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4-04-28조회 166추천 22
2024년 4월 28일 주일 오전
찬송: 115장, 132장
본문: 시편 9편 16절
지난 주일에는 지난 주간에 이사야 5장의 말씀으로 포도원 노래를 생각해봤습니다. 하늘의 농부되신 하나님께서 기름진 땅에 포도원을 조성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도원이라고 하셨고 포도원은 포도나무가 심겨진 곳이니까 한 그루 한 그루는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포도원이 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서 조성을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두고 떠날 하나님을 닮아가고 영생 무궁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각자 자기에게 주신 것을 말씀을 순종함으로 이루어지는 가장 좋은 환경, 심히 기름진 산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그런 곳입니다. 남의 떡이 커보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보내실 때에도 키가 작은 사람은 작으시니까 좋게 만들어놨습니다. 그게 그에게 가장 좋고 적합하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요즘 시대는 남자고 여자고 전봇대처럼 키가 큰 사람을 좋아하는데 옛날에는 뚱뚱한 사람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뭐든지 다 적당하게 키가 큰 사람은 키가 크게 하셨고 작을 사람은 작게하셨고 잘생긴 사람은 그러니까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필요해서 만드셨는데 이걸 떠나서 나는 왜 키가 작은가 왜 몸이 약한가 우리 부모는 왜 가난한가 머리가 나쁜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가 되는 겁니다. 못난 사람은 못난 곳이 기름진 산이고 가난한 부모는 그게 기름진 산이고 가져다 붙이는 게 아니라 성경이 그리 말합니다. 그렇게 해석하고 순종하는 것이 다 좋은 겁니다. 다른 인간의 사설을 가져다 붙이면 지옥이 되는 것이고 지옥이 무슨 뜻이던가요 다른 이름이 무엇입니까. 지옥의 다른 이름은요 무저갱이라고 그랬습니다. 밑이 없는 구멍, 타락한 인간의 욕심은 끝이없다고 합니다.
어떤 종류의 욕심이든 끝없이 나가고 파멸로 이루어지는 게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도원을 조성하셨고 기름진 산에 심어놓은 종자가 극상품 포도나무라고 했습니다. 더 이상이 없다는 뜻입니다. 남극 북극 극동 극상품 포도나무다 하나님보다 더 좋은 존재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닮아가야하는 그 종자로 심었다. 전적 하나님 은혜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택하시고 정하셔서 그런 것이지 인간의 소원과 노력으로 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종자니까 극상품 포도나무 심었으니까 심을 때도 자랄 때도 방해받으면 안되니까 돌을 제했습니다. 그리고 심었습니다. 중생시켜서 불러서 심었습니다. 자라가는 과정에 도적을 그 가운데 뭘 세웠다고요 그 중에 망대를 세웠습니다. 멀리 보면서 도적이 오는가 그게 망대입니다. 적군이 오는가 도적이 오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서 우리 자신을 말씀의 사람으로 자라나게 하는 게 마귀가 오는가 이걸 알 수 있도록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나서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 열매를 잘 맺어서 대부분은 포도주를 먹습니다. 우리나라는 포도를 만들지요. 그걸 만들어 마시는데 즙을 짜야합니다. 큰 돌을 파내서 포도를 집어넣고 밟아서 포도주를 만드는 틀이 있답니다. 그러니까 수확이 되는 거죠. 현실을 살아가면서 믿는 사람이 열매 결실이 되는 건데 모든 환경 조성해서 승리로 역사하셨습니다. 그래놓고 3절에 보면 포도원과 나 사이에 판단해봐라. 너희들과 나 사이에 판단해봐라. 우리들의 하나님에 대한 노력과 살아온 우리 생활을 두고 나를 사랑하심으로 구원하시려고 나를 구원하셔서 만드시려는 무한의 수고와 노력. 거기에 비해서 나의 충성이나 신앙생활은 기대에 미쳤는가.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말씀 순종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만은 들포도를 맺혔도다.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처리하시는데 포도원 울타리를 걷어버리겠다. 그러면 다 먹고 밟혀버릴겁니다. 어차피 들포도니까 필요없으니까 그런거지요.
우리 주차장에 관리를 해놔도 온갖 사람들이 왔다갑니다. 차를 대는 건 괜찮은데 연락처는 적어주십시오. 안 그러면 동네 주차장 되어서 우리 쓰지도 못합니다. 공짜 혜택이 계속 되면 권리가 된다고 하지요. 이 공으로 받는 걸 졸업해서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런 사람은 성공을 합니다. 그런데 한 달에 만원 받다가 더 안 주나 10만원 주면 더 안 주나 그래서 나라에서 백성에게 공돈주는 것은 나라 말아먹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봐야합니다. 세상에 뭐는 없다고 합니까 공짜는 없다고 합니다. 어떻게든 결국 돌아가는 겁니다. 부모들이 공짜로 받아먹으면 자식이 고생할 것이고 나라 망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받아먹고 보는 겁니다.
지금은 모든 백성이 공돈주자 그러는데 막걸리를 옛날에 많이 사줬던답니다. 설마 그거 하나 먹고 표를 줄까 싶은데 효력이 있답니다. 그래도 했는데 양심상. 이게 오늘도 먹혀드는 겁니다. 수준 낮은 후진국 백성들의 수준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저거 도둑놈이구나 그래야하는데 거꾸로 되어있지요.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울타리 걷어내고 흘려버립니다. 담장 달고 황허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리고 가시가 찔려가게 하고 하나가 빠졌는데 그리고 구름을 막아서 비를 못 내리게 하고.
이게 오늘날 한국교회와 세계 교회의 모습니다. 이 처리에 대한 걸 생각해보는 겁니다. 이걸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합니다. 시편 9편에 보면 먼저 심판이라는 단어가 다섯 번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섯 번이 나옵니다. 4절부터 보면 심판과 관련된 용어들이 송사 변호 심판 신문 판단 이런 단어들이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다 두고 이렇게 기록된 성경이 없지 않을까. 그래서 이 시편은 하나님의 심판의 의로움을 노래하는 시다.
이건 시편이기 때문에 그렇게 쓰이는 겁니다. 찬양 지휘자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9편은 아들의 죽음을 노래한 것이다. 아들 죽고 나서 그걸 하나님 앞에 노래한 것이라는 말도 있고 골리앗을 죽였는데 골리앗의 아들에 대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건 알 거 없고 셀라라는 말은 높이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이런 용어들이 시편이 많은데 곡조가 되니까 높게 음악책에 보면 그런게 있지 않습니까. 익숙하지 않은 표현들입니다. 노래할 때 음악 용어들이다 이렇게 참고하시는 겁니다.
전체적으로 시편 9편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의로움을 노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는데 그들에 대한 처리를 생각해봤는데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 말이고 그 내용을 생각해보면 어떤 것을 심판하는 것이냐, 자유의 심판입니다. 자유의 심판, 자유의 심판이라고 하면 하나님이 자유롭게 심판한다는 뜻이 아니고 사람에게 주신 자유성 심판을 심판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공심판 사심판이 있는데 공심판은 다 하는 심판이고 사심판은 택자들만 받는 심판, 그리스도 심판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하사 택하셨다 목적을 정하셨다 그런 뜻이 드러나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이 하나님 아닌 다른 존재를 만드셨고 상대하시게 만드셨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로 만들기로 작정하셨다. 그 이름이 여호와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상대하실 때 인간에게 자유성을 주셨기 때문에 쌍방계약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여호와라고 합니다. 여호와는 무슨 뜻이라고요 혼자게셨는데 하나님 아닌 다른 존재를 만들기로 작정하신, 그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합니다. 그 목적에서 예정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의 대상인데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상대하시는데 이렇게 하나님이 사람을 상대하실 때 그것이 여호와라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하사 하나님 아닌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주인이고 하나님께 지음받은 피조물입니다. 주인이 계시니까 집안에 집에 강아지를 기르든지 소를 기르든지 그것들에게 주인을 알리는 게 정상입니다. 내가 너희 주인이야. 알리는 게 정상입니다. 관계가 되는 겁니다. 생명의 관계라 이런 것입니다. 아무 작용없는 것들은 이 세상에 크게만 나누면 생물과 무생물이 있습니다. 생물은 작용이 있고 무생물은 작용이 없는 겁니다.
흘러가는 냇물은 강물은 식물입니까 무생물입니까. 앉아있는 바위는 생물입니까 무생물입니까. 무생물들 끼리의 작용이 되는거지요. 이게 무생물 세계의 이런 것이니까 자연의 원리라 이치라 작용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말하는 자연의 작용이라는 것은 작용이 없으면 뭔가 없습니까. 작용이 있으면 시작이 있고 결과가 있다는 말인데 작용이 없다는 건 결과가 없습니다. 해운대 백사장에 모래가 있는데 바닷물이 휩쓸어가든지 작용이 생깁니다. 사람이 없어도 모래도 해변도 변화가 생깁니다. 그렇게 작용하는데 자연 세계는 무생물 세계는 작용이라고 합니다.
그 결과를 가르켜서 뭐라고 하는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고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하신 역사입니다. 내가 있다. 너희를 지은 주권자가 있다고 알리는 역사입니다. 모든 자연의 모든 것에도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차이가 없다고 하면 곤란하겠으나 돌들로도 아브라함자손 만들 수도 있다고 하신 게 만물 심판입니다. 창조주라는 창조주가 계신다. 이 세상에게 알리는게 자연의 작용들입니다. 그게 결과물들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면 그런게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생물 무생물을 떠나서 이게 주인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좁게 보니까 없는 거 같으나 세상 전부는 주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알리시는 겁니다. 모든 만물 전부다가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다. 하늘도 땅도 바다도 어떤 것이든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런 작용하시고 심판을 행하셨으며 그 심판이 뭐냐 그 심판이 바로 일반적으로 홍수 심판입니다 홍수 심판만 심판입니까. 소돔 고모라도 심판 아닌가요. 애굽을 친 것도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바로를 강팍하게 만든 것이 심판입니다. 애굽 나라를 쳐서 하나님을 알려서 구출하기 위해서 애굽을 치는 겁니다.
나일강에 죽은 유대민족 아이들이 엄청 많았을겁니다. 엄청 낳을 땐데 낳으면 죽이니까 악랄한 놈입니다. 그래서 너 민족을 이렇게 쳤으니까 너희도 죽어봐라 그래서 장자를 다 죽여버린겁니다. 맏아들 다 죽여버리고 짐승 새끼들 다 죽여버리고 너희들이 그 짓했으니 전멸해야겠다. 이게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노아 홍수 심판만, 소돔 고모라만 심판만, 이스라엘만 심판합니까. 이스라엘도 잘못 받았을 때 심판 했습니다. 국가적인 심판만 있습니까. 지역적인 심판 가정적인 심판도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하사 이 세상 모든 전부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은 몰라도 두려워서 떨어야 정상인데 기도할 때만 떠는데 그때 뿐이고 약한 인간들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서 심판을 행하셨으며 시대적으로 국가적으로 기업적으로 행하셨으며 악의는 얽혔도다 그렇게 해 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고 벗어나고 자기 중심이 되어서 자기가 주인이고 자기가 왕이고 하나님이라 이 뜻입니다. 악인이 악인이니까 악행을 했겠지요 악인의 악행들은 무엇이냐 자기가 얽혔고 자기가 판 함정에 얽혔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말하자면 인과응보고 그런 것이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어떤 심판이냐 자유의 심판. 자유의 심판이라는 말은 말하자면 하나님의 구원 세계가 다 그런데 순례적으로 가는 겁니다. 진리를 거스르는 걸 가르켜서 역리라고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대적이 되고 피조물 전부가 마찰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고 그게 들포도를 맺힘으로 처리한 게 하나님의 자유 심판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준다는 겁니다. 그들이 행한대로 하는데 권선징악의 인과응보의 그들이 원하는대로 해주시는 게 심판입니다. 하나님 모든 말씀은 너희 인간 중심이 되고 이 세상을 소망하고 살아나가면 마지막에 너희들이 지옥에 가야하고 멸망해야하니까 계속해서 말씀을 주시는 겁니다. 양심을 통해가르치고 끊임없이 복된길로 가라. 너가 그렇게 원하면 그래야지. 그렇게 영원토록 살고 싶으냐 영원토록 살아라. 그러면 마음껏 살게 해주마. 네 마음대로 살아라. 마음껏 살아라, 나는 빠져줄게. 그래서 인간이 자기 중심으로 영원토록 살도록 만들어주신 곳을 뭐라고 합니까. 그렇게 세상 사는 동안에 나 필요없다고 그러니 마음껏 살아라 그래서 진리 다 빼버리고 인간들이 왕되고 주인되어서 그렇게 한 장소를 뭐라고 합니까. 그걸 지옥이라고 합니다. 지옥은 좋은 곳이지요.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이 세상에서 그것을 마련한 겁니다.
한 번 지나가서 홍수심판 한 번은 남아있어서 불심판. 홍수심판은 그때만 받는 심판입니다. 홍수심판 때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 다 그런 것이고 세상 떠난 사람은 불심판은 없는 것이고 죽고 난 다음에 택불택을 나누는 백보좌 심판이 있고 그리스도 심판이 있는데 이게 자유 심판입니다.
사람은 변하고 잊어버리지만 동일하기
찬송: 115장, 132장
본문: 시편 9편 16절
지난 주일에는 지난 주간에 이사야 5장의 말씀으로 포도원 노래를 생각해봤습니다. 하늘의 농부되신 하나님께서 기름진 땅에 포도원을 조성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도원이라고 하셨고 포도원은 포도나무가 심겨진 곳이니까 한 그루 한 그루는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포도원이 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서 조성을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두고 떠날 하나님을 닮아가고 영생 무궁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각자 자기에게 주신 것을 말씀을 순종함으로 이루어지는 가장 좋은 환경, 심히 기름진 산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그런 곳입니다. 남의 떡이 커보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보내실 때에도 키가 작은 사람은 작으시니까 좋게 만들어놨습니다. 그게 그에게 가장 좋고 적합하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요즘 시대는 남자고 여자고 전봇대처럼 키가 큰 사람을 좋아하는데 옛날에는 뚱뚱한 사람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뭐든지 다 적당하게 키가 큰 사람은 키가 크게 하셨고 작을 사람은 작게하셨고 잘생긴 사람은 그러니까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필요해서 만드셨는데 이걸 떠나서 나는 왜 키가 작은가 왜 몸이 약한가 우리 부모는 왜 가난한가 머리가 나쁜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가 되는 겁니다. 못난 사람은 못난 곳이 기름진 산이고 가난한 부모는 그게 기름진 산이고 가져다 붙이는 게 아니라 성경이 그리 말합니다. 그렇게 해석하고 순종하는 것이 다 좋은 겁니다. 다른 인간의 사설을 가져다 붙이면 지옥이 되는 것이고 지옥이 무슨 뜻이던가요 다른 이름이 무엇입니까. 지옥의 다른 이름은요 무저갱이라고 그랬습니다. 밑이 없는 구멍, 타락한 인간의 욕심은 끝이없다고 합니다.
어떤 종류의 욕심이든 끝없이 나가고 파멸로 이루어지는 게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도원을 조성하셨고 기름진 산에 심어놓은 종자가 극상품 포도나무라고 했습니다. 더 이상이 없다는 뜻입니다. 남극 북극 극동 극상품 포도나무다 하나님보다 더 좋은 존재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닮아가야하는 그 종자로 심었다. 전적 하나님 은혜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택하시고 정하셔서 그런 것이지 인간의 소원과 노력으로 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종자니까 극상품 포도나무 심었으니까 심을 때도 자랄 때도 방해받으면 안되니까 돌을 제했습니다. 그리고 심었습니다. 중생시켜서 불러서 심었습니다. 자라가는 과정에 도적을 그 가운데 뭘 세웠다고요 그 중에 망대를 세웠습니다. 멀리 보면서 도적이 오는가 그게 망대입니다. 적군이 오는가 도적이 오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서 우리 자신을 말씀의 사람으로 자라나게 하는 게 마귀가 오는가 이걸 알 수 있도록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나서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 열매를 잘 맺어서 대부분은 포도주를 먹습니다. 우리나라는 포도를 만들지요. 그걸 만들어 마시는데 즙을 짜야합니다. 큰 돌을 파내서 포도를 집어넣고 밟아서 포도주를 만드는 틀이 있답니다. 그러니까 수확이 되는 거죠. 현실을 살아가면서 믿는 사람이 열매 결실이 되는 건데 모든 환경 조성해서 승리로 역사하셨습니다. 그래놓고 3절에 보면 포도원과 나 사이에 판단해봐라. 너희들과 나 사이에 판단해봐라. 우리들의 하나님에 대한 노력과 살아온 우리 생활을 두고 나를 사랑하심으로 구원하시려고 나를 구원하셔서 만드시려는 무한의 수고와 노력. 거기에 비해서 나의 충성이나 신앙생활은 기대에 미쳤는가.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말씀 순종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만은 들포도를 맺혔도다.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처리하시는데 포도원 울타리를 걷어버리겠다. 그러면 다 먹고 밟혀버릴겁니다. 어차피 들포도니까 필요없으니까 그런거지요.
우리 주차장에 관리를 해놔도 온갖 사람들이 왔다갑니다. 차를 대는 건 괜찮은데 연락처는 적어주십시오. 안 그러면 동네 주차장 되어서 우리 쓰지도 못합니다. 공짜 혜택이 계속 되면 권리가 된다고 하지요. 이 공으로 받는 걸 졸업해서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런 사람은 성공을 합니다. 그런데 한 달에 만원 받다가 더 안 주나 10만원 주면 더 안 주나 그래서 나라에서 백성에게 공돈주는 것은 나라 말아먹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봐야합니다. 세상에 뭐는 없다고 합니까 공짜는 없다고 합니다. 어떻게든 결국 돌아가는 겁니다. 부모들이 공짜로 받아먹으면 자식이 고생할 것이고 나라 망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받아먹고 보는 겁니다.
지금은 모든 백성이 공돈주자 그러는데 막걸리를 옛날에 많이 사줬던답니다. 설마 그거 하나 먹고 표를 줄까 싶은데 효력이 있답니다. 그래도 했는데 양심상. 이게 오늘도 먹혀드는 겁니다. 수준 낮은 후진국 백성들의 수준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저거 도둑놈이구나 그래야하는데 거꾸로 되어있지요.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울타리 걷어내고 흘려버립니다. 담장 달고 황허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리고 가시가 찔려가게 하고 하나가 빠졌는데 그리고 구름을 막아서 비를 못 내리게 하고.
이게 오늘날 한국교회와 세계 교회의 모습니다. 이 처리에 대한 걸 생각해보는 겁니다. 이걸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합니다. 시편 9편에 보면 먼저 심판이라는 단어가 다섯 번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섯 번이 나옵니다. 4절부터 보면 심판과 관련된 용어들이 송사 변호 심판 신문 판단 이런 단어들이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다 두고 이렇게 기록된 성경이 없지 않을까. 그래서 이 시편은 하나님의 심판의 의로움을 노래하는 시다.
이건 시편이기 때문에 그렇게 쓰이는 겁니다. 찬양 지휘자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9편은 아들의 죽음을 노래한 것이다. 아들 죽고 나서 그걸 하나님 앞에 노래한 것이라는 말도 있고 골리앗을 죽였는데 골리앗의 아들에 대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건 알 거 없고 셀라라는 말은 높이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이런 용어들이 시편이 많은데 곡조가 되니까 높게 음악책에 보면 그런게 있지 않습니까. 익숙하지 않은 표현들입니다. 노래할 때 음악 용어들이다 이렇게 참고하시는 겁니다.
전체적으로 시편 9편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의로움을 노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는데 그들에 대한 처리를 생각해봤는데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 말이고 그 내용을 생각해보면 어떤 것을 심판하는 것이냐, 자유의 심판입니다. 자유의 심판, 자유의 심판이라고 하면 하나님이 자유롭게 심판한다는 뜻이 아니고 사람에게 주신 자유성 심판을 심판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공심판 사심판이 있는데 공심판은 다 하는 심판이고 사심판은 택자들만 받는 심판, 그리스도 심판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하사 택하셨다 목적을 정하셨다 그런 뜻이 드러나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이 하나님 아닌 다른 존재를 만드셨고 상대하시게 만드셨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로 만들기로 작정하셨다. 그 이름이 여호와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상대하실 때 인간에게 자유성을 주셨기 때문에 쌍방계약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여호와라고 합니다. 여호와는 무슨 뜻이라고요 혼자게셨는데 하나님 아닌 다른 존재를 만들기로 작정하신, 그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합니다. 그 목적에서 예정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의 대상인데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상대하시는데 이렇게 하나님이 사람을 상대하실 때 그것이 여호와라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하사 하나님 아닌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주인이고 하나님께 지음받은 피조물입니다. 주인이 계시니까 집안에 집에 강아지를 기르든지 소를 기르든지 그것들에게 주인을 알리는 게 정상입니다. 내가 너희 주인이야. 알리는 게 정상입니다. 관계가 되는 겁니다. 생명의 관계라 이런 것입니다. 아무 작용없는 것들은 이 세상에 크게만 나누면 생물과 무생물이 있습니다. 생물은 작용이 있고 무생물은 작용이 없는 겁니다.
흘러가는 냇물은 강물은 식물입니까 무생물입니까. 앉아있는 바위는 생물입니까 무생물입니까. 무생물들 끼리의 작용이 되는거지요. 이게 무생물 세계의 이런 것이니까 자연의 원리라 이치라 작용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말하는 자연의 작용이라는 것은 작용이 없으면 뭔가 없습니까. 작용이 있으면 시작이 있고 결과가 있다는 말인데 작용이 없다는 건 결과가 없습니다. 해운대 백사장에 모래가 있는데 바닷물이 휩쓸어가든지 작용이 생깁니다. 사람이 없어도 모래도 해변도 변화가 생깁니다. 그렇게 작용하는데 자연 세계는 무생물 세계는 작용이라고 합니다.
그 결과를 가르켜서 뭐라고 하는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고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하신 역사입니다. 내가 있다. 너희를 지은 주권자가 있다고 알리는 역사입니다. 모든 자연의 모든 것에도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차이가 없다고 하면 곤란하겠으나 돌들로도 아브라함자손 만들 수도 있다고 하신 게 만물 심판입니다. 창조주라는 창조주가 계신다. 이 세상에게 알리는게 자연의 작용들입니다. 그게 결과물들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면 그런게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생물 무생물을 떠나서 이게 주인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좁게 보니까 없는 거 같으나 세상 전부는 주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알리시는 겁니다. 모든 만물 전부다가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다. 하늘도 땅도 바다도 어떤 것이든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런 작용하시고 심판을 행하셨으며 그 심판이 뭐냐 그 심판이 바로 일반적으로 홍수 심판입니다 홍수 심판만 심판입니까. 소돔 고모라도 심판 아닌가요. 애굽을 친 것도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바로를 강팍하게 만든 것이 심판입니다. 애굽 나라를 쳐서 하나님을 알려서 구출하기 위해서 애굽을 치는 겁니다.
나일강에 죽은 유대민족 아이들이 엄청 많았을겁니다. 엄청 낳을 땐데 낳으면 죽이니까 악랄한 놈입니다. 그래서 너 민족을 이렇게 쳤으니까 너희도 죽어봐라 그래서 장자를 다 죽여버린겁니다. 맏아들 다 죽여버리고 짐승 새끼들 다 죽여버리고 너희들이 그 짓했으니 전멸해야겠다. 이게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노아 홍수 심판만, 소돔 고모라만 심판만, 이스라엘만 심판합니까. 이스라엘도 잘못 받았을 때 심판 했습니다. 국가적인 심판만 있습니까. 지역적인 심판 가정적인 심판도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하사 이 세상 모든 전부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은 몰라도 두려워서 떨어야 정상인데 기도할 때만 떠는데 그때 뿐이고 약한 인간들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서 심판을 행하셨으며 시대적으로 국가적으로 기업적으로 행하셨으며 악의는 얽혔도다 그렇게 해 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고 벗어나고 자기 중심이 되어서 자기가 주인이고 자기가 왕이고 하나님이라 이 뜻입니다. 악인이 악인이니까 악행을 했겠지요 악인의 악행들은 무엇이냐 자기가 얽혔고 자기가 판 함정에 얽혔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말하자면 인과응보고 그런 것이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어떤 심판이냐 자유의 심판. 자유의 심판이라는 말은 말하자면 하나님의 구원 세계가 다 그런데 순례적으로 가는 겁니다. 진리를 거스르는 걸 가르켜서 역리라고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대적이 되고 피조물 전부가 마찰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고 그게 들포도를 맺힘으로 처리한 게 하나님의 자유 심판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준다는 겁니다. 그들이 행한대로 하는데 권선징악의 인과응보의 그들이 원하는대로 해주시는 게 심판입니다. 하나님 모든 말씀은 너희 인간 중심이 되고 이 세상을 소망하고 살아나가면 마지막에 너희들이 지옥에 가야하고 멸망해야하니까 계속해서 말씀을 주시는 겁니다. 양심을 통해가르치고 끊임없이 복된길로 가라. 너가 그렇게 원하면 그래야지. 그렇게 영원토록 살고 싶으냐 영원토록 살아라. 그러면 마음껏 살게 해주마. 네 마음대로 살아라. 마음껏 살아라, 나는 빠져줄게. 그래서 인간이 자기 중심으로 영원토록 살도록 만들어주신 곳을 뭐라고 합니까. 그렇게 세상 사는 동안에 나 필요없다고 그러니 마음껏 살아라 그래서 진리 다 빼버리고 인간들이 왕되고 주인되어서 그렇게 한 장소를 뭐라고 합니까. 그걸 지옥이라고 합니다. 지옥은 좋은 곳이지요.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이 세상에서 그것을 마련한 겁니다.
한 번 지나가서 홍수심판 한 번은 남아있어서 불심판. 홍수심판은 그때만 받는 심판입니다. 홍수심판 때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 다 그런 것이고 세상 떠난 사람은 불심판은 없는 것이고 죽고 난 다음에 택불택을 나누는 백보좌 심판이 있고 그리스도 심판이 있는데 이게 자유 심판입니다.
사람은 변하고 잊어버리지만 동일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