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4-06-02조회 146추천 26
2024년 6월 2일 주일 오전
찬송: 19장, 79장
본문: 야고보서 2장 14절
아는 게 중요한데 알려면 읽어야하고 그래야하는데 실행해서 읽고 듣고 살지 않고 변화가 되지 않으면 두가지 면에 사항이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이 되고 정죄받는 기준이 됩니다. 알아야해서 알지만 알고 살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런 걸 가르치고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라, 아무리 좋은 밭이어도 씨를 뿌리지않으면 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좋은 땅일수록 잡초가 많이 납니다. 잡초라는 것은 안 뿌려도 이상하게 납니다. 안 뿌리면 싹이 안납니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날아와서 자라는 게 잡초라고 합니다. 잡초는 계속 뽑아도 자라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곡식은 없어져버립니다. 큰 농사든 작으 농사든 그렇습니다. 이게 말하자면 땅을 가졌느냐 밭을 가졌느냐 씨앗을 뿌려라 가꿔라. 가꾸면 나오는 겁니다. 배워서 알았느냐 실행하면 사람의 결과는 책임지게 하시는 겁니다.
네 형제들아 택함을 받은 사람 형제라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노라하고 믿음을 가졌습니다. 행함이 없으면 믿음이 없다. 그게 중요합니다. 믿음과 행함. 믿음과 행함이라는 것은 같이 가는 겁니다. 지행합일이라는 게 있습니다. 알고 행하는 것은 하나다. 펄펄 끓는 물이 있습니다. 아는 사람은 거기 손을 집어넣지 않습니다. 그러면 손이 데여서 큰일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떤 것도 집어넣지 않습니다. 모르면 하는 거고 알면 행함이 따라가는 겁니다. 알면 그대로 가는 게 정상인데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느냐. 기독교는 믿음의 도다 소망의 도다 다 말하는데 믿음의 도라고 합니다. 믿음의 도, 믿음의 도라고 합니다. 불교는 무슨 도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다 있을겁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믿음의 도입니다.
믿음은 믿는거지요.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게 믿음인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기독교입니다. 하나님꼐서 사람이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을 소개시켜놨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셨습니다. 사진을 찍어서 전송해서 보니까 하나님께서 자세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준 것의 이름을 성경이라고 말합니다. 사진이라기 보다 설명서입니다. 하나님을 설명한 게 신구약 성격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하나님을 자세하게 설명한 게 설명이고 이 속에는 하나님의 속성과 모든 역사 구원 역사입니다. 자세하게 알 수 있도록 적어주신 것이 성경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역사서가 아니고 문학서적 교양서적이 아닙니다. 구원역사를 기록한 구원의 도리입니다. 성경 읽으면 구원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구원 역사하시는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이 사람이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분이고 다른 차원의 존재이기 때문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이거입니다. 나보다 아랫사람이 있습니다. 나이가 어려서 지식이 어려서 소꿉장난이겠지요. 중학생들은 숨기기도 하고 안 통할 수가 있습니다. 20대가 되면 대화가 잘 안됩니다. 세대차 때문에 안되는 거라고 그분들의 말을 이해못할 때가 있습니다. 같은 사람인데 그들은 보고 듣고 아는 말인데 아는 말이고 맞는데 나는 그 세계에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거지요.
500미터 산 꼭대기에 올라간 사람이 있습니다. 거기서 내려다봅니다. 700미터에서 올라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간격이 200미터인데 그거까지 다 보는데 700미터 밑으로 다 보이는데 500미터만 보입니다. 700미터 올라간 사람이 그 사이에 본 것을 말을 하면 500미터 올라간 사람이 이해를 합니까 안합니까. 500미터 올라가고 그 위 세계는 안가봤으니까. 700미터 올라간 사람은 보이는데, 한 5000미터 올라간 사람이 보면 다 보이는데 나는 안 봤는데 모르는 거지요. 가본 사람과 안 가본사람 겪어본사람과 안 겪어본 사람은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여행을 많이해서 견문을 넓히려고 합니다. 요즘은 인터넷 시대고 안가봐도 알지만 직접 가본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살아본 사람과 안 살아본 차이는 있는데 하물며 짐승과 사람을 비교하면 똑똑한 강아지라도 사람의 세계는 모르는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없는 가운데에서 만드신 분입니다. 이런 것을 믿을 때 믿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에 목적을 정하셨는데 이런 일을 하셨더라고 했는데 그 모든 말씀 믿음들이 다른 내용이고 그대로 믿기가 어렵다는 거지요
언제 어느 고속도로에서 사건이 났다더라 사고를 쳤다거나 이런 건 사람의 일상이라서 들으면 인정을 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더라. 로또를 샀는데 당첨되었다더라. 기록했기 때문에 알 수 있는데 어려울뿐더러 믿기가 어려운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믿음의 도라는 말은 하나님이 알기 어렵고 믿기 어려운 사실을 믿을 때 비로소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걸 가르켜서 믿음의 도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다. 생과 사와 흥망성쇠 모든 것을 하는 거라서 그렇게 성경에 기록이 됐는데 믿음의 도라는 그 말은 성경의 말대로 믿고 그러면 나가서 신앙의 복을 받는다. 이루어진다. 이걸 믿음의 도라고 하는 겁니다. 깨달은 종들도 믿음은 전지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그러면 깊이 들어가서 믿음이란 세 가지입니다. 지식, 인정, 실행입니다. 알고 인정하고 사는 걸 가르켜서 그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주관적인 선입적 관념 이게 다 틀립니다.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에스겔 성전에서 뭘 말합니까. 동쪽을 향하여 천계로, 하나님 관점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상식 다 버리고 통계 다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기를 부인하면 됩니다. 세상을 부인하고 그대로 하면 됩니다. 진실한 믿음이고 그게 믿음입니다. 성경을 해야하지 않느냐 성경의 틀린 해석은 전통교리라는 것은 해석인데 역사성을 가져서 세월 속의 성경으로 증명이 될 때 전체가 다 맞을 때 통일성 사회성 그게 인간의 해석인데 믿음이란 하나님 말씀 성경 말씀 전하면서 들으면서 우리 자신을 둘러보고 증거를 살펴봐라고 했는데 우리 믿음을 한 번 돌아봐야겠습니다.
깊이 들어가서 믿음에는 종류가 몇 개 있습니다. 믿음은 종류가 있는데 교리적으로 두 종류가 있습니다. 아마도 공회에서만 가르치는 것일겁니다. 일반 교계 교리로는 두 종류로 어렵겠습니다. 믿음의 종류는 기본 믿음이 있습니다. 건설 믿음이 있습니다. 기본 믿음이란 택자, 중생된 사람 믿게된 이건 전적 은혜입니다. 부르심까지는 전부 은혜입니다. 택했기 때문에 때가 되면 믿게 되어집니다. 나는 노력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을 잘 몰라도 종교성이 생깁니다. 그런 소식이 들리기도하고 예수를 믿어봐야겠다. 이건 사람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역사하신 건데 이걸 기본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 믿음을 기본 믿음이라고 합니다. 기본 구원에 속한 믿음입니다.
건설 구원은 중생시킨 사람인데 형상이 있으니 그 형상을 가르켜서 뭐라고 합니까. 자유성이라고 하지요. 그 주신 자유성으로 말씀 믿어지는 믿음을 전부 살아가는 그 역사가 있습니다. 믿음을 가르켜 건설믿음이라고 하고 믿음의 도란 어떤 것인가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이다. 종류가 있습니다. 기본 믿음이 있고 건설 믿음이 있다. 건설 믿음은 자유성으로 길러가시는 건설구원으로 가는 것이다. 교리입니다. 우리 교회 1층에 비디오 테이프를 1만개를 가져다놨다고 선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교회가 총공회 이름 붙인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1층에 커피집을 합니다. 도서관으로 꾸몄습니다. 교회란 곳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이 교회이고 섬기는 곳이 교회입니다. 3살짜리 아이도 아는 상식입니다. 이게 통하지 않는 것이 요즘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미친 세상이라고 합니다. 온 세상은 그래도 남자는 남자라야하고 자녀는 자녀야하고 정상이지 그러면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이고 노아시대 때 온 세상이 다 무너져도 세상이 이어졌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무너져도 생명 붙든 사람이 있으면 그리되는 겁니다. 본문에는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믿음이 있는데 행함을 하는건데
교리적으로 기본 믿음 건설믿음, 본문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행동에 따라가는 믿음이고 실제로 따라가는 믿음이 있다. 그러면 본문을 가지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어떤 것이며, 만약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어떤 이익이 있으리오, 이익이 없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양식이 있는데 너희 중에 말하기를 더웁게하라 입을 거 먹을 거 주지 않으면 무슨 이익이 있느냐.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없는 믿음입니다. 14절에 구원하겠느냐. 구원이 되지 않는 믿음입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세 번째 혼이 몸을 떠날 때 죽는 것이라고 합니다. 행함이 없는 건 죽은 믿음이 됩니다 네 번째 행함으로 내 믿음을 보이겠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보일 수 없는 믿음입니다. 그 다음 다섯 번째 19절 보시겠습니다.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귀신들도 믿고 떱니다. 하나님을 믿는 짓이 하는 짓이 귀신 짓을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데 귀신노릇하는게 다섯 번째고 귀신 믿음이 되는겁니다. 믿음을 가르켜서 허탈한 사람아 행함없는 믿음을 알고자 하느냐. 헛것이다 그 말이지요. 마지막 일곱 번째로 어떤 믿음이냐 믿음이 함께 일하고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는데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게 됩니다.
믿음은 가졌는데 행함이 따라가지 않으면 각자 자신을 돌아봐야합니다. 나는 믿느냐 정말 믿느냐 그러면서 믿는 사람이 믿음만 가져도 행함이 없을 수 있다. 구원이 없습니다. 죽은 믿음이 됩니다. 행함없는 믿음은 귀신 믿음입니다. 헛된 믿음 허탕한 믿음이 됩니다. 일을 못하는 믿음이 됩니다.
반대로가면 의로운 믿음이 됩니다. 온전한 믿음이 됩니다. 일하는 믿음이 됩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과 없는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가장 중요한건데 실제 생활에서 본문에서 믿음을 가졌는데 일곱가지, 믿음의 결과로 어떤 결과를 맺으며 그런 것을 말씀했고 행함 없는 믿음은 믿음의 모습이냐 경험에서 찾아보는 겁니다. 희생없는 믿음입니다. 십자가를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 자신을 희생할 때 내 물질과 시간과 나 자신을 바칠 때 희생이 됩니다. 충성이 없는 믿음 노력 없는 믿음 충성 자기를 다 바치는 겁니다. 다른 게 아니고 성경은 아이들에게 자기 자녀에서 열심히 노력이라고 해서 아이가 아들 딸이 열심히하면 그게 부모를 위해서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 부모의 잔소리가 자꾸 튀어나버리게 되는데 충성해라 마음과 뜻을 바쳐라 이게 구원이 되기 때문에 그런겁니다. 노력이 없는 믿음 수고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세 번째 승리가 없는 믿음입니다. 말씀대로 할 때 승리가 오는데 승리가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패자를 지금은 환자고 과정이기 때문에 살피시나 마지막은 패전한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집어던지는 곳을 지옥이라고 합니다. 조절한 건 조절해야합니다. 계속해야합니다. 현재가 없는 믿음 이게 무슨 뜻인가 과거를 돌아보면 죄송합니다 후회합니다.
마음과 말만 있는 믿음입니다. 마음도 있고 말만 있는데 행동이 없는 믿음입니다. 마음도 있고 말도 합니다. 추우면 옷을 입어라 그런데 하나라도 주고 따라가야하는데 마음과 말만 백날해야 소용이 없는겁니다.
자기만 좋게하는 믿음이 됩니다. 말도 합니다 자기만 좋게합니다. 객관이 없는 믿음이 되는 거지요. 첫 번째, 희생, 두 번째 충성, 세 번째 승리, 네 번째 계속, 다섯 번째 현재, 여섯 번째 행동. 일곱가지 없는 믿음이 될 때 귀신 믿음이고 다 보일 수 없는 믿음이 되는것이고 행하는 믿음이 될 때 참믿음이 되는 겁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일곱가지 기준으로 돌아보십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9장, 79장
본문: 야고보서 2장 14절
아는 게 중요한데 알려면 읽어야하고 그래야하는데 실행해서 읽고 듣고 살지 않고 변화가 되지 않으면 두가지 면에 사항이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이 되고 정죄받는 기준이 됩니다. 알아야해서 알지만 알고 살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런 걸 가르치고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라, 아무리 좋은 밭이어도 씨를 뿌리지않으면 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좋은 땅일수록 잡초가 많이 납니다. 잡초라는 것은 안 뿌려도 이상하게 납니다. 안 뿌리면 싹이 안납니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날아와서 자라는 게 잡초라고 합니다. 잡초는 계속 뽑아도 자라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곡식은 없어져버립니다. 큰 농사든 작으 농사든 그렇습니다. 이게 말하자면 땅을 가졌느냐 밭을 가졌느냐 씨앗을 뿌려라 가꿔라. 가꾸면 나오는 겁니다. 배워서 알았느냐 실행하면 사람의 결과는 책임지게 하시는 겁니다.
네 형제들아 택함을 받은 사람 형제라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노라하고 믿음을 가졌습니다. 행함이 없으면 믿음이 없다. 그게 중요합니다. 믿음과 행함. 믿음과 행함이라는 것은 같이 가는 겁니다. 지행합일이라는 게 있습니다. 알고 행하는 것은 하나다. 펄펄 끓는 물이 있습니다. 아는 사람은 거기 손을 집어넣지 않습니다. 그러면 손이 데여서 큰일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떤 것도 집어넣지 않습니다. 모르면 하는 거고 알면 행함이 따라가는 겁니다. 알면 그대로 가는 게 정상인데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느냐. 기독교는 믿음의 도다 소망의 도다 다 말하는데 믿음의 도라고 합니다. 믿음의 도, 믿음의 도라고 합니다. 불교는 무슨 도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다 있을겁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믿음의 도입니다.
믿음은 믿는거지요.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게 믿음인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기독교입니다. 하나님꼐서 사람이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을 소개시켜놨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셨습니다. 사진을 찍어서 전송해서 보니까 하나님께서 자세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준 것의 이름을 성경이라고 말합니다. 사진이라기 보다 설명서입니다. 하나님을 설명한 게 신구약 성격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하나님을 자세하게 설명한 게 설명이고 이 속에는 하나님의 속성과 모든 역사 구원 역사입니다. 자세하게 알 수 있도록 적어주신 것이 성경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역사서가 아니고 문학서적 교양서적이 아닙니다. 구원역사를 기록한 구원의 도리입니다. 성경 읽으면 구원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구원 역사하시는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이 사람이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분이고 다른 차원의 존재이기 때문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이거입니다. 나보다 아랫사람이 있습니다. 나이가 어려서 지식이 어려서 소꿉장난이겠지요. 중학생들은 숨기기도 하고 안 통할 수가 있습니다. 20대가 되면 대화가 잘 안됩니다. 세대차 때문에 안되는 거라고 그분들의 말을 이해못할 때가 있습니다. 같은 사람인데 그들은 보고 듣고 아는 말인데 아는 말이고 맞는데 나는 그 세계에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거지요.
500미터 산 꼭대기에 올라간 사람이 있습니다. 거기서 내려다봅니다. 700미터에서 올라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간격이 200미터인데 그거까지 다 보는데 700미터 밑으로 다 보이는데 500미터만 보입니다. 700미터 올라간 사람이 그 사이에 본 것을 말을 하면 500미터 올라간 사람이 이해를 합니까 안합니까. 500미터 올라가고 그 위 세계는 안가봤으니까. 700미터 올라간 사람은 보이는데, 한 5000미터 올라간 사람이 보면 다 보이는데 나는 안 봤는데 모르는 거지요. 가본 사람과 안 가본사람 겪어본사람과 안 겪어본 사람은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여행을 많이해서 견문을 넓히려고 합니다. 요즘은 인터넷 시대고 안가봐도 알지만 직접 가본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살아본 사람과 안 살아본 차이는 있는데 하물며 짐승과 사람을 비교하면 똑똑한 강아지라도 사람의 세계는 모르는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없는 가운데에서 만드신 분입니다. 이런 것을 믿을 때 믿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에 목적을 정하셨는데 이런 일을 하셨더라고 했는데 그 모든 말씀 믿음들이 다른 내용이고 그대로 믿기가 어렵다는 거지요
언제 어느 고속도로에서 사건이 났다더라 사고를 쳤다거나 이런 건 사람의 일상이라서 들으면 인정을 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더라. 로또를 샀는데 당첨되었다더라. 기록했기 때문에 알 수 있는데 어려울뿐더러 믿기가 어려운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믿음의 도라는 말은 하나님이 알기 어렵고 믿기 어려운 사실을 믿을 때 비로소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걸 가르켜서 믿음의 도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다. 생과 사와 흥망성쇠 모든 것을 하는 거라서 그렇게 성경에 기록이 됐는데 믿음의 도라는 그 말은 성경의 말대로 믿고 그러면 나가서 신앙의 복을 받는다. 이루어진다. 이걸 믿음의 도라고 하는 겁니다. 깨달은 종들도 믿음은 전지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그러면 깊이 들어가서 믿음이란 세 가지입니다. 지식, 인정, 실행입니다. 알고 인정하고 사는 걸 가르켜서 그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주관적인 선입적 관념 이게 다 틀립니다.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에스겔 성전에서 뭘 말합니까. 동쪽을 향하여 천계로, 하나님 관점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상식 다 버리고 통계 다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기를 부인하면 됩니다. 세상을 부인하고 그대로 하면 됩니다. 진실한 믿음이고 그게 믿음입니다. 성경을 해야하지 않느냐 성경의 틀린 해석은 전통교리라는 것은 해석인데 역사성을 가져서 세월 속의 성경으로 증명이 될 때 전체가 다 맞을 때 통일성 사회성 그게 인간의 해석인데 믿음이란 하나님 말씀 성경 말씀 전하면서 들으면서 우리 자신을 둘러보고 증거를 살펴봐라고 했는데 우리 믿음을 한 번 돌아봐야겠습니다.
깊이 들어가서 믿음에는 종류가 몇 개 있습니다. 믿음은 종류가 있는데 교리적으로 두 종류가 있습니다. 아마도 공회에서만 가르치는 것일겁니다. 일반 교계 교리로는 두 종류로 어렵겠습니다. 믿음의 종류는 기본 믿음이 있습니다. 건설 믿음이 있습니다. 기본 믿음이란 택자, 중생된 사람 믿게된 이건 전적 은혜입니다. 부르심까지는 전부 은혜입니다. 택했기 때문에 때가 되면 믿게 되어집니다. 나는 노력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을 잘 몰라도 종교성이 생깁니다. 그런 소식이 들리기도하고 예수를 믿어봐야겠다. 이건 사람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역사하신 건데 이걸 기본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 믿음을 기본 믿음이라고 합니다. 기본 구원에 속한 믿음입니다.
건설 구원은 중생시킨 사람인데 형상이 있으니 그 형상을 가르켜서 뭐라고 합니까. 자유성이라고 하지요. 그 주신 자유성으로 말씀 믿어지는 믿음을 전부 살아가는 그 역사가 있습니다. 믿음을 가르켜 건설믿음이라고 하고 믿음의 도란 어떤 것인가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이다. 종류가 있습니다. 기본 믿음이 있고 건설 믿음이 있다. 건설 믿음은 자유성으로 길러가시는 건설구원으로 가는 것이다. 교리입니다. 우리 교회 1층에 비디오 테이프를 1만개를 가져다놨다고 선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교회가 총공회 이름 붙인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1층에 커피집을 합니다. 도서관으로 꾸몄습니다. 교회란 곳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이 교회이고 섬기는 곳이 교회입니다. 3살짜리 아이도 아는 상식입니다. 이게 통하지 않는 것이 요즘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미친 세상이라고 합니다. 온 세상은 그래도 남자는 남자라야하고 자녀는 자녀야하고 정상이지 그러면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이고 노아시대 때 온 세상이 다 무너져도 세상이 이어졌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무너져도 생명 붙든 사람이 있으면 그리되는 겁니다. 본문에는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믿음이 있는데 행함을 하는건데
교리적으로 기본 믿음 건설믿음, 본문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행동에 따라가는 믿음이고 실제로 따라가는 믿음이 있다. 그러면 본문을 가지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어떤 것이며, 만약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어떤 이익이 있으리오, 이익이 없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양식이 있는데 너희 중에 말하기를 더웁게하라 입을 거 먹을 거 주지 않으면 무슨 이익이 있느냐.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없는 믿음입니다. 14절에 구원하겠느냐. 구원이 되지 않는 믿음입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세 번째 혼이 몸을 떠날 때 죽는 것이라고 합니다. 행함이 없는 건 죽은 믿음이 됩니다 네 번째 행함으로 내 믿음을 보이겠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보일 수 없는 믿음입니다. 그 다음 다섯 번째 19절 보시겠습니다.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귀신들도 믿고 떱니다. 하나님을 믿는 짓이 하는 짓이 귀신 짓을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데 귀신노릇하는게 다섯 번째고 귀신 믿음이 되는겁니다. 믿음을 가르켜서 허탈한 사람아 행함없는 믿음을 알고자 하느냐. 헛것이다 그 말이지요. 마지막 일곱 번째로 어떤 믿음이냐 믿음이 함께 일하고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는데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게 됩니다.
믿음은 가졌는데 행함이 따라가지 않으면 각자 자신을 돌아봐야합니다. 나는 믿느냐 정말 믿느냐 그러면서 믿는 사람이 믿음만 가져도 행함이 없을 수 있다. 구원이 없습니다. 죽은 믿음이 됩니다. 행함없는 믿음은 귀신 믿음입니다. 헛된 믿음 허탕한 믿음이 됩니다. 일을 못하는 믿음이 됩니다.
반대로가면 의로운 믿음이 됩니다. 온전한 믿음이 됩니다. 일하는 믿음이 됩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과 없는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가장 중요한건데 실제 생활에서 본문에서 믿음을 가졌는데 일곱가지, 믿음의 결과로 어떤 결과를 맺으며 그런 것을 말씀했고 행함 없는 믿음은 믿음의 모습이냐 경험에서 찾아보는 겁니다. 희생없는 믿음입니다. 십자가를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 자신을 희생할 때 내 물질과 시간과 나 자신을 바칠 때 희생이 됩니다. 충성이 없는 믿음 노력 없는 믿음 충성 자기를 다 바치는 겁니다. 다른 게 아니고 성경은 아이들에게 자기 자녀에서 열심히 노력이라고 해서 아이가 아들 딸이 열심히하면 그게 부모를 위해서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 부모의 잔소리가 자꾸 튀어나버리게 되는데 충성해라 마음과 뜻을 바쳐라 이게 구원이 되기 때문에 그런겁니다. 노력이 없는 믿음 수고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세 번째 승리가 없는 믿음입니다. 말씀대로 할 때 승리가 오는데 승리가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패자를 지금은 환자고 과정이기 때문에 살피시나 마지막은 패전한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집어던지는 곳을 지옥이라고 합니다. 조절한 건 조절해야합니다. 계속해야합니다. 현재가 없는 믿음 이게 무슨 뜻인가 과거를 돌아보면 죄송합니다 후회합니다.
마음과 말만 있는 믿음입니다. 마음도 있고 말만 있는데 행동이 없는 믿음입니다. 마음도 있고 말도 합니다. 추우면 옷을 입어라 그런데 하나라도 주고 따라가야하는데 마음과 말만 백날해야 소용이 없는겁니다.
자기만 좋게하는 믿음이 됩니다. 말도 합니다 자기만 좋게합니다. 객관이 없는 믿음이 되는 거지요. 첫 번째, 희생, 두 번째 충성, 세 번째 승리, 네 번째 계속, 다섯 번째 현재, 여섯 번째 행동. 일곱가지 없는 믿음이 될 때 귀신 믿음이고 다 보일 수 없는 믿음이 되는것이고 행하는 믿음이 될 때 참믿음이 되는 겁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일곱가지 기준으로 돌아보십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