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17-토새(현실에서 구별하고 생각하여 좁은문, 좁은길로)
정초연2021-07-17조회 264추천 28
찬송가 192장
본문말씀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문이라는 것은
열고 나가고 들어가는 출입입니다.
열고 들어가는 것인데
들어가면,안의 생활이 되고
새로운 세계, 일,활동, 계획 등의 출발이 문입니다.
길은 새로운 길이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목표를 향해 가는 것입니다.
문도 길도 출발하서 계속 가는 것입니다.
다른각도로 말해보면 길이라는 것은
좁은문,넓은문, 좁은 길, 넓은 길이 있으니까 항상 두길이다.
그런데 오직 한길을 택해서 갈수 밖에 없는 것이고 가야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고 나가고.
문이라는 것은 우리 생활에서 새롭게 하는 많은것이 있겠고 길은 두 길인데, 길은 다른말로 노선이라고 합니다.
좁은길, 넓은 길이라는 것은
“어떻게” 걸어갈 것인가 라는 말이 됩니다. 방법적인 것이 됩니다.
문이라는 것은 선택이니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어디로"도 해당이 될 것입니다.
쉽게? 좁게.
넓게? 편하게.
조금 고생스럽게.
어떻게?무엇을?
"선택"입니다.
선택은 문에 속한 것이고
택해서 걸어가는,진행하는 어떻게는 길에 속한것입니다.
우리 생활에서 많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문도, 길도 두 길이고
결국 그 중에 한 길입니다. 신앙의 노선입니다.
신앙 노선이란 것은 생활 전체적인 것이 해당됩니다.생활 전체는 선택이고 걸어가는 진행 과정이기 때문에.
사람을 선택할때 누구를 선택하느냐.
여러 사람중, 두 사람중 누구를?
무엇을 보느냐? (외모냐, 신앙이냐...)
직업선택에도 적성에 맞는것을 보느냐, 신앙생활에 시간을 보느냐 월급을 보느냐 기준이 있고
내가 살 집을 선택해도 교회 가까운 곳인지, 학교와 가까운지, 또는 직장이 기준인지 그 선택의 기준에 따라 선택합니다.
좁은 문이라는 것은 선택의 기준이 최종적으로 옳은 것.
하나님인지 사람인지,
천국인지 세상인지,
신앙생활인지 세상생활인지 이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피조물은 많고 하나님은 한분이고
세상은 넓어보이고, 천국은 안 보이고 좁은것이고.
이런 것이 다 선택의 기준입니다.
넓고 넓은 세상, 수 많은 종교 중 구원의 길을 하나 선택하는 것이 예수교.
예수교의 많은 교파중 어느 교파가 참된 예수교나를 택해서 장로교.칼빈주의를 택하는 것이고
그 속에서도 어느 것이 바르게 믿는 것인가? 옳은 것을 따져 찾아가다보니 기존 장로교 안에서는 없고 길이 생긴 것이"총공회” 입니다.
길이 없는데 길이 생긴것이고 이것이 개혁가들, 개척자들의 길입니다.
이미 난 길을 가면 편하고수월하지만 옳은길이 아니고 옳은 것을 찾고 찾아 가다보니,
없는 것이 아니고 발견을 못한 것인게
워낙 아무도 안가니까 풀과 덤불이 나 가려졌는데 덤불도 헤치고 가다보니 길이 생긴 것. 이것이 총공회 노선입니다
총공회는 백목사님 전에는 없던길인디 그러나 길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 ‘발견’ 되어진 것입니다.
총공회 노선. 이것이 좁은 길입니다.
우리 모든 생활에도 그런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걸어간 생활에서 어느것이 옳은 것인가.
옳은 것은 의, 해석하면 하나님의 뜻. 그것을 찾는 것이 좁은 문을 찾는 것이고
찾은 그 길을 어려워도, 손해봐도 고난 속에서도, 멸시를 받아도 욕을 먹어도 계속해서 걸어가는 것이 좁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찾기가 어려우니까 있던길 가면되지 하면 넓은길 가는 것이고 이미 있는 문이라도 옳은지 생각하며 가는 사람은 좁은 문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생각 없이 가는 사람은 넓은 문으로 가는 것이고.
좁은문, 넓은 문은 구별의 기본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택하고, 누구를 택해야 하느냐.
바울과 바나바는 함께 동행하다가 사람 선택에 있어 나뉩니다.바나바는 마가를,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가서 갈라졌는데 뒤에는 마가도 바울과 다시 여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어땠든,택함에 따라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문은 길의 출발점입니다.
선택의 기로가 좁은문이냐 넓은 문이냐.
믿는자는 현실생활에서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가 있습니다.
아이의 잘못을 지적 할 수도 있고 넘어 갈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은 듣기 싫어할 것이고 좁은 것이고, 힘든 것이고
그냥 넘어가는 것은 내가 편한데,
좁은문.넓은문 선택이고
어떻게 잘 말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길입니다.
현실생활에서 하나하나 따져봐야 합니다. 전부 우리 생활은 문이고 길입니다.
넓은 문은 편하게 쉽게, 사람 좋게, 두리뭉실하게, 좋은게 좋다 하고 넘어가는 것은 넓은 문,넓은 길입니다.
옳은 것을 생각하고 구원위해서 하는 것은 좁은 문입니다.
선택의 기준이 하나님, 천국, 자타 구원이면 좁은문 좁은 길이 되는 것이고
자기가 편하고 좋으면 넓은 문,넓은 길 입니다.
성경읽고 말씀을 듣고 전할때는복음은 현실생활과 연결되는 실제가 되어야 합니다.
좁은문, 넓은 문, 좁은길, 넓은 길로 실제 생활과 연결 시켜 늘 구별하고 생각하여 좁은 문로 들어가는 우리가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멸망으로 가는 길은 미혹의 길, 보기 좋고 아름답고 편리하고 좋아 보이니까 많은 사람이 가는데 사망길입니다.
알고도 가고 몰라서 가고.
좁은 길은 까다롭고 힘들고 재미도 없고 어렵고 하지만은 생명이 들어있습니다.
각자 현실에서 돌아보십니다.
본문말씀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문이라는 것은
열고 나가고 들어가는 출입입니다.
열고 들어가는 것인데
들어가면,안의 생활이 되고
새로운 세계, 일,활동, 계획 등의 출발이 문입니다.
길은 새로운 길이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목표를 향해 가는 것입니다.
문도 길도 출발하서 계속 가는 것입니다.
다른각도로 말해보면 길이라는 것은
좁은문,넓은문, 좁은 길, 넓은 길이 있으니까 항상 두길이다.
그런데 오직 한길을 택해서 갈수 밖에 없는 것이고 가야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고 나가고.
문이라는 것은 우리 생활에서 새롭게 하는 많은것이 있겠고 길은 두 길인데, 길은 다른말로 노선이라고 합니다.
좁은길, 넓은 길이라는 것은
“어떻게” 걸어갈 것인가 라는 말이 됩니다. 방법적인 것이 됩니다.
문이라는 것은 선택이니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어디로"도 해당이 될 것입니다.
쉽게? 좁게.
넓게? 편하게.
조금 고생스럽게.
어떻게?무엇을?
"선택"입니다.
선택은 문에 속한 것이고
택해서 걸어가는,진행하는 어떻게는 길에 속한것입니다.
우리 생활에서 많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문도, 길도 두 길이고
결국 그 중에 한 길입니다. 신앙의 노선입니다.
신앙 노선이란 것은 생활 전체적인 것이 해당됩니다.생활 전체는 선택이고 걸어가는 진행 과정이기 때문에.
사람을 선택할때 누구를 선택하느냐.
여러 사람중, 두 사람중 누구를?
무엇을 보느냐? (외모냐, 신앙이냐...)
직업선택에도 적성에 맞는것을 보느냐, 신앙생활에 시간을 보느냐 월급을 보느냐 기준이 있고
내가 살 집을 선택해도 교회 가까운 곳인지, 학교와 가까운지, 또는 직장이 기준인지 그 선택의 기준에 따라 선택합니다.
좁은 문이라는 것은 선택의 기준이 최종적으로 옳은 것.
하나님인지 사람인지,
천국인지 세상인지,
신앙생활인지 세상생활인지 이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피조물은 많고 하나님은 한분이고
세상은 넓어보이고, 천국은 안 보이고 좁은것이고.
이런 것이 다 선택의 기준입니다.
넓고 넓은 세상, 수 많은 종교 중 구원의 길을 하나 선택하는 것이 예수교.
예수교의 많은 교파중 어느 교파가 참된 예수교나를 택해서 장로교.칼빈주의를 택하는 것이고
그 속에서도 어느 것이 바르게 믿는 것인가? 옳은 것을 따져 찾아가다보니 기존 장로교 안에서는 없고 길이 생긴 것이"총공회” 입니다.
길이 없는데 길이 생긴것이고 이것이 개혁가들, 개척자들의 길입니다.
이미 난 길을 가면 편하고수월하지만 옳은길이 아니고 옳은 것을 찾고 찾아 가다보니,
없는 것이 아니고 발견을 못한 것인게
워낙 아무도 안가니까 풀과 덤불이 나 가려졌는데 덤불도 헤치고 가다보니 길이 생긴 것. 이것이 총공회 노선입니다
총공회는 백목사님 전에는 없던길인디 그러나 길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 ‘발견’ 되어진 것입니다.
총공회 노선. 이것이 좁은 길입니다.
우리 모든 생활에도 그런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걸어간 생활에서 어느것이 옳은 것인가.
옳은 것은 의, 해석하면 하나님의 뜻. 그것을 찾는 것이 좁은 문을 찾는 것이고
찾은 그 길을 어려워도, 손해봐도 고난 속에서도, 멸시를 받아도 욕을 먹어도 계속해서 걸어가는 것이 좁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찾기가 어려우니까 있던길 가면되지 하면 넓은길 가는 것이고 이미 있는 문이라도 옳은지 생각하며 가는 사람은 좁은 문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생각 없이 가는 사람은 넓은 문으로 가는 것이고.
좁은문, 넓은 문은 구별의 기본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택하고, 누구를 택해야 하느냐.
바울과 바나바는 함께 동행하다가 사람 선택에 있어 나뉩니다.바나바는 마가를,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가서 갈라졌는데 뒤에는 마가도 바울과 다시 여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어땠든,택함에 따라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문은 길의 출발점입니다.
선택의 기로가 좁은문이냐 넓은 문이냐.
믿는자는 현실생활에서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가 있습니다.
아이의 잘못을 지적 할 수도 있고 넘어 갈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은 듣기 싫어할 것이고 좁은 것이고, 힘든 것이고
그냥 넘어가는 것은 내가 편한데,
좁은문.넓은문 선택이고
어떻게 잘 말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길입니다.
현실생활에서 하나하나 따져봐야 합니다. 전부 우리 생활은 문이고 길입니다.
넓은 문은 편하게 쉽게, 사람 좋게, 두리뭉실하게, 좋은게 좋다 하고 넘어가는 것은 넓은 문,넓은 길입니다.
옳은 것을 생각하고 구원위해서 하는 것은 좁은 문입니다.
선택의 기준이 하나님, 천국, 자타 구원이면 좁은문 좁은 길이 되는 것이고
자기가 편하고 좋으면 넓은 문,넓은 길 입니다.
성경읽고 말씀을 듣고 전할때는복음은 현실생활과 연결되는 실제가 되어야 합니다.
좁은문, 넓은 문, 좁은길, 넓은 길로 실제 생활과 연결 시켜 늘 구별하고 생각하여 좁은 문로 들어가는 우리가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멸망으로 가는 길은 미혹의 길, 보기 좋고 아름답고 편리하고 좋아 보이니까 많은 사람이 가는데 사망길입니다.
알고도 가고 몰라서 가고.
좁은 길은 까다롭고 힘들고 재미도 없고 어렵고 하지만은 생명이 들어있습니다.
각자 현실에서 돌아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