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8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1-04-18조회 270추천 30
2021년 4월 18일 주일 오후
본문 : 로마서 7장 15절 ~ 17절
시편 19편 공부할 때 다른 성경보다는, 마찬가지이만은 다윗이 믿음생활을 하는 가운데 하늘 자체를 보고, 하늘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을 깨달았고, 자연의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발견해냈습니다. 그것을 19편에 기록해놓았습니다.
진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전해 올 때는 사람이 그 진리를 가진다면 모셨을 때 그 진리를 통해서 성령이 역사가 될 수 있고, 진리가 독자적인 능력이 있어도 사람이 없으면 영향이 없는 그런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진리는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하니까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자연만물을 보고, 말씀을 생각함으로 깨달은 것은 진리가 있으니까 깨닫겠다..
본문에 로마서도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인데, 구약의 율법과 주님의 대속을 함께 놓고, 사활의 대속을 입어서 구속받은 입장에서 실제 생황을 해 나가는 가운데서 마찰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말씀대로 살아볼 때 말씀을 알게 되는 것이지, 안 해보면 증명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다.
이대로 살아보는 사람은 말씀의 실상을 알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신과 상관이 없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아무리 듣고 읽어도 그 말씀대로 해보지 않으면 그냥 껍데기에서 그치고 마는 겁니다. 모든 과학이라는 것은 이론이 먼저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가설을 세우고, 실제로 맞는지 아닌지 이론대로 해 보는 것이지요. 해보는 것을 뭐라고 합니까? 실험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해 보는 겁니다. 하면 맞다 아니다가 증명이 되고, 맞는 것은 그대로인데, 대부분은 실제 해보면 맞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대부분은 될 거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고치고 고치는 것이 과학의 발전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종교는 과학이 알 수 없고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교는 신을 찾아가는 것이고, 과학으로 찾을 수 없는 것이 신입니다. 신앙은 과학이다. 물리라는 뜻이 아니라 이치라는 뜻이고, 모든물리는 성경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 안에 기독교가 있지는 않습니다만, 기독교 안에 과학이 있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어떤 과학도 기독교를 넘을 수 없습니다. 묘한 말 같으나 어떻게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과학은 하나님의 예정 속에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말씀대로 살아보니까 발견된 것이 있었습니다. 15절부터 보겠습니다. 들어보시고 잘못된 것은 지적해주십시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나”가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입니다. 자기가 행한 것은 자기가 아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나의 행한 것은 내 뜻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의 행하는 것은 원치 않는 것을 행했으니까, 말씀을 어기는 나쁜 자신입니다. “곧 원하는 것은 행치 아니하고”.
원하는 자기 자신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원하는 자신이 있는데,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원치 않는데 어기고 있습니다. 미워하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대로 살지 않는 것을 미워하는데, 원치 않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하면,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한다”. 율법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 율법은 지켜서 행해야하는데 그렇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율법과 그대로 행하지 않는 자신과는 대립이 됩니다.
율법들을 행치 않는 그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있고,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그 법대로 하기 싫어하는 내가 있습니다. 이것을 보니까 율법은 보배이고 선한 것입니다. 율법과 내 속에는 맞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대속을 입은 다음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이제 정체가 나왔습니다. 죄는 인격체입니까 행위의 결과입니까? 인격이 없는 곳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고, 행위가 없는 곳에서는 죄가 없습니다. 인격체가 없는 곳에서는 행위가 없는 것입니다.
인격이 있어야 행위가 있고, 행위가 있어야 죄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을 행하지 않는 것은 내 속의 죄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어기지 않는 자신이 있는데, 어기게 하는 것은 죄인데, 그 죄를 누가 지은 거죠? 바울이 지은게 아닌가요? 사도 바울 안에 있는 죄인데, 누가 지은 죄입니까? 사도 바울이 행동한 것으로 생긴 죄이겠죠.
그런데 그 죄라는 것은 사도 바울의 마음에 든 일부분이 율법을 어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속에 내가 원치 아니한 것을 하면 내가 아니다, 내 죄다. 그러면 그 죄는 뭐냐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 안에 있는 죄는 사도 바울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이치를 깨달았다.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새 사람과 하나된 세력과 싸워서 내 속에 있는 죄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바울 속에 중생된 영이 있고, 그것에게 붙들린 세력이 있고 반대되는 악의 세력이 있어서 세력 다툼을 하는데, 끌려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몸이 사망의 몸이고, 죄의 몸입니다. 죄 아래에 있는 법을 어겨서, 그 몸 안에는 마음이 있습니다. 심신 안에 영이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현실을 살아가면서 가정생활, 직장생활 등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중생된 영을 통해서 내 마음을 통해서 알려주시는 것들을 생각하고, 어떻게 해야하겠느냐, 자기가 생각하면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금 말은 사람이 있든 없든 보든 안 보든,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옳은 것이냐는 중생된 사람은 생각해보아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본문 : 로마서 7장 15절 ~ 17절
시편 19편 공부할 때 다른 성경보다는, 마찬가지이만은 다윗이 믿음생활을 하는 가운데 하늘 자체를 보고, 하늘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을 깨달았고, 자연의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발견해냈습니다. 그것을 19편에 기록해놓았습니다.
진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전해 올 때는 사람이 그 진리를 가진다면 모셨을 때 그 진리를 통해서 성령이 역사가 될 수 있고, 진리가 독자적인 능력이 있어도 사람이 없으면 영향이 없는 그런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진리는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하니까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자연만물을 보고, 말씀을 생각함으로 깨달은 것은 진리가 있으니까 깨닫겠다..
본문에 로마서도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인데, 구약의 율법과 주님의 대속을 함께 놓고, 사활의 대속을 입어서 구속받은 입장에서 실제 생황을 해 나가는 가운데서 마찰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말씀대로 살아볼 때 말씀을 알게 되는 것이지, 안 해보면 증명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다.
이대로 살아보는 사람은 말씀의 실상을 알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신과 상관이 없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아무리 듣고 읽어도 그 말씀대로 해보지 않으면 그냥 껍데기에서 그치고 마는 겁니다. 모든 과학이라는 것은 이론이 먼저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가설을 세우고, 실제로 맞는지 아닌지 이론대로 해 보는 것이지요. 해보는 것을 뭐라고 합니까? 실험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해 보는 겁니다. 하면 맞다 아니다가 증명이 되고, 맞는 것은 그대로인데, 대부분은 실제 해보면 맞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대부분은 될 거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고치고 고치는 것이 과학의 발전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종교는 과학이 알 수 없고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교는 신을 찾아가는 것이고, 과학으로 찾을 수 없는 것이 신입니다. 신앙은 과학이다. 물리라는 뜻이 아니라 이치라는 뜻이고, 모든물리는 성경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 안에 기독교가 있지는 않습니다만, 기독교 안에 과학이 있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어떤 과학도 기독교를 넘을 수 없습니다. 묘한 말 같으나 어떻게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과학은 하나님의 예정 속에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말씀대로 살아보니까 발견된 것이 있었습니다. 15절부터 보겠습니다. 들어보시고 잘못된 것은 지적해주십시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나”가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입니다. 자기가 행한 것은 자기가 아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나의 행한 것은 내 뜻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의 행하는 것은 원치 않는 것을 행했으니까, 말씀을 어기는 나쁜 자신입니다. “곧 원하는 것은 행치 아니하고”.
원하는 자기 자신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원하는 자신이 있는데,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원치 않는데 어기고 있습니다. 미워하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대로 살지 않는 것을 미워하는데, 원치 않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하면,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한다”. 율법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 율법은 지켜서 행해야하는데 그렇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율법과 그대로 행하지 않는 자신과는 대립이 됩니다.
율법들을 행치 않는 그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있고,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그 법대로 하기 싫어하는 내가 있습니다. 이것을 보니까 율법은 보배이고 선한 것입니다. 율법과 내 속에는 맞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대속을 입은 다음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이제 정체가 나왔습니다. 죄는 인격체입니까 행위의 결과입니까? 인격이 없는 곳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고, 행위가 없는 곳에서는 죄가 없습니다. 인격체가 없는 곳에서는 행위가 없는 것입니다.
인격이 있어야 행위가 있고, 행위가 있어야 죄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을 행하지 않는 것은 내 속의 죄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어기지 않는 자신이 있는데, 어기게 하는 것은 죄인데, 그 죄를 누가 지은 거죠? 바울이 지은게 아닌가요? 사도 바울 안에 있는 죄인데, 누가 지은 죄입니까? 사도 바울이 행동한 것으로 생긴 죄이겠죠.
그런데 그 죄라는 것은 사도 바울의 마음에 든 일부분이 율법을 어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속에 내가 원치 아니한 것을 하면 내가 아니다, 내 죄다. 그러면 그 죄는 뭐냐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 안에 있는 죄는 사도 바울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이치를 깨달았다.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새 사람과 하나된 세력과 싸워서 내 속에 있는 죄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바울 속에 중생된 영이 있고, 그것에게 붙들린 세력이 있고 반대되는 악의 세력이 있어서 세력 다툼을 하는데, 끌려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몸이 사망의 몸이고, 죄의 몸입니다. 죄 아래에 있는 법을 어겨서, 그 몸 안에는 마음이 있습니다. 심신 안에 영이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현실을 살아가면서 가정생활, 직장생활 등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중생된 영을 통해서 내 마음을 통해서 알려주시는 것들을 생각하고, 어떻게 해야하겠느냐, 자기가 생각하면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금 말은 사람이 있든 없든 보든 안 보든,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옳은 것이냐는 중생된 사람은 생각해보아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