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6일 금밤
김동민2024-07-26조회 151추천 26
2024년 7월 26일 금밤
찬송: 90장, 89장
본문: 마태복음 7장 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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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89장을 잠깐 펴보시겠습니까. 후렴 전에 반석 위 셈일세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집을 짓는 찬송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세운다는 뜻입니다. 세움일세 줄인말입니다. 찬송가는 가사가 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에 줄인말을 많이 씁니다. 찬송가는 그런 게 많지 않으나 한자가 더러 나옵니다. 어제 새벽에 잠언 27장 8절에 본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복음 자리를 떠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암송도 했고 외우고 있는데 듣고 나면은 남게 되고 읽을 때마다 생각이 나게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의 본향은 고향보다 강한 표현이 본향이다. 내가 태어난 곳, 우리의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 오늘을 살되 내일로 오늘을 사는 게 생활입니다. 아이들은 모를 거고 중년 즈음 넘어가면 오늘이 가장 젊은 날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오늘을 다하면 그만큼 늙습니다. 작년 8월 집회 때 목사님께서 적어주셔서 광고한 적이 있는데 작년에 보던 분이 안 보이는 분이 있고 올해 보이는 분들이 내년에 안 보이는 분이 있습니다. 하늘나라 가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더러더러 있을 겁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세상을 살 때는 오늘을 살 때 오늘을 살지 않고 사는겁니다. 세상을 살 때 세상으로 살지 않고 하늘로 사는 겁니다. 오늘 말씀과 연결이 되는데 주님이 사는 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이 반석위에 집이 되는 겁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24절 끝에 보니까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같으니리. 미래를 아는 걸 지혜라고 합니다. 현재를 기점으로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알고 미래를 살아가는 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뭔가 판단하기 전에 현재 미리 계산하고 걸어가는 걸 알고 가는 걸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정의가 그렇고 미래를 아는 것 알 수가 없습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니라. 모르는 겁니다. 어떻게 사람이 지혜로울 수 있습니까. 사람의 지혜라는 것은 인간 수준이 지혜로워서 미래를 보고 잘 아는 웨렌 버핏입니까. 주식 투자 잘하는 사람. 그렇게 하는 건 대개 통계입니다. 통계는 미래를 계산하는 겁니다. 과거를 통계내서 일기예보도 통계입니다. 통계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지혜가 아닌 거지요. 예측이고 짐작이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 지혜는 예측 예상 짐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과거를 축척해서 통계를 가지고 미래를 계산해 보는겁니다. 성경 말씀에 지혜라는 것은 미래를 아는 건데 반석에서 지은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나타난 겁니다. 미래를 알고하는게 아니고 결과적으로 나타난 지혜입니다. 순종하는 것이 반석 위에 지은 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래를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복입니다. 명석한 두뇌를 가져도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전부 모래 위에 지은 사람같으니까 어떤 사람이냐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말이지요. 멀리보면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게 지혜입니다. 그게 지혜고 미래를 아는 것이고 그게 축적이 되면 경험치가 되어서 앞날 내다보는 혜안이 생기고 미래를 보는 지혜가 생깁니다.
24절로 갑니다. 그러므로 앞의 말씀이 연결되는데 4장에서 시험을 받습니다. 계속해서 많은 말씀을 7장까지 가르칩니다. 5장에서부터 7장 23절까지 계속해서 많은 가르침을 가르칩니다. 8장부터는 다른 내용이라기 보다는 전개되는 사건들하고 같이 섞이면서 교훈이 나오고 5장부터 7장까지는 설교가 나오는 겁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5장부터 7장까지 말씀이고 넓히면 성경 말씀 전부고 자기 말씀을 말하는 겁니다. 이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듣고 행하는 것을 줄이면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정의는 세 가지입니다. 알고 인정하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알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들어야하지요. 듣는 것 속에 아는 게 있는 겁니다.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알았습니다. 안 들으면 읽었으니까 알았습니다. 천하없는 천재도 뱃속에서 알고 나온 사람 없습니다. 나서 태어나서 듣는 게 먼저이지요. 영어공부도 듣는 게 먼저이지요. 듣고 말하고 읽고 쓰고 그렇습니까.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그렇지요. 언어라는 것은 들어야 말합니다. 안 들으면 말 못합니다. 말 못하는 사람은 청각장애도 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듣고 누구든지 예외가 없으면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믿음이라는 것은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건데 듣는 건 아는 겁니다. 믿음의 출발은 듣는데서부터 아는데서부터 출발합니다. 모르는 인정은 없고 모르는 실행도 없는 겁니다. 믿음의 출발은 지식입니다. 준비 과정은 읽고 알았으면 내 마음에 새겨서 믿어야합니다. 인정해서 받아들여야합니다. 자기 주관을 배제해야합니다. 자기 주관이라는 그 속에는 세상이 다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사람의 주관이라는 것은 객관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 주관입니다.
주관과 객관, 주인 주자입니다. 객관은 객실 여객 승객 손님을 객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모든 주관은 객관에 의해서 객관으로 말미암아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어떤 부모 밑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집니다. 환경에서 달라지냐에 따라 인격이 형성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에서 자라면 한국에서 자랍니다. 미국에서 자라면 미국사람이 됩니다. 늑대한테 자라면 모글리한테 됩니다. 그게 사람의 인격이라는 주관에서 형성된다는 증거입니다. 환경에 적응한다. 환경의 적응을 적자 생존이다. 이걸 전부 진화론 주장하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습니다.
첫째가 듣는데서 읽는데서 출발합니다. 듣지도 못한 일을 어떻게 믿으리요 알리요. 전하는 건 중요한 겁니다. 선지자가 그만큼 중요한 겁니다. 들었습니다. 읽었습니다. 준비는 뭡니까. 아는 겁니다. 아는 말씀을 그러하냐고 내 주관이 받아들여야하는데 그렇게 받아들이려고 하면 다 배제해야하는데 어떻게 형성되었다고요.
대학교 들어가기 전후가 다르지요. 그게 보면서 이런 곳이구나 내가 아는 교수는 이런 분이구나. 보니까 들으니까 내 주관이 생겨지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관을 알아야합니다. 세상에 의해서 생겨지기 때문에 나를 부인하는 것은 세상을 부인하는 겁니다. 선생님 말씀이 들어와있고 온갖 문화가 들어와있고 내 시청각을 통해서 나의 주관으로 자리잡고 있는 겁니다. 배치가 되기 때문에 나를 부인하지 않으면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실행인데 실행은 완성입니다. 믿음의 과정은 인정이고 실행하면 완성됩니다
24절 말씀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본문 말씀이고 성경말씀인데 이 말씀이 행할 때는 각자 사람에게 따로 적용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5계명이 6계명이 오늘은 이 말씀이 내일은 저 말씀이. 장소에 따라 날짜에 따라서 내가 지킬 말씀이기 때문에 나의 이 말이라고 합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듣고 알고 말이 행하는자. 이게 믿음의 완성입니다. 그리하면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사람이 된다. 반석이라는 것은 넓은 바위이고 의미는 기초라고 했습니다. 세울 때 받치는 거라고 했습니다. 땅이든 기둥의 기초든 굉장히 튼튼하게 단단하게 전체를 받쳐주는 게 기초입니다. 반석은 기초, 하나님을 말하는데 기초 터 뿌리 근본 또는 원본 단으로 표현했는데 전체는 다 같은 맥락으로 하는 게 있습니다. 하나님 위에 건설되는 거다. 하나님을 터로 삼는거다. 뻗어나오는거다. 원동이 되어서 그분으로 인해서 움직이는 거다. 이게 반석 위라는 뜻입니다.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며 배경삼고 백을 삼으며 뻗어나오는 거니까 그분으로 인하는 것이고 원동되는 거니까 그분 따라서 움직이는 겁니다. 이걸 반석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예외가 없습니다.
여기는 남녀노소 빈부귀천를 막론하고 목사든지 장로든지 주일학생이든지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주님 말씀 그때 그때 그 시간 그 시간을 알고 그대로 준행하는 사람은 그게 바로 주님을 터로 삼는 것이다. 건설하는 것이다. 기초로 삼는 것이다. 주님을 뿌리로 삼았고 원동을 삼는 것이다. 우리들이 움직일 때 이 행동은 이 생활은 모래 위 집이냐 반석 위 집이냐. 주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지은 집이 되는 거다.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에서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어찌되느냐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비가 내리면 좋은 겁니까 나쁜 겁니까. 빈들에 마른 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비내리는 건 좋은 겁니다. 좋은 것은 평안한 거지요. 경제가 넉넉하고 마음이 넉넉하고 비내리는 겁니다. 단비. 농사 지을 때 비가 오지 않으면 안되는 거지요. 어디든지 사람의 강의라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라.
세계 4대 문명이 있습니까. 그게 모두 뭘 근거로 하고 있습니까. 전부 강을 따라 다 되어있습니다. 강없는 곳에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모든 마을들 모든 도시들 다 형성되어있습니다. 여기 비라는 것은 좋은 겁니다. 주님 말씀을 듣는 사람은 하나님이 터가 됐고 기초가 됐고 뿌리가 됐고 원동이 됐기 때문에 말미암아서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것이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 말입니다. 좋아서 좋은 것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좋다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좋은데 좋은 것이 너무 지나치면 비가 왔는데 요즘처럼 비는 가랑비로 꾸준하게 오는 게 좋습니다.
옛날에 장마철에는 비가 주룩주룩 왔습니다. 가랑비가 오기 시작하다가 폭우 쏟아지면 하루종일 쏟아지지 폭우로 쏟아지지 않습니다. 가랑비로 천천히 오래토록 계속 와야 스며들면서 좋은거지 단시간에 폭우 내버리면 식물들 절단나버립니다. 그래서 채소값 올라갑니다. 비가 내리고 좋았습니다. 지나쳐서 창수가 되었습니다. 홍수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비가 와서 부산도 많이 왔다고 하는데 저는 안에 있어서 그렇게 크게 못 느끼지요. 위쪽은 난리가 났더니만요. 그런 것을 창수라고 합니다. 좋은 것이 알맞게 좋아야하지 너무 좋아져버리면 창수가 되어 떠나가버립니다. 적당한 게 가장 좋은겁니다. 그런데 주님 말씀듣고 준행하는 그 사람은 기초가 터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좋다는 게 피동되지 않습니다.
주님으로 반석한 사람은 항상 이런 사람인데 그래서 비가 와서 좋아도 아무리 쏟아서 좋아져도 창수가 될지라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님을 원동으로 삼았기 때문에. 바람이라는 것은 더한 겁니다. 태풍까지 불어버리면 다 날아가버립니다. 바람은 온갖 것이 다 바람입니다. 주님 말씀을 듣고 준행하는 사람, 그때마다 자기를 배제하고 말씀을 듣고 읽고 아는 그대로 준행하는 사람. 여기서는 이렇게 하는 게 맞겠다. 그런 자세를 가져야겠다. 그런 각오를 가지고 해야겠다. 이렇게 살아야겠다. 그 순서에 따라서 준행하는 사람은 말씀이 자기의 주인입니다. 원동이고 말씀이 인도자입니다.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이 계씹니다. 말씀 듣고 하는 사람은 자기가 주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지. 그러면 반석위에 지은 집이 되고 그러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떤 말에도 사건에도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이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반대로 이 말을 듣고 행치않는 사람은 말을 듣기는 들었으니까 알았습니다. 알았는데 알기는 알지만은 믿음이 생기지 않아서 자기 주관입니다.
이 세상으로, 사람이 그럴 수가 있나. 계명 지키는데 주일 지키다가 직장에 쫓겨나면 어쩌려고 인간 계산 가지고 세상 계산 가지고 원하는거지요. 그럴 때 그 사람은 현실만날 때 그 순간 순간에 약해서 넘어질찌라도 따지고 따져서 그때 그때 그 순간 순간 상황을 따져서 양심으로 따져서 살펴서 준행한 사람이 되면 그의 모든 것은 반석이 되는 것인데 사람의 말 시대의 말 손익계산 자존심 이런 거 때문에 달리가버리면 그 주초를 모래 위에 지은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사상누각이라고 합니까. 해운대도 그럴걸요, 광안리도 엄청 부어놨을 겁니다. 바다가 와서 쓸고가버립니다. 비오면 솔솔 빠져나가버립니다. 현실을 살아갈 때 다른 것이 있는데 말씀은 이리하라그러는데 걱정되겠고 그러니 자기 주관, 자기 주관을 세상과 다 연결시킵니다. 그러니 이 집을 하나님와 반대로 피조물을 위해 지은겁니다.
자기가 기초된겁니다. 피조물이 된겁니다. 자기가 기초되고 피조물의 기초가 되니까 견딜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무너지고 없어지고 마는겁니다. 늘 아는 말씀인데 믿는 사람의 모든 생활은 누구든지 행하는 자는 그게 바로 반석위에 지은 집이 된다. 하나님을 뿌리로 삼는게된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아는대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행을 하면 그대로 된 거니라. 알지만은 못 믿겠어서 손해볼 거 같아서 온갖 핑계 때문에 다른 걸로 해버리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이기 때문에 좋으면 좋은대로 무너지고 바람오면 다 무너져버리겠고 답은 나와있는겁니다. 기본구원 건설구원에 대하면 생각해봤습니다. 믿음의 완성은 실행입니다. 동기 목적이라는 게 되어있습니다. 말씀을 순종을 해도 하나님 말씀을 따라 그대로 할 때 반석위에 지은 집이 됩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되시겠습니다.
찬송: 90장, 89장
본문: 마태복음 7장 24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찬송가 89장을 잠깐 펴보시겠습니까. 후렴 전에 반석 위 셈일세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집을 짓는 찬송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세운다는 뜻입니다. 세움일세 줄인말입니다. 찬송가는 가사가 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에 줄인말을 많이 씁니다. 찬송가는 그런 게 많지 않으나 한자가 더러 나옵니다. 어제 새벽에 잠언 27장 8절에 본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복음 자리를 떠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암송도 했고 외우고 있는데 듣고 나면은 남게 되고 읽을 때마다 생각이 나게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의 본향은 고향보다 강한 표현이 본향이다. 내가 태어난 곳, 우리의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 오늘을 살되 내일로 오늘을 사는 게 생활입니다. 아이들은 모를 거고 중년 즈음 넘어가면 오늘이 가장 젊은 날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오늘을 다하면 그만큼 늙습니다. 작년 8월 집회 때 목사님께서 적어주셔서 광고한 적이 있는데 작년에 보던 분이 안 보이는 분이 있고 올해 보이는 분들이 내년에 안 보이는 분이 있습니다. 하늘나라 가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더러더러 있을 겁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세상을 살 때는 오늘을 살 때 오늘을 살지 않고 사는겁니다. 세상을 살 때 세상으로 살지 않고 하늘로 사는 겁니다. 오늘 말씀과 연결이 되는데 주님이 사는 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이 반석위에 집이 되는 겁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24절 끝에 보니까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같으니리. 미래를 아는 걸 지혜라고 합니다. 현재를 기점으로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알고 미래를 살아가는 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뭔가 판단하기 전에 현재 미리 계산하고 걸어가는 걸 알고 가는 걸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정의가 그렇고 미래를 아는 것 알 수가 없습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니라. 모르는 겁니다. 어떻게 사람이 지혜로울 수 있습니까. 사람의 지혜라는 것은 인간 수준이 지혜로워서 미래를 보고 잘 아는 웨렌 버핏입니까. 주식 투자 잘하는 사람. 그렇게 하는 건 대개 통계입니다. 통계는 미래를 계산하는 겁니다. 과거를 통계내서 일기예보도 통계입니다. 통계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지혜가 아닌 거지요. 예측이고 짐작이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 지혜는 예측 예상 짐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과거를 축척해서 통계를 가지고 미래를 계산해 보는겁니다. 성경 말씀에 지혜라는 것은 미래를 아는 건데 반석에서 지은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나타난 겁니다. 미래를 알고하는게 아니고 결과적으로 나타난 지혜입니다. 순종하는 것이 반석 위에 지은 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래를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복입니다. 명석한 두뇌를 가져도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전부 모래 위에 지은 사람같으니까 어떤 사람이냐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말이지요. 멀리보면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게 지혜입니다. 그게 지혜고 미래를 아는 것이고 그게 축적이 되면 경험치가 되어서 앞날 내다보는 혜안이 생기고 미래를 보는 지혜가 생깁니다.
24절로 갑니다. 그러므로 앞의 말씀이 연결되는데 4장에서 시험을 받습니다. 계속해서 많은 말씀을 7장까지 가르칩니다. 5장에서부터 7장 23절까지 계속해서 많은 가르침을 가르칩니다. 8장부터는 다른 내용이라기 보다는 전개되는 사건들하고 같이 섞이면서 교훈이 나오고 5장부터 7장까지는 설교가 나오는 겁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5장부터 7장까지 말씀이고 넓히면 성경 말씀 전부고 자기 말씀을 말하는 겁니다. 이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듣고 행하는 것을 줄이면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정의는 세 가지입니다. 알고 인정하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알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들어야하지요. 듣는 것 속에 아는 게 있는 겁니다.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알았습니다. 안 들으면 읽었으니까 알았습니다. 천하없는 천재도 뱃속에서 알고 나온 사람 없습니다. 나서 태어나서 듣는 게 먼저이지요. 영어공부도 듣는 게 먼저이지요. 듣고 말하고 읽고 쓰고 그렇습니까.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그렇지요. 언어라는 것은 들어야 말합니다. 안 들으면 말 못합니다. 말 못하는 사람은 청각장애도 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듣고 누구든지 예외가 없으면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믿음이라는 것은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건데 듣는 건 아는 겁니다. 믿음의 출발은 듣는데서부터 아는데서부터 출발합니다. 모르는 인정은 없고 모르는 실행도 없는 겁니다. 믿음의 출발은 지식입니다. 준비 과정은 읽고 알았으면 내 마음에 새겨서 믿어야합니다. 인정해서 받아들여야합니다. 자기 주관을 배제해야합니다. 자기 주관이라는 그 속에는 세상이 다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사람의 주관이라는 것은 객관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 주관입니다.
주관과 객관, 주인 주자입니다. 객관은 객실 여객 승객 손님을 객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모든 주관은 객관에 의해서 객관으로 말미암아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어떤 부모 밑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집니다. 환경에서 달라지냐에 따라 인격이 형성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에서 자라면 한국에서 자랍니다. 미국에서 자라면 미국사람이 됩니다. 늑대한테 자라면 모글리한테 됩니다. 그게 사람의 인격이라는 주관에서 형성된다는 증거입니다. 환경에 적응한다. 환경의 적응을 적자 생존이다. 이걸 전부 진화론 주장하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습니다.
첫째가 듣는데서 읽는데서 출발합니다. 듣지도 못한 일을 어떻게 믿으리요 알리요. 전하는 건 중요한 겁니다. 선지자가 그만큼 중요한 겁니다. 들었습니다. 읽었습니다. 준비는 뭡니까. 아는 겁니다. 아는 말씀을 그러하냐고 내 주관이 받아들여야하는데 그렇게 받아들이려고 하면 다 배제해야하는데 어떻게 형성되었다고요.
대학교 들어가기 전후가 다르지요. 그게 보면서 이런 곳이구나 내가 아는 교수는 이런 분이구나. 보니까 들으니까 내 주관이 생겨지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관을 알아야합니다. 세상에 의해서 생겨지기 때문에 나를 부인하는 것은 세상을 부인하는 겁니다. 선생님 말씀이 들어와있고 온갖 문화가 들어와있고 내 시청각을 통해서 나의 주관으로 자리잡고 있는 겁니다. 배치가 되기 때문에 나를 부인하지 않으면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실행인데 실행은 완성입니다. 믿음의 과정은 인정이고 실행하면 완성됩니다
24절 말씀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본문 말씀이고 성경말씀인데 이 말씀이 행할 때는 각자 사람에게 따로 적용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5계명이 6계명이 오늘은 이 말씀이 내일은 저 말씀이. 장소에 따라 날짜에 따라서 내가 지킬 말씀이기 때문에 나의 이 말이라고 합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듣고 알고 말이 행하는자. 이게 믿음의 완성입니다. 그리하면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사람이 된다. 반석이라는 것은 넓은 바위이고 의미는 기초라고 했습니다. 세울 때 받치는 거라고 했습니다. 땅이든 기둥의 기초든 굉장히 튼튼하게 단단하게 전체를 받쳐주는 게 기초입니다. 반석은 기초, 하나님을 말하는데 기초 터 뿌리 근본 또는 원본 단으로 표현했는데 전체는 다 같은 맥락으로 하는 게 있습니다. 하나님 위에 건설되는 거다. 하나님을 터로 삼는거다. 뻗어나오는거다. 원동이 되어서 그분으로 인해서 움직이는 거다. 이게 반석 위라는 뜻입니다.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며 배경삼고 백을 삼으며 뻗어나오는 거니까 그분으로 인하는 것이고 원동되는 거니까 그분 따라서 움직이는 겁니다. 이걸 반석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예외가 없습니다.
여기는 남녀노소 빈부귀천를 막론하고 목사든지 장로든지 주일학생이든지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주님 말씀 그때 그때 그 시간 그 시간을 알고 그대로 준행하는 사람은 그게 바로 주님을 터로 삼는 것이다. 건설하는 것이다. 기초로 삼는 것이다. 주님을 뿌리로 삼았고 원동을 삼는 것이다. 우리들이 움직일 때 이 행동은 이 생활은 모래 위 집이냐 반석 위 집이냐. 주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지은 집이 되는 거다.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에서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어찌되느냐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비가 내리면 좋은 겁니까 나쁜 겁니까. 빈들에 마른 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비내리는 건 좋은 겁니다. 좋은 것은 평안한 거지요. 경제가 넉넉하고 마음이 넉넉하고 비내리는 겁니다. 단비. 농사 지을 때 비가 오지 않으면 안되는 거지요. 어디든지 사람의 강의라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라.
세계 4대 문명이 있습니까. 그게 모두 뭘 근거로 하고 있습니까. 전부 강을 따라 다 되어있습니다. 강없는 곳에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모든 마을들 모든 도시들 다 형성되어있습니다. 여기 비라는 것은 좋은 겁니다. 주님 말씀을 듣는 사람은 하나님이 터가 됐고 기초가 됐고 뿌리가 됐고 원동이 됐기 때문에 말미암아서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것이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 말입니다. 좋아서 좋은 것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좋다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좋은데 좋은 것이 너무 지나치면 비가 왔는데 요즘처럼 비는 가랑비로 꾸준하게 오는 게 좋습니다.
옛날에 장마철에는 비가 주룩주룩 왔습니다. 가랑비가 오기 시작하다가 폭우 쏟아지면 하루종일 쏟아지지 폭우로 쏟아지지 않습니다. 가랑비로 천천히 오래토록 계속 와야 스며들면서 좋은거지 단시간에 폭우 내버리면 식물들 절단나버립니다. 그래서 채소값 올라갑니다. 비가 내리고 좋았습니다. 지나쳐서 창수가 되었습니다. 홍수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비가 와서 부산도 많이 왔다고 하는데 저는 안에 있어서 그렇게 크게 못 느끼지요. 위쪽은 난리가 났더니만요. 그런 것을 창수라고 합니다. 좋은 것이 알맞게 좋아야하지 너무 좋아져버리면 창수가 되어 떠나가버립니다. 적당한 게 가장 좋은겁니다. 그런데 주님 말씀듣고 준행하는 그 사람은 기초가 터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좋다는 게 피동되지 않습니다.
주님으로 반석한 사람은 항상 이런 사람인데 그래서 비가 와서 좋아도 아무리 쏟아서 좋아져도 창수가 될지라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님을 원동으로 삼았기 때문에. 바람이라는 것은 더한 겁니다. 태풍까지 불어버리면 다 날아가버립니다. 바람은 온갖 것이 다 바람입니다. 주님 말씀을 듣고 준행하는 사람, 그때마다 자기를 배제하고 말씀을 듣고 읽고 아는 그대로 준행하는 사람. 여기서는 이렇게 하는 게 맞겠다. 그런 자세를 가져야겠다. 그런 각오를 가지고 해야겠다. 이렇게 살아야겠다. 그 순서에 따라서 준행하는 사람은 말씀이 자기의 주인입니다. 원동이고 말씀이 인도자입니다.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이 계씹니다. 말씀 듣고 하는 사람은 자기가 주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지. 그러면 반석위에 지은 집이 되고 그러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떤 말에도 사건에도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이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반대로 이 말을 듣고 행치않는 사람은 말을 듣기는 들었으니까 알았습니다. 알았는데 알기는 알지만은 믿음이 생기지 않아서 자기 주관입니다.
이 세상으로, 사람이 그럴 수가 있나. 계명 지키는데 주일 지키다가 직장에 쫓겨나면 어쩌려고 인간 계산 가지고 세상 계산 가지고 원하는거지요. 그럴 때 그 사람은 현실만날 때 그 순간 순간에 약해서 넘어질찌라도 따지고 따져서 그때 그때 그 순간 순간 상황을 따져서 양심으로 따져서 살펴서 준행한 사람이 되면 그의 모든 것은 반석이 되는 것인데 사람의 말 시대의 말 손익계산 자존심 이런 거 때문에 달리가버리면 그 주초를 모래 위에 지은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사상누각이라고 합니까. 해운대도 그럴걸요, 광안리도 엄청 부어놨을 겁니다. 바다가 와서 쓸고가버립니다. 비오면 솔솔 빠져나가버립니다. 현실을 살아갈 때 다른 것이 있는데 말씀은 이리하라그러는데 걱정되겠고 그러니 자기 주관, 자기 주관을 세상과 다 연결시킵니다. 그러니 이 집을 하나님와 반대로 피조물을 위해 지은겁니다.
자기가 기초된겁니다. 피조물이 된겁니다. 자기가 기초되고 피조물의 기초가 되니까 견딜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무너지고 없어지고 마는겁니다. 늘 아는 말씀인데 믿는 사람의 모든 생활은 누구든지 행하는 자는 그게 바로 반석위에 지은 집이 된다. 하나님을 뿌리로 삼는게된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아는대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행을 하면 그대로 된 거니라. 알지만은 못 믿겠어서 손해볼 거 같아서 온갖 핑계 때문에 다른 걸로 해버리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이기 때문에 좋으면 좋은대로 무너지고 바람오면 다 무너져버리겠고 답은 나와있는겁니다. 기본구원 건설구원에 대하면 생각해봤습니다. 믿음의 완성은 실행입니다. 동기 목적이라는 게 되어있습니다. 말씀을 순종을 해도 하나님 말씀을 따라 그대로 할 때 반석위에 지은 집이 됩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