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8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1-04-04조회 233추천 26
2021년 3월 28일 주일 오후
본문 : 전도서 11장 9절
성경이란 하나님이 기록되어있고 자체의 어떠하심이 기록되어있고 역사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찾아본 우리보다 신앙이 더 앞선 사람이 성경에 많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면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면,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합니다. 목적, 예택.
귀하고 귀한 것이 있습니다. 너무너무 값진 보배가 있는데, 그 보배가 무인도에 있다든지 깊은 산 속에 묻혀있으면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뭐든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담아놓으신 것을 사람들이 찾아냈을 뿐이지 별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발견되기 전까지는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습니다.
보배라는 것은 물질이든 원리이든 그렇습니다.
세계에도 세계적인 천재가 묻혀져있고, 신앙적인 사람이 묻혀져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드러나기 전까지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이 묻혀져있다는 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있고, 믿음의 가치는 하나님과 연결이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드러나면 가치가 오히려 떨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도 드러나면 마귀가 기를 쓰고 붙으려고 하기 때문에.
엘리아 시대 때 7천명이 있었듯이, 어느 나라 어느 지방 어느 구석에서 신앙을 지키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혼자 계시면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뭐든지 뜨거운 열덩어리나 불덩어리는 가까이가면 타버리는데, 하나님께는 가까이가면 생명이니까, 그런 분을 알아줄 존재가 아무도 없다면, 하나님은 의미가 없죠. 그래서 사람 없는 하나님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 없으면 외로워서 못 사신다. 아무 사람이 없다면 완전자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완전자를 알아줄, 영광을 돌릴 대상을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목적의 세계, 성경이 말씀하신대로 읽어서 드러내가지고, 앞선 종들이 깨달은 것을 읽어서 믿음을 키워서, 믿음의 정도만큼 점점 구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요소의 가치는 영 다음에 마음, 마음 다음에 몸인데 그래서 고깃덩어리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몸이 있어야 마음이 있습니다.
많이 낳을수록, 다산주의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대로 낳는 것은 복입니다.
어릴 때에는 자라가는 과정입니다. 청년일 때는 자라서 왕성하게 활동할 때고, 공부도하고 직업도 가지고 자녀 양육도하고 바쁩니다. 그래서 청년으로 살아야하니까, 연세가 많이 든 분들은 나는 청년일 때에 그렇게 살았는가, 돌아봐야합니다.
소년들은 말씀이 들리는, 들리기는 들리겠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모르겠지. 그런데 계속 들어놓으면 나중에 자라서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유성을 주셨습니다. 자유성을 주셨는데,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하느냐는각자 선택입니다.
기독교는 세상과 하나된 종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세상과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현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현실주의입니다. 그래서 철학적으로 들어가서 매우 복잡한데 그런 현실주의말고, 자기 장소; 학생이면 학교 생활. 가정 생활, 사회 생활, 경제 생활.
기독교인은 현실 생활을 잘못하면, 학교 생활을 잘못하면 구원이 잘못되어집니다. 믿음으로 열심히 학교 생활하는 것이 믿는 사람의 신앙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현실이니까.
안 믿는 아내가 믿는 남편하고 결혼했는데 그런데 안 믿는 아내가 같이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아내를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라. 그리고 어린 아내고 장성한 남편이면 어떻게 해야 내가 주님의 머리삼고 그렇게 될까. 그런 것은 가장 수준이 낮은 것입니다. 실력있는 남자들은 목소리 안 높입니다. 남편의 아내에게 남편 노릇을 못했으면, 자기 성화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월 속에서 저절로 가꾸어집니까, 노력을 해야 가꾸어지지요. 기능이라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고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것이 어디서 되는겁니까. 현실에서만.
그러니까 학생들의 학교 생활을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너희라 그랬으니까 너희 중에 빠진 예수믿는 사람 있습니까? 예수믿는 사람 전부 다입니다.
그래서 나만의 종으로 적국의 포로로 그 나라의 빛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현실을 살았습니다.
자유성이라는 것은 내가 비교하고, 내가 연구하고, 내가 생각해보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판단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드린 것은 죽어있으면 자는 자입니다. 잠을 잘 때는 자는데, 지나치게 많이 자면 옆에서 깨웁니다. 깨우는데 계속 자면 나중에는 정말로 죽습니다. 깨우면 일어나야합니다.
지금은 신앙의 잠을 조금 깨라는 말씀입니다. 몸에 있는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은 표현이 됩니다. 신앙을 깨서 힘있게 나가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본문 : 전도서 11장 9절
성경이란 하나님이 기록되어있고 자체의 어떠하심이 기록되어있고 역사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찾아본 우리보다 신앙이 더 앞선 사람이 성경에 많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면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면,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합니다. 목적, 예택.
귀하고 귀한 것이 있습니다. 너무너무 값진 보배가 있는데, 그 보배가 무인도에 있다든지 깊은 산 속에 묻혀있으면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뭐든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담아놓으신 것을 사람들이 찾아냈을 뿐이지 별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발견되기 전까지는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습니다.
보배라는 것은 물질이든 원리이든 그렇습니다.
세계에도 세계적인 천재가 묻혀져있고, 신앙적인 사람이 묻혀져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드러나기 전까지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이 묻혀져있다는 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있고, 믿음의 가치는 하나님과 연결이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드러나면 가치가 오히려 떨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도 드러나면 마귀가 기를 쓰고 붙으려고 하기 때문에.
엘리아 시대 때 7천명이 있었듯이, 어느 나라 어느 지방 어느 구석에서 신앙을 지키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혼자 계시면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뭐든지 뜨거운 열덩어리나 불덩어리는 가까이가면 타버리는데, 하나님께는 가까이가면 생명이니까, 그런 분을 알아줄 존재가 아무도 없다면, 하나님은 의미가 없죠. 그래서 사람 없는 하나님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 없으면 외로워서 못 사신다. 아무 사람이 없다면 완전자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완전자를 알아줄, 영광을 돌릴 대상을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목적의 세계, 성경이 말씀하신대로 읽어서 드러내가지고, 앞선 종들이 깨달은 것을 읽어서 믿음을 키워서, 믿음의 정도만큼 점점 구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요소의 가치는 영 다음에 마음, 마음 다음에 몸인데 그래서 고깃덩어리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몸이 있어야 마음이 있습니다.
많이 낳을수록, 다산주의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대로 낳는 것은 복입니다.
어릴 때에는 자라가는 과정입니다. 청년일 때는 자라서 왕성하게 활동할 때고, 공부도하고 직업도 가지고 자녀 양육도하고 바쁩니다. 그래서 청년으로 살아야하니까, 연세가 많이 든 분들은 나는 청년일 때에 그렇게 살았는가, 돌아봐야합니다.
소년들은 말씀이 들리는, 들리기는 들리겠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모르겠지. 그런데 계속 들어놓으면 나중에 자라서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유성을 주셨습니다. 자유성을 주셨는데,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하느냐는각자 선택입니다.
기독교는 세상과 하나된 종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세상과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현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현실주의입니다. 그래서 철학적으로 들어가서 매우 복잡한데 그런 현실주의말고, 자기 장소; 학생이면 학교 생활. 가정 생활, 사회 생활, 경제 생활.
기독교인은 현실 생활을 잘못하면, 학교 생활을 잘못하면 구원이 잘못되어집니다. 믿음으로 열심히 학교 생활하는 것이 믿는 사람의 신앙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현실이니까.
안 믿는 아내가 믿는 남편하고 결혼했는데 그런데 안 믿는 아내가 같이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아내를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라. 그리고 어린 아내고 장성한 남편이면 어떻게 해야 내가 주님의 머리삼고 그렇게 될까. 그런 것은 가장 수준이 낮은 것입니다. 실력있는 남자들은 목소리 안 높입니다. 남편의 아내에게 남편 노릇을 못했으면, 자기 성화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월 속에서 저절로 가꾸어집니까, 노력을 해야 가꾸어지지요. 기능이라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고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것이 어디서 되는겁니까. 현실에서만.
그러니까 학생들의 학교 생활을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너희라 그랬으니까 너희 중에 빠진 예수믿는 사람 있습니까? 예수믿는 사람 전부 다입니다.
그래서 나만의 종으로 적국의 포로로 그 나라의 빛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현실을 살았습니다.
자유성이라는 것은 내가 비교하고, 내가 연구하고, 내가 생각해보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판단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드린 것은 죽어있으면 자는 자입니다. 잠을 잘 때는 자는데, 지나치게 많이 자면 옆에서 깨웁니다. 깨우는데 계속 자면 나중에는 정말로 죽습니다. 깨우면 일어나야합니다.
지금은 신앙의 잠을 조금 깨라는 말씀입니다. 몸에 있는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은 표현이 됩니다. 신앙을 깨서 힘있게 나가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