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십자가의 비밀, 십자가의 쾌락
사회자2010-04-19조회 542추천 105
간단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자세하게 설명하려면 분량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 외침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하셨고, 이 말씀은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헬라어를 잘 모르지만 위의 내용이 원어인 헬라어를 번역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위의 내용에서 질문하신 중점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부분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위의 내용을 일반적인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너무 고통스러워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이거나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너무 고통스러워 하나님을 원망하는 부르짖음으로 생각할 것 같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부르짖음이었다면
원망은 죄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죄를 범한 것이 됩니다.
그러면 그 순간 예수님은 당신의 죄로 죽어야 하고 우리를 대속할 대속주의 자격이 상실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대속이 완성된 이상 예수님이 원망했다고 하는 해석은 확실히 틀린 해석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이 너무 고통스러워 부르짖었다면
예수님의 대속은 강제가 됩니다. 강제로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이 역시 대속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완성되었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셨기 때문에 이 해석 역시 틀린 해석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부르짖은 외침이 감사에 넘친 찬송이라면
인간을 사랑하는 지극한 하나님의 사랑이
사랑의 필연적인 역사로 인간을 멸망에서 건지시려고
멸망의 원인되는 죄의 형벌을 대신하는 고난을 자취하셨으니
당신의 고난으로 인간을 영원히 구원하는 사랑의 힘이 우주적인 고난을 능가하였고
전부를 기울이신 예수님의 인성에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했으므로 그 모든 고난을 능가한 것이며
당신의 희생으로 구원받는 인생들을 생각할 때 구주로서의 쾌락은 형언할 수 없는 지극한 것이며
당신의 대속으로 구원받는 인생들의 영원한 감사의 찬송을 생각할 때 그 쾌락은 형언할 수 없는 지극한 것입니다.
이렇게 복되고 귀한 대속주의 위치를 주시고 감당케 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십자가 상에서 마지막에 감사에 넘치는 찬송의 외침이 터져 나온 것이며
이렇게 귀한 것이며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흐르는 땀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간절히 기도하셨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서야 이제는 되었다 하셨고
마지막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 하고 숨을 거두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의 외침이
지극한 찬송이라는 이 말씀이 이해가 되면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을 진정 깨닫게 될 것이고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을 진정 참으로 깨닫고 나면
'날 구원하신 예수를 영원히 찬송하겠네' 찬송을
평생토록 영원토록 넘치는 감사로 부르게 될 것이며
자기에게 메워진 십자가를 원하는 단 마음으로 지고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 외침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하셨고, 이 말씀은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헬라어를 잘 모르지만 위의 내용이 원어인 헬라어를 번역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위의 내용에서 질문하신 중점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부분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위의 내용을 일반적인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너무 고통스러워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이거나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너무 고통스러워 하나님을 원망하는 부르짖음으로 생각할 것 같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부르짖음이었다면
원망은 죄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죄를 범한 것이 됩니다.
그러면 그 순간 예수님은 당신의 죄로 죽어야 하고 우리를 대속할 대속주의 자격이 상실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대속이 완성된 이상 예수님이 원망했다고 하는 해석은 확실히 틀린 해석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이 너무 고통스러워 부르짖었다면
예수님의 대속은 강제가 됩니다. 강제로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이 역시 대속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완성되었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셨기 때문에 이 해석 역시 틀린 해석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부르짖은 외침이 감사에 넘친 찬송이라면
인간을 사랑하는 지극한 하나님의 사랑이
사랑의 필연적인 역사로 인간을 멸망에서 건지시려고
멸망의 원인되는 죄의 형벌을 대신하는 고난을 자취하셨으니
당신의 고난으로 인간을 영원히 구원하는 사랑의 힘이 우주적인 고난을 능가하였고
전부를 기울이신 예수님의 인성에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했으므로 그 모든 고난을 능가한 것이며
당신의 희생으로 구원받는 인생들을 생각할 때 구주로서의 쾌락은 형언할 수 없는 지극한 것이며
당신의 대속으로 구원받는 인생들의 영원한 감사의 찬송을 생각할 때 그 쾌락은 형언할 수 없는 지극한 것입니다.
이렇게 복되고 귀한 대속주의 위치를 주시고 감당케 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십자가 상에서 마지막에 감사에 넘치는 찬송의 외침이 터져 나온 것이며
이렇게 귀한 것이며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흐르는 땀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간절히 기도하셨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서야 이제는 되었다 하셨고
마지막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 하고 숨을 거두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의 외침이
지극한 찬송이라는 이 말씀이 이해가 되면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을 진정 깨닫게 될 것이고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을 진정 참으로 깨닫고 나면
'날 구원하신 예수를 영원히 찬송하겠네' 찬송을
평생토록 영원토록 넘치는 감사로 부르게 될 것이며
자기에게 메워진 십자가를 원하는 단 마음으로 지고 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