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밤
김동민2024-04-26조회 187추천 30
2024년 4월 26일 금밤
찬송: 50장, 60장
본문: 이사야 5장 3절
포도원 노래라고 일반적으로 노래를 그렇게 합니다. 곡을 빼면 시가 되고 노래가 되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욥 시편 잠언 전도 아가서를 시가서라고 합니다. 심정을 다 토해낸 그런 것이다 이 말이지요. 포도원 노래는 하나님의 심정을 이사야 선지를 통해서 표출해낸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포도원에 비유해냈고 잘되면 잘된대로 좋은 기쁨의 환의의 노래가 나올건데 애가 타고 슬픔의 노래가 되어져버렸습니다. 하나님 백성에 대한 이스라엘이고 이사야 선지를 통해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하나님 심정을 기록해주신겁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인데 지나갔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우리 자신들에게 하나님께서 외치는 하나님의 심정 그렇게 받아들여야겠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모든 걸 같이 봐야합니다. 개체가 전체가 되는 것이고 전체는 개체를 보호나는 게 되고 개인 없는 사회는 없는 것이고 개인 없는 나라도 없는 것이고 나라라고 정상적으로 나라가 되어있으면 개인 개인을 굉장히 소중히 여깁니다. 이사야 선지를 통해 선지하신 포도원 노래를 보고 역사도 보고 우리 시대도 보고 우리나라도 보고 현재 교회 모습을 보고 그리고 나를 보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기대를 져버렸습니다. 그래서 기대를 져버리니까 이 애타는 노래를 하신 건데 왜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과 기대를 져버리게 되는가.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 딱 들어붙어서 그 사이에 어떤 것도 들어가면 안되는 겁니다. 이걸 부부사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는 일촌입니다. 형제는 이촌이고 삼촌 사촌 있습니다. 그런데 부부는 한 몸이라서 뭐가 들어가면 안되는 거지요. 아버지와 아들이면서 부부사이처럼 그렇게 되어있어서 어떤 것도 들어가면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전부고 하나님이 우리의 전부가 되는 이렇게 되어서 극상품 포도나무를 맺게 되어있는데 다른 게 들어가서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사이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있어서 그래서 우리 하나님을 벌어트려서 극상품 포도나무의 열매의 종자를 맺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끼인게 사람일 수도 있고 사물일 수도 있는데 사람이던지 사물이던지 객관이고 그러면 환경이고 환경은 다시 말하면 현실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별 상관이 없는 겁니다. 사람은 현실 환경에 피동되고 적응되어 사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모든 현실을 이길 수 있도록 지음받은 게 믿는 사람입니다. 택함받고 중생된 성도는 피동되지 말아라. 그것에 영향받지 말아라. 능가하고 지배하고 다스려서 끌고가라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사물이 환경이 들어서 자극을 주고 그러더라도 나만 굳게 서있으면 아무것도 못 들어오게 되어있는 건데 충동되고 피동되고 영향받아서 사람의 행동에 대응에 또는 환경에 어떠함에 따라 좋으니까 좋은 환경 슬프니까 슬픈 환경 괴로우니까 괴로운 환경. 오만 일을 다 만납니다. 천태만산 형형색색이라고 합니다. 온갖 일들이 다 부딪혀 오게 되는 겁니다. 수 많은 우여 곡절을 만나게 되어있는데 현실에 따라 피동되어 있어서 춤을 추다보면은 뒷자리는 봉고차 버스 뒷자리는 흔들립니다. 앞자리는 덜 흔들리고 노약자들을 앞자리에 앉히고 뒤로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뒷자리에 있으면 덜컹덜컹 합니다. 뒤에 승객이 태우고 있는데 핸들잡아 돌리면 넘어가는거지요. 그러면 멀미를 하는 거지요.
현실에 피동이 되는 건데 그런 것이 모두 외부의 어떠함에 따라서 나의 말하자면 마음의 모든 것이 영향받고 자극받고 피동이 되고 외부의 어떠한 충동과 자극에 의해서 작용이 되어지고 온갖 것들이 다 생기는데 하나님의 원치않고 기뻐하는 내 속에 생겨질 때 마귀, 귀신이 넘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이가 벌어지면 좋은 포도 맺는 것은 아예 안되는 거지요. 믿는 사람은 주님과 나 사이를 생각을 하고 하나님과 나 사이에 내 마음 속에 들어가는 마음 중에서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마음 그런 욕심 그런 생각 그런감정 그런 것들이 내 속에 생겨지면 그게 바로 하나님과 나 사이를 벌리는 것이고 마귀가 넣어주는 것이다. 잊어버리면 안되겠습니다.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이걸기억하고 복습을 한 번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고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고 대변하는 겁니다. 이사야 선지가 사랑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보는 것을 나타냈고 이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것을 하나님께 가졌고 그대로 발표하게 된 겁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때 이스라엘 민족 나라들의 참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고 하나님의 심정과 같은 시각으로 노래했듯이 오늘 우리들은 현재 우리 사는 우리 시대를 봐야겠고 우리 사는 세상을 봐야겠고 그러면서 우리 나라도 봐야겠고 교계를 봐야겠는데 나라를 본다는 것은 다른 것보다도 현재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인식 사고방식 관을 봐야겠다 이 말입니다.
결혼을 안 한다는 인식이 우리 공회만 있다면 그 말이 맞을 수 있는데 이 시대 사는 또래 청년들 30대 중반 즈음 그때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전부 다 시대의 자체가 인식이 다 그렇기 때문에 물들었고 감염이 되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이게 사고방식입니다. 돈 많은 게 행복의 기준이다. 이 시대 사람들의 행복관입니다. 인식인겁니다. 이런 걸 보는 게 시대를 보는 겁니다. 이런 시대로구나 돈이면 뭐든지 제일이구나 이번에 유산을 상속을 하는데 그 밑의 어른 부모나 조상에게 불효하고 상관없는 자신에게는 유산이 덜 가도록 그렇게 법을 바꾸진 않았지만 헌법재판소입니까 이건 잘못됐다 불효막심한 놈이나 효자나 똑같이 나누는 건 잘못됐다 라고 하지요. 이게 거꾸로 되어있죠. 아이를 낳아놓고 집어던지고 가버렸는데 자라서 성공을 했다는 거지요. 그런데 돈을 벌어놓고 세상을 떠난거지요. 그러면 30 40년 되도록 안되던 애미가 유산 상속하러 온 거지요. 그래서 거기도 줘야한다 그런 법이 어딨냐고 그러니까 바꾼느 거지요.
지금 시대가 말하자면 사람들의 머리 속에 무엇이 들었느냐. 앞으로 교회를 이끌어갈 청년들의 머리 속에는 어떤 것이 들어있느냐. 말씀을 바로 듣고 신앙있는 사람들은 걱정할 게 없습니다. 사람들이 볼 줄 몰라서 그렇지. 그래서 청년들 머리 속에 뭐가 들었냐 믿음있는 청년들은 걱정 안하는데 일반적인 청년들의 머리 속에 바라보는 게 그게 시각입니다.
우리 공회나 이 시대 말할 거 없고 세상이고 인간이고 돈이 전부인데 교인들 전부다 감염 다 되었고 공회 청년들도 감염이 되어있다면 하나님의 심정으로 노래하는 것처럼 애가 타야하는 겁니다. 이런 시대가 이어져서 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그런 우리가 되어야겠다. 이게 포도원을 하는 심정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도 돌아보고 나는 어떤가 하는 겁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으며 포도원을 조성했습니다. 포도원에 포도나무가 자라기 가장 좋은 나무가 포도원을 조성하셨다. 예정을 하셨다 그 말이지요. 심히 기름진 포도원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말이고 여기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목적은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전지전능으로 주신 것이기
찬송: 50장, 60장
본문: 이사야 5장 3절
포도원 노래라고 일반적으로 노래를 그렇게 합니다. 곡을 빼면 시가 되고 노래가 되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욥 시편 잠언 전도 아가서를 시가서라고 합니다. 심정을 다 토해낸 그런 것이다 이 말이지요. 포도원 노래는 하나님의 심정을 이사야 선지를 통해서 표출해낸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포도원에 비유해냈고 잘되면 잘된대로 좋은 기쁨의 환의의 노래가 나올건데 애가 타고 슬픔의 노래가 되어져버렸습니다. 하나님 백성에 대한 이스라엘이고 이사야 선지를 통해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하나님 심정을 기록해주신겁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인데 지나갔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우리 자신들에게 하나님께서 외치는 하나님의 심정 그렇게 받아들여야겠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모든 걸 같이 봐야합니다. 개체가 전체가 되는 것이고 전체는 개체를 보호나는 게 되고 개인 없는 사회는 없는 것이고 개인 없는 나라도 없는 것이고 나라라고 정상적으로 나라가 되어있으면 개인 개인을 굉장히 소중히 여깁니다. 이사야 선지를 통해 선지하신 포도원 노래를 보고 역사도 보고 우리 시대도 보고 우리나라도 보고 현재 교회 모습을 보고 그리고 나를 보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기대를 져버렸습니다. 그래서 기대를 져버리니까 이 애타는 노래를 하신 건데 왜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과 기대를 져버리게 되는가.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 딱 들어붙어서 그 사이에 어떤 것도 들어가면 안되는 겁니다. 이걸 부부사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는 일촌입니다. 형제는 이촌이고 삼촌 사촌 있습니다. 그런데 부부는 한 몸이라서 뭐가 들어가면 안되는 거지요. 아버지와 아들이면서 부부사이처럼 그렇게 되어있어서 어떤 것도 들어가면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전부고 하나님이 우리의 전부가 되는 이렇게 되어서 극상품 포도나무를 맺게 되어있는데 다른 게 들어가서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사이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있어서 그래서 우리 하나님을 벌어트려서 극상품 포도나무의 열매의 종자를 맺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끼인게 사람일 수도 있고 사물일 수도 있는데 사람이던지 사물이던지 객관이고 그러면 환경이고 환경은 다시 말하면 현실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별 상관이 없는 겁니다. 사람은 현실 환경에 피동되고 적응되어 사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모든 현실을 이길 수 있도록 지음받은 게 믿는 사람입니다. 택함받고 중생된 성도는 피동되지 말아라. 그것에 영향받지 말아라. 능가하고 지배하고 다스려서 끌고가라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사물이 환경이 들어서 자극을 주고 그러더라도 나만 굳게 서있으면 아무것도 못 들어오게 되어있는 건데 충동되고 피동되고 영향받아서 사람의 행동에 대응에 또는 환경에 어떠함에 따라 좋으니까 좋은 환경 슬프니까 슬픈 환경 괴로우니까 괴로운 환경. 오만 일을 다 만납니다. 천태만산 형형색색이라고 합니다. 온갖 일들이 다 부딪혀 오게 되는 겁니다. 수 많은 우여 곡절을 만나게 되어있는데 현실에 따라 피동되어 있어서 춤을 추다보면은 뒷자리는 봉고차 버스 뒷자리는 흔들립니다. 앞자리는 덜 흔들리고 노약자들을 앞자리에 앉히고 뒤로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뒷자리에 있으면 덜컹덜컹 합니다. 뒤에 승객이 태우고 있는데 핸들잡아 돌리면 넘어가는거지요. 그러면 멀미를 하는 거지요.
현실에 피동이 되는 건데 그런 것이 모두 외부의 어떠함에 따라서 나의 말하자면 마음의 모든 것이 영향받고 자극받고 피동이 되고 외부의 어떠한 충동과 자극에 의해서 작용이 되어지고 온갖 것들이 다 생기는데 하나님의 원치않고 기뻐하는 내 속에 생겨질 때 마귀, 귀신이 넘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이가 벌어지면 좋은 포도 맺는 것은 아예 안되는 거지요. 믿는 사람은 주님과 나 사이를 생각을 하고 하나님과 나 사이에 내 마음 속에 들어가는 마음 중에서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마음 그런 욕심 그런 생각 그런감정 그런 것들이 내 속에 생겨지면 그게 바로 하나님과 나 사이를 벌리는 것이고 마귀가 넣어주는 것이다. 잊어버리면 안되겠습니다.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이걸기억하고 복습을 한 번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고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고 대변하는 겁니다. 이사야 선지가 사랑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보는 것을 나타냈고 이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것을 하나님께 가졌고 그대로 발표하게 된 겁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때 이스라엘 민족 나라들의 참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고 하나님의 심정과 같은 시각으로 노래했듯이 오늘 우리들은 현재 우리 사는 우리 시대를 봐야겠고 우리 사는 세상을 봐야겠고 그러면서 우리 나라도 봐야겠고 교계를 봐야겠는데 나라를 본다는 것은 다른 것보다도 현재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인식 사고방식 관을 봐야겠다 이 말입니다.
결혼을 안 한다는 인식이 우리 공회만 있다면 그 말이 맞을 수 있는데 이 시대 사는 또래 청년들 30대 중반 즈음 그때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전부 다 시대의 자체가 인식이 다 그렇기 때문에 물들었고 감염이 되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이게 사고방식입니다. 돈 많은 게 행복의 기준이다. 이 시대 사람들의 행복관입니다. 인식인겁니다. 이런 걸 보는 게 시대를 보는 겁니다. 이런 시대로구나 돈이면 뭐든지 제일이구나 이번에 유산을 상속을 하는데 그 밑의 어른 부모나 조상에게 불효하고 상관없는 자신에게는 유산이 덜 가도록 그렇게 법을 바꾸진 않았지만 헌법재판소입니까 이건 잘못됐다 불효막심한 놈이나 효자나 똑같이 나누는 건 잘못됐다 라고 하지요. 이게 거꾸로 되어있죠. 아이를 낳아놓고 집어던지고 가버렸는데 자라서 성공을 했다는 거지요. 그런데 돈을 벌어놓고 세상을 떠난거지요. 그러면 30 40년 되도록 안되던 애미가 유산 상속하러 온 거지요. 그래서 거기도 줘야한다 그런 법이 어딨냐고 그러니까 바꾼느 거지요.
지금 시대가 말하자면 사람들의 머리 속에 무엇이 들었느냐. 앞으로 교회를 이끌어갈 청년들의 머리 속에는 어떤 것이 들어있느냐. 말씀을 바로 듣고 신앙있는 사람들은 걱정할 게 없습니다. 사람들이 볼 줄 몰라서 그렇지. 그래서 청년들 머리 속에 뭐가 들었냐 믿음있는 청년들은 걱정 안하는데 일반적인 청년들의 머리 속에 바라보는 게 그게 시각입니다.
우리 공회나 이 시대 말할 거 없고 세상이고 인간이고 돈이 전부인데 교인들 전부다 감염 다 되었고 공회 청년들도 감염이 되어있다면 하나님의 심정으로 노래하는 것처럼 애가 타야하는 겁니다. 이런 시대가 이어져서 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그런 우리가 되어야겠다. 이게 포도원을 하는 심정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도 돌아보고 나는 어떤가 하는 겁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으며 포도원을 조성했습니다. 포도원에 포도나무가 자라기 가장 좋은 나무가 포도원을 조성하셨다. 예정을 하셨다 그 말이지요. 심히 기름진 포도원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말이고 여기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목적은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전지전능으로 주신 것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