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치영2013-03-18조회 561추천 62
환난은 인내를 만듭니다.
인내는 연단을 만듭니다.
연단은 소망을 이룹니다.
소망을 가지시라는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할 수만 있으면 고난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괜찮으시면 전화나 메일로 연락 주시면 도움될 방법을 찾아 보겠습니다.
(010.2850.3020 / pkcylee@hanmail.net)
힘이 될 만한 성구를 몇 군데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약5:10-11)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우리 구원은 자기를 바꾸는 것입니다.
자기를 바꾸기 위한 모든 노력이 신앙생활입니다.
자기를 바꾸면 자기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바뀌게 됩니다.
이것은 어려움을 만났을 때도 예외가 아닙니다.
현재 만난 어려움이 어떤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어려움을 대하는 나 자신의 인식, 생각, 마음가짐에 따라
현재 만난 어려움을 대처하는 모습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의 습성은 고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말 그대로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쉽지 않으나 순간이라도 바꾸려면 바꿀 수 있는 것이 마음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뜻하지 않게 큰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그 어려움을 자신이 원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려움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원치 않게 오게 됩니다.
어려움을 해결해야 하겠습니다.
해결만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어려운 이유는 쉽게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해결의 길을 찾아봐야 합니다.
해결의 길이 쉽지 않습니다.
해결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생각을 달리 해야 합니다.
해결되지 않는 일은 붙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고통만 더해집니다.
물병에 물이 반이 들어 있습니다.
'겨우 반밖에 안 남았네' 하는 사람이 있고
'아직 반이나 남아 있네'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같은 일을 두고 두 사람의 시각은 정반대입니다.
한 사람은 부정적이고, 한 사람은 긍정적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마음에 근심과 염려가 있을 것이고
긍정적인 사람은 마음에 평안과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당면한 어려움은 해결의 길을 찾아 봐야 합니다.
동시에 그 어려움을 대하는 생각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어려움을 어렵다고만 생각하고 힘들다고만 생각하면 점점 더 힘들어집니다.
세상 말에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오래 산 사람들의 경험에서 나오는 말일 것입니다.
모든 어려움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와 닿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믿는 사람이 할일은 '말씀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만드시는 분은 주님!
내 어려운 현실을 만들어 주신 분도 주님!
나를 사랑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기까지 하신 주님!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전지하신 주님!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전능하신 주님!
내게 필요 없는 현실은 단 하나도 주지 아니하시는 주님!
내게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현실만 만들어 주시는 주님!
이러한 주님께서 이런 어려운 현실을 내게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을 가르치시려는 것일까?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무엇을 고치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무슨 연습을 하게 하시려는 것일까?
무슨 연단을 하게 하시려는 것일까?
무슨 부족함을 채우려 하시는 것일까?
이 어려움을 주신 주님의 뜻이 무엇일까?
참으로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모든 현실은 지나가는 한 과정입니다.
모든 어려움은 지나가는 한 과정일 뿐입니다.
천하의 그 어떤 어려움도 지나가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영원한 어려움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어려움을 어렵다고, 힘들다고 원망 불평 짜증을 내며 울며 지나갈 수도 있고
어렵지만 말씀을 생각하며 어려움 주신 주님의 뜻을 찾고 생각하며 웃으며 지날 수도 있습니다.
고통스럽지만 이래도 지나가고 저래도 지나갑니다. 어려움을 대처하는 모습에 따라 결과는 정반대로 달라집니다.
환난은 인내를 만들고, 인내는 연단을 만들며, 연단은 소망을 이룹니다.
욥의 신앙이 귀한 것은 환난을 만났기 때문이며 그 환난을 인내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신앙이 귀한 것은 수많은 환난을 만났기 때문이며, 그 환난들을 믿음으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움 만나는 것을 싫어합니다.
기독교는 고행주의가 아니니 환난을 자취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환난을 만나지 않고 평안한 가운데 구원을 이루어 가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은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세상 만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이시며
그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를 세상 사는 동안 귀하게 아릅답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세상을 운영하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현실을 만들어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어려움은 이 일에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될 순서들이며 과정이라는 것이 성경입니다.
인내는 연단을 만듭니다.
연단은 소망을 이룹니다.
소망을 가지시라는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할 수만 있으면 고난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괜찮으시면 전화나 메일로 연락 주시면 도움될 방법을 찾아 보겠습니다.
(010.2850.3020 / pkcylee@hanmail.net)
힘이 될 만한 성구를 몇 군데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약5:10-11)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우리 구원은 자기를 바꾸는 것입니다.
자기를 바꾸기 위한 모든 노력이 신앙생활입니다.
자기를 바꾸면 자기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바뀌게 됩니다.
이것은 어려움을 만났을 때도 예외가 아닙니다.
현재 만난 어려움이 어떤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어려움을 대하는 나 자신의 인식, 생각, 마음가짐에 따라
현재 만난 어려움을 대처하는 모습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의 습성은 고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말 그대로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쉽지 않으나 순간이라도 바꾸려면 바꿀 수 있는 것이 마음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뜻하지 않게 큰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그 어려움을 자신이 원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려움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원치 않게 오게 됩니다.
어려움을 해결해야 하겠습니다.
해결만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어려운 이유는 쉽게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해결의 길을 찾아봐야 합니다.
해결의 길이 쉽지 않습니다.
해결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생각을 달리 해야 합니다.
해결되지 않는 일은 붙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고통만 더해집니다.
물병에 물이 반이 들어 있습니다.
'겨우 반밖에 안 남았네' 하는 사람이 있고
'아직 반이나 남아 있네'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같은 일을 두고 두 사람의 시각은 정반대입니다.
한 사람은 부정적이고, 한 사람은 긍정적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마음에 근심과 염려가 있을 것이고
긍정적인 사람은 마음에 평안과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당면한 어려움은 해결의 길을 찾아 봐야 합니다.
동시에 그 어려움을 대하는 생각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어려움을 어렵다고만 생각하고 힘들다고만 생각하면 점점 더 힘들어집니다.
세상 말에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오래 산 사람들의 경험에서 나오는 말일 것입니다.
모든 어려움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와 닿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믿는 사람이 할일은 '말씀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만드시는 분은 주님!
내 어려운 현실을 만들어 주신 분도 주님!
나를 사랑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기까지 하신 주님!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전지하신 주님!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전능하신 주님!
내게 필요 없는 현실은 단 하나도 주지 아니하시는 주님!
내게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현실만 만들어 주시는 주님!
이러한 주님께서 이런 어려운 현실을 내게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을 가르치시려는 것일까?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무엇을 고치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무슨 연습을 하게 하시려는 것일까?
무슨 연단을 하게 하시려는 것일까?
무슨 부족함을 채우려 하시는 것일까?
이 어려움을 주신 주님의 뜻이 무엇일까?
참으로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모든 현실은 지나가는 한 과정입니다.
모든 어려움은 지나가는 한 과정일 뿐입니다.
천하의 그 어떤 어려움도 지나가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영원한 어려움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어려움을 어렵다고, 힘들다고 원망 불평 짜증을 내며 울며 지나갈 수도 있고
어렵지만 말씀을 생각하며 어려움 주신 주님의 뜻을 찾고 생각하며 웃으며 지날 수도 있습니다.
고통스럽지만 이래도 지나가고 저래도 지나갑니다. 어려움을 대처하는 모습에 따라 결과는 정반대로 달라집니다.
환난은 인내를 만들고, 인내는 연단을 만들며, 연단은 소망을 이룹니다.
욥의 신앙이 귀한 것은 환난을 만났기 때문이며 그 환난을 인내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신앙이 귀한 것은 수많은 환난을 만났기 때문이며, 그 환난들을 믿음으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움 만나는 것을 싫어합니다.
기독교는 고행주의가 아니니 환난을 자취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환난을 만나지 않고 평안한 가운데 구원을 이루어 가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은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세상 만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이시며
그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를 세상 사는 동안 귀하게 아릅답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세상을 운영하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현실을 만들어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어려움은 이 일에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될 순서들이며 과정이라는 것이 성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