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하나님 두려움, 하나님 사랑
이치영2013-01-29조회 270추천 45
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두렵다는 말은 무섭다는 말입니다.
두려워한다는 말은 무서워한다는 말입니다.
요즘은 조금 변한 것 같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에 간 청년들이 첫 휴가를 나오면
하나같이 모두 군기가 바짝 들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말투도 달라지고 사람 대하는 모습이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군대 상관이 무섭고 군기가 무섭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등병이 중대장이나 대대장과 같이 식사를 한다면
숟가락질도 제대로 못하고 먹은 음식 소화가 제대로 안 될 것 같습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무섭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예를 들면 저렇게 무서워하는 것이고
저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두려워하는 것이 정상인데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에 입사 면접을 보게 되면
면접관들 앞에 서면 떨려서 어지간히 연습했던 것도 다 잊어버리고 만다고 합니다.
떨리는 것은 잘못하여 면접에서 떨어질까 싶어 두렵기 때문입니다.
옛날 임금님이 있는 시절에 임금님을 알현할 때는
입구에서부터 허리를 완전히 숙이고 가까이 가서는 얼굴을 바닥에 대고 엎드려야 합니다.
감히 고개를 함부로 들다가는 목이 달아납니다.
임금님이 무슨 말을 하든지 듣고 있어야지 토를 달다가는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날 수 있습니다.
모든 백성과 신하들은 임금님을 하늘처럼 두려워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만큼만 두려워해도 천하에 둘도 없는 의인이 되고 성자 성녀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알기를 너무 쉽게 알고 우습게 압니다.
'거석이 홍안'이라는 말이 설교록에 가끔 나옵니다.
돌을 들어야 얼굴이 붉어진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돌을 들면 얼굴이 붉어진다는 뜻으로도 쓸 수 있는 말이겠습니다.
무엇인가를, 누구인가를 두려워하면
두려운 마음의 그 표시가 얼굴과 언행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하나님으로 알고 믿는다면
감히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도 없을 것이고
하나님을 상대하는 기도나 예배가 주눅이 들어서 제대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입도 함부로 벙긋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렇게 하나님을 임금님처럼, 그 이상으로 겁을 내면서
천상 천하 그 누구 앞에서 하는 것보다 가장 극도로 조심을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 사랑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둘째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보는 바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여 말씀대로 사는 생활이 하나님 사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복음입니다.
복음이란 복된 소리, 복이 되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지켜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으면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됩니다.
우리가 복 받아 하나님께 기쁨 되고 영광되는 것이 하나님이 소원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이것이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자녀가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은 부모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자녀의 모습은 부모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효도이며 부모님을 사랑하는 가장 큰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가장 원하는 또 하나는 형제간의 화목입니다.
형제끼리 불목하면 그 어떤 것을 부모님께 해 드려도 늘 걱정거리입니다.
믿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치 아니하면 하나님께 큰 근심거리가 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근심을 들어 드리는 큰 하나님 사랑이 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 두 가지 생활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중요한 생활입니다.
두렵다는 말은 무섭다는 말입니다.
두려워한다는 말은 무서워한다는 말입니다.
요즘은 조금 변한 것 같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에 간 청년들이 첫 휴가를 나오면
하나같이 모두 군기가 바짝 들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말투도 달라지고 사람 대하는 모습이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군대 상관이 무섭고 군기가 무섭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등병이 중대장이나 대대장과 같이 식사를 한다면
숟가락질도 제대로 못하고 먹은 음식 소화가 제대로 안 될 것 같습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무섭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예를 들면 저렇게 무서워하는 것이고
저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두려워하는 것이 정상인데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에 입사 면접을 보게 되면
면접관들 앞에 서면 떨려서 어지간히 연습했던 것도 다 잊어버리고 만다고 합니다.
떨리는 것은 잘못하여 면접에서 떨어질까 싶어 두렵기 때문입니다.
옛날 임금님이 있는 시절에 임금님을 알현할 때는
입구에서부터 허리를 완전히 숙이고 가까이 가서는 얼굴을 바닥에 대고 엎드려야 합니다.
감히 고개를 함부로 들다가는 목이 달아납니다.
임금님이 무슨 말을 하든지 듣고 있어야지 토를 달다가는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날 수 있습니다.
모든 백성과 신하들은 임금님을 하늘처럼 두려워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만큼만 두려워해도 천하에 둘도 없는 의인이 되고 성자 성녀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알기를 너무 쉽게 알고 우습게 압니다.
'거석이 홍안'이라는 말이 설교록에 가끔 나옵니다.
돌을 들어야 얼굴이 붉어진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돌을 들면 얼굴이 붉어진다는 뜻으로도 쓸 수 있는 말이겠습니다.
무엇인가를, 누구인가를 두려워하면
두려운 마음의 그 표시가 얼굴과 언행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하나님으로 알고 믿는다면
감히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도 없을 것이고
하나님을 상대하는 기도나 예배가 주눅이 들어서 제대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입도 함부로 벙긋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렇게 하나님을 임금님처럼, 그 이상으로 겁을 내면서
천상 천하 그 누구 앞에서 하는 것보다 가장 극도로 조심을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 사랑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둘째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보는 바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여 말씀대로 사는 생활이 하나님 사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복음입니다.
복음이란 복된 소리, 복이 되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지켜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으면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됩니다.
우리가 복 받아 하나님께 기쁨 되고 영광되는 것이 하나님이 소원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이것이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자녀가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은 부모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자녀의 모습은 부모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효도이며 부모님을 사랑하는 가장 큰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가장 원하는 또 하나는 형제간의 화목입니다.
형제끼리 불목하면 그 어떤 것을 부모님께 해 드려도 늘 걱정거리입니다.
믿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치 아니하면 하나님께 큰 근심거리가 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근심을 들어 드리는 큰 하나님 사랑이 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 두 가지 생활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중요한 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