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5일 금밤
김동민2024-04-05조회 167추천 31
2024년 4월 5일 금밤
찬송: 82장(못 박혀 죽으신), 83장(아버지여 나의 맘을)
본문: 예레미야 29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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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땅을 적시지 않고서는 올라갈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은 다 절대성을 가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수명이 짧고 편견되기 때문에 되는지 안 되는지 실제로 느끼기 어렵지만은 살아생전에도 하나님께서 진실하게 믿음생활 한 사람에게는 하나님 말씀이 반드시 그대로 됩니다. 이방종교와 기독교는 다릅니다. 사람의 지식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불교가 깊고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나 파생되어서 만든 것이지 처음부터 그리 많지 않았고 세상 지식이 그런 것처럼 다 그런 겁니다. 신학이라는 학문도 원래는 성경 하나가 전부인데. 사람들이 만든 말이 많아지니까 오묘하고 심오하고 깊이가 있으니 연구를 하다보다 그렇게 되어집니다. 그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이 되어지는 겁니다. 알고보면 사람 연구고 사람 말 연구고 그런 것이지 뿌리를 찾아 들어가면 학문과 철학과 종교와 모든 것 인간 수준 안에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인간의 범위가 아닙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공부할 때 깨달을 때도 모든 면에 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연결시켜야하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떼놓고 하는 성경은 전부 마지막에 인본주의로 가고 마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과 관계된 신앙입니다. 절대 불변의 정확무오한 말씀이고 진리입니다. 절대성 불변성 가진 게 진리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수명이 짧아서 보지못하나 사람의 지식에 편견되고 다 알지 못하나 말씀은 그대로 되어있게 되어있습니다. 여기는 보니까 멸망한 이스라엘에 하나님께서 소망을 주시는 말씀이고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따라서 명령 말씀을 순종하면 땅에서 들어가서도 들에서도 나가도 들어가도 전부 복을 다 받는데 말씀을 어기면 반대로 전부 다 저주 받아서 망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될 것이고 더하면 너희들 자녀들의 고기를 먹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이스라엘은 원래 한 사람에게서 다 내려온 자손들이지요. 드러나게 이스라엘의 제일 첫 조상이 누구입니까.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을 누구라그럽니까. 아브라함이지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에서 아들에 몇이었습니까. 여럿인데 믿음의 계통은 이삭 하나입니다. 이삭이 둘을 낳고 하나가 탈선을 하고 야곱이 열둘을 낳았는데 몇 백만명이 되고 하늘의 별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되었다고 하고 민족이 되었고 그렇게 430년 부흥했고 출애굽에서 기업을 받았고 이스라엘 나라를 만들었고 사사시대를 거치고 왕정 시대를 거치면서 그때부터 그 전부터 애굽에서부터 나오기 싫어서 안 나오고는 못 이기도록 해버렸고 억지로 밀려나왔고
틈만 나면 하나님을 불신하고 우상을 섬기고 돌아가려고 했고 자기 고집을 세우고 불신을 했고 광야 40년 그랬고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또 우상섬겨서 죄짓다가 이게 사사 시대에 그리 되었고 사울부터 타락되어졌고 다윗과 솔로몬 때 괜찮았지만 르호보암 때 갈라져버렸고 그리고 왕에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가 반복이 됐다가 좋은 왕은 별로 나오지 않고 북조 이스라엘은 볼 거 없는 것이고 마지막에 결국 히스기야의 아버지가 아하스인데 아하스일 때 너무 심하게 우상을 섬겼는데 히스기야가 회복을 했는데 아들이 므낫세가 죄를 많이 지었고 그래서 히스기야의 아버지 때부터해서 나라가 회복되기 어려운만큼 타락합니다. 마지막에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튼튼하게 만들었지만 큰 죄를 지어서 나라를 망할 원인 제공을 하고 므낫세가 50년인가 살면서 엉망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아몬 밑에서 요시야 왕이 나오는데 다윗에 버금갈만큼 잘 섬겼지만 그 밑에서 끝장이 나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바벨론 왕이 이스라엘 유다를 잡아서 수천명을 잡아갑니다. 숫자 기록된 게 수천명이고 많이 끌려갔겠지요. 그런데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언제까지 버려두지 않을 것이고 70년이 차면 하나님이 정하신 기한 하나님께서 정하신게 차면 돌아오게 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방언의 역사라는 것은 설교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함께 되면 가장 좋은 건데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능력이 있으면 영감이 충만하면 듣는 사람이 부족해도 방언이 역사하게 되는데 듣는 사람이 자세가 되면 또 바로 있습니다. 오순절에는 언어 자체가 방언의 역사였고 그래서 유다나라 말로 하는데 자기들의 언어로 들렸습니다. 한국말로 하는데 일본사람 미국사람 중국사람 프랑스사람이 다 자기들 말로 들린다 그런 말이지요. 우리 교회도 오시는데 첫 주 오셨는데 언어가 다르니 못알아들으니 그렇게 되는 거지요. 설교자가 능력이 있으면 그리 되어야합니다.
강단에서 전혀 다른 말씀인데 자기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입니다. 열심히 믿는 교인이 언니를 전도했는데 1등 반사분이 언니를 전도했는데 그 주간의 설교가 하필이면 연보 설교를 하더랍니다. 십일조인지 연보인지. 그래서 그 반사 선생님이 큰일났다. 오늘 연보 설교네. 믿음 어린 사람들이 교회와서 시험에 많이 드는 게 돈 때문입니다. 연보 때문에. 연보 강조하고 그런데 하필 첫 주일 전도해서 왔는데 연보니까 걱정이 되고 언니 힘들게 전도했는데 그래서 기도 많이 했지요. 그런데 그날 방언의 역사가 있어서 완전히 교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게 방언의 은혜고 연사입니다.
설교자가 그렇게 능력있으면 좋고 그렇게 못하더라도 듣는 교인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겁니다. 백목사님 생전에 가까이 지냈던 분이 있습니다. 창북교회라고 거기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열심히 있던 분인데 조사님이 있던가 했는데 제 눈에는 목회자인가만큼 안차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열심히 믿는 청년이 있는데 저랑 같이 지내고 했는데 그 조사님을 백 목사님처럼 그렇게 존경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그 교역자가 그렇지도 않은데 얼마나 은혜를 끼쳤는지 백 목사님처럼 그렇게 보인 겁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눈이 낮은 겁니까 불행입니까 복입니까. 그게 복입니다. 그럴 때 옆에서 너희 조사님 이런 사람이야 하는 게 아말렉입니다. 그게 교인들의 간절함에따라 그런 것입니다. 목회자에 대한 중심이 바르면 목회자 복이 없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는 겁니다.
이 말씀이 우리들과 직접 연관될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데 각자 돌아보는 겁니다. 나라가 망했습니다. 징계를 받고 저주를 받은 겁니다. 나라는 다 망했습니다. 그렇게 됐는데 다시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셨는데 하나님의 역사는 저주든 징계든 복이든 하나님의 모든 역사가 원인과 근거 없는 것이 없고 이 세상의 자연 계시로 나오는 말이 인과 응보라는 말입니다. 원인없는 결과는 없는 것이다. 이게 자연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역사에 대한 걸 가르쳐주고 있는겁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 지키면 파기가 되는 겁니다. 계약이기 때문에 쌍방 계약이기 때문에 계약은 쌍방이므로 한 쪽이 그러면 한 쪽은 지킬 수가 없는 겁니다. 여호의 말이다.
그래서 모든 말씀은 조건부고 약속이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해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70년 만에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벨론에 잡혀가서 바벨론에서 바벨론화 되어버리고 거기서 예레미야가 본 것처럼 집을 짓고 살아라. 논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어라 아내를 취해서 자녀를 생산하고 손주를 낳아라. 너희들 숫자가 감소되지 않고 유지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평안함으로 평안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바벨론에 애굽 나라에 살아라고 하셨으니까 여기 사는 맞다고 해서 바벨론 신을 섬기고 바벨론에서 터를 닦고 바벨론화되어버리고 하나님 잊어버리고 자기 본국을 잊어버리면 다시 회복시켜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 고양을 잊어버리고 바벨론화되어 살면 악용해서 그리 살면 하나님께서 70년이 지나면 지켜지겠습니까. 그럴 순 없는겁니다. 바벨론이 회복이 된 것은 회복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누가 그렇게 했는가. 포로되고 난 다음 기록이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이런건데 포로된 마지막 때입니다. 그 끝에 성전 재건하고 그러는 게 에스라 느헤미야고 에스더는 중기입니다. 한창 때 있었던 종이 에스더 모르드개고 초기에 있었떤 종들이 다니엘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포로로 하는 것은 두고 에스더와 모르드개 에스더성경을 읽어보면 왕후가 됩니다. 그리고 왕이 신하들 중에서 누구를 총리로 삼습니까. 하만이라는 사람을 총리로 삼습니다. 그런데 다 하만에게 굴복하는데 모르드개는 굴복하지 않습니다.
모르드개가 하는 말이 나는 유대인이라고 밝힙니다. 그러면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자기 위신 때문에 하만에게 굴하지 않았으면 문제인데 하만이 모르드개에게 요구한 것은 그럴 수 없는 것이었고 유대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이 있어서 유대인들에게 멸망시키려고 말할 때 한 민족이 사는데 법이 두는 것이 왕에게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구하지 않은 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고 이걸 꺾을 수 없는 것에 굴하지 않았고 하만으로 인해서 유대인 전부다가 멸망하게 되어졌고 그럴 때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뜰로 나가면 죽이고 사는 법이 어떡한다고 합니까. 왕이 금호를 내면 산다. 밤낮으로 금식을 하고 에스더가 나가서 하만의 계략을 없애버리고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지요 모르드개가 하만의 자리에 올라가서 민족들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모르드개가 총리가 됨으로 있습니다. 에스더나 모르드개같은 사람들이 자양분이 되어서 포로에서 돌아올 수 있도록 된 역사가 된 겁니다. 그리고 초기에는 다니엘이 있었습니다. 초기인데 중기니까 에스더같은 경우는 중간 즘이기 때문에 더한 거 같고 다니엘은 바벨론에 잡혀갔는데 몇 살 정도 됐을까요. 젊었습니까 노년입니까. 아주 젊을 때입니다. 학생입니다. 공부를 시켰는데 공부할 나이는 알지만 30넘어서 공부하기 어렵죠. 20대, 그 전에 잡혀갔으니 자기 죄보다도 부모들의 죄 때문에 욥에 아들들은 죄가 없습니다. 깨끗합니다. 아버지 욥이 얼마나 챙겼든지 형제 다 모여서 축하하고 혹시라도 죄를 지었을까하고 사함 받은 게 욥의 자녀 교육입니다. 그래서 욥의 자녀들은 깨끗합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다들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욥의 자녀들은 순교자라고 합니다. 욥 때문에 그렇게 된 겁니다.
애굽에서 20세였던 그들이 광야를 돌면서 고생한 것은 부모 때문입니다. 다윗이 기근했던 것은 사울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성경도 실제 역사도 아버지 부모죄 때문에 죽거나 성경에 금합니다. 우상을 섬기고 3 4대까지 내려가면 그런겁니다. 부모의 죄를 짊어지고 고생하는 것은 죄값이라기 보다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고 영향이나 그런 게 있겠지요. 그래서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그리한 것은 부모들의 죄 때문에 자녀들이 포로로 잡혀간 겁니다. 그래서 다 그럴 수 없지만 다니엘같은 믿음이 있는 사람은 특수학교에 있을 때 왕이 포도주를 먹이려고, 잘 먹여야합니다. 양성원 기간에 1년에 3학기로 6주간하는데 양성원 학생들을 보신을 시켜줍니다. 머리쓰고 공부하려면 잘 먹어야합니다. 그래야하는데 다니엘은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으면 자기를 더럽힌다고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우상의 제물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니엘의 신앙은 건강의 모든 것은 사람의 지혜에 탁월함이나 되는 것은 인간의 음식이나 하나님께 메였다. 이걸 잊어버리고 인간 놀음하고 우상숭배하다가 잡혀왔는데 음식을 의지하고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채식을 주십시오. 채식먹겠습니다. 요즘은 모두 채식 많이 하시지요. 사람에 따라 조심을 해야합니다. 살이 찌고 좀 성인병이 많고 체중이 나가시는 분들은 채식을 하더라도 마르신 분들은 잘못하면 죽습니다.
채식만 먹으면 빼빼마르는 거지요. 채식한다 그럴 때 임금님을 두려워한다. 임금님이 너희를 검사할 건데 채식한 거 보면 내가 목이 달아간다. 열흘 동안 비교를 하자고 합니다. 고집 피우지 않았고 자유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열흘동안 우리는 채식 먹고 그래서 어느쪽에 더 좋은지 판단을 해보고 결정하시지요. 그렇게 보니까 열흘 후에 보니까 이건 틀림없이 잘 먹어서 왕의 번질번질한 사람들이 좋아야하는데 채소만 먹는 다니엘이 더 좋은 거지요.
그리고 다니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그런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는 걸 계속했고 그러면서 총리가 되어서 자리에 올랐고 총리가 되어서도 매일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매일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여가지고 이런 것들이 거름이 되어서 바탕이 되어서 영양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들의 영과 육을 살펴서 육적으로 이런 징계 받은 게 없으면 신앙적으로 돌아봐야합니다. 화목하다 다 괜찮은데 신앙적으로는 들어가야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징계 받았구나. 회개하는 거지요. 나는 괜찮은데 우리 가정을 보니까, 우리 교회를 보니까. 공회를 보니까. 나라를 보니까 엉망입니다. 시대를 보니까. 그러면 이 시대에 살고 있으니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겁니다. 그러면 그 모든 죄를 짊어지고 그렇게 기도하지 못할지라도 내가 깨끗하고 가정이 깨끗하고 공회가 깨끗한데 나라가 엉망되어 있으면 우리가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는 겁니다. 범위를 넓혀서 하나님 앞에 징계 받은 면을 받아서 회개를 해야합니다. 회복이 된 거처럼. 개인이던지 가정이던지 공회든지. 어느쪽이든 징계받은 걸 바벨론 포로된 것이기 때문에 신앙을 지키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신대로 부르짖어라. 기도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는 이런 생활이 되어질 때 회복시켜주신다는 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런 약속이 우링게 실제 이루어질려면 지켜져야하니까. 세상 재미 다 누리고 하면 하나님께서 잘 먹고 잘 살아라 하게 되는거지요. 그런게 양분이 되어서 그렇게 된다는 것을 기억을 해야합니다.
어제 새벽 말씀에 경건을 배웠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예외가 없습니다. 하루 하루 살아가며 순간순간 살아가며 무엇을 먹느냐 어떻게 행동하느냐 어떻게 입느냐.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지는 게 되느냐입니다. 하루생활에서 쓸데없는 걸 보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익어지게 되는 겁니다. 오늘 성경 못 읽었는데. 옛날에 뭘 하다가 안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 읽다가 안 읽으면 가책인데 한 번 빠지고 두 번 빠지고 하면 가책이 없습니다.
연습이 그렇게 되어버려서 사람이 그렇게 되어버리는 겁니다. 죄짓는 것도 그렇습니다. 죄 지으면 가슴이 벌컹거리고 그렇게 되는데 더 지으면 감각이 반으로 줄어들어버립니다. 연습이 되어버립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굉장히 무서운겁니다. 회개를 연습하자는 말입니다. 죄를 짓자는 게 아닙니다. 기도하고 주님을 찾고 그런 우리가 되어야겠다.
본문 말씀을 기억하면서 신앙, 에스더 모르드개 이들의 생활이 거름이 되어서 회복되는 받침이 되어졌다는 말입니다. 우리 면이든지 하나님께서 보실 때 회복 시켜줄만한 근거, 그런 걸 만들어가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말씀드린 겁니다. 기도하다가 자유로 가시겠습니다.
찬송: 82장(못 박혀 죽으신), 83장(아버지여 나의 맘을)
본문: 예레미야 29장 10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땅을 적시지 않고서는 올라갈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은 다 절대성을 가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수명이 짧고 편견되기 때문에 되는지 안 되는지 실제로 느끼기 어렵지만은 살아생전에도 하나님께서 진실하게 믿음생활 한 사람에게는 하나님 말씀이 반드시 그대로 됩니다. 이방종교와 기독교는 다릅니다. 사람의 지식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불교가 깊고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나 파생되어서 만든 것이지 처음부터 그리 많지 않았고 세상 지식이 그런 것처럼 다 그런 겁니다. 신학이라는 학문도 원래는 성경 하나가 전부인데. 사람들이 만든 말이 많아지니까 오묘하고 심오하고 깊이가 있으니 연구를 하다보다 그렇게 되어집니다. 그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이 되어지는 겁니다. 알고보면 사람 연구고 사람 말 연구고 그런 것이지 뿌리를 찾아 들어가면 학문과 철학과 종교와 모든 것 인간 수준 안에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인간의 범위가 아닙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공부할 때 깨달을 때도 모든 면에 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연결시켜야하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떼놓고 하는 성경은 전부 마지막에 인본주의로 가고 마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과 관계된 신앙입니다. 절대 불변의 정확무오한 말씀이고 진리입니다. 절대성 불변성 가진 게 진리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수명이 짧아서 보지못하나 사람의 지식에 편견되고 다 알지 못하나 말씀은 그대로 되어있게 되어있습니다. 여기는 보니까 멸망한 이스라엘에 하나님께서 소망을 주시는 말씀이고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따라서 명령 말씀을 순종하면 땅에서 들어가서도 들에서도 나가도 들어가도 전부 복을 다 받는데 말씀을 어기면 반대로 전부 다 저주 받아서 망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될 것이고 더하면 너희들 자녀들의 고기를 먹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이스라엘은 원래 한 사람에게서 다 내려온 자손들이지요. 드러나게 이스라엘의 제일 첫 조상이 누구입니까.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을 누구라그럽니까. 아브라함이지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에서 아들에 몇이었습니까. 여럿인데 믿음의 계통은 이삭 하나입니다. 이삭이 둘을 낳고 하나가 탈선을 하고 야곱이 열둘을 낳았는데 몇 백만명이 되고 하늘의 별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되었다고 하고 민족이 되었고 그렇게 430년 부흥했고 출애굽에서 기업을 받았고 이스라엘 나라를 만들었고 사사시대를 거치고 왕정 시대를 거치면서 그때부터 그 전부터 애굽에서부터 나오기 싫어서 안 나오고는 못 이기도록 해버렸고 억지로 밀려나왔고
틈만 나면 하나님을 불신하고 우상을 섬기고 돌아가려고 했고 자기 고집을 세우고 불신을 했고 광야 40년 그랬고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또 우상섬겨서 죄짓다가 이게 사사 시대에 그리 되었고 사울부터 타락되어졌고 다윗과 솔로몬 때 괜찮았지만 르호보암 때 갈라져버렸고 그리고 왕에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가 반복이 됐다가 좋은 왕은 별로 나오지 않고 북조 이스라엘은 볼 거 없는 것이고 마지막에 결국 히스기야의 아버지가 아하스인데 아하스일 때 너무 심하게 우상을 섬겼는데 히스기야가 회복을 했는데 아들이 므낫세가 죄를 많이 지었고 그래서 히스기야의 아버지 때부터해서 나라가 회복되기 어려운만큼 타락합니다. 마지막에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튼튼하게 만들었지만 큰 죄를 지어서 나라를 망할 원인 제공을 하고 므낫세가 50년인가 살면서 엉망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아몬 밑에서 요시야 왕이 나오는데 다윗에 버금갈만큼 잘 섬겼지만 그 밑에서 끝장이 나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바벨론 왕이 이스라엘 유다를 잡아서 수천명을 잡아갑니다. 숫자 기록된 게 수천명이고 많이 끌려갔겠지요. 그런데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언제까지 버려두지 않을 것이고 70년이 차면 하나님이 정하신 기한 하나님께서 정하신게 차면 돌아오게 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방언의 역사라는 것은 설교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함께 되면 가장 좋은 건데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능력이 있으면 영감이 충만하면 듣는 사람이 부족해도 방언이 역사하게 되는데 듣는 사람이 자세가 되면 또 바로 있습니다. 오순절에는 언어 자체가 방언의 역사였고 그래서 유다나라 말로 하는데 자기들의 언어로 들렸습니다. 한국말로 하는데 일본사람 미국사람 중국사람 프랑스사람이 다 자기들 말로 들린다 그런 말이지요. 우리 교회도 오시는데 첫 주 오셨는데 언어가 다르니 못알아들으니 그렇게 되는 거지요. 설교자가 능력이 있으면 그리 되어야합니다.
강단에서 전혀 다른 말씀인데 자기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입니다. 열심히 믿는 교인이 언니를 전도했는데 1등 반사분이 언니를 전도했는데 그 주간의 설교가 하필이면 연보 설교를 하더랍니다. 십일조인지 연보인지. 그래서 그 반사 선생님이 큰일났다. 오늘 연보 설교네. 믿음 어린 사람들이 교회와서 시험에 많이 드는 게 돈 때문입니다. 연보 때문에. 연보 강조하고 그런데 하필 첫 주일 전도해서 왔는데 연보니까 걱정이 되고 언니 힘들게 전도했는데 그래서 기도 많이 했지요. 그런데 그날 방언의 역사가 있어서 완전히 교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게 방언의 은혜고 연사입니다.
설교자가 그렇게 능력있으면 좋고 그렇게 못하더라도 듣는 교인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겁니다. 백목사님 생전에 가까이 지냈던 분이 있습니다. 창북교회라고 거기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열심히 있던 분인데 조사님이 있던가 했는데 제 눈에는 목회자인가만큼 안차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열심히 믿는 청년이 있는데 저랑 같이 지내고 했는데 그 조사님을 백 목사님처럼 그렇게 존경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그 교역자가 그렇지도 않은데 얼마나 은혜를 끼쳤는지 백 목사님처럼 그렇게 보인 겁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눈이 낮은 겁니까 불행입니까 복입니까. 그게 복입니다. 그럴 때 옆에서 너희 조사님 이런 사람이야 하는 게 아말렉입니다. 그게 교인들의 간절함에따라 그런 것입니다. 목회자에 대한 중심이 바르면 목회자 복이 없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는 겁니다.
이 말씀이 우리들과 직접 연관될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데 각자 돌아보는 겁니다. 나라가 망했습니다. 징계를 받고 저주를 받은 겁니다. 나라는 다 망했습니다. 그렇게 됐는데 다시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셨는데 하나님의 역사는 저주든 징계든 복이든 하나님의 모든 역사가 원인과 근거 없는 것이 없고 이 세상의 자연 계시로 나오는 말이 인과 응보라는 말입니다. 원인없는 결과는 없는 것이다. 이게 자연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역사에 대한 걸 가르쳐주고 있는겁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 지키면 파기가 되는 겁니다. 계약이기 때문에 쌍방 계약이기 때문에 계약은 쌍방이므로 한 쪽이 그러면 한 쪽은 지킬 수가 없는 겁니다. 여호의 말이다.
그래서 모든 말씀은 조건부고 약속이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해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70년 만에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벨론에 잡혀가서 바벨론에서 바벨론화 되어버리고 거기서 예레미야가 본 것처럼 집을 짓고 살아라. 논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어라 아내를 취해서 자녀를 생산하고 손주를 낳아라. 너희들 숫자가 감소되지 않고 유지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평안함으로 평안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바벨론에 애굽 나라에 살아라고 하셨으니까 여기 사는 맞다고 해서 바벨론 신을 섬기고 바벨론에서 터를 닦고 바벨론화되어버리고 하나님 잊어버리고 자기 본국을 잊어버리면 다시 회복시켜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 고양을 잊어버리고 바벨론화되어 살면 악용해서 그리 살면 하나님께서 70년이 지나면 지켜지겠습니까. 그럴 순 없는겁니다. 바벨론이 회복이 된 것은 회복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누가 그렇게 했는가. 포로되고 난 다음 기록이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이런건데 포로된 마지막 때입니다. 그 끝에 성전 재건하고 그러는 게 에스라 느헤미야고 에스더는 중기입니다. 한창 때 있었던 종이 에스더 모르드개고 초기에 있었떤 종들이 다니엘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포로로 하는 것은 두고 에스더와 모르드개 에스더성경을 읽어보면 왕후가 됩니다. 그리고 왕이 신하들 중에서 누구를 총리로 삼습니까. 하만이라는 사람을 총리로 삼습니다. 그런데 다 하만에게 굴복하는데 모르드개는 굴복하지 않습니다.
모르드개가 하는 말이 나는 유대인이라고 밝힙니다. 그러면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자기 위신 때문에 하만에게 굴하지 않았으면 문제인데 하만이 모르드개에게 요구한 것은 그럴 수 없는 것이었고 유대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이 있어서 유대인들에게 멸망시키려고 말할 때 한 민족이 사는데 법이 두는 것이 왕에게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구하지 않은 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고 이걸 꺾을 수 없는 것에 굴하지 않았고 하만으로 인해서 유대인 전부다가 멸망하게 되어졌고 그럴 때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뜰로 나가면 죽이고 사는 법이 어떡한다고 합니까. 왕이 금호를 내면 산다. 밤낮으로 금식을 하고 에스더가 나가서 하만의 계략을 없애버리고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지요 모르드개가 하만의 자리에 올라가서 민족들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모르드개가 총리가 됨으로 있습니다. 에스더나 모르드개같은 사람들이 자양분이 되어서 포로에서 돌아올 수 있도록 된 역사가 된 겁니다. 그리고 초기에는 다니엘이 있었습니다. 초기인데 중기니까 에스더같은 경우는 중간 즘이기 때문에 더한 거 같고 다니엘은 바벨론에 잡혀갔는데 몇 살 정도 됐을까요. 젊었습니까 노년입니까. 아주 젊을 때입니다. 학생입니다. 공부를 시켰는데 공부할 나이는 알지만 30넘어서 공부하기 어렵죠. 20대, 그 전에 잡혀갔으니 자기 죄보다도 부모들의 죄 때문에 욥에 아들들은 죄가 없습니다. 깨끗합니다. 아버지 욥이 얼마나 챙겼든지 형제 다 모여서 축하하고 혹시라도 죄를 지었을까하고 사함 받은 게 욥의 자녀 교육입니다. 그래서 욥의 자녀들은 깨끗합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다들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욥의 자녀들은 순교자라고 합니다. 욥 때문에 그렇게 된 겁니다.
애굽에서 20세였던 그들이 광야를 돌면서 고생한 것은 부모 때문입니다. 다윗이 기근했던 것은 사울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성경도 실제 역사도 아버지 부모죄 때문에 죽거나 성경에 금합니다. 우상을 섬기고 3 4대까지 내려가면 그런겁니다. 부모의 죄를 짊어지고 고생하는 것은 죄값이라기 보다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고 영향이나 그런 게 있겠지요. 그래서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그리한 것은 부모들의 죄 때문에 자녀들이 포로로 잡혀간 겁니다. 그래서 다 그럴 수 없지만 다니엘같은 믿음이 있는 사람은 특수학교에 있을 때 왕이 포도주를 먹이려고, 잘 먹여야합니다. 양성원 기간에 1년에 3학기로 6주간하는데 양성원 학생들을 보신을 시켜줍니다. 머리쓰고 공부하려면 잘 먹어야합니다. 그래야하는데 다니엘은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으면 자기를 더럽힌다고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우상의 제물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니엘의 신앙은 건강의 모든 것은 사람의 지혜에 탁월함이나 되는 것은 인간의 음식이나 하나님께 메였다. 이걸 잊어버리고 인간 놀음하고 우상숭배하다가 잡혀왔는데 음식을 의지하고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채식을 주십시오. 채식먹겠습니다. 요즘은 모두 채식 많이 하시지요. 사람에 따라 조심을 해야합니다. 살이 찌고 좀 성인병이 많고 체중이 나가시는 분들은 채식을 하더라도 마르신 분들은 잘못하면 죽습니다.
채식만 먹으면 빼빼마르는 거지요. 채식한다 그럴 때 임금님을 두려워한다. 임금님이 너희를 검사할 건데 채식한 거 보면 내가 목이 달아간다. 열흘 동안 비교를 하자고 합니다. 고집 피우지 않았고 자유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열흘동안 우리는 채식 먹고 그래서 어느쪽에 더 좋은지 판단을 해보고 결정하시지요. 그렇게 보니까 열흘 후에 보니까 이건 틀림없이 잘 먹어서 왕의 번질번질한 사람들이 좋아야하는데 채소만 먹는 다니엘이 더 좋은 거지요.
그리고 다니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그런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는 걸 계속했고 그러면서 총리가 되어서 자리에 올랐고 총리가 되어서도 매일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매일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여가지고 이런 것들이 거름이 되어서 바탕이 되어서 영양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들의 영과 육을 살펴서 육적으로 이런 징계 받은 게 없으면 신앙적으로 돌아봐야합니다. 화목하다 다 괜찮은데 신앙적으로는 들어가야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징계 받았구나. 회개하는 거지요. 나는 괜찮은데 우리 가정을 보니까, 우리 교회를 보니까. 공회를 보니까. 나라를 보니까 엉망입니다. 시대를 보니까. 그러면 이 시대에 살고 있으니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겁니다. 그러면 그 모든 죄를 짊어지고 그렇게 기도하지 못할지라도 내가 깨끗하고 가정이 깨끗하고 공회가 깨끗한데 나라가 엉망되어 있으면 우리가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는 겁니다. 범위를 넓혀서 하나님 앞에 징계 받은 면을 받아서 회개를 해야합니다. 회복이 된 거처럼. 개인이던지 가정이던지 공회든지. 어느쪽이든 징계받은 걸 바벨론 포로된 것이기 때문에 신앙을 지키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신대로 부르짖어라. 기도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는 이런 생활이 되어질 때 회복시켜주신다는 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런 약속이 우링게 실제 이루어질려면 지켜져야하니까. 세상 재미 다 누리고 하면 하나님께서 잘 먹고 잘 살아라 하게 되는거지요. 그런게 양분이 되어서 그렇게 된다는 것을 기억을 해야합니다.
어제 새벽 말씀에 경건을 배웠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예외가 없습니다. 하루 하루 살아가며 순간순간 살아가며 무엇을 먹느냐 어떻게 행동하느냐 어떻게 입느냐.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지는 게 되느냐입니다. 하루생활에서 쓸데없는 걸 보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익어지게 되는 겁니다. 오늘 성경 못 읽었는데. 옛날에 뭘 하다가 안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 읽다가 안 읽으면 가책인데 한 번 빠지고 두 번 빠지고 하면 가책이 없습니다.
연습이 그렇게 되어버려서 사람이 그렇게 되어버리는 겁니다. 죄짓는 것도 그렇습니다. 죄 지으면 가슴이 벌컹거리고 그렇게 되는데 더 지으면 감각이 반으로 줄어들어버립니다. 연습이 되어버립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굉장히 무서운겁니다. 회개를 연습하자는 말입니다. 죄를 짓자는 게 아닙니다. 기도하고 주님을 찾고 그런 우리가 되어야겠다.
본문 말씀을 기억하면서 신앙, 에스더 모르드개 이들의 생활이 거름이 되어서 회복되는 받침이 되어졌다는 말입니다. 우리 면이든지 하나님께서 보실 때 회복 시켜줄만한 근거, 그런 걸 만들어가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말씀드린 겁니다. 기도하다가 자유로 가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