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밤
김동민2024-04-24조회 190추천 26
2024년 4월 24일 수밤
찬송: 7장, 90장
본문: 이사야 5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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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나라 민족 백성들이 간절한 기대를 져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져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이방을 의지하고 나라가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아 엉망이 된 상황이 되고 있었습니다. 드물게 좋은 왕들이 나서 완전히 망하진 않아도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상황이 되어져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그런 수고와 노력과 기대와 이사야 선지를 통해 밝혀놓은 것이고 원론적으로 따지면 하나님의 감동으로 영감으로 되어있었지만 자기가 나라 민족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 기록이 그러한 것이고 이런 것을 유기적 영감이라고 말하지요. 이런 것은 성경 기록설에 중요하기 때문에 외워두시는 게 좋습니다. 자의적이라는 말이고 자기가 보고 듣고 깨닫고 느낀 바를 유기적이라고 말합니다. 강제가 아니고 기계가 아니고 안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역사인데 이사야에게는 자의사로 보고 듣고 느끼고 한 것을 기록한 것이 성경이고 그렇게 되어진 처참한 광경을 보고 느낀겁니다. 그러면서 이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인데 하나님의 백성인데 이 나라 이 백성에게 어떻게 큰 수고하셨고 어떤 기대를 하고 계시는게 기대를 져버렸고 앞으로 어떻게 되어질까를 하나님을 대신해 시로 노래로 예레미야 선지가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고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시대 이 시대에 같은 그 나라 그 민족을 봐도 그 보는 사람의 인식과 각도에 따라서 전혀 달리 보여지고 달리 느끼게 되는 겁니다. 같은 사람을 보고 같은 사물을 봐도 보는 사람이 어떤 눈을 가지고 보느냐 그게 전혀 다르게 보이게 되는 겁니다. 나라가 엉망이 되어져있어도 잘 먹고 잘 살고 근심걱정없이 잘 사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이미 앗수르라든지 히스기야 시대에 침공한 앗수르였고 매국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근심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그런데 통틀어서 하나님의 심정으로 그 나라를 본 사람은 이사야 선지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나라를 하시는 각도 그대로 보는 것이고 하나님의 심정을 그대로 기록하신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기억할 것은 1절에서 나를 위하여 세 번이나 말씀하신 그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봐야겠다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거하고 내가 나를 보는 거 어느 가정을 보는 것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보시는 것과 내가 교회를 보는 것 하나님께서 나라를 보시는 것과 내가 보는 것이 전부 같은지 다른지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될 거 같습니다. 노아 인구때 수십억의 인구가 살고 있었고 문화가 발달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을 쓸어버리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보고 준비한 사람은 노아의 가족 외에는 없었다는 겁니다. 수십억의 인구가 있습니다. 사람의 숫자라는 것은 필요할 때는 필요한데 이사야 3장입니까. 2장 끝에 보니까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코에 호흡하는 인간을 몇 십억이라도 의미없고 가치없다 그 말이지요. 숫자 많은 게 소용없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 시대를 보는 것처럼 노아 때 그 시대를 보는 사람이 노아 외에는 없었다 그렇지요. 소돔 고모라 성이 그렇게 갑자기 멸망받으리라고 안 사람은 없었습니다. 마지막 예루살렘도 그랬습니다. 한 명이라도 있는가 봐라. 그 성을 멸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그렇게 보는데 뭐 눈에 뭐 밖에 안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하나님의 보시는 그런 각도로 보니까 보여지는 겁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순종하고 기도로 사귀고 실행으로 사귀고 그 시대가 환하게 보이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과 멀어지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어찌되든 상관이 없는 것이고 그리 되는 거지요.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이 당시 포도원 노래로 비유한 이런 이스라엘의 상황을 하나님이 오시는 그대로 보고 그대로 노래했듯이 우리 시대, 우리가 우리 시대를 논할 만큼 잘난 사람이 아닐찌라도 내가 사는 시대가 어떤 시대냐. 이 시대 사람이 어떠하며 이 시대 사람들의 행복관이 무엇이며. 초중고등학생들 설문을 조사해서 무엇이 가장 행복하냐 어떤 게 행복한 기준이 뭔가 하니까 70프로가 돈이 많으면 행복하겠다 했다지요. 유물주의고 무신론주의가 되고 공산주의입니다. 유물주의는 유신론이 되게 되고 돈이면 안하는 짓이 없고 못하는 짓이 없는 상황이 되어지고 넓고 넓은 세상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별히 이게 심합니다.
교육을 잘못했다는 뜻이고 어른들이 잘못 가르쳤다는 뜻이고 교회가 교회 노릇을 바로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너희 세상의 빛이다. 세계는 아닐찌라도 한국 교회가 바로 되었다면 청소년들의 인식이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겁니다. 이런 책임은 앞으로 하나님 앞에 심판 받게 되어있는 겁니다. 지금 시대가 이런 시대다. 돈만 있으면 부모님보다도 돈이 우선이다. 다 뒤집어진 거지요. 이런 시대를 보면서 말들을 들을 때 기가 막히고 탄식이 되고 그게 이사야 선지입니다. 보통 문제가 아닌 거지요. 좀 더 같이 우리가 사는 나라, 우리 주변 환경 내가 사는 다니는 교회, 나 자신 이것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고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으로 자신을 살피는 우리가 먼저 되어야합니다.
1절에서 세 번 말씀한게 이런 것을 가르키는 겁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으며, 공과를 하나 살펴갑니다. 포도원은 구약시대는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포도원입니다. 포도원은 포도나무가 아니지요. 하나님이 농부입니까. 비유하신 겁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포도원으로 비유하신 겁니다. 구약에는 이스라엘이 포도원이고 전체로 말하면 하나님의 교회가 포도원이다. 농부에게 포도원은 업이고 하는 일 전부 다가 포도원입니다. 이건 비유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포도원, 심히 기름진 산에 있다고 했습니다. 기름져도 좋은 건데 심히 기름지다. 아주 아주 좋은 곳이다. 포도나무가 자라기에 가장 좋은 가장 적합한. 최적이라고 그렇게 말하죠. 하나님께서 포도원의 교회가 구원을 이루어 가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기에 말씀으로 닮아가기에 가장 좋은 가장 적합한 것을 조성했다 이게 아담 하와의 에덴 동산입니다.
본문 보겠습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극상품이라는 말은 가장 좋은 더 이상이 없는 최고의 종자, 극상품 최고의 종자니까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종자다. 하나님을 닮아갈 하나님의 종자. 이 포도원을 조성하시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는데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돌을 제했다. 이것은 원론적으로 방해물을 제했다는 말입니다. 구원과 관련된 교리와 연결되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하나님이 심히 기름진 산에 포도원을 조성하시고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돌을 제했습니다. 우리들이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 우리 믿는 사람이 방해물은 무엇인가. 믿는 사람 우리들이 방해물이 무엇인가, 심는 게 뭐냐 중생시켜서 부르신 겁니다. 중생시켜서 믿게 하기 전에 먼저 돌을 제했다. 중생시켜서 믿는 사람 만들려면 먼저 방해물을 치워야합니다. 죄의 값입니다. 사망. 사망의 모든 값을 제거했습니다. 마귀의 모든 송사를 제거해버렸습니다. 무엇으로 주님의 대속으로 사활의 대속 공로 베푸셔서 돌을 다 제했습니다. 동시에 주님 공로의 대속 인하여 방해 세력을 제거하고 옛사람을 꺾는 능력까지 주신 것입니다. 그 다음은 포도나무는 심은 겁니다. 심었습니다. 심은 게 뭐냐. 포도나무를 심은 게 중생시킨 거니까 중생시켜 부르셨습니다. 부르시고 그 중에 망대를 세웠습니다. 망대는 멀리보고 대적과 도적을 보고 막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양심을 통해서 알게 하시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대적도 보고 도적도 보고 미리 보고 알 수 있고 망대를 세우셨다. 그리고 마지막에 포도를 짜는 건 결실할 수 있도록 섭리로 돕는 역사를 하신 겁니다. 하나님의 포도원, 포도나무된 우리들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자기에서 최적으로 하시고 대속의 공로를 베푸셔서 중생시켜 부르시고 진리와 영삼을 주셔서 현실을 살아갈 때 섭리로 역사가 되시는 하나님의 수고입니다.
그리고 4절에 보니까 유다 사람들아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하나님이 택자를 위해서 한 것을 이외에 무엇이 있었느냐. 전지의 지혜로 할 수 있는 걸 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조건 극상품 포도가 맺게 되어있습니다. 필연이고 절대적인 겁니다. 그런데 여기 포도나무는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고 모든 걸 완벽하게 조성해놨는데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왜냐 이건 포도나무가 아니고 사람이기 때문에 비유이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포도나무이니까 이 원리에서 어긋나는 거지요. 이렇게 하면 반드시 좋은 포도가 맺어져야 정상인데 그렇게 구비시켜 놓으셨는데 안됐으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탈선했기 때문에
이게 우리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하늘이여 땅이여 거기로 연결이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위해 다 쏟아부었는데 그렇게 되었고 우리 위해 다 쏟아부었는데 그렇게 되었고 롯 있었는데 엉망이 되었고 마지막에 예루살렘 성이 진리와 공의를 찾는 자가 없었고 몇몇 사람에게 없었고 실패 다 했고 생명이 이어져서 교회 역사가 구약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보면 아벨을 죽인 것은 아벨 계통으로 이어져야하는데 마귀가 아벨을 죽여버린겁니다. 아벨의 계통에서 예수님이 나셔야하는데 그러니까 다른 계통을 주신 거지요. 같은 아담의 자손이지만 셋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어떻게 해도 생명이 꺼지지 않고 이어지도록 하는 오늘까지 역사라 그 말이고 생명의 역사는 많은 게 아닙니다. 씨앗이라는 것은 종자라는 것은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많은 게 필요한 게 아니라 공회적으로 많은 게 필요한 게 아니라 하나가 있으면 다윗 하나가 있으면 이스라엘 일으켰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생명이 있었고 생명이 자라서 번창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수가 많으니까 타락하게 되고 그러면 매를 맞아서 망해버리고 그 가운데 생명이 자라게 되고 많아지면 다수가 되니까 타락하고 또 생명이 나서 이뤄지고 이게 6천년 교회 역사입니다. 실제로 그렇고 오늘까지 다 그런겁니다. 이런 역사로 이어왔기 때문에 한 사람이 그렇게 중하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생명이 있으면 많은 결실을 맺게 되는 겁니다.
다 말라 비틀어져 죽었는데 봄 되면은 싹이 나옵니다. 죽어있는 것은 봄이 안되지요. 생명이 중요한 겁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이 시각 가지고 이런 각도도 오늘을 보고 시대를 보고 나라를 보고 믿는 사람을 보고 우리 자신을 보고 내 속을 들여다보고 하나님의 심정으로 살피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좋은 포도 구원을 잘 이뤄서 최고의 산에다가 모든 방해물 다 제거하고 말씀으로 순종하고 양심대로 해서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의 형상으로 갈 수 있도록 기대하고 계셨는데 오늘날 교회들 한국의 교회 세계의 교회 여기 우리도 안 그럴 때가 있겠지만 인본주의가 되고 세상주의가 되고 들포도란 인본주의고 세상 주의를 말합니다. 자기 중심이고 자기 중심대로 살아가는 들포도입니다.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그렇다고 하는 것이 아니지요. 실제로 믿어야하는데 참 믿고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고 하늘만 바라보고 계명을 지키면서 실제로 하는 사람은 드물고 이렇게 살아야한다고 하는 사람이 오늘날 세계에 얼마나 될까 별로 많지를 않을 겁니다. 이런 인식조차 없는 것, 예수 믿는 신앙이 이종교 신앙과 다를 것없는 교양이고 지식이고 사교 모임이고 이렇게 인본이 되고 세본이 되는 것이 들포도입니다. 이게 들 포도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된 교회들을 처리할 때 여섯가지를 처리했지요.
울타리 걷어서 먹힘을 당하게 한다. 교회가 세상의 밥이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세계 교회 한국 교회가 딱 그렇습니다. 선거 때만 되면 예수 믿고 불교 믿고 천주교 믿고 문화라는 더러운 이름의 밥이 돼서 춤을 추고 강단에서 춤을 추고 드럼을 치고 그러는 게 더러운 것의 밥이 되어서 그런 겁니다. 찬송가라는 이름을 거기 가져다 붙이면 욕이 되는 겁니다. 교회가 세상에 밟힙니다. 몇 십년 전만 해도 목사라 그러면 그래도 존경을 했습니다. 교회라 그러면 남다르게 봤습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이 낫다. 장로라 하면 존경했고 집사라 하면 다르게 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요 목사라 하면 똥처럼 봅니다. 교회를 밟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밟히고 있습니다. 교회를 남다르게 보는 인식이 없어졌고 정의 중보다도 인정을 못 받습니다. 자업자득이지요. 다 무너져서 짓밟히게 하는 것이고 모태신앙으로 65년 믿어오면서 이렇게 밟혀온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자초한 겁니다.
곡식이 나고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어야하는데 교인이 없습니다. 교인 다운 교인이 없습니다.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이 없는 것인데 예수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 재미로 가고 그러지 교인이 없습니다. 숫자는 가치가 없습니다. 다시는 가지를 다르거나 북돋우지 못한다. 뿌리를 감싸고 있는 것을 흙이라고 합니다. 나무도 자라면 뿌리가 커지기 때문에 돋아줘야합니다. 나무가 잘 자라도록 보호를 해줘야합니다. 가지를 자르는 것은 병든 가지 잘라줘야 열매맺을 가지가 열매를 맺습니다.
복을 돋우고 가지를 자르는 것은 농부가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돕는 역사가 없다는 말입니다. 교회에 대해서 성령의 보호가 없는 겁니다. 남다르게 관리하는데 교회가 교회가 아닌데 포도원이 아닌데 던져버리는거죠. 가시가 뭐냐 성경에 다른 말로 쓴뿌리라고 합니다. 그게 사람의 인생을 망쳐놨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구름을 명하여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합니다. 진리와 영감이 없어집니다. 진리고 영감인데 대속이고 촛대를 옮겨버리는 겁니다. 한국의 모든 모습들이 딱 그렇습니다. 이사야같은 시각이 되는 것이 아니면 눈이 어두운겁니다. 한국 교회가 그렇게 보이는건지요. 실상이니까. 과장도 아니고 한국 현재 교회들의 모습이 그대로 다 들어있습니다. 울타리르 걷어버렸습니다. 세상 밥이 되었습니다. 지근지근 밟힙니다. 숫자가 많은데 교인다운 교인이 얼마나 되는지. 이렇게 처리합니다. 북이스라엘은 말할 게 없고 이사야 선지를 통해서 이렇게 노래로 말씀한 것이고 이 시대를 기르치고 이 교회를 가르치고 자신을 가르친다. 하나님의 시각과 심정으로 자신을 돌아봐야합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7장, 90장
본문: 이사야 5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이스라엘 나라 민족 백성들이 간절한 기대를 져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져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이방을 의지하고 나라가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아 엉망이 된 상황이 되고 있었습니다. 드물게 좋은 왕들이 나서 완전히 망하진 않아도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상황이 되어져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그런 수고와 노력과 기대와 이사야 선지를 통해 밝혀놓은 것이고 원론적으로 따지면 하나님의 감동으로 영감으로 되어있었지만 자기가 나라 민족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 기록이 그러한 것이고 이런 것을 유기적 영감이라고 말하지요. 이런 것은 성경 기록설에 중요하기 때문에 외워두시는 게 좋습니다. 자의적이라는 말이고 자기가 보고 듣고 깨닫고 느낀 바를 유기적이라고 말합니다. 강제가 아니고 기계가 아니고 안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역사인데 이사야에게는 자의사로 보고 듣고 느끼고 한 것을 기록한 것이 성경이고 그렇게 되어진 처참한 광경을 보고 느낀겁니다. 그러면서 이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인데 하나님의 백성인데 이 나라 이 백성에게 어떻게 큰 수고하셨고 어떤 기대를 하고 계시는게 기대를 져버렸고 앞으로 어떻게 되어질까를 하나님을 대신해 시로 노래로 예레미야 선지가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고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시대 이 시대에 같은 그 나라 그 민족을 봐도 그 보는 사람의 인식과 각도에 따라서 전혀 달리 보여지고 달리 느끼게 되는 겁니다. 같은 사람을 보고 같은 사물을 봐도 보는 사람이 어떤 눈을 가지고 보느냐 그게 전혀 다르게 보이게 되는 겁니다. 나라가 엉망이 되어져있어도 잘 먹고 잘 살고 근심걱정없이 잘 사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이미 앗수르라든지 히스기야 시대에 침공한 앗수르였고 매국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근심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그런데 통틀어서 하나님의 심정으로 그 나라를 본 사람은 이사야 선지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나라를 하시는 각도 그대로 보는 것이고 하나님의 심정을 그대로 기록하신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기억할 것은 1절에서 나를 위하여 세 번이나 말씀하신 그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봐야겠다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거하고 내가 나를 보는 거 어느 가정을 보는 것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보시는 것과 내가 교회를 보는 것 하나님께서 나라를 보시는 것과 내가 보는 것이 전부 같은지 다른지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될 거 같습니다. 노아 인구때 수십억의 인구가 살고 있었고 문화가 발달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을 쓸어버리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보고 준비한 사람은 노아의 가족 외에는 없었다는 겁니다. 수십억의 인구가 있습니다. 사람의 숫자라는 것은 필요할 때는 필요한데 이사야 3장입니까. 2장 끝에 보니까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코에 호흡하는 인간을 몇 십억이라도 의미없고 가치없다 그 말이지요. 숫자 많은 게 소용없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 시대를 보는 것처럼 노아 때 그 시대를 보는 사람이 노아 외에는 없었다 그렇지요. 소돔 고모라 성이 그렇게 갑자기 멸망받으리라고 안 사람은 없었습니다. 마지막 예루살렘도 그랬습니다. 한 명이라도 있는가 봐라. 그 성을 멸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그렇게 보는데 뭐 눈에 뭐 밖에 안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하나님의 보시는 그런 각도로 보니까 보여지는 겁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순종하고 기도로 사귀고 실행으로 사귀고 그 시대가 환하게 보이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과 멀어지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어찌되든 상관이 없는 것이고 그리 되는 거지요.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이 당시 포도원 노래로 비유한 이런 이스라엘의 상황을 하나님이 오시는 그대로 보고 그대로 노래했듯이 우리 시대, 우리가 우리 시대를 논할 만큼 잘난 사람이 아닐찌라도 내가 사는 시대가 어떤 시대냐. 이 시대 사람이 어떠하며 이 시대 사람들의 행복관이 무엇이며. 초중고등학생들 설문을 조사해서 무엇이 가장 행복하냐 어떤 게 행복한 기준이 뭔가 하니까 70프로가 돈이 많으면 행복하겠다 했다지요. 유물주의고 무신론주의가 되고 공산주의입니다. 유물주의는 유신론이 되게 되고 돈이면 안하는 짓이 없고 못하는 짓이 없는 상황이 되어지고 넓고 넓은 세상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별히 이게 심합니다.
교육을 잘못했다는 뜻이고 어른들이 잘못 가르쳤다는 뜻이고 교회가 교회 노릇을 바로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너희 세상의 빛이다. 세계는 아닐찌라도 한국 교회가 바로 되었다면 청소년들의 인식이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겁니다. 이런 책임은 앞으로 하나님 앞에 심판 받게 되어있는 겁니다. 지금 시대가 이런 시대다. 돈만 있으면 부모님보다도 돈이 우선이다. 다 뒤집어진 거지요. 이런 시대를 보면서 말들을 들을 때 기가 막히고 탄식이 되고 그게 이사야 선지입니다. 보통 문제가 아닌 거지요. 좀 더 같이 우리가 사는 나라, 우리 주변 환경 내가 사는 다니는 교회, 나 자신 이것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고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으로 자신을 살피는 우리가 먼저 되어야합니다.
1절에서 세 번 말씀한게 이런 것을 가르키는 겁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으며, 공과를 하나 살펴갑니다. 포도원은 구약시대는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포도원입니다. 포도원은 포도나무가 아니지요. 하나님이 농부입니까. 비유하신 겁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포도원으로 비유하신 겁니다. 구약에는 이스라엘이 포도원이고 전체로 말하면 하나님의 교회가 포도원이다. 농부에게 포도원은 업이고 하는 일 전부 다가 포도원입니다. 이건 비유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포도원, 심히 기름진 산에 있다고 했습니다. 기름져도 좋은 건데 심히 기름지다. 아주 아주 좋은 곳이다. 포도나무가 자라기에 가장 좋은 가장 적합한. 최적이라고 그렇게 말하죠. 하나님께서 포도원의 교회가 구원을 이루어 가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기에 말씀으로 닮아가기에 가장 좋은 가장 적합한 것을 조성했다 이게 아담 하와의 에덴 동산입니다.
본문 보겠습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극상품이라는 말은 가장 좋은 더 이상이 없는 최고의 종자, 극상품 최고의 종자니까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종자다. 하나님을 닮아갈 하나님의 종자. 이 포도원을 조성하시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는데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돌을 제했다. 이것은 원론적으로 방해물을 제했다는 말입니다. 구원과 관련된 교리와 연결되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하나님이 심히 기름진 산에 포도원을 조성하시고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돌을 제했습니다. 우리들이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 우리 믿는 사람이 방해물은 무엇인가. 믿는 사람 우리들이 방해물이 무엇인가, 심는 게 뭐냐 중생시켜서 부르신 겁니다. 중생시켜서 믿게 하기 전에 먼저 돌을 제했다. 중생시켜서 믿는 사람 만들려면 먼저 방해물을 치워야합니다. 죄의 값입니다. 사망. 사망의 모든 값을 제거했습니다. 마귀의 모든 송사를 제거해버렸습니다. 무엇으로 주님의 대속으로 사활의 대속 공로 베푸셔서 돌을 다 제했습니다. 동시에 주님 공로의 대속 인하여 방해 세력을 제거하고 옛사람을 꺾는 능력까지 주신 것입니다. 그 다음은 포도나무는 심은 겁니다. 심었습니다. 심은 게 뭐냐. 포도나무를 심은 게 중생시킨 거니까 중생시켜 부르셨습니다. 부르시고 그 중에 망대를 세웠습니다. 망대는 멀리보고 대적과 도적을 보고 막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양심을 통해서 알게 하시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대적도 보고 도적도 보고 미리 보고 알 수 있고 망대를 세우셨다. 그리고 마지막에 포도를 짜는 건 결실할 수 있도록 섭리로 돕는 역사를 하신 겁니다. 하나님의 포도원, 포도나무된 우리들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자기에서 최적으로 하시고 대속의 공로를 베푸셔서 중생시켜 부르시고 진리와 영삼을 주셔서 현실을 살아갈 때 섭리로 역사가 되시는 하나님의 수고입니다.
그리고 4절에 보니까 유다 사람들아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하나님이 택자를 위해서 한 것을 이외에 무엇이 있었느냐. 전지의 지혜로 할 수 있는 걸 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조건 극상품 포도가 맺게 되어있습니다. 필연이고 절대적인 겁니다. 그런데 여기 포도나무는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고 모든 걸 완벽하게 조성해놨는데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왜냐 이건 포도나무가 아니고 사람이기 때문에 비유이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포도나무이니까 이 원리에서 어긋나는 거지요. 이렇게 하면 반드시 좋은 포도가 맺어져야 정상인데 그렇게 구비시켜 놓으셨는데 안됐으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탈선했기 때문에
이게 우리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하늘이여 땅이여 거기로 연결이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위해 다 쏟아부었는데 그렇게 되었고 우리 위해 다 쏟아부었는데 그렇게 되었고 롯 있었는데 엉망이 되었고 마지막에 예루살렘 성이 진리와 공의를 찾는 자가 없었고 몇몇 사람에게 없었고 실패 다 했고 생명이 이어져서 교회 역사가 구약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보면 아벨을 죽인 것은 아벨 계통으로 이어져야하는데 마귀가 아벨을 죽여버린겁니다. 아벨의 계통에서 예수님이 나셔야하는데 그러니까 다른 계통을 주신 거지요. 같은 아담의 자손이지만 셋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어떻게 해도 생명이 꺼지지 않고 이어지도록 하는 오늘까지 역사라 그 말이고 생명의 역사는 많은 게 아닙니다. 씨앗이라는 것은 종자라는 것은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많은 게 필요한 게 아니라 공회적으로 많은 게 필요한 게 아니라 하나가 있으면 다윗 하나가 있으면 이스라엘 일으켰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생명이 있었고 생명이 자라서 번창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수가 많으니까 타락하게 되고 그러면 매를 맞아서 망해버리고 그 가운데 생명이 자라게 되고 많아지면 다수가 되니까 타락하고 또 생명이 나서 이뤄지고 이게 6천년 교회 역사입니다. 실제로 그렇고 오늘까지 다 그런겁니다. 이런 역사로 이어왔기 때문에 한 사람이 그렇게 중하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생명이 있으면 많은 결실을 맺게 되는 겁니다.
다 말라 비틀어져 죽었는데 봄 되면은 싹이 나옵니다. 죽어있는 것은 봄이 안되지요. 생명이 중요한 겁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이 시각 가지고 이런 각도도 오늘을 보고 시대를 보고 나라를 보고 믿는 사람을 보고 우리 자신을 보고 내 속을 들여다보고 하나님의 심정으로 살피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좋은 포도 구원을 잘 이뤄서 최고의 산에다가 모든 방해물 다 제거하고 말씀으로 순종하고 양심대로 해서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의 형상으로 갈 수 있도록 기대하고 계셨는데 오늘날 교회들 한국의 교회 세계의 교회 여기 우리도 안 그럴 때가 있겠지만 인본주의가 되고 세상주의가 되고 들포도란 인본주의고 세상 주의를 말합니다. 자기 중심이고 자기 중심대로 살아가는 들포도입니다.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그렇다고 하는 것이 아니지요. 실제로 믿어야하는데 참 믿고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고 하늘만 바라보고 계명을 지키면서 실제로 하는 사람은 드물고 이렇게 살아야한다고 하는 사람이 오늘날 세계에 얼마나 될까 별로 많지를 않을 겁니다. 이런 인식조차 없는 것, 예수 믿는 신앙이 이종교 신앙과 다를 것없는 교양이고 지식이고 사교 모임이고 이렇게 인본이 되고 세본이 되는 것이 들포도입니다. 이게 들 포도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된 교회들을 처리할 때 여섯가지를 처리했지요.
울타리 걷어서 먹힘을 당하게 한다. 교회가 세상의 밥이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세계 교회 한국 교회가 딱 그렇습니다. 선거 때만 되면 예수 믿고 불교 믿고 천주교 믿고 문화라는 더러운 이름의 밥이 돼서 춤을 추고 강단에서 춤을 추고 드럼을 치고 그러는 게 더러운 것의 밥이 되어서 그런 겁니다. 찬송가라는 이름을 거기 가져다 붙이면 욕이 되는 겁니다. 교회가 세상에 밟힙니다. 몇 십년 전만 해도 목사라 그러면 그래도 존경을 했습니다. 교회라 그러면 남다르게 봤습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이 낫다. 장로라 하면 존경했고 집사라 하면 다르게 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요 목사라 하면 똥처럼 봅니다. 교회를 밟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밟히고 있습니다. 교회를 남다르게 보는 인식이 없어졌고 정의 중보다도 인정을 못 받습니다. 자업자득이지요. 다 무너져서 짓밟히게 하는 것이고 모태신앙으로 65년 믿어오면서 이렇게 밟혀온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자초한 겁니다.
곡식이 나고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어야하는데 교인이 없습니다. 교인 다운 교인이 없습니다.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이 없는 것인데 예수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 재미로 가고 그러지 교인이 없습니다. 숫자는 가치가 없습니다. 다시는 가지를 다르거나 북돋우지 못한다. 뿌리를 감싸고 있는 것을 흙이라고 합니다. 나무도 자라면 뿌리가 커지기 때문에 돋아줘야합니다. 나무가 잘 자라도록 보호를 해줘야합니다. 가지를 자르는 것은 병든 가지 잘라줘야 열매맺을 가지가 열매를 맺습니다.
복을 돋우고 가지를 자르는 것은 농부가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돕는 역사가 없다는 말입니다. 교회에 대해서 성령의 보호가 없는 겁니다. 남다르게 관리하는데 교회가 교회가 아닌데 포도원이 아닌데 던져버리는거죠. 가시가 뭐냐 성경에 다른 말로 쓴뿌리라고 합니다. 그게 사람의 인생을 망쳐놨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구름을 명하여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합니다. 진리와 영감이 없어집니다. 진리고 영감인데 대속이고 촛대를 옮겨버리는 겁니다. 한국의 모든 모습들이 딱 그렇습니다. 이사야같은 시각이 되는 것이 아니면 눈이 어두운겁니다. 한국 교회가 그렇게 보이는건지요. 실상이니까. 과장도 아니고 한국 현재 교회들의 모습이 그대로 다 들어있습니다. 울타리르 걷어버렸습니다. 세상 밥이 되었습니다. 지근지근 밟힙니다. 숫자가 많은데 교인다운 교인이 얼마나 되는지. 이렇게 처리합니다. 북이스라엘은 말할 게 없고 이사야 선지를 통해서 이렇게 노래로 말씀한 것이고 이 시대를 기르치고 이 교회를 가르치고 자신을 가르친다. 하나님의 시각과 심정으로 자신을 돌아봐야합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