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4-06-16조회 177추천 23
2024년 6월 16일 주일 오후
찬송: 106장, 192장
본문: 에스겔 40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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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현관도 그러하다는 말은 앞에 문 안 좌우편 사이에 있는 것이 같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오전에 서론격으로 신앙상식에 대해서 성경은 구원도리라고 생각해봤습니다. 구원도리가 무엇인가 이 말씀을 하게 된 이유는 에스겔 성전이 무엇인가 설명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한 글자로 하면 집입니다. 집이기 때문에 글자를 글을 가지고 집을 설명해놓은겁니다. 집을 성전 하나님의 집이니까 왜 필요하냐 하나님을 향해 들어가는 그걸 글로 적어놓은 건데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모형을 만들면 만들 수 있을겁니다. 그런데 모세 성막도 솔로몬 성전도 에스겔 성전도 하나님을 모시는 우리를 만들어가도록 가르치는 것을 이걸 구원도리라고 말씀을 드린 겁니다. 길이라는 뜻인데 설명해놓은 게 성경 말씀입니다. 사람의 모든 생활을 의미합니다. 심신의 모든 활동 작용을 생활이라 말하고 걸어가는 생활이라 현실이 문이고 걸어가는 통로기 때문에 이런 저런 말을 하게 되는 겁니다.
구원이란 일차적으로 무엇이냐. 건져내는 겁니다. 일차적으로 구원은 건져내는 겁니다. 모세 이름이 물에서 건져냄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냅니다. 구원받은 모세가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그 모세를 건져낸 사람이 바로의 딸입니다. 그 바로의 궁전에서 바로가 주는 그 물 먹고 그 음식 먹고 거기서 다 배워서 이스라엘을 건져내는 겁니다. 기묘한 역사지요. 그래서 세상과 성도의 관계가 그런 겁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나서 다 받아들여서 그 세상, 한글은 천국겁니까 세상겁니까. 한글은 누가 만들었나요. 세종대왕이 한자는 중국 쪽이겠고, 이런 모든 지식들을 그렇고 다 받아가지고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서 이 세상을 먹고 마시고 나를 만들어서 만들어진 내가 하는 일은요. 천국 사람 만들고 이끌어가도록 하는 게 이겁니다.
40년에서 광야에서 신앙을 준비해서 나머지 40년은 신앙으로 준비하고 80세 되어서 비로소 광야로 인도했습니다. 40이라는 숫자는 보통 숫자가 아닙니다. 다윗이 40년 솔로몬이 40년 예수님이 금식기도하신지 40일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 저도 목회 딱 40년만 채우면 좋겠다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런 소원을 가지는 게 나쁜 게 아닙니다. 좋은거지. 건져냄 받고 우리는 죄에서 사망해서 건져냈고 2차구원, 건짐받은 사람이 성화구원 건설구원이라 그러는데 내용이 무엇인가요. 성화 말 그대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하는 것. 사람 변화입니다. 사람 변화가 인격 변화라 그 말이고 사람 자체가 변한다는 말입니다. 닭인데 오리가 된다. 그 정도로 된다는 뜻입니다. 닭이 오리될 수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그런 의미가 있는 겁니다. 껍데기만 변하는 게 아니고 많은 사람이 예수믿는다고하면 믿음이라고 껍데기만 페인트질 하면 된줄 아는데 벗겨내면 본모습이 나옵니다. 은에다가 금칠 해놓으면 벗겨내면 은이 됩니다. 그런 것을 의미합니다. 옛사람이 새사람을 세상적인 사람이 천국 중심의 사람으로 사람이 바뀌면 하는 건 전부 하나님과 동행이 됩니다. 이걸 신인양성일행이라 이게 최종목적입니다.
그리되면 우리 목적은 다 사람이 변화가 되는 게 의미인데 신구약 성경 말씀은 1차 구원을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을 건져서 구원해주신 게 아니고 건설 성화적으로 해주신 말씀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읽어보면 건설구원에 대한 말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형상으로 변해지느냐 이게 신구약 성경 전부 다입니다. 사람 변화는 쉬운 말로 뭐라고 합니까. 사람 변화, 글을 못 쓰는 사람이 있는데 잘 쓰는 사람이 될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자꾸 써보고 또 써보고 그러면 됩니다. 이걸 가지고 연습이라고 합니다. 계속해서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걸 연습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의식적으로 연습을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데 이게 사람의 착각이라 살아가는 자체가 다 연습입니다. 알아도 연습 몰라도 연습니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것은 무조건 연습이 되는 겁니다. 하는만큼. 내가 내 자아가 깨어나서 내 마음을 스스로 조절하면 스스로 의식적으로 연습하게 되는 거지요.
마음을 바로 잡자. 마음을 바로 잡고 이런 감정 가지면 안되겠다 바로 잡고 그래서 자기 주관적으로 의식적으로 유기적으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통제 제어를 하는 거지요. 그래서 연습시키면 세상에서 실력있는 사람이 되고 신앙적으로 아주 좋은 사람이 됩니다. 편한대로 살아, 너 좋은대로 살아, 너 기분대로 살아. 그래서 이 세상은 소위 인권을 말하는 인간일수록 사람을 베려놓는 시대입니다. 성선설 성악설 그런 게 있습니다. 원래 사람은 선합니까 악합니까. 선하게 지음받았습니까 악하게 지음받았습니까. 선한게 맞습니다. 그 다음에 사람이 태어나고 타락해서 아담의 자손이 타락했습니까 조상이 타락했습니까. 그래서 다 타락이고 다 악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리적으로 떠나서 사람은 악합니다.
그런데 너 좋은 대로 살아 그러면 사람이 지식을 습득할수록 지성인이 되는 것이고 자기 위신 체면 권위 입장 이런 걸 생각해서 조심하는데 악으로 똘똘 멈춰서 되는 겁니다. 이런 타락한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연습으로 되는데 의식적으로 연습할 수도 있고 무의식 중에 연습하도록 되는데 내 마음을 다스려서 성화 연습함으로 공자를 따라서 도덕으로 살면 공자 닮은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나라가 망합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중국에 많이 유행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선이 500년 동안 굶고 빌어먹었습니다. 부처를 닮으면 돌이 됩니다. 공자 닮지 말고 부처 닮지말고 철학자 닮지말고 예수와 같이 되기를 그런 사람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예수님 닮은 사람이 될려면 그 길을 그대로 걸어가면 됩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해야겠다. 그게 어디 기록되어있습니까. 그런 걸 성경 구원도리라고 하고 말씀에 어긋나서 말씀에 맞춰넣을 때 연습이 되게 되어있어서 성화가 되게 되는 겁니다.
새벽기도를 나오기 시작해서 계속 나오면 나중에 안 나오면 가책이 됩니다. 그런데 새벽 기도를 우리는 각자 기도, 신풍 실시간예배 알아서 예배 여섯 번 매일 오다보면 되는데 한 번 빠지고 일주일에 다섯 번만 나가자. 그러면 한 번 빠지는 건 가책이 되다가 한 번 빠지고 한 번 빠지고 그러면 그러면 몇 주 지나면 한 번 빠져도 가책이 없습니다. 한 번 빠지는 연습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두 번 빠집니다. 두 번 빠져도 아무 가책이 안됩니다. 세 번 빠지지요. 그걸 악습이라고 하고 신앙 후퇴라고 합니다. 나중에 감각이 없어집니다. 새벽기도 꼬박꼬박 나오시다가 마음이 찔릴 겁니다. 하거나 말거나 무시한 그게 바로 양심을 짓밟아버리고 성령을 소멸한다고 그러고 그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하는 큰 죄가 되는 겁니다. 이걸 오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말하자면 이렇게 우리 사람 나라는 사람을 신앙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문통이 있고 좌우에 문지기 방이 있었습니다. 문간이란 문과 문 사이 사이인데 이 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심사한다는 뜻입니다. 3개씩 6개가 있습니다. 문지기 방은 문지기가 상주하는 방이고 거기 들어간 사람을 조사하고 살피는 사람이다. 방도 우리 속에 있는 것이고 문지기 방에 좌우에 있다 균형잡고 치우치지 말아라 치우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른 길을 걸어가는 게 어렵기 때문에 양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가는 길을 가르켜서 정로를 가는 길을 좁은 길이라고 합니다. 좁다는 게 아니라 정확한 길을 찾으라는 겁니다. 찾기가 어려워서 좁은길이라, 치우치지 않은 길이 좁은 길입니다. 찬송가 120장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전진 후퇴하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발전하는 죄인은 의인, 후퇴하는 의인은 죄인입니다. 아무리 의인이라도 어제까지 의인인데 오늘 후퇴하면 죄인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살필 때 살피는 종류를 일곱가지로 생각했는데 언행심사로 살핍니다. 나와 타와의 관계 나 외의 위로 하나님 밑으로 사람 이런 관계를 만듭니다. 나의 모든 생활을 살핍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 잘 사냐 어떻게 사냐, 너의 개인의 생활은 하냐, 절제도 하고 잘 하고 있냐 아내 역할 잘하고 있냐 자식 노릇 잘하냐 직장생활 잘하냐. 직장생활은 잘하는데 가장은 어떠냐. 얼마만큼 충성했느냐 그걸 살피고 돈벌이는 공부는 죽도록하고 예배는 새벽기도는 성경 기도는 얼마만큼 충성했느냐 아마 믿는 사람 90몇프로가 타락하지 않을까. 옛날에 주일 날에 재방송해서 한번씩 봤는데 처음에는 쉬운 문제 나가다가 한 번 떨어지고 어려운 문제 우수수 나와버립니다. 마지막에는 한 두명이 남습니다. 여섯 번째 뭘 조사한다고요 마지막에는 그래서 너라는 사람이 얼마만큼 바뀌어졌냐 인격의 잣대를 갖다줘버립니다. 위험요소 죄 불의 악성 악습들 이런 것들을 모든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들어가며 나오며 하는 게 현관이다.
육척이란 자기를 다 아는 숫자다 10척도 자기 전부 다 아는거도 13척은 다기 다 원한 다음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러면 창문입니다. 문지기 방에는 각각 창이 있습니다. 참 제가 애매한데 이 문은 큰 문입니다. 그림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건물처럼 되어진 통로가 사각으로 된 것도 있고 건물이 있는데 구조가 통로가 있고 10규빗인가요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벽 사이에도 창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는 현관에도 창이 크게 말하면 세 군데가 되었습니다. 문지기 방 각각 닫힌 창이 있고 좌우편에 있는 것이고 현관에도 있고 그러면 창이 뭐냐, 일단 문이 있고 창이 없으면 굉장히 답답해서 창이 있어야합니다. 예배당에도 창문 있고 그 창이 세 군데 있습니다. 그 창이 어떤 창이냐 닫힌 창입니다. 닫혔다는 것은 필요한 것은 들어오고 필요없는 걸 차단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창문이기 때문에 닫힌 창이라는 말은 열 수 있는 창입니까. 열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구조적으로 닫힌 창입니다. 필요에 따라 열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좀 넓게 해석해보는 겁니다. 닫힌 창이니까 폐쇄를 시켜서 못 열게 막아놓은 게 아니라 다 치었더라, 이 창은 창문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 문지기 방에는 개별적으로 창이 다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구조가 그렇게 생겼고 창이라는 것은 건물을 말합니까 사람을 말합니까. 역할을 공부해서 우리에게 이런 것이 있어야한다는 거지요. 창이란 공기 순환이고 바람과 공기와 햇빛 순환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봉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봉참은 유리로 되지 않고 문종이를 발라버립니다. 닫으면 햇빛이 못 들어오지요. 이 당시 유리가 있었는지 다 떠나서 햇빛이 들어오고 공기가 들어오고 그렇게 되는 것이고 창문의 역할은 햇빛은 들어오는데 공기와 바람은 차단되는 것이다. 그러면 햇빛은 무엇이며 바람은 뭔지 생각해보니까 성경에 해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햇빛은 위에서 내려오는 겁니다. 바람은 하늘에 속하기보다 땅에 속한겁니다. 하나님을 향해 들어가는 사람을 우리 신앙 걸음 걸음을 전부 조사하는 심사하는 사람이다. 무엇으로 심사하냐 기분대로 심사한다. 비싼 과외돈을 받아먹고 자기 제자들을 가리막 다 쳐놓고 그렇게 시험치는건데 음대를 부르는데 있습니까. 누가 누군지 모르게 시험치는데 돈 받아먹은 교수가 가르친 제자는 90점주고 탈락시켜버리고 그게 심사 채점하는 게 되는 겁니다. 예쁘네 착하네 합격 이렇게 심사하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시험칠 때 주관적인 시험은 어지간하면 거의 객관식지요. 안 그러면 안되는거지요. 그 심사는 문지기 방에 창을 두고 차단시켜버렸습니다. 내 편이니까 우리 집안이니까 예쁘게 봐주고 내가 싫은 사람이니까 공기와 바람이라고 차단시켜버린겁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살피든 살필 때 창을 열어놓고 인간지식 선입관 이런 건 차단시켜버리고 그런 것으로 사람을 살피면 안되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들어도록 햇빛이니까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은 진리고 영감이고 하나님의 은혜다.
세상적인 거 다 차단시켜버리고 진리와 영감으로만 하나님의 진리 말씀으로 살펴라 다른 사람이 너를 살필 때 이걸 살피고 이걸 가지고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게 하고 이걸 말씀한 것으로 생각하고 좌우편이랬으니까 안쪽이니까 좌우에는 통과하는데 걸어가는 내내 앞문까지 살피되 계속해서 끝까지 살피되 진리나 영감으로 살펴도 치우치면 안되는 겁니다. 주로 게으른 사람들이 뭘 하는 줄 아십니까. 기도만 합니다. 기도실에 앉아서 움직이지 싫고 활동성이 적은 사람들이 이러면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됩니다. 찬송으로 치우칩니다. 굉장히 은혜로울 때가 있습니다. 찬송을 한 번 하고 세 번까지도 해봤지요. 그런데 아무리 은혜롭다고 네 번 다섯 번 해버리면 치우쳐버리는거지요. 균형을 잡아야한다. 다 바쳐야하는데 이 세상에서는 균형맞게 주셨기 때문에 다 바쳐 충성하되 치우치지 말아라, 하나님께 기울어졌느냐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 양떼를 사랑해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해라. 남편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아내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람 사랑하는거죠. 직장 모르겠습니다. 다니엘의 충성 요셉의 충성 성경에 나옵니다. 자기 책장에서 상관들이 아까워서 못 놓는 겁니다. 왜 그랬습니까. 밤새도록 잠 안자고 새벽까지 쫓아와서 슬피 소리질렀습니다. 다레오왕이 누구입니까. 믿는 사람입니까 안 믿는 사람입니다. 안 믿는 사람인데 하나님을 섬기는 다니엘이 얼마나 아깝든지 그 아끼는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어놓고 하루종일 잠을 못자서
이게 믿는 사람이 직장에서 인정받는 그런 겁니다. 너가 교회간다고 그러면 직장 때려치우고 가라. 가정에서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그 사람이 돌아보는 겁니다. 치우치는 것이고 벽이 있습니다. 벽이니까 넘어오지 못하게 막은거지요. 인간지식이 현관의 창 들어가면 자기를 살피는건데 자기가 자기를 살필 때도 이거 없는 사람은 문제가 많은 겁니다. 북한이 다 잘못되고 안 좋은건데 북한에서 깨끗한거 부지런히 시킨다 자아비판은 나쁜 겁니까 좋은 겁니까. 좋은 겁니다. 비판적으로 보니까 목표가 틀리니까 그런 것이지 좋은 말로 자기 성찰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살피고 돌아보는 자기 성찰입니다. 만사 모든 면에서 자기 성찰이 없으면 자기 비판이 없으면 타락합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비판하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기를 돌아보는 게 이게 전부 현관 생활입니다. 남반에도 여반에도 돌아봐야할 분들 많습니다. 내가 나를 돌아볼 때에도 진리와 영감으로 돌아봐라, 내가 너를 살필 때 신앙 양심을 살펴라 새겨놨습니다. 이거는 영육의 축복이 약속된 걸음이다. 그러면 복을 받는 거다. 이게 종려나무를 새겨놓는 겁니다.
그래서 오전말씀을 복습했습니다. 에스겔 성전은 구원도리다. 그리고 지난 주 말씀 복습했고 창을 공부했습니다. 닫힌 창이니까 이걸로 살피라 여러 가지를 말씀했고 종려나무 함께하는 겁니다. 이게 말씀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06장, 192장
본문: 에스겔 40장 16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그 현관도 그러하다는 말은 앞에 문 안 좌우편 사이에 있는 것이 같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오전에 서론격으로 신앙상식에 대해서 성경은 구원도리라고 생각해봤습니다. 구원도리가 무엇인가 이 말씀을 하게 된 이유는 에스겔 성전이 무엇인가 설명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한 글자로 하면 집입니다. 집이기 때문에 글자를 글을 가지고 집을 설명해놓은겁니다. 집을 성전 하나님의 집이니까 왜 필요하냐 하나님을 향해 들어가는 그걸 글로 적어놓은 건데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모형을 만들면 만들 수 있을겁니다. 그런데 모세 성막도 솔로몬 성전도 에스겔 성전도 하나님을 모시는 우리를 만들어가도록 가르치는 것을 이걸 구원도리라고 말씀을 드린 겁니다. 길이라는 뜻인데 설명해놓은 게 성경 말씀입니다. 사람의 모든 생활을 의미합니다. 심신의 모든 활동 작용을 생활이라 말하고 걸어가는 생활이라 현실이 문이고 걸어가는 통로기 때문에 이런 저런 말을 하게 되는 겁니다.
구원이란 일차적으로 무엇이냐. 건져내는 겁니다. 일차적으로 구원은 건져내는 겁니다. 모세 이름이 물에서 건져냄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냅니다. 구원받은 모세가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그 모세를 건져낸 사람이 바로의 딸입니다. 그 바로의 궁전에서 바로가 주는 그 물 먹고 그 음식 먹고 거기서 다 배워서 이스라엘을 건져내는 겁니다. 기묘한 역사지요. 그래서 세상과 성도의 관계가 그런 겁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나서 다 받아들여서 그 세상, 한글은 천국겁니까 세상겁니까. 한글은 누가 만들었나요. 세종대왕이 한자는 중국 쪽이겠고, 이런 모든 지식들을 그렇고 다 받아가지고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서 이 세상을 먹고 마시고 나를 만들어서 만들어진 내가 하는 일은요. 천국 사람 만들고 이끌어가도록 하는 게 이겁니다.
40년에서 광야에서 신앙을 준비해서 나머지 40년은 신앙으로 준비하고 80세 되어서 비로소 광야로 인도했습니다. 40이라는 숫자는 보통 숫자가 아닙니다. 다윗이 40년 솔로몬이 40년 예수님이 금식기도하신지 40일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 저도 목회 딱 40년만 채우면 좋겠다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런 소원을 가지는 게 나쁜 게 아닙니다. 좋은거지. 건져냄 받고 우리는 죄에서 사망해서 건져냈고 2차구원, 건짐받은 사람이 성화구원 건설구원이라 그러는데 내용이 무엇인가요. 성화 말 그대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하는 것. 사람 변화입니다. 사람 변화가 인격 변화라 그 말이고 사람 자체가 변한다는 말입니다. 닭인데 오리가 된다. 그 정도로 된다는 뜻입니다. 닭이 오리될 수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그런 의미가 있는 겁니다. 껍데기만 변하는 게 아니고 많은 사람이 예수믿는다고하면 믿음이라고 껍데기만 페인트질 하면 된줄 아는데 벗겨내면 본모습이 나옵니다. 은에다가 금칠 해놓으면 벗겨내면 은이 됩니다. 그런 것을 의미합니다. 옛사람이 새사람을 세상적인 사람이 천국 중심의 사람으로 사람이 바뀌면 하는 건 전부 하나님과 동행이 됩니다. 이걸 신인양성일행이라 이게 최종목적입니다.
그리되면 우리 목적은 다 사람이 변화가 되는 게 의미인데 신구약 성경 말씀은 1차 구원을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을 건져서 구원해주신 게 아니고 건설 성화적으로 해주신 말씀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읽어보면 건설구원에 대한 말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형상으로 변해지느냐 이게 신구약 성경 전부 다입니다. 사람 변화는 쉬운 말로 뭐라고 합니까. 사람 변화, 글을 못 쓰는 사람이 있는데 잘 쓰는 사람이 될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자꾸 써보고 또 써보고 그러면 됩니다. 이걸 가지고 연습이라고 합니다. 계속해서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걸 연습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의식적으로 연습을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데 이게 사람의 착각이라 살아가는 자체가 다 연습입니다. 알아도 연습 몰라도 연습니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것은 무조건 연습이 되는 겁니다. 하는만큼. 내가 내 자아가 깨어나서 내 마음을 스스로 조절하면 스스로 의식적으로 연습하게 되는 거지요.
마음을 바로 잡자. 마음을 바로 잡고 이런 감정 가지면 안되겠다 바로 잡고 그래서 자기 주관적으로 의식적으로 유기적으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통제 제어를 하는 거지요. 그래서 연습시키면 세상에서 실력있는 사람이 되고 신앙적으로 아주 좋은 사람이 됩니다. 편한대로 살아, 너 좋은대로 살아, 너 기분대로 살아. 그래서 이 세상은 소위 인권을 말하는 인간일수록 사람을 베려놓는 시대입니다. 성선설 성악설 그런 게 있습니다. 원래 사람은 선합니까 악합니까. 선하게 지음받았습니까 악하게 지음받았습니까. 선한게 맞습니다. 그 다음에 사람이 태어나고 타락해서 아담의 자손이 타락했습니까 조상이 타락했습니까. 그래서 다 타락이고 다 악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리적으로 떠나서 사람은 악합니다.
그런데 너 좋은 대로 살아 그러면 사람이 지식을 습득할수록 지성인이 되는 것이고 자기 위신 체면 권위 입장 이런 걸 생각해서 조심하는데 악으로 똘똘 멈춰서 되는 겁니다. 이런 타락한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연습으로 되는데 의식적으로 연습할 수도 있고 무의식 중에 연습하도록 되는데 내 마음을 다스려서 성화 연습함으로 공자를 따라서 도덕으로 살면 공자 닮은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나라가 망합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중국에 많이 유행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선이 500년 동안 굶고 빌어먹었습니다. 부처를 닮으면 돌이 됩니다. 공자 닮지 말고 부처 닮지말고 철학자 닮지말고 예수와 같이 되기를 그런 사람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예수님 닮은 사람이 될려면 그 길을 그대로 걸어가면 됩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해야겠다. 그게 어디 기록되어있습니까. 그런 걸 성경 구원도리라고 하고 말씀에 어긋나서 말씀에 맞춰넣을 때 연습이 되게 되어있어서 성화가 되게 되는 겁니다.
새벽기도를 나오기 시작해서 계속 나오면 나중에 안 나오면 가책이 됩니다. 그런데 새벽 기도를 우리는 각자 기도, 신풍 실시간예배 알아서 예배 여섯 번 매일 오다보면 되는데 한 번 빠지고 일주일에 다섯 번만 나가자. 그러면 한 번 빠지는 건 가책이 되다가 한 번 빠지고 한 번 빠지고 그러면 그러면 몇 주 지나면 한 번 빠져도 가책이 없습니다. 한 번 빠지는 연습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두 번 빠집니다. 두 번 빠져도 아무 가책이 안됩니다. 세 번 빠지지요. 그걸 악습이라고 하고 신앙 후퇴라고 합니다. 나중에 감각이 없어집니다. 새벽기도 꼬박꼬박 나오시다가 마음이 찔릴 겁니다. 하거나 말거나 무시한 그게 바로 양심을 짓밟아버리고 성령을 소멸한다고 그러고 그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하는 큰 죄가 되는 겁니다. 이걸 오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말하자면 이렇게 우리 사람 나라는 사람을 신앙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문통이 있고 좌우에 문지기 방이 있었습니다. 문간이란 문과 문 사이 사이인데 이 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심사한다는 뜻입니다. 3개씩 6개가 있습니다. 문지기 방은 문지기가 상주하는 방이고 거기 들어간 사람을 조사하고 살피는 사람이다. 방도 우리 속에 있는 것이고 문지기 방에 좌우에 있다 균형잡고 치우치지 말아라 치우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른 길을 걸어가는 게 어렵기 때문에 양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가는 길을 가르켜서 정로를 가는 길을 좁은 길이라고 합니다. 좁다는 게 아니라 정확한 길을 찾으라는 겁니다. 찾기가 어려워서 좁은길이라, 치우치지 않은 길이 좁은 길입니다. 찬송가 120장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전진 후퇴하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발전하는 죄인은 의인, 후퇴하는 의인은 죄인입니다. 아무리 의인이라도 어제까지 의인인데 오늘 후퇴하면 죄인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살필 때 살피는 종류를 일곱가지로 생각했는데 언행심사로 살핍니다. 나와 타와의 관계 나 외의 위로 하나님 밑으로 사람 이런 관계를 만듭니다. 나의 모든 생활을 살핍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 잘 사냐 어떻게 사냐, 너의 개인의 생활은 하냐, 절제도 하고 잘 하고 있냐 아내 역할 잘하고 있냐 자식 노릇 잘하냐 직장생활 잘하냐. 직장생활은 잘하는데 가장은 어떠냐. 얼마만큼 충성했느냐 그걸 살피고 돈벌이는 공부는 죽도록하고 예배는 새벽기도는 성경 기도는 얼마만큼 충성했느냐 아마 믿는 사람 90몇프로가 타락하지 않을까. 옛날에 주일 날에 재방송해서 한번씩 봤는데 처음에는 쉬운 문제 나가다가 한 번 떨어지고 어려운 문제 우수수 나와버립니다. 마지막에는 한 두명이 남습니다. 여섯 번째 뭘 조사한다고요 마지막에는 그래서 너라는 사람이 얼마만큼 바뀌어졌냐 인격의 잣대를 갖다줘버립니다. 위험요소 죄 불의 악성 악습들 이런 것들을 모든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들어가며 나오며 하는 게 현관이다.
육척이란 자기를 다 아는 숫자다 10척도 자기 전부 다 아는거도 13척은 다기 다 원한 다음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러면 창문입니다. 문지기 방에는 각각 창이 있습니다. 참 제가 애매한데 이 문은 큰 문입니다. 그림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건물처럼 되어진 통로가 사각으로 된 것도 있고 건물이 있는데 구조가 통로가 있고 10규빗인가요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벽 사이에도 창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는 현관에도 창이 크게 말하면 세 군데가 되었습니다. 문지기 방 각각 닫힌 창이 있고 좌우편에 있는 것이고 현관에도 있고 그러면 창이 뭐냐, 일단 문이 있고 창이 없으면 굉장히 답답해서 창이 있어야합니다. 예배당에도 창문 있고 그 창이 세 군데 있습니다. 그 창이 어떤 창이냐 닫힌 창입니다. 닫혔다는 것은 필요한 것은 들어오고 필요없는 걸 차단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창문이기 때문에 닫힌 창이라는 말은 열 수 있는 창입니까. 열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구조적으로 닫힌 창입니다. 필요에 따라 열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좀 넓게 해석해보는 겁니다. 닫힌 창이니까 폐쇄를 시켜서 못 열게 막아놓은 게 아니라 다 치었더라, 이 창은 창문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 문지기 방에는 개별적으로 창이 다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구조가 그렇게 생겼고 창이라는 것은 건물을 말합니까 사람을 말합니까. 역할을 공부해서 우리에게 이런 것이 있어야한다는 거지요. 창이란 공기 순환이고 바람과 공기와 햇빛 순환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봉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봉참은 유리로 되지 않고 문종이를 발라버립니다. 닫으면 햇빛이 못 들어오지요. 이 당시 유리가 있었는지 다 떠나서 햇빛이 들어오고 공기가 들어오고 그렇게 되는 것이고 창문의 역할은 햇빛은 들어오는데 공기와 바람은 차단되는 것이다. 그러면 햇빛은 무엇이며 바람은 뭔지 생각해보니까 성경에 해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햇빛은 위에서 내려오는 겁니다. 바람은 하늘에 속하기보다 땅에 속한겁니다. 하나님을 향해 들어가는 사람을 우리 신앙 걸음 걸음을 전부 조사하는 심사하는 사람이다. 무엇으로 심사하냐 기분대로 심사한다. 비싼 과외돈을 받아먹고 자기 제자들을 가리막 다 쳐놓고 그렇게 시험치는건데 음대를 부르는데 있습니까. 누가 누군지 모르게 시험치는데 돈 받아먹은 교수가 가르친 제자는 90점주고 탈락시켜버리고 그게 심사 채점하는 게 되는 겁니다. 예쁘네 착하네 합격 이렇게 심사하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시험칠 때 주관적인 시험은 어지간하면 거의 객관식지요. 안 그러면 안되는거지요. 그 심사는 문지기 방에 창을 두고 차단시켜버렸습니다. 내 편이니까 우리 집안이니까 예쁘게 봐주고 내가 싫은 사람이니까 공기와 바람이라고 차단시켜버린겁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살피든 살필 때 창을 열어놓고 인간지식 선입관 이런 건 차단시켜버리고 그런 것으로 사람을 살피면 안되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들어도록 햇빛이니까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은 진리고 영감이고 하나님의 은혜다.
세상적인 거 다 차단시켜버리고 진리와 영감으로만 하나님의 진리 말씀으로 살펴라 다른 사람이 너를 살필 때 이걸 살피고 이걸 가지고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게 하고 이걸 말씀한 것으로 생각하고 좌우편이랬으니까 안쪽이니까 좌우에는 통과하는데 걸어가는 내내 앞문까지 살피되 계속해서 끝까지 살피되 진리나 영감으로 살펴도 치우치면 안되는 겁니다. 주로 게으른 사람들이 뭘 하는 줄 아십니까. 기도만 합니다. 기도실에 앉아서 움직이지 싫고 활동성이 적은 사람들이 이러면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됩니다. 찬송으로 치우칩니다. 굉장히 은혜로울 때가 있습니다. 찬송을 한 번 하고 세 번까지도 해봤지요. 그런데 아무리 은혜롭다고 네 번 다섯 번 해버리면 치우쳐버리는거지요. 균형을 잡아야한다. 다 바쳐야하는데 이 세상에서는 균형맞게 주셨기 때문에 다 바쳐 충성하되 치우치지 말아라, 하나님께 기울어졌느냐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 양떼를 사랑해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해라. 남편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아내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람 사랑하는거죠. 직장 모르겠습니다. 다니엘의 충성 요셉의 충성 성경에 나옵니다. 자기 책장에서 상관들이 아까워서 못 놓는 겁니다. 왜 그랬습니까. 밤새도록 잠 안자고 새벽까지 쫓아와서 슬피 소리질렀습니다. 다레오왕이 누구입니까. 믿는 사람입니까 안 믿는 사람입니다. 안 믿는 사람인데 하나님을 섬기는 다니엘이 얼마나 아깝든지 그 아끼는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어놓고 하루종일 잠을 못자서
이게 믿는 사람이 직장에서 인정받는 그런 겁니다. 너가 교회간다고 그러면 직장 때려치우고 가라. 가정에서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그 사람이 돌아보는 겁니다. 치우치는 것이고 벽이 있습니다. 벽이니까 넘어오지 못하게 막은거지요. 인간지식이 현관의 창 들어가면 자기를 살피는건데 자기가 자기를 살필 때도 이거 없는 사람은 문제가 많은 겁니다. 북한이 다 잘못되고 안 좋은건데 북한에서 깨끗한거 부지런히 시킨다 자아비판은 나쁜 겁니까 좋은 겁니까. 좋은 겁니다. 비판적으로 보니까 목표가 틀리니까 그런 것이지 좋은 말로 자기 성찰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살피고 돌아보는 자기 성찰입니다. 만사 모든 면에서 자기 성찰이 없으면 자기 비판이 없으면 타락합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비판하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기를 돌아보는 게 이게 전부 현관 생활입니다. 남반에도 여반에도 돌아봐야할 분들 많습니다. 내가 나를 돌아볼 때에도 진리와 영감으로 돌아봐라, 내가 너를 살필 때 신앙 양심을 살펴라 새겨놨습니다. 이거는 영육의 축복이 약속된 걸음이다. 그러면 복을 받는 거다. 이게 종려나무를 새겨놓는 겁니다.
그래서 오전말씀을 복습했습니다. 에스겔 성전은 구원도리다. 그리고 지난 주 말씀 복습했고 창을 공부했습니다. 닫힌 창이니까 이걸로 살피라 여러 가지를 말씀했고 종려나무 함께하는 겁니다. 이게 말씀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