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3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4-06-23조회 148추천 15
2024년 6월 23일 주일 오후
찬송: 79장, 137장
본문: 열왕기상 2장 1절 ~ 4절
다윗의 유언을 통해서 우리의 인생을 한 번 돌아봅니다. 다윗이 간 것처럼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다윗이 간 것처럼 우리도 가게 될 것입니다. 앞서가고 늦게가는 차이일 것 뿐이지 간다는 사실을 오늘 느끼지 못하는 게 큰 문제가 되는 겁니다. 빨리 알고 느낄수록 지혜롭고 준비를 잘 하게 될 것입니다. 느낌의 정도에 따라서 실제 사는 것도 다르게 될 것입니다. 상식이기 때문에 6000년 인생의 단 한 사람도 에녹과 엘리야 외에는 벗어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누구나 벗어난 사실인데 알지못하고 알아도 느끼지 못하니까 준비를 못하게 되는 것이고 허무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유언이 뭐냐 그건 죽는 사람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은 자손들에게 당부하는 것이 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유언을 못하고 가는 사람이 있는데 혼자 살다가 외롭게 가는 사람도 많은데 웬만하면 가족이 있으니까 살다가 저 분은 무엇을 가장 크게 여긴다 중요하게 여긴다 생각할까 평소 그의 말과 생활 처신 이런 것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살아가고 살아가면서 한 마디씩 사람들에게 내게 사는 것처럼 나는 그리 살지 못해도 한 마디씩 자손들에게 했으면 그게 마지막의 자손들에게 유언이 되게 되는 겁니다. 그 사람의 행동이 말이 되고 그의 생활이 교훈이 되고 가치관이 되고 평소 생활이 유언이 되게 되는 겁니다. 마지막에 사는 모습과 유언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잘못 살았는데 죽을 때 되니까 깨달아집니다. 그러면 나는 잘못 살았다 나처럼 살지말고 이렇게 살아라 그런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서부교회 묘지에 높은 자리에 올라갔던 그 사람이 평양 부자의 아들인가 그런데 그 분이 공회의 가족이 여동생들이 공회의 기둥, 아마 있을겁니다. 평생을 그 많은 재산 다 버리고 불교를 중으로 살아서 올라갔는데 백목사님 만나서 대화하다보니까 불러서 식사를 하면서 대화하니까 그분은 불교에 높은 그런 교리로 말하고 목사님은 성경으로 말하는데 막혀버린다덥니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평생 중으로 살았는데 나 죽으면 알리지말고 서부교회 묘지에 묻어주면 좋겠다고 그렇게 중들이 항의한다고 많이 왔다고 합니다. 높은 중이 서부교회 교회에 장을 치르고 묘지에 뭍혔으니까 보통 일이 아닌 거지요. 그 분은 평생을 중으로 살았는데 마지막은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유언을 그리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는 거지요 다윗은 생애를 유언으로 하는 거지요.
어떤 여 집사님 사람이 좋아서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더랍니다. 교회 집사님이라 그러는데 백 조사님이 가보니까 신앙생활하는 거 보니까 뭔가 문제가 있는데 다 좋아한다. 온 동네 안 가는 집이 없고 안 가는 잔치가 없고 기도도 해주고 다 그러는데 구별성이 없는 겁니다. 갈 곳이 있고 안 갈 곳이 있고 그런데 모든 동네 사람들이 그 집사님처럼 믿으면 우리 다 교회 다 가겠다. 거기에 속시 쉽습니다. 사람들 좋게하면 다 전도가 되겠죠. 사람들 좋게하는 그 방법 때문에 타락이 된 겁니다. 교회란 곳은 전도가 목적이지만 궁극의 목적은 전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전도하는 것이지 100날 전도해봐야 그렇게해서는 인간종교입니다. 마지막 그분이 세상 떠날 때 부흥회 가 있는데 전달하기를 그 집사님 보고 자식들에게 전도하고 예수믿으라 그 분은 그렇게 잘 믿었는데 자식들은 안 믿었다고 하지요. 먼저 가버려서 못했다고 합니다. 야곱도 요셉에게 유언을 했고 다 했고 모세도 열두 지파에게 다 그랬고 더러더러 나옵니다.
앞에 중되는 그 분은 예외되는 경우입니다. 그렇게 살면 유언이 그렇게 나오는 것이지요. 살게 된 것이고 그게 가장 귀하다고 소중하다고 자기가 그리 살았고 내가 그리 산 거 되겠지요. 이게 유언이라고 하는 겁니다. 다윗의 생애를 먼저 생각해보는겁니다. 다윗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걸 두 글자로 줄이면 위인이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을 범인이라고 합니다. 범부범인, 보통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 보통 모든 일에 감사 만사 감사하다는 뜻입니다. 위인과 범인은 반대말이 됩니다. 위인과 범인의 차이를 보면 위인은 세상에서도 성경에서도 역경이 많습니다. 보통 사람들도 역경은 다 만나게 됩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 위인들이 만나는 역경은 큰 게 많습니다. 위인들은 역경을 피하지 않고 넘어섭니다. 그래서 위인들의 공통점은 의지가 강합니다. 의지가 강하니까 절제력이 있습니다. 어지간한 나무라도 한 곳에 박아놓고 세월만 지나면 어지간한 나무는 커지면서 굉장히 보기 좋은 나무가 되게 됩니다. 한 교회에서 뿌리박고 해나가면 세월지나면 많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데 다 되어져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안 시켜도 돈을 안 물려줘도 인내심 절제력 끈기는 길러줘야합니다. 이건 억만금 박사10개보다 더 중요한 겁니다. 그것만 있으면 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다윗도 그런 사람입니다. 위인들의 공통점은 절제력을 가지고 오만 역경을 피하지 않고 부딪혀 이겨냅니다. 인내를 이겨내는 역경은 별로 없습니다. 인간의 의지와 인내심을 하나님께서 잘 주시지를 않습니다.
다윗은 아버지도 내놨습니다. 막내였습니다. 양치는 생활은 못난 사람, 이런 위치였는데 아주 말단의 그런 일이었는데 다윗은 그 일 마다하지 않고 양떼를 목숨걸고 지켰습니다. 그리 자랐습니다. 나아만 집의 여종도 그런 느낌이었겠지요. 그런데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소망가지고 믿는 사람은 어떤 경우도 무엇을 하면 안된다고요. 낙심은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위대하게 드러냈습니다. 이름도 모르는데 나아만 집의 여종으로 알려주는데 그렇게 위대한 사람입니다. 블레셋 골리앗 대장군을 무슨 수로 이겼겠습니까. 다윗은 자신있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도망을 치고 사울도 못 이겼는데 그래서 사울이 전신갑주, 좋은 말이지요. 골리앗은 못이길 대상입니다. 인간도 아닌 것이 도무지 말이 안되는 겁니다. 저럴 수가 있나. 뭘 믿고 저렇게 큰 소리를 치며 왜 도망치느냐 그 말입니다. 너 여기 뭐하러 왔어 양이나 치지.
내가 저 놈 죽이겠다고 하는데 허풍이 아니고 빈 깡통이 아니고 수 없는 실전경험이 있는겁니다. 기독교 신앙입니다. 이런 건 우리가 못 가지고 있지요. 실전 경험. 다윗이 누구하고 싸워봤다고요. 저건 키가 몇 규빗이죠 6규빗인가 키가 얼마입니까 지금도 3미터는 없을건데. 사자와 곰을 사람이 이길닙까.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하는데 진리가 없다는 거지요. 하나님이 귀신인데 진리가 아니니까 실전경험가지고 자신만만하게 나오는 겁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짐승취급하고 그래서 막대기 들고 나온거지요. 너는 짐승 아니냐 이겁니다. 너는 네가 욕하는 만군이 여호와 이름으로 나간다. 누가 이기겠습니까. 돌멩이 하나에 끝나버렸잖습니까. 과정이 있었고 문제는 승승장구했는데 다윗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니까 사울이 무슨 병이 들었다고요. 시기병이 들었습니다. 내가 잘 되는 건 좋고 내 믿음이 좋은 건 좋고 남이 잘되고 그런 것은 믿음 좋은 거라고 이상하게 설사가 나고 소화제를 먹어야하고 묘한 심리가 한국 사람에게 있는 겁니다. 우리도 다 그런 류의 사람들입니다. 시기병은 어린 사람들에게 오지 않습니다. 장성한 사람들에게 오지. 왕자리 위에 파니까 시기 대상이 되어지고 살해위협까지 가서 그렇게 하게 되어진겁니다. 왕이 되고 자리를 잡았는데 한 순간 미혹받아서 그대 때문에 평생을 고통 속에 삽니다. 그 죄가 크다면 크고 아니면 아닐 수도 있는데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죄값을 엄청나게 크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문에 자식들 사이에 여러 일이 일어나고 살았습니다. 요압이라는 그 놈은 다윗 밑의 신하면서도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칼로 죽였습니다. 그리고 뒤에 가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범죄해서 이스라엘 쳤는데 다윗이 고통받았지요. 다윗이 책임이 없진 않지만 다윗의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죄
찬송: 79장, 137장
본문: 열왕기상 2장 1절 ~ 4절
다윗의 유언을 통해서 우리의 인생을 한 번 돌아봅니다. 다윗이 간 것처럼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다윗이 간 것처럼 우리도 가게 될 것입니다. 앞서가고 늦게가는 차이일 것 뿐이지 간다는 사실을 오늘 느끼지 못하는 게 큰 문제가 되는 겁니다. 빨리 알고 느낄수록 지혜롭고 준비를 잘 하게 될 것입니다. 느낌의 정도에 따라서 실제 사는 것도 다르게 될 것입니다. 상식이기 때문에 6000년 인생의 단 한 사람도 에녹과 엘리야 외에는 벗어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누구나 벗어난 사실인데 알지못하고 알아도 느끼지 못하니까 준비를 못하게 되는 것이고 허무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유언이 뭐냐 그건 죽는 사람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은 자손들에게 당부하는 것이 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유언을 못하고 가는 사람이 있는데 혼자 살다가 외롭게 가는 사람도 많은데 웬만하면 가족이 있으니까 살다가 저 분은 무엇을 가장 크게 여긴다 중요하게 여긴다 생각할까 평소 그의 말과 생활 처신 이런 것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살아가고 살아가면서 한 마디씩 사람들에게 내게 사는 것처럼 나는 그리 살지 못해도 한 마디씩 자손들에게 했으면 그게 마지막의 자손들에게 유언이 되게 되는 겁니다. 그 사람의 행동이 말이 되고 그의 생활이 교훈이 되고 가치관이 되고 평소 생활이 유언이 되게 되는 겁니다. 마지막에 사는 모습과 유언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잘못 살았는데 죽을 때 되니까 깨달아집니다. 그러면 나는 잘못 살았다 나처럼 살지말고 이렇게 살아라 그런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서부교회 묘지에 높은 자리에 올라갔던 그 사람이 평양 부자의 아들인가 그런데 그 분이 공회의 가족이 여동생들이 공회의 기둥, 아마 있을겁니다. 평생을 그 많은 재산 다 버리고 불교를 중으로 살아서 올라갔는데 백목사님 만나서 대화하다보니까 불러서 식사를 하면서 대화하니까 그분은 불교에 높은 그런 교리로 말하고 목사님은 성경으로 말하는데 막혀버린다덥니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평생 중으로 살았는데 나 죽으면 알리지말고 서부교회 묘지에 묻어주면 좋겠다고 그렇게 중들이 항의한다고 많이 왔다고 합니다. 높은 중이 서부교회 교회에 장을 치르고 묘지에 뭍혔으니까 보통 일이 아닌 거지요. 그 분은 평생을 중으로 살았는데 마지막은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유언을 그리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는 거지요 다윗은 생애를 유언으로 하는 거지요.
어떤 여 집사님 사람이 좋아서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더랍니다. 교회 집사님이라 그러는데 백 조사님이 가보니까 신앙생활하는 거 보니까 뭔가 문제가 있는데 다 좋아한다. 온 동네 안 가는 집이 없고 안 가는 잔치가 없고 기도도 해주고 다 그러는데 구별성이 없는 겁니다. 갈 곳이 있고 안 갈 곳이 있고 그런데 모든 동네 사람들이 그 집사님처럼 믿으면 우리 다 교회 다 가겠다. 거기에 속시 쉽습니다. 사람들 좋게하면 다 전도가 되겠죠. 사람들 좋게하는 그 방법 때문에 타락이 된 겁니다. 교회란 곳은 전도가 목적이지만 궁극의 목적은 전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전도하는 것이지 100날 전도해봐야 그렇게해서는 인간종교입니다. 마지막 그분이 세상 떠날 때 부흥회 가 있는데 전달하기를 그 집사님 보고 자식들에게 전도하고 예수믿으라 그 분은 그렇게 잘 믿었는데 자식들은 안 믿었다고 하지요. 먼저 가버려서 못했다고 합니다. 야곱도 요셉에게 유언을 했고 다 했고 모세도 열두 지파에게 다 그랬고 더러더러 나옵니다.
앞에 중되는 그 분은 예외되는 경우입니다. 그렇게 살면 유언이 그렇게 나오는 것이지요. 살게 된 것이고 그게 가장 귀하다고 소중하다고 자기가 그리 살았고 내가 그리 산 거 되겠지요. 이게 유언이라고 하는 겁니다. 다윗의 생애를 먼저 생각해보는겁니다. 다윗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걸 두 글자로 줄이면 위인이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을 범인이라고 합니다. 범부범인, 보통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 보통 모든 일에 감사 만사 감사하다는 뜻입니다. 위인과 범인은 반대말이 됩니다. 위인과 범인의 차이를 보면 위인은 세상에서도 성경에서도 역경이 많습니다. 보통 사람들도 역경은 다 만나게 됩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 위인들이 만나는 역경은 큰 게 많습니다. 위인들은 역경을 피하지 않고 넘어섭니다. 그래서 위인들의 공통점은 의지가 강합니다. 의지가 강하니까 절제력이 있습니다. 어지간한 나무라도 한 곳에 박아놓고 세월만 지나면 어지간한 나무는 커지면서 굉장히 보기 좋은 나무가 되게 됩니다. 한 교회에서 뿌리박고 해나가면 세월지나면 많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데 다 되어져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안 시켜도 돈을 안 물려줘도 인내심 절제력 끈기는 길러줘야합니다. 이건 억만금 박사10개보다 더 중요한 겁니다. 그것만 있으면 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다윗도 그런 사람입니다. 위인들의 공통점은 절제력을 가지고 오만 역경을 피하지 않고 부딪혀 이겨냅니다. 인내를 이겨내는 역경은 별로 없습니다. 인간의 의지와 인내심을 하나님께서 잘 주시지를 않습니다.
다윗은 아버지도 내놨습니다. 막내였습니다. 양치는 생활은 못난 사람, 이런 위치였는데 아주 말단의 그런 일이었는데 다윗은 그 일 마다하지 않고 양떼를 목숨걸고 지켰습니다. 그리 자랐습니다. 나아만 집의 여종도 그런 느낌이었겠지요. 그런데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소망가지고 믿는 사람은 어떤 경우도 무엇을 하면 안된다고요. 낙심은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위대하게 드러냈습니다. 이름도 모르는데 나아만 집의 여종으로 알려주는데 그렇게 위대한 사람입니다. 블레셋 골리앗 대장군을 무슨 수로 이겼겠습니까. 다윗은 자신있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도망을 치고 사울도 못 이겼는데 그래서 사울이 전신갑주, 좋은 말이지요. 골리앗은 못이길 대상입니다. 인간도 아닌 것이 도무지 말이 안되는 겁니다. 저럴 수가 있나. 뭘 믿고 저렇게 큰 소리를 치며 왜 도망치느냐 그 말입니다. 너 여기 뭐하러 왔어 양이나 치지.
내가 저 놈 죽이겠다고 하는데 허풍이 아니고 빈 깡통이 아니고 수 없는 실전경험이 있는겁니다. 기독교 신앙입니다. 이런 건 우리가 못 가지고 있지요. 실전 경험. 다윗이 누구하고 싸워봤다고요. 저건 키가 몇 규빗이죠 6규빗인가 키가 얼마입니까 지금도 3미터는 없을건데. 사자와 곰을 사람이 이길닙까.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하는데 진리가 없다는 거지요. 하나님이 귀신인데 진리가 아니니까 실전경험가지고 자신만만하게 나오는 겁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짐승취급하고 그래서 막대기 들고 나온거지요. 너는 짐승 아니냐 이겁니다. 너는 네가 욕하는 만군이 여호와 이름으로 나간다. 누가 이기겠습니까. 돌멩이 하나에 끝나버렸잖습니까. 과정이 있었고 문제는 승승장구했는데 다윗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니까 사울이 무슨 병이 들었다고요. 시기병이 들었습니다. 내가 잘 되는 건 좋고 내 믿음이 좋은 건 좋고 남이 잘되고 그런 것은 믿음 좋은 거라고 이상하게 설사가 나고 소화제를 먹어야하고 묘한 심리가 한국 사람에게 있는 겁니다. 우리도 다 그런 류의 사람들입니다. 시기병은 어린 사람들에게 오지 않습니다. 장성한 사람들에게 오지. 왕자리 위에 파니까 시기 대상이 되어지고 살해위협까지 가서 그렇게 하게 되어진겁니다. 왕이 되고 자리를 잡았는데 한 순간 미혹받아서 그대 때문에 평생을 고통 속에 삽니다. 그 죄가 크다면 크고 아니면 아닐 수도 있는데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죄값을 엄청나게 크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문에 자식들 사이에 여러 일이 일어나고 살았습니다. 요압이라는 그 놈은 다윗 밑의 신하면서도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칼로 죽였습니다. 그리고 뒤에 가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범죄해서 이스라엘 쳤는데 다윗이 고통받았지요. 다윗이 책임이 없진 않지만 다윗의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