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4일 주후
김동민2021-04-04조회 293추천 27
2021년 4월 4일 주일 오후
본문 : 요한복음 12장 24절
본문에 이 말을 잘 보면 기독교는 영세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연결시켜보면, 사람의 머리털 하나가 나고 빠지는 것이 전부 예정되어있습니다. 논리력이 부족한 그런 분들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천하 모든 사람의 머리카락 숫자를 알 수 있다. 라고 하고 계십니다. 오늘의 일반적인 과학이 100년 전에는 신비한 것입니다. 지금은 발견 후에 전부 다 일반화가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컴퓨터, 휴대폰의 원리를 잘 모르지만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원리를 아는 사람은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사람의 머리털 하나라도 소중한겁니다. 소탐대실이라고, 거기에 집중하면 안되겠지만 알고 있어야겠습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고 하던가요?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고, 그 모든 것은 이 세상을 자라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들로 영생의 천국준비를 하는겁니다.
누구든지 자기 부모를 버리지 못하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주님보다 부모님이 앞서 있으면 그것이 우상이 되어있습니다. 성경은 네 부모를 동경하라고합니다. 그런데 사후세계 부활의 세계에서 복되게하는 것이 더 큰 효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목숨, 특히 모든 목숨이 다 소중하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성도의 목숨들은.. 어떻게 보면 차별이지만 보배는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가게 되어있습니다.
자기 목숨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그것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잘 아껴야합니다. 동시에 함부로 몸을 쓰지 말아야합니다. 내 눈을 가지고 깨끗한 것만 보고 봐야할 것만 보고, 내 귀로 추잡한 것 듣지 않고 그렇게 우리를 만들어가야합니다.
대다수의 기독교에서 파생되지 않은 것은 이 세상에서 만들어진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세상에서 만들어진 종교가 아니라고 항상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교회는 세상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출발은 세상이 있기 전부터 있었던 것이 기독교이지요.
자존하신 하나님이 출발시키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세상의 종교이고, 속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세속적이라고 타락이라고 하지만 세상에 변화에 따라서 따라갈 수 밖에 없는겁니다.
부산에 큰 절 보면, 그런 절들은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은데 땅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싼데 도시에 있지요. 산속으로 옮겨 들어가야 정상입니다. 속세를 피해서 도를 닦아야합니다. 그런데 세상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안됩니다. 그런데 컴퓨터 휴대폰 그런 것 쓰면 안되지요. 그런데 전부 사용을 하고 있고, 이건 세상에 따라서 진화가 되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세상 중에서 내세를 준비하는 것이 기독교이고 세상을 이용하는 것 뿐입니다. 이는 성경을 가지고 깨닫고 교리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죽은 영이 다시 사는 것이 중생이고, 죽은 우리의 몸이 다시 사는 것도 부활로 말미암아.
주님의 부활은 하늘의 기쁨이지만 주님에게는 영원한 수치입니다.
높은 사람이 조금 낮아지는 것, 1등 된 사람이 2등 되는 것도 못 견딥니다. 그런데 꼴찌하는 사람이 중간되고, 2등이 되면 완전히 올라간 것이지요. 이것으로도 비유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간 되시는 것은 혈육의 몸이든, 부활의 몸이든 인성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은 수치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것이니까, 그러기 때문에 무한한 수치입니다.
이런 것도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도입니다.
예배 시간마다 조는 청년들, 부모님들에게 근심을 끼치는 그런 청년들에게 물어보면 예수님, 천국, 부활 다 믿습니다. 그런데 믿으면, 사람이 누구나 죽는 것은 알지요. 죽고 난 다음에 살아나는 것, 심판도 믿습니다. 우리는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되는 것이지요.
믿음을 가지고 주님 재림의 날과 심판의 날 이것을 믿고 현실을 살아가면, 항상 긴장 속에 살아나가야하는데 우리가 부족합니다. 그래도 기독교는 부활의 도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본문 : 요한복음 12장 24절
본문에 이 말을 잘 보면 기독교는 영세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연결시켜보면, 사람의 머리털 하나가 나고 빠지는 것이 전부 예정되어있습니다. 논리력이 부족한 그런 분들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천하 모든 사람의 머리카락 숫자를 알 수 있다. 라고 하고 계십니다. 오늘의 일반적인 과학이 100년 전에는 신비한 것입니다. 지금은 발견 후에 전부 다 일반화가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컴퓨터, 휴대폰의 원리를 잘 모르지만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원리를 아는 사람은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사람의 머리털 하나라도 소중한겁니다. 소탐대실이라고, 거기에 집중하면 안되겠지만 알고 있어야겠습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고 하던가요?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고, 그 모든 것은 이 세상을 자라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들로 영생의 천국준비를 하는겁니다.
누구든지 자기 부모를 버리지 못하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주님보다 부모님이 앞서 있으면 그것이 우상이 되어있습니다. 성경은 네 부모를 동경하라고합니다. 그런데 사후세계 부활의 세계에서 복되게하는 것이 더 큰 효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목숨, 특히 모든 목숨이 다 소중하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성도의 목숨들은.. 어떻게 보면 차별이지만 보배는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가게 되어있습니다.
자기 목숨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그것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잘 아껴야합니다. 동시에 함부로 몸을 쓰지 말아야합니다. 내 눈을 가지고 깨끗한 것만 보고 봐야할 것만 보고, 내 귀로 추잡한 것 듣지 않고 그렇게 우리를 만들어가야합니다.
대다수의 기독교에서 파생되지 않은 것은 이 세상에서 만들어진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세상에서 만들어진 종교가 아니라고 항상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교회는 세상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출발은 세상이 있기 전부터 있었던 것이 기독교이지요.
자존하신 하나님이 출발시키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세상의 종교이고, 속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세속적이라고 타락이라고 하지만 세상에 변화에 따라서 따라갈 수 밖에 없는겁니다.
부산에 큰 절 보면, 그런 절들은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은데 땅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싼데 도시에 있지요. 산속으로 옮겨 들어가야 정상입니다. 속세를 피해서 도를 닦아야합니다. 그런데 세상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안됩니다. 그런데 컴퓨터 휴대폰 그런 것 쓰면 안되지요. 그런데 전부 사용을 하고 있고, 이건 세상에 따라서 진화가 되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세상 중에서 내세를 준비하는 것이 기독교이고 세상을 이용하는 것 뿐입니다. 이는 성경을 가지고 깨닫고 교리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죽은 영이 다시 사는 것이 중생이고, 죽은 우리의 몸이 다시 사는 것도 부활로 말미암아.
주님의 부활은 하늘의 기쁨이지만 주님에게는 영원한 수치입니다.
높은 사람이 조금 낮아지는 것, 1등 된 사람이 2등 되는 것도 못 견딥니다. 그런데 꼴찌하는 사람이 중간되고, 2등이 되면 완전히 올라간 것이지요. 이것으로도 비유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간 되시는 것은 혈육의 몸이든, 부활의 몸이든 인성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은 수치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것이니까, 그러기 때문에 무한한 수치입니다.
이런 것도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도입니다.
예배 시간마다 조는 청년들, 부모님들에게 근심을 끼치는 그런 청년들에게 물어보면 예수님, 천국, 부활 다 믿습니다. 그런데 믿으면, 사람이 누구나 죽는 것은 알지요. 죽고 난 다음에 살아나는 것, 심판도 믿습니다. 우리는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되는 것이지요.
믿음을 가지고 주님 재림의 날과 심판의 날 이것을 믿고 현실을 살아가면, 항상 긴장 속에 살아나가야하는데 우리가 부족합니다. 그래도 기독교는 부활의 도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