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이혼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치영2013-03-18조회 272추천 42
1. 이혼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조를 지키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이것이 무너졌다면 이미 부부로서의 생명은 끝이 난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질 일이고 앞이 캄캄하며 살 희망이 끊어질 만한 일입니다.
세상에는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너무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았던 일들이 내게 닥칠 때 우리는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냉정하게 말씀으로 모든 현실을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속성은 자유성입니다.
사람에게 자유성을 주신 하나님은 사람에게 강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도 사람에게 강제하지 않으시니 사람은 더욱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교역자는 목회자라야 하고, 목회자는 모든 교인들의 형편을 책임져야 합니다.
교인들의 형편을 책임지려면 교인들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교인들이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단히 어려운 말이고 어려운 일이지만 만약에 순종하는 교인이 질문하신 내용으로 상담을 한다면?
할 수만 있다면 이혼은 막을 것 같습니다.
이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면,
죽어도 상대방이 같이 살 수 없다면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서 같이 살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결혼은 상대가 있어야 되니 나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가 아니면 이혼은 막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인용하신 성구에서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신 말씀은 이혼을 금하신 명령입니다.
음행의 연고가 있을 때 이혼을 허락하신 것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허락했지만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음행의 연고가 있어 굳이 이혼하려 한다면 막을 수는 없지만
부부가 나누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금하신 명령이므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씀입니다.
부부가 성경적으로 바로 되어 있다면 부부는 한 몸입니다.
이혼은 부부가 나누어지는 것이니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몸이 반으로 갈라지면 그 몸은 살 수 없습니다. 살아도 온전히 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부부가 나누어지는 것은 하나가 되어야만 이룰 수 있는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부는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정해 두신 자기 짝입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하나뿐인 자기의 베필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베필이니 그보다 나은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비록 한 쪽이 정조를 버렸다 할지라도
그리 되기 전까지 정상적인 부부였다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기가 막혀도
자기에게 있어서 그 사람은 하나님이 정해 두신 가장 좋은 베필입니다.
충분히 이혼할 수 있는 원인이 되고 성경적으로도 할 수 있는 경우지만
결과적으로 그보다 나은 사람을 다시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잘못의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부부로서 상대방이 정조를 버렸다면 이는 100% 상대방의 잘못인 줄 압니다.
그러나 큰 오판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것은 세상에서도 통계입니다.
부부 중에 한 쪽이 잘못을 했다면 남은 한쪽에도 잘못이 반드시 있습니다.
한 쪽이 바람을 피웠으면 다른 한 쪽은 그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100% 전부 다 그렇다 할 수는 없으나 99% 이상이 그럴 것입니다.
따라서 바람을 피웠으니 이혼할 수 있다는, 이혼해야 한다는 것은 일방적이기 쉽습니다.
부부는 상호보완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합하여 온전한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만나기 전에 알지 못했던 단점들을
두 사람의 만남으로 알게 되고 고칠 수 있게 되는 것이 부부입니다.
두 사람이 만나기 전에 알지 못했던 부족한 점들을
두 사람의 만남으로 알게 되고 채울 수 있게 되는 것이 부부입니다.
두 사람이 만남으로 온전한 사람을 만들어 가게 되는 것이 부부입니다.
그 아내라야만 알 수 있는 나의 단점, 부족점, 고칠 점은
그 아내가 아니면 알 수도 고칠 수도 없습니다. 반드시 그 사람이라야 합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든지 두 사람이 갈라지게 되면 이러한 면들은 다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상대방이 바람을 피웠어도 가능하면 이혼은 막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이혼을 하면 안 되는 이유는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2. 재혼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8)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전7:1-2)
아담에게 하와를 주신 이유는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아내와 남편을 두게 하신 이유는 음행의 연고라 하셨습니다.
사별의 경우는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혼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실족케 일이 없을 수는 없다 하신 말씀처럼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으나 피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원인이 어떻게 되었든 혼자 남게 되었다면
가능하면 빨리 재혼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셨듯이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사람 사도 바울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결혼도 재혼도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주님 한 분만 바라보고 평생을 복음으로 달리면 가장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말 그대로 참으로 특별한 경우입니다.
일반 사람이 특별한 사람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일반 사람이라면 혼자 살기는 어렵습니다.
사람이 독처하면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이며,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조를 지키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이것이 무너졌다면 이미 부부로서의 생명은 끝이 난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질 일이고 앞이 캄캄하며 살 희망이 끊어질 만한 일입니다.
세상에는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너무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았던 일들이 내게 닥칠 때 우리는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냉정하게 말씀으로 모든 현실을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속성은 자유성입니다.
사람에게 자유성을 주신 하나님은 사람에게 강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도 사람에게 강제하지 않으시니 사람은 더욱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교역자는 목회자라야 하고, 목회자는 모든 교인들의 형편을 책임져야 합니다.
교인들의 형편을 책임지려면 교인들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교인들이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단히 어려운 말이고 어려운 일이지만 만약에 순종하는 교인이 질문하신 내용으로 상담을 한다면?
할 수만 있다면 이혼은 막을 것 같습니다.
이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면,
죽어도 상대방이 같이 살 수 없다면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서 같이 살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결혼은 상대가 있어야 되니 나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가 아니면 이혼은 막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인용하신 성구에서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신 말씀은 이혼을 금하신 명령입니다.
음행의 연고가 있을 때 이혼을 허락하신 것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허락했지만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음행의 연고가 있어 굳이 이혼하려 한다면 막을 수는 없지만
부부가 나누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금하신 명령이므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씀입니다.
부부가 성경적으로 바로 되어 있다면 부부는 한 몸입니다.
이혼은 부부가 나누어지는 것이니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몸이 반으로 갈라지면 그 몸은 살 수 없습니다. 살아도 온전히 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부부가 나누어지는 것은 하나가 되어야만 이룰 수 있는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부는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정해 두신 자기 짝입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하나뿐인 자기의 베필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베필이니 그보다 나은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비록 한 쪽이 정조를 버렸다 할지라도
그리 되기 전까지 정상적인 부부였다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기가 막혀도
자기에게 있어서 그 사람은 하나님이 정해 두신 가장 좋은 베필입니다.
충분히 이혼할 수 있는 원인이 되고 성경적으로도 할 수 있는 경우지만
결과적으로 그보다 나은 사람을 다시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잘못의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부부로서 상대방이 정조를 버렸다면 이는 100% 상대방의 잘못인 줄 압니다.
그러나 큰 오판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것은 세상에서도 통계입니다.
부부 중에 한 쪽이 잘못을 했다면 남은 한쪽에도 잘못이 반드시 있습니다.
한 쪽이 바람을 피웠으면 다른 한 쪽은 그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100% 전부 다 그렇다 할 수는 없으나 99% 이상이 그럴 것입니다.
따라서 바람을 피웠으니 이혼할 수 있다는, 이혼해야 한다는 것은 일방적이기 쉽습니다.
부부는 상호보완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합하여 온전한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만나기 전에 알지 못했던 단점들을
두 사람의 만남으로 알게 되고 고칠 수 있게 되는 것이 부부입니다.
두 사람이 만나기 전에 알지 못했던 부족한 점들을
두 사람의 만남으로 알게 되고 채울 수 있게 되는 것이 부부입니다.
두 사람이 만남으로 온전한 사람을 만들어 가게 되는 것이 부부입니다.
그 아내라야만 알 수 있는 나의 단점, 부족점, 고칠 점은
그 아내가 아니면 알 수도 고칠 수도 없습니다. 반드시 그 사람이라야 합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든지 두 사람이 갈라지게 되면 이러한 면들은 다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상대방이 바람을 피웠어도 가능하면 이혼은 막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이혼을 하면 안 되는 이유는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2. 재혼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8)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전7:1-2)
아담에게 하와를 주신 이유는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아내와 남편을 두게 하신 이유는 음행의 연고라 하셨습니다.
사별의 경우는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혼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실족케 일이 없을 수는 없다 하신 말씀처럼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으나 피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원인이 어떻게 되었든 혼자 남게 되었다면
가능하면 빨리 재혼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셨듯이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사람 사도 바울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결혼도 재혼도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주님 한 분만 바라보고 평생을 복음으로 달리면 가장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말 그대로 참으로 특별한 경우입니다.
일반 사람이 특별한 사람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일반 사람이라면 혼자 살기는 어렵습니다.
사람이 독처하면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이며,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