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4-06-02조회 153추천 30
2024년 6월 2일 주일 오후
찬송: 72장
본문: 야고보서 2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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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있노라 하고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데 믿는대로 행함이 없다면 껍데기는 가졌는데 알맹이가 없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생활은 가장 중요한게 믿음인데 믿음의 도라고 그랬습니다. 믿음의 도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세 가지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첫째, 지식입니다. 한문 글자로 지식, 우리말로 하면 아는 겁니다. 두 번째 인정, 믿는 겁니다. 세 번째가 실행, 실제로 행하는 걸 실행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처음이 아는 것이고 지식입니다. 무엇을 아느냐 세상에 국어 글자를 아는 것도 아는 것이고 수학 공식을 아는 것도 아는 것이고 음악의 콩나물 대가리를 아는 것도 아는 것입니다. 꽉 찼습니다. 모든 사물을 아는 걸 지식이라고 합니다. 현재를 기점으로 현재부터 과거까지 아는 걸 지식이라고 배웠습니다 현재를 기점으로 앞으로 나아갈 걸 아는 걸 지혜라고 했습니다. 개미 박사도 있을 것이고, 개미 연구를 해보셨습니까. 개미가 얼마나 조직적이며 왕국을 만든다 그럽니다. 그렇게 깊이 들어갑니다. 곤충인데 이것도 아는 겁니다. 개미에 대해서 얼마나 아십니까. 거미는요. 거미줄을 가지고 뭘 만들면 그렇게 튼튼하다고 하고 집은 육각형이라고 하던가요. 거미연구해도 할 게 많습니다. 나무 이파리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지식을 연구해 들어가면 지식의 종류는 무한에 가깝습니다. 물질의 세계는 유한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유한이라고 하기 그럴만큼 무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끝이 없고 한도 많습니다. 무엇을 아는 것이냐, 성경 말씀을 아는 것을 믿음의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자들이 성경 가장 잘 알겁니다. 한 규빗을 배웠죠. 측량하는 단위입니다. 1cm, 1mm, 1m, 1km 이런 것을 규빗이라고 하지요. 1cm는 몇 cm라고 합니까 43cm다 신학자들은 그렇게 별별 다 말하는데 엉터리입니다. 정확하게 주장하는 말일수록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경의 규빗은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릅니다. 팔꿈치 길이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모세와 아론이 재는 것과 같겠습니까. 여호수아 팔은 더 다를 것이고 키가 큰 사람은 다를 것이고 아이 팔은 짧은 것이고 들쭉날쭉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경 말씀을 알되 어떻게 알 것인가 관점을 말합니다.
동향한 문에 이르러 천계에 이르렀는데 7개입니다. 여러 계단 중에서 7개 되는 계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인데 7계단 올라서 측량하는 거니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는 거지요.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 교양서적이다 그렇게 보는 세상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역사다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소설이다 라고 보는 나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성경 읽는 관점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연구해야합니다.
믿음은 세 가지입니다. 지식, 우리말로 하면 성경 말씀을 아는 겁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아는 겁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인본주의가 됩니다. 같은 성경 읽었는데 천주교가 되고 여호와의 증인이 되고 순복음이 되고 감리교가 되고 침례교도 되고 장로교도 되고 칼빈도 나오고 백영희총공회나오고, 같은 성경에서 인간의 관점이 조금 들어가면 그렇게 나오는 겁니다. 칼빈 주의가 나오는 겁니다. 성경을 어떤 관점에서 아느냐, 하나님의 관점에서 아는 것을 믿음의 지식이라고 합니다. 또 안에 들어가면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서 올라가는 사다리가 믿음입니다. 놓아주신 분이 예수님이고 그 공력을 대속이라고 합니다. 놓아주신 분이 누구라고요 예수님이고 과정을 가르켜서 대속이라고 하는 겁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사람을 찾아서 하나님의 모든 게 우리에게 다 내려옵니다. 수도꼭지를 틀어놓는 겁니다. 전기 스위치를 올려놓는 겁니다. 전기가 들어와도 스위치가 꺼졌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저수지에서 연결됐는데 수도꼭지 트니까 오만 거 다 합니다. 연결이란 그런 뜻이고 연결은 곧 생명이다. 생물도 그렇고 무생물도 그렇습니다. 혈관이 끊어지면 그 밑으로 죽는 겁니다. 믿음이란 사람과 하나님의 연결와 과정 통로입니다. 그래서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이 되는 하나님의 모든 전지전능이 다 내려옵니다. 그런데 이 통로가 관이라는게 뇌경색이라고 합니까. 다른 곳에 문제 생기면 괜찮은데 하여간 연결이 되는데 통로가 좁으면 줄어들겠죠.
사람에 따라 믿음의 통로가 다르고 주신 분량이 다르기 때문에 링겔 선 호스라고 합니까 그건 그만큼 되어야하고 수도관 호수는 그만큼 되어야할 것이고 자기 마음대로 해야 전도다 그렇게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람이 믿음이로 연결만 되어있으면 능치못할 것이 없느니라. 찬송가도 성경도 그렇고 믿음으로 사는 종들의 한결같은 것입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도, 기억하십시다.
우리나라는 법치 국가입니다. 법을 만드는 사람이 능력이 있고 마지막에 법을 판단하는 사람이 권력이 있고 삼권분립이 되어있는데 법치국가는 법을 잘 만들어야하고 그에 따라 만능이 되는데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이상한 법을 만들면 엉망이 되는 겁니다. 국회의원을 잘못 뽑으면 나라가 엉망이 되는 겁니다. 북한도 법치국가입니다. 민주공화국인데 실제로는 상관없는데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있었습니다. 신앙 세계는 무엇이 전부입니까. 하나님은 믿는 사람 통해서 전지전능을 다 주시기 때문에 믿음의 도라고 하는 것이고 분류해보니까 세 가지더라. 지식과 인정과 실행이더라. 그 믿음을 종류를 살펴보니까 교리적으로 종류를 나눠보니까 두 종류가 있더라. 기본 믿음과 건설 믿음이 있더라. 총공회에서 나온 것이지, 사람을 영육으로 분리하는데 마음은 물질이다. 마음은 육이다. 이렇게 분리하지 않으면 기본 건설구원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리적으로 믿음의 종류를 보니까 기본 믿음이 있고 건설믿음이 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믿음이다. 저절로 믿어지는 믿음이다. 처음 믿을 때 그 믿음을 얼마 주고 사셨습니까. 믿어지는 믿음을 위해서 얼마나 사셨습니까.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부분은 있었을 것이고 안 믿는 사람도 안 믿어졌는데 어느날 갑자기 교회를 가야겠다 믿어야겠다 생각이 생기는 겁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보통 역사가 아닙니다. 병 고치는 걸 두고 문둥병에 걸렸는데 계집종이 선지자에게 가면 고칠겁니다 그렇게 말을 했는데 안 믿을 건데 그대로 바로 살았다는 거죠. 여종의 말을 아무리 급해도 대장군이 왕에게 보고하고 그 말을 듣는다 그 중에 그 종의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로 왔는데 본국의 왕은 계집종만도 못한 사람입니다. 나한테 엘리사를 보내십시오 하니까 안 믿는 사람은 노래부르고 춤을 추고 기도하고 우리는 그렇게 안하니까 찬송을하고 안수를 하고 거창하게 했습니까 그냥 대학병원에 가서 수술날짜 정해서 합동진료하지요. 몇 시간 며칠을 해서 예민한 사람은 걸린다고 하지요. 마취제 몽환주사라고합니다. 유언장도 쓰고 하지요. 보통 못 고칠거다 하는데 엘리사가 얼굴도 안 보여주고 요단강가서 씻고 가면 된다 화가 안 나겠습니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고가라. 화나 나서 돌아가는데 지혜로운 부하가 그래도 선지자인데 해보고 안되면 핑계거리가 그렇게 되는거지요. 나아버리니까 할 말이 없지요. 백목사님께서 집회 때 감기 하나가 나았습니다. 그렇게 나은 거하고 기도로 낫는 것은 뭐가 틀립니까. 하나님이 치료준겁니다. 보통 문제가 아닌 거지요. 하나님을 그렇게 알기 때문에 위대한 종들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분들은 하나님의 일을 두려워합니다. 건설구원은 주신 자유성으로 믿음입니다. 교리적으로 따져보니까 구원도 둘이고 믿음도 둘이다,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있으면 구원을 잘 모르는 교단에서 뭐라고 해석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안에 또 들어가니까 교리적으로 믿음은 두 종류 기본 믿음과 건설 믿음이 있는데 건설 믿음을 가지고 첫째, 행함이 있는 믿음과 믿음은 가졌는데 행함이 없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는데 행함이 없다. 쓴 약을 만들 때 캡슐로 만듭니다. 가루약이 들어있지요. 안에 내놓습니다. 그런데 약을 먹었는데 안에 없습니다. 믿음은 가졌는데 실제 믿음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믿음 행함이 없는 믿음을 찾아봤습니다. 절대적인 건 아닙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어떤 믿음이냐, 이름만 가졌고 실제로 살지 않는 믿음이 되느냐 무익하다 그 말이죠. 아무리 가져봐야 이익이 없다. 이 믿음을 둘로 나눌줄 모르고 기본 믿음 건설 믿음을 모릅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복을 엄청 받았거든요. 왜 그렇게 물질 복을 받았을까. 그만큼 실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감리교 순복음쪽 사람들은 연보를 엄청합니다. 믿는다 하지만 이익이 없다, 무슨 이익이 있으리오 행함없는 믿음은 이익이 없습니다. 구원하지 못하는 믿음이 행함 없는 믿음입니다. 인간의 행함과 상관이 없습니다. 땅이 있어도 파야 파집니다. 저절로 뚝딱 진화론 주장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구원이 없습니다.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세 번째 17절이지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저 자체가 죽은 거이라. 실제로 자기 아는대로 한 계단 한계단 올라가서 실제로 올라가서 해야하는겁니다. 그 받은 은혜로 올라가야 되는 것이 건설 믿음입니다. 네 번째, 18절입니다. 너는 믿은 게 있고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믿음을 보여봐라. 실상이 없다. 말 뿐이다. 마음 뿐이고 껍데기 뿐입니다. 귀신들도 믿고 떠나리라. 사람을 넘어뜨리는 믿음이라 믿음을 가지고 행하지 않으면 넘어트리기 되리라 귀신이름이 됩니다. 일을 못하는 게 됩니다. 일곱가지로 찾아봤는데 결과적으로 그렇다 이 말입니다. 믿음은 폭발 능력이라서 아는 게 믿음인데 전부 다 아무것도 껍데기 믿음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 생활에서 구원없고 죽은 믿음이고 귀신 믿음이고 이런 믿음은 어떤 모습이 실제로 되느냐, 실제 생활에서 생각해봤는데 실제 생활에서 찾아보는 겁니다.
첫째로 오전에 말씀을 드렸죠. 행함이 없다는 말은 희생이 없다는 겁니다. 자기가 진 십자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질을 손해보지 않습니다. 자기 편안함을 손해보지 않습니다. 자기 욕심을 손해보지 않고 자존심 손해보지 않고 십자가가 없는 하나님과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희생하는 손해보는 이런 십자가가 없는 이런 믿음, 믿는 사람 중에서 이런 믿음이 많이 있고 부분적으로 이런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말할 때 행함 없는 믿음과 행함이 없으니까 반쪽을 가졌습니까. 행함은 없으니까 50점은 되겠습니다. 그러면 50점이 되겠는가 기본구원은 상관없으니까 건설구원 50점은 0점이 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영생입니다. 천국에 들어가야합니다. 완전성 그럴 때 구원이 되기 때문에 100개입니다. 100점이 되어야 구원이 됩니다. 부분적으로 다 그렇습니다. 100점까지만 다 올라가서 건설구원의 심판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믿음입니다. 주님이 앞서가셨는데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전부를 다 내놓고 희생하신 것입니다. 히브리 12장입니까 믿음의 주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되신 주님, 전부 다 바쳐서 희생입니다. 아브라함도 아들 독자를 내놓았습니다. 희생 없는 것은 행함 없는 믿음입니다.
충성은 믿음입니다. 나로써 다 받치는 것, 한 달란트 받았으니까 한 달란트 하면 됩니다. 충성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런데 충성이 없는 믿음, 자기로써 노력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세 번째, 승리가 없다. 승리자만 가는 곳이 천국이고 구원입니다. 패배자는 지옥에 보내버립니다. 너무 잔인한 거 같고 인정없는 거 같은데 이게 사랑입니다. 하루에 7번 넘어져도 패전해도 이겨서 싸워라, 실패고 일어서라 그렇게 하는 것이지 100번 1000번 하는 것이 지옥 밖에 없습니다. 찬송가 72장 믿으라 믿으라 감정 믿음에서 떠나 백절불굴 믿고 살면 승리다 승리다 믿는 자는 항상 승리, 패전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됩니다. 어렵지만 성경입니다. 이런 것은 성경 연구하면 나오고 실제 경험해서 하는 말입니다. 살아가면서, 넘어지는게 잘하는 겁니까 넘어졌으면 내일은 일어나야지요. 넘어지는 건 잘하는 게 없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실수로 있을 수 있는데 반복이 되면 한 번은 실수다 세 번 반복되면 고의라고 합니다. 그건 실수가 아닙니다. 스스로 죄를 짓는 겁니다.
오늘 가장 마음에 와닿는 것 중하나가 승리가 없는 믿음은 행함이 없는 믿음입니다. 싸워서 이기는 게 목적입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기는 쪽이 좋습니다. 무슨 짓이 되어도 이기는 겁니다. 패자는 말이 없습니다. 핑계될 게 없습니다. 싸우면 무조건 이겨라, 학생이냐 성적, 직장 다니느냐 월급보자, 사업했느냐 통장보자, 기술배웠느냐 실력보자. 그거 보고 판단을 해버립니다. 이게 승리입니다. 인생을 살았으면 결과를 내놔야합니다.
네 번째 뭐가 없는 믿음입니까. 계속이 없는 믿음입니다. 하루하고 이틀하고 계속해서 절제가 필요합니다. 끈기가 필요합니다. 인내가 있어야 구원이 된다고 했습니다. 우공이산이라고 마을에서 가는데 태산이 가로막혀있어서 저 산을 옮겨 이러는데 옮기고 옮기니까 길이 생겨버렸습니다. 인간의 노력은 결과를 만듭니다. 하루에 하나씩 한자 공부할 때 하루에 하나. 그러면 10년이면 300자.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뭐가 없는 믿음입니까. 현재가 빠져버렸습니다.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요. 후회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듣기 싫어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걸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 말하지 말고 잘해라. 잘못하지 말아라 그 말이겠지요. 잘못은 100날 해봐야 잘못입니다. 사람이 약해서 몰라서 그럴 수 있으나 반복이 되면 사람이 다 베려버립니다. 평생을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옵소서 그러면 듣기가 싫다. 쳐다도 안 봅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현실 만날 때 두고보자, 다 필요한데 금식은 되지 않습니다. 이게 현재가 없는 믿음입니다. 이 세가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승리가 없는 믿음, 현재가 없는 믿음,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행동이 없는 믿음. 누가 헐벗고 떨고 있는데 따숩게하라 배부르게 하라 그러면 말로만은 소용이 없다. 시간 가지고 노력가지고 그러는데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은. 충성하는 믿음 승리하는 믿음. 믿음과 행함, 행함없는 믿음 생활에서 하나하나 찍어보고 각자 자기 믿음을 점검해보십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72장
본문: 야고보서 2장 14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믿음이 있노라 하고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데 믿는대로 행함이 없다면 껍데기는 가졌는데 알맹이가 없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생활은 가장 중요한게 믿음인데 믿음의 도라고 그랬습니다. 믿음의 도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세 가지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첫째, 지식입니다. 한문 글자로 지식, 우리말로 하면 아는 겁니다. 두 번째 인정, 믿는 겁니다. 세 번째가 실행, 실제로 행하는 걸 실행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처음이 아는 것이고 지식입니다. 무엇을 아느냐 세상에 국어 글자를 아는 것도 아는 것이고 수학 공식을 아는 것도 아는 것이고 음악의 콩나물 대가리를 아는 것도 아는 것입니다. 꽉 찼습니다. 모든 사물을 아는 걸 지식이라고 합니다. 현재를 기점으로 현재부터 과거까지 아는 걸 지식이라고 배웠습니다 현재를 기점으로 앞으로 나아갈 걸 아는 걸 지혜라고 했습니다. 개미 박사도 있을 것이고, 개미 연구를 해보셨습니까. 개미가 얼마나 조직적이며 왕국을 만든다 그럽니다. 그렇게 깊이 들어갑니다. 곤충인데 이것도 아는 겁니다. 개미에 대해서 얼마나 아십니까. 거미는요. 거미줄을 가지고 뭘 만들면 그렇게 튼튼하다고 하고 집은 육각형이라고 하던가요. 거미연구해도 할 게 많습니다. 나무 이파리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지식을 연구해 들어가면 지식의 종류는 무한에 가깝습니다. 물질의 세계는 유한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유한이라고 하기 그럴만큼 무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끝이 없고 한도 많습니다. 무엇을 아는 것이냐, 성경 말씀을 아는 것을 믿음의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자들이 성경 가장 잘 알겁니다. 한 규빗을 배웠죠. 측량하는 단위입니다. 1cm, 1mm, 1m, 1km 이런 것을 규빗이라고 하지요. 1cm는 몇 cm라고 합니까 43cm다 신학자들은 그렇게 별별 다 말하는데 엉터리입니다. 정확하게 주장하는 말일수록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경의 규빗은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릅니다. 팔꿈치 길이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모세와 아론이 재는 것과 같겠습니까. 여호수아 팔은 더 다를 것이고 키가 큰 사람은 다를 것이고 아이 팔은 짧은 것이고 들쭉날쭉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경 말씀을 알되 어떻게 알 것인가 관점을 말합니다.
동향한 문에 이르러 천계에 이르렀는데 7개입니다. 여러 계단 중에서 7개 되는 계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인데 7계단 올라서 측량하는 거니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는 거지요.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 교양서적이다 그렇게 보는 세상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역사다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소설이다 라고 보는 나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성경 읽는 관점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연구해야합니다.
믿음은 세 가지입니다. 지식, 우리말로 하면 성경 말씀을 아는 겁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아는 겁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인본주의가 됩니다. 같은 성경 읽었는데 천주교가 되고 여호와의 증인이 되고 순복음이 되고 감리교가 되고 침례교도 되고 장로교도 되고 칼빈도 나오고 백영희총공회나오고, 같은 성경에서 인간의 관점이 조금 들어가면 그렇게 나오는 겁니다. 칼빈 주의가 나오는 겁니다. 성경을 어떤 관점에서 아느냐, 하나님의 관점에서 아는 것을 믿음의 지식이라고 합니다. 또 안에 들어가면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서 올라가는 사다리가 믿음입니다. 놓아주신 분이 예수님이고 그 공력을 대속이라고 합니다. 놓아주신 분이 누구라고요 예수님이고 과정을 가르켜서 대속이라고 하는 겁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사람을 찾아서 하나님의 모든 게 우리에게 다 내려옵니다. 수도꼭지를 틀어놓는 겁니다. 전기 스위치를 올려놓는 겁니다. 전기가 들어와도 스위치가 꺼졌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저수지에서 연결됐는데 수도꼭지 트니까 오만 거 다 합니다. 연결이란 그런 뜻이고 연결은 곧 생명이다. 생물도 그렇고 무생물도 그렇습니다. 혈관이 끊어지면 그 밑으로 죽는 겁니다. 믿음이란 사람과 하나님의 연결와 과정 통로입니다. 그래서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이 되는 하나님의 모든 전지전능이 다 내려옵니다. 그런데 이 통로가 관이라는게 뇌경색이라고 합니까. 다른 곳에 문제 생기면 괜찮은데 하여간 연결이 되는데 통로가 좁으면 줄어들겠죠.
사람에 따라 믿음의 통로가 다르고 주신 분량이 다르기 때문에 링겔 선 호스라고 합니까 그건 그만큼 되어야하고 수도관 호수는 그만큼 되어야할 것이고 자기 마음대로 해야 전도다 그렇게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람이 믿음이로 연결만 되어있으면 능치못할 것이 없느니라. 찬송가도 성경도 그렇고 믿음으로 사는 종들의 한결같은 것입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도, 기억하십시다.
우리나라는 법치 국가입니다. 법을 만드는 사람이 능력이 있고 마지막에 법을 판단하는 사람이 권력이 있고 삼권분립이 되어있는데 법치국가는 법을 잘 만들어야하고 그에 따라 만능이 되는데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이상한 법을 만들면 엉망이 되는 겁니다. 국회의원을 잘못 뽑으면 나라가 엉망이 되는 겁니다. 북한도 법치국가입니다. 민주공화국인데 실제로는 상관없는데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있었습니다. 신앙 세계는 무엇이 전부입니까. 하나님은 믿는 사람 통해서 전지전능을 다 주시기 때문에 믿음의 도라고 하는 것이고 분류해보니까 세 가지더라. 지식과 인정과 실행이더라. 그 믿음을 종류를 살펴보니까 교리적으로 종류를 나눠보니까 두 종류가 있더라. 기본 믿음과 건설 믿음이 있더라. 총공회에서 나온 것이지, 사람을 영육으로 분리하는데 마음은 물질이다. 마음은 육이다. 이렇게 분리하지 않으면 기본 건설구원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리적으로 믿음의 종류를 보니까 기본 믿음이 있고 건설믿음이 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믿음이다. 저절로 믿어지는 믿음이다. 처음 믿을 때 그 믿음을 얼마 주고 사셨습니까. 믿어지는 믿음을 위해서 얼마나 사셨습니까.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부분은 있었을 것이고 안 믿는 사람도 안 믿어졌는데 어느날 갑자기 교회를 가야겠다 믿어야겠다 생각이 생기는 겁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보통 역사가 아닙니다. 병 고치는 걸 두고 문둥병에 걸렸는데 계집종이 선지자에게 가면 고칠겁니다 그렇게 말을 했는데 안 믿을 건데 그대로 바로 살았다는 거죠. 여종의 말을 아무리 급해도 대장군이 왕에게 보고하고 그 말을 듣는다 그 중에 그 종의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로 왔는데 본국의 왕은 계집종만도 못한 사람입니다. 나한테 엘리사를 보내십시오 하니까 안 믿는 사람은 노래부르고 춤을 추고 기도하고 우리는 그렇게 안하니까 찬송을하고 안수를 하고 거창하게 했습니까 그냥 대학병원에 가서 수술날짜 정해서 합동진료하지요. 몇 시간 며칠을 해서 예민한 사람은 걸린다고 하지요. 마취제 몽환주사라고합니다. 유언장도 쓰고 하지요. 보통 못 고칠거다 하는데 엘리사가 얼굴도 안 보여주고 요단강가서 씻고 가면 된다 화가 안 나겠습니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고가라. 화나 나서 돌아가는데 지혜로운 부하가 그래도 선지자인데 해보고 안되면 핑계거리가 그렇게 되는거지요. 나아버리니까 할 말이 없지요. 백목사님께서 집회 때 감기 하나가 나았습니다. 그렇게 나은 거하고 기도로 낫는 것은 뭐가 틀립니까. 하나님이 치료준겁니다. 보통 문제가 아닌 거지요. 하나님을 그렇게 알기 때문에 위대한 종들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분들은 하나님의 일을 두려워합니다. 건설구원은 주신 자유성으로 믿음입니다. 교리적으로 따져보니까 구원도 둘이고 믿음도 둘이다,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있으면 구원을 잘 모르는 교단에서 뭐라고 해석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안에 또 들어가니까 교리적으로 믿음은 두 종류 기본 믿음과 건설 믿음이 있는데 건설 믿음을 가지고 첫째, 행함이 있는 믿음과 믿음은 가졌는데 행함이 없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는데 행함이 없다. 쓴 약을 만들 때 캡슐로 만듭니다. 가루약이 들어있지요. 안에 내놓습니다. 그런데 약을 먹었는데 안에 없습니다. 믿음은 가졌는데 실제 믿음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믿음 행함이 없는 믿음을 찾아봤습니다. 절대적인 건 아닙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어떤 믿음이냐, 이름만 가졌고 실제로 살지 않는 믿음이 되느냐 무익하다 그 말이죠. 아무리 가져봐야 이익이 없다. 이 믿음을 둘로 나눌줄 모르고 기본 믿음 건설 믿음을 모릅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복을 엄청 받았거든요. 왜 그렇게 물질 복을 받았을까. 그만큼 실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감리교 순복음쪽 사람들은 연보를 엄청합니다. 믿는다 하지만 이익이 없다, 무슨 이익이 있으리오 행함없는 믿음은 이익이 없습니다. 구원하지 못하는 믿음이 행함 없는 믿음입니다. 인간의 행함과 상관이 없습니다. 땅이 있어도 파야 파집니다. 저절로 뚝딱 진화론 주장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구원이 없습니다.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세 번째 17절이지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저 자체가 죽은 거이라. 실제로 자기 아는대로 한 계단 한계단 올라가서 실제로 올라가서 해야하는겁니다. 그 받은 은혜로 올라가야 되는 것이 건설 믿음입니다. 네 번째, 18절입니다. 너는 믿은 게 있고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믿음을 보여봐라. 실상이 없다. 말 뿐이다. 마음 뿐이고 껍데기 뿐입니다. 귀신들도 믿고 떠나리라. 사람을 넘어뜨리는 믿음이라 믿음을 가지고 행하지 않으면 넘어트리기 되리라 귀신이름이 됩니다. 일을 못하는 게 됩니다. 일곱가지로 찾아봤는데 결과적으로 그렇다 이 말입니다. 믿음은 폭발 능력이라서 아는 게 믿음인데 전부 다 아무것도 껍데기 믿음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 생활에서 구원없고 죽은 믿음이고 귀신 믿음이고 이런 믿음은 어떤 모습이 실제로 되느냐, 실제 생활에서 생각해봤는데 실제 생활에서 찾아보는 겁니다.
첫째로 오전에 말씀을 드렸죠. 행함이 없다는 말은 희생이 없다는 겁니다. 자기가 진 십자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질을 손해보지 않습니다. 자기 편안함을 손해보지 않습니다. 자기 욕심을 손해보지 않고 자존심 손해보지 않고 십자가가 없는 하나님과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희생하는 손해보는 이런 십자가가 없는 이런 믿음, 믿는 사람 중에서 이런 믿음이 많이 있고 부분적으로 이런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말할 때 행함 없는 믿음과 행함이 없으니까 반쪽을 가졌습니까. 행함은 없으니까 50점은 되겠습니다. 그러면 50점이 되겠는가 기본구원은 상관없으니까 건설구원 50점은 0점이 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영생입니다. 천국에 들어가야합니다. 완전성 그럴 때 구원이 되기 때문에 100개입니다. 100점이 되어야 구원이 됩니다. 부분적으로 다 그렇습니다. 100점까지만 다 올라가서 건설구원의 심판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믿음입니다. 주님이 앞서가셨는데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전부를 다 내놓고 희생하신 것입니다. 히브리 12장입니까 믿음의 주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되신 주님, 전부 다 바쳐서 희생입니다. 아브라함도 아들 독자를 내놓았습니다. 희생 없는 것은 행함 없는 믿음입니다.
충성은 믿음입니다. 나로써 다 받치는 것, 한 달란트 받았으니까 한 달란트 하면 됩니다. 충성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런데 충성이 없는 믿음, 자기로써 노력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세 번째, 승리가 없다. 승리자만 가는 곳이 천국이고 구원입니다. 패배자는 지옥에 보내버립니다. 너무 잔인한 거 같고 인정없는 거 같은데 이게 사랑입니다. 하루에 7번 넘어져도 패전해도 이겨서 싸워라, 실패고 일어서라 그렇게 하는 것이지 100번 1000번 하는 것이 지옥 밖에 없습니다. 찬송가 72장 믿으라 믿으라 감정 믿음에서 떠나 백절불굴 믿고 살면 승리다 승리다 믿는 자는 항상 승리, 패전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됩니다. 어렵지만 성경입니다. 이런 것은 성경 연구하면 나오고 실제 경험해서 하는 말입니다. 살아가면서, 넘어지는게 잘하는 겁니까 넘어졌으면 내일은 일어나야지요. 넘어지는 건 잘하는 게 없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실수로 있을 수 있는데 반복이 되면 한 번은 실수다 세 번 반복되면 고의라고 합니다. 그건 실수가 아닙니다. 스스로 죄를 짓는 겁니다.
오늘 가장 마음에 와닿는 것 중하나가 승리가 없는 믿음은 행함이 없는 믿음입니다. 싸워서 이기는 게 목적입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기는 쪽이 좋습니다. 무슨 짓이 되어도 이기는 겁니다. 패자는 말이 없습니다. 핑계될 게 없습니다. 싸우면 무조건 이겨라, 학생이냐 성적, 직장 다니느냐 월급보자, 사업했느냐 통장보자, 기술배웠느냐 실력보자. 그거 보고 판단을 해버립니다. 이게 승리입니다. 인생을 살았으면 결과를 내놔야합니다.
네 번째 뭐가 없는 믿음입니까. 계속이 없는 믿음입니다. 하루하고 이틀하고 계속해서 절제가 필요합니다. 끈기가 필요합니다. 인내가 있어야 구원이 된다고 했습니다. 우공이산이라고 마을에서 가는데 태산이 가로막혀있어서 저 산을 옮겨 이러는데 옮기고 옮기니까 길이 생겨버렸습니다. 인간의 노력은 결과를 만듭니다. 하루에 하나씩 한자 공부할 때 하루에 하나. 그러면 10년이면 300자.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뭐가 없는 믿음입니까. 현재가 빠져버렸습니다.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요. 후회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듣기 싫어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걸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 말하지 말고 잘해라. 잘못하지 말아라 그 말이겠지요. 잘못은 100날 해봐야 잘못입니다. 사람이 약해서 몰라서 그럴 수 있으나 반복이 되면 사람이 다 베려버립니다. 평생을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옵소서 그러면 듣기가 싫다. 쳐다도 안 봅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현실 만날 때 두고보자, 다 필요한데 금식은 되지 않습니다. 이게 현재가 없는 믿음입니다. 이 세가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승리가 없는 믿음, 현재가 없는 믿음,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행동이 없는 믿음. 누가 헐벗고 떨고 있는데 따숩게하라 배부르게 하라 그러면 말로만은 소용이 없다. 시간 가지고 노력가지고 그러는데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은. 충성하는 믿음 승리하는 믿음. 믿음과 행함, 행함없는 믿음 생활에서 하나하나 찍어보고 각자 자기 믿음을 점검해보십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