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1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4-04-21조회 171추천 24
2024년 4월 21일 주일 오후
찬송: 176장, 187장
본문: 이사야 5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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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포도는 포도를 맺는 나무가 포도 나무입니다. 포도 나무가 포도 열매를 맺게 되는 겁니다. 종자가 나쁘면 나쁜 포도가 맺혀질 것이고 좋은 종자를 심으면 좋은 종자를 심을 겁니다. 많진 않아도 종자가 좋으면 포도 열매는 좋은 포도 열매를 맺히는 게 정상이라서 이런 원리가 있기 때문에 진리라서 진리는 불변이고 절대성을 가지고 필연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자연은 스스로 자 에 그대로 연자를 씁니다. 이것은 절대성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지신 창조의 세계에 모든 만물은 이게 진리고 필연성 가진 자연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있는 겁니다. 안 되면 문제가 되는 겁니다. 포도 나무를 심었으니까 가장 극상품 포도나무입니다. 마땅히 가장 좋은 포도가 맺혀져야 정상인데 들포도가 맺혔습니다. 이렇게 될 수 없는데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를 통해서 구약 이스라엘을 가르쳤고 아사와 흐스기야의 시대 현상을 이사야 선지가 가르쳐주신 겁니다. 이스라엘은 많은 침략을 받아서 앗수르에 침략 받아서 그런 상태에서 많이 회복을 시킵니다. 므낫세 아몬으로 이어졌으면 좋을텐데 히스기야 시대가 끝으로 그리 되었습니다. 희망을 살리지 못한 것이 안타까움입니다.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하여 노래한다고 문맥상 그럽니다. 하나님을 사랑했고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하여 노래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사야 선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아는 만큼 노력을 하는 것인데 내면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심정을 이사야를 위해 대행을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말씀을 처참한 상황을 노래로 발표하는 그 심정이 대변한다 그리 볼 수가 있는 겁니다. 동시에 이사야 선지를 사랑함으로 자의적으로 대면하고 있는 겁니다. 이사야는 그게 자기가 보고 자기가 느낀 자기 심정을 말하는 겁니다. 대변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사야 선지를 두고 본다면 우리가 이런 상황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상황을 깨닫고 헤아려서 바라시는 소망 가지고 계시는 이스라엘을 보는 심정 그리 되면 깨끗한 사람이 되어야겠고 통하는 사람이 되어야될테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목적 세계를 해서 상황을 보고 심히 마음 아픈 그런 것을 해야겠다. 이런 우리가 되도록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이사야 선지같은 우리들. 내가 무슨 선지가 될 것인가, 우리가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한 겁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세계 목적세계 모두 귀를 가지고 계시지요 소리는 각각 다 다를겁니다. 백목사님 생전에 85년도인가 그때 기도를 안하시다가 하도 병이 나았다고 미혹을 해서 무너뜨려서 너희들이 미혹하는 말은 너무나도 잘 듣는데 참 생명의 내 말은 듣는다 그래서 정신없는 내 자랑을 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그리한 만큼 그렇게 자랑하는데 백 목사님께서 과거에 기도하면 앉은 뱅이가 일어나고 초대 교회 사도처럼 됐는데 하도 세상에서 그런 미혹이 많아서 집회 때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앉은뱅이된 자, 그때 병 나은 사람을 적어내라고 해라고 해서 618명입니다. 제가 녹음해서 장소에서 녹음을 틀었기 때문에 녹음을 해서 618명을 다 녹음했습니다. 618명 기억하는데 그때 그 중에서 사람 중 하나가 귀가 어두워서 안 들리는 사람인데 온 세상이 갑자기 와글와글 하덥니다. 알고보니까 막힌 귀가 뚫린거지요. 너무 시끄러워서 정신이 없는 겁니다. 귀가 밝으면 굉장히 작은 소리도 들리겠지요. 제가 보청기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은 예배당이 조용합니다. 그런데 보청기를 끼면 아주 작은 소리가 다 들려서 이걸 보고 느끼는게 귀가 밝은 것이 좋은데 마냥 좋은 건 아니겠구나.
귀만 그렇게 했습니까 눈이 밝아서 현미경처럼 밝습니다. 세균이 수십만마리 득실득실한 게 보이면 식사하시겠습니까. 적당하게 만드신겁니다. 귀도 적당하게 밝게 하신겁니다. 모든 걸 다 보이는 게 좋은 게 아니라는 거지요. 보여주시는 것은 들어야하고 들려주시는 것은 들어야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때로 두려워할 자가 누가 있는가, 하나님을 알 대로 다 알면 견디지 못할 겁니다. 설교록에 나온 말씀에 실감이 어렵습니다. 영감에 충만하니까 육신이 감당이 안된답니다. 주님, 이걸 좀 낮춰주옵소서 모든 것이 정량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에 너무 충만하니까 감량이 안되가지고 꿈같은 그런 말인데 성령에 붙든단 말인데 목요일 새벽입니까. 이삭의 온유한 신앙 있는대로 충성을 합니다. 마지막 결과 하나님께 맡겨놓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역사가 있습니다. 영감 역사는 감동 역사입니다. 감정과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있습니다. 감동이 충만한데 아무리 감동이 벗어나도 견디지 못합니다. 힘있게 찬송해보셨지요 그럴 때는 목이 터져라 찬송을 불렀습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신앙생활하고 믿음으로 사는 생활이 한 두 두 주 한 달만 계속하면 찬송할 때 은혜가 넘칠겁니다. 함께 찬송하면 영감이 폭발하거든요 그럴 때는 떨리는 거지요.
하나님을 알대로 알면 버티지 못합니다. 적절하게 알려주시는 겁니다. 지식적으로 알아도 실감이 조절될 수 밖에 없다 이 말이지요. 하나님의 구원 세계를 알대로 알면 없는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가르켜서 예수에 미친 사람들을 보고 안 믿는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이 사람은 무슨 환자라고 영병걸린 사람이다. 그리 말했습니다. 이게 믿는 사람.
모두 참 그렇게 믿어보셨겠지요 사람이기 때문에 넘어질지라도 예수에 미쳐봐야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구원 세계를 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 겁니다. 먹어보진 못해도 알긴 알아야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이게 정상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은 날 사랑하심으로 내 전부를 바치셨으니 마땅하지 않습니까. 이로써 사랑을 알고 목숨 버리는 것이 마땅하리라.
사랑을 받았으면 사랑을 하는 게 정상입니다. 지식적으로 알고 실감적으로 알고 깨달아봐야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자에 대하여 노래하되 이런 게 보여야하는데 어느 정도 보여야 하나님의 심정이 보여야 대변할 수 있겠지요. 이사야의 눈에는 이스라엘의 처지가 보인 겁니다. 그래서 비유를 들어서 노래를 한 겁니다. 이사야 선지가 그 비유를 가지고 노래한 겁니다.
노래라는 것은 깨달은 거 자기를 위해 깨닫는 깊은 이런 게 시고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세상은 시에다 노래를 붙입니다. 노래는 찬송가, 찬가. 감사의 노래. 축가도 있고 반대로 애가도 있고 군가도 있고 동요도 있고 본문의 이 노래는 무슨 노래 같습니다. 이건 찬송갑니까 축가입니까 군가입니까 애가입니까. 애가에 가깝겠지요. 슬픈 노래입니다.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노래하되 어떤 노래냐 주제가 뭐냐
포도원 노래. 포도원 노래하고 있습니다. 포도원을 두고 느낌을 발표하고 있는 겁니다. 포도원이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도원이라 그렇습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고 내면에 우리를 돌아보는 겁니다. 그 시대에 그들에게 포도원이었고 우리가 포도원이 되는 것이고 같은 신앙 생활에도 읽을 때마다 들을 때마다 우리가 포도원이고 포도나무구나 기억해야합니다.
포도원은 하나님의 교회고 구약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무엇이라는 말이 되는 겁니다.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무엇이라는 말이 되는 겁니까.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포도원은 업입니다. 하나님의 농사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포도원 농부입니다. 하나 밖에 없는 포도원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전부 다 쏟아붓습니다. 포도원이 과수원이 여러개면 이것저것 봐야하는데 하나 밖에 없으면 하나님의 포도원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게 바로 교회고 하나님의 목적이고 그 목적이 하나님의 뜻이고 소원이고 역사고 전부 다가 되는 겁니다. 자존하신 하나님께 포도원이 있으며 목적이 있으며 하고자하시는 바가 있으며 그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포도원의 환경이 기름진 산입니다. 심히 기름지다. 기름진 산입니다. 감나무에게는 좋은데 인삼에게는 안 좋을 수 있습니다. 습기 많은 나무를 좋아하는 게 있고 마른 땅을 좋아하는 땅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기름진 산이라는 것이냐 포도나무에게 가장 기름진 산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정해놓으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장소 그런 것이 기름진 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 그런 과정들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삭을 주시고 이삭을 주실 때 그냥 주신게 아니고 사라의 많은 과정에서 주시고 이스마엘을 먼저 주셔서 충돌되게 하시고 이런 갈등의 역사도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애서와 야곱을 주시고 장자는 탈선하고 쌍둥이 둘째 야곱을 주셨고 아주 유별나게 애착있는 사람을 만들어서 열두 아들 낳게 하시고 그래서 아내가 넷이 된거고 자식이 열두명이 된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에게는 라반이 라헬을 준다고 해놓고 레아를 줬을 때 만족하고 말텐데 약속 지켜야죠 하면서 둘을 받고 시기 질투를 일으켜서 열둘 낳을 과정 때 보니까 말도 못하고 시기 때문에 싸움이 나고 그게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 역사입니다.
그 시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깁니까. 이복형제들 때문에 시기 때문에 애굽에 팔아먹게 만들고 이스라엘이 번창하게 만들어놓고 그리고나서 학대하게 만들고 모세를 보내시고 전부 다가 그냥 생긴 게 아니라 구원 역사를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을 구출해내시는 가장 좋은 심히 기름진 산이다 이 말입니다. 이해가 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심히 기름진 산입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포도원의 환경 심히 기름진 산, 종자, 종자는 극상품 포도나무입니다. 가장 극이라는 말은 가장 좋은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목적 세계가 그게 지향하는 바가 하나님을 닮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자다. 하나님께서 낳으신 하나님의 종자입니다. 극상품 포도나무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심히 어리석어서 잘못된 지식을 넣고 사람이 한 순간에 짐승처럼 되는 게 사람입니다. 하다보니까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고 극상품 포도나무 종자 우리들입니다. 극상품 종자, 하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돌을 제했습니다. 방해물을 다 제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다 물리치고 그리고 돌을 제하고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심었다는 말은 중생시켜서 불렀다. 심었습니다. 모든 것을 보고 알 수 있도록 말씀을 주셨습니다. 양심을 주셨고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승리역사를 하셨습니다. 모두 어디까지입니까. 돌을 제하고 포도나무를 심었고 중생시켰고 말씀을 알게 하시고 내가 하나님이 안하는 것이 없고 그런데 이렇게 했는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느냐 허무하게 되어졌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으라 그랬는데 자기 중심이 되어졌고 이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인본주의가 되었습니다. 구약이 그리되었고 교회들이 그리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다 이렇게 흘러가는 게 교회역사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서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만드셨습니다. 심히 기름진 산에다가 돌을 제거하고 극상품을 심었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들포도를 맺혀버렸습니다. 울타리, 경계가 다 없어져버렸습니다. 다른 말씀을 했지만 느껴지시겠습니까. 울타리를 걷어버렸습니다. 울타리를 걷어버려서 포도원이 무엇이 포도원이 되었습니까.
여기 포도원은 구약의 이스라엘이고 오늘의 포도원은 무엇이 포도원이었습니까. 교회가 포도원입니다.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구원이라는 말은 포도원이 교회인데 교회라는 곳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교회란 곳은 거룩한 곳이다. 교회라는 곳은 구별된 곳이라는 말입니다. 다르다는 말입니다. 무엇과 다른 겁니까. 이 세상과 교회는 다르다 구별이 되어야합니다. 이걸 없애버렸씁니다. 포도원이 포도나무 잘 자라게 열매가 되어야하는데 교회가 교회로 구원이 이어나가야하는데 대속의 사람을 만들어야하는데 목사가 대속의 사람이 되고 되어서 복음을 정해서 만들어 나가야하는데 대속으로 살게해야하는데 인간 놀음만 하고 있습니다. 정치하고 사업하고 인간 모임이 되어지고 이런 것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교회와 세상의 구별이 없어졌습니다. 약자는 강자의 밥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교회는 약한 겁니다. 이 세상은 강합니다. 그래서 울타리를 쳐놨는데 잡아먹혔습니다.
짓밟히게 합니다. 다 없어져버렸습니다. 교회이기 때문에 개인 교회도 가정 교회도 교회가 교회로 교회 답게 이루어가는 것은 보호가 있는데 보혜사 성령의 다 없어졌습니다. 짓밟히게 합니다. 이런 성경을 가지고 깨닫고 이사야 5장 말씀을 깨닫고 유력한 큰 교회 목회자들은 깨닫는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설교를 못합니다. 메인 게 많아서. 교권 때문에 못하는 겁니다.
교회가 오늘날 이 세상에게 마구 짓밟혀서 환급히 압니다. 황무지가 될 것입니다. 농사 지어야할 땅에 포도원에 포도가 없고 과수원에 과수 나무가 없고 없어져버렸습니다. 교인들이 모여야하는데 텅텅 비어져갑니다. 교인들이 없어집니다.
예수님께 너희들도 가려니와 영생의 말씀이 있으니까 말씀 붙들지 않으면 교인들이 모였다 교인들이 많이 모였다. 오늘날 대형 교회가 많습니다. 여기 성경에 보니까 황무지가 됐다. 오늘날 교회는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미국 영국 유럽의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교회나라에 술집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저기 교회에 찻집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교회를 찻집을 만드니까 그렇게 꾸미는 사람들의 앞날이 좋지가 않을 겁니다.
들포도를 외치니까 포도나무를 깎아서 구원이 되어야하는데 세상놀음 하고 인간놀음 하고 있으니까 교회는 가정 교회도 교회입니다. 가정 교회 노력하지 않으면 황무지가 됩니다. 개인 교회도 그러합니다. 내가 밥이 되어버립니다. 네 번째는 다시는 가지를 자른다, 그래야 열매를 맺을 가지가 납니다. 모든 과수 나무는 쓸데없는 가지를 다 잘라줘야 충실한 가지가 남습니다. 교회가 교회로써 구별이 없어지고 다섯 번째, 사람을 찌르는 가지입니다. 교회에 아무것도 없고 거기 세상 사상, 행복하십시오 사랑하십시오 봉사하십시오 이웃을 도우십시오. 행복이 뭐냐 부부 행복하게 살면 됐다. 자식들은 알아서 살게 하면 됩니다. 그게 오늘날 예배당에 이 세상에 찬송가가 없어지고 예배가 없어지고 이런 모양이 되어지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온갖 참사람이 될 것이고 탈선이 될 것이 여기 사고 방식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결국 마지막에 잡혀가서 망하고 말았고 이것이 구약의 그 역사가 구원 도리로 내려와서 오늘날 이렇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 은혜로 길을 잘 들어서 착각인지 오판인지 모르겠으나 말씀으로 따져보니까 이럴 수 있습니다. 우리를 노래하는 겁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일반적으로 아는 말씀입니다. 포도원의 노래 이것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포도원 하나님의 말씀하는 건데 포도원은 교회고 우리들이다. 포도나무는 어떤 곳에 심었다고요 최적의 환경, 돌을 제하고 중생시켜서 불렀습니다. 말씀 주시고 승리 역사로 가장 좋게 내려갔습니다. 포도 나무가 맺을 수 밖에 없어야 맺어야하는데 인간이다 보니까 제멋대로 살고 세상주의가 되는 거지요.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들으라.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76장, 187장
본문: 이사야 5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포도는 포도를 맺는 나무가 포도 나무입니다. 포도 나무가 포도 열매를 맺게 되는 겁니다. 종자가 나쁘면 나쁜 포도가 맺혀질 것이고 좋은 종자를 심으면 좋은 종자를 심을 겁니다. 많진 않아도 종자가 좋으면 포도 열매는 좋은 포도 열매를 맺히는 게 정상이라서 이런 원리가 있기 때문에 진리라서 진리는 불변이고 절대성을 가지고 필연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자연은 스스로 자 에 그대로 연자를 씁니다. 이것은 절대성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지신 창조의 세계에 모든 만물은 이게 진리고 필연성 가진 자연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있는 겁니다. 안 되면 문제가 되는 겁니다. 포도 나무를 심었으니까 가장 극상품 포도나무입니다. 마땅히 가장 좋은 포도가 맺혀져야 정상인데 들포도가 맺혔습니다. 이렇게 될 수 없는데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를 통해서 구약 이스라엘을 가르쳤고 아사와 흐스기야의 시대 현상을 이사야 선지가 가르쳐주신 겁니다. 이스라엘은 많은 침략을 받아서 앗수르에 침략 받아서 그런 상태에서 많이 회복을 시킵니다. 므낫세 아몬으로 이어졌으면 좋을텐데 히스기야 시대가 끝으로 그리 되었습니다. 희망을 살리지 못한 것이 안타까움입니다.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하여 노래한다고 문맥상 그럽니다. 하나님을 사랑했고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하여 노래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사야 선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아는 만큼 노력을 하는 것인데 내면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심정을 이사야를 위해 대행을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말씀을 처참한 상황을 노래로 발표하는 그 심정이 대변한다 그리 볼 수가 있는 겁니다. 동시에 이사야 선지를 사랑함으로 자의적으로 대면하고 있는 겁니다. 이사야는 그게 자기가 보고 자기가 느낀 자기 심정을 말하는 겁니다. 대변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사야 선지를 두고 본다면 우리가 이런 상황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상황을 깨닫고 헤아려서 바라시는 소망 가지고 계시는 이스라엘을 보는 심정 그리 되면 깨끗한 사람이 되어야겠고 통하는 사람이 되어야될테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목적 세계를 해서 상황을 보고 심히 마음 아픈 그런 것을 해야겠다. 이런 우리가 되도록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이사야 선지같은 우리들. 내가 무슨 선지가 될 것인가, 우리가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한 겁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세계 목적세계 모두 귀를 가지고 계시지요 소리는 각각 다 다를겁니다. 백목사님 생전에 85년도인가 그때 기도를 안하시다가 하도 병이 나았다고 미혹을 해서 무너뜨려서 너희들이 미혹하는 말은 너무나도 잘 듣는데 참 생명의 내 말은 듣는다 그래서 정신없는 내 자랑을 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그리한 만큼 그렇게 자랑하는데 백 목사님께서 과거에 기도하면 앉은 뱅이가 일어나고 초대 교회 사도처럼 됐는데 하도 세상에서 그런 미혹이 많아서 집회 때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앉은뱅이된 자, 그때 병 나은 사람을 적어내라고 해라고 해서 618명입니다. 제가 녹음해서 장소에서 녹음을 틀었기 때문에 녹음을 해서 618명을 다 녹음했습니다. 618명 기억하는데 그때 그 중에서 사람 중 하나가 귀가 어두워서 안 들리는 사람인데 온 세상이 갑자기 와글와글 하덥니다. 알고보니까 막힌 귀가 뚫린거지요. 너무 시끄러워서 정신이 없는 겁니다. 귀가 밝으면 굉장히 작은 소리도 들리겠지요. 제가 보청기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은 예배당이 조용합니다. 그런데 보청기를 끼면 아주 작은 소리가 다 들려서 이걸 보고 느끼는게 귀가 밝은 것이 좋은데 마냥 좋은 건 아니겠구나.
귀만 그렇게 했습니까 눈이 밝아서 현미경처럼 밝습니다. 세균이 수십만마리 득실득실한 게 보이면 식사하시겠습니까. 적당하게 만드신겁니다. 귀도 적당하게 밝게 하신겁니다. 모든 걸 다 보이는 게 좋은 게 아니라는 거지요. 보여주시는 것은 들어야하고 들려주시는 것은 들어야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때로 두려워할 자가 누가 있는가, 하나님을 알 대로 다 알면 견디지 못할 겁니다. 설교록에 나온 말씀에 실감이 어렵습니다. 영감에 충만하니까 육신이 감당이 안된답니다. 주님, 이걸 좀 낮춰주옵소서 모든 것이 정량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에 너무 충만하니까 감량이 안되가지고 꿈같은 그런 말인데 성령에 붙든단 말인데 목요일 새벽입니까. 이삭의 온유한 신앙 있는대로 충성을 합니다. 마지막 결과 하나님께 맡겨놓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역사가 있습니다. 영감 역사는 감동 역사입니다. 감정과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있습니다. 감동이 충만한데 아무리 감동이 벗어나도 견디지 못합니다. 힘있게 찬송해보셨지요 그럴 때는 목이 터져라 찬송을 불렀습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신앙생활하고 믿음으로 사는 생활이 한 두 두 주 한 달만 계속하면 찬송할 때 은혜가 넘칠겁니다. 함께 찬송하면 영감이 폭발하거든요 그럴 때는 떨리는 거지요.
하나님을 알대로 알면 버티지 못합니다. 적절하게 알려주시는 겁니다. 지식적으로 알아도 실감이 조절될 수 밖에 없다 이 말이지요. 하나님의 구원 세계를 알대로 알면 없는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가르켜서 예수에 미친 사람들을 보고 안 믿는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이 사람은 무슨 환자라고 영병걸린 사람이다. 그리 말했습니다. 이게 믿는 사람.
모두 참 그렇게 믿어보셨겠지요 사람이기 때문에 넘어질지라도 예수에 미쳐봐야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구원 세계를 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 겁니다. 먹어보진 못해도 알긴 알아야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이게 정상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은 날 사랑하심으로 내 전부를 바치셨으니 마땅하지 않습니까. 이로써 사랑을 알고 목숨 버리는 것이 마땅하리라.
사랑을 받았으면 사랑을 하는 게 정상입니다. 지식적으로 알고 실감적으로 알고 깨달아봐야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자에 대하여 노래하되 이런 게 보여야하는데 어느 정도 보여야 하나님의 심정이 보여야 대변할 수 있겠지요. 이사야의 눈에는 이스라엘의 처지가 보인 겁니다. 그래서 비유를 들어서 노래를 한 겁니다. 이사야 선지가 그 비유를 가지고 노래한 겁니다.
노래라는 것은 깨달은 거 자기를 위해 깨닫는 깊은 이런 게 시고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세상은 시에다 노래를 붙입니다. 노래는 찬송가, 찬가. 감사의 노래. 축가도 있고 반대로 애가도 있고 군가도 있고 동요도 있고 본문의 이 노래는 무슨 노래 같습니다. 이건 찬송갑니까 축가입니까 군가입니까 애가입니까. 애가에 가깝겠지요. 슬픈 노래입니다.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노래하되 어떤 노래냐 주제가 뭐냐
포도원 노래. 포도원 노래하고 있습니다. 포도원을 두고 느낌을 발표하고 있는 겁니다. 포도원이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도원이라 그렇습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고 내면에 우리를 돌아보는 겁니다. 그 시대에 그들에게 포도원이었고 우리가 포도원이 되는 것이고 같은 신앙 생활에도 읽을 때마다 들을 때마다 우리가 포도원이고 포도나무구나 기억해야합니다.
포도원은 하나님의 교회고 구약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무엇이라는 말이 되는 겁니다.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무엇이라는 말이 되는 겁니까.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포도원은 업입니다. 하나님의 농사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포도원 농부입니다. 하나 밖에 없는 포도원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전부 다 쏟아붓습니다. 포도원이 과수원이 여러개면 이것저것 봐야하는데 하나 밖에 없으면 하나님의 포도원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게 바로 교회고 하나님의 목적이고 그 목적이 하나님의 뜻이고 소원이고 역사고 전부 다가 되는 겁니다. 자존하신 하나님께 포도원이 있으며 목적이 있으며 하고자하시는 바가 있으며 그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포도원의 환경이 기름진 산입니다. 심히 기름지다. 기름진 산입니다. 감나무에게는 좋은데 인삼에게는 안 좋을 수 있습니다. 습기 많은 나무를 좋아하는 게 있고 마른 땅을 좋아하는 땅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기름진 산이라는 것이냐 포도나무에게 가장 기름진 산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정해놓으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장소 그런 것이 기름진 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 그런 과정들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삭을 주시고 이삭을 주실 때 그냥 주신게 아니고 사라의 많은 과정에서 주시고 이스마엘을 먼저 주셔서 충돌되게 하시고 이런 갈등의 역사도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애서와 야곱을 주시고 장자는 탈선하고 쌍둥이 둘째 야곱을 주셨고 아주 유별나게 애착있는 사람을 만들어서 열두 아들 낳게 하시고 그래서 아내가 넷이 된거고 자식이 열두명이 된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에게는 라반이 라헬을 준다고 해놓고 레아를 줬을 때 만족하고 말텐데 약속 지켜야죠 하면서 둘을 받고 시기 질투를 일으켜서 열둘 낳을 과정 때 보니까 말도 못하고 시기 때문에 싸움이 나고 그게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 역사입니다.
그 시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깁니까. 이복형제들 때문에 시기 때문에 애굽에 팔아먹게 만들고 이스라엘이 번창하게 만들어놓고 그리고나서 학대하게 만들고 모세를 보내시고 전부 다가 그냥 생긴 게 아니라 구원 역사를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을 구출해내시는 가장 좋은 심히 기름진 산이다 이 말입니다. 이해가 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심히 기름진 산입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포도원의 환경 심히 기름진 산, 종자, 종자는 극상품 포도나무입니다. 가장 극이라는 말은 가장 좋은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목적 세계가 그게 지향하는 바가 하나님을 닮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자다. 하나님께서 낳으신 하나님의 종자입니다. 극상품 포도나무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심히 어리석어서 잘못된 지식을 넣고 사람이 한 순간에 짐승처럼 되는 게 사람입니다. 하다보니까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고 극상품 포도나무 종자 우리들입니다. 극상품 종자, 하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돌을 제했습니다. 방해물을 다 제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다 물리치고 그리고 돌을 제하고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심었다는 말은 중생시켜서 불렀다. 심었습니다. 모든 것을 보고 알 수 있도록 말씀을 주셨습니다. 양심을 주셨고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승리역사를 하셨습니다. 모두 어디까지입니까. 돌을 제하고 포도나무를 심었고 중생시켰고 말씀을 알게 하시고 내가 하나님이 안하는 것이 없고 그런데 이렇게 했는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느냐 허무하게 되어졌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으라 그랬는데 자기 중심이 되어졌고 이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인본주의가 되었습니다. 구약이 그리되었고 교회들이 그리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다 이렇게 흘러가는 게 교회역사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서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만드셨습니다. 심히 기름진 산에다가 돌을 제거하고 극상품을 심었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들포도를 맺혀버렸습니다. 울타리, 경계가 다 없어져버렸습니다. 다른 말씀을 했지만 느껴지시겠습니까. 울타리를 걷어버렸습니다. 울타리를 걷어버려서 포도원이 무엇이 포도원이 되었습니까.
여기 포도원은 구약의 이스라엘이고 오늘의 포도원은 무엇이 포도원이었습니까. 교회가 포도원입니다.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구원이라는 말은 포도원이 교회인데 교회라는 곳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교회란 곳은 거룩한 곳이다. 교회라는 곳은 구별된 곳이라는 말입니다. 다르다는 말입니다. 무엇과 다른 겁니까. 이 세상과 교회는 다르다 구별이 되어야합니다. 이걸 없애버렸씁니다. 포도원이 포도나무 잘 자라게 열매가 되어야하는데 교회가 교회로 구원이 이어나가야하는데 대속의 사람을 만들어야하는데 목사가 대속의 사람이 되고 되어서 복음을 정해서 만들어 나가야하는데 대속으로 살게해야하는데 인간 놀음만 하고 있습니다. 정치하고 사업하고 인간 모임이 되어지고 이런 것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교회와 세상의 구별이 없어졌습니다. 약자는 강자의 밥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교회는 약한 겁니다. 이 세상은 강합니다. 그래서 울타리를 쳐놨는데 잡아먹혔습니다.
짓밟히게 합니다. 다 없어져버렸습니다. 교회이기 때문에 개인 교회도 가정 교회도 교회가 교회로 교회 답게 이루어가는 것은 보호가 있는데 보혜사 성령의 다 없어졌습니다. 짓밟히게 합니다. 이런 성경을 가지고 깨닫고 이사야 5장 말씀을 깨닫고 유력한 큰 교회 목회자들은 깨닫는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설교를 못합니다. 메인 게 많아서. 교권 때문에 못하는 겁니다.
교회가 오늘날 이 세상에게 마구 짓밟혀서 환급히 압니다. 황무지가 될 것입니다. 농사 지어야할 땅에 포도원에 포도가 없고 과수원에 과수 나무가 없고 없어져버렸습니다. 교인들이 모여야하는데 텅텅 비어져갑니다. 교인들이 없어집니다.
예수님께 너희들도 가려니와 영생의 말씀이 있으니까 말씀 붙들지 않으면 교인들이 모였다 교인들이 많이 모였다. 오늘날 대형 교회가 많습니다. 여기 성경에 보니까 황무지가 됐다. 오늘날 교회는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미국 영국 유럽의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교회나라에 술집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저기 교회에 찻집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교회를 찻집을 만드니까 그렇게 꾸미는 사람들의 앞날이 좋지가 않을 겁니다.
들포도를 외치니까 포도나무를 깎아서 구원이 되어야하는데 세상놀음 하고 인간놀음 하고 있으니까 교회는 가정 교회도 교회입니다. 가정 교회 노력하지 않으면 황무지가 됩니다. 개인 교회도 그러합니다. 내가 밥이 되어버립니다. 네 번째는 다시는 가지를 자른다, 그래야 열매를 맺을 가지가 납니다. 모든 과수 나무는 쓸데없는 가지를 다 잘라줘야 충실한 가지가 남습니다. 교회가 교회로써 구별이 없어지고 다섯 번째, 사람을 찌르는 가지입니다. 교회에 아무것도 없고 거기 세상 사상, 행복하십시오 사랑하십시오 봉사하십시오 이웃을 도우십시오. 행복이 뭐냐 부부 행복하게 살면 됐다. 자식들은 알아서 살게 하면 됩니다. 그게 오늘날 예배당에 이 세상에 찬송가가 없어지고 예배가 없어지고 이런 모양이 되어지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온갖 참사람이 될 것이고 탈선이 될 것이 여기 사고 방식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결국 마지막에 잡혀가서 망하고 말았고 이것이 구약의 그 역사가 구원 도리로 내려와서 오늘날 이렇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 은혜로 길을 잘 들어서 착각인지 오판인지 모르겠으나 말씀으로 따져보니까 이럴 수 있습니다. 우리를 노래하는 겁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일반적으로 아는 말씀입니다. 포도원의 노래 이것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포도원 하나님의 말씀하는 건데 포도원은 교회고 우리들이다. 포도나무는 어떤 곳에 심었다고요 최적의 환경, 돌을 제하고 중생시켜서 불렀습니다. 말씀 주시고 승리 역사로 가장 좋게 내려갔습니다. 포도 나무가 맺을 수 밖에 없어야 맺어야하는데 인간이다 보니까 제멋대로 살고 세상주의가 되는 거지요.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들으라.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