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질문에 대한 의견....
반사2009-09-18조회 518추천 102
질문자께서 이런 의문을 제기 해주시므로 많은 생각과 자신을 돌아 보게 해주심에 우선 감사 드립니다.
지극히 제 개인적인 답변이 될수 있으므로 잘못된면은 이 글들을 읽으시는 분들이 보시고. 지적 해 주셨으면 합니다.
1.사람에게 병이오고 몸이 아파서 힘든 경우.
1)그 사람의 입장이 아닌 이상에야 결코 이해 할 수가 없을 것 입니다.
암병 걸린사람의 고통을, 팔이없는 사람의 고통을, 눈이 안보이는 사람의 고통을.
정상인 사람은 결코 이해 할수 없습니다.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생각해볼 필요는 꼭 있다고 봅니다
2)욥의 경우를 생각 해 보셨으면 합니다.
욥의 재산을 거두어 가신것도
욥의 자녀를 거두어 가신것도
욥의 건강을 거두어 가신것도.
욥 속의 하나님을 원망할수 있는 그 요소 하나 뽑아서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과정이 었습니다. 이 경우를 생각해 보셨으면...
3)세상사람들의 이치.
옛날에 중국의 어느 한 노인이 말을 기르고 있었는데 그 말이
어느날 마굿간을 뛰쳐나가 온데간데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날리가 났는데 할아버지만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더랍니다.
그리고 얼마후 그말이 짝을 찾아 돌아 왔더랍니다. 주위사람들은 당연히 부러워 했는데.
그 노인은 또 아무런 변화가 없더랍니다.
또 얼마후 그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그만 다리가 불구가 되었습니다.
주위사람들은 안됬다고 마구 야단이 났는데. 그 노인은 또 변화가 없더랍니다.
얼마후 전쟁이 나서 마을의 모든 젊은 사람이 다 전쟁터로 끌려가는데.
그 노인의 아들만 남겨 졌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그 노인이 웃었다고 합니다.
4)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들.
세상의 이치에도 자기의 어려움에 당장 불평만 가지고 대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좋은 것만 주실텐데...
아버지의 사랑을 다 이해 할 수도 없는 우리가 불평부터 한다는 것은 조금 무리라고 생각이 되어 집니다.
물론 답변자도 실감적으로는 많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2.불택자들에 대한 우리의 자세.
1) 구속받은 자로써의 감사.
아무리 사람이 사람을 위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보이면
천국갈 사람이 지옥갈 사람 대신할 경우는 없을 것 입니다.
마지막에 가보니 불택자는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 쓰여진 수많은 비료들이 입니다.
농부가 알곡을 바라고 알곡을 위해 비료를 뿌리는 것 처럼....
그래서 알곡된 자라면 감사만이 우리의 자세 입니다.
2) 택자와 불택자를 구별 할 수 없는 세상
우리는 누가 택자인지 누가 불택 자인지 죽기전에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북한이 내일이라도 통일되어 복음이 들어 갈 수도 있고
절대 어버이 수령을 외치는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외칠수도 있습니다.
3)불택자가 지옥에서 하나님의 예정을 언급하며 끝까지항변 한다면.
마지막에는 힘의 논리가 나올수 있습니다.
일개 백성이 왕 앞에서 왕에게 자꾸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면
그 왕은 숙청을 해버리지 그냥 두지 않습니다. 끝까지 항변 하려면
왕보다 힘이 쌔거나 권력을 잡던가 해야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보다 강할수도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을 할 수도 없습니다.
항변 하면은 깨지는 것만 있기 때문입니다.
3.예정과 구원에 대해 자꾸 알아야 하는 이유.
1) 위대한 신앙의 선진들을 봄으로.
그들은 정말 하나님의 예정과 구원이
뼈에 사무치게 믿어졌던 분들입니다.
그랬던 분들도 누가 불택자 인지는 알지 못하지만.형제가 죽어 가는 모습을 볼수가 없기에...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그런 뼈에 사무치는 안타까움으로
공산군에게도 전했고 일본군들에게도 전했던 것 입니다.
2) 우리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
우리의 최종으로 닮을자는 하나님이지만 너무 아득하고 멀어서
그 중간의 높이로 믿음의 선진을 닮아 가라고 주셨습니다.
3)아는 만큼 실감을 가질 수 있기에...
어느 정도로 목적구원과 절대예정에 대한 느낌을 가진지는 수치로 나타 낼수 없습니다.
하지만 학생이 수학문제를 잘 풀려면 공식을 많이 알아야 하듯이
우리도 믿음의 선진들 같은 확신을 가지려면 많이 알아야 하고 또 아는 그만큼 힘을써서
자라갈수 있는 가능성을 가질수 있습니다.그래서 실질적 실감적인 것이 부족하지만
우리는 구원과 예정에 대해 말씀을 자꾸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목적구원과 절대예정의 무게를 생각하기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현실 우리의 마음에 맞는 그런 현실을 주실때는
하나님의 예정에대한 감사나 기쁨은 온대 간대 없고 자기만 남아 있다가.....
힘들고 어려울때만 하나님의 절대 예정이라는 자기만의 도피처를 만들고 있는 우리는 아닌지
먼저 생각을 해봐야 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워 지는 만큼 절대예정과 목적구원의 무게가 느껴질 것 입니다.
지극히 제 개인적인 답변이 될수 있으므로 잘못된면은 이 글들을 읽으시는 분들이 보시고. 지적 해 주셨으면 합니다.
1.사람에게 병이오고 몸이 아파서 힘든 경우.
1)그 사람의 입장이 아닌 이상에야 결코 이해 할 수가 없을 것 입니다.
암병 걸린사람의 고통을, 팔이없는 사람의 고통을, 눈이 안보이는 사람의 고통을.
정상인 사람은 결코 이해 할수 없습니다.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생각해볼 필요는 꼭 있다고 봅니다
2)욥의 경우를 생각 해 보셨으면 합니다.
욥의 재산을 거두어 가신것도
욥의 자녀를 거두어 가신것도
욥의 건강을 거두어 가신것도.
욥 속의 하나님을 원망할수 있는 그 요소 하나 뽑아서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과정이 었습니다. 이 경우를 생각해 보셨으면...
3)세상사람들의 이치.
옛날에 중국의 어느 한 노인이 말을 기르고 있었는데 그 말이
어느날 마굿간을 뛰쳐나가 온데간데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날리가 났는데 할아버지만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더랍니다.
그리고 얼마후 그말이 짝을 찾아 돌아 왔더랍니다. 주위사람들은 당연히 부러워 했는데.
그 노인은 또 아무런 변화가 없더랍니다.
또 얼마후 그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그만 다리가 불구가 되었습니다.
주위사람들은 안됬다고 마구 야단이 났는데. 그 노인은 또 변화가 없더랍니다.
얼마후 전쟁이 나서 마을의 모든 젊은 사람이 다 전쟁터로 끌려가는데.
그 노인의 아들만 남겨 졌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그 노인이 웃었다고 합니다.
4)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들.
세상의 이치에도 자기의 어려움에 당장 불평만 가지고 대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좋은 것만 주실텐데...
아버지의 사랑을 다 이해 할 수도 없는 우리가 불평부터 한다는 것은 조금 무리라고 생각이 되어 집니다.
물론 답변자도 실감적으로는 많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2.불택자들에 대한 우리의 자세.
1) 구속받은 자로써의 감사.
아무리 사람이 사람을 위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보이면
천국갈 사람이 지옥갈 사람 대신할 경우는 없을 것 입니다.
마지막에 가보니 불택자는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 쓰여진 수많은 비료들이 입니다.
농부가 알곡을 바라고 알곡을 위해 비료를 뿌리는 것 처럼....
그래서 알곡된 자라면 감사만이 우리의 자세 입니다.
2) 택자와 불택자를 구별 할 수 없는 세상
우리는 누가 택자인지 누가 불택 자인지 죽기전에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북한이 내일이라도 통일되어 복음이 들어 갈 수도 있고
절대 어버이 수령을 외치는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외칠수도 있습니다.
3)불택자가 지옥에서 하나님의 예정을 언급하며 끝까지항변 한다면.
마지막에는 힘의 논리가 나올수 있습니다.
일개 백성이 왕 앞에서 왕에게 자꾸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면
그 왕은 숙청을 해버리지 그냥 두지 않습니다. 끝까지 항변 하려면
왕보다 힘이 쌔거나 권력을 잡던가 해야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보다 강할수도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을 할 수도 없습니다.
항변 하면은 깨지는 것만 있기 때문입니다.
3.예정과 구원에 대해 자꾸 알아야 하는 이유.
1) 위대한 신앙의 선진들을 봄으로.
그들은 정말 하나님의 예정과 구원이
뼈에 사무치게 믿어졌던 분들입니다.
그랬던 분들도 누가 불택자 인지는 알지 못하지만.형제가 죽어 가는 모습을 볼수가 없기에...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그런 뼈에 사무치는 안타까움으로
공산군에게도 전했고 일본군들에게도 전했던 것 입니다.
2) 우리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
우리의 최종으로 닮을자는 하나님이지만 너무 아득하고 멀어서
그 중간의 높이로 믿음의 선진을 닮아 가라고 주셨습니다.
3)아는 만큼 실감을 가질 수 있기에...
어느 정도로 목적구원과 절대예정에 대한 느낌을 가진지는 수치로 나타 낼수 없습니다.
하지만 학생이 수학문제를 잘 풀려면 공식을 많이 알아야 하듯이
우리도 믿음의 선진들 같은 확신을 가지려면 많이 알아야 하고 또 아는 그만큼 힘을써서
자라갈수 있는 가능성을 가질수 있습니다.그래서 실질적 실감적인 것이 부족하지만
우리는 구원과 예정에 대해 말씀을 자꾸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목적구원과 절대예정의 무게를 생각하기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현실 우리의 마음에 맞는 그런 현실을 주실때는
하나님의 예정에대한 감사나 기쁨은 온대 간대 없고 자기만 남아 있다가.....
힘들고 어려울때만 하나님의 절대 예정이라는 자기만의 도피처를 만들고 있는 우리는 아닌지
먼저 생각을 해봐야 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워 지는 만큼 절대예정과 목적구원의 무게가 느껴질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