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24일 주전 - 마태복음 7장 24절~27절
김동민2021-07-25조회 235추천 27
2021년 7월 25일 주일 오전
찬송: 87장, 154장
본문: 마태복음 7장 2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무너짐이 심하니라
거짓말은 속이는 것이기 때문에 고의적인 것이고, 고의적이라는 것은 사이비하게, 가짜로 속이는 것이기 때문에 나쁜 짓입니다. 속이는 것은 아주 나쁜 짓입니다.
어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은 자라가다보면 잘못할 수 있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은 나쁜 짓이기 때문에 고치도록 해야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지자는 선지자인데 거짓 선지자입니다. 성경 해석적으로 교리적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의 구원을 손해케 하는 말이 거짓말이고 거짓 행동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입니다. 말씀을 전함으로 말씀 속에 들어있는 구원의 도리를 깨달아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의 도리를 알게 하는 것이 선지자의 일입니다.
대속으로 사람이 변화가 되어집니다.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의를 행하게하는 것이 대속이고, 하나님을 찾아 친밀하게 모시게 하는 것이 대속이고, 하늘의 소망이 대속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 목적이 있고 소망이 있고 살아가는 방법이 있는 중에서 예수믿는 사람으로써 영원한 하늘나라, 소망을 뜻하며 자기를 변화시켜나가는 것이 구원인데, 사활의 대속입니다.
죄라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기준에서는 세상의 법을 어기면 죄지만, 세상의 법을 어겨도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세상의 법을 지켜도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경우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말을 하고 생각을하고 어떻게 행동을 하고 어떤 결정을 하고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하나님의 소원일까, 그것을 말씀으로 현실으로 양심으로 찾아가지고 내가 싫어도 힘이 들어도 나하고 안 맞아도 내가 손해를 받아도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라고 합니다. 그런 의롭게 사는 사람으로 점점 사람이 바꾸어져 가는, 그래서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괴로워도 손해봐도 이 세상은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만 따르면 의입니다. 그런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 의입니다. 하나님을 친밀하게 여기는 것이 구원입니다.
영원한 하늘의 소망, 하늘 나라를 준비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사람을 만드는 것이 말씀이고 그 말씀을 맡은 사람을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라는 이름만 붙었고 명찰은 받았는데 그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자기를 구원하지 않고 자기를 만들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그렇게 만들지 않을 때 그 사람을 거짓 선지자라고 합니다.
거짓 선지자가 되지 말아라, 그런 사람을 삼가라고 했습니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도 다른 사람도 구원을 해야할 책임이 있는 선지자다. 내 말씀을 받아서 말씀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거짓 선지자가 되고 맙니다. 속이려고 작정하고 하는 사람도 있고 속이는 줄 모르고 속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속인 줄 모르고 속이는 것은 자기도 속이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어두운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합니다.
큰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잘 모르겠으면 나도 모르겠고 다른 사람도 참 선지자인지 모르겠으면 나무를 모르면 열매를 보면 안다고 했습니다. 열매를 보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 시간에서 그 표시가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그 말이 나오고 그 행동이 나오고 그 생활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가시나무에서는 포도가 날 수 없습니다. 가시나무같은 사람이 있다면 남을 구원하는 열매를 바라는 것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이 옳은 말인가 진실한 말인가, 사람 관계 사물 관계 수 많은 자기 스스로 알 수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은 어두운 것입니다. 그 말은 무조건 실패한다는 뜻입니다. 모르면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쟁, 공부, 직업, 생활도 알면 해결도 되고 좋은 수도 있습니다만 모르면 무조건 실패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가 자기를 모르면, 나무를 알면 모르겠는데 포도 열매가 열리는데 이건 포도 나무입니다. 사과가 열리면 사과 나무입니다. 그 사람이 하는 심신의 활동을 보면 속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참선지자인지 거짓 선지자인지, 바로 되어있는지 잘못되어있는지 자신을 보면 압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불이 던지웁니다. 주인이 있는 모든 일은 목적이 있습니다. 집을 지어도, 구멍가게를 해도, 농사를 지어도 목적이 있습니다. 농부가 포도나무, 무화과 나무를 심었는데 열매가 안 맺습니다. 땅은 괜찮습니다. 더 기다려도 열매를 안 맺습니다. 놔두면 공간만 차지합니다. 이건 나무가 잘못됐다 하고 잘라버립니다.
감나무를 심었는데 봄에 보니까 싹 좀 나옵니다. 그런데 더 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가지를 잘라보니까 살아 있습니다. 여름이 되었는데도 잎사귀가 안 나옵니다. 그런데 열매를 안 맺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구원의 열매를 맺어야하는데 마지막에 맺지 못하면 불태워 버립니다. 그게 심판이고 지옥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희망이 없다 싶으면 숨이 끊어지는 그 날까지 대형 역사로는 더 이상 그에게 헛수고 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지극히 철저한 영리주의입니다. 하나님은 영리의 하나님입니다. 손익 계산을 따져서 1원을 따져서, 완전한 영리 주의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열매를 바라보고 다 쏟는데, 택자가 구원의 열매 맺으라고 기다리고 계시는데 기다려도 희망이 없으면 전지전능의 모든 것에 허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마지막 헛수고하지 않습니다. 새를 보고 먹이를 줄 때 안 되는 녀석은 주지도 않습니다. 기독교는 냉정하다, 사랑의 기독교가 그럴 수 있나 싶은데 그게 사랑이고 기독교입니다.
열매 맺지 않는 나무마다 불에 태운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조금씩이라도 굼벵이 기어나가듯이 나아가면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점점 퇴보되거나 제자리에 있으면 징계하십니다. 그래서 신앙은 전진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목적은 기본적으로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믿는 것입니다. 코로나 시국에 교회 다니면서 손가락질 받으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교회가 바닥에 있습니다.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교회를 나가고 봉사하고, 기도하고 하는 그런 생활 전부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주여 주여하면 택한 백성이라고 배웠는데,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믿는 사람은 천국 들어오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데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그랬습니다. 모순되는 것을 보고 전체를 보니까 하나가 되어집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두 종류가 있구나, 구원은 두 종류구나.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들어가는가 하면 택함 받은 사람은, 주여 주여 안 해도 천국갑니다. 마지막에 그 사람은 회개하게 되어있습니다. 표는 안 나도. 공회 안에 어떤 목사님의 장인인가 모르겠습니다. 실력 있는데 그렇게 핍박을 하고 사위인가 고통스럽게 박해하고 애를 먹이다가 마지막에 죽을 때가 딱 되니까 예수 믿는다고 그리고 돌아가셨답니다. 제가 아는 사람도 30대에 세상을 떠났는데,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입니다. 마지막에 죽기 전에 가족들에게 예수님 들어오신다고 창문 다 열어놔라고 그랬답니다. 그런 사람을 택자라고 그럽니다. 마지막에 표가 나게 되어있고, 안 나도 천국 갑니다. 세상 떠날 때까지 불신하고, 세상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죽을 때 믿습니다 하고 천국 갔는데, 그렇게 간 사람 하고, 평생에 주님 때문에 괴로워하고 천국 간 사람하고 계급이 똑같으면, 되겠습니까 그게. 죽는 날까지 다 마음대로 살다가, 이 세상에서 자기 하고 싶은대로 다 하다가, 홍포 입은 부자처럼. 그러다가 택자라서 천국 갔는데, 물 한 방울도 없습니다. 그리고 평생 하나님을 바라보다가 죽은 사람하고 같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10년 피아노 치고 전문가가 된 사람하고, 오늘 피아노 연습한 사람하고 차이가 납니다. 이렇게 천국의 차이는 하늘의 태양과, 해운대 바닷가의 모래의 차이는 큽니다. 그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 천국에 들어가면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돈이 많던지, 재주가 있던지, 쓸모가 있어야 쓸모가 있지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데. 여기가도 비켜주시겠습니까 저기가도 비켜주시겠습니까. 아무도 뭐라 안합니다. 그런데 다들 모두 바쁘게 하고 있는데 자기는 할 일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뭣도 안 해봤습니다. 한 순간도 주님을 위해서 살아보지도 않았고 땀 한 번 흘려보지도 않았습니다. 제 자식을 위해서, 저만을 위해서, 주님은 없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주님의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우주의 기원을 빅뱅이라고 그럽니까. 펑하는 순간에. 그런데 그 근본에 들어가보면, 하나님 한 분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분리되거나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라 그분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분 중심은 모든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눈물 흘리고 애태우고 그러니까 천국 가도 할 일이 꽉 찼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한번도 안 하고 천국갔는데 이제 배우겠습니다. 이제 다 지나갔습니다. 이미 전부 늦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어느 날, 어느 교회에서 정말 선지자 노릇을 했습니다. 복음 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한 자들아. 그 사람 뭐한 겁니까 그러면. 주님 판단에 제 멋대로 한, 불법을 한 사람입니다. 너 좋아서 너 적성에 맞으니까 했고 너 명예위해서 했지, 내가 보니까 평생 목표했는데 다 밥벌이로 했네. 의를 위해서 한 것은 하나도 없네. 평생을 복음을 전했습니다. 40일을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천국과 상관 없이 구원과 상관없는 설교, 봉사, 충성, 부흥회 가서 간증으로 말씀을 전해서 폭발을 시켜서 온 청중들이 눈물을 쏟았습니다. 눈물은 어디가면 많이 있을까요. 극장가서 슬픈 영화 틀어놓으면 울음바다 되어버립니다.
신앙 세계에 별별 것이 다 있습니다. 기도, 전도, 성경 읽는 것, 연보도 전부 동기 목적이 안됩니다. 주님을 위해서, 그래서 믿는 사람을 위해서 충성이, 노력이 주를 위한 것이냐. 그래서 예수 잘 믿는 사람은 관대하고 배짱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믿는 사람은 집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천하 모든 사람들, 집을 짓는 잘세. 우리가 농사하는 사람들이고 집을 짓는 사람들인데, 집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무주택자. 전세가 있는데 천국에는 전세가 없습니다. 그러면 노숙이 됩니다. 하나는 반석 위에 지은 집.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반석 위에 지은 집이 되어집니다. 우리들의 평생을 통해서 지어집니다. 집을 짓는 것은 우리의 평생을 통한, 말과 행동과 심신의 모든 활동이 그렇게 됩니다. 문제는 기초를 어디에 짓느냐.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쉽게 무너집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으면 잘 무너집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을 부인하고 따져보면 우리 속에 성령이 있기 때문에 하나 되어 보이는 것이 우리의 길입니다. 아니면 어두워지는 것이 우리입니다. 기억합시다.
오후 예배에 계속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87장, 154장
본문: 마태복음 7장 2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무너짐이 심하니라
거짓말은 속이는 것이기 때문에 고의적인 것이고, 고의적이라는 것은 사이비하게, 가짜로 속이는 것이기 때문에 나쁜 짓입니다. 속이는 것은 아주 나쁜 짓입니다.
어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은 자라가다보면 잘못할 수 있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은 나쁜 짓이기 때문에 고치도록 해야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지자는 선지자인데 거짓 선지자입니다. 성경 해석적으로 교리적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의 구원을 손해케 하는 말이 거짓말이고 거짓 행동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입니다. 말씀을 전함으로 말씀 속에 들어있는 구원의 도리를 깨달아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의 도리를 알게 하는 것이 선지자의 일입니다.
대속으로 사람이 변화가 되어집니다.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의를 행하게하는 것이 대속이고, 하나님을 찾아 친밀하게 모시게 하는 것이 대속이고, 하늘의 소망이 대속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 목적이 있고 소망이 있고 살아가는 방법이 있는 중에서 예수믿는 사람으로써 영원한 하늘나라, 소망을 뜻하며 자기를 변화시켜나가는 것이 구원인데, 사활의 대속입니다.
죄라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기준에서는 세상의 법을 어기면 죄지만, 세상의 법을 어겨도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세상의 법을 지켜도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경우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말을 하고 생각을하고 어떻게 행동을 하고 어떤 결정을 하고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하나님의 소원일까, 그것을 말씀으로 현실으로 양심으로 찾아가지고 내가 싫어도 힘이 들어도 나하고 안 맞아도 내가 손해를 받아도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라고 합니다. 그런 의롭게 사는 사람으로 점점 사람이 바꾸어져 가는, 그래서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괴로워도 손해봐도 이 세상은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만 따르면 의입니다. 그런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 의입니다. 하나님을 친밀하게 여기는 것이 구원입니다.
영원한 하늘의 소망, 하늘 나라를 준비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사람을 만드는 것이 말씀이고 그 말씀을 맡은 사람을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라는 이름만 붙었고 명찰은 받았는데 그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자기를 구원하지 않고 자기를 만들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그렇게 만들지 않을 때 그 사람을 거짓 선지자라고 합니다.
거짓 선지자가 되지 말아라, 그런 사람을 삼가라고 했습니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도 다른 사람도 구원을 해야할 책임이 있는 선지자다. 내 말씀을 받아서 말씀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거짓 선지자가 되고 맙니다. 속이려고 작정하고 하는 사람도 있고 속이는 줄 모르고 속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속인 줄 모르고 속이는 것은 자기도 속이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어두운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합니다.
큰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잘 모르겠으면 나도 모르겠고 다른 사람도 참 선지자인지 모르겠으면 나무를 모르면 열매를 보면 안다고 했습니다. 열매를 보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 시간에서 그 표시가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그 말이 나오고 그 행동이 나오고 그 생활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가시나무에서는 포도가 날 수 없습니다. 가시나무같은 사람이 있다면 남을 구원하는 열매를 바라는 것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이 옳은 말인가 진실한 말인가, 사람 관계 사물 관계 수 많은 자기 스스로 알 수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은 어두운 것입니다. 그 말은 무조건 실패한다는 뜻입니다. 모르면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쟁, 공부, 직업, 생활도 알면 해결도 되고 좋은 수도 있습니다만 모르면 무조건 실패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가 자기를 모르면, 나무를 알면 모르겠는데 포도 열매가 열리는데 이건 포도 나무입니다. 사과가 열리면 사과 나무입니다. 그 사람이 하는 심신의 활동을 보면 속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참선지자인지 거짓 선지자인지, 바로 되어있는지 잘못되어있는지 자신을 보면 압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불이 던지웁니다. 주인이 있는 모든 일은 목적이 있습니다. 집을 지어도, 구멍가게를 해도, 농사를 지어도 목적이 있습니다. 농부가 포도나무, 무화과 나무를 심었는데 열매가 안 맺습니다. 땅은 괜찮습니다. 더 기다려도 열매를 안 맺습니다. 놔두면 공간만 차지합니다. 이건 나무가 잘못됐다 하고 잘라버립니다.
감나무를 심었는데 봄에 보니까 싹 좀 나옵니다. 그런데 더 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가지를 잘라보니까 살아 있습니다. 여름이 되었는데도 잎사귀가 안 나옵니다. 그런데 열매를 안 맺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구원의 열매를 맺어야하는데 마지막에 맺지 못하면 불태워 버립니다. 그게 심판이고 지옥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희망이 없다 싶으면 숨이 끊어지는 그 날까지 대형 역사로는 더 이상 그에게 헛수고 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지극히 철저한 영리주의입니다. 하나님은 영리의 하나님입니다. 손익 계산을 따져서 1원을 따져서, 완전한 영리 주의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열매를 바라보고 다 쏟는데, 택자가 구원의 열매 맺으라고 기다리고 계시는데 기다려도 희망이 없으면 전지전능의 모든 것에 허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마지막 헛수고하지 않습니다. 새를 보고 먹이를 줄 때 안 되는 녀석은 주지도 않습니다. 기독교는 냉정하다, 사랑의 기독교가 그럴 수 있나 싶은데 그게 사랑이고 기독교입니다.
열매 맺지 않는 나무마다 불에 태운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조금씩이라도 굼벵이 기어나가듯이 나아가면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점점 퇴보되거나 제자리에 있으면 징계하십니다. 그래서 신앙은 전진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목적은 기본적으로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믿는 것입니다. 코로나 시국에 교회 다니면서 손가락질 받으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교회가 바닥에 있습니다.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교회를 나가고 봉사하고, 기도하고 하는 그런 생활 전부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주여 주여하면 택한 백성이라고 배웠는데,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믿는 사람은 천국 들어오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데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그랬습니다. 모순되는 것을 보고 전체를 보니까 하나가 되어집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두 종류가 있구나, 구원은 두 종류구나.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들어가는가 하면 택함 받은 사람은, 주여 주여 안 해도 천국갑니다. 마지막에 그 사람은 회개하게 되어있습니다. 표는 안 나도. 공회 안에 어떤 목사님의 장인인가 모르겠습니다. 실력 있는데 그렇게 핍박을 하고 사위인가 고통스럽게 박해하고 애를 먹이다가 마지막에 죽을 때가 딱 되니까 예수 믿는다고 그리고 돌아가셨답니다. 제가 아는 사람도 30대에 세상을 떠났는데,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입니다. 마지막에 죽기 전에 가족들에게 예수님 들어오신다고 창문 다 열어놔라고 그랬답니다. 그런 사람을 택자라고 그럽니다. 마지막에 표가 나게 되어있고, 안 나도 천국 갑니다. 세상 떠날 때까지 불신하고, 세상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죽을 때 믿습니다 하고 천국 갔는데, 그렇게 간 사람 하고, 평생에 주님 때문에 괴로워하고 천국 간 사람하고 계급이 똑같으면, 되겠습니까 그게. 죽는 날까지 다 마음대로 살다가, 이 세상에서 자기 하고 싶은대로 다 하다가, 홍포 입은 부자처럼. 그러다가 택자라서 천국 갔는데, 물 한 방울도 없습니다. 그리고 평생 하나님을 바라보다가 죽은 사람하고 같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10년 피아노 치고 전문가가 된 사람하고, 오늘 피아노 연습한 사람하고 차이가 납니다. 이렇게 천국의 차이는 하늘의 태양과, 해운대 바닷가의 모래의 차이는 큽니다. 그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 천국에 들어가면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돈이 많던지, 재주가 있던지, 쓸모가 있어야 쓸모가 있지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데. 여기가도 비켜주시겠습니까 저기가도 비켜주시겠습니까. 아무도 뭐라 안합니다. 그런데 다들 모두 바쁘게 하고 있는데 자기는 할 일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뭣도 안 해봤습니다. 한 순간도 주님을 위해서 살아보지도 않았고 땀 한 번 흘려보지도 않았습니다. 제 자식을 위해서, 저만을 위해서, 주님은 없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주님의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우주의 기원을 빅뱅이라고 그럽니까. 펑하는 순간에. 그런데 그 근본에 들어가보면, 하나님 한 분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분리되거나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라 그분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분 중심은 모든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눈물 흘리고 애태우고 그러니까 천국 가도 할 일이 꽉 찼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한번도 안 하고 천국갔는데 이제 배우겠습니다. 이제 다 지나갔습니다. 이미 전부 늦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어느 날, 어느 교회에서 정말 선지자 노릇을 했습니다. 복음 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한 자들아. 그 사람 뭐한 겁니까 그러면. 주님 판단에 제 멋대로 한, 불법을 한 사람입니다. 너 좋아서 너 적성에 맞으니까 했고 너 명예위해서 했지, 내가 보니까 평생 목표했는데 다 밥벌이로 했네. 의를 위해서 한 것은 하나도 없네. 평생을 복음을 전했습니다. 40일을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천국과 상관 없이 구원과 상관없는 설교, 봉사, 충성, 부흥회 가서 간증으로 말씀을 전해서 폭발을 시켜서 온 청중들이 눈물을 쏟았습니다. 눈물은 어디가면 많이 있을까요. 극장가서 슬픈 영화 틀어놓으면 울음바다 되어버립니다.
신앙 세계에 별별 것이 다 있습니다. 기도, 전도, 성경 읽는 것, 연보도 전부 동기 목적이 안됩니다. 주님을 위해서, 그래서 믿는 사람을 위해서 충성이, 노력이 주를 위한 것이냐. 그래서 예수 잘 믿는 사람은 관대하고 배짱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믿는 사람은 집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천하 모든 사람들, 집을 짓는 잘세. 우리가 농사하는 사람들이고 집을 짓는 사람들인데, 집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무주택자. 전세가 있는데 천국에는 전세가 없습니다. 그러면 노숙이 됩니다. 하나는 반석 위에 지은 집.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반석 위에 지은 집이 되어집니다. 우리들의 평생을 통해서 지어집니다. 집을 짓는 것은 우리의 평생을 통한, 말과 행동과 심신의 모든 활동이 그렇게 됩니다. 문제는 기초를 어디에 짓느냐.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쉽게 무너집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으면 잘 무너집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을 부인하고 따져보면 우리 속에 성령이 있기 때문에 하나 되어 보이는 것이 우리의 길입니다. 아니면 어두워지는 것이 우리입니다. 기억합시다.
오후 예배에 계속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