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번 집회 설교록 261 페이지
교인2013-05-11조회 421추천 56
금번 집회 설교록 261 페이지
마태복음16:25-26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태복음 16:25-26 말씀에서 목숨을
백목사님이 과거에는 25절을 육신의 목숨으로
26절은 신령한 목숨으로 그렇게 생각을 했고 가르쳤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11절부터 말씀하신 내용을 인용해 보면
"나도 그전에 그렇게 생각했어 생각했는데 이제, 내가 그것 잘못 가르쳤어요. 지금 이제 고쳤습니다."
25절이하~ "저는 25절 생명과 26절 생명이 다 육체의 생명을 가리킴이라 그렇게 지금 확정을 지었습니다."
질문1.
육체의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질문자가 생각해 본 육체의 목숨이란? 마음의 목숨+몸의 목숨
좋은의미의 목숨- 주를 위하여 마음과 소유를 구원사업에 쓰는 것은 25절에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의 그 목숨
나쁜의미의 목숨- 26절의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의 그 목숨은
마음이 마귀에게 빼앗겨 자기가 가진 소유와 자본을 천국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쓸데없는 데 허비하는 것?
신령한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질문자가 생각해 본 신령한 목숨이란?
신령한 목숨은 잃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주를 위하여 육체의 목숨을 잃으면 천국에서 하나님이 신령한 목숨으로 갚아주시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신령한 목숨이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이 내게 갚아 주시는 영생의 목숨?
육체의 목숨과 신령한 목숨에 대한 바른 정의를 내려 주셨으면 합니다.
마태복음16:25-26
누구든지 제 (육체의?)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무엇을 어디서 잃는다는 것인지? 이 세상에서 잃는다는 건지?, 천국에서 잃는다는 건지?)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육체의?)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무엇을 찾는다는 건지? 육체의 목숨을 찾는다는 것인지, 신령한 목숨을 찾는다는 건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육체의?)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육체의?)목숨을 바꾸겠느냐
질문2.
이 세상에서는 신령한 목숨은 잃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닌지요?
가령 이 세상에서 육체(심신)의 목숨을 잃으면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신령한 목숨으로 갚아 주신다는 이 생각이 틀렸고
이 세상에서 신령한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면 어떤 경우가 그런지 이해하기 쉽도록 실생활의 예를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질문3.
집회가 끝나면 간혹 의문이 남습니다.
대부분은 몰라서 또 이해를 못해서 그런 경우지만, 간혹 백목사님 설교와 다른 방향으로 깨달아지는 부분도 아주 드물게 있습니다.
이번처럼 만약 백목사님이 "잘못 가르쳤어요. 지금 이제 고쳤습니다"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계속 마태복음16:25-26절을 육체의 목숨과 신령한 목숨으로 나누어서 해석했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조심스런 말씀이나 백목사님이 이번 경우처럼 잘못 말씀하신 부분이 있는데 수정하지 못하신 부분이 있다면
후세대 사람들이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설교록을 대하는 바른 마음가짐은 "맞다"고 생각하고 파고드는 것이 배우는 자의 바른 자세라 생각합니다.
다만 무한을 향해 자라가는 성장성과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구별성의 측면에서 볼 때
달리 생각되거나 깨달아질 때는 그래도 백목사님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기본 바탕으로 깔고 설교록을 대해야겠지만
아주 드물게 한번쯤은 백목사님이 말씀하신 "잘못 가르쳤다 지금 고친다"는 그 작업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직접해야 할 때도 이번 경우처럼 아주 희박하게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봅니다.
이 논리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99.99%는 맞다는 자세로 0.01%는 의문을 갖는 자세로 (내가 옳다고 따지는 자세가 아닌 배우려는 태도로) 접근한다면
백목사님 사후에 설교록을 자기의 것으로 완전히 소화하지 못한 3분의 2이상이 다른 진영으로 이탈되는 것은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0.01%의 의문을 갖는 자세로 자기 검증의 과정을 거쳐서 한단계 한단계 차근차근 밟아서 다져 나가야... 초절이 아닌 초월 신앙이 되리라 봅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나고 난 다음에 질문이 있다는 것은 좋은 현상 같습니다.
질문4.
목사님께서는 설교록을 대하시면서 지금까지 의문되거나 백목사님의 해석과 달리 생각되어져서 숙제로 남겨두신 부분이 있으신지요?
있다면 하나만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마태복음16:25-26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태복음 16:25-26 말씀에서 목숨을
백목사님이 과거에는 25절을 육신의 목숨으로
26절은 신령한 목숨으로 그렇게 생각을 했고 가르쳤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11절부터 말씀하신 내용을 인용해 보면
"나도 그전에 그렇게 생각했어 생각했는데 이제, 내가 그것 잘못 가르쳤어요. 지금 이제 고쳤습니다."
25절이하~ "저는 25절 생명과 26절 생명이 다 육체의 생명을 가리킴이라 그렇게 지금 확정을 지었습니다."
질문1.
육체의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질문자가 생각해 본 육체의 목숨이란? 마음의 목숨+몸의 목숨
좋은의미의 목숨- 주를 위하여 마음과 소유를 구원사업에 쓰는 것은 25절에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의 그 목숨
나쁜의미의 목숨- 26절의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의 그 목숨은
마음이 마귀에게 빼앗겨 자기가 가진 소유와 자본을 천국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쓸데없는 데 허비하는 것?
신령한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질문자가 생각해 본 신령한 목숨이란?
신령한 목숨은 잃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주를 위하여 육체의 목숨을 잃으면 천국에서 하나님이 신령한 목숨으로 갚아주시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신령한 목숨이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이 내게 갚아 주시는 영생의 목숨?
육체의 목숨과 신령한 목숨에 대한 바른 정의를 내려 주셨으면 합니다.
마태복음16:25-26
누구든지 제 (육체의?)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무엇을 어디서 잃는다는 것인지? 이 세상에서 잃는다는 건지?, 천국에서 잃는다는 건지?)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육체의?)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무엇을 찾는다는 건지? 육체의 목숨을 찾는다는 것인지, 신령한 목숨을 찾는다는 건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육체의?)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육체의?)목숨을 바꾸겠느냐
질문2.
이 세상에서는 신령한 목숨은 잃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닌지요?
가령 이 세상에서 육체(심신)의 목숨을 잃으면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신령한 목숨으로 갚아 주신다는 이 생각이 틀렸고
이 세상에서 신령한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면 어떤 경우가 그런지 이해하기 쉽도록 실생활의 예를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질문3.
집회가 끝나면 간혹 의문이 남습니다.
대부분은 몰라서 또 이해를 못해서 그런 경우지만, 간혹 백목사님 설교와 다른 방향으로 깨달아지는 부분도 아주 드물게 있습니다.
이번처럼 만약 백목사님이 "잘못 가르쳤어요. 지금 이제 고쳤습니다"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계속 마태복음16:25-26절을 육체의 목숨과 신령한 목숨으로 나누어서 해석했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조심스런 말씀이나 백목사님이 이번 경우처럼 잘못 말씀하신 부분이 있는데 수정하지 못하신 부분이 있다면
후세대 사람들이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설교록을 대하는 바른 마음가짐은 "맞다"고 생각하고 파고드는 것이 배우는 자의 바른 자세라 생각합니다.
다만 무한을 향해 자라가는 성장성과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구별성의 측면에서 볼 때
달리 생각되거나 깨달아질 때는 그래도 백목사님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기본 바탕으로 깔고 설교록을 대해야겠지만
아주 드물게 한번쯤은 백목사님이 말씀하신 "잘못 가르쳤다 지금 고친다"는 그 작업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직접해야 할 때도 이번 경우처럼 아주 희박하게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봅니다.
이 논리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99.99%는 맞다는 자세로 0.01%는 의문을 갖는 자세로 (내가 옳다고 따지는 자세가 아닌 배우려는 태도로) 접근한다면
백목사님 사후에 설교록을 자기의 것으로 완전히 소화하지 못한 3분의 2이상이 다른 진영으로 이탈되는 것은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0.01%의 의문을 갖는 자세로 자기 검증의 과정을 거쳐서 한단계 한단계 차근차근 밟아서 다져 나가야... 초절이 아닌 초월 신앙이 되리라 봅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나고 난 다음에 질문이 있다는 것은 좋은 현상 같습니다.
질문4.
목사님께서는 설교록을 대하시면서 지금까지 의문되거나 백목사님의 해석과 달리 생각되어져서 숙제로 남겨두신 부분이 있으신지요?
있다면 하나만 소개해 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