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방언에 대한 공회의 일반적 입장
yilee (yilee@pkist2009-04-05조회 515추천 113
2007/10/29(월)
(사실 관계)
순복음교회에 깊이 활동하신 분들의 체험과 장로교회의 교단 별 체험은 조금씩 다르며
해방 전과 후 그리고 80년대 전과 후의 방언에 대한 현상들은 시대별로도 특이점이 있으나
윗글 '교인'께서 소개한 내용은 최근 일반적 내용을 소개하신 것이라고 대체로 인정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방언에 대하여 그 누구도 통계나 일괄 설명을 못할 정도로 발전되고 변모했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으나 공회는 그 출발 초기에 극단적 방언과 기적과 신유집단으로 출발했습니다.
그 당시 모든 장로교 교회들은 서슴치 않고 이단이라 사이비라 비판했습니다. 공회 역사입니다.
공회는 그런 초기를 거쳐 이후 말씀 중심으로 교단의 진행 방향을 잡고 나아왔습니다.
당시 장로교단은 말씀 중심이고 방언 이단으로 정죄했으나 지금은 방언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배 때 일일이 다 설명하고 자세히 배경을 이야기 하다 보면 전체 교훈의 방향을 잃을 수가 있어
공회 교인들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아는 차원이라 생각할 때는 설교 도중 표현을 간단히 하는데
공회의 방언에 대한 입장은
지금도 어린 신앙이나 특별한 환경에서 그 어떤 방언이나 신유나 다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교훈 방향으로 삼거나 평상상황으로 인정을 하는 것은 치우친 것이라고 주의하고 있으며
특히 현재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상화 된 방언 형태는 총론적으로 틀렸다고 단정합니다.
이 말은 어느 개인의 어떤 특별한 신앙 발전 과정에서 어떤 특별 인도는 항상 가능하다 말입니다.
(만사 신중)
방언과 관련
현재 우리 나라 교회들이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방언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성경에 기록이 있고 그리고 현재 방언을 직접 또는 주변에서 체험하기 때문에 성경적이라 하는데
성경에 기록된 이상 우리는 누구도 함부로 단정해서 금하는 것도 어렵고 신중해야 하지만
동시에 성경 기록과 현재 현상을 바로 연결시키는 것도 대단히 조심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 나라 교회들의 일반적 방언이 성경의 문자적 기록을 인정하여 정말 방언이라고 한다면
방언을 주장하는 분들은 뱀을 집어들고 무슨 독이라도 마실 수 있는 막16:18을 고려해야 합니다.
방언을 금지하고 비판하는 공회의 정통 교훈은 과연 신중한가? 이렇게 반문이나 이론하신다면
일반 교회나 교인들이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신중하고 역사적이며 현실 파악 연구적입니다.
(이해 요청)
짧은 설교 시간 중에 총론과 예외를 전부 다 설명하다 보면 말씀의 전체 방향을 잃게 됩니다.
설교 내용은 잘 모르겠으나 현대적 방언의 현상에 대한 것이 주제라면 전반적으로 다룰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설교 때마다 모든 사람의 감추인 특별 상황 전부를 다 예로 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현재 한국교회가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방언은 그들 교회의 신학교 교재가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역사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다만 목회 현장에서 알아서 목회자들이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교단 법은 전국의 총회가 이단을 금지하면 지방의 노회와 개교회를 통해 전달됩니다.
상명하복의 법이 엄하기 때문에 방언에 대하여 정통 장로교는 윗글처럼 표현하면 치리 받습니다.
공회는 현재의 방언 형태를 본질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예외적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현재 일반 교회 방언 인식과 행태의 총론을 두고 말한다면 아주 잘못되었다는 입장입니다.
일반 교회는 이런 상황이라면 한 교인이 윗글처럼 발표하면 불법입니다. 허용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회는 일일이 설명할 수 없어 그렇지 얼마든지 개인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다만 그런 개인 주장을 일반화 하거나 평상화 하는 방향이 된다면 그 방향을 반대할 뿐입니다.
공회의 전체 방향과 분위기가 이렇다는 것이 공회는 그 출발 정신에서 항상 전제되어 있으므로
혹시 목회자가 강단에서 '방언이 이단이다!' 이렇게 표현을 한다면
듣는 교인으로서는 그 내용 안에 담긴 공회의 여러 면을 다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그 표현이 자주 나오고 또 여러 사람에게 이런 설명 이상으로 오해가 될 정도라면
이번 윗글처럼 교인 입장에서는 바쁘게 지적해 주셔야 다음에는 고려하고 설교할 것 같습니다.
이번 윗글에 대한 반론으로 이 글을 적는 것이 아니고 이 홈은 완전 공개로 운영되고 있으므로
우리 공회 전체 교인과 방언 관련 설명을 평소 듣고 미리 알고 읽는 분들이 아닌 경우
그리고 방언에 대하여 호의적인 외부 교인이 계신다면 이왕 윗글에서 구체적 설명이 나왔으므로
이곳을 방문하고 읽는 모든 분들을 위해 넓은 범위에서 이해를 구하기 위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 6학년 하나가 라이터를 들고 들판에 나가서 불을 조금 붙이다 끄는 장난을 했습니다.
그 학생은 불의 위험을 알기 때문에 호기심과 장난을 겸해서 잠깐 그렇게 하다 끝을 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1학년 하나가 그것을 보고 주머니에 라이타를 가지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어른은 불을 좋게만 사용하는데 만의 하나 실수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고
6학년 정도면 벌대로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실수할 가능성이 많으므로 엄히 단속을 해야 하고
1학년이 라이타를 가졌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거나 대형화재가 났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공회에 통성기도나 찬송이나 여러 면에서 좀 뜨거움을 가지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너무 반갑습니다. 목회자가 하는 말은 무슨 말이든 설교로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인 중에 스스로 그런 말씀을 하신다면 듣는 사람들에게 주는 자극이 다를 것 같습니다.
말씀의 깨달음이 신앙의 속 불을 일으켜 겉으로는 조용하나 속으로는 순교로 끌어가는 수도 있고
말씀의 깨달음이 우선 눈에 보이는 열심과 불을 붙여 안팎으로 불바다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공회의 전반적 분위기는 첫째 경우는 불과 몇 명이고 둘째 경우는 더러 많이 보이고
대부분 교인은 좋은 길에 섰으나 짜맞춘듯 조용하여 둘째 경우의 분들을 주저앉히는 결과입니다.
말씀 없이 기도나 찬송을 단순히 흥나게 크게 부르다가 그 속에서 속 신앙이 드는 경우도 많고
말씀 없이 기도나 찬송 위주로 나가다 아주 껍데기 신앙되는 경우는 현재 교계 거의 전부입니다.
첫째 경우는 일반 교회의 중진이나 신앙 있는 분들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그 깊이에 한계가 있고
둘째 경우는 일반 교회의 일반 교인 대부분입니다. 교계 목회자들부터 주일이 없어진 정도입니다.
남의 일이어서 급하게 연구하거나 토론하거나 살피지는 못해도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 공회 우리의 현안은
할 수 있는 것부터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통성기도나 찬송생활처럼 당연한 문제는 체질에 맞지 않아도 충성 차원에서 열심히 노력하여
우리 공회 전체 분위기가 기도나 찬송의 외부 모습이 일단 정상화되고 나면
그때 한 두 사람 자기 체질에 따라 소리를 낮추든 묵상을 하든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방언은
그것이 미치는 전체 영향을 고려해서 개별적으로 은밀한 신앙세계에서 한다면 할 정도입니다.
방언으로 한번씩 기도의 불을 일으키는 습관이 들면 나중에는 생각못한 단계가 기다립니다.
만화로 수학이나 역사를 공부하면 아이들의 순간 집중도와 이해력에 큰 도움을 받게 됩니다만
그렇게 하다 어느날 그 아이들의 인생이 하나의 만화에 나오는 코메디가 되고 장난이 되어
사회생활도 국가운명의 결정도 외교도 가정의 부부생활도 하나의 장난수준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삽화를 통해 교육 자체를 원론적으로 말한다면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해서 잘 사용하면 좋지만 공회는 전체적으로 최대한 문자 중심으로 나가자는 운동이고
조심해서 잘 사용한다고 했지만 일반 교계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정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한 쪽은 옳고 한 쪽은 틀렸다고 일도양단으로 단정할 신사참배와 같은 문제가 아니고
언제 어느 면을 조심하며 어느 쪽을 길러가느냐의 운영 기술에 대한 면이 강합니다.
바로 이런 사안에서는 모든 책임이 다 목회자에게 쏟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목회자가 강하게 이끌어 교인에게 불과 힘을 심고 동시에 말씀으로 깊이 들어가게 하면 되겠는데
현재 공회 우리 목회자들은 이런 면에 아주 유약하여 사실 목회자란 위치를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평소 말씀에 깊이를 더하며 그 말씀이 주는 불을 함께 전달했다면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게 되고
우려스러운 면으로 열심이나 뜨거움을 구하게 되는 대화가 아예 나오지 않을 것인데
앞에 있는 목회자들이 공회 목회자답게 제대로 이끌지를 못하므로
개인적으로 하나님 주시는 뜨거운 은혜 역사가 솟구치는 분들과 그런 열심을 사모하는 분들은
각 교회마다 속을 끓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회의 일반적 입장을 가지고 원칙론적 입장에서 일단 정중하게 안내하며 깊은 이해를 구합니다.
이 글은 동천교회의 개별 설교 내용을 모르고 교인과 목회자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관계)
순복음교회에 깊이 활동하신 분들의 체험과 장로교회의 교단 별 체험은 조금씩 다르며
해방 전과 후 그리고 80년대 전과 후의 방언에 대한 현상들은 시대별로도 특이점이 있으나
윗글 '교인'께서 소개한 내용은 최근 일반적 내용을 소개하신 것이라고 대체로 인정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방언에 대하여 그 누구도 통계나 일괄 설명을 못할 정도로 발전되고 변모했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으나 공회는 그 출발 초기에 극단적 방언과 기적과 신유집단으로 출발했습니다.
그 당시 모든 장로교 교회들은 서슴치 않고 이단이라 사이비라 비판했습니다. 공회 역사입니다.
공회는 그런 초기를 거쳐 이후 말씀 중심으로 교단의 진행 방향을 잡고 나아왔습니다.
당시 장로교단은 말씀 중심이고 방언 이단으로 정죄했으나 지금은 방언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배 때 일일이 다 설명하고 자세히 배경을 이야기 하다 보면 전체 교훈의 방향을 잃을 수가 있어
공회 교인들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아는 차원이라 생각할 때는 설교 도중 표현을 간단히 하는데
공회의 방언에 대한 입장은
지금도 어린 신앙이나 특별한 환경에서 그 어떤 방언이나 신유나 다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교훈 방향으로 삼거나 평상상황으로 인정을 하는 것은 치우친 것이라고 주의하고 있으며
특히 현재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상화 된 방언 형태는 총론적으로 틀렸다고 단정합니다.
이 말은 어느 개인의 어떤 특별한 신앙 발전 과정에서 어떤 특별 인도는 항상 가능하다 말입니다.
(만사 신중)
방언과 관련
현재 우리 나라 교회들이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방언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성경에 기록이 있고 그리고 현재 방언을 직접 또는 주변에서 체험하기 때문에 성경적이라 하는데
성경에 기록된 이상 우리는 누구도 함부로 단정해서 금하는 것도 어렵고 신중해야 하지만
동시에 성경 기록과 현재 현상을 바로 연결시키는 것도 대단히 조심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 나라 교회들의 일반적 방언이 성경의 문자적 기록을 인정하여 정말 방언이라고 한다면
방언을 주장하는 분들은 뱀을 집어들고 무슨 독이라도 마실 수 있는 막16:18을 고려해야 합니다.
방언을 금지하고 비판하는 공회의 정통 교훈은 과연 신중한가? 이렇게 반문이나 이론하신다면
일반 교회나 교인들이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신중하고 역사적이며 현실 파악 연구적입니다.
(이해 요청)
짧은 설교 시간 중에 총론과 예외를 전부 다 설명하다 보면 말씀의 전체 방향을 잃게 됩니다.
설교 내용은 잘 모르겠으나 현대적 방언의 현상에 대한 것이 주제라면 전반적으로 다룰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설교 때마다 모든 사람의 감추인 특별 상황 전부를 다 예로 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현재 한국교회가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방언은 그들 교회의 신학교 교재가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역사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다만 목회 현장에서 알아서 목회자들이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교단 법은 전국의 총회가 이단을 금지하면 지방의 노회와 개교회를 통해 전달됩니다.
상명하복의 법이 엄하기 때문에 방언에 대하여 정통 장로교는 윗글처럼 표현하면 치리 받습니다.
공회는 현재의 방언 형태를 본질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예외적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현재 일반 교회 방언 인식과 행태의 총론을 두고 말한다면 아주 잘못되었다는 입장입니다.
일반 교회는 이런 상황이라면 한 교인이 윗글처럼 발표하면 불법입니다. 허용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회는 일일이 설명할 수 없어 그렇지 얼마든지 개인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다만 그런 개인 주장을 일반화 하거나 평상화 하는 방향이 된다면 그 방향을 반대할 뿐입니다.
공회의 전체 방향과 분위기가 이렇다는 것이 공회는 그 출발 정신에서 항상 전제되어 있으므로
혹시 목회자가 강단에서 '방언이 이단이다!' 이렇게 표현을 한다면
듣는 교인으로서는 그 내용 안에 담긴 공회의 여러 면을 다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그 표현이 자주 나오고 또 여러 사람에게 이런 설명 이상으로 오해가 될 정도라면
이번 윗글처럼 교인 입장에서는 바쁘게 지적해 주셔야 다음에는 고려하고 설교할 것 같습니다.
이번 윗글에 대한 반론으로 이 글을 적는 것이 아니고 이 홈은 완전 공개로 운영되고 있으므로
우리 공회 전체 교인과 방언 관련 설명을 평소 듣고 미리 알고 읽는 분들이 아닌 경우
그리고 방언에 대하여 호의적인 외부 교인이 계신다면 이왕 윗글에서 구체적 설명이 나왔으므로
이곳을 방문하고 읽는 모든 분들을 위해 넓은 범위에서 이해를 구하기 위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 6학년 하나가 라이터를 들고 들판에 나가서 불을 조금 붙이다 끄는 장난을 했습니다.
그 학생은 불의 위험을 알기 때문에 호기심과 장난을 겸해서 잠깐 그렇게 하다 끝을 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1학년 하나가 그것을 보고 주머니에 라이타를 가지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어른은 불을 좋게만 사용하는데 만의 하나 실수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고
6학년 정도면 벌대로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실수할 가능성이 많으므로 엄히 단속을 해야 하고
1학년이 라이타를 가졌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거나 대형화재가 났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공회에 통성기도나 찬송이나 여러 면에서 좀 뜨거움을 가지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너무 반갑습니다. 목회자가 하는 말은 무슨 말이든 설교로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인 중에 스스로 그런 말씀을 하신다면 듣는 사람들에게 주는 자극이 다를 것 같습니다.
말씀의 깨달음이 신앙의 속 불을 일으켜 겉으로는 조용하나 속으로는 순교로 끌어가는 수도 있고
말씀의 깨달음이 우선 눈에 보이는 열심과 불을 붙여 안팎으로 불바다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공회의 전반적 분위기는 첫째 경우는 불과 몇 명이고 둘째 경우는 더러 많이 보이고
대부분 교인은 좋은 길에 섰으나 짜맞춘듯 조용하여 둘째 경우의 분들을 주저앉히는 결과입니다.
말씀 없이 기도나 찬송을 단순히 흥나게 크게 부르다가 그 속에서 속 신앙이 드는 경우도 많고
말씀 없이 기도나 찬송 위주로 나가다 아주 껍데기 신앙되는 경우는 현재 교계 거의 전부입니다.
첫째 경우는 일반 교회의 중진이나 신앙 있는 분들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그 깊이에 한계가 있고
둘째 경우는 일반 교회의 일반 교인 대부분입니다. 교계 목회자들부터 주일이 없어진 정도입니다.
남의 일이어서 급하게 연구하거나 토론하거나 살피지는 못해도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 공회 우리의 현안은
할 수 있는 것부터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통성기도나 찬송생활처럼 당연한 문제는 체질에 맞지 않아도 충성 차원에서 열심히 노력하여
우리 공회 전체 분위기가 기도나 찬송의 외부 모습이 일단 정상화되고 나면
그때 한 두 사람 자기 체질에 따라 소리를 낮추든 묵상을 하든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방언은
그것이 미치는 전체 영향을 고려해서 개별적으로 은밀한 신앙세계에서 한다면 할 정도입니다.
방언으로 한번씩 기도의 불을 일으키는 습관이 들면 나중에는 생각못한 단계가 기다립니다.
만화로 수학이나 역사를 공부하면 아이들의 순간 집중도와 이해력에 큰 도움을 받게 됩니다만
그렇게 하다 어느날 그 아이들의 인생이 하나의 만화에 나오는 코메디가 되고 장난이 되어
사회생활도 국가운명의 결정도 외교도 가정의 부부생활도 하나의 장난수준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삽화를 통해 교육 자체를 원론적으로 말한다면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해서 잘 사용하면 좋지만 공회는 전체적으로 최대한 문자 중심으로 나가자는 운동이고
조심해서 잘 사용한다고 했지만 일반 교계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정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한 쪽은 옳고 한 쪽은 틀렸다고 일도양단으로 단정할 신사참배와 같은 문제가 아니고
언제 어느 면을 조심하며 어느 쪽을 길러가느냐의 운영 기술에 대한 면이 강합니다.
바로 이런 사안에서는 모든 책임이 다 목회자에게 쏟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목회자가 강하게 이끌어 교인에게 불과 힘을 심고 동시에 말씀으로 깊이 들어가게 하면 되겠는데
현재 공회 우리 목회자들은 이런 면에 아주 유약하여 사실 목회자란 위치를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평소 말씀에 깊이를 더하며 그 말씀이 주는 불을 함께 전달했다면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게 되고
우려스러운 면으로 열심이나 뜨거움을 구하게 되는 대화가 아예 나오지 않을 것인데
앞에 있는 목회자들이 공회 목회자답게 제대로 이끌지를 못하므로
개인적으로 하나님 주시는 뜨거운 은혜 역사가 솟구치는 분들과 그런 열심을 사모하는 분들은
각 교회마다 속을 끓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회의 일반적 입장을 가지고 원칙론적 입장에서 일단 정중하게 안내하며 깊은 이해를 구합니다.
이 글은 동천교회의 개별 설교 내용을 모르고 교인과 목회자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