습니다. 그때 창문 열려있었으면 다 탔을겁니다. 창문이 닫히면 바람이 안 통합니다. 공기도 안 통하지 않을까. 햇빛은 그냥 들어오지요. 이번 공과도 그렇게 되어있고 해석하기를 위에서 내려오는 겁니다. 그리고 해는 하나님이고 햇빛은 하나님을 나타내는거다 하나님을 나타내보여주는 게 뭐냐 진리고 영감입니다. 햇빛은 문지기 방에 있는 햇빛은 진리와 영감이다. 밝게 문지기가 통과하는 사람을 심사할 수 있다. 바람과 공기는 뭐냐 이 세상 여러 운동을 의미합니다. 공기는 하나님의 은혜다 그렇게 보고 저는 이제 집회때 말씀 가지고 땅에 속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닫힌 창이 있어서 차단하니까 하늘에 속한 것이고 이 세상에 속한 그런 인간의 모든 지식 인본지식 자기 주관 이런 것들은 차단해야한다. 왜 이걸로 해석하냐면 문지기 방의 창이란 문지기가 거하는 곳입니다. 문지기가 뭐냐 문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문을 지킨다는 말은 문지기가 문을 지키는 걸 뭘로 배웠습니까. 전부다 지금 측량하는거지요. 심사, 조사, 그래서 계속해서 살피고 앞에서 뒤에서 좌우에서 1차에서 3차로 살핀다는 걸 말씀하셨습니다. 살피는 게 뭐가 살피냐 잣대가 뭐냐 그 말이죠.
삼줄과 측량하는 잣대입니다. 잣대입니다. 사람들의 행위를 관계 생활을 충성을 인내를 살피는 잣대가 뭐냐 그 잣대가 뭡니까. 무엇으로 심사하는 겁니까. 법원의 판사는 뭘로 판결합니까. 법입니다. 법가지고 판단합니다. 형사들이 범인을 잡는 거 법가지고 합니다. 시험지의 채점의 기준은 답안지입니다. 정오의 기준이 됩니다. 측량하는 기준 잣대가 뭐냐, 성령이 감화감동하심으로 목사가 강단에 설교하는 것도 잣대가 될 수있습니다. 말씀 진리 영감. 이걸로 판단하지 않습니까. 이게 척량인데 옳다 그르다 치우쳤다 이게 살피는건데 전부 말씀으로 다 하는거죠. 말씀은 진리고 빛이 들어오면 은혜가 들어오면 더 밝아지고 더 세밀해지고 더 정확한 잣대가 있는 겁니다. 이건 받아들입니다. 이 세상 요소, 내가 판단한 잣대 기준에 잣대가 정확하지 않은겁니다. 인본주의가 들어가면 자기 주관이 들어가면 차단이 되어야하는 겁니다. 동시에 내 편 따져서 이게 바람과 공기 아니겠는가. 문지기방에 창이 있는데 닫힌 창이다. 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창이 뭐냐 내 속의 창이 뭔가. 문통이 뭔가 문지기 방 현관이 뭔가. 중복될 수 있는데 그러면 창이 뭔가. 창은 무엇입니까. 문지기가 거주하는 방이니까 성령이 거하는데 내 마음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방에 있는 창입니다. 동시에 인간 지식이 내 안에 들어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결국 전부 다 내 마음입니다. 문지기 방도 마음 창도 내 마음이겠습니다. 내 마음 속에 지식이라는 마음의 작용가지고 살필 때 햇빛이 은혜가 되는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이 되는 잣대를 삼아 살피되 인간의 지식과 내 주관과 이런 것들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한다. 내 마음이 창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역할 이런 걸 기억하고 일반적으로 안 믿는 세상 사람들도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합니까. 하나 기억할 것은 문지기 방에도 있고 문 안 좌우 편에 있는 벽 사이에도 있고 특정되지 않습니다. 동문 전체가 큰 문입니다. 동시에 문지기 방에도 문이 있습니다. 문지기 방에도 좌구 큰 문이 있습니다. 문 안 사이에도 창이 있다. 전체 큰 문이면 걸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잘 살펴야한다. 그래야한다 그런 뜻이고 또 하나보면 창은 그 창은 안 좌우편으로 있으며 16절에 좌우편이라는 말이 세 번 있어야합니다. 벽 사이에 문 안 좌우 편에 있는 현관도 그러하고 그 창은 좌우로 벌여져있으며 그러면 좌우로 균형을 많이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데 치우치면 안된다는 것을 강조했고 측량할 때 다른 사람이 나를 측량하는 것도 그렇고 살피는 것도 그렇고 언제든지 치우치지 말아라, 하나님의 은혜를 두고도 치우치면 안되는 것이다. 진리에 치우쳐도 안되고 영감에 치우쳐도 안되고 하나님께로 치우쳐도 안되는 것이고 믿는 사람의 신앙 걸음에는 균형을 잡아서 은혜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종려나무도 하면 각 위에는 문지기 방 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종려나무기 때문에 이 성전으로 걸음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부 약속된 걸음입니다. 이걸 잊지말아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밤 말씀드린 것은 이런 장치가 속에 있으면 좋겠는 것이고 이 중에서 오늘 밤의 창, 창의 역할을 생각하고 창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고 들어와서 안될 것은 차단하고 더욱 더 밝은 내가 되어서 살피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겠다 하는 겁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9장, 18장
본문: 에스겔 40장 16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전체적으로 에스겔 성전은 우리 신앙의 이상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 성막도 솔로몬의 성전도 우리 자신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모세 성막도 재료로 비교적 상대적으로 허술하게 만들었고 그 모세 성막도 우리 자신을 가르치는 것이고 하나님을 모신 우리가 되어야한다 그 뜻이고 솔로몬의 성전은 주로 구조가 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금과 은과 동과 크고 귀한 돌 놋 이런 것으로 만들어졌는데 구조가 굉장히 복잡해서 우리들이 가르치는 그런 말이 되겠습니다. 모세의 성막도 그러하고 그보다 더 복잡하고 더 화려한 솔로몬의 성전도 그런데 그보다 더 복잡한게 에스겔 성전이고 물질로 만든 게 아니고 신앙의 이상이라고 처음부터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 성전은 재료가 없지요. 무엇으로 만들었다 그런 게 보이지 않지요. 모세 성막도 솔로몬 성전도 재료가 있는데 에스겔 성전은 금이다 은이다 동이다 돌이다 이런 게 별로 보이지를 아니하는 거 같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목표, 이런 신앙이 되어야한다는 뜻이고 믿고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믿고 바라보는 게 신앙입니다. 신앙이라는 말 자체를 말을 존재 자체라기 보다 인격체에 행위가 되는 것이다. 신앙이란 믿고 바라보는 겁니다. 짐승을 인격체라고 그러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물입니다. 동물 중에 가장 고급 존재 동물은 스스로 움직이는 것으로 하지요. 사람은 영이 있어서 고차원적인 짐승과는 다른 것이 있어서 인격체라고 합니다. 인격체는 생각이 있습니다. 알 수 있고 생각이 있고 느낌이 있고 자기들의 뜻이 있고 이것을 가지고 작용을 하는거지요. 믿는다 바라본다 이건 행위적인 것입니다.
죄는 형체를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누가 있는 곳에 죄가 있습니까. 사람이 있는 곳에만 죄가 있습니다. 사람이 없는 곳에는 죄가 없는 겁니다. 짐승은 죄짓는다 그렇지 않습니다. 인격가진, 천사는 두고, 사람만 죄를 짓습니다. 인격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는 건 행위적인 작용입니다. 계속해서 반복을 하게 되면 연습이 하게 되어지는 거지요. 신앙은 바로 하면 신앙의 사람이 됩니다. 신앙생활을 잘못하면 잘못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안한 사람은 믿음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믿는게 중요하고 믿고 난 다음에는 바로 믿는게 중요합니다. 그 첫걸음이 바로 아는 것입니다. 성경을 바로 깨닫고 바른 교리와 신조를 가지는 게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합니다. 자기 아는대로의 사람이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지식의 지배를 받는 게 양심이기 때문에 그래서 에스겔 성전은 신앙의 이상이다, 신앙의 목표다 믿고 바라보는 그렇게 걸어가는 생활이기 때문에 모든 언행심사와 걸음걸음과 그런 것을 사람이 되는고로 에스겔 성전은 이런 사람이 되어라 이게 에스겔 성전의 목표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천국의 모습을 그려놨습니다. 천국을 그렇게 알 수 있도록 그러나 지극히 제한적으로 가장 비싸고 귀한 그런 보석들로 금으로 그렇게 되어있는 게 하늘나라입니다. 영원성 불변성 보배로움 이런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에스겔 성전은 믿는 사람이 이렇게 살아서 걸어가서 하나님을 모신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서 에스겔이 성전에서 기록된 모든 일은 구조물이라기 보다도 장치라 그럴까요 어떤 것들은 직접 우리 속에 있어야하는 것도 있고 이런 원리 작용 이런 게 있어야한다는 뜻이지요. 에스겔 성전을 맨처음에 내가 본 즉 집 바깥 사면으로 담이 있더라. 그러면 우리가 이런 담을 가져야한다는 거지요. 담이 뭘까.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이번 공과 제목의 창입니다. 저번에 창을 설명드리지 않아서 이걸 할려고 시작하는 겁니다. 담이 뭘까, 담은 사면으로 막은 게 담이지요 세상과 성전을 분리시켜서 구분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 넘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고 어떤 것도 같이 평가적이겠지요. 그러면 이 성전은 우리 자신도 되는데 내 안에 이 성전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담이 뭘까. 우리가 담을 쳐놔야합니다. 그물로 담 치는 건 쉬운데 내 안에 담이 있어야합니다. 나의 무엇 안에 내 마음 안에 내 행동 안에 내 생활 안에 내 모든 관계 내 심신의 활동에 담이 있어야겠지요. 세상에게 넘어오지 못하도록 해야합니다. 대속을 고소하는 것은 누가 어떻게 고소합니까. 핵폭탄으로 지킵니까 창칼로 지킵니까 뭘로 지킵니까. 결국 그 담이란 대속을 지키는 심신의 노력인거죠. 중심, 마음 자세, 노력, 대속을 알고 깨닫고 믿는 믿음도 되겠고 하나님의 도우심도 되겠고 담이 있는데 동문에 보니까 천계가 있습니다. 계단은 뭘까. 우리 속에 있어야하는 것일까 올라가는 것입니다.
일곱 계단이기 때문에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야한다는 거지요. 하나님에게까지 나아간 우리들의 노력이겠죠. 털어버리고 올라가는 겁니다. 또 천계, 올라가니까 문통이 있습니다. 문을 다는 문통이 있습니다. 이렇게 걸어가는거니까 우리들의 모든 언행심사 생활이다. 문지기의 방이 있습니다. 또 하나 들어가봅시다. 문지기에 방이 있는데 요한복음 10장을 해서 예수님이고 성령으로 해석합니다. 문는 현실이라고 해석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 예수님의 문이라고 했는데 맞지 않는냐 그래서 백목사님 현실이라고 하신 것을 보여드리니까 딱 됐습니다. 문지기가 있습니다. 문지기의 방이 있는데 그 문지기의 방은 우리 속에 무엇이 이게 방입니까. 에스겔 성전은 우리 자신을 가르킵니다. 앞에서 담은 무엇이며 막연하게 나와 분리시키지 말고 내게 담은 무엇이며 천계는 내게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천계 올라가는거냐. 문지기 방이랍니다. 문지기는 성령입니다. 성령에 계시는 방이다. 내 속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내 안에 영은 동행이고 내 마음이겠습니다. 내 마음은 문지기 방이 되겠다 할 수 있겠습니다. 벽이 있고 막는 겁니다.
나의 무엇이 담이며 나의 무엇이 계단이며 무엇이 문통이며 무엇이 문지기방이며 벽이며 현관이며 창이냐 그 말이지요. 그러면 오늘밤에 창이니까 창이란 역할을 먼저 생각해봐야하지요. 방에 있어서 창이란 필수 요소고 도시에서 있는 게 정상인데 그게 살 수 있습니다. 방 문이 없으면 필수요소고 어찌보면은 보조역할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이 이걸로 연결시킬 수 없는데 생활을 바로하도록 사람답게 사는 게 창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창이란 바람과 공기와 햇빛이 드나드는 게 창이다. 그런데 이 창은 닫힌 창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닫힌 창이니까 닫혀있으니까 해석이 이번에 보니까 지난 주 설교한 거 하고 또 신풍목사님 해석하신거하고 다른 게 있어서 의문이 있었는데 각도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마지막 꼭 같은 게 다르면 같아야합니다. 이리 저리 해석할 수 있으면 그리 볼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창이 닫힌 창인데 창이란 바람과 공기와 햇빛이 하는 창인데 닫혀있으면 공기 들어올 수 있습니까. 우아실에 오래 전에 어떤 나쁜 사람이 불을 질렀습니다. 불을 지르고 갔는데 다행스렇게 창문이 다 닫혀있었습니다. 그때 창문 열려있었으면 다 탔을겁니다. 창문이 닫히면 바람이 안 통합니다. 공기도 안 통하지 않을까. 햇빛은 그냥 들어오지요. 이번 공과도 그렇게 되어있고 해석하기를 위에서 내려오는 겁니다. 그리고 해는 하나님이고 햇빛은 하나님을 나타내는거다 하나님을 나타내보여주는 게 뭐냐 진리고 영감입니다. 햇빛은 문지기 방에 있는 햇빛은 진리와 영감이다. 밝게 문지기가 통과하는 사람을 심사할 수 있다. 바람과 공기는 뭐냐 이 세상 여러 운동을 의미합니다. 공기는 하나님의 은혜다 그렇게 보고 저는 이제 집회때 말씀 가지고 땅에 속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닫힌 창이 있어서 차단하니까 하늘에 속한 것이고 이 세상에 속한 그런 인간의 모든 지식 인본지식 자기 주관 이런 것들은 차단해야한다. 왜 이걸로 해석하냐면 문지기 방의 창이란 문지기가 거하는 곳입니다. 문지기가 뭐냐 문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문을 지킨다는 말은 문지기가 문을 지키는 걸 뭘로 배웠습니까. 전부다 지금 측량하는거지요. 심사, 조사, 그래서 계속해서 살피고 앞에서 뒤에서 좌우에서 1차에서 3차로 살핀다는 걸 말씀하셨습니다. 살피는 게 뭐가 살피냐 잣대가 뭐냐 그 말이죠.
삼줄과 측량하는 잣대입니다. 잣대입니다. 사람들의 행위를 관계 생활을 충성을 인내를 살피는 잣대가 뭐냐 그 잣대가 뭡니까. 무엇으로 심사하는 겁니까. 법원의 판사는 뭘로 판결합니까. 법입니다. 법가지고 판단합니다. 형사들이 범인을 잡는 거 법가지고 합니다. 시험지의 채점의 기준은 답안지입니다. 정오의 기준이 됩니다. 측량하는 기준 잣대가 뭐냐, 성령이 감화감동하심으로 목사가 강단에 설교하는 것도 잣대가 될 수있습니다. 말씀 진리 영감. 이걸로 판단하지 않습니까. 이게 척량인데 옳다 그르다 치우쳤다 이게 살피는건데 전부 말씀으로 다 하는거죠. 말씀은 진리고 빛이 들어오면 은혜가 들어오면 더 밝아지고 더 세밀해지고 더 정확한 잣대가 있는 겁니다. 이건 받아들입니다. 이 세상 요소, 내가 판단한 잣대 기준에 잣대가 정확하지 않은겁니다. 인본주의가 들어가면 자기 주관이 들어가면 차단이 되어야하는 겁니다. 동시에 내 편 따져서 이게 바람과 공기 아니겠는가. 문지기방에 창이 있는데 닫힌 창이다. 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창이 뭐냐 내 속의 창이 뭔가. 문통이 뭔가 문지기 방 현관이 뭔가. 중복될 수 있는데 그러면 창이 뭔가. 창은 무엇입니까. 문지기가 거주하는 방이니까 성령이 거하는데 내 마음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방에 있는 창입니다. 동시에 인간 지식이 내 안에 들어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결국 전부 다 내 마음입니다. 문지기 방도 마음 창도 내 마음이겠습니다. 내 마음 속에 지식이라는 마음의 작용가지고 살필 때 햇빛이 은혜가 되는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이 되는 잣대를 삼아 살피되 인간의 지식과 내 주관과 이런 것들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한다. 내 마음이 창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역할 이런 걸 기억하고 일반적으로 안 믿는 세상 사람들도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합니까. 하나 기억할 것은 문지기 방에도 있고 문 안 좌우 편에 있는 벽 사이에도 있고 특정되지 않습니다. 동문 전체가 큰 문입니다. 동시에 문지기 방에도 문이 있습니다. 문지기 방에도 좌구 큰 문이 있습니다. 문 안 사이에도 창이 있다. 전체 큰 문이면 걸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잘 살펴야한다. 그래야한다 그런 뜻이고 또 하나보면 창은 그 창은 안 좌우편으로 있으며 16절에 좌우편이라는 말이 세 번 있어야합니다. 벽 사이에 문 안 좌우 편에 있는 현관도 그러하고 그 창은 좌우로 벌여져있으며 그러면 좌우로 균형을 많이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데 치우치면 안된다는 것을 강조했고 측량할 때 다른 사람이 나를 측량하는 것도 그렇고 살피는 것도 그렇고 언제든지 치우치지 말아라, 하나님의 은혜를 두고도 치우치면 안되는 것이다. 진리에 치우쳐도 안되고 영감에 치우쳐도 안되고 하나님께로 치우쳐도 안되는 것이고 믿는 사람의 신앙 걸음에는 균형을 잡아서 은혜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종려나무도 하면 각 위에는 문지기 방 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종려나무기 때문에 이 성전으로 걸음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부 약속된 걸음입니다. 이걸 잊지말아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밤 말씀드린 것은 이런 장치가 속에 있으면 좋겠는 것이고 이 중에서 오늘 밤의 창, 창의 역할을 생각하고 창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고 들어와서 안될 것은 차단하고 더욱 더 밝은 내가 되어서 살피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겠다 하는 겁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