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re]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해석의 2가지(수정)
김상수2010-04-21조회 613추천 125
제 질문에 대한 윤영삼 선생님의 설명 전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았더니(-아직 공부중-)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가상칠언(架上七言-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의 7말씀) 중 하나입니다.
이에 대한 해석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해석과 정통적인 신학자의 해석 2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보는 짧은 사견이며, 확실한지는 잘 모릅니다)
1.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극한 고통 즉, 육체적고통과 영적인 고통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그 해석은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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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메시야의 극한 고통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예수님은 다윗의 예언대로 십자가 상에서 극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 고통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절규로 나타난 겁니다.
① 예수님의 고통 : 육신적, 정신적, 영적 고통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과정을 통해 당하신 고통이 얼마나 처절했을까 아무리 우리가 상상해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육신적 고통, 정신적 고통, 그리고 영적 고통 등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육체적 고통은 유대인들에게 체포되어서, 밤새 고문을 당하시고 고통을 당하신 것으로부터 다음 날 새벽 빌라도에게 끌려가 재판 받고 채찍질 당하신 것, 못 박히고, 창에 찔리고,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기까지 온 몸을 꿈틀거리며 고통당하신 것 등입니다.
흔히 예수님의 고통을 육체적인 것만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 이상으로 정신적 고통이 있었습니다. 정신적 고통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며 고통 받으신 것, 제자들에게 배반당하신 것, 원수들의 조롱, 흉악범의 사형 틀인 십자가에 달리는 수치, 따르던 자들과 이별하는 아픔,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두고 죽는 아픔 등입니다.
② 영적 고통 : 죄로 인한 단절
그런데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은 영적 고통이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 아버지와의 단절입니다. 인간과 단절되는 고립감도 큰 고통이지만, 그보다 하나님과 단절되는 영적 고립감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그런 영적 고통이 있었을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죄로 인한 단절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후 모든 고통을 침묵으로 참아내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대속의 제물이 된, 다시 말해서 죄 덩어리가 되신 순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신 겁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지만, 성경을 잘 살펴보면 조금이나마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어떤 관계이십니까? 요10:30 “나(=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삼위일체의 관계요 완전한 연합 관계입니다. 얼마나 친밀한 관계인지 막14:36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빠 아버지여 ... ” 예수님이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 부를 정도로 친밀한 관계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로부터 외면당하신 겁니다. 왜 그랬나요? 대신 담당하신 죄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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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우리와 가까운 정통주의 신학쪽의 해석은 자유주의 신약자들의 해석과는 조금 다릅니다.
극한 고통을 나타낸게 아닌 구약의 시편22말씀의 성취로 보는 듯합니다.
( 정통주의 ,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견해는 어디까지나 아직 인터넷으로 잠시 본 제가 판단한 내용이고,확실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래글은 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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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입니다. 시편 22:1에 나오는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자유 신학자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이라고 해석합니다. 만일 그렇게 해석하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죽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온 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각오하신 것입니다. 물론 죽음 직전에 인간으로서 고통스러워서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엘리야를 부른다고 생각하였다는 구절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광경에 대한 기록이 열두 제자가 아닌 다른 제자들이 광경을 보고, 기록된 것이라고 봅니다. 혹은 당시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보았던 사람들의 증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까이서 정확하게 들은 사람은 없습니다. 다음에 예수님께서 무슨 말을 하셨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다시 크게 소리 지르고 영혼이 떠나시다,”(마 27:50)라고 기록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연약한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엄청난 고통이 뒤따랐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유약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음의 고통을 두려워하여 죽었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위대한 인간의 죽음으로 보려는 시각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로 자처한 사람의 죽음으로 보려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장을 한다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십자가의 고통을 호소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소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약의 성취라고 말씀하신 관점에서 본다면 이 말씀은 시편의 메시아의 고난을 예언한 말씀을 이룬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시편 22편을 보면 그것이 예수님의 죽음의 장면과 매우 흡사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죽음 직전에도 자신을 구약에서 말하는 예언의 성취로 보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대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고통 때문에 자기 죽음의 의미를 번복하고 부인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럴 거라면 예수님께서 산헤드린에 붙잡혀 오기 전에 피하거나, 자신의 죄를 부인하는 비겁함을 보였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았을 때, 이런 주장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인간으로 메시아 의식을 가졌던 사람으로 보려고 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왜곡된 주장일 뿐입니다. 이단 중에 자신을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느냐?”라고 주장합니다. 마치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인간을 구원하는 데 실패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이단들은 세상 사람과 똑같은 관점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설은 인간의 모습으로 와서 인간이 겪는 고통의 자리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역설입니다.
예수님이 사흘간 무덤에 계시는 기간 우리도 무덤에서 소망이 없어 보이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구원의 소망은 바람에 날려가는 먼지와 같은 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못 박혔던 강도들처럼 자신도 구원을 못 하는 주제에 어떻게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느냐는 회의에 빠져 낙심한 시간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 하시기 전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아침의 태양의 뜨기 전까지 우리는 진실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부활의 햇빛이 비치기 전까지 우리는 고통에 신음하며 희망이 없는 자로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부활의 빛이 무덤을 서서히 비추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은 놀라운 진실에 직면할 시간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시체를 무덤에서 찾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부활이 성취되기 전까지 우리의 고통의 외침일 수 있습니다. 어떤 제자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가장 신실하게 따랐던 여인들조차 예수님을 보고 싶어서 그의 무덤을 찾아왔던 것이지 부활하신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가장 인간적인 죽음에서, 즉 죽음 앞에서 아주 연약한 모습을 보였던 사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논리는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증명되기 전까지 우리는 회의의 어둔 장막을 걷어낼 수 없습니다. 부활의 빛이 비쳐야 우리의 불신과 회의의 장막이 걷힐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부활의 빛이 비칠 때, 당신은 진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정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라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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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다음 해석은 다윗의 시편22편 말씀(예언)의 성취로 보는 견해입니다. 시편 22편을 펴서 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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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시야 예언 :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
다윗은 시편을 여럿 기록했는데, 그 중에 ‘메시야 시편’(Messianic Psalms)이란 쟝르를 통해 예수님에 관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메시야 시편은 다윗이 자기 개인의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장차 오실 메시야를 예언한 시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메시야는 히브리어이고 그리스도는 헬라어입니다. 둘 다 같은 뜻이죠. 문자적인 의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인데, 쉽게 생각하면 ‘구세주’입니다.
메시야 시편은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시편 22편입니다. 얼른 봐도 메시야 시편인 것을 알 수 있죠. 1절 첫머리를 보십시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 ” 많이 듣던 말씀이죠? 그렇습니다! 가상 칠언(架上七言 Seven Sayings on the Cross) 중의 하나입니다. 가상칠언은 십자가 상에서 하신 일곱 말씀으로, 1절 말씀은 그 중의 제4언과 일치합니다. 마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다윗은 여기서 1차적으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지만, 2차적으로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예언한 겁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하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다윗에게 영감을 주신 겁니다.
시편 22편을 잘 살펴보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 보면,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시22:1의 예언은 마27:46에서 성취되었습니다. 다윗은 B.C. 10세기 때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1천년 전입니다. 그 긴 시간의 간격을 넘어 그가 기록한 예언의 말씀이 정확하게 성취된 것입니다.
다른 구절들도 분석해 보면 예언과 성취가 얼마나 정확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발견하게 됩니다. 시22:6~8의 예언은 눅23:35에서 성취되었습니다. 6절~8절.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이 말씀을 눅23:35 말씀과 비교해 보십시오!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마치 옆에서 보고 스케치한 것처럼 정확합니다. 다음 몇 구절을 더 보면 정말 기가 막힙니다.
시22:15의 예언은 요19:28에서 성취됩니다. 시22: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 ” 요19:28 “그 후에 예수께서...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목이 말라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입니다. 온 몸에 수분이 마르고,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은 상태입니다.
시22:16의 예언은 요19:34에서 성취됩니다. 시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여기서 개들은 이방인을 가리키는데, 요19:34를 보십시오.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 ” 로마 군병들이 창으로 찌르는 장면입니다.
시22:18의 예언은 요19:24에서 성취됩니다. 시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요19:24 보면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천 년 전에 다윗이 기록한 내용이 하나도 아니고 구구절절 예수님에게서 정확하게 성취된 것입니다. 이런 예언과 성취의 과정을 보면, 성경이 정말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아울러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인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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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직접 시편 22편을 보면서 놀랍게 일치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9절-10절말씀도 예수님의 오심을 하나님이 미리예정하심을 알수 있습니다.
22절 부터는 억지해석인지 모르겠으나, 십자가에서의 그 말씀이 시편 22편 22절 이후 '찬송'예언의 성취로 볼수 있을 거 같습니다.
3. 백목사님의 견해는 정통주의 신학자의 견해보다 더 발전된 지난주 설교로 들었던 '찬송'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가 시편 22편 22절 이후 '찬송예언의 성취'로 본다면 백목사님의 해석이 정확하다고 볼수 있습니다
윤선생님이 제게 전했듯이 백목사님 해석이 참 놀랍다는 것입니다.
저도 백목사님께서 원어를 잘 모르시는 분으로 알고 있는데 하나님의 영감으로 이런 해석을 하셨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4. '십자가의 비밀' 알게되기로 한 자는 다 알게되고, 모르는 자는 영원히 모를 '비밀'이 맞는거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 예수님의 가상칠언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의구심을 나타내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못 믿겠다'고 하면서 말이죠.
저도 잘 이해가 잘 안되서 미루고 있던 것 중의 하나였는데,
불신자나 신자 중에서도 이런 내용을 잘 모르는 분들이 참 많은데 바른 구원의 도가 잘 전해 졌으면 합니다.
5. 원어적 자세한 추가해설 이 궁금한데 윤선생님을 포함한 다른 성도분들의 견해들 듣고 싶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았더니(-아직 공부중-)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가상칠언(架上七言-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의 7말씀) 중 하나입니다.
이에 대한 해석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해석과 정통적인 신학자의 해석 2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보는 짧은 사견이며, 확실한지는 잘 모릅니다)
1.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극한 고통 즉, 육체적고통과 영적인 고통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그 해석은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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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메시야의 극한 고통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예수님은 다윗의 예언대로 십자가 상에서 극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 고통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절규로 나타난 겁니다.
① 예수님의 고통 : 육신적, 정신적, 영적 고통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과정을 통해 당하신 고통이 얼마나 처절했을까 아무리 우리가 상상해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육신적 고통, 정신적 고통, 그리고 영적 고통 등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육체적 고통은 유대인들에게 체포되어서, 밤새 고문을 당하시고 고통을 당하신 것으로부터 다음 날 새벽 빌라도에게 끌려가 재판 받고 채찍질 당하신 것, 못 박히고, 창에 찔리고,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기까지 온 몸을 꿈틀거리며 고통당하신 것 등입니다.
흔히 예수님의 고통을 육체적인 것만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 이상으로 정신적 고통이 있었습니다. 정신적 고통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며 고통 받으신 것, 제자들에게 배반당하신 것, 원수들의 조롱, 흉악범의 사형 틀인 십자가에 달리는 수치, 따르던 자들과 이별하는 아픔,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두고 죽는 아픔 등입니다.
② 영적 고통 : 죄로 인한 단절
그런데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은 영적 고통이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 아버지와의 단절입니다. 인간과 단절되는 고립감도 큰 고통이지만, 그보다 하나님과 단절되는 영적 고립감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그런 영적 고통이 있었을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죄로 인한 단절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후 모든 고통을 침묵으로 참아내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대속의 제물이 된, 다시 말해서 죄 덩어리가 되신 순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신 겁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지만, 성경을 잘 살펴보면 조금이나마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어떤 관계이십니까? 요10:30 “나(=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삼위일체의 관계요 완전한 연합 관계입니다. 얼마나 친밀한 관계인지 막14:36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빠 아버지여 ... ” 예수님이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 부를 정도로 친밀한 관계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로부터 외면당하신 겁니다. 왜 그랬나요? 대신 담당하신 죄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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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우리와 가까운 정통주의 신학쪽의 해석은 자유주의 신약자들의 해석과는 조금 다릅니다.
극한 고통을 나타낸게 아닌 구약의 시편22말씀의 성취로 보는 듯합니다.
( 정통주의 ,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견해는 어디까지나 아직 인터넷으로 잠시 본 제가 판단한 내용이고,확실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래글은 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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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입니다. 시편 22:1에 나오는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자유 신학자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이라고 해석합니다. 만일 그렇게 해석하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죽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온 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각오하신 것입니다. 물론 죽음 직전에 인간으로서 고통스러워서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엘리야를 부른다고 생각하였다는 구절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광경에 대한 기록이 열두 제자가 아닌 다른 제자들이 광경을 보고, 기록된 것이라고 봅니다. 혹은 당시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보았던 사람들의 증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까이서 정확하게 들은 사람은 없습니다. 다음에 예수님께서 무슨 말을 하셨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다시 크게 소리 지르고 영혼이 떠나시다,”(마 27:50)라고 기록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연약한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엄청난 고통이 뒤따랐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유약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음의 고통을 두려워하여 죽었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위대한 인간의 죽음으로 보려는 시각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로 자처한 사람의 죽음으로 보려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장을 한다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십자가의 고통을 호소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소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약의 성취라고 말씀하신 관점에서 본다면 이 말씀은 시편의 메시아의 고난을 예언한 말씀을 이룬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시편 22편을 보면 그것이 예수님의 죽음의 장면과 매우 흡사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죽음 직전에도 자신을 구약에서 말하는 예언의 성취로 보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대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고통 때문에 자기 죽음의 의미를 번복하고 부인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럴 거라면 예수님께서 산헤드린에 붙잡혀 오기 전에 피하거나, 자신의 죄를 부인하는 비겁함을 보였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았을 때, 이런 주장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인간으로 메시아 의식을 가졌던 사람으로 보려고 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왜곡된 주장일 뿐입니다. 이단 중에 자신을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느냐?”라고 주장합니다. 마치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인간을 구원하는 데 실패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이단들은 세상 사람과 똑같은 관점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설은 인간의 모습으로 와서 인간이 겪는 고통의 자리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역설입니다.
예수님이 사흘간 무덤에 계시는 기간 우리도 무덤에서 소망이 없어 보이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구원의 소망은 바람에 날려가는 먼지와 같은 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못 박혔던 강도들처럼 자신도 구원을 못 하는 주제에 어떻게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느냐는 회의에 빠져 낙심한 시간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 하시기 전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아침의 태양의 뜨기 전까지 우리는 진실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부활의 햇빛이 비치기 전까지 우리는 고통에 신음하며 희망이 없는 자로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부활의 빛이 무덤을 서서히 비추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은 놀라운 진실에 직면할 시간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시체를 무덤에서 찾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부활이 성취되기 전까지 우리의 고통의 외침일 수 있습니다. 어떤 제자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가장 신실하게 따랐던 여인들조차 예수님을 보고 싶어서 그의 무덤을 찾아왔던 것이지 부활하신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가장 인간적인 죽음에서, 즉 죽음 앞에서 아주 연약한 모습을 보였던 사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논리는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증명되기 전까지 우리는 회의의 어둔 장막을 걷어낼 수 없습니다. 부활의 빛이 비쳐야 우리의 불신과 회의의 장막이 걷힐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부활의 빛이 비칠 때, 당신은 진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정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라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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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다음 해석은 다윗의 시편22편 말씀(예언)의 성취로 보는 견해입니다. 시편 22편을 펴서 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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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시야 예언 :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
다윗은 시편을 여럿 기록했는데, 그 중에 ‘메시야 시편’(Messianic Psalms)이란 쟝르를 통해 예수님에 관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메시야 시편은 다윗이 자기 개인의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장차 오실 메시야를 예언한 시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메시야는 히브리어이고 그리스도는 헬라어입니다. 둘 다 같은 뜻이죠. 문자적인 의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인데, 쉽게 생각하면 ‘구세주’입니다.
메시야 시편은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시편 22편입니다. 얼른 봐도 메시야 시편인 것을 알 수 있죠. 1절 첫머리를 보십시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 ” 많이 듣던 말씀이죠? 그렇습니다! 가상 칠언(架上七言 Seven Sayings on the Cross) 중의 하나입니다. 가상칠언은 십자가 상에서 하신 일곱 말씀으로, 1절 말씀은 그 중의 제4언과 일치합니다. 마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다윗은 여기서 1차적으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지만, 2차적으로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예언한 겁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하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다윗에게 영감을 주신 겁니다.
시편 22편을 잘 살펴보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 보면,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시22:1의 예언은 마27:46에서 성취되었습니다. 다윗은 B.C. 10세기 때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1천년 전입니다. 그 긴 시간의 간격을 넘어 그가 기록한 예언의 말씀이 정확하게 성취된 것입니다.
다른 구절들도 분석해 보면 예언과 성취가 얼마나 정확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발견하게 됩니다. 시22:6~8의 예언은 눅23:35에서 성취되었습니다. 6절~8절.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이 말씀을 눅23:35 말씀과 비교해 보십시오!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마치 옆에서 보고 스케치한 것처럼 정확합니다. 다음 몇 구절을 더 보면 정말 기가 막힙니다.
시22:15의 예언은 요19:28에서 성취됩니다. 시22: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 ” 요19:28 “그 후에 예수께서...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목이 말라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입니다. 온 몸에 수분이 마르고,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은 상태입니다.
시22:16의 예언은 요19:34에서 성취됩니다. 시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여기서 개들은 이방인을 가리키는데, 요19:34를 보십시오.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 ” 로마 군병들이 창으로 찌르는 장면입니다.
시22:18의 예언은 요19:24에서 성취됩니다. 시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요19:24 보면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천 년 전에 다윗이 기록한 내용이 하나도 아니고 구구절절 예수님에게서 정확하게 성취된 것입니다. 이런 예언과 성취의 과정을 보면, 성경이 정말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아울러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인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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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직접 시편 22편을 보면서 놀랍게 일치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9절-10절말씀도 예수님의 오심을 하나님이 미리예정하심을 알수 있습니다.
22절 부터는 억지해석인지 모르겠으나, 십자가에서의 그 말씀이 시편 22편 22절 이후 '찬송'예언의 성취로 볼수 있을 거 같습니다.
3. 백목사님의 견해는 정통주의 신학자의 견해보다 더 발전된 지난주 설교로 들었던 '찬송'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가 시편 22편 22절 이후 '찬송예언의 성취'로 본다면 백목사님의 해석이 정확하다고 볼수 있습니다
윤선생님이 제게 전했듯이 백목사님 해석이 참 놀랍다는 것입니다.
저도 백목사님께서 원어를 잘 모르시는 분으로 알고 있는데 하나님의 영감으로 이런 해석을 하셨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4. '십자가의 비밀' 알게되기로 한 자는 다 알게되고, 모르는 자는 영원히 모를 '비밀'이 맞는거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 예수님의 가상칠언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의구심을 나타내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못 믿겠다'고 하면서 말이죠.
저도 잘 이해가 잘 안되서 미루고 있던 것 중의 하나였는데,
불신자나 신자 중에서도 이런 내용을 잘 모르는 분들이 참 많은데 바른 구원의 도가 잘 전해 졌으면 합니다.
5. 원어적 자세한 추가해설 이 궁금한데 윤선생님을 포함한 다른 성도분들의 견해들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