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04-주전(한줄요약)
정초연2021-07-04조회 262추천 25
210704-주전(한줄요약)
■ 말씀 본문: 마태복음 7:1 ~ 6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 서론: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으실 때 다 다르게 지으셨습니다. 태어나는 장소도 다르고 시간도 다르고 또 환경도 다르고 자라나는 과정도 다 다르고 또 성향도 성격도 외모도 다 다르게 지으셨습니다. 사람마다 주신 그 분량이나 다 다릅니다. 은사가 다르다 그리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 주신 분량에 따라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는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되어 집니다. 받은 분량이 좋고 많으면 사람들이 볼 때 실력 있는 사람, 훌륭한 사람. 위대한 사람이 되어지고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지고, 받은 분량이 적고 얕고 약하면 사람들 볼 때 고만 고만한 보통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고, 더 작고 적으면 사람들 볼 때 못난 사람, 좀 실력 없는 사람, 낮은 사람, 약한 사람으로 그렇게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선천적인 은혜라 그리 말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실 때 다르게 주셨으니까 우리는 알아야 하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을 볼 때 하나님께서 사람마다 똑 같이 만들지 아니하고 사람마다 주신 은혜가 다르기 때문에 그 받은 은혜가 다름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각 사람의 생활의 모습과 그 사람의 됨됨이나 실력이나 이런 것들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고 실력 있는 사람, 좀 잘난 사람은 자기를 기준 삼아 나는 이런데 너는 왜 그러냐 이런 마음이 되기 쉽고 이런 말도 하기 쉽습니다.
본문에 그 말씀을 들어가기 전에 사람은 누구나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장점과 단점이 각각 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천하 모든 사람 중에 장점만 가진 사람은 아무도 결코 없습니다. 동시에 단점 만 가진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온 세상 사람에게 다 존경받고 역사적으로 위대한 그 인물도 찾아보면 단점은 다 있습니다. 천하 몹쓸 사람이라고 모든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는 사람도 찾아보면 장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6천년 역사에 아담과 하와의 자손으로 난 사람을 보통사람. 일반사람이라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자손으로 나지 아니한 사람은 천하에 아무도 없고 우리와 같은 심신의 사람 중에 아담으로 나지 아니한 특수법칙으로 난 단 한사람, 예수님만 예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영, 마음, 몸이 있으셨고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데 아담의 자손인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태어났지 종자가 아담의 종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아담을 첫째 아담, 예수님을 둘째 아담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원죄가 없고 아담의 원죄가 적용되지 아니하고 예수님 한 분은 그분에게는 단점이 없습니다. 먼지만한 것도 없습니다. 그분은 날 때도 그랬고 평생을 통해도 완전하게 사셨습니다. 키와 지혜가 자라가셨다고 하셨으나 자라간다는 것은 불완전하다 뜻이 아닙니다. 어리다는 뜻이고 그래서 주님은 단점이 없는 완전한 분이셨고 그 외에 그분은 우리 구주로 오셨으니까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나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닮아갈 수 있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리적으로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교리는 사람의 뼈대와 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 심장이 중요하고 뇌가 중요하고 장기,혈관이 다 중요한데 뼈가 부러졌다고 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뼈는 부러지면 다시 붙기도 하고 어찌보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으나 뼈가 없으면 사람은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문어처럼 됩니다) 그래서 교리가 없는 사람은 바른 신앙생활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 읽기가 중요하고 성경 속에 교리 신조를 세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 사람은 몸과 마음과 영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교리입니다. 예수님은 둘째 아담으로 오셨고 원죄가 없다. 그분은 완전한 사람, 참 사람, 참 하나님, 이것을 가리켜서 신인양성일위라 그럽니다. 이것은 교리라 그럽니다. 중요합니다.
예수님, 그분 한 분은 완전했고, 그 외에 6천년이란 시간 속에 수많은 사람들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다 가졌습니다. 정도 차이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알고 보면 어떤 사람에게 백 가지가 있는데 장점이 아흔 아홉가지가 있고 단점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은 99%만 완전하고 1%만 미달했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그 사람이 가진 1%의 단점은 그 사람의 99가지 장점을 다 잡아먹을 수 있는 단점입니다. 보통입니다. 일반적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99가지 단점밖에 없고, 장점은 하나 밖에 없는데 그러니 그런 사람은 천하 몹쓸 사람인데, 그 한 가지 장점이 99가지 단점을 덮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반입니다.
사람을 겪어 보면, 사람은 대동소이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는 흰머리 앞에 일어서라” 노인을 공경하라는 말은 머리가 희고 인생을 오래 살았으니까, 나이 많으니까 선배로, 어른으로 그냥 대접하란 말이 아닙니다. 세월 속에 밥을 먹은 만큼, 보고 듣고 접촉을 하고 느끼면서 경험하고 체험한 것이 그 속에 경륜으로 연륜으로 쌓이는 겁니다. 그래서 무서운 사람입니다. 함부로 대하는 게 아닙니다. 어른들 말을 들어서 손해 보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젊을 때는 다 모르지만 세월 지나면 다 그런 것이고 사람을 겪어보면 그 중에는 예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보자면(일반적) 보통 사람들은 거기서 거기지 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인물이 잘났으면 그 인물이 잘난 만큼 반드시 그 인물을 넘어설 수 있는 약점이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인물이 못났으면 그 못남을 넘어서는 장점이 있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는데 그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실행하는 그 면에서 우리 장단점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을 볼 때 참고할 수 있는 것이고,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말씀을 행하는데 있어서 장단점이 있어 듣고 깨달아 알긴 알았는데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은 잘 지키고 어떤 사람은 저 말씀을 잘 지키는 그런 면들이 있다는 것이고, 이게 장단점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분은 전도를 참 잘합니다. 전도는 참 잘하는데 기도는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앉아서 명상하고 생각하는 것은 잘하나 전도는 잘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충성은 열심히 하지만 연보생활에 빈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연보는 참 잘하는데 어떤 부분에서 빈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사계명은 꼬박꼬박 잘 지키는데 오계명은 못 지키는 분이 있습니다. 부모님 효도는 잘하는데 삼계명은 못 지키는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볼 때 이 면을 바탕으로 하고 남의 약점, 단점, 부족한 점, 넘어지는 부분을 볼 때 자기를 돌아보며 모든 사람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은 실상입니다. 말씀을 듣고 실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장단점을 알고 행해야 합니다. 신앙의 기본으로 기억할 것.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교만이란 자기를 모르는 것. 자기중심에 하나님이 자기 주인 되지 않으니 자기를 잊어버리고 자기를 모르게 되니까 자기 지위를 벗어나 타락하는 것이 인간의 범죄, 교만입니다. 그래서 교만이란 죄와 연결되는 것이고 자기를 모르면 자기 처소를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죄에 이르는 것이고 멸망의 선봉이 되는 겁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라”. 의식주 염려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지금 시대는 먹을 것이 풍족해서 넘치고,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이 풍족한 시대라서 기본적 염려는 하지 않지만, 질적인 것을 찾아서. 먹는 것도 장소를 가려서, 더 영양적인 것, 보기도 좋은 것, 분위기도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이것이 무저갱입니다. 그런 것을 아예 염려도 하지 말고 거기 욕심 두지 말라는 이 말씀이 마태복음 6장 끝에 말씀이었습니다. 염려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들은 이방인들이다 구하는 것이니 염려는 하나님께 다 맡겨두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우리가 할 것은 먼저 그 나라 (통치) , 그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머리로 임금으로 주인으로, 모든 생활의 중심이 그 중심이 되고 그래서 공부를 하든지 예배를 드리든지 직장생활 가정생활, 기쁘든지 슬프든지, 하나님의 뜻만 찾아 순종하고 어떤 일이나 하나님을 중심으로 원동이 될 때 그 사람은 이 세상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피동되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채우시게 된다. 이것이 지난 주 말씀이었습니다.
■본론:
비판이란 말은 잘 잘못을 가리고 따지고 살펴서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대개 보면 비판이란 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 대해서 많이 합니다. 북한에서는 자아비판이라는 것을 합니다. 사상이 틀렸고 정치체계가 다를 뿐이지 거기 속에서도 옳고 가치 있는 것이 있고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를 살피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말씀은 자아비판이 아니고 다른 사람 남을 비판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말, 다른 사람의 행동, 다른 사람의 생활, 다른 사람의 모든 일 처리, 다른 사람의 관계, 다른 사람들의 모든 여러 가지 활동에서 남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 그의 말이 들려지고 그의 생활이 눈에 보여지고 그의 일처리가 내 눈에 보이고 그의 대인관계, 잘 못된 것이 눈에 보일 때. “ 왜 말을 저리 하지? 왜 저런 말을 하지? 왜 인사를 안 하지? 또 일처리를 저렇게 자기중심으로 하지? 혈육중심으로 하지? 왜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지? 왜 생활이 엉망이지?” 자기 주변사람들의 그런 것이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자기는 잘 보지 않습니다. 자기를 보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자기 얼굴을 볼 때 거울 보시지요. 그래서 각각 가정마다 거울을 붙여 놓는 것은 좋은 것이 맞습니다. 백목사님 방에는 거울이 일곱 개? 여덞개? 그리 넓지도 크지도 않은 방에 거울을 많이 두셨습니다. 가는 곳마다 거울 보며 자기를 살피는 겁니다. 자기 모습 살피고 자기를 살피려면 거울을 보면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를 보려면? 인정하기 힘들지만, 부모의 거울은 자녀입니다. 자기를 알려면 거울을 보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는 잘 안 보이는데 남은 그렇게 잘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생각으로 마음으로 속으로 가까운 사람들끼리 사람을 두고 길다 짧다 논한다. “논인장단”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전부 다 따지고 보면 사람에 대한 비판, 사람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논하는 것입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을 하지 말아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사물관계는 중요하고 사물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관계, 인간관계입니다. 모든 것을 바로 하려면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관계를 바로 해 나가려면 상대방의 형편과 처지를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른 관계를 맺으려면 알아야,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살펴보면 보이는 게 사람이고 눈으로 보면 그 사람이 하는 말, 말을 들어보면 상대방 말이 생각이 나고 사람의 목소리, 말속에 예의가 바른지, 논리가 정연한지, 진실성 등..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는 것. 그 사람의 말, 기도, 설교를 들어 보면, 대화 해보면,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판단이 되고 사람이 보이고 겪어 보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주 접하는 사람의 생활은 알게 됩니다. 알게 되면 그에 대한 생각이 들어오고 , 판단하게 되어 있고 보통 자기와 관련된 사람은 그의 모든 언행과 관계와 생활과 일처리를 보면 생각이 나고 판단하고 비판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판은 하게 되어 있고 할 수 밖에 없고 해야 되는 것이 비판입니다. 비판은 하지 말라고 무조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러면 무조건 비판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비판은 할 필요가 있을 때는 해야 하는 것입니다. 비판이라는 것은 살피는 것, 살펴 보는 것입니다. 당연히 따져봐야 합니다. 자아비판은 말할 것도 없고 부부관계, 자녀관계, 친구관계에서도, 사람을 상대할 때 잘잘못을 모르고 상대할 수 없고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없습니다. 비판은 필요한 것이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비판은, 비판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이 비판은, 내가 다른 사람을 비판함으로 내가 다른 사람을 비판한 그 비판으로 다른 사람이 나를 비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메랑이 되어 나한테 돌아오는 경우가 있고 잘못된 비판이라 그 뜻입니다. 동시에 나는 사람을 비판했는데 내가 비판할 때 나를 비판하는 것은 나한테 비판 받은 사람이나 또는 제 3자가 내가 비판하는 것을 보고 비판하는데 그것이 잘못된 비판이니까 나를 보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정죄적인, 심판적인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판해야 되는 것은 왜 해야 되며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가? 구원의 목적의 비판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빼놓고 감정적으로, 심판적, 정죄적으로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그렇게 사람을 비판을 하는 것은 어떤 경우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사람의 구원을 위해, 참 사람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과 연결시키기 위한 동기의 비판은 조심스럽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정, 심판, 자기 기준으로 하는 비판, 사랑, 구원 목적을 빼고 하는 비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 속 양심의 비판은 하나님의 비판입니다. 비판은 굉장히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큰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어떤 분들은 기본적으로 받은 은혜가, 마음이 너그럽고 품이 넓고 포용력이 넓어 다른 사람을 좀처럼 비판하지 않는 그런 분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이런 말씀은 직접적으로 해당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다 해당될 수 있습니다. 비판하지 말아라. 비판 받지 아니하려면 비판하지 말아라. 조심해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많이 걸리는 것입니다. 구원 목적이 아닌 것은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구원 목적으로는 할 수 있습니다.
헤아리지 말아라. 헤아리는 것은 비판 속에 들어 있는 것인데 헤아린다는 말은 세밀하게 계산하는 겁니다. 하나, 둘, 셋, 세밀하게 따지고 계산하는 것을 헤아림이라고 합니다. 너희의 헤아림으로 다른 사람을 헤아리는 것이 구원 목적.동기가 아니고 , 그 사람을 살리고 만들어 보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잘못을 세밀하게 따져 조심스럽게 기도하고, 알려서 고치려고 하는 동기 목적이 아니고, 흠이 없는 사람을 세밀하게 따져서 기어코 흠을 잡아서, 다니엘의 정적들이, 식민지속국의 백성이 왕한테 잘 보여서 특수교육 받고 총리가 되고 하니까 정치가들이 시기해서 다니엘을 끄잡아 내리기 위해 털어서, 끌어 내리려 햇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털어봐야 먼지가 아닌 보통 아닌 사람입니다. 요셉, 다니엘 이런 분들은 보통 인물이 아니고 초인적인 신앙생활을 한 분이고, 하나님과 동행 한데서 생긴 능력입니다. 정치가들이 안되니까 마지막에는 다니엘을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걸어서, 기도하는 것을 걸어서 걸러 내듯이 이렇게 사람을
■ 말씀 본문: 마태복음 7:1 ~ 6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 서론: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으실 때 다 다르게 지으셨습니다. 태어나는 장소도 다르고 시간도 다르고 또 환경도 다르고 자라나는 과정도 다 다르고 또 성향도 성격도 외모도 다 다르게 지으셨습니다. 사람마다 주신 그 분량이나 다 다릅니다. 은사가 다르다 그리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 주신 분량에 따라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는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되어 집니다. 받은 분량이 좋고 많으면 사람들이 볼 때 실력 있는 사람, 훌륭한 사람. 위대한 사람이 되어지고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지고, 받은 분량이 적고 얕고 약하면 사람들 볼 때 고만 고만한 보통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고, 더 작고 적으면 사람들 볼 때 못난 사람, 좀 실력 없는 사람, 낮은 사람, 약한 사람으로 그렇게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선천적인 은혜라 그리 말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실 때 다르게 주셨으니까 우리는 알아야 하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을 볼 때 하나님께서 사람마다 똑 같이 만들지 아니하고 사람마다 주신 은혜가 다르기 때문에 그 받은 은혜가 다름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각 사람의 생활의 모습과 그 사람의 됨됨이나 실력이나 이런 것들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고 실력 있는 사람, 좀 잘난 사람은 자기를 기준 삼아 나는 이런데 너는 왜 그러냐 이런 마음이 되기 쉽고 이런 말도 하기 쉽습니다.
본문에 그 말씀을 들어가기 전에 사람은 누구나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장점과 단점이 각각 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천하 모든 사람 중에 장점만 가진 사람은 아무도 결코 없습니다. 동시에 단점 만 가진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온 세상 사람에게 다 존경받고 역사적으로 위대한 그 인물도 찾아보면 단점은 다 있습니다. 천하 몹쓸 사람이라고 모든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는 사람도 찾아보면 장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6천년 역사에 아담과 하와의 자손으로 난 사람을 보통사람. 일반사람이라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자손으로 나지 아니한 사람은 천하에 아무도 없고 우리와 같은 심신의 사람 중에 아담으로 나지 아니한 특수법칙으로 난 단 한사람, 예수님만 예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영, 마음, 몸이 있으셨고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데 아담의 자손인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태어났지 종자가 아담의 종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아담을 첫째 아담, 예수님을 둘째 아담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원죄가 없고 아담의 원죄가 적용되지 아니하고 예수님 한 분은 그분에게는 단점이 없습니다. 먼지만한 것도 없습니다. 그분은 날 때도 그랬고 평생을 통해도 완전하게 사셨습니다. 키와 지혜가 자라가셨다고 하셨으나 자라간다는 것은 불완전하다 뜻이 아닙니다. 어리다는 뜻이고 그래서 주님은 단점이 없는 완전한 분이셨고 그 외에 그분은 우리 구주로 오셨으니까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나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닮아갈 수 있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리적으로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교리는 사람의 뼈대와 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 심장이 중요하고 뇌가 중요하고 장기,혈관이 다 중요한데 뼈가 부러졌다고 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뼈는 부러지면 다시 붙기도 하고 어찌보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으나 뼈가 없으면 사람은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문어처럼 됩니다) 그래서 교리가 없는 사람은 바른 신앙생활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 읽기가 중요하고 성경 속에 교리 신조를 세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 사람은 몸과 마음과 영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교리입니다. 예수님은 둘째 아담으로 오셨고 원죄가 없다. 그분은 완전한 사람, 참 사람, 참 하나님, 이것을 가리켜서 신인양성일위라 그럽니다. 이것은 교리라 그럽니다. 중요합니다.
예수님, 그분 한 분은 완전했고, 그 외에 6천년이란 시간 속에 수많은 사람들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다 가졌습니다. 정도 차이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알고 보면 어떤 사람에게 백 가지가 있는데 장점이 아흔 아홉가지가 있고 단점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은 99%만 완전하고 1%만 미달했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그 사람이 가진 1%의 단점은 그 사람의 99가지 장점을 다 잡아먹을 수 있는 단점입니다. 보통입니다. 일반적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99가지 단점밖에 없고, 장점은 하나 밖에 없는데 그러니 그런 사람은 천하 몹쓸 사람인데, 그 한 가지 장점이 99가지 단점을 덮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반입니다.
사람을 겪어 보면, 사람은 대동소이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는 흰머리 앞에 일어서라” 노인을 공경하라는 말은 머리가 희고 인생을 오래 살았으니까, 나이 많으니까 선배로, 어른으로 그냥 대접하란 말이 아닙니다. 세월 속에 밥을 먹은 만큼, 보고 듣고 접촉을 하고 느끼면서 경험하고 체험한 것이 그 속에 경륜으로 연륜으로 쌓이는 겁니다. 그래서 무서운 사람입니다. 함부로 대하는 게 아닙니다. 어른들 말을 들어서 손해 보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젊을 때는 다 모르지만 세월 지나면 다 그런 것이고 사람을 겪어보면 그 중에는 예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보자면(일반적) 보통 사람들은 거기서 거기지 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인물이 잘났으면 그 인물이 잘난 만큼 반드시 그 인물을 넘어설 수 있는 약점이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인물이 못났으면 그 못남을 넘어서는 장점이 있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는데 그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실행하는 그 면에서 우리 장단점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을 볼 때 참고할 수 있는 것이고,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말씀을 행하는데 있어서 장단점이 있어 듣고 깨달아 알긴 알았는데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은 잘 지키고 어떤 사람은 저 말씀을 잘 지키는 그런 면들이 있다는 것이고, 이게 장단점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분은 전도를 참 잘합니다. 전도는 참 잘하는데 기도는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앉아서 명상하고 생각하는 것은 잘하나 전도는 잘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충성은 열심히 하지만 연보생활에 빈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연보는 참 잘하는데 어떤 부분에서 빈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사계명은 꼬박꼬박 잘 지키는데 오계명은 못 지키는 분이 있습니다. 부모님 효도는 잘하는데 삼계명은 못 지키는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볼 때 이 면을 바탕으로 하고 남의 약점, 단점, 부족한 점, 넘어지는 부분을 볼 때 자기를 돌아보며 모든 사람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은 실상입니다. 말씀을 듣고 실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장단점을 알고 행해야 합니다. 신앙의 기본으로 기억할 것.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교만이란 자기를 모르는 것. 자기중심에 하나님이 자기 주인 되지 않으니 자기를 잊어버리고 자기를 모르게 되니까 자기 지위를 벗어나 타락하는 것이 인간의 범죄, 교만입니다. 그래서 교만이란 죄와 연결되는 것이고 자기를 모르면 자기 처소를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죄에 이르는 것이고 멸망의 선봉이 되는 겁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라”. 의식주 염려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지금 시대는 먹을 것이 풍족해서 넘치고,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이 풍족한 시대라서 기본적 염려는 하지 않지만, 질적인 것을 찾아서. 먹는 것도 장소를 가려서, 더 영양적인 것, 보기도 좋은 것, 분위기도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이것이 무저갱입니다. 그런 것을 아예 염려도 하지 말고 거기 욕심 두지 말라는 이 말씀이 마태복음 6장 끝에 말씀이었습니다. 염려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들은 이방인들이다 구하는 것이니 염려는 하나님께 다 맡겨두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우리가 할 것은 먼저 그 나라 (통치) , 그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머리로 임금으로 주인으로, 모든 생활의 중심이 그 중심이 되고 그래서 공부를 하든지 예배를 드리든지 직장생활 가정생활, 기쁘든지 슬프든지, 하나님의 뜻만 찾아 순종하고 어떤 일이나 하나님을 중심으로 원동이 될 때 그 사람은 이 세상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피동되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채우시게 된다. 이것이 지난 주 말씀이었습니다.
■본론:
비판이란 말은 잘 잘못을 가리고 따지고 살펴서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대개 보면 비판이란 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 대해서 많이 합니다. 북한에서는 자아비판이라는 것을 합니다. 사상이 틀렸고 정치체계가 다를 뿐이지 거기 속에서도 옳고 가치 있는 것이 있고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를 살피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말씀은 자아비판이 아니고 다른 사람 남을 비판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말, 다른 사람의 행동, 다른 사람의 생활, 다른 사람의 모든 일 처리, 다른 사람의 관계, 다른 사람들의 모든 여러 가지 활동에서 남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 그의 말이 들려지고 그의 생활이 눈에 보여지고 그의 일처리가 내 눈에 보이고 그의 대인관계, 잘 못된 것이 눈에 보일 때. “ 왜 말을 저리 하지? 왜 저런 말을 하지? 왜 인사를 안 하지? 또 일처리를 저렇게 자기중심으로 하지? 혈육중심으로 하지? 왜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지? 왜 생활이 엉망이지?” 자기 주변사람들의 그런 것이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자기는 잘 보지 않습니다. 자기를 보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자기 얼굴을 볼 때 거울 보시지요. 그래서 각각 가정마다 거울을 붙여 놓는 것은 좋은 것이 맞습니다. 백목사님 방에는 거울이 일곱 개? 여덞개? 그리 넓지도 크지도 않은 방에 거울을 많이 두셨습니다. 가는 곳마다 거울 보며 자기를 살피는 겁니다. 자기 모습 살피고 자기를 살피려면 거울을 보면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를 보려면? 인정하기 힘들지만, 부모의 거울은 자녀입니다. 자기를 알려면 거울을 보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는 잘 안 보이는데 남은 그렇게 잘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생각으로 마음으로 속으로 가까운 사람들끼리 사람을 두고 길다 짧다 논한다. “논인장단”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전부 다 따지고 보면 사람에 대한 비판, 사람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논하는 것입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을 하지 말아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사물관계는 중요하고 사물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관계, 인간관계입니다. 모든 것을 바로 하려면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관계를 바로 해 나가려면 상대방의 형편과 처지를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른 관계를 맺으려면 알아야,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살펴보면 보이는 게 사람이고 눈으로 보면 그 사람이 하는 말, 말을 들어보면 상대방 말이 생각이 나고 사람의 목소리, 말속에 예의가 바른지, 논리가 정연한지, 진실성 등..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는 것. 그 사람의 말, 기도, 설교를 들어 보면, 대화 해보면,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판단이 되고 사람이 보이고 겪어 보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주 접하는 사람의 생활은 알게 됩니다. 알게 되면 그에 대한 생각이 들어오고 , 판단하게 되어 있고 보통 자기와 관련된 사람은 그의 모든 언행과 관계와 생활과 일처리를 보면 생각이 나고 판단하고 비판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판은 하게 되어 있고 할 수 밖에 없고 해야 되는 것이 비판입니다. 비판은 하지 말라고 무조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러면 무조건 비판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비판은 할 필요가 있을 때는 해야 하는 것입니다. 비판이라는 것은 살피는 것, 살펴 보는 것입니다. 당연히 따져봐야 합니다. 자아비판은 말할 것도 없고 부부관계, 자녀관계, 친구관계에서도, 사람을 상대할 때 잘잘못을 모르고 상대할 수 없고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없습니다. 비판은 필요한 것이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비판은, 비판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이 비판은, 내가 다른 사람을 비판함으로 내가 다른 사람을 비판한 그 비판으로 다른 사람이 나를 비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메랑이 되어 나한테 돌아오는 경우가 있고 잘못된 비판이라 그 뜻입니다. 동시에 나는 사람을 비판했는데 내가 비판할 때 나를 비판하는 것은 나한테 비판 받은 사람이나 또는 제 3자가 내가 비판하는 것을 보고 비판하는데 그것이 잘못된 비판이니까 나를 보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정죄적인, 심판적인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판해야 되는 것은 왜 해야 되며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가? 구원의 목적의 비판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빼놓고 감정적으로, 심판적, 정죄적으로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그렇게 사람을 비판을 하는 것은 어떤 경우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사람의 구원을 위해, 참 사람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과 연결시키기 위한 동기의 비판은 조심스럽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정, 심판, 자기 기준으로 하는 비판, 사랑, 구원 목적을 빼고 하는 비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 속 양심의 비판은 하나님의 비판입니다. 비판은 굉장히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큰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어떤 분들은 기본적으로 받은 은혜가, 마음이 너그럽고 품이 넓고 포용력이 넓어 다른 사람을 좀처럼 비판하지 않는 그런 분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이런 말씀은 직접적으로 해당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다 해당될 수 있습니다. 비판하지 말아라. 비판 받지 아니하려면 비판하지 말아라. 조심해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많이 걸리는 것입니다. 구원 목적이 아닌 것은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구원 목적으로는 할 수 있습니다.
헤아리지 말아라. 헤아리는 것은 비판 속에 들어 있는 것인데 헤아린다는 말은 세밀하게 계산하는 겁니다. 하나, 둘, 셋, 세밀하게 따지고 계산하는 것을 헤아림이라고 합니다. 너희의 헤아림으로 다른 사람을 헤아리는 것이 구원 목적.동기가 아니고 , 그 사람을 살리고 만들어 보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잘못을 세밀하게 따져 조심스럽게 기도하고, 알려서 고치려고 하는 동기 목적이 아니고, 흠이 없는 사람을 세밀하게 따져서 기어코 흠을 잡아서, 다니엘의 정적들이, 식민지속국의 백성이 왕한테 잘 보여서 특수교육 받고 총리가 되고 하니까 정치가들이 시기해서 다니엘을 끄잡아 내리기 위해 털어서, 끌어 내리려 햇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털어봐야 먼지가 아닌 보통 아닌 사람입니다. 요셉, 다니엘 이런 분들은 보통 인물이 아니고 초인적인 신앙생활을 한 분이고, 하나님과 동행 한데서 생긴 능력입니다. 정치가들이 안되니까 마지막에는 다니엘을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걸어서, 기도하는 것을 걸어서 걸러 내듯이 이렇게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