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일 수밤
김동민2024-04-03조회 200추천 24
2024년 4월 3일 수밤
찬송: 144장(죄짐 맡은 구주), 145장(주 날개 밑 내가 편히 거하네)
본문: 에레미야 29장 10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공과 공부가 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제목이 부활과 소망인데 지난 주가 부활절 주일이었기 때문에 연결해서 생각해본겁니다. 소망이란 부활에서 나온 게 소망입니다. 부활은 소망을 주신 역사라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이 세상에서도 영원한 소망을 향한 과정이 된 것이 소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목표가 다 그러듯이 궁극적인 최종적인 목표가 있고 중간 중간이 있는 것처럼 중간의 과정 과정의 소망이 있다고 볼 수 있고 부활로 주신 소망이고 부활의 은혜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 말씀은 그렇듯이 중심으로 말씀을 생각해봤습니다. 오늘 밤도 그리되고 부활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생각해봤지만 중심은 소망으로 이게 취지였습니다.
부활은 죽음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몸으로 살아나는 것이 부활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았다가 다시 죽는 것은 부활이 아닙니다. 살아나는 경우는 있지만 계시적인 것입니다. 죽지 않으니까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신령한 몸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신령한 몸이라 그러고 그런 몸으로 부활하는 걸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죽음이란 뭐냐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살아나는 게 부활이고 그래서 기독교가 성립이 되고 기독교가 되는 것이고 내세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이 뭐냐, 안 믿는 불신자들은 몰라도 죽음의 원인으로 뭐라고 합니까. 죽음의 원인은 죄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게 죄였고 죄로 말미암은 죽음은 영원한 죽음입니다. 영원한 멸망에 부활은 해당되지 않는 겁니다. 부활은 애당초 없는 것이고 해당되지 않는 것인데 죄로 인해 사라진 이 역사 대신 다 짊어지셔서 죄값을 받으셨기 때문에 죽은 죄가 없는 겁니다. 죄값으로 죽었기 때문에 부활이 안되는 건데 대신 죽었음으로 우리들의 죽은 죄가 죄로 인해 죽은 죄가 없어지게 되는 겁니다.
세상에서 감옥에서 나오면 죄가 없다고 그러는데 전과자라고 그럽니다. 주님의 짊어지심으로 없어졌지만 사실입니다. 어쨌거나 하나님의 공의의 법에 치러졌기 때문에 죄가 없는 겁니다. 죽어있는 우리는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겁니다. 거기 까지인데 거기서 다시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말씀 중에서 주님의 죽으심은 주님의 자의된 역사다. 원하고 원하심으로 하신 자의된 역사라고 했는데 공의의 법이라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동참하셔서 우리의 죄는 없어졌고 주님의 죄는 짓지 않았고. 주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 대신 부활하셨기 때문에 영원한 부활을 하시게 된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자신에게는 무한한 희생입니다. 그 희생의 부활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벗어났고 영원한 소망 가지게 된 것이 우리고 사활의 대속의 은혜는 무한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활과 죽음이라는 것은 상반된 것이지요. 비교해보자면 그렇습니다. 죽음이란 건 말 그대로 죽음입니다. 사망이고 암흑입니다. 절망입니다. 이건 지옥입니다. 죽음에 속한 겁니다. 죽음이란 원인이 죄기 때문에 죄로 말미암은 죽음은 사망이고 암흑이고 지옥입니다. 세상에서 죄를 지은 것 죄를 속한 건 암흑이고 사망이게 된 것이고 없어졌다고 했다고 한 것입니다. 부활이란 생명에 속한 것이지요. 그 부활은 빛입니다. 소망입니다. 부활은 천국입니다.
주님 부활은 우리 부활과 자체적으로는 다른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성의 부활이기 때문에 신인양성일위인데 예수님 부활은 무한한 희생입니다. 우리의 부활이라는 것은 주님 부활로 말미암아 은혜고 죽음에서 벗어난 생명이라는 것이고 우리 부활은 영원한 절망에서 소망으로 옮겨진 게 우리의 부활입니다. 이런 은헤다 그런 말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암흑에서 빛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주신 게 은혜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라고 하게 됩니다. 부활은 앞에서 최종적인 부활이 있습니다. 목적이고 목표입니다. 주님 재림하시면 사람이 죽음 넘어에 사후 세계에서 하는 것입니다. 첫째 부활이고 생명 부활이고 부활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하지요 예수님 부활, 부활이 있고 셋째 최종적인 심판입니다. 지상 교회의 세계가 다 끝이나고 내세가 시작되는 게 첫째 부활입니다. 첫째 부활은 은혜면서 택자 모두에게 주시는 일방적인 부활이고 심신의 형체 부활입니다. 첫째 부활 생명의 부활입니다. 사후 세계 부활입니다. 그럼 이 부활은 어느 곳에 속한 부활이 됩니까. 기본 구원에 속한 겁니까 건설 구원에 속한 겁니까. 심신의 형체의 부활입니다. 택자 전체게 주시는 부활입니다. 기본 구원에 대한 부활입니다. 마음 형체의 껍데기 부활입니다. 형체 부활 하나님이 은혜로 일반적으로 주신 겁니다. 주님 재림하시고 부활하면 생명 부활입니다. 껍데기 형체, 자동차로 말하면 껍데기. 그러면 형체 부활은 시점으로 말하면 안제입니까 생전입니까 사후입니까. 살아있을 때입니까 사후입니까. 역사적인 끝과 개인의 종말입니다. 무궁세계 출발입니다. 주님의 부활하심의 공로 인하여 사후 세계 부활을 위해서 향해서 나아가는 생전의 부활이 있습니다. 살아생전에 무슨 부활을 하는 것인가. 살아생전에 살려놔야 부활이 되는데 심신의 기능부활. 이게 심신의 기능 부활이 되는 겁니다. 심신의 형체 부활은 사후 형체에 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부활도 저 부활도 두 부활 다 주님 부활으로 주신 것인데 생전으로 사후 세계의 부활도 죽음이 전제되어있고 심신의 부활도 죽음이 전제 되어있습니다. 부활이란 어떡해야 부활이 있는 겁니까. 죽어야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유한한 사람이 살아있으면 유언장이라는 것은 효력이 없는 겁니다. 유언장 작성한 사람이 돌아가셔야 그런 것처럼 죽어야 살아나는 게 부활입니다. 하늘의 밀이 땅에 떨어져서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겁니다. 모든 씨앗은 거기서 죽고 새 생명이 자라게 되는 것이 역사입니다. 우리들의 형체 부활도 고깃덩어리 죄로 인해 죽고 다시 죽지 않는 몸으로 살아나는 것이고 무엇이 죽어야 육이 죽고 영이 살고 나는 죽고 주님이 살고 옛사람은 죽고 새 사람은 살고, 죄 안 짓는 나로 살아야하는 것이지요. 이게 심신의 기능 부활입니다. 믿는 사람의 부활이라는 것은 심신의 형체 부활은 사람이 노력을 하나 안하나 기본구원으로 택자에게 주시는 부활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형체를 다 죽지 않는 것으로 살아납니다. 가롯 유다가 택자라면 그도 생명 부활로 살아나게 될 겁니다. 신사참배한 사람들 중에서도 생명부활한 사람이 많을 겁니다. 50년을 믿었는데 49년을 믿다가 1년을 낙심해서 신앙생활 교회는 나오는데 오만 죄 다 짓고 마음대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 사람 천국가야합니까 지옥가야합니까. 기본구원 건설구원 구분하지 못하면 이런 면으로 굉장히 힘듭니다.
옛날은 어린 때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옛날은 무조건 어릴 때입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장성하게 되는 겁니다. 시대적으로 역사적으로 세상적으로 지식적으로 행위적으로 문화적으로 예술적으로 운동적으로 종교적으로 인체적으로 어떤 면으로든지 옛날보다 갈수록 자라가는 게 세상이고 역사입니다. 어느나라든 다 그렇습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자라게 되어있습니다. 옛날은 무조건 어립니다. 생명 기르는 것은 길러 나가는 것이지 느러뜨리는 게 아닙니다. 양식이 들어가야하고 환경이 맞아야 자라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시대는 어릴 때입니다. 신약은 장성할 때입니다. 초대 교회는 어릴 때입니다. 500년 전 칼빈 시대들은 어릴 때입니다. 칼빈 주의자들이 들으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장성할 때입니다. 어릴 때 맞도록 깨달음을 주시는 겁니다. 세상에서 타락에 속한건데 더러운건데도 시대를 앞서나가서 그런 말을 하고 그러면 눌러재낍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 예사가 되게 되는 겁니다. 지금 텔레비전 방송을 50년 전에 했으면 난리가 했을겁니다. 옛날부터 텔레비전 별명이 바보상지입니다. 보면 바보 된다고. 예능 노래 춤추는 거 30년 전에 그랬으면 몰매를 맞았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사가 되어있거든요. 게임 같은 거 30년 전에 나왔으면 망합니다. 이게 안 믿는 사람은 발전이라 그럽니다. 우리는 타락이라 그러고. 타락도 발전하는 겁니다.
다른 거는 다 아는데 신학자들이 마귀가 막아버리니까 자존심 미신 밥그릇, 어느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의사들이 밥그릇이 있는 거겠지요. 의사 숫자 많으면 국민들이 좋지 나쁠게 뭐가 있습니까. 세월이 지나가면 모든 것은 자라게 됩니다. 장성해집니다. 장성해진다는 말은 알게되고 밝아지고 온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심신의 형체 부활이 있고 기능 부활이 있습니다. 마지막 사후 세계에 온 것이고 기능 부활이란 살아생전에 해야하는데 그게 표시가 언제나느냐 알기는 압니다. 시험치는 학생들 시험 공부하는 학생들이 보면 자기 성적이 몇 점 되겠다. 이걸 공부한 학생을 압니다. 나 오는 점수 몇 점 안답니다. 기능 구원이라는 것은 현실을 살아가면서 압니까 모릅니까. 자기가 압니다. 생각해보면 알게됩니다. 그러면 표가 나는 것은 맞았다 틀렸다 알지만 최종 점수는 나오는 것처럼 모습은 그때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심신의 기능이 살아나야하는데 내 마음이 마음의 모든 요소가 내 모든 지체가 보고 듣고 말하고 먹고 마시고 손 발이 움직이고 전부다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죽고 주님이 살고 육은 죽고 영이 살고 이렇게 살아나가면 옛사람이 죽었고 새 사람이 드러나는 겁니다. 요래가지고 현실에서 하는 게 심신의 기능입니다. 이게 이 땅에서 믿는 사람이 할 부활입니다. 여기까지는 교리적인 것입니다.
10절입니다. 바벨론에서 바벨론은 어떤 곳입니까. 이스라엘이 범죄해서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간 나라가 바벨론입니다. 그때 왕이 히스기야 왕의 아들을을 죽이고 히스기야의 눈을 뽑고 끌고갔습니다. 그게 유다 나라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서 그런 겁니다. 독일의 히틀러라는 사람이 끔찍한 것이죠. 온 세계로 다 흩어졌습니다. 바벨론에 잡혀갔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섬겼으니까. 죄 한 번 지었다고 이렇게 만드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 이유가 모세는 한 번이고 나머지는 죄를 계속 지었기 때문에, 12명 중에서 10명이 말하길 우리가 들어가면 죽습니다. 강합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죽이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래서 모세 아론이 엎드려서 안된다고 하니까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싫음 안 들어가야지. 그래서 말한대로 갚아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죄를 지고 사로잡히겠다고 말한 그들의 자손들이 죄를 지고 40년 동안에 돌아서 한 명도 없이 다 죽고 사로 잡힌 자손들은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 겁니다. 열왕기상하 역대상하보면 끝도 없습니다. 죄를 짓고 또 짓고 애가 타서 용서하고 구원하고 용서하고 구원하고 사사시대 때부터 그랬습니다. 넓게 길게 보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만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 징계를 받았다. 어지간한 장성한 사람 아니면 간섭을 하시지만 챙겨주지 않습니다. 죄를 지어보셨는지요. 믿는 사람이 매를 심하게 맞았다는 말은 죄를 엄청나게 지었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앞에 갔을 때 용서할 수 없어서 비참하게 됐습니다. 몇 차례 거쳐서 바벨론에 끌려갑니다. 무식한 사람 못난 사람 이런 사람만 남겨놓고 잘난 사람은 다 잡아가버립니다. 전부 왕족들 다 잡혀가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상황에도 그냥 버려둘 수 없어서 매를 때렸지만 다시 살려고 그런 겁니다. 70년이 바벨론에서 차면 내가 너희를 다시 돌아고게 하겠다고 미리 말씀하십니다. 이 바벨론이 뭐냐 우리 각자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서 받은 징계 현실 매맞은 그 현실입니다. 어디 살든지 어떤 모습이던지 그게 바벨론입니다. 그리 됐을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은 회개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승리고 역사고 관계매였으니까 원인을 찾는 겁니다. 잘 믿어서 아무 어려움이 없으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잘못 믿어서 근심걱정 염려가 없으면 찾아봐야합니다. 원인을 찾으면 원인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원인없는 결과는 없는거죠. 원인은 찾으면 나옵니다. 해결이 쉽지 않기 때문에 간구하게 나오는 겁니다. 도와주옵소서 넘어지지 않게 해주소서 계속할 수 있게 해주소서 이게 기도입니다. 공과 세 가지라서 다른 데에서 찾지말고 하나님이 원인이니까 찾고 찾으면 들을 것이고 만날 것이다. 그게 말씀입니다.
그래서 앞에 부활로 주신 소망을 생각을 하고 주님 부활로 희생하심으로 소망 주셨으니까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살려내야겠고 살리려면 어떻게해야합니까. 뭐가 죽습니까 육이 죽고 옛사람이 죽고 습성이 죽고 욕심이 죽고 타락한 요소가 죽고 그래야 새로 사는 겁니다. 이게 죽을 때 영원하게 살게 되는 것이고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잡혀가서 하나님의 역사는 내 생각은 내가 한다.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고 장래에 소망을 주는 것이 평안이다. 진심으로 주님을 찾고 찾으면 해결해주신다 이 말이지요. 우리 어려운 형편들 잘 이러나고 해결을 하고 믿어서 복되게 하고 그리 되도록 힘을 쓰셔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겠습니다.
찬송: 144장(죄짐 맡은 구주), 145장(주 날개 밑 내가 편히 거하네)
본문: 에레미야 29장 10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공과 공부가 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제목이 부활과 소망인데 지난 주가 부활절 주일이었기 때문에 연결해서 생각해본겁니다. 소망이란 부활에서 나온 게 소망입니다. 부활은 소망을 주신 역사라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이 세상에서도 영원한 소망을 향한 과정이 된 것이 소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목표가 다 그러듯이 궁극적인 최종적인 목표가 있고 중간 중간이 있는 것처럼 중간의 과정 과정의 소망이 있다고 볼 수 있고 부활로 주신 소망이고 부활의 은혜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 말씀은 그렇듯이 중심으로 말씀을 생각해봤습니다. 오늘 밤도 그리되고 부활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생각해봤지만 중심은 소망으로 이게 취지였습니다.
부활은 죽음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몸으로 살아나는 것이 부활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았다가 다시 죽는 것은 부활이 아닙니다. 살아나는 경우는 있지만 계시적인 것입니다. 죽지 않으니까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신령한 몸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신령한 몸이라 그러고 그런 몸으로 부활하는 걸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죽음이란 뭐냐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살아나는 게 부활이고 그래서 기독교가 성립이 되고 기독교가 되는 것이고 내세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이 뭐냐, 안 믿는 불신자들은 몰라도 죽음의 원인으로 뭐라고 합니까. 죽음의 원인은 죄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게 죄였고 죄로 말미암은 죽음은 영원한 죽음입니다. 영원한 멸망에 부활은 해당되지 않는 겁니다. 부활은 애당초 없는 것이고 해당되지 않는 것인데 죄로 인해 사라진 이 역사 대신 다 짊어지셔서 죄값을 받으셨기 때문에 죽은 죄가 없는 겁니다. 죄값으로 죽었기 때문에 부활이 안되는 건데 대신 죽었음으로 우리들의 죽은 죄가 죄로 인해 죽은 죄가 없어지게 되는 겁니다.
세상에서 감옥에서 나오면 죄가 없다고 그러는데 전과자라고 그럽니다. 주님의 짊어지심으로 없어졌지만 사실입니다. 어쨌거나 하나님의 공의의 법에 치러졌기 때문에 죄가 없는 겁니다. 죽어있는 우리는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겁니다. 거기 까지인데 거기서 다시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말씀 중에서 주님의 죽으심은 주님의 자의된 역사다. 원하고 원하심으로 하신 자의된 역사라고 했는데 공의의 법이라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동참하셔서 우리의 죄는 없어졌고 주님의 죄는 짓지 않았고. 주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 대신 부활하셨기 때문에 영원한 부활을 하시게 된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자신에게는 무한한 희생입니다. 그 희생의 부활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벗어났고 영원한 소망 가지게 된 것이 우리고 사활의 대속의 은혜는 무한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활과 죽음이라는 것은 상반된 것이지요. 비교해보자면 그렇습니다. 죽음이란 건 말 그대로 죽음입니다. 사망이고 암흑입니다. 절망입니다. 이건 지옥입니다. 죽음에 속한 겁니다. 죽음이란 원인이 죄기 때문에 죄로 말미암은 죽음은 사망이고 암흑이고 지옥입니다. 세상에서 죄를 지은 것 죄를 속한 건 암흑이고 사망이게 된 것이고 없어졌다고 했다고 한 것입니다. 부활이란 생명에 속한 것이지요. 그 부활은 빛입니다. 소망입니다. 부활은 천국입니다.
주님 부활은 우리 부활과 자체적으로는 다른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성의 부활이기 때문에 신인양성일위인데 예수님 부활은 무한한 희생입니다. 우리의 부활이라는 것은 주님 부활로 말미암아 은혜고 죽음에서 벗어난 생명이라는 것이고 우리 부활은 영원한 절망에서 소망으로 옮겨진 게 우리의 부활입니다. 이런 은헤다 그런 말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암흑에서 빛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주신 게 은혜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라고 하게 됩니다. 부활은 앞에서 최종적인 부활이 있습니다. 목적이고 목표입니다. 주님 재림하시면 사람이 죽음 넘어에 사후 세계에서 하는 것입니다. 첫째 부활이고 생명 부활이고 부활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하지요 예수님 부활, 부활이 있고 셋째 최종적인 심판입니다. 지상 교회의 세계가 다 끝이나고 내세가 시작되는 게 첫째 부활입니다. 첫째 부활은 은혜면서 택자 모두에게 주시는 일방적인 부활이고 심신의 형체 부활입니다. 첫째 부활 생명의 부활입니다. 사후 세계 부활입니다. 그럼 이 부활은 어느 곳에 속한 부활이 됩니까. 기본 구원에 속한 겁니까 건설 구원에 속한 겁니까. 심신의 형체의 부활입니다. 택자 전체게 주시는 부활입니다. 기본 구원에 대한 부활입니다. 마음 형체의 껍데기 부활입니다. 형체 부활 하나님이 은혜로 일반적으로 주신 겁니다. 주님 재림하시고 부활하면 생명 부활입니다. 껍데기 형체, 자동차로 말하면 껍데기. 그러면 형체 부활은 시점으로 말하면 안제입니까 생전입니까 사후입니까. 살아있을 때입니까 사후입니까. 역사적인 끝과 개인의 종말입니다. 무궁세계 출발입니다. 주님의 부활하심의 공로 인하여 사후 세계 부활을 위해서 향해서 나아가는 생전의 부활이 있습니다. 살아생전에 무슨 부활을 하는 것인가. 살아생전에 살려놔야 부활이 되는데 심신의 기능부활. 이게 심신의 기능 부활이 되는 겁니다. 심신의 형체 부활은 사후 형체에 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부활도 저 부활도 두 부활 다 주님 부활으로 주신 것인데 생전으로 사후 세계의 부활도 죽음이 전제되어있고 심신의 부활도 죽음이 전제 되어있습니다. 부활이란 어떡해야 부활이 있는 겁니까. 죽어야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유한한 사람이 살아있으면 유언장이라는 것은 효력이 없는 겁니다. 유언장 작성한 사람이 돌아가셔야 그런 것처럼 죽어야 살아나는 게 부활입니다. 하늘의 밀이 땅에 떨어져서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겁니다. 모든 씨앗은 거기서 죽고 새 생명이 자라게 되는 것이 역사입니다. 우리들의 형체 부활도 고깃덩어리 죄로 인해 죽고 다시 죽지 않는 몸으로 살아나는 것이고 무엇이 죽어야 육이 죽고 영이 살고 나는 죽고 주님이 살고 옛사람은 죽고 새 사람은 살고, 죄 안 짓는 나로 살아야하는 것이지요. 이게 심신의 기능 부활입니다. 믿는 사람의 부활이라는 것은 심신의 형체 부활은 사람이 노력을 하나 안하나 기본구원으로 택자에게 주시는 부활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형체를 다 죽지 않는 것으로 살아납니다. 가롯 유다가 택자라면 그도 생명 부활로 살아나게 될 겁니다. 신사참배한 사람들 중에서도 생명부활한 사람이 많을 겁니다. 50년을 믿었는데 49년을 믿다가 1년을 낙심해서 신앙생활 교회는 나오는데 오만 죄 다 짓고 마음대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 사람 천국가야합니까 지옥가야합니까. 기본구원 건설구원 구분하지 못하면 이런 면으로 굉장히 힘듭니다.
옛날은 어린 때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옛날은 무조건 어릴 때입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장성하게 되는 겁니다. 시대적으로 역사적으로 세상적으로 지식적으로 행위적으로 문화적으로 예술적으로 운동적으로 종교적으로 인체적으로 어떤 면으로든지 옛날보다 갈수록 자라가는 게 세상이고 역사입니다. 어느나라든 다 그렇습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자라게 되어있습니다. 옛날은 무조건 어립니다. 생명 기르는 것은 길러 나가는 것이지 느러뜨리는 게 아닙니다. 양식이 들어가야하고 환경이 맞아야 자라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시대는 어릴 때입니다. 신약은 장성할 때입니다. 초대 교회는 어릴 때입니다. 500년 전 칼빈 시대들은 어릴 때입니다. 칼빈 주의자들이 들으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장성할 때입니다. 어릴 때 맞도록 깨달음을 주시는 겁니다. 세상에서 타락에 속한건데 더러운건데도 시대를 앞서나가서 그런 말을 하고 그러면 눌러재낍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 예사가 되게 되는 겁니다. 지금 텔레비전 방송을 50년 전에 했으면 난리가 했을겁니다. 옛날부터 텔레비전 별명이 바보상지입니다. 보면 바보 된다고. 예능 노래 춤추는 거 30년 전에 그랬으면 몰매를 맞았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사가 되어있거든요. 게임 같은 거 30년 전에 나왔으면 망합니다. 이게 안 믿는 사람은 발전이라 그럽니다. 우리는 타락이라 그러고. 타락도 발전하는 겁니다.
다른 거는 다 아는데 신학자들이 마귀가 막아버리니까 자존심 미신 밥그릇, 어느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의사들이 밥그릇이 있는 거겠지요. 의사 숫자 많으면 국민들이 좋지 나쁠게 뭐가 있습니까. 세월이 지나가면 모든 것은 자라게 됩니다. 장성해집니다. 장성해진다는 말은 알게되고 밝아지고 온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심신의 형체 부활이 있고 기능 부활이 있습니다. 마지막 사후 세계에 온 것이고 기능 부활이란 살아생전에 해야하는데 그게 표시가 언제나느냐 알기는 압니다. 시험치는 학생들 시험 공부하는 학생들이 보면 자기 성적이 몇 점 되겠다. 이걸 공부한 학생을 압니다. 나 오는 점수 몇 점 안답니다. 기능 구원이라는 것은 현실을 살아가면서 압니까 모릅니까. 자기가 압니다. 생각해보면 알게됩니다. 그러면 표가 나는 것은 맞았다 틀렸다 알지만 최종 점수는 나오는 것처럼 모습은 그때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심신의 기능이 살아나야하는데 내 마음이 마음의 모든 요소가 내 모든 지체가 보고 듣고 말하고 먹고 마시고 손 발이 움직이고 전부다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죽고 주님이 살고 육은 죽고 영이 살고 이렇게 살아나가면 옛사람이 죽었고 새 사람이 드러나는 겁니다. 요래가지고 현실에서 하는 게 심신의 기능입니다. 이게 이 땅에서 믿는 사람이 할 부활입니다. 여기까지는 교리적인 것입니다.
10절입니다. 바벨론에서 바벨론은 어떤 곳입니까. 이스라엘이 범죄해서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간 나라가 바벨론입니다. 그때 왕이 히스기야 왕의 아들을을 죽이고 히스기야의 눈을 뽑고 끌고갔습니다. 그게 유다 나라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서 그런 겁니다. 독일의 히틀러라는 사람이 끔찍한 것이죠. 온 세계로 다 흩어졌습니다. 바벨론에 잡혀갔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섬겼으니까. 죄 한 번 지었다고 이렇게 만드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 이유가 모세는 한 번이고 나머지는 죄를 계속 지었기 때문에, 12명 중에서 10명이 말하길 우리가 들어가면 죽습니다. 강합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죽이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래서 모세 아론이 엎드려서 안된다고 하니까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싫음 안 들어가야지. 그래서 말한대로 갚아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죄를 지고 사로잡히겠다고 말한 그들의 자손들이 죄를 지고 40년 동안에 돌아서 한 명도 없이 다 죽고 사로 잡힌 자손들은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 겁니다. 열왕기상하 역대상하보면 끝도 없습니다. 죄를 짓고 또 짓고 애가 타서 용서하고 구원하고 용서하고 구원하고 사사시대 때부터 그랬습니다. 넓게 길게 보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만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 징계를 받았다. 어지간한 장성한 사람 아니면 간섭을 하시지만 챙겨주지 않습니다. 죄를 지어보셨는지요. 믿는 사람이 매를 심하게 맞았다는 말은 죄를 엄청나게 지었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앞에 갔을 때 용서할 수 없어서 비참하게 됐습니다. 몇 차례 거쳐서 바벨론에 끌려갑니다. 무식한 사람 못난 사람 이런 사람만 남겨놓고 잘난 사람은 다 잡아가버립니다. 전부 왕족들 다 잡혀가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상황에도 그냥 버려둘 수 없어서 매를 때렸지만 다시 살려고 그런 겁니다. 70년이 바벨론에서 차면 내가 너희를 다시 돌아고게 하겠다고 미리 말씀하십니다. 이 바벨론이 뭐냐 우리 각자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서 받은 징계 현실 매맞은 그 현실입니다. 어디 살든지 어떤 모습이던지 그게 바벨론입니다. 그리 됐을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은 회개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승리고 역사고 관계매였으니까 원인을 찾는 겁니다. 잘 믿어서 아무 어려움이 없으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잘못 믿어서 근심걱정 염려가 없으면 찾아봐야합니다. 원인을 찾으면 원인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원인없는 결과는 없는거죠. 원인은 찾으면 나옵니다. 해결이 쉽지 않기 때문에 간구하게 나오는 겁니다. 도와주옵소서 넘어지지 않게 해주소서 계속할 수 있게 해주소서 이게 기도입니다. 공과 세 가지라서 다른 데에서 찾지말고 하나님이 원인이니까 찾고 찾으면 들을 것이고 만날 것이다. 그게 말씀입니다.
그래서 앞에 부활로 주신 소망을 생각을 하고 주님 부활로 희생하심으로 소망 주셨으니까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살려내야겠고 살리려면 어떻게해야합니까. 뭐가 죽습니까 육이 죽고 옛사람이 죽고 습성이 죽고 욕심이 죽고 타락한 요소가 죽고 그래야 새로 사는 겁니다. 이게 죽을 때 영원하게 살게 되는 것이고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잡혀가서 하나님의 역사는 내 생각은 내가 한다.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고 장래에 소망을 주는 것이 평안이다. 진심으로 주님을 찾고 찾으면 해결해주신다 이 말이지요. 우리 어려운 형편들 잘 이러나고 해결을 하고 믿어서 복되게 하고 그리 되도록 힘을 쓰셔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