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일 금밤
김동민2024-03-01조회 274추천 45
2024년 3월 1일 금밤
찬송: 157장, 158장
본문: 창세기 26장 12절 ~ 15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공과 말씀이 되겠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여리고성 아간의 범죄를 가지고 이스라엘이 정복해 들어가야할 여리고 성 안에 호흡 있는 자를 남기지 말고 죽여라. 남녀노유와 육축을 죽여라. 그 땅 이스라엘에 전리품을 받으면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쇠붙이는 불로 지르고 안되는 것은 씻어라고 했는데 외투 한 벌하고 은을 훔쳤다가 이스라엘이 멸망할 뻔 했습니다. 그 말씀을 가지고 여리고성이 어떤 성이였는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 세상입니다. 그게 여리고성이고 하나님을 모르는 곳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게 되어있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믿는 사람의 세상이 여리고성인데 여리고성 보다 더한 시대가 되었고 더한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치우쳐서 오늘 세상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염세주의 이런 게 치우칠까하여 오히려 반대쪽 말씀은 아니지만 바른 말씀으로 생각해보는 겁니다. 믿는 사람은 바로 봐야 바로 알고 바로 봐야 바로 상대하게 되어집니다. 성경에 기독자에게 세상을 바로 알 수 있도록 하는 성경은 굉장히 많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이 세상에 사는데 대부분이 세상이고 6000년 세월 속에 이 세상은 흘러왔고 이어져온 세상에 중심이 교회고 그렇기 때문에 에덴 동산으로부터 수 많은 세상의 작용은 기독자가 중앙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시대마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알 수 있도록 말씀을 주셨고 기록을 성경에 해놨습니다. 아브라함 때는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노아 때는, 에덴 동산에 아담은 어떻겠는가. 그래서 구약의 아담으로부터 오늘까지 믿는 사람의 세상을 생각해보는 겁니다. 이삭은 어떻게 잘 살았길래 100배나 복을 받았는가. 이삭이 사는 세상은 어떤 사람이었길래 그랬는가. 이상은 그랄 지방에 살았고 오늘의 세상입니다. 이삭의 온유한 신앙을 생각해봅시다. 온유하다는 말은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말이고 넉넉하다는 뜻입니다. 경제적으로 쫓기면 결코 온유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적으로 쫓기는 사람은 여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넉넉함에서 오기 때문에 여유를 가져옵니다. 부족하면 거기에 평안함이나 여유로움은 올 수 없습니다. 몸이 병이들면 건강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여유가 생기지를 않습니다. 넉넉하고 부드러운거. 따뜻하게 그렇습니다. 에어컨을 천장에 설치할건데 시스템 에어컨은 덜 따뜻하답니다. 뒤에있는 저건 스탠드는 따뜻하게 되는데 그런 말을 들었고 우리는 평수가 넉넉할거니까 상관없는데 여기가 40평인데 20평짜리 에어컨 가져다 놓으면 아무리 해도 안 따뜻하고 안 시원한겁니다.
뭐든지 모자라면 부족하면 불안한 것이고 넉넉하면 여유가 있고 부드럽게 되는 겁니다. 그걸 온유라 그러고 여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삭의 신앙은 온유한 신앙이었다. 행적이 그렇고 생애가 그렇고 수명이 그렇습니다. 180세를 살았으니까 이삭은 돈에 쫓기지 않았고 사람에게 쫓기지 않았고 초조하지 않았고 범사에 넉넉하게 살았습니다. 온유한 신앙을 살았습니다. 믿음에서 생겨지는 여유가 온유입니다. 믿음에서 생겨진다. 대상에 따라 다르겠지요.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은 믿을만한 분인데 아무리 그분이 튼튼해도 믿음이 부족하면 온유함은 생겨지지 않는겁니다. 완전자 전지전능자. 믿으면 되는데 믿음이 부족하면 온유함이 생기지 않는 것이고. 그렇게다면 온유에 대한 믿음은 기본적인 것이 죄를 지으면 안됩니다. 어떤 경우라도 죄를 가진 사람이 마음에 온유할 수는 없는겁니다. 죄 지은 사람이 짓는 것은 자기 오판입니다. 자기 형벌이 따라옵니다.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모르면 죄인줄 모르면 그럴 수 있는데 그건 무지입니다. 죄가 없어야합니다. 죄가 무엇인가요. 죄가 무엇이 죄입니까. 주일 어기는 죄가 큽니까 사람을 시기하는 죄게 큽니까. 표면적으로는 주일 어기는 죄가 큽니다. 내면적으로는 시기하는 죄가 훨씬 더 큽니다.
미워하는 죄는 살인죄입니다. 그 살은 고깃덩어리가 아니고 영원한 구원을 절단내는 것입니다. 기둥되는 계명이라서 주일은 그렇습니다. 원망하는 죄가 큽니까 주일 어기는게 큽니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3계명을 어기는 죄가 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죄를 지어 놓고도 죄를 모르는 사람이 믿는 사람 중에서 꽉 찼습니다. 믿는 사람이 죄를 알고 나면 한 순간도 고개들지 못합니다. 믿는 사람은 온유함이 없지 않은가. 앞으로를 죄를 안 짓는 만큼 온유의 첫째 조건은 만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어떤 면으로도. 그래서 나를 기준으로 내가 관계 맺은 사람이 10명이 있습니다. 아홉명에 대에서는 죄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 명에 대해서는 죄가 없습니다. 그러면 아홉명에 대해서는 만날 때마다 캥깁니다. 그런데 한 명에서는 너한테 만큼은 죄가 없다. 그렇습니다. 이 면으로 부족한데 이 면은 죄가 없다. 죄가 없는 만큼 온유는 생기게 되는 겁니다. 이삭은 그럴 때 죄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삭은 죄를 찾아보지 못합니다. 죄가 없어야합니다. 몰랐다가 알면 온유가 깨집니다. 참된 온유가 아닙니다.
두 번째는 나로써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하는 거 연구하는 거 기도하는 거 충성하는 거 어떤 일이던지 사물 관계든 그 일을 해결할 때 자기로써 해결할 수 있는 건 다 해야합니다. 첫째는 죄가 없어야하고 두 번째는 많이 생각하고 많이 연구해야합니다. 넓고 깊게 세밀하게. 그래서 뭐든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하나 하나 그래서 신앙 걸음은 토끼걸음이 아니고 소처럼 걸어가는 겁니다. 정확하게 가는 겁니다. 세 번째는 그리고 난 다음에 그때부터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맡겨두면 됩니다. 내가 죄가 없고 할 거 다하고. 사람에게는 별별 일이 다 있는데 평생을 통해서 고난의 바다라고 합니다. 말 한 마디에 가슴이 철렁합니다. 오늘 말 한마디 듣고 가슴 철렁했다가 다음에 되니까 웃었다가 철렁했다가. 사건 하나 하나에 그때마다 휘둘려 피동되면 사람이 못하는 짓입니다. 그래서 첫째는 어떤 경우라도 죄를 짓지 않고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계명어기지 말고 모든 면에 있어서 전부 다입니다. 그래서 이런 게 있습니다. 죄를 많이 짓던 사람이 현재를 가지고 어제까지 죄를 지었으면 오늘 중단하고 이게 길어질수록 온유함이 점점 커지게 되는 겁니다. 갈수록 자기 속에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의 역사로 담대함의 배짱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뭘 해야할까 뭘 할 수 있을까 따져보는 거지요. 이 두가지 하고 난 다음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떡이 되든 맡겨놓는 겁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나의 예상대로 괴로우면 믿음이 아닌 겁니다. 이 두가지만 제대로 됐으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시는 게 믿음이 이 세가지가 바로 되었을 때 온유함이 되어집니다. 이삭에게 하나님이 그랄 집안에게 살아라고 합니다. 아버지때부터 우물을 팠는데 뺏어갑니다. 또 팠는데 또 뺏어갔습니다. 줬습니다. 이 지역의 우물은 집 짓는 것과 같습니다. 대도시에서 땅 한 평은 한 뼘까지 목숨걸고 싸웁니다. 딱 반 평입니다. 그거 때문에 십수년을 하루 아침에 바꿔버리고 원수처럼 바뀌는 걸 봤습니다. 이런 겁니다. 이삭은 싸우지 않았습니다. 줘버렸지. 이게 무책임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찾은겁니다. 자기로써는. 이게 이삭의 신앙입니다. 온유한 신앙은 어떤 경우라도 죄를 가지고 온유함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로써 할 수 있는 걸 다 해야합니다. 세 번째는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두는 겁니다. 마음을 두면 온유는 생기지 않습니다. 어떻게 되든 맡겨두는겁니다. 마지막 세 번째를 맡겨야하기 때문에 앞에 두 개가 중요합니다. 내 죄가 있는가 이게 문제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 앞에 맡겨두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계산이 많아야하고 연구가 많아야하고 온유한 신앙입니다. 두 번째는 이삭이라는 사람은 흉년을 피해서 그랄로 왔습니다. 애굽으로 가는 그런 데입니다. 가나안 땅에 속한 땅입니다. 그때는 블레셋 사람의 땅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이고 아브라함 이삭도 받지 못한 땅이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면 좋은데 그랄 지방으로 살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기 살아라고 하니까 떠날 수가 없는 겁니다. 아담 하나님께서 뭘 하라고 하셨습니까. 그 그랄은 무엇입니까. 에덴 동산입니까. 거기서 잘 살아야하는데 쫓겨날 짓을 했습니다. 시대 시대마다 사람마다 주신 그랄, 자기 세상이 따로 있다는 말이지요. 요셉의 세상은 애굽이었습니다. 좋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요셉이 이삭처럼 사니까 요셉의 나라가 되어져버렸습니다. 출애굽 광야였습니다. 모세의 그랄이었습니다. 모르드게 에스더 이런 사람의 그랄은 바벨론이었습니다.
그 그랄은 이삭이 살기에 불편하고 불안한 곳이었습니다. 따뜻하고 안정된 곳이 아니었습니다. 믿는 사람의 처소가 이런 겁니다. 내 적성에 따라서 나의 유불리에 따라서 장사에 따라서 직장에 따라서 학군에 따라서 내 처소를 직장을 옮기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로 말하면 우리의 그랄입니다. 이삭은 바로 거기서 농사지었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100배나 얻었습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가서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도 종으로 잡혀가서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게 우리 세상이고 현실입니다. 21세기 세상은 굉장히 부유합니다. 5000년 세상에 이렇게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넘치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대마다 때마다 국제 정세가 이러니까 불안하기도 하니까 지금은 또 전쟁 위험도 없기도 합니다. 표면적으로 그렇습니다.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지만은. 이런 안정 속에 내면을 들여다보면 소돔 고모라 성처럼 엉망친창이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간 곳이 없고 사람이 하나님이 되어있고 사람이 전부라 그 말입니다. 인본주의라는 말이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람이 전부입니다. 사람이 주인인 곳에 내가 주인입니다. 역사가 이래도 혼자 사는 때가 많지 않았습니다. 1인 가구가 많은 적이 없었고 혼자 사는 사람이 많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게 그만큼 시대가 전부 자기 중심의 악한 시대가 되었다는 겁니다. 자기가 왕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못하는 것이 없는겁니다.
요즘 사람이 못하는 게 있습니까. 경제를 가지고 지금 세상을 가지고 엉망친창이 되어있습니다. 소돔 고모라 보다 훨씬 되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시대가 그러하고 우리 나라가 그렇고 우리 사는 주변이 그러합니다. 시대마다 다 어려운 시대는 있었습니다. 지금만 어려운 시대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역사로 볼 때 가장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살아라. 여기가 그랄입니다. 이런 세상이 그랄이면 이 속에 이삭의 100배 축복이 들어있는겁니다. 이삭이 그랬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현실을 세 가지로 불렸습니다. 그러면 이런 현실 속에 내가 내 몸이 가는 내 눈이 가고 내 귀가 듣고 내 피부가 느끼고 마음이 생겨지는 나라는 사람이 움직이는 그런 장소 그런 환경. 어디는 따뜻했다가 추웠다가 영하 7도까지 내려간답니다. 날씨가 변화무쌍하듯이 어제까지 좋았다가 오늘은 슬펐다가 언제 어떤 일을 만날지 모르는 겁니다. 그런 현실 속에 그게 바로 기쁜 현실은 그랄이고 슬픈 현실은 그랄이 아닙니가. 괴로운 현실은 그랄이 아닙니까. 아이가 말 잘 들으면 그랄이고 아닐 때는 아닙니까. 아이가 건강하면 그랄이고 아니면 아닙니까. 다 같은 현실인데. 어떤 현실을 주시든지 100배 축복이 있다는거지요.
그러기 때문에 이삭이 100배 축복 받은 거처럼 오만게 다 들어있습니다. 나와 관련된 영육의 전부의 현실이 다 들었습니다. 내 현실에 들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거기 천국도 있고 지옥도 있고 하나님과 마귀도 있고 영광 성공 실패 다 현실에 있습니다.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마귀에게 현실이 있으니 내가 붙든대로 하는 겁니다. 내가 실패를 붙들지 못하면 안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빼앗아가지를 못하는 겁니다. 다 들어있기
찬송: 157장, 158장
본문: 창세기 26장 12절 ~ 15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공과 말씀이 되겠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여리고성 아간의 범죄를 가지고 이스라엘이 정복해 들어가야할 여리고 성 안에 호흡 있는 자를 남기지 말고 죽여라. 남녀노유와 육축을 죽여라. 그 땅 이스라엘에 전리품을 받으면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쇠붙이는 불로 지르고 안되는 것은 씻어라고 했는데 외투 한 벌하고 은을 훔쳤다가 이스라엘이 멸망할 뻔 했습니다. 그 말씀을 가지고 여리고성이 어떤 성이였는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 세상입니다. 그게 여리고성이고 하나님을 모르는 곳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게 되어있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믿는 사람의 세상이 여리고성인데 여리고성 보다 더한 시대가 되었고 더한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치우쳐서 오늘 세상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염세주의 이런 게 치우칠까하여 오히려 반대쪽 말씀은 아니지만 바른 말씀으로 생각해보는 겁니다. 믿는 사람은 바로 봐야 바로 알고 바로 봐야 바로 상대하게 되어집니다. 성경에 기독자에게 세상을 바로 알 수 있도록 하는 성경은 굉장히 많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이 세상에 사는데 대부분이 세상이고 6000년 세월 속에 이 세상은 흘러왔고 이어져온 세상에 중심이 교회고 그렇기 때문에 에덴 동산으로부터 수 많은 세상의 작용은 기독자가 중앙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시대마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알 수 있도록 말씀을 주셨고 기록을 성경에 해놨습니다. 아브라함 때는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노아 때는, 에덴 동산에 아담은 어떻겠는가. 그래서 구약의 아담으로부터 오늘까지 믿는 사람의 세상을 생각해보는 겁니다. 이삭은 어떻게 잘 살았길래 100배나 복을 받았는가. 이삭이 사는 세상은 어떤 사람이었길래 그랬는가. 이상은 그랄 지방에 살았고 오늘의 세상입니다. 이삭의 온유한 신앙을 생각해봅시다. 온유하다는 말은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말이고 넉넉하다는 뜻입니다. 경제적으로 쫓기면 결코 온유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적으로 쫓기는 사람은 여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넉넉함에서 오기 때문에 여유를 가져옵니다. 부족하면 거기에 평안함이나 여유로움은 올 수 없습니다. 몸이 병이들면 건강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여유가 생기지를 않습니다. 넉넉하고 부드러운거. 따뜻하게 그렇습니다. 에어컨을 천장에 설치할건데 시스템 에어컨은 덜 따뜻하답니다. 뒤에있는 저건 스탠드는 따뜻하게 되는데 그런 말을 들었고 우리는 평수가 넉넉할거니까 상관없는데 여기가 40평인데 20평짜리 에어컨 가져다 놓으면 아무리 해도 안 따뜻하고 안 시원한겁니다.
뭐든지 모자라면 부족하면 불안한 것이고 넉넉하면 여유가 있고 부드럽게 되는 겁니다. 그걸 온유라 그러고 여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삭의 신앙은 온유한 신앙이었다. 행적이 그렇고 생애가 그렇고 수명이 그렇습니다. 180세를 살았으니까 이삭은 돈에 쫓기지 않았고 사람에게 쫓기지 않았고 초조하지 않았고 범사에 넉넉하게 살았습니다. 온유한 신앙을 살았습니다. 믿음에서 생겨지는 여유가 온유입니다. 믿음에서 생겨진다. 대상에 따라 다르겠지요.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은 믿을만한 분인데 아무리 그분이 튼튼해도 믿음이 부족하면 온유함은 생겨지지 않는겁니다. 완전자 전지전능자. 믿으면 되는데 믿음이 부족하면 온유함이 생기지 않는 것이고. 그렇게다면 온유에 대한 믿음은 기본적인 것이 죄를 지으면 안됩니다. 어떤 경우라도 죄를 가진 사람이 마음에 온유할 수는 없는겁니다. 죄 지은 사람이 짓는 것은 자기 오판입니다. 자기 형벌이 따라옵니다.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모르면 죄인줄 모르면 그럴 수 있는데 그건 무지입니다. 죄가 없어야합니다. 죄가 무엇인가요. 죄가 무엇이 죄입니까. 주일 어기는 죄가 큽니까 사람을 시기하는 죄게 큽니까. 표면적으로는 주일 어기는 죄가 큽니다. 내면적으로는 시기하는 죄가 훨씬 더 큽니다.
미워하는 죄는 살인죄입니다. 그 살은 고깃덩어리가 아니고 영원한 구원을 절단내는 것입니다. 기둥되는 계명이라서 주일은 그렇습니다. 원망하는 죄가 큽니까 주일 어기는게 큽니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3계명을 어기는 죄가 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죄를 지어 놓고도 죄를 모르는 사람이 믿는 사람 중에서 꽉 찼습니다. 믿는 사람이 죄를 알고 나면 한 순간도 고개들지 못합니다. 믿는 사람은 온유함이 없지 않은가. 앞으로를 죄를 안 짓는 만큼 온유의 첫째 조건은 만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어떤 면으로도. 그래서 나를 기준으로 내가 관계 맺은 사람이 10명이 있습니다. 아홉명에 대에서는 죄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 명에 대해서는 죄가 없습니다. 그러면 아홉명에 대해서는 만날 때마다 캥깁니다. 그런데 한 명에서는 너한테 만큼은 죄가 없다. 그렇습니다. 이 면으로 부족한데 이 면은 죄가 없다. 죄가 없는 만큼 온유는 생기게 되는 겁니다. 이삭은 그럴 때 죄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삭은 죄를 찾아보지 못합니다. 죄가 없어야합니다. 몰랐다가 알면 온유가 깨집니다. 참된 온유가 아닙니다.
두 번째는 나로써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하는 거 연구하는 거 기도하는 거 충성하는 거 어떤 일이던지 사물 관계든 그 일을 해결할 때 자기로써 해결할 수 있는 건 다 해야합니다. 첫째는 죄가 없어야하고 두 번째는 많이 생각하고 많이 연구해야합니다. 넓고 깊게 세밀하게. 그래서 뭐든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하나 하나 그래서 신앙 걸음은 토끼걸음이 아니고 소처럼 걸어가는 겁니다. 정확하게 가는 겁니다. 세 번째는 그리고 난 다음에 그때부터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맡겨두면 됩니다. 내가 죄가 없고 할 거 다하고. 사람에게는 별별 일이 다 있는데 평생을 통해서 고난의 바다라고 합니다. 말 한 마디에 가슴이 철렁합니다. 오늘 말 한마디 듣고 가슴 철렁했다가 다음에 되니까 웃었다가 철렁했다가. 사건 하나 하나에 그때마다 휘둘려 피동되면 사람이 못하는 짓입니다. 그래서 첫째는 어떤 경우라도 죄를 짓지 않고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계명어기지 말고 모든 면에 있어서 전부 다입니다. 그래서 이런 게 있습니다. 죄를 많이 짓던 사람이 현재를 가지고 어제까지 죄를 지었으면 오늘 중단하고 이게 길어질수록 온유함이 점점 커지게 되는 겁니다. 갈수록 자기 속에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의 역사로 담대함의 배짱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뭘 해야할까 뭘 할 수 있을까 따져보는 거지요. 이 두가지 하고 난 다음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떡이 되든 맡겨놓는 겁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나의 예상대로 괴로우면 믿음이 아닌 겁니다. 이 두가지만 제대로 됐으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시는 게 믿음이 이 세가지가 바로 되었을 때 온유함이 되어집니다. 이삭에게 하나님이 그랄 집안에게 살아라고 합니다. 아버지때부터 우물을 팠는데 뺏어갑니다. 또 팠는데 또 뺏어갔습니다. 줬습니다. 이 지역의 우물은 집 짓는 것과 같습니다. 대도시에서 땅 한 평은 한 뼘까지 목숨걸고 싸웁니다. 딱 반 평입니다. 그거 때문에 십수년을 하루 아침에 바꿔버리고 원수처럼 바뀌는 걸 봤습니다. 이런 겁니다. 이삭은 싸우지 않았습니다. 줘버렸지. 이게 무책임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찾은겁니다. 자기로써는. 이게 이삭의 신앙입니다. 온유한 신앙은 어떤 경우라도 죄를 가지고 온유함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로써 할 수 있는 걸 다 해야합니다. 세 번째는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두는 겁니다. 마음을 두면 온유는 생기지 않습니다. 어떻게 되든 맡겨두는겁니다. 마지막 세 번째를 맡겨야하기 때문에 앞에 두 개가 중요합니다. 내 죄가 있는가 이게 문제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 앞에 맡겨두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계산이 많아야하고 연구가 많아야하고 온유한 신앙입니다. 두 번째는 이삭이라는 사람은 흉년을 피해서 그랄로 왔습니다. 애굽으로 가는 그런 데입니다. 가나안 땅에 속한 땅입니다. 그때는 블레셋 사람의 땅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이고 아브라함 이삭도 받지 못한 땅이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면 좋은데 그랄 지방으로 살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기 살아라고 하니까 떠날 수가 없는 겁니다. 아담 하나님께서 뭘 하라고 하셨습니까. 그 그랄은 무엇입니까. 에덴 동산입니까. 거기서 잘 살아야하는데 쫓겨날 짓을 했습니다. 시대 시대마다 사람마다 주신 그랄, 자기 세상이 따로 있다는 말이지요. 요셉의 세상은 애굽이었습니다. 좋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요셉이 이삭처럼 사니까 요셉의 나라가 되어져버렸습니다. 출애굽 광야였습니다. 모세의 그랄이었습니다. 모르드게 에스더 이런 사람의 그랄은 바벨론이었습니다.
그 그랄은 이삭이 살기에 불편하고 불안한 곳이었습니다. 따뜻하고 안정된 곳이 아니었습니다. 믿는 사람의 처소가 이런 겁니다. 내 적성에 따라서 나의 유불리에 따라서 장사에 따라서 직장에 따라서 학군에 따라서 내 처소를 직장을 옮기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로 말하면 우리의 그랄입니다. 이삭은 바로 거기서 농사지었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100배나 얻었습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가서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도 종으로 잡혀가서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게 우리 세상이고 현실입니다. 21세기 세상은 굉장히 부유합니다. 5000년 세상에 이렇게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넘치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대마다 때마다 국제 정세가 이러니까 불안하기도 하니까 지금은 또 전쟁 위험도 없기도 합니다. 표면적으로 그렇습니다.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지만은. 이런 안정 속에 내면을 들여다보면 소돔 고모라 성처럼 엉망친창이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간 곳이 없고 사람이 하나님이 되어있고 사람이 전부라 그 말입니다. 인본주의라는 말이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람이 전부입니다. 사람이 주인인 곳에 내가 주인입니다. 역사가 이래도 혼자 사는 때가 많지 않았습니다. 1인 가구가 많은 적이 없었고 혼자 사는 사람이 많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게 그만큼 시대가 전부 자기 중심의 악한 시대가 되었다는 겁니다. 자기가 왕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못하는 것이 없는겁니다.
요즘 사람이 못하는 게 있습니까. 경제를 가지고 지금 세상을 가지고 엉망친창이 되어있습니다. 소돔 고모라 보다 훨씬 되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시대가 그러하고 우리 나라가 그렇고 우리 사는 주변이 그러합니다. 시대마다 다 어려운 시대는 있었습니다. 지금만 어려운 시대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역사로 볼 때 가장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살아라. 여기가 그랄입니다. 이런 세상이 그랄이면 이 속에 이삭의 100배 축복이 들어있는겁니다. 이삭이 그랬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현실을 세 가지로 불렸습니다. 그러면 이런 현실 속에 내가 내 몸이 가는 내 눈이 가고 내 귀가 듣고 내 피부가 느끼고 마음이 생겨지는 나라는 사람이 움직이는 그런 장소 그런 환경. 어디는 따뜻했다가 추웠다가 영하 7도까지 내려간답니다. 날씨가 변화무쌍하듯이 어제까지 좋았다가 오늘은 슬펐다가 언제 어떤 일을 만날지 모르는 겁니다. 그런 현실 속에 그게 바로 기쁜 현실은 그랄이고 슬픈 현실은 그랄이 아닙니가. 괴로운 현실은 그랄이 아닙니까. 아이가 말 잘 들으면 그랄이고 아닐 때는 아닙니까. 아이가 건강하면 그랄이고 아니면 아닙니까. 다 같은 현실인데. 어떤 현실을 주시든지 100배 축복이 있다는거지요.
그러기 때문에 이삭이 100배 축복 받은 거처럼 오만게 다 들어있습니다. 나와 관련된 영육의 전부의 현실이 다 들었습니다. 내 현실에 들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거기 천국도 있고 지옥도 있고 하나님과 마귀도 있고 영광 성공 실패 다 현실에 있습니다.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마귀에게 현실이 있으니 내가 붙든대로 하는 겁니다. 내가 실패를 붙들지 못하면 안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빼앗아가지를 못하는 겁니다. 다 들어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