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육체의 목숨과 신령한 목숨
이치영2013-05-11조회 365추천 52
질문1. 육체의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사람의 목숨은 하나뿐입니다.
하나뿐인 목숨이기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것도 한 번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마16:25-26에서 말씀하신 ‘목숨’은 최고 최종을 말씀하신 것이고,
목숨 안에는 물질, 명예, 가정, 지위, 권세 등 목숨 가진 사람이 가지고 있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는다는 말씀은
목숨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와 복음을 버리면 오히려 목숨을 잃는다는 말씀인데,
목숨은 최고 최종을 말하는 것이고 목숨 안에는 가정, 명예, 권세, 재물 등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 모든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 주와 복음을 버리면 결과적으로 가정도 명예도 권세도 재물도 다 잃을 뿐 아니라
결국에는 목숨까지도 다 잃게 된다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반대로, 목숨을 잃는 자는 찾으리라는 말씀은
주와 복음을 위하여 가정 명예 권세 재물 생명을 손해 보면
결과적으로 그 모든 것을 지킬 뿐 아니라 더 많게, 더 크게, 더 가치 있게 가지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목숨을 육체의 목숨으로 해석하셨으니 이 모든 것들은 다 세상에 있는 동안에 가지고 있는 세상 복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주와 복음을 위해서 자신과 가족과 소유를 다 버렸는데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다 얻었고,
롯은 자신과 가족과 재물 때문에 주와 복음을 버렸는데 결과적으로 다 잃었습니다.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주와 복을 위해서 사자굴에 풀무 불에 목숨을 던졌지만 결과적으로 목숨을 구원했습니다.
- 신령한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신령한 목숨을 설명하기 위해 생명과 영생을 먼저 생각해 봅니다.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이고, 영생은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의 활동 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은 살아 있는 그 자체이고, 영생은 살아 있는 생명의 정상적인 활동이라는 말이겠습니다.
물론 생명 그 자체도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그러나 생명과 영생을 구분할 때의 영생은 생명의 정상적인 활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어도 숨만 붙어 있고 활동은 할 수 없는 생명도 있는 것을 우리는 육체의 생명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신령한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신령한 생명이 무엇인가?
생명과 영생으로 구분해서 생각해 보면,
하나는 기본적인 생명 즉 영의 생명과 심신의 형체입니다.
이 생명은 신령한 생명인데 택함 받고 중생된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진 생명입니다.
하나는 이 생명이 활동하게 되는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이 영생하는 생명은 성화된 심신의 기능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능을 생명이라 할 수는 없지만 기능은 생명이 활동하게 만드는 전부입니다.
기능 없는 생명은 아무런 활동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령한 목숨을 잃고 얻는다고 말할 때의 목숨은
곧 신령한 생명이 활동할 수 있는 모든 심신의 기능들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신령한 생명인 영의 생명과 심신의 생명은 이미 영생하는 생명으로 절대 잃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육체의 목숨과 신령한 목숨
육체의 목숨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목숨입니다.
숨이 끊어지면, 심장이 멎으면 끝나는 그 목숨입니다.
성경으로 정의하면 사람의 죽음은 혼이 몸을 떠나는 것이니,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은 혼과 몸이 나뉘지 않고 정상으로 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생명은 위에서 설명 드린 대로 둘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생명은 영의 생명과 심신의 형체이며,
생명이 활동하는 영생하는 생명은 성화된 심신의 기능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기능을 생명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능 없는 생명은 아무런 작용을 못하기 때문에 영생하는 생명은 곧 성화된 심신의 기능이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말하는 것은 생명 가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을 다 포함한 전체를 말하고 최고 최종을 말하는 것이며,
따라서 생명을 잃고 얻는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다 포함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생명이나 신령한 생명이나 생명을 잃거나 얻는 것은 다 세상에서 결정되는 일이며,
다만 결정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육체의 생명은 세상에서 표시가 되고, 신령한 생명은 천국에서 표시된다 할 수 있습니다.
질문2. 이 세상에서는 신령한 목숨은 잃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닌지요?
역시 위에서 설명 드린 내용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육체의 목숨도 신령한 목숨도 잃고 얻는 것이 결정되는 것은 세상 자기 현실 생활에서 결정됩니다.
다만 결정된 그것이 외부로 나타나는 것은 육체의 것은 세상에서, 신령한 것은 천국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기본적인 신령한 목숨은 세상에서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죽을 수 없는 생명입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서 목숨과 그 안에 있는 것을 다 버리면 얻게 되는데,
얻는 것은 세상에서 얻을 때도 있고 세상에서는 얻지 못하고 천국에서 신령한 것으로 얻을 때도 있습니다.
반대로 목숨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 주와 복음을 버리면
육체의 목숨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세상에서도 잃고 신령한 것으로도 다 잃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3. 백 목사님이 설교와 깨달음을 대하는 자세
질문하신 분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백 목사님은 완전자가 아니며 백 목사님의 깨달음이 100% 다 옳은 것도 아닙니다.
백 목사님도 사람이고 따라서 백 목사님의 설교도, 깨달음도, 설교록도 오류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따라서 확실하게 잘못된 것이 있다면 후세대 사람들이 바로 잡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일반 사람들과는 비교하기 곤란할 만큼 옳고 깊고 넓고 옳고 바른 깨달음을 가지셨기 때문에
그 깨달음이나 설교록을 대할 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잘못된 것이라고 쉽게 단정하기는 곤란하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섣불리 오류라 단정하지 말고,
일단 숙제로 두고 오랜 세월 연구하고 기다리며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질문4. 설교록을 대하며 의문되는 내용
제 성경 지식이나 깨달음이 너무 얕고 어리기 때문에
백 목사님의 해석과 달리 생각되는 것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설교록을 대하면서 의문되는 내용들은 더러 있었지만 특별히 기억해 두거나 하지를 않았습니다.
질문을 해 주셨으니 지금이라도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하나뿐입니다.
하나뿐인 목숨이기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것도 한 번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마16:25-26에서 말씀하신 ‘목숨’은 최고 최종을 말씀하신 것이고,
목숨 안에는 물질, 명예, 가정, 지위, 권세 등 목숨 가진 사람이 가지고 있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는다는 말씀은
목숨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와 복음을 버리면 오히려 목숨을 잃는다는 말씀인데,
목숨은 최고 최종을 말하는 것이고 목숨 안에는 가정, 명예, 권세, 재물 등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 모든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 주와 복음을 버리면 결과적으로 가정도 명예도 권세도 재물도 다 잃을 뿐 아니라
결국에는 목숨까지도 다 잃게 된다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반대로, 목숨을 잃는 자는 찾으리라는 말씀은
주와 복음을 위하여 가정 명예 권세 재물 생명을 손해 보면
결과적으로 그 모든 것을 지킬 뿐 아니라 더 많게, 더 크게, 더 가치 있게 가지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목숨을 육체의 목숨으로 해석하셨으니 이 모든 것들은 다 세상에 있는 동안에 가지고 있는 세상 복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주와 복음을 위해서 자신과 가족과 소유를 다 버렸는데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다 얻었고,
롯은 자신과 가족과 재물 때문에 주와 복음을 버렸는데 결과적으로 다 잃었습니다.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주와 복을 위해서 사자굴에 풀무 불에 목숨을 던졌지만 결과적으로 목숨을 구원했습니다.
- 신령한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신령한 목숨을 설명하기 위해 생명과 영생을 먼저 생각해 봅니다.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이고, 영생은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의 활동 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은 살아 있는 그 자체이고, 영생은 살아 있는 생명의 정상적인 활동이라는 말이겠습니다.
물론 생명 그 자체도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그러나 생명과 영생을 구분할 때의 영생은 생명의 정상적인 활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어도 숨만 붙어 있고 활동은 할 수 없는 생명도 있는 것을 우리는 육체의 생명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신령한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신령한 생명이 무엇인가?
생명과 영생으로 구분해서 생각해 보면,
하나는 기본적인 생명 즉 영의 생명과 심신의 형체입니다.
이 생명은 신령한 생명인데 택함 받고 중생된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진 생명입니다.
하나는 이 생명이 활동하게 되는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이 영생하는 생명은 성화된 심신의 기능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능을 생명이라 할 수는 없지만 기능은 생명이 활동하게 만드는 전부입니다.
기능 없는 생명은 아무런 활동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령한 목숨을 잃고 얻는다고 말할 때의 목숨은
곧 신령한 생명이 활동할 수 있는 모든 심신의 기능들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신령한 생명인 영의 생명과 심신의 생명은 이미 영생하는 생명으로 절대 잃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육체의 목숨과 신령한 목숨
육체의 목숨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목숨입니다.
숨이 끊어지면, 심장이 멎으면 끝나는 그 목숨입니다.
성경으로 정의하면 사람의 죽음은 혼이 몸을 떠나는 것이니,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은 혼과 몸이 나뉘지 않고 정상으로 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생명은 위에서 설명 드린 대로 둘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생명은 영의 생명과 심신의 형체이며,
생명이 활동하는 영생하는 생명은 성화된 심신의 기능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기능을 생명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능 없는 생명은 아무런 작용을 못하기 때문에 영생하는 생명은 곧 성화된 심신의 기능이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말하는 것은 생명 가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을 다 포함한 전체를 말하고 최고 최종을 말하는 것이며,
따라서 생명을 잃고 얻는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다 포함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생명이나 신령한 생명이나 생명을 잃거나 얻는 것은 다 세상에서 결정되는 일이며,
다만 결정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육체의 생명은 세상에서 표시가 되고, 신령한 생명은 천국에서 표시된다 할 수 있습니다.
질문2. 이 세상에서는 신령한 목숨은 잃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닌지요?
역시 위에서 설명 드린 내용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육체의 목숨도 신령한 목숨도 잃고 얻는 것이 결정되는 것은 세상 자기 현실 생활에서 결정됩니다.
다만 결정된 그것이 외부로 나타나는 것은 육체의 것은 세상에서, 신령한 것은 천국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기본적인 신령한 목숨은 세상에서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죽을 수 없는 생명입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서 목숨과 그 안에 있는 것을 다 버리면 얻게 되는데,
얻는 것은 세상에서 얻을 때도 있고 세상에서는 얻지 못하고 천국에서 신령한 것으로 얻을 때도 있습니다.
반대로 목숨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 주와 복음을 버리면
육체의 목숨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세상에서도 잃고 신령한 것으로도 다 잃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3. 백 목사님이 설교와 깨달음을 대하는 자세
질문하신 분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백 목사님은 완전자가 아니며 백 목사님의 깨달음이 100% 다 옳은 것도 아닙니다.
백 목사님도 사람이고 따라서 백 목사님의 설교도, 깨달음도, 설교록도 오류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따라서 확실하게 잘못된 것이 있다면 후세대 사람들이 바로 잡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일반 사람들과는 비교하기 곤란할 만큼 옳고 깊고 넓고 옳고 바른 깨달음을 가지셨기 때문에
그 깨달음이나 설교록을 대할 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잘못된 것이라고 쉽게 단정하기는 곤란하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섣불리 오류라 단정하지 말고,
일단 숙제로 두고 오랜 세월 연구하고 기다리며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질문4. 설교록을 대하며 의문되는 내용
제 성경 지식이나 깨달음이 너무 얕고 어리기 때문에
백 목사님의 해석과 달리 생각되는 것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설교록을 대하면서 의문되는 내용들은 더러 있었지만 특별히 기억해 두거나 하지를 않았습니다.
질문을 해 주셨으니 지금이라도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