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01-수밤 (예수님의 고난)
이아림2025-01-01조회 116추천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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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1. 01. 수밤
본문: 이사야 53장 1절 – 3절 말씀
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공과 말씀)
제목 : 예수님의 고난
◎ 예수님의 고난을 알아야 하는 이유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우리 때문이며,
우리 때문이라 함은 우리 죄 때문에 당하신 고난입니다.
우리 조상 아담이 전 인류를 대표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를 지었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우리들이 태어나 지은 죄들,
모든 죄들이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우리 평생 지을 죄를 미리 담당하셔서
지옥 갈 죄를 없이 해주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이로 인해 지옥에 가지 않지만
건설구원적으로 천국에 가되
천국에서 무능한 자가 됩니다.
알아야 형벌의 무서움을 알고
그 분을 아는 만큼 죄송함도 감사함도 나오는 것입니다.
아는 만큼 바로 상대하게 되고
그래야 바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믿음도, 예수님의 고난도,
성탄도 성찬도 마찬가지입니다.
◎ 예수님 고난을 두고 조심 할 것
1) 고행주의를 벗어나야 합니다.
고행해야 구원이 된다. 천국에 간다.
하는 것이 고행주의입니다.
말씀에 어긋나는 고생은 헛일입니다.
구원이 없고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말씀을 바로 알려면
① 성경을 많이 읽고
② 예배시간 말씀 잘 듣고
들은 것을 잘 생각해 보고 복습해야 합니다.
2) 감성주의를 초월해야 합니다.
감성은 느끼는 느낌을 말합니다.
감성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은 아니나
감성은 이성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성은 이치를 따지는 것(=지성)을 말합니다.
그 뒤에 감성이 있어서 따라가야 합니다.
반대가 되면 그때 문제가 생깁니다.
감성주의는 예수님 고난을 두고
자기 주관, 자기 정도에서 포장을 합니다.
그래서 삐뚤어지고 탈선하는 겁니다.
성경을 근거해 다 살펴도
예수님의 고난은 우주적인 고난이기 때문에
예수님 고난을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 주님의 고난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본문 2절 말씀)
연한 순은 가냘픈, 힘없는 새싹을 말합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본문 3절 말씀)
그때 주님은 사람 되어 오셨고,
오늘의 주님은 말씀으로, 옳은 신앙으로 오십니다.
그때 주님을 연한 순,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로 보고
사람들이 다 도망갔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지키는 것보다
세상에서 잘되는 것을 따라갑니다.
옳은 길은 좁은 길이니
다 도망가고 넒은 길로 갑니다.
주님 닮은 교회, 주님 닮은 노선을 따라가면
세상은 연한 순,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로 봅니다.
우리는 담대함을 가지고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멸시를 받고 고난을 받으셨지만
그 멸시 받은 멸시의 먼지만큼도 피동 되지 않고
초월했습니다.
초월은 단계를 밟아 쌓아 넘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단계를 밟지 않고 끊어져 올라가는 것은 초절이라 합니다.
우리는 초절이 아닌 초월을 해야합니다.
◎ 고난의 단계
1) 가시적 고난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수준에서 아는 고난으로 껍데기입니다.
2) 우리 모든 죄를 대신한 대속의 고난
모든 택자의 죄를 모두 감당한 고난.
이것은 우주적인 고난이며 성령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3) 모든 것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십니다.
조사하시는 분도, 형벌을 내리시는 분도
다 하나님이십니다.
형벌을 누가 내리느냐에 따라 그 강도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조사하면 빠져나갈 수 없고
그 분이 형벌을 내리시면 감당이 안 됩니다.
주님의 고난이 그런 고난입니다.
◎ 성찬식
성찬식은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에 동참하는 겁니다.
대게 바른 고난 끝에는 기쁨이 옵니다.
스스로 고난을 만들어 낙심하고
스스로 주저앉으면 그 고난은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의 고난 끝엔 반드시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의 고난 끝에도 부활의 소망이 있었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