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4-05-19조회 206추천 26
2024년 5월 19일 주일 오전
찬송: 103장, 51장
본문: 에스겔 40장 5절
성경을 읽어보면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때가 많습니다. 성경 중애서 가장 어려운 성경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에스겔 성전이고 가장 어렵습니다. 숫자가 나오고 측량하는 게 많이 나오는데 그렇습니다. 필요없는 말씀은 기록하지 않은 것이 하나님 말씀이고 그게 성경입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만 기록하신 것입니다. 살펴보고 연구하고 그런 자세가 필요하고 자라지 않습니다. 세상 그런 말이 있잖습니까. 수월한 일은 어려운 게 없습니다. 어렵고 복잡한 일을 난제라고 합니다. 그럴 때 자포 자기를 하는 사람이 있고 회피를 하는 사람이 있고 도망치는 사람이 있고 그러는데 난제를 만났을 때 가장 좋은 자세는 해결해가는 것이 가장 좋은 자세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사고 방식은 굉장히 중요한겁니다. 성경읽는 자세도 그렇습니다. 알고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번 집회 강사 목사님은 100번 이상 읽었다고 합니다. 저도 그 말씀 듣고 회개하고 적기라도 하고 있습니다. 매일 한 번씩 적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적어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윤곽이라도 잡히게 되는 거지요. 하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면 될 수 있는 것은 되는 겁니다. 안하면 안되는 것이고. 오늘 말씀도 어렵지만 넘어갈 거 같고 아는데까지 생각해봅니다. 1절부터 신앙생활에 제대로 믿는 분들에게는 사무치는 것이라서 기억을 잘 할것입니다. 우리가 사로잡힌지 25년입니다. 반의 반세기라고 합니까. 반세기 50년 반세기 25년입니다. 100년의 반의 반 25년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합니다. 안 변하는데 10년이면 강산이 변할만큼 긴 세월이라고 합니다. 많이 변합니다. 10년이면. 그런데 10년 지나고 다시 5년이 지나서 아주 죽은 상태가 된 것이고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런 양심을 써서 조상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조상들의 잘못을 내가 왜 회개합니까. 그런 것은 천륜이라고하고 끊어버릴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자세를 아름답게 보십니다.
다니엘이 그랬고 에스겔이 그랬고 바벨론에 잡혀간 사람들은 그렇게 회개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사로잡혔다. 포로되었다. 산채로 적군에게 잡혀갔다.
사람의 키가 작습니다. 키가 작으면 불편한게 많습니다. 저는 키가 작습니다. 키가 작아서 소원을 가졌습니다. 인물 잘났다는 사람있는데 다 성형수술해서 다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리지요. 그래야 평등해야하는 거 아닙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약육강식의 원리로 만들어놓으신 겁니다.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은 약한 놈은 강한놈에게 잡히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세계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어떻게 강한 세력이라도 하나님의 백성은 함부로 건들이지 못합니다. 그런데 왜 모두 잡혀갔느냐, 내면을 들여다보면 스스로 좋아서 기어들어간겁니다. 바벨론에 부쳤다. 약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오늘도 예수믿는 사람들은 자기만 정신차리면 어떤 것도 대적할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딧불이 아시지요. 반딧불이 아는 사람. 본 사람. 다 봤지요. 우리 집회장소 반딧불이 많았습니다. 반딧불이의 불을 막는 방법은 뭐가 있습니다. 죽이는 거 말고 방법이 없지요. 어떤 암흑을 가져다대도 그러는 겁니다. 노아 홍수 때처럼 되면 몰라도 하늘에서 어지간히 폭포 쏟아내어도 끄떡도 안할 겁니다. 태풍이 불면 바위가 날아갑니까. 집채만한 바위는 날아가지 않습니다. 이런 걸 가르켜서 신앙이라고 합니다. 내가 태평양이 되고 예수믿는 사람이 약하다 넘어졌다 이건 약한 사람 있지요. 그런데 자기로써 할 수 있는 거 다 하면 됩니다. 그래서 사로잡혔다는 것은 믿는 사람에게 하나의 표현일 뿐입니다. 내가 세상이 좋아서 기어들어가는 겁니다. 낙이 좋고 문화가 좋고 시청각이 좋고 대우가 좋아서 그렇게 들어가니까 막는 방법이 없는 겁니다.
교회가 세상이 되어버리니까 천국 소망인데 오늘 집사님이 기도 잘은 모르겠으나 사무쳐서 기도하신 거 같은데 하늘나라 천국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 빠져가니고 양심을 쓰고 간단하게 생각하지요. 천국이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믿습니까 안 믿습니까. 믿으니까 앉아계시겠지요. 이 세상이 있습니다. 돈을 벌어 재벌이 되었습니다. 그 잘난 사람이 그 많은 재물 두고 이 세상을 떠나버렸는데 이건희 회장님이 돌아가셨을 때 얼마 가져가셨냐고 물어봤꺼든요. 안타깝게도 1원도 못가져갔습니다. 왜 못가져갔습니까. 가져갈 방법이 없습니다. 그게 세상입니다. 인물 좋고 머리 좋고 그래서 유력하게 장래가 밝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너무 똑똑해서 유학해서 박사 학위를 받아왔습니다. 중매 자리가 줄을 섰겠지요. 가장 예쁜 사람 뽑아서 결혼했습니다. 신혼여행했는데 아내가 안 일어납니다. 그런 일이 없습니까. 이건 실화입니다. 그게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과 천국두고 세상을 취한다. 이건 바보나 미친 놈입니다. 그러지 않는가요.
그래서 백 목사님께서 사람들이 모두 미쳤다고 하는 겁니다. 냉철하게 보면 우리는 다 정상이 아닙니다. 미친 생활 하고 있는 거지요. 금덩어리가 쌓였는데 우리들입니다. 그렇게 산 세월이 25년이고 교회까지 세상 다 만들어버리고 그런데 모르는 사람은 사는 것이고 에스겔처럼 깨닫고 보니까 탄식이 되는 겁니다. 사뭇치는겁니다. 사뭇치는 마음이 있으면 소망을 주시는 겁니다. 소망이 며칠입니까. 정월 10일입니다. 우리가 우리 모습을 다시 돌아봐야겠습니다. 여호와의 권능은 값이 굉장히 비쌉니다. 싸구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에스겔에게 그건 비쌉니다. 뭘 드려야할까. 자기 자신을 드려야합니다. 자기 자신을 드리고 하나님 앞에 다 버리고 양심을 써야합니다. 회개하고 간절한 소망 주시는 겁니다.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셨습니다. 높은 산이니까 아득히 뜯습니다. 세상과는 멀고 하늘과는 가까운 거, 이 세상과 멀고 하늘과 가까운게 무엇일까 이건 깨달음으로 되는 겁니다. 이 세상을 보는 눈이 생깁니다. 사람을 보고 인생을 보고 돈이 뭐냐,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걸 보고 온갖 걸 다 봅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봅니다. 이걸 보는 눈이 생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확실히 주십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없어지는 곳이구나. 돈은 좋은 것이지요. 그런데 그걸 초월하고 살 수 있는 겁니다. 돈만 그렇겠습니까. 권력은요. 세상 안 믿는 사람들 말이 있잖습니다. 이 세상 허무를 가르치는 안 믿는 사람이 만들어낸 말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눈을 주십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산 위에서 지은 겁니다.
세상 떠나기 저넹 나름대로 큰 부자라 할 지라도 마지막 안타깝게도 일찍 갔는데 돈 필요없습니다. 아마 아까웠을겁니다. 구두쇠인데 짠돌이인데 돈 별거 없습니다. 아무것도 아닌것이지요. 지나가는 것이고. 그런 것을 알게 되고 초월하게 되는 게 극히 높은 산입니다. 그렇게 올라가서 세상이 보이고 인생이 보이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극히 높은 산으로 인도하셔서 에스겔은 북쪽으로 인도했습니다. 동쪽은 해가 뜨는 곳이라 밝은 곳이고 서쪽은 해가 지는 곳이라서 어두운 곳입니다. 남쪽은 따뜻한 곳 북쪽은 추운 곳입니다. 남쪽을 향하여. 배가 고프면 음식이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세상에 무엇이 가장 좋은 반찬이라던가요. 저는 어릴 때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한번씩 반찬투정을 합니다. 어머니께서 시장이 반찬이다. 그랬습니다. 배가 고프니까 그러지.
배가 고프니까 돼지가 먹고 싶은 거 먹을려고 해도 안줍니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일본의 해방된 것들 그 사람들 해방된 줄 모르고 살았는데 음식이 있으니까 다 죽었는데 위장 속에 뭘 죽었다고요. 배가 고프면 못 먹을 게 없는 거지요. 헌 옷이 있어야 새 옷이 있는 겁니다. 지옥이 있어야 천국이 가치있는 겁니다.
하나니이 사람되신 희생 우리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메달리신 희생. 삼줄입니다 긴 자고 장대는 짧은 것이고 측량하는 도구입니다. 성경이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인데 우리에게 인간에게 보라고 기록했기 때문에 불교믿는지 모르겠는데 기독교만 비판하는 사람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무식하기 짝이없는데 그렇습니다. 제가 볼 때에는 뭘 안다고 저럴까. 연세대 교수라고 성경 읽었다고 비판합니다. 성경은 누구 말씀이라고요 하나님 말씀입니다. 인간이 무슨 수로 압니까. 한글이니까 많이 배운 사람은 영어니까 영어 잘하는 사람은 영어 읽겠지요. 가장 어려운 게 뭡니까. 독해력이라고 합니다. 읽긴 읽는데 이 세상 말은 어떻게 어려운 팔만대장경도 굉장히 어렵습니다. 아무리 깊고 어려워도 전부 인간이 만들어낸 책입니다. 인간이 연구한 건 알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 머리에서 나온 말씀이 아닙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만든 말씀입니다. 이걸 알고 성경 속으로 들어가야하지 안 그러면 다 탈선되는 것이고 신학교들이 다 탈선된 이유가 그겁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간같이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집채만한 바위입니다. 일본은 사기 접시입니다 그러면 깨져버립니다. 판사가 얼버무렸다고 하지요. 인간과 같은 수준에서 하나님을 연구하는 겁니다. 성경을 인간학처럼 연구합니다. 코끼리를 조그만한 냉장고에 집어넣어보지요. 그것보다 더 어려운겁니다.
에스겔이 보니까 극히 높은 산에 하나님을 올려놨습니다. 보이시니까 풀었습니다. 하나님 말씀 여러 보여주셔야 성경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뭐라고 한다고요. 계시라고 하는 겁니다. 세상에 모든 자유 만물에 아파트가 그리운 사람은 아파트 밖에 없을 것이고 과거 서부교회 일 때 80년대는 바글바글했습니다. 저 어릴 때 살던 곳인데 그때 5만명이라 그럴 것인데 한 학교 5000명 상상이 안되시지요. 제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5000명입니다. 지금과 전혀 다르지요.
보는 각도, 이 세상이 보는 것도 어떻게 보느냐, 전부 주일 학생 밖에 안 보입니다. 그래서 출근하다 학생 만나면 마구 합니다. 그 사람이 되게 이르시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눈으로 보고 귀로 듣습니다. 보이는 것이 귀로 들리는 겁니까. 손목시계입니다. 보이긴 보이시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라. 어떻게 듣습니까. 눈으로 보는 건데. 귀로 들으며 사람이라는 것은 들리는 귀가 있습니다. 양심의 귀지요. 그걸로 들어라는 겁니다. 양심을 써라는 겁니다. 그리고 생각해라. 생각하는 걸 눈으로 보고 듣고 생각해라. 그리고 나서 내가 본 것을 너의 민족에게 고해라. 그렇게 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이게 지난 주간에 생각했던 것이고 내가 본 즉 에스겔이 봤습니다. 집이 보입니다. 에스겔이 극히 높은 산 위에서 나무로 향해서 본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성읍현상 같은 것을 봤습니다. 성읍 안에 있는 집을 봤습니다. 성령입니다. 그 중심이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깥에 있습니다. 집에 내부가 있고 그렇습니다. 안팍이 있는데 집을 말한 게 아닙니다. 집 바깥입니다. 내가 본 집을 봤습니다. 그리고 바깥이 있습니다. 교회가 넓어지면 교단이라고 합니다. 이걸 넓히면 뭐라고 합니까. 교회는 다른 말로 기독교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교회입니다. 예수다 그 말입니다. 이게 그렇게 집이라는 겁니다. 크게 말하면 기독교고 더 땡기면 교회고 가정교회고 누구 집입니까.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참된 교단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마음은 영의 집입니다. 몸은 마음의 집입니다. 이 집이 어디있느냐 성 안에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인데 하나님의 나라인데 성전을 중심으로 나가면 하나님의 백성들만 살아야하는데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고 성전이라는 것은 이 세상 아닌거지요. 예를 생각해봤습니다. 우리나라에, 중국 땅에 굉장히 경쟁관계지요 미국과. 중국 땅에 미국 대사관이 있습니다. 그 대사관은 누구 땅입니까. 중국나라 땅에 미국 대사관이 있습니까. 그거 미국 땅입니다. 거기 쳐들어가면 미국 쳐들어갑니다. 대사관에 절대 못 들어갑니다. 우리나라에 일본이 밉다고 일본 대사관이 있습니다. 반일하겠다고 일본 들어가면 난리나는 겁니다. 우리나라 땅입니다. 비슷하게 교회라는 것은 이 세상이라는 나라를 믿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 없지만은 하나님의 집이기에 하나님께서 용서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있는 정치가들은 종교를 함부로 건들지 않습니다. 집이 뭐냐 교회인데 하나님의 집인데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가 있습니다. 말씀 생활이 있습니다. 대속이 있고 진리가 있고 영감이 있습니다. 여기는 하나님의 영역이다. 여기는 하나님이 계시고 대속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다. 바깥이라는 것은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믿는 사람으로써 그러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오후에 계속하는데 1절부터 4절까지 복습했습니다. 내가 본 즉 집 바깥 사면에, 생각해보는데 오전에 집만 생각을 해봤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03장, 51장
본문: 에스겔 40장 5절
성경을 읽어보면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때가 많습니다. 성경 중애서 가장 어려운 성경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에스겔 성전이고 가장 어렵습니다. 숫자가 나오고 측량하는 게 많이 나오는데 그렇습니다. 필요없는 말씀은 기록하지 않은 것이 하나님 말씀이고 그게 성경입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만 기록하신 것입니다. 살펴보고 연구하고 그런 자세가 필요하고 자라지 않습니다. 세상 그런 말이 있잖습니까. 수월한 일은 어려운 게 없습니다. 어렵고 복잡한 일을 난제라고 합니다. 그럴 때 자포 자기를 하는 사람이 있고 회피를 하는 사람이 있고 도망치는 사람이 있고 그러는데 난제를 만났을 때 가장 좋은 자세는 해결해가는 것이 가장 좋은 자세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사고 방식은 굉장히 중요한겁니다. 성경읽는 자세도 그렇습니다. 알고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번 집회 강사 목사님은 100번 이상 읽었다고 합니다. 저도 그 말씀 듣고 회개하고 적기라도 하고 있습니다. 매일 한 번씩 적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적어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윤곽이라도 잡히게 되는 거지요. 하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면 될 수 있는 것은 되는 겁니다. 안하면 안되는 것이고. 오늘 말씀도 어렵지만 넘어갈 거 같고 아는데까지 생각해봅니다. 1절부터 신앙생활에 제대로 믿는 분들에게는 사무치는 것이라서 기억을 잘 할것입니다. 우리가 사로잡힌지 25년입니다. 반의 반세기라고 합니까. 반세기 50년 반세기 25년입니다. 100년의 반의 반 25년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합니다. 안 변하는데 10년이면 강산이 변할만큼 긴 세월이라고 합니다. 많이 변합니다. 10년이면. 그런데 10년 지나고 다시 5년이 지나서 아주 죽은 상태가 된 것이고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런 양심을 써서 조상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조상들의 잘못을 내가 왜 회개합니까. 그런 것은 천륜이라고하고 끊어버릴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자세를 아름답게 보십니다.
다니엘이 그랬고 에스겔이 그랬고 바벨론에 잡혀간 사람들은 그렇게 회개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사로잡혔다. 포로되었다. 산채로 적군에게 잡혀갔다.
사람의 키가 작습니다. 키가 작으면 불편한게 많습니다. 저는 키가 작습니다. 키가 작아서 소원을 가졌습니다. 인물 잘났다는 사람있는데 다 성형수술해서 다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리지요. 그래야 평등해야하는 거 아닙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약육강식의 원리로 만들어놓으신 겁니다.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은 약한 놈은 강한놈에게 잡히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세계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어떻게 강한 세력이라도 하나님의 백성은 함부로 건들이지 못합니다. 그런데 왜 모두 잡혀갔느냐, 내면을 들여다보면 스스로 좋아서 기어들어간겁니다. 바벨론에 부쳤다. 약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오늘도 예수믿는 사람들은 자기만 정신차리면 어떤 것도 대적할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딧불이 아시지요. 반딧불이 아는 사람. 본 사람. 다 봤지요. 우리 집회장소 반딧불이 많았습니다. 반딧불이의 불을 막는 방법은 뭐가 있습니다. 죽이는 거 말고 방법이 없지요. 어떤 암흑을 가져다대도 그러는 겁니다. 노아 홍수 때처럼 되면 몰라도 하늘에서 어지간히 폭포 쏟아내어도 끄떡도 안할 겁니다. 태풍이 불면 바위가 날아갑니까. 집채만한 바위는 날아가지 않습니다. 이런 걸 가르켜서 신앙이라고 합니다. 내가 태평양이 되고 예수믿는 사람이 약하다 넘어졌다 이건 약한 사람 있지요. 그런데 자기로써 할 수 있는 거 다 하면 됩니다. 그래서 사로잡혔다는 것은 믿는 사람에게 하나의 표현일 뿐입니다. 내가 세상이 좋아서 기어들어가는 겁니다. 낙이 좋고 문화가 좋고 시청각이 좋고 대우가 좋아서 그렇게 들어가니까 막는 방법이 없는 겁니다.
교회가 세상이 되어버리니까 천국 소망인데 오늘 집사님이 기도 잘은 모르겠으나 사무쳐서 기도하신 거 같은데 하늘나라 천국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 빠져가니고 양심을 쓰고 간단하게 생각하지요. 천국이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믿습니까 안 믿습니까. 믿으니까 앉아계시겠지요. 이 세상이 있습니다. 돈을 벌어 재벌이 되었습니다. 그 잘난 사람이 그 많은 재물 두고 이 세상을 떠나버렸는데 이건희 회장님이 돌아가셨을 때 얼마 가져가셨냐고 물어봤꺼든요. 안타깝게도 1원도 못가져갔습니다. 왜 못가져갔습니까. 가져갈 방법이 없습니다. 그게 세상입니다. 인물 좋고 머리 좋고 그래서 유력하게 장래가 밝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너무 똑똑해서 유학해서 박사 학위를 받아왔습니다. 중매 자리가 줄을 섰겠지요. 가장 예쁜 사람 뽑아서 결혼했습니다. 신혼여행했는데 아내가 안 일어납니다. 그런 일이 없습니까. 이건 실화입니다. 그게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과 천국두고 세상을 취한다. 이건 바보나 미친 놈입니다. 그러지 않는가요.
그래서 백 목사님께서 사람들이 모두 미쳤다고 하는 겁니다. 냉철하게 보면 우리는 다 정상이 아닙니다. 미친 생활 하고 있는 거지요. 금덩어리가 쌓였는데 우리들입니다. 그렇게 산 세월이 25년이고 교회까지 세상 다 만들어버리고 그런데 모르는 사람은 사는 것이고 에스겔처럼 깨닫고 보니까 탄식이 되는 겁니다. 사뭇치는겁니다. 사뭇치는 마음이 있으면 소망을 주시는 겁니다. 소망이 며칠입니까. 정월 10일입니다. 우리가 우리 모습을 다시 돌아봐야겠습니다. 여호와의 권능은 값이 굉장히 비쌉니다. 싸구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에스겔에게 그건 비쌉니다. 뭘 드려야할까. 자기 자신을 드려야합니다. 자기 자신을 드리고 하나님 앞에 다 버리고 양심을 써야합니다. 회개하고 간절한 소망 주시는 겁니다.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셨습니다. 높은 산이니까 아득히 뜯습니다. 세상과는 멀고 하늘과는 가까운 거, 이 세상과 멀고 하늘과 가까운게 무엇일까 이건 깨달음으로 되는 겁니다. 이 세상을 보는 눈이 생깁니다. 사람을 보고 인생을 보고 돈이 뭐냐,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걸 보고 온갖 걸 다 봅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봅니다. 이걸 보는 눈이 생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확실히 주십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없어지는 곳이구나. 돈은 좋은 것이지요. 그런데 그걸 초월하고 살 수 있는 겁니다. 돈만 그렇겠습니까. 권력은요. 세상 안 믿는 사람들 말이 있잖습니다. 이 세상 허무를 가르치는 안 믿는 사람이 만들어낸 말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눈을 주십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산 위에서 지은 겁니다.
세상 떠나기 저넹 나름대로 큰 부자라 할 지라도 마지막 안타깝게도 일찍 갔는데 돈 필요없습니다. 아마 아까웠을겁니다. 구두쇠인데 짠돌이인데 돈 별거 없습니다. 아무것도 아닌것이지요. 지나가는 것이고. 그런 것을 알게 되고 초월하게 되는 게 극히 높은 산입니다. 그렇게 올라가서 세상이 보이고 인생이 보이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극히 높은 산으로 인도하셔서 에스겔은 북쪽으로 인도했습니다. 동쪽은 해가 뜨는 곳이라 밝은 곳이고 서쪽은 해가 지는 곳이라서 어두운 곳입니다. 남쪽은 따뜻한 곳 북쪽은 추운 곳입니다. 남쪽을 향하여. 배가 고프면 음식이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세상에 무엇이 가장 좋은 반찬이라던가요. 저는 어릴 때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한번씩 반찬투정을 합니다. 어머니께서 시장이 반찬이다. 그랬습니다. 배가 고프니까 그러지.
배가 고프니까 돼지가 먹고 싶은 거 먹을려고 해도 안줍니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일본의 해방된 것들 그 사람들 해방된 줄 모르고 살았는데 음식이 있으니까 다 죽었는데 위장 속에 뭘 죽었다고요. 배가 고프면 못 먹을 게 없는 거지요. 헌 옷이 있어야 새 옷이 있는 겁니다. 지옥이 있어야 천국이 가치있는 겁니다.
하나니이 사람되신 희생 우리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메달리신 희생. 삼줄입니다 긴 자고 장대는 짧은 것이고 측량하는 도구입니다. 성경이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인데 우리에게 인간에게 보라고 기록했기 때문에 불교믿는지 모르겠는데 기독교만 비판하는 사람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무식하기 짝이없는데 그렇습니다. 제가 볼 때에는 뭘 안다고 저럴까. 연세대 교수라고 성경 읽었다고 비판합니다. 성경은 누구 말씀이라고요 하나님 말씀입니다. 인간이 무슨 수로 압니까. 한글이니까 많이 배운 사람은 영어니까 영어 잘하는 사람은 영어 읽겠지요. 가장 어려운 게 뭡니까. 독해력이라고 합니다. 읽긴 읽는데 이 세상 말은 어떻게 어려운 팔만대장경도 굉장히 어렵습니다. 아무리 깊고 어려워도 전부 인간이 만들어낸 책입니다. 인간이 연구한 건 알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 머리에서 나온 말씀이 아닙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만든 말씀입니다. 이걸 알고 성경 속으로 들어가야하지 안 그러면 다 탈선되는 것이고 신학교들이 다 탈선된 이유가 그겁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간같이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집채만한 바위입니다. 일본은 사기 접시입니다 그러면 깨져버립니다. 판사가 얼버무렸다고 하지요. 인간과 같은 수준에서 하나님을 연구하는 겁니다. 성경을 인간학처럼 연구합니다. 코끼리를 조그만한 냉장고에 집어넣어보지요. 그것보다 더 어려운겁니다.
에스겔이 보니까 극히 높은 산에 하나님을 올려놨습니다. 보이시니까 풀었습니다. 하나님 말씀 여러 보여주셔야 성경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뭐라고 한다고요. 계시라고 하는 겁니다. 세상에 모든 자유 만물에 아파트가 그리운 사람은 아파트 밖에 없을 것이고 과거 서부교회 일 때 80년대는 바글바글했습니다. 저 어릴 때 살던 곳인데 그때 5만명이라 그럴 것인데 한 학교 5000명 상상이 안되시지요. 제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5000명입니다. 지금과 전혀 다르지요.
보는 각도, 이 세상이 보는 것도 어떻게 보느냐, 전부 주일 학생 밖에 안 보입니다. 그래서 출근하다 학생 만나면 마구 합니다. 그 사람이 되게 이르시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눈으로 보고 귀로 듣습니다. 보이는 것이 귀로 들리는 겁니까. 손목시계입니다. 보이긴 보이시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라. 어떻게 듣습니까. 눈으로 보는 건데. 귀로 들으며 사람이라는 것은 들리는 귀가 있습니다. 양심의 귀지요. 그걸로 들어라는 겁니다. 양심을 써라는 겁니다. 그리고 생각해라. 생각하는 걸 눈으로 보고 듣고 생각해라. 그리고 나서 내가 본 것을 너의 민족에게 고해라. 그렇게 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이게 지난 주간에 생각했던 것이고 내가 본 즉 에스겔이 봤습니다. 집이 보입니다. 에스겔이 극히 높은 산 위에서 나무로 향해서 본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성읍현상 같은 것을 봤습니다. 성읍 안에 있는 집을 봤습니다. 성령입니다. 그 중심이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깥에 있습니다. 집에 내부가 있고 그렇습니다. 안팍이 있는데 집을 말한 게 아닙니다. 집 바깥입니다. 내가 본 집을 봤습니다. 그리고 바깥이 있습니다. 교회가 넓어지면 교단이라고 합니다. 이걸 넓히면 뭐라고 합니까. 교회는 다른 말로 기독교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교회입니다. 예수다 그 말입니다. 이게 그렇게 집이라는 겁니다. 크게 말하면 기독교고 더 땡기면 교회고 가정교회고 누구 집입니까.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참된 교단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마음은 영의 집입니다. 몸은 마음의 집입니다. 이 집이 어디있느냐 성 안에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인데 하나님의 나라인데 성전을 중심으로 나가면 하나님의 백성들만 살아야하는데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고 성전이라는 것은 이 세상 아닌거지요. 예를 생각해봤습니다. 우리나라에, 중국 땅에 굉장히 경쟁관계지요 미국과. 중국 땅에 미국 대사관이 있습니다. 그 대사관은 누구 땅입니까. 중국나라 땅에 미국 대사관이 있습니까. 그거 미국 땅입니다. 거기 쳐들어가면 미국 쳐들어갑니다. 대사관에 절대 못 들어갑니다. 우리나라에 일본이 밉다고 일본 대사관이 있습니다. 반일하겠다고 일본 들어가면 난리나는 겁니다. 우리나라 땅입니다. 비슷하게 교회라는 것은 이 세상이라는 나라를 믿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 없지만은 하나님의 집이기에 하나님께서 용서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있는 정치가들은 종교를 함부로 건들지 않습니다. 집이 뭐냐 교회인데 하나님의 집인데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가 있습니다. 말씀 생활이 있습니다. 대속이 있고 진리가 있고 영감이 있습니다. 여기는 하나님의 영역이다. 여기는 하나님이 계시고 대속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다. 바깥이라는 것은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믿는 사람으로써 그러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오후에 계속하는데 1절부터 4절까지 복습했습니다. 내가 본 즉 집 바깥 사면에, 생각해보는데 오전에 집만 생각을 해봤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