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4-04-28조회 239추천 25
2024년 4월 28일 주일 오후
찬송: 74장, 89장
본문: 시편 9편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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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성경은 원본 성경이 아니라서 이 성경은 정확무오하지 않습니다. 사본의 사본의 번역의 번역이라서 오류가 더라더러 있습니다만 이걸 읽고 평생을 다 바치고 순교하는 사람들이 많은 성경이라서 손을 떼기 시작하면 문제가 많이 발생합니다. 성경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는 죄가 되고 하나님 말씀을 어지럽히는 죄가 됩니다.
성경은 옛날의 깨달음보다 깊이 되는 것이고 생명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그런 뜻으로 볼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이 타락한 인간 중심의 세상이 되어지고 세상에 흐름에 따라서 신앙들도 타락해져 가는 그런 중에서 어두워진 것이 신앙을 멋대로 손을 댄다. 우리 공회에 만약에 깊은 깨달음을 얻은 그런 분이 되셔서 건드리면 모르는 것이고 지금 성경 가지고도 얼마든지 쓸 수 있으니까 새 번역 성경은 사용하지 않는 게 좋고 개혁성경 지금까지 이 성경이 가장 정확하다 볼 수 있고 그래서 셀라 이런 우리하고 안 맞는데 성경에 적혀져 있어서 굳이 읽은 겁니다. 아이들이 빼도 읽어도 되는가 이런 인식이 들어갈까 싶어서 읽은 겁니다. 앞에도 성경 속에 들어있으니까 되도록 읽는게 낫지 않을까.
온 세상을 만들어놓고 세상을 만드신 주인이 딱 주인이 꼭 주권자가 있다는 걸 알리신다고 합니다. 알리시는 게 심판인데 심판이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최종적으로 나가면 설명이 필요한 심판이 되는데 행한대로 갚음 받는 게 심판이 된다 그 말입니다. 심판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생활 그 자체가 바로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 역사 창조 이후로 에덴 동산 창조 이후로 인간 세상에 펼쳐지는 모든 작용과 결과들, 그 작용에 대한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이고 그 심판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심판을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문에 설명하실 때 생물이 있고 무생물이 있고 생물이라는 것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고 무생물은 생명이 없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지요. 무생물은 가만히 있는 겁니다. 변동변화가 없어야하는데 변동이 없는 것이 아니고 가변적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장소에 있던지 물질계의 모든 것은 생물이 항상 그대로 있지 않고 가변적인 그런 것으로 되어있는 겁니다. 산에 있는 돌은 산에서 뿌리박고 몇 백년 몇 천년 뿌리 박고 있습니다. 그 돌이 변하겠는가. 비가 많이 오고 산사태가 오면 돌에 변화가 생깁니다. 어느날 인간이 변하고 그래서 멀쩡한 산을 파헤치고 그럽니다. 돌을 바닥에 붙이고 그 생명없는 사람을 위해서 받아야하는 게 아니고 그 계곡에 있어서 흘러가면서 생명없는 바위를 깎아 놓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많이 오면 비가 많이 오고 변화의 작용이 생겨지는 겁니다. 자연일 뿐인데 섭리가 저절로 되는 거 같은데 사람이 볼 때 하나님 모르는 사람이 볼 때 저절로 되어서 자연인데 자연이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창조주 주권자가 없다고 하는데 우리는 뽑아내는 겁니다. 자연 우연 돌발 이런 건 없는 것이 신앙 세계입니다.
생명없는 계곡의 물이 약해졌다가 생명어느하나 것이니까 전부 다가 주인이 계시고 알리시는 역사라 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로 가르치는 게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가르치는 겁니다. 특별 계시가 가르치는 걸 하나님과 같이 하는 겁니다. 굳이 전제되어있으니까 한국 사람들은 부부가 서로 사랑합니다 이런 거 안한다고 한다지요. 서양 사람들은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는데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합니다. 당연하거니까. 새삼스럽게 민망하게 그럴 필요가 있나. 그런데 요즘은 하도 부부사이도 위험하면 써먹어야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부부가 같이 붙어다니는 걸 조심시켰는데 일부러 붙어다니라 합니다.
하도 세상이 부부유별이라고 했는데 공자의 도덕도 자연계시입니다. 시대에 따라서 달라질 수가 있는 거지요. 그래서 당연한 것이니까 사도 신경을 안 외운다는 말은 당연한 겁니다. 하나 안하나 우리 속에 들어있는 겁니다. 그 사도 신경을 말하고 사도신경은 사람들이 만든겁니다. 주기도문은요 주님이 직접 가르친 기도입니다. 주일학교는 주로 하나 장년반은 잘 안하지요. 당연한 겁니다.
첫 번재 가르치는 계시는 주인이 있다 운행한다는 걸 가르치고 있고 그런 겁니다. 본문에 여호와께서 알게하사, 자연은 필연입니다.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자연은 순리지요 자연은 필연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신겁니다. 그게 주권섭리인 동시에 심판이라는 거지요. 콩을 심으면 콩이 나는 겁니다. 모래에 심었습니다. 영양분이 없어서 안 자랍니다. 이게 자연입니다. 땅을 잘 만들어서 콩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물을 안줬습니다. 이게 자연입니다. 잘 심어놓고 잘 가꿨습니다. 잘 자랍니다. 결실을 맺습니다. 순리입니다. 이런 걸 가르쳐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심판이라고 그러면 강제 억지로 이런 걸로 보이는데 세상인간 판사는 사람이 완전하지 못해서 법원의 판단은 엉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사법부가 굉장히 강합니다. 그게 직무지요. 판사가 정치 놀음에 자기 정당따라 하면 판사 옷벗어야합니다. 자격이 없는 것이지요. 그래도 그러니까 인간 판사들은 오류가 많습니다. 그래서 마치 판사의 권위가 굉장히 커지고 법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뭐든 전부다 뒤죽박죽입니다. 이게 인간 세상이고 엉망입니다. 염세주의가 아니고 실제 그런 것인데 이걸 볼 줄 모르면 눈이 어두운 것이고 순전하다는 말은 바보라 그 뜻입니다. 착하다는 게 바보라는 뜻입니다. 쉽게 이용을 당합니다. 교활하다 꾀가 많다 간악하다. 더 좋게 말하면 지혜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주셨고 인간세계도 그렇습니다.
거의 대개 보면 행한대로 갚음받는 게 행위와 결과의 부흥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뭐냐 단편적으로 여호와라고 하면 무슨 뜻입니까. 계약의 하나님이라는 뜻이지요. 목적을 정하신 곳부터 여호와입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존재를 상정하기로 했다 여호와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존재를 상대하기로 한 것이고 그게 택자가 된 것이고 말씀으로 상대하시려고 말씀을 선포하셨고 일방적으로 선포한 말씀입니다. 합의하지 않았습니다. 십계명 주실 때 타협하셨습니까. 그래서 십계명은 명령입니다. 상명하복이지 거기에 토를 달고 군대라는 단체는 명령 하나에 죽고 사는 거니까 기라면 기는 것이고 가라면 가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명령은 명령인데 주시고 우리에게 뭘 주셨다고요. 우리에게 그 말씀을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게 계약이 되는 겁니다. 내가 하는 말씀대로 순종하면 복이 된다. 그래서 이렇게 주셨으니까 복이 됐는데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선택을 주시고 그래서 계약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이런 내면이 있고 자연과 인간의 모습 전부다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하시고 심판의 역사다. 그리고 그 심판이란 악인은 손으로 행한 일에 얽혔도다. 악인도 있고 선인 죄인 의인도 있는데 어떤 것이든 그 모든 손으로 한 모든 일 전부 다는 스스로 행한 것이고 그 행한 것이 되어서 심판의 속성이랄까 그런 것이 되는 겁니다.
이 말씀과 관련하여 심판과 생각해보는 겁니다. 심판은 어떤 게 심판은 시점은 있습니다. 종류가 네 가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앞에서 설명드린 하나님을 알리시는 심판으로 들어가면 심판이 많습니다. 아담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었으니까. 그게 심판입니다. 그리고 노아 홍수 때 온 세상이 다 멸망받은 게 심판입니다. 애굽 나라가 열가지 재앙 받는 것도 심판입니다. 이스라엘 잡아죽이겠다고 그러니까 심판하셨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라에게 진 것도 심판입니다 남쪽이 바벨론에 잡힌 것도 심판입니다 그런데 크게 두 번 홍수 심판이 있었고 불심판이 있을 것이고 백보좌 심판이라고 자유 심판이고 불택자들을 지옥 보내는 심판을 공심판이라고 합니다. 이 전에 현실 심판. 봄이 되어서 씨앗을 뿌렸습니다. 한 농부는 부지런해서 씨앗을 뿌렸습니다. 한 농부는 안 뿌렸습니다. 한 일주일 정도 되니까 씨앗뿌린 농부 밭에는 싹이 났습니다. 안 뿌린 농부의 밭에는 싹이 안났습니다. 이게 심판입니다. 한 일에 대한 심판입니다. 더 땡기면 씨앗 뿌리는 게 심판이고 안 뿌리는 게 심판입니다.
열심해 공부를 했습니다. 한 학생은 공부를 안했습니다. 그러면 성적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좋을 것이고 나쁠 것이고 이런 걸 현실 심판이라고 합니다. 드러나지 않아도 시간문제일 뿐이지 안 드러나도 알잖습니까. 현실 심판입니다. 공부 안하네 성적이 떨어지겠네 공부하네 성적이 올라가겠네. 경제가 좀 마련되고 일어서겠네. 게으르네 흥청망청쓰네 답이 나오는 겁니다. 안 봐도 이걸 할 줄 모르면 소경이 되는 거지요. 자연 계시에 속한 것입니다. 신앙세계로 들어온건데 신판의 의미가 뭐냐 심판의 의미는 일차적으로 주인이신 절대자 주인이신 창조주, 그분의 개입을 하는 겁니다. 자연의 모든 게 다 그렇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역사로 하니까 안 보이는 거 같은데, 우주 공간에 수천억개도 넘습니다. 그 엄청난 별들이 지구는 뭘로 묶어 놨습니까. 튼튼한 밧줄로 묶어놨습니까. 지구나 태양이나 별들은 뭐로 묶어놨습니까. 중력이라는 게 있다던가, 떠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습니까. 총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인답니다. 그 수많은 별들이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충동하는데 총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전 공전합니다. 그런데 그게 충돌도 안되고 잘 돕니다. 기이하다 그러죠.
과학이고 물리라는 건데 그 물리 과학을 그렇게 만들어놓으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그분의 실력을 전능이라고 합니다. 우주를 그렇게 만들어놓고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전능이라는 거죠. 이분이 계신다는 것을 이 세상에 알리는 게 하나님입니다. 심판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그런데 외부적으로 전체적인 의미가 그렇고 무궁 세계 영원한 세계가 되는 것이고 외부적인 심판의 의미입니다. 내부적인 심판의 의미를 들어가보면 행한대로 갚아주신다는 뜻이고 원하는대로 갚아주시는 게 심판의 의미인거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힘쓸게 뭐냐. 심판의 기준이 어떠하냐 말씀이 심판하고 미리 알려주신 겁니다.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몰라서 그랬는 것은 핑계가 되지 않습니다. 모두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자유의 율법입니다. 생명되고 복이 되는 말씀을 주셨는데 선택은 알아서 하라고 하셨고 그 속성이 지공과 지성입니다. 지성이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을 못드렸는데 오늘 오후예배 준비하면서 이거다 하고 깨달은게 공평되게 하는 게 지공입니다. 지성은 말 한 마디도 생각하는 거까지도 하나도 빠짐없이 심판하는 것이 지성입니다. 심판의 기준은 지공과 지성입니다.
마음의 생각 감정까지 따져서 심판하는 것이고 지공과 지성의 심판이다. 하나라도 빼놓고 하면 지성이 안되는 거지요. 다 가려서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 심판 자체가 그대로 갚아주는 게 지공이 되는 것이고 이게 심판의 기준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심판의 결과는 어떤 것도 이일을 하지 못하도록 지성과 지공이니까 하나님의 지성 지공이 이해가 되어야하는데 이 세상에서는 자기 중심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재판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재판결과에 대해서 항소를 합니다. 대부분 항소해서 1심해서 2심으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공과 지성으로 심판하기 때문에 항변은 할 수 있는데 지옥은 빛이 있습니까. 어둠의 세계겠지요. 지옥은 천국과 다른 지옥에 걸맞는 빛이 있습니다. 지옥에 빛이 있다. 진리의 빛 영감의 빛 밝음의 빛이 아니고 자기를 알 수 있는 빛입니다. 이게 지옥의 빛입니다. 그래서 지옥은 더 고통스럽습니다. 한편으로는 할 말이 없습니다. 너무나 지성적이다 지공적이다. 내 살아온 생애에 대해서 너무 지성적이고 지공적이다. 그런데 참 억울하고 분하다 나 자신한테 대해서, 왜 그랬을까. 껄껄껄한다고 합니다. 이거면 좋았을 걸 저러면 좋았을 걸 후회가 되니까 보이니까. 안 보이면은 항변할 건데 제가 한 짓을 제가 안 겁니다. 할 말은 없고 말은 못하고 자기 한 짓은 미워죽겠고 이런 것입니다.
지성과 지공의 심판이기에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처리 되는 곳이 천국과 지옥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심판의 결과가 나타나는 마무리되는 곳을 천국과 지옥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천국이라는 단어가 37번 옵니다. 성경에. 그런데 37번 중에 가장 많이 기록된 곳이 어디겠습니다. 마태복음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지옥이라는 표현도 마태복음에 주로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란 곳은 영원한 처소입니다. 신령한 세계인데 심판에 따라서 존재적으로 활동적으로 극과 극의 세계가 천국과 지옥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결국 심판에 대해 되는 거기 때문에 안됩니다.
그런데 자유의 심판은 그 심판에 대해서 천국 지옥이 정해지는 것이고 중심에 뭐가 들었냐 자유성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자유성이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속성입니다. 천사도 자유성이 있습니다. 무엇이 근거됩니까. 이 설교가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아서 어떨지 모르겠으나 다 적용되는 말씀인데, 천사가 자유성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근거해말합니까. 타락을 근거로 말합니다. 그런데 천사의 자유성은 사람의 자유성과는 다릅니다. 사람에게만 주신 자유성. 자유성이라는 말 그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살 수 있다는 뜻이 있는데 자유성이란 말은 하나님의 아들에게만 주셨기 때문에 불택자들에게 주신 자유성이 있습니까. 좀 다르겠지요. 그래서 사람대 사람은 택자만 사람입니다. 불택자는 택자를 위해 이용하는 것이고. 이럴 때 인간의 감정이 들어가고 감성이 들어가면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도 안한다. 노아시대 때 수십억을 없애버린 겁니다. 그래서 신앙세계를 정으로 접근하면 마지막에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이는 베드로가 됩니다.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거지요.
주인으로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종자라 이게 자유성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따져본다면 택자들에게 주셨다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자유성이 다 결국 피조물이기 때문에 궁극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 앞에 관리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사람이 주신 자유성이 귀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니기
찬송: 74장, 89장
본문: 시편 9편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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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성경은 원본 성경이 아니라서 이 성경은 정확무오하지 않습니다. 사본의 사본의 번역의 번역이라서 오류가 더라더러 있습니다만 이걸 읽고 평생을 다 바치고 순교하는 사람들이 많은 성경이라서 손을 떼기 시작하면 문제가 많이 발생합니다. 성경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는 죄가 되고 하나님 말씀을 어지럽히는 죄가 됩니다.
성경은 옛날의 깨달음보다 깊이 되는 것이고 생명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그런 뜻으로 볼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이 타락한 인간 중심의 세상이 되어지고 세상에 흐름에 따라서 신앙들도 타락해져 가는 그런 중에서 어두워진 것이 신앙을 멋대로 손을 댄다. 우리 공회에 만약에 깊은 깨달음을 얻은 그런 분이 되셔서 건드리면 모르는 것이고 지금 성경 가지고도 얼마든지 쓸 수 있으니까 새 번역 성경은 사용하지 않는 게 좋고 개혁성경 지금까지 이 성경이 가장 정확하다 볼 수 있고 그래서 셀라 이런 우리하고 안 맞는데 성경에 적혀져 있어서 굳이 읽은 겁니다. 아이들이 빼도 읽어도 되는가 이런 인식이 들어갈까 싶어서 읽은 겁니다. 앞에도 성경 속에 들어있으니까 되도록 읽는게 낫지 않을까.
온 세상을 만들어놓고 세상을 만드신 주인이 딱 주인이 꼭 주권자가 있다는 걸 알리신다고 합니다. 알리시는 게 심판인데 심판이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최종적으로 나가면 설명이 필요한 심판이 되는데 행한대로 갚음 받는 게 심판이 된다 그 말입니다. 심판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생활 그 자체가 바로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 역사 창조 이후로 에덴 동산 창조 이후로 인간 세상에 펼쳐지는 모든 작용과 결과들, 그 작용에 대한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이고 그 심판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심판을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문에 설명하실 때 생물이 있고 무생물이 있고 생물이라는 것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고 무생물은 생명이 없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지요. 무생물은 가만히 있는 겁니다. 변동변화가 없어야하는데 변동이 없는 것이 아니고 가변적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장소에 있던지 물질계의 모든 것은 생물이 항상 그대로 있지 않고 가변적인 그런 것으로 되어있는 겁니다. 산에 있는 돌은 산에서 뿌리박고 몇 백년 몇 천년 뿌리 박고 있습니다. 그 돌이 변하겠는가. 비가 많이 오고 산사태가 오면 돌에 변화가 생깁니다. 어느날 인간이 변하고 그래서 멀쩡한 산을 파헤치고 그럽니다. 돌을 바닥에 붙이고 그 생명없는 사람을 위해서 받아야하는 게 아니고 그 계곡에 있어서 흘러가면서 생명없는 바위를 깎아 놓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많이 오면 비가 많이 오고 변화의 작용이 생겨지는 겁니다. 자연일 뿐인데 섭리가 저절로 되는 거 같은데 사람이 볼 때 하나님 모르는 사람이 볼 때 저절로 되어서 자연인데 자연이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창조주 주권자가 없다고 하는데 우리는 뽑아내는 겁니다. 자연 우연 돌발 이런 건 없는 것이 신앙 세계입니다.
생명없는 계곡의 물이 약해졌다가 생명어느하나 것이니까 전부 다가 주인이 계시고 알리시는 역사라 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로 가르치는 게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가르치는 겁니다. 특별 계시가 가르치는 걸 하나님과 같이 하는 겁니다. 굳이 전제되어있으니까 한국 사람들은 부부가 서로 사랑합니다 이런 거 안한다고 한다지요. 서양 사람들은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는데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합니다. 당연하거니까. 새삼스럽게 민망하게 그럴 필요가 있나. 그런데 요즘은 하도 부부사이도 위험하면 써먹어야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부부가 같이 붙어다니는 걸 조심시켰는데 일부러 붙어다니라 합니다.
하도 세상이 부부유별이라고 했는데 공자의 도덕도 자연계시입니다. 시대에 따라서 달라질 수가 있는 거지요. 그래서 당연한 것이니까 사도 신경을 안 외운다는 말은 당연한 겁니다. 하나 안하나 우리 속에 들어있는 겁니다. 그 사도 신경을 말하고 사도신경은 사람들이 만든겁니다. 주기도문은요 주님이 직접 가르친 기도입니다. 주일학교는 주로 하나 장년반은 잘 안하지요. 당연한 겁니다.
첫 번재 가르치는 계시는 주인이 있다 운행한다는 걸 가르치고 있고 그런 겁니다. 본문에 여호와께서 알게하사, 자연은 필연입니다.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자연은 순리지요 자연은 필연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신겁니다. 그게 주권섭리인 동시에 심판이라는 거지요. 콩을 심으면 콩이 나는 겁니다. 모래에 심었습니다. 영양분이 없어서 안 자랍니다. 이게 자연입니다. 땅을 잘 만들어서 콩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물을 안줬습니다. 이게 자연입니다. 잘 심어놓고 잘 가꿨습니다. 잘 자랍니다. 결실을 맺습니다. 순리입니다. 이런 걸 가르쳐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심판이라고 그러면 강제 억지로 이런 걸로 보이는데 세상인간 판사는 사람이 완전하지 못해서 법원의 판단은 엉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사법부가 굉장히 강합니다. 그게 직무지요. 판사가 정치 놀음에 자기 정당따라 하면 판사 옷벗어야합니다. 자격이 없는 것이지요. 그래도 그러니까 인간 판사들은 오류가 많습니다. 그래서 마치 판사의 권위가 굉장히 커지고 법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뭐든 전부다 뒤죽박죽입니다. 이게 인간 세상이고 엉망입니다. 염세주의가 아니고 실제 그런 것인데 이걸 볼 줄 모르면 눈이 어두운 것이고 순전하다는 말은 바보라 그 뜻입니다. 착하다는 게 바보라는 뜻입니다. 쉽게 이용을 당합니다. 교활하다 꾀가 많다 간악하다. 더 좋게 말하면 지혜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주셨고 인간세계도 그렇습니다.
거의 대개 보면 행한대로 갚음받는 게 행위와 결과의 부흥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뭐냐 단편적으로 여호와라고 하면 무슨 뜻입니까. 계약의 하나님이라는 뜻이지요. 목적을 정하신 곳부터 여호와입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존재를 상정하기로 했다 여호와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존재를 상대하기로 한 것이고 그게 택자가 된 것이고 말씀으로 상대하시려고 말씀을 선포하셨고 일방적으로 선포한 말씀입니다. 합의하지 않았습니다. 십계명 주실 때 타협하셨습니까. 그래서 십계명은 명령입니다. 상명하복이지 거기에 토를 달고 군대라는 단체는 명령 하나에 죽고 사는 거니까 기라면 기는 것이고 가라면 가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명령은 명령인데 주시고 우리에게 뭘 주셨다고요. 우리에게 그 말씀을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게 계약이 되는 겁니다. 내가 하는 말씀대로 순종하면 복이 된다. 그래서 이렇게 주셨으니까 복이 됐는데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선택을 주시고 그래서 계약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이런 내면이 있고 자연과 인간의 모습 전부다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하시고 심판의 역사다. 그리고 그 심판이란 악인은 손으로 행한 일에 얽혔도다. 악인도 있고 선인 죄인 의인도 있는데 어떤 것이든 그 모든 손으로 한 모든 일 전부 다는 스스로 행한 것이고 그 행한 것이 되어서 심판의 속성이랄까 그런 것이 되는 겁니다.
이 말씀과 관련하여 심판과 생각해보는 겁니다. 심판은 어떤 게 심판은 시점은 있습니다. 종류가 네 가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앞에서 설명드린 하나님을 알리시는 심판으로 들어가면 심판이 많습니다. 아담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었으니까. 그게 심판입니다. 그리고 노아 홍수 때 온 세상이 다 멸망받은 게 심판입니다. 애굽 나라가 열가지 재앙 받는 것도 심판입니다. 이스라엘 잡아죽이겠다고 그러니까 심판하셨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라에게 진 것도 심판입니다 남쪽이 바벨론에 잡힌 것도 심판입니다 그런데 크게 두 번 홍수 심판이 있었고 불심판이 있을 것이고 백보좌 심판이라고 자유 심판이고 불택자들을 지옥 보내는 심판을 공심판이라고 합니다. 이 전에 현실 심판. 봄이 되어서 씨앗을 뿌렸습니다. 한 농부는 부지런해서 씨앗을 뿌렸습니다. 한 농부는 안 뿌렸습니다. 한 일주일 정도 되니까 씨앗뿌린 농부 밭에는 싹이 났습니다. 안 뿌린 농부의 밭에는 싹이 안났습니다. 이게 심판입니다. 한 일에 대한 심판입니다. 더 땡기면 씨앗 뿌리는 게 심판이고 안 뿌리는 게 심판입니다.
열심해 공부를 했습니다. 한 학생은 공부를 안했습니다. 그러면 성적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좋을 것이고 나쁠 것이고 이런 걸 현실 심판이라고 합니다. 드러나지 않아도 시간문제일 뿐이지 안 드러나도 알잖습니까. 현실 심판입니다. 공부 안하네 성적이 떨어지겠네 공부하네 성적이 올라가겠네. 경제가 좀 마련되고 일어서겠네. 게으르네 흥청망청쓰네 답이 나오는 겁니다. 안 봐도 이걸 할 줄 모르면 소경이 되는 거지요. 자연 계시에 속한 것입니다. 신앙세계로 들어온건데 신판의 의미가 뭐냐 심판의 의미는 일차적으로 주인이신 절대자 주인이신 창조주, 그분의 개입을 하는 겁니다. 자연의 모든 게 다 그렇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역사로 하니까 안 보이는 거 같은데, 우주 공간에 수천억개도 넘습니다. 그 엄청난 별들이 지구는 뭘로 묶어 놨습니까. 튼튼한 밧줄로 묶어놨습니까. 지구나 태양이나 별들은 뭐로 묶어놨습니까. 중력이라는 게 있다던가, 떠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습니까. 총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인답니다. 그 수많은 별들이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충동하는데 총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전 공전합니다. 그런데 그게 충돌도 안되고 잘 돕니다. 기이하다 그러죠.
과학이고 물리라는 건데 그 물리 과학을 그렇게 만들어놓으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그분의 실력을 전능이라고 합니다. 우주를 그렇게 만들어놓고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전능이라는 거죠. 이분이 계신다는 것을 이 세상에 알리는 게 하나님입니다. 심판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그런데 외부적으로 전체적인 의미가 그렇고 무궁 세계 영원한 세계가 되는 것이고 외부적인 심판의 의미입니다. 내부적인 심판의 의미를 들어가보면 행한대로 갚아주신다는 뜻이고 원하는대로 갚아주시는 게 심판의 의미인거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힘쓸게 뭐냐. 심판의 기준이 어떠하냐 말씀이 심판하고 미리 알려주신 겁니다.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몰라서 그랬는 것은 핑계가 되지 않습니다. 모두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자유의 율법입니다. 생명되고 복이 되는 말씀을 주셨는데 선택은 알아서 하라고 하셨고 그 속성이 지공과 지성입니다. 지성이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을 못드렸는데 오늘 오후예배 준비하면서 이거다 하고 깨달은게 공평되게 하는 게 지공입니다. 지성은 말 한 마디도 생각하는 거까지도 하나도 빠짐없이 심판하는 것이 지성입니다. 심판의 기준은 지공과 지성입니다.
마음의 생각 감정까지 따져서 심판하는 것이고 지공과 지성의 심판이다. 하나라도 빼놓고 하면 지성이 안되는 거지요. 다 가려서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 심판 자체가 그대로 갚아주는 게 지공이 되는 것이고 이게 심판의 기준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심판의 결과는 어떤 것도 이일을 하지 못하도록 지성과 지공이니까 하나님의 지성 지공이 이해가 되어야하는데 이 세상에서는 자기 중심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재판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재판결과에 대해서 항소를 합니다. 대부분 항소해서 1심해서 2심으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공과 지성으로 심판하기 때문에 항변은 할 수 있는데 지옥은 빛이 있습니까. 어둠의 세계겠지요. 지옥은 천국과 다른 지옥에 걸맞는 빛이 있습니다. 지옥에 빛이 있다. 진리의 빛 영감의 빛 밝음의 빛이 아니고 자기를 알 수 있는 빛입니다. 이게 지옥의 빛입니다. 그래서 지옥은 더 고통스럽습니다. 한편으로는 할 말이 없습니다. 너무나 지성적이다 지공적이다. 내 살아온 생애에 대해서 너무 지성적이고 지공적이다. 그런데 참 억울하고 분하다 나 자신한테 대해서, 왜 그랬을까. 껄껄껄한다고 합니다. 이거면 좋았을 걸 저러면 좋았을 걸 후회가 되니까 보이니까. 안 보이면은 항변할 건데 제가 한 짓을 제가 안 겁니다. 할 말은 없고 말은 못하고 자기 한 짓은 미워죽겠고 이런 것입니다.
지성과 지공의 심판이기에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처리 되는 곳이 천국과 지옥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심판의 결과가 나타나는 마무리되는 곳을 천국과 지옥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천국이라는 단어가 37번 옵니다. 성경에. 그런데 37번 중에 가장 많이 기록된 곳이 어디겠습니다. 마태복음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지옥이라는 표현도 마태복음에 주로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란 곳은 영원한 처소입니다. 신령한 세계인데 심판에 따라서 존재적으로 활동적으로 극과 극의 세계가 천국과 지옥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결국 심판에 대해 되는 거기 때문에 안됩니다.
그런데 자유의 심판은 그 심판에 대해서 천국 지옥이 정해지는 것이고 중심에 뭐가 들었냐 자유성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자유성이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속성입니다. 천사도 자유성이 있습니다. 무엇이 근거됩니까. 이 설교가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아서 어떨지 모르겠으나 다 적용되는 말씀인데, 천사가 자유성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근거해말합니까. 타락을 근거로 말합니다. 그런데 천사의 자유성은 사람의 자유성과는 다릅니다. 사람에게만 주신 자유성. 자유성이라는 말 그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살 수 있다는 뜻이 있는데 자유성이란 말은 하나님의 아들에게만 주셨기 때문에 불택자들에게 주신 자유성이 있습니까. 좀 다르겠지요. 그래서 사람대 사람은 택자만 사람입니다. 불택자는 택자를 위해 이용하는 것이고. 이럴 때 인간의 감정이 들어가고 감성이 들어가면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도 안한다. 노아시대 때 수십억을 없애버린 겁니다. 그래서 신앙세계를 정으로 접근하면 마지막에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이는 베드로가 됩니다.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거지요.
주인으로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종자라 이게 자유성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따져본다면 택자들에게 주셨다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자유성이 다 결국 피조물이기 때문에 궁극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 앞에 관리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사람이 주신 자유성이 귀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