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7일 수밤
김동민2024-03-27조회 211추천 23
2024년 3월 27일 수밤
찬송: 79장(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137장(내 평생 소원 이것 뿐)
본문: 시편 90편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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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날 수 계산하는 지헤가 공과 제목입니다. 전체적으로 90장 제목부터해서 8절에서 12절까지 일곱가지를 생각해봤고 날 수 계산하는 지혜로 일곱 가지로 생각해봤습니다. 절 수에 따라 다른데 첫 번째가 제목에서 나온 겁니다. 성경에 제목을 잘 안 붙이는데 이런 제목 붙은 게 많습니다. 90장의 제목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가 되는 겁니다. 모세는 누구의 사람이라고요. 모세는 어떤 사람이라고요, 하나님의 사람이다. 참 영광스러운 이름이고 좋은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다. 우리도 모세처럼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자.
우등생이다 그러면 누구나 다 수석도 누구나 다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겁니다. 말씀의 사람 성경의 사람 기도의 사람 전도의 사람이 참 많은데 가지고 싶다고 가져집니까. 향락의 사람 돈의 사람 사람의 사람 아내의 사람 남편의 사람 부부로써는 가장 좋은 겁니다. 아내의 사람 되지 않고 다른 사랑이 되면 죄가 되겠지요. 그런데 둘이 딱 붙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둘이 붙어서 부모도 모르고 자식도 모르면 문제를 모릅니다. 이 사이에 틈은 주지 말아야합니다. 부부사이가 벌어진 상태에서는 안되는 겁니다. 하나님 사랑이 원동력이 돼서 부부의 사람이 되고 부부의 사랑이 될 때 부모를 섬길 수 있고 되게 되는 겁니다.
돈의 사람은 되지 말아야합니다. 친구의 사람은 안 되는 게 좋습니다. 선배의 사람, 선배를 따져봐야합니다. 옳은 신앙의 선배라면 따를만하나 사람이 되면 곤란합니다. 스승의 사람도 조심해야합니다. 사람의 사람되는 것은 부부 사이 외에는 어떤 것도 좋지 않습니다. 그 외에는 그 누구의 사람도 되면 안되는겁니다. 신앙있는 부모라면 이게 또 문제입니다. 성경적으로 한 몸이 되어서 그렇고 성경적으로 옳은 겁니다. 오래돼서 지금은 세상을 떠났는데 저와 멀지 않은 분인데 남편과 자식밖에 모릅니다. 아내로써 어머니로써 1등입니다. 그런데 부모를 모릅니다. 형제를 모릅니다. 그러니 부모님께는 좋은 소리 못 듣고 형제 사이는 벌어집니다. 되고난 다음 살피는 게 좋은 겁니다.
이게 점점 넓어져가는 거지요. 일차적으로 우리는 이런 것이다 말씀의 사람이 되는 건데 말씀 속에 다 있습니다. 도리를 가르치는 거지요. 교훈은 교훈이면서 계명입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해서 알아가지고 그 말씀대로 살아서 내가 말씀의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한 겁니다. 아무리 알아도 그렇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거지요. 밤낮 주야로 어떤 경우나 말씀에서 길을 찾고 답을 찾고 물어보고 말씀으로 전부를 삼으면 말씀의 사람이다. 그렇게 살아가니까 이름을 그리 붙이는 겁니다. 늘 기도만 합니다. 힘들면 기도하고 기도로 해결하고 메달리면 다른 사람은 저 사람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도하고 앉았고 가장이 다 집어던지고 기도만하고 다니면 믿는 사람 아닙니다. 가정이 있는 여인이 남편 있는 여인이 어머니가 되어서 다 집어던지고 기도만 하고 다니면 그 여인은 나쁜 사람입니다. 바로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공회는 말씀이 있으니까 덜한데 조심해야하는데 신앙이라는 것은 바로 말씀을 배워서 그 위해서 열심히 되는 게 진짜지 말씀 모르는 열심은 위험한 겁니다. 하도 요즘 불 종류가 많아서, 옛날로 불은 아궁이 안에서, 요즘은 가스레인지 안에서 그 안에서 가해야하지 그 범위를 벗어나면 다 태워버립니다. 자신과 가정과 주변을 다 태워버립니다. 굉장히 무섭습니다. 그 위에서 있어야합니다. 말씀 안에서. 말씀의 사람이 되고 기도의 사람이 되고 찬송의 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 분은 하루종일 찬송만 합니다. 그분은 지하실이 있었는데 출근하면 하루종일 찬송합니다. 어느날 보니까 목이 탁 트여서 찬송을 은혜롭게 합니다. 그렇게 찬송을 하더니 저런 찬송인도자가 되는구나. 자기가 이름 붙이는 게 아니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친구라는 것은 친구까라 간다고 우정이란 강한건데 좋지 않습니다. 그런 걸 동료정신이라고 하는데 그때 죽고 못살고 다 할거 같은데 나중에는 지나갑니다. 동기 동창 군대 친구들 전부 현실 바뀌고 잊어버리는 게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떤 것의 사람도 되지 말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자. 성령의 사람이 되고 진리의 사람이 되고 말씀의 사람되자. 그래서 말씀을 알아야합니다. 말씀에서 찾고 말씀으로 자라가는 말씀의 사람. 그게 하나님 살아가는 것의 출발입니다. 이게 첫 번째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람에서 나왔습니다.
왜 주님이 죄를 찾아내느냐. 검사가 피고에게 캐묻습니다. 이래 저래 해서 죄를 찾아내려고 하는 겁니다. 그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위치가 직책이 밝혀내서 처벌하는 게 검사의 목적입니다. 반대로 변호사는요 자기 의뢰인이 피고입니다. 이렇습니까 저렇습니까. 찾아내는 목적은 처벌을 면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찾아내는 이유는 과정은 둘 다 같은데 목적은 서로 정반대입니다. 주님이 우리 죄를 찾으시는 이유는 회개시키려고 죄 없는 우리 만드시려고, 사랑입니다. 공부 잘해서 로스쿨 졸업해서 시험을 쳐서 성적이 좋으면 이왕이면 위치상 역할상 검사보다는 변호사가 낫겠고 그런데 문제는 변호사는 돈은 잘 먹는데 권력은 검사가 더 세니까. 그것보다는 판사가 좋겠지요.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겠다. 내가 스스로 나의 죄를 찾아서 내놓는 겁니다. 이 세상은 그런 거 아닙니다. 교통사고 났을 때 첫 번째 진술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혜있는 사람은 아예 말을 안합니다. 그래서 피고들 주로 하는 말이 묵비권, 말 안합니다. 죄가 있는데 인정을 안하는 거죠. 뻔한 죄도 인정을 안하는거죠. 검사가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면 무죄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은 죄를 쉽게 자복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이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만 내가 죄가 있으면 주님 앞에서 이런 죄가 있습니다. 이런 게 있습니다. 자기 죄를 찾아서 회개라는 것은 죄를 자복하고 다시 그 짓을 안해야 회개가 되니까 마치 병든 사람이 약을 먹는 것처럼 수술하는 것처럼 그리되는 거지요. 그 고통이 힘들어서 회개가 되는 겁니다.
죄를 안 짓는 게 좋은 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죄를 지을 때는 즐겁고 기쁘고 좋습니다. 사탕을 많이 먹으면 굉장히 달콤하고 좋습니다. 설탕 많이 말하면 좋습니다. 그런데 이도 베리고 내장도 베리고 당뇨병도 그렇습니다. 모든 죄가 다 그런거지요. 자기 스스로 내가 스스로 죄를 찾아 회개하는 게 낫지 하나님이 죄를 찾아서 징계를 하기 시작하면 고통스럽습니다. 제 말투에서 뭐가 좀 느껴지는 거 같지 않습니까. 경험해본 사람 같지 않습니까.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성경에 죄 없다 죄를 지어본 적인 없는 사람입니다. 그게 욥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큰소리쳤습니다. 소송장 내놔라 자랑해볼게, 그게 욥입니다. 참 부러운 일입니다.
그게 도가 지나쳐서 네가 그렇게 의로운 거니까 내가 죄인되는 거네 그렇게 됐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욥처럼 살아야합니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 욥은 담대하게 큰 소리를 쳤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죄를 짓는거 알고는 죄를 짓지 않았고 죄를 지었으면 회개하는 게 복입니다. 사람 앞에야 어떤 큰 소리 쳐도 알아서 기는 게 가장 복입니다.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겠다. 9절에 보니까 우리의 모든 날의 분노 중에 지나갑니다. 날이라는 것은 생활입니다. 우리 모든 생활이 형편이 처지가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갑니다. 그러니 징계가 오겠지요. 이스라엘 광야 40년에서 그렇게 다 죽었습니다. 우리 지난 날 보면 지나온 게 많겠고 사람이 다 그럴건데 모세라는 하나님의 사람은 일반적인 사람보다 잘 살았는데 모세는 자기를 돌아보고 일반적으로 하니까 분노 중에 지나가고 있구나. 잘한 거 자랑스러운 것은 잊어버리고 죄송한 것만 찾은 겁니다. 그래서 믿어갈수록 자기의 단점이 보이고 고칠 점이 많이 보이고 죄송한 점이 많이 보이면 복된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이 믿어갈수록 잘한 점만 보이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자기 단점만 보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믿는 사람은 분노 중에 믿는 게 맞다.
나는 어떤가 나는 누구의 사람이 되어있는가. 나는 죄를 찾아 회개를 하고 있는가 은혜 가운데 사는가 자기를 깊이 돌아봐야합니다. 우리의 평생이 일시간에 다 하였나이다. 무엇을 하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했습니까. 게임을 하면 시간이 빨리 가지요. 공부하면 시간 빨리 갑니까 천천히 갑니까. 놀면은요 금방 지나가 버리지요. 죄를 지으면 그게 빨리 지나갑니다. 죄를 지으면 천년이 하루처럼 지나가 버립니다. 의를 행하면 바로 살면 하루가 천년처럼 깁니다. 지루하다는 말도 있고 알차게 그렇습니다. 하루를 살면서 자기 자신의 생활을 하지요. 작정을 하고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시간이 빨리 가는지요.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루라는 세월은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하루를 공부한다고 살았는데요. 믿음으로 공부하면 그것도 좋겠는데 좋은 직장 들어가 이 세상 편하게 살려고 한 순간에 다 지나가 버립니다. 죄를 지으면 천 년에 하루처럼, 의롭게 살면 하루가 천 년처럼.
10절입니다. 그때가 지금이나 70까지 살았다면 어느 정도 살 겁니다.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라고 그렇습니다. 80이 넘어가면 더할 것이고. 우리 연수가 일방적으로 70이고 강건하면 80이다. 그런데 그 산 세월은 전부 수고와 슬픔 뿐이다. 수고 많이 했는데, 재벌가들에게 물어보지요. 이 세상에서 대충 산 사람들은 죽을 때도 덜 고통스럽게 죽습니다. 세상에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악착같이 사람은 쉽게 눈을 못감습니다. 그렇다고 대충 살란 말이 아닙니다. 인생이 다 그렇다는 거지요.
필요해서 했고 중요해서 했는데 다 수고와 슬픔 뿐이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러면 믿는 사람은 세상 살아갈 때 헛되지 않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헛된 수고 안하려면 뭐 해야하나요. 헛된 수고 안하려면 뭐하면 됩니까. 믿음으로 사는 생활, 말씀으로 사는 생활. 가정생활을 해도 남편이 가정을 챙겨도 아내가 가정을 챙겨도 주의 일로 결코 뜨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있기 때문에 천하사람이 죽도록 사는데 수고와 슬픔 뿐인데 믿는 사람의 생활은 그런 속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앎이니라. 그렇게 삽시다.
11절 여섯 번째입니다. 주님을 알 수 있는 사람. 아는 방법이 뭐냐 주님을 아는 것은 일차적으로 말씀을 알아야 주님을 압니다. 이차적으로 말씀알고 주님 아는 것은 피상적으로 아는 겁니다. 수박을 가져다놓고 수박입니다. 맛이 어떤가요 더운 여름에 시원한 수박을 먹어본 사람은 참 달콤하고 시원한 그 땀을 시켜주는 그런 겁니다. 라고 하겠지요. 말씀으로 살아본 사람은 실제로 아는 겁니다. 주님을 아는 방법 주님의 노를 아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주님의 진노를 아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겠습니까. 어렵지 않지요. 아버지가 참 인자한 아버지입니다. 자식들이 아버지 두려운 줄 모릅니다. 아버지가 자식 혼을 내야겠는데 잘못한 게 있어야 혼을 내는 거지요. 아이들 모르게 우리 아버지가 인자한 줄 알았는데 무서운 분이었구나. 하나님의 노를 알려면 죄를 지어보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를 짓게하신 겁니다. 선악과를 따먹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러신 겁니다. 죄 안 지어보면 하나님이 뭐를 모릅니다. 왜 지옥이 생겼습니까. 죄를 안 지었으면 에덴 동산에 안 따먹었으면 사망이 없습니다. 그러면 주님 대속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애굽 나라에 내린 재앙이 몇 가지입니까. 열 가지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려면 말씀을 알고 말씀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을 알려주십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날 수 계산하는 지혜. 세월은 간다. 인생은 늙는다. 죽음이 있다. 다 아는 사살이지요. 네 번째 부활이 있다. 심판과 영원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전부 오늘에 결정된다. 오늘에 좌우된다. 자기의 결정이다. 이 일곱가지를 알고 실제로 느끼면서 이 세상을 살아보는 하루 하루를 순간 산간을 접할 때마다 하루에 눈을 뜨고 출발할 때 마지막 잠자리에 들 때 이것들을 기억하고 느끼면서 시간시간을 살고 현실을 살아가는 언행심사 생활을 이렇게 살아갈 때 날 수 계산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심판과 영원이 이어지는구나. 내 선택에 달렸구나. 날 수 계산하는 지혜가 되는 겁니다. 기도하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79장(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137장(내 평생 소원 이것 뿐)
본문: 시편 90편 8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제목은 날 수 계산하는 지헤가 공과 제목입니다. 전체적으로 90장 제목부터해서 8절에서 12절까지 일곱가지를 생각해봤고 날 수 계산하는 지혜로 일곱 가지로 생각해봤습니다. 절 수에 따라 다른데 첫 번째가 제목에서 나온 겁니다. 성경에 제목을 잘 안 붙이는데 이런 제목 붙은 게 많습니다. 90장의 제목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가 되는 겁니다. 모세는 누구의 사람이라고요. 모세는 어떤 사람이라고요, 하나님의 사람이다. 참 영광스러운 이름이고 좋은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다. 우리도 모세처럼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자.
우등생이다 그러면 누구나 다 수석도 누구나 다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겁니다. 말씀의 사람 성경의 사람 기도의 사람 전도의 사람이 참 많은데 가지고 싶다고 가져집니까. 향락의 사람 돈의 사람 사람의 사람 아내의 사람 남편의 사람 부부로써는 가장 좋은 겁니다. 아내의 사람 되지 않고 다른 사랑이 되면 죄가 되겠지요. 그런데 둘이 딱 붙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둘이 붙어서 부모도 모르고 자식도 모르면 문제를 모릅니다. 이 사이에 틈은 주지 말아야합니다. 부부사이가 벌어진 상태에서는 안되는 겁니다. 하나님 사랑이 원동력이 돼서 부부의 사람이 되고 부부의 사랑이 될 때 부모를 섬길 수 있고 되게 되는 겁니다.
돈의 사람은 되지 말아야합니다. 친구의 사람은 안 되는 게 좋습니다. 선배의 사람, 선배를 따져봐야합니다. 옳은 신앙의 선배라면 따를만하나 사람이 되면 곤란합니다. 스승의 사람도 조심해야합니다. 사람의 사람되는 것은 부부 사이 외에는 어떤 것도 좋지 않습니다. 그 외에는 그 누구의 사람도 되면 안되는겁니다. 신앙있는 부모라면 이게 또 문제입니다. 성경적으로 한 몸이 되어서 그렇고 성경적으로 옳은 겁니다. 오래돼서 지금은 세상을 떠났는데 저와 멀지 않은 분인데 남편과 자식밖에 모릅니다. 아내로써 어머니로써 1등입니다. 그런데 부모를 모릅니다. 형제를 모릅니다. 그러니 부모님께는 좋은 소리 못 듣고 형제 사이는 벌어집니다. 되고난 다음 살피는 게 좋은 겁니다.
이게 점점 넓어져가는 거지요. 일차적으로 우리는 이런 것이다 말씀의 사람이 되는 건데 말씀 속에 다 있습니다. 도리를 가르치는 거지요. 교훈은 교훈이면서 계명입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해서 알아가지고 그 말씀대로 살아서 내가 말씀의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한 겁니다. 아무리 알아도 그렇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거지요. 밤낮 주야로 어떤 경우나 말씀에서 길을 찾고 답을 찾고 물어보고 말씀으로 전부를 삼으면 말씀의 사람이다. 그렇게 살아가니까 이름을 그리 붙이는 겁니다. 늘 기도만 합니다. 힘들면 기도하고 기도로 해결하고 메달리면 다른 사람은 저 사람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도하고 앉았고 가장이 다 집어던지고 기도만하고 다니면 믿는 사람 아닙니다. 가정이 있는 여인이 남편 있는 여인이 어머니가 되어서 다 집어던지고 기도만 하고 다니면 그 여인은 나쁜 사람입니다. 바로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공회는 말씀이 있으니까 덜한데 조심해야하는데 신앙이라는 것은 바로 말씀을 배워서 그 위해서 열심히 되는 게 진짜지 말씀 모르는 열심은 위험한 겁니다. 하도 요즘 불 종류가 많아서, 옛날로 불은 아궁이 안에서, 요즘은 가스레인지 안에서 그 안에서 가해야하지 그 범위를 벗어나면 다 태워버립니다. 자신과 가정과 주변을 다 태워버립니다. 굉장히 무섭습니다. 그 위에서 있어야합니다. 말씀 안에서. 말씀의 사람이 되고 기도의 사람이 되고 찬송의 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 분은 하루종일 찬송만 합니다. 그분은 지하실이 있었는데 출근하면 하루종일 찬송합니다. 어느날 보니까 목이 탁 트여서 찬송을 은혜롭게 합니다. 그렇게 찬송을 하더니 저런 찬송인도자가 되는구나. 자기가 이름 붙이는 게 아니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친구라는 것은 친구까라 간다고 우정이란 강한건데 좋지 않습니다. 그런 걸 동료정신이라고 하는데 그때 죽고 못살고 다 할거 같은데 나중에는 지나갑니다. 동기 동창 군대 친구들 전부 현실 바뀌고 잊어버리는 게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떤 것의 사람도 되지 말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자. 성령의 사람이 되고 진리의 사람이 되고 말씀의 사람되자. 그래서 말씀을 알아야합니다. 말씀에서 찾고 말씀으로 자라가는 말씀의 사람. 그게 하나님 살아가는 것의 출발입니다. 이게 첫 번째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람에서 나왔습니다.
왜 주님이 죄를 찾아내느냐. 검사가 피고에게 캐묻습니다. 이래 저래 해서 죄를 찾아내려고 하는 겁니다. 그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위치가 직책이 밝혀내서 처벌하는 게 검사의 목적입니다. 반대로 변호사는요 자기 의뢰인이 피고입니다. 이렇습니까 저렇습니까. 찾아내는 목적은 처벌을 면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찾아내는 이유는 과정은 둘 다 같은데 목적은 서로 정반대입니다. 주님이 우리 죄를 찾으시는 이유는 회개시키려고 죄 없는 우리 만드시려고, 사랑입니다. 공부 잘해서 로스쿨 졸업해서 시험을 쳐서 성적이 좋으면 이왕이면 위치상 역할상 검사보다는 변호사가 낫겠고 그런데 문제는 변호사는 돈은 잘 먹는데 권력은 검사가 더 세니까. 그것보다는 판사가 좋겠지요.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겠다. 내가 스스로 나의 죄를 찾아서 내놓는 겁니다. 이 세상은 그런 거 아닙니다. 교통사고 났을 때 첫 번째 진술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혜있는 사람은 아예 말을 안합니다. 그래서 피고들 주로 하는 말이 묵비권, 말 안합니다. 죄가 있는데 인정을 안하는 거죠. 뻔한 죄도 인정을 안하는거죠. 검사가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면 무죄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은 죄를 쉽게 자복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이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만 내가 죄가 있으면 주님 앞에서 이런 죄가 있습니다. 이런 게 있습니다. 자기 죄를 찾아서 회개라는 것은 죄를 자복하고 다시 그 짓을 안해야 회개가 되니까 마치 병든 사람이 약을 먹는 것처럼 수술하는 것처럼 그리되는 거지요. 그 고통이 힘들어서 회개가 되는 겁니다.
죄를 안 짓는 게 좋은 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죄를 지을 때는 즐겁고 기쁘고 좋습니다. 사탕을 많이 먹으면 굉장히 달콤하고 좋습니다. 설탕 많이 말하면 좋습니다. 그런데 이도 베리고 내장도 베리고 당뇨병도 그렇습니다. 모든 죄가 다 그런거지요. 자기 스스로 내가 스스로 죄를 찾아 회개하는 게 낫지 하나님이 죄를 찾아서 징계를 하기 시작하면 고통스럽습니다. 제 말투에서 뭐가 좀 느껴지는 거 같지 않습니까. 경험해본 사람 같지 않습니까.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성경에 죄 없다 죄를 지어본 적인 없는 사람입니다. 그게 욥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큰소리쳤습니다. 소송장 내놔라 자랑해볼게, 그게 욥입니다. 참 부러운 일입니다.
그게 도가 지나쳐서 네가 그렇게 의로운 거니까 내가 죄인되는 거네 그렇게 됐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욥처럼 살아야합니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 욥은 담대하게 큰 소리를 쳤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죄를 짓는거 알고는 죄를 짓지 않았고 죄를 지었으면 회개하는 게 복입니다. 사람 앞에야 어떤 큰 소리 쳐도 알아서 기는 게 가장 복입니다.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겠다. 9절에 보니까 우리의 모든 날의 분노 중에 지나갑니다. 날이라는 것은 생활입니다. 우리 모든 생활이 형편이 처지가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갑니다. 그러니 징계가 오겠지요. 이스라엘 광야 40년에서 그렇게 다 죽었습니다. 우리 지난 날 보면 지나온 게 많겠고 사람이 다 그럴건데 모세라는 하나님의 사람은 일반적인 사람보다 잘 살았는데 모세는 자기를 돌아보고 일반적으로 하니까 분노 중에 지나가고 있구나. 잘한 거 자랑스러운 것은 잊어버리고 죄송한 것만 찾은 겁니다. 그래서 믿어갈수록 자기의 단점이 보이고 고칠 점이 많이 보이고 죄송한 점이 많이 보이면 복된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이 믿어갈수록 잘한 점만 보이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자기 단점만 보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믿는 사람은 분노 중에 믿는 게 맞다.
나는 어떤가 나는 누구의 사람이 되어있는가. 나는 죄를 찾아 회개를 하고 있는가 은혜 가운데 사는가 자기를 깊이 돌아봐야합니다. 우리의 평생이 일시간에 다 하였나이다. 무엇을 하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했습니까. 게임을 하면 시간이 빨리 가지요. 공부하면 시간 빨리 갑니까 천천히 갑니까. 놀면은요 금방 지나가 버리지요. 죄를 지으면 그게 빨리 지나갑니다. 죄를 지으면 천년이 하루처럼 지나가 버립니다. 의를 행하면 바로 살면 하루가 천년처럼 깁니다. 지루하다는 말도 있고 알차게 그렇습니다. 하루를 살면서 자기 자신의 생활을 하지요. 작정을 하고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시간이 빨리 가는지요.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루라는 세월은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하루를 공부한다고 살았는데요. 믿음으로 공부하면 그것도 좋겠는데 좋은 직장 들어가 이 세상 편하게 살려고 한 순간에 다 지나가 버립니다. 죄를 지으면 천 년에 하루처럼, 의롭게 살면 하루가 천 년처럼.
10절입니다. 그때가 지금이나 70까지 살았다면 어느 정도 살 겁니다.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라고 그렇습니다. 80이 넘어가면 더할 것이고. 우리 연수가 일방적으로 70이고 강건하면 80이다. 그런데 그 산 세월은 전부 수고와 슬픔 뿐이다. 수고 많이 했는데, 재벌가들에게 물어보지요. 이 세상에서 대충 산 사람들은 죽을 때도 덜 고통스럽게 죽습니다. 세상에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악착같이 사람은 쉽게 눈을 못감습니다. 그렇다고 대충 살란 말이 아닙니다. 인생이 다 그렇다는 거지요.
필요해서 했고 중요해서 했는데 다 수고와 슬픔 뿐이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러면 믿는 사람은 세상 살아갈 때 헛되지 않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헛된 수고 안하려면 뭐 해야하나요. 헛된 수고 안하려면 뭐하면 됩니까. 믿음으로 사는 생활, 말씀으로 사는 생활. 가정생활을 해도 남편이 가정을 챙겨도 아내가 가정을 챙겨도 주의 일로 결코 뜨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있기 때문에 천하사람이 죽도록 사는데 수고와 슬픔 뿐인데 믿는 사람의 생활은 그런 속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앎이니라. 그렇게 삽시다.
11절 여섯 번째입니다. 주님을 알 수 있는 사람. 아는 방법이 뭐냐 주님을 아는 것은 일차적으로 말씀을 알아야 주님을 압니다. 이차적으로 말씀알고 주님 아는 것은 피상적으로 아는 겁니다. 수박을 가져다놓고 수박입니다. 맛이 어떤가요 더운 여름에 시원한 수박을 먹어본 사람은 참 달콤하고 시원한 그 땀을 시켜주는 그런 겁니다. 라고 하겠지요. 말씀으로 살아본 사람은 실제로 아는 겁니다. 주님을 아는 방법 주님의 노를 아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주님의 진노를 아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겠습니까. 어렵지 않지요. 아버지가 참 인자한 아버지입니다. 자식들이 아버지 두려운 줄 모릅니다. 아버지가 자식 혼을 내야겠는데 잘못한 게 있어야 혼을 내는 거지요. 아이들 모르게 우리 아버지가 인자한 줄 알았는데 무서운 분이었구나. 하나님의 노를 알려면 죄를 지어보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를 짓게하신 겁니다. 선악과를 따먹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러신 겁니다. 죄 안 지어보면 하나님이 뭐를 모릅니다. 왜 지옥이 생겼습니까. 죄를 안 지었으면 에덴 동산에 안 따먹었으면 사망이 없습니다. 그러면 주님 대속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애굽 나라에 내린 재앙이 몇 가지입니까. 열 가지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려면 말씀을 알고 말씀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을 알려주십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날 수 계산하는 지혜. 세월은 간다. 인생은 늙는다. 죽음이 있다. 다 아는 사살이지요. 네 번째 부활이 있다. 심판과 영원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전부 오늘에 결정된다. 오늘에 좌우된다. 자기의 결정이다. 이 일곱가지를 알고 실제로 느끼면서 이 세상을 살아보는 하루 하루를 순간 산간을 접할 때마다 하루에 눈을 뜨고 출발할 때 마지막 잠자리에 들 때 이것들을 기억하고 느끼면서 시간시간을 살고 현실을 살아가는 언행심사 생활을 이렇게 살아갈 때 날 수 계산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심판과 영원이 이어지는구나. 내 선택에 달렸구나. 날 수 계산하는 지혜가 되는 겁니다. 기도하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