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수밤
김동민2024-05-01조회 199추천 28
2024년 5월 1일 수밤
찬송: 35장, 74장
본문: 시편 9편 16절
이번 공과 제목이 공과지 보니까 하나님 자유의 심판이라고 해놨는데 하나님 자유의 심판하고 하나님의 자유의 심판하고 두고 생각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자유로 마음대로 심판하신다 뜻이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성을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게 제목의 뜻이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자유의 심판이 나을지 생각해보시고 본 뜻에 맞는 걸로 하시면 됩니다.
우리 교회 설교를 그렇게 생각할 건 아닌데 백 목사님의 말씀은 토씨하나까지라면 지나칠 수 있고 오류가 많습니다. 틀린 거는 제가 고친 게 굉장히 많습니다. 공과를 만드셨는데 아주 유력한 분이 공과를 작성했는데 한 자를 바꿨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 분에게 공과를 안 맡겼다고 했습니다. 법조문 같은 거 한 자 한 자 토씨까지도 한 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져버리기 때문에 법을 아는 사람들은 조사 받을 때 아주 신중하고 아예 묵비권 행사하고 말을 안해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없으면 말 안하고 우리 편 보험사를 들어서 조금 토끼꼬리만한 지식가지고 그러면 자기 말이 올가미가 되어서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저도 제목 붙여놓은 거 보고 어느 것이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인정을 안 하시는 학자가 국어학자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맞춤법 띄어쓰기는 몇 번이나 바꾸는지 모릅니다. 그래야 존재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그런 거 있지만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나님 자의의 심판 인간의 자유성을 심판하는 심판입니다. 9편 자체가 심판을 노래하는 성경이라고 했는데 앞에 제목도 읽어놓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시편 읽으실 때 앞에 것 읽으시는 분. 다 읽으시지요. 이것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성경에 기록된 우리들이 들고다니는 휴대용 성경에 제목이 있는데 다 틀렸습니다. 인간들이 붙인겁니다. 성경을 공부할 때 참고되는 사람도 있는데 모르고 하면 차라리 안 읽고 모르는 게 낫습니다. 잘못된 제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요즘 성경학자들 인간적 인본주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시편은 읽어주는 게 좋지 않을까. 읽어주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어로 들어가면 복잡해지는데 아들의 죽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지은 시인데 아들의 죽음을 두고 하나님의 심판을 찬송한다, 그 아들의 죽음을 노래한 것이다. 이게 다윗의 아들의 죽음은 배운 말씀으로 그게 무엇인가요. 그게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심판은 의롭습니다. 마땅합니다. 아이에게는 다윗의 목숨을 걸어놓고 나를 데려가시고 자식을 데려가주옵소서 이거입니다. 이게 자세입니다.
죄를 지은 자는 나니까 나를 데려가시고 아이를 살려주옵소서. 그래서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고 엎드려 빈겁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가면 어떤 모습으로 갈지 모르겠습니다. 그럴 때 다윗은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순 없을 것이다. 아들이 죽었는데 노래한다 하니까 골리앗을 두고 무슨 무슨 아들이라고 하는데 골리앗을 아들로 연결시켜서 찬송시키는 건 인본주의겠고 심판에 대한 것이 아니겠느냐. 반드시 그렇다고는 못하는데 9편 전체가 심판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심판을 행하셨으며. 심판의 의미가 뭐냐. 심사해서 판단하는거죠. 심사 판단이라는 말은 그 전에 행위 심사할 일 전제가 되어있는 겁니다. 시험을 쳤든지 일을 했던지 행위를 했던지 심판을 받을 만한 행사가 있었을 때 심판이 따라가는 겁니다. 그래서 심판이라는 의미는 그런 뜻인데 하나님의 심판의 의미는 전체적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리시는 겁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으며,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연 계시 만물 계시 일반 계시라 그랬습니다. 모든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연 순리 순환 물리 모든 이치 과학들 그 전부를, 물이 높은데서 낮은데로 올라가는 것이고 미세하게 깎아서 변하는 게 순리고 올 봄에는 유달리 비가 많이 오는 편이지요. 딱딱 알맞게 적당하게 된 비입니다. 나무들이 유난히 굉장히 많이 자랍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무들이 무성하게 잎사귀를 뻗치고 있습니다. 다른 것도 보면 현재까지 보면 올해는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이런 것도 비가 적절하게 오니까 잘 자란다. 물리입니다. 과학에만 물리가 있는게 아닙니다.
계시의 뜻이 뭡니까. 용어로 해석하면 열어서 보인다는 뜻입니다만 성경에 말하는 계시가 뭡니까. 알게 하사, 이게 계시입니다. 알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구원의 알게 하시는 겁니다. 자연의 모든 흐름의 결과물들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응용해 볼 수 있는 겁니다. 창조주 주권자의 개입이다. 이게 심판의 의미다 그 말입니다. 이런 만물적인 것도 있고 인간에게도 사람이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인과응보 자업자득 열심히 노력하면 노력의 결과는 보편적으로는 따라오게 됩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올라갑니다. 열심히해도 잘못된 열심이되면 안 올라갑니다. 허영과 허욕이 있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일반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무데나 먹고 운동 안하고 하면 나이들면 성인병 생기고 그러는 겁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바로 살고 깨끗하게 살면 마음 속에 양떼를 품고 기도하고 양떼의 식구들이 늘어납니다. 기도 안하고 심방전도 안하고 죄를 짓고 살면 이게 심판입니다. 모든 순리가 심판이고 원리가 심판이고 그대로 나타난 결과가 심판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원리대로 순리대로입니다. 이번 말씀 핵심이 이겁니다. 하나님의 법은 전부 순리입니다. 원리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이대로 되는 게 심판이라는 것을 이번 공과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공심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에서 있는 거니까. 불택자들에게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얼마든지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거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구분한다면 사람이라 그럴 때 진짜 사람은 택자만 사람이고 불택자는 이용물일 뿐이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기준이 뭐냐 기준이 흔들리면 기준이 원칙인데 원칙이 흔들리면 그 판단은 권위가 다 떨어지고 의미가 없게 되는 겁니다. 어떻게 되든 그 원칙은 지켜나가야 하는 겁니다. 그 기준이 뭐냐 말씀이고 자유의 율법이다. 많이 설명을 드렸습니다. 왜 자유의 율법이냐. 이 심판이 드러나는 시점, 현실에서 우리 행동 생활 자체가 심판인데 드러나는 시점은 그 행동에 따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심판이고
한 달 뒤에 시험을 칩니다. 8월달에 시험을 치고 몇 달 남았는데 그 기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보면은 성적이 어느정도 나오겠다. 합격하겠다 불합격하겠다가 보이는 거지요. 하나님의 심판이 이겁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지 보면 하늘나라가서 어떻게 될지 보이겠다. 자타가 압니다. 이걸 현실 심판이라고 그러고 이게 드러나기는 언제 드러나느냐 마지막에 드러난다. 그래서 심판의 시점이라는 걸 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심판을 아는 사람이라면 현실 우리들의 생활을 심판하는거지요. 침 삼킬 동안도 조심할 수 밖에 없는데 말과 마음은 믿는데 실제 못 믿으니 그렇게 못 살고 그러니 권위가 없는 겁니다. 엘리야는 기도하니까 3년을 안왔습니다. 다시 기도하니까 왔습니다. 우리는 왜 안됩니까. 백 목사님의 설교처럼 우리는 왜 안되는 겁니까. 우리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숨겨놨지요. 모르기 때문에, 그 심판의 의미를 하나님을 알리는 역사 시점 정리해봤습니다. 심판의 결과는 그 최종 처리 장소가 바로 천국과 지옥입니다. 천국과 지옥이다. 그리고 그 심판의 결과를 두고 권선징악입니다. 내면에 들어가면 전부 그 사람이 살아가는 그대로 좋아서 살아가는 그대로 갚아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자업자득이고 행한대로 원하는대로 갚아주시는 것이고 이 심판에 대해서 그 하나님의 심판을 할 때 지성 지공의 심판이므로 단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심판이 지성이다. 우리 평생에 살아오는 심신의 활동 작용에 말 한마디도 숨 한 번 쉬는 것도 그냥 지나가지 않고 낫낫이 자나가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치우침 없이 그대로 하는 것이 지공입니다. 그러니까 지공지성의 하나님 무서운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대로 천국에서도 환하게 보이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서 어떤 경우도 항변을 못하는 겁니다. 그게 전부 자업자득인 줄 알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탄식이 있는 것이고 천국에서는 그렇게 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하는 것이고 천국과 지옥의 극과 극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외부적으로 권선징악, 자기가 원하는 걸로 갚아주는 자취의 결과다.
그런데 여기까지 하면서 강조되는 게 그 모든 게 심판이기 때문에 앞에 자연의 순리를 말씀드렸습니다. 원리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저절로 내려가는 거.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은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심판이라는 말이죠. 사람에 대해서는 사람의 모든 행위에 대한 기회를 주시고 복과 화해에 대한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거스르면 화를 받는다는 겁니다. 두 길 주시고 선택의 자유 주셨으니까 알아서가라. 그리고 마지막에 심판이라는 것은 드러내는 것입니다. 너는 이렇게 이 길을 갔지 말했지 드러나는 겁니다. 그러면 거기를 가는 것이고. 이걸 가르켜 자유성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 하나님에게 받은 인간의 속성입니다. 이 자유성은 하나님의 형상 종자라는 뜻입니다. 이 자유성가지고 현실에서 선택한 것이 마지막에 이루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선택 결과에 따라서 되는 게 심판, 자유의 심판이다.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거지요.
공과를 기억하시면서 하나님도 그렇고 말씀도 그렇고 하나님의 모든 역사 하나님이라는 그 분 존재에 대해서 많은 면이 있는 중에서 이번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이고 자유의 심판이라는 말인데 지식적으로 아는 게 중요하고 알고 난 다음에 하나 더 붙여봤습니다. 아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을 믿어지도록 하나님이 실제 믿어지도록 믿기 때문에 두렵도록 심판이 믿어지니까 두렵도록 그렇게 행하면 따라가는 것이고 알고 아는 것이 믿으면 행함이 따라가는 것이고 행함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고 우리 공회 교인들의 문제 아는 건 누구보다 더 잘 압니다. 그런데 행할 수 있는 믿음까지 가지 못하는 게 문제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말 뿐이고 믿으면 실제 믿으면 하나가 되는데 참 알면 참 믿게 되어있고 안다고 아는데 믿음은 없고 안되어있는거지요. 그래서 우리가 이 자리 머물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 자유의 심판 생각하면서 어쨌든 오늘을 살되 우리가 사는 것이 심판이고 드러날 그 날을 자연의 모든 것 가지고 생각하면서 잘 사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35장, 74장
본문: 시편 9편 16절
이번 공과 제목이 공과지 보니까 하나님 자유의 심판이라고 해놨는데 하나님 자유의 심판하고 하나님의 자유의 심판하고 두고 생각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자유로 마음대로 심판하신다 뜻이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성을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게 제목의 뜻이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자유의 심판이 나을지 생각해보시고 본 뜻에 맞는 걸로 하시면 됩니다.
우리 교회 설교를 그렇게 생각할 건 아닌데 백 목사님의 말씀은 토씨하나까지라면 지나칠 수 있고 오류가 많습니다. 틀린 거는 제가 고친 게 굉장히 많습니다. 공과를 만드셨는데 아주 유력한 분이 공과를 작성했는데 한 자를 바꿨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 분에게 공과를 안 맡겼다고 했습니다. 법조문 같은 거 한 자 한 자 토씨까지도 한 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져버리기 때문에 법을 아는 사람들은 조사 받을 때 아주 신중하고 아예 묵비권 행사하고 말을 안해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없으면 말 안하고 우리 편 보험사를 들어서 조금 토끼꼬리만한 지식가지고 그러면 자기 말이 올가미가 되어서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저도 제목 붙여놓은 거 보고 어느 것이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인정을 안 하시는 학자가 국어학자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맞춤법 띄어쓰기는 몇 번이나 바꾸는지 모릅니다. 그래야 존재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그런 거 있지만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나님 자의의 심판 인간의 자유성을 심판하는 심판입니다. 9편 자체가 심판을 노래하는 성경이라고 했는데 앞에 제목도 읽어놓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시편 읽으실 때 앞에 것 읽으시는 분. 다 읽으시지요. 이것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성경에 기록된 우리들이 들고다니는 휴대용 성경에 제목이 있는데 다 틀렸습니다. 인간들이 붙인겁니다. 성경을 공부할 때 참고되는 사람도 있는데 모르고 하면 차라리 안 읽고 모르는 게 낫습니다. 잘못된 제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요즘 성경학자들 인간적 인본주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시편은 읽어주는 게 좋지 않을까. 읽어주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어로 들어가면 복잡해지는데 아들의 죽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지은 시인데 아들의 죽음을 두고 하나님의 심판을 찬송한다, 그 아들의 죽음을 노래한 것이다. 이게 다윗의 아들의 죽음은 배운 말씀으로 그게 무엇인가요. 그게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심판은 의롭습니다. 마땅합니다. 아이에게는 다윗의 목숨을 걸어놓고 나를 데려가시고 자식을 데려가주옵소서 이거입니다. 이게 자세입니다.
죄를 지은 자는 나니까 나를 데려가시고 아이를 살려주옵소서. 그래서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고 엎드려 빈겁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가면 어떤 모습으로 갈지 모르겠습니다. 그럴 때 다윗은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순 없을 것이다. 아들이 죽었는데 노래한다 하니까 골리앗을 두고 무슨 무슨 아들이라고 하는데 골리앗을 아들로 연결시켜서 찬송시키는 건 인본주의겠고 심판에 대한 것이 아니겠느냐. 반드시 그렇다고는 못하는데 9편 전체가 심판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심판을 행하셨으며. 심판의 의미가 뭐냐. 심사해서 판단하는거죠. 심사 판단이라는 말은 그 전에 행위 심사할 일 전제가 되어있는 겁니다. 시험을 쳤든지 일을 했던지 행위를 했던지 심판을 받을 만한 행사가 있었을 때 심판이 따라가는 겁니다. 그래서 심판이라는 의미는 그런 뜻인데 하나님의 심판의 의미는 전체적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리시는 겁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으며,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연 계시 만물 계시 일반 계시라 그랬습니다. 모든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연 순리 순환 물리 모든 이치 과학들 그 전부를, 물이 높은데서 낮은데로 올라가는 것이고 미세하게 깎아서 변하는 게 순리고 올 봄에는 유달리 비가 많이 오는 편이지요. 딱딱 알맞게 적당하게 된 비입니다. 나무들이 유난히 굉장히 많이 자랍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무들이 무성하게 잎사귀를 뻗치고 있습니다. 다른 것도 보면 현재까지 보면 올해는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이런 것도 비가 적절하게 오니까 잘 자란다. 물리입니다. 과학에만 물리가 있는게 아닙니다.
계시의 뜻이 뭡니까. 용어로 해석하면 열어서 보인다는 뜻입니다만 성경에 말하는 계시가 뭡니까. 알게 하사, 이게 계시입니다. 알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구원의 알게 하시는 겁니다. 자연의 모든 흐름의 결과물들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응용해 볼 수 있는 겁니다. 창조주 주권자의 개입이다. 이게 심판의 의미다 그 말입니다. 이런 만물적인 것도 있고 인간에게도 사람이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인과응보 자업자득 열심히 노력하면 노력의 결과는 보편적으로는 따라오게 됩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올라갑니다. 열심히해도 잘못된 열심이되면 안 올라갑니다. 허영과 허욕이 있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일반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무데나 먹고 운동 안하고 하면 나이들면 성인병 생기고 그러는 겁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바로 살고 깨끗하게 살면 마음 속에 양떼를 품고 기도하고 양떼의 식구들이 늘어납니다. 기도 안하고 심방전도 안하고 죄를 짓고 살면 이게 심판입니다. 모든 순리가 심판이고 원리가 심판이고 그대로 나타난 결과가 심판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원리대로 순리대로입니다. 이번 말씀 핵심이 이겁니다. 하나님의 법은 전부 순리입니다. 원리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이대로 되는 게 심판이라는 것을 이번 공과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공심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에서 있는 거니까. 불택자들에게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얼마든지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거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구분한다면 사람이라 그럴 때 진짜 사람은 택자만 사람이고 불택자는 이용물일 뿐이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기준이 뭐냐 기준이 흔들리면 기준이 원칙인데 원칙이 흔들리면 그 판단은 권위가 다 떨어지고 의미가 없게 되는 겁니다. 어떻게 되든 그 원칙은 지켜나가야 하는 겁니다. 그 기준이 뭐냐 말씀이고 자유의 율법이다. 많이 설명을 드렸습니다. 왜 자유의 율법이냐. 이 심판이 드러나는 시점, 현실에서 우리 행동 생활 자체가 심판인데 드러나는 시점은 그 행동에 따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심판이고
한 달 뒤에 시험을 칩니다. 8월달에 시험을 치고 몇 달 남았는데 그 기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보면은 성적이 어느정도 나오겠다. 합격하겠다 불합격하겠다가 보이는 거지요. 하나님의 심판이 이겁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지 보면 하늘나라가서 어떻게 될지 보이겠다. 자타가 압니다. 이걸 현실 심판이라고 그러고 이게 드러나기는 언제 드러나느냐 마지막에 드러난다. 그래서 심판의 시점이라는 걸 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심판을 아는 사람이라면 현실 우리들의 생활을 심판하는거지요. 침 삼킬 동안도 조심할 수 밖에 없는데 말과 마음은 믿는데 실제 못 믿으니 그렇게 못 살고 그러니 권위가 없는 겁니다. 엘리야는 기도하니까 3년을 안왔습니다. 다시 기도하니까 왔습니다. 우리는 왜 안됩니까. 백 목사님의 설교처럼 우리는 왜 안되는 겁니까. 우리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숨겨놨지요. 모르기 때문에, 그 심판의 의미를 하나님을 알리는 역사 시점 정리해봤습니다. 심판의 결과는 그 최종 처리 장소가 바로 천국과 지옥입니다. 천국과 지옥이다. 그리고 그 심판의 결과를 두고 권선징악입니다. 내면에 들어가면 전부 그 사람이 살아가는 그대로 좋아서 살아가는 그대로 갚아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자업자득이고 행한대로 원하는대로 갚아주시는 것이고 이 심판에 대해서 그 하나님의 심판을 할 때 지성 지공의 심판이므로 단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심판이 지성이다. 우리 평생에 살아오는 심신의 활동 작용에 말 한마디도 숨 한 번 쉬는 것도 그냥 지나가지 않고 낫낫이 자나가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치우침 없이 그대로 하는 것이 지공입니다. 그러니까 지공지성의 하나님 무서운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대로 천국에서도 환하게 보이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서 어떤 경우도 항변을 못하는 겁니다. 그게 전부 자업자득인 줄 알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탄식이 있는 것이고 천국에서는 그렇게 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하는 것이고 천국과 지옥의 극과 극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외부적으로 권선징악, 자기가 원하는 걸로 갚아주는 자취의 결과다.
그런데 여기까지 하면서 강조되는 게 그 모든 게 심판이기 때문에 앞에 자연의 순리를 말씀드렸습니다. 원리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저절로 내려가는 거.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은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심판이라는 말이죠. 사람에 대해서는 사람의 모든 행위에 대한 기회를 주시고 복과 화해에 대한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거스르면 화를 받는다는 겁니다. 두 길 주시고 선택의 자유 주셨으니까 알아서가라. 그리고 마지막에 심판이라는 것은 드러내는 것입니다. 너는 이렇게 이 길을 갔지 말했지 드러나는 겁니다. 그러면 거기를 가는 것이고. 이걸 가르켜 자유성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 하나님에게 받은 인간의 속성입니다. 이 자유성은 하나님의 형상 종자라는 뜻입니다. 이 자유성가지고 현실에서 선택한 것이 마지막에 이루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선택 결과에 따라서 되는 게 심판, 자유의 심판이다.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거지요.
공과를 기억하시면서 하나님도 그렇고 말씀도 그렇고 하나님의 모든 역사 하나님이라는 그 분 존재에 대해서 많은 면이 있는 중에서 이번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이고 자유의 심판이라는 말인데 지식적으로 아는 게 중요하고 알고 난 다음에 하나 더 붙여봤습니다. 아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을 믿어지도록 하나님이 실제 믿어지도록 믿기 때문에 두렵도록 심판이 믿어지니까 두렵도록 그렇게 행하면 따라가는 것이고 알고 아는 것이 믿으면 행함이 따라가는 것이고 행함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고 우리 공회 교인들의 문제 아는 건 누구보다 더 잘 압니다. 그런데 행할 수 있는 믿음까지 가지 못하는 게 문제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말 뿐이고 믿으면 실제 믿으면 하나가 되는데 참 알면 참 믿게 되어있고 안다고 아는데 믿음은 없고 안되어있는거지요. 그래서 우리가 이 자리 머물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 자유의 심판 생각하면서 어쨌든 오늘을 살되 우리가 사는 것이 심판이고 드러날 그 날을 자연의 모든 것 가지고 생각하면서 잘 사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