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6- 목새 (홍해를 건너며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은 살아야)
본문 : 시 136:13~15
1. 처음 만난 장애물 홍해
- 애굽의 장자를 치심으로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터 구출
- 처음 만난 장애물, 앞을 가로막은 홍해바다
-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시136:13)
- 가로막힌 것이 곧 홍해
- 건너가야만 살 수 있으나 건너갈 수 없음, 살아서는 건너갈 방법이 없음
- 200만 대군·대 무리의 건너갈 방법은 사실상 없음
- 뒤에는 애굽 병정들이 쫓아오고, 앞은 홍해바다가 가로막고
- 앞·뒤 모두가 막혀서 죽게될 상황
- 6.25 전쟁 1.4 후퇴 당시 전진을 거듭하던 연합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
미군들이 주로 된 흥남 철수 병력은 장비가 많음으로, 다 싣고 이동할 준비 중
흥남 철수에 몰린 난민 10만명, 건너가지 않으면 공산정권에 모두 죽을 목숨
그러나 다 태울 수는 없는 상황, 그 중 우리나라 한 통역가의 호소로 인하여
무기를 다 버리고 사람을 태움으로 10만명이 살게 됨
- 흥남철수 작전은 처량한 노래도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일화
그 당시 미군이 태우지 않았더라면 10만명 모두가 죽었을 것
(삭제) , 거제도에 정착하여 살아가게 됨, 10만명이 모두 그곳에서 내리게 됨
- 본문 홍해 앞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군대는 대략 200만명
- 건너서 광야로 들어올 방법이 있는가? 없음
- 시간·세월을 조금 들여서 돌아가면 될런지? 애굽의 마병·병거들이 오고 있음, 그 방법은 죽는 길
- 홍해바다는 곧 죽음
2. 죽음을 통과하는 방법은 오직 죽음 뿐
- 가나안 땅을 목적지 삼아
- ① 출애굽 -> ② 홍해바다 건너 -> ③ 광야 사막을 거쳐서 -> ④ 요단강을 건넘 -> ⑤ 가나안으로
- 첫 관문이 바로 홍해바다
- 건널 수 없음, 앞은 막혔고 뒤로 가면 죽음
- 앞은 빠져 죽고·뒤는 애굽병사들에게 맞아 죽음
- 홍해바다는 곧 죽음이나
- 하나님의 능력으로 통과하게 된 홍해바다의 역사
- 이스라엘이 살던 애굽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출되어 출애굽
- 무수히 많은 우리가 마주한 홍해바다, 죽을 수 밖에 없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바다가 갈라져서 통과하게 됨
- 오늘날 우리들에게 홍해바다의 역사는?
-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신앙을 출발하게 됨
- 앞의 가로막는 홍해바다가 존재함, 죽음이 존재함, 오직 죽음으로만 통과가 가능
- 어떤 죽음으로 죽음을 통과? 죽음을 이기기 위해선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
-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곧 죽음
- 죽으심으로 홍해바다의 죽음을 이기심
- 예수님의 죽으심을 믿을 때, 이를 내 죽음으로 삼을 때
- 홍해 바다의 죽음에게 '죽음을 통해 죽음을 이길 수 있음' , 홍해바다를 건너게 됨
- 사활의 대속, 죄로 인한 사망을 깨고
- 대속 역사 믿음으로 사망을 이김
3. 홍해바다의 또 다른 의미 '세례'
- 홍해바다의 의미는 크게 2가지
- ① 사망
- ② 세례 (성경해석 상 '홍해바다' = 세례)
애굽은 세상, 바로는 마귀
물에 빠져 죽음으로 물로 인해 다시 살게 됨
- 침례는 물에 완전히 빠져 잠간 죽는 상태
- 성경적으로는 침례가 유익이 많음
- 잠길 浸 한자를 사용할 것, (삭제) 잠간 물 속에 실제 들어가 숨막힘으로 실감이 크게 됨
- 성경속 세례, 주님꼐서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심 , 강물 속에 들어가서 물 속에서 안수 받으심
- 잠겨서 들어가셨을 지는 모를 일, 그러나 주님은 침례가 아닌 세례를 받으심
- 세례식은 곧 장례식
- 죽음으로서 죽음을 이기는 것
- 이를 믿으면 예수님의 죽음을 내 죽음으로 삼는 것
- 죄로 인한 죽음·사망을 기본구원 적으로 깨어버림
-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하여 가나안 땅을 향한 광야생활을 시작
- 광야 = 평생을 통한 교회생활
- 광야생활의 시작이 죽음의 홍해를 주님의 죽으심으로 통과하는 것
- 실질적인 건설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 죽음 곧 세례를 통해 죽음의 홍해바다를 건너
- 육은 죽고 영이 사는 역사 , 죽어야 사는 것
- 세례의 죽음으로 장사지내어 죽어버림
4.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살아야
- 죽음은 곧 아무것도 없는 것
- 어떤 죽음을 의미하는지?
- 새벽예배 참석자 중 세례교인이 대다수, '세례받을 때 죽는다'는 죽음은 어떤 죽음일까
- 그 죽음은 죄 짓는 사람이 죽는 죽음
- 죄 짓는 사람은 곧 옛사람
- 옛사람이 죽음은 곧 육이 죽고 영이 사는 것
- 옛사람이 죽음으로 새사람이 살아남
- 옛사람이 죽음으로 살아나게 된 새사람으로 살아야
- 이가 곧 광야생활·교회생활
- 홍해를 건널 때에 다 죽은 것
-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리심
- 그들의 생명은 더이상 그들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
- 다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정상적인 삶
- 홍해 바다에서 다 죽을 목숨들을 살리신 하나님
- 그러나 죽어야 되었을 그들이 살아서 펄펄 뛰어다님
- 죽어없어져야할 송장이 살아 돌아다님, 이 모든 것이 사망의 역사
-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40일의 정탐
- 죽어없어져야 할 그들이 자꾸 살아있음으로
- 정탐보고를 , 죽은 자는 죽은 것을 보고하고 새사람은 살아있는 것을 보고
- 대부분의 이스라엘은 '죽은 자의 정탐·판단·보고'를 듣고
- 모세·아론·여호수아· 갈렙 만이 살아있는 것을 정탐·판단·보고 하게 됨
- 거의 대부분의 이스라엘이 죽은자의 판단으로 울고 불며 살아있는 자 였던 '모세를 죽이고 돌아가자' 함
- 결국 그들은 가나안을 건너지 못하고 광야에서 실제 다 죽게 됨
- 광야생활은 홍해바다를 건너 죽어야 되나 완전히 죽지는 않고 살아있으니 이를 연습하는 과정, 이의 출발이 됨
-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홍해를 건넌 것이 실제 생활속에서 이어져야
- 진실을 실제 이루어 가는 것이 중요
- 기독교인은 모두 세례받은 사람, 그 속의 죄짓는 것들이 없어지고 새사람으로 살아야
- 광야 생활 속 죽은 사람의 생활을 버려야
- 이렇게 한만큼 가나안으로 바로 갈 수 있게 되는 것
- 홍해를 건넌 역사 = 사활의 대속·세례
- 오늘날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사는 것을 의미
- 죽은 자가 계속 죽어 있어야 (죽어야 되는 자는 죽은 것으로 계속되야)
- 이러한 죽음의 표면적인 모습이 바로 '성찬식'
- 세례식은 일생의 단 한번
- 세례식을 이어가는 것이 바로 성찬식, 둘은 같은 의미
- 이번 양성원 중 '천주교에서 받은 영세도 인정하는가'
문답·교리는 인정하지 않으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은 인정하기에 인정
- 안수는 1번이나, 그 내면은 계속 이어지는 것
-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전 11:26)
- 자주 성찬식을 가지면 좋겠으나 이를 예사로 여길 수 있기에
- 과거 서부교회는 1년에 1번, 총공회에서 1년의 1번 1년에 총 2번을 가짐
- 횟수는 제약이 없으니 유익한 대로 하면 됨 (1년에 1·2·3번)
- 1년에 1번이 가장 유익한 것 같으니 함
- 세례는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 , 이가 이어져야
- 세례 성찬은 곧 홍해에 빠진 우리가 '죽은 자는 죽고', 산 자로 살아가는 것
- 이가 곧 광야생활을 지나서 가나안을 향해 바르게 갈 수 있는 방법
1. 처음 만난 장애물 홍해
- 애굽의 장자를 치심으로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터 구출
- 처음 만난 장애물, 앞을 가로막은 홍해바다
-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시136:13)
- 가로막힌 것이 곧 홍해
- 건너가야만 살 수 있으나 건너갈 수 없음, 살아서는 건너갈 방법이 없음
- 200만 대군·대 무리의 건너갈 방법은 사실상 없음
- 뒤에는 애굽 병정들이 쫓아오고, 앞은 홍해바다가 가로막고
- 앞·뒤 모두가 막혀서 죽게될 상황
- 6.25 전쟁 1.4 후퇴 당시 전진을 거듭하던 연합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
미군들이 주로 된 흥남 철수 병력은 장비가 많음으로, 다 싣고 이동할 준비 중
흥남 철수에 몰린 난민 10만명, 건너가지 않으면 공산정권에 모두 죽을 목숨
그러나 다 태울 수는 없는 상황, 그 중 우리나라 한 통역가의 호소로 인하여
무기를 다 버리고 사람을 태움으로 10만명이 살게 됨
- 흥남철수 작전은 처량한 노래도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일화
그 당시 미군이 태우지 않았더라면 10만명 모두가 죽었을 것
(삭제) , 거제도에 정착하여 살아가게 됨, 10만명이 모두 그곳에서 내리게 됨
- 본문 홍해 앞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군대는 대략 200만명
- 건너서 광야로 들어올 방법이 있는가? 없음
- 시간·세월을 조금 들여서 돌아가면 될런지? 애굽의 마병·병거들이 오고 있음, 그 방법은 죽는 길
- 홍해바다는 곧 죽음
2. 죽음을 통과하는 방법은 오직 죽음 뿐
- 가나안 땅을 목적지 삼아
- ① 출애굽 -> ② 홍해바다 건너 -> ③ 광야 사막을 거쳐서 -> ④ 요단강을 건넘 -> ⑤ 가나안으로
- 첫 관문이 바로 홍해바다
- 건널 수 없음, 앞은 막혔고 뒤로 가면 죽음
- 앞은 빠져 죽고·뒤는 애굽병사들에게 맞아 죽음
- 홍해바다는 곧 죽음이나
- 하나님의 능력으로 통과하게 된 홍해바다의 역사
- 이스라엘이 살던 애굽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출되어 출애굽
- 무수히 많은 우리가 마주한 홍해바다, 죽을 수 밖에 없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바다가 갈라져서 통과하게 됨
- 오늘날 우리들에게 홍해바다의 역사는?
-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신앙을 출발하게 됨
- 앞의 가로막는 홍해바다가 존재함, 죽음이 존재함, 오직 죽음으로만 통과가 가능
- 어떤 죽음으로 죽음을 통과? 죽음을 이기기 위해선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
-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곧 죽음
- 죽으심으로 홍해바다의 죽음을 이기심
- 예수님의 죽으심을 믿을 때, 이를 내 죽음으로 삼을 때
- 홍해 바다의 죽음에게 '죽음을 통해 죽음을 이길 수 있음' , 홍해바다를 건너게 됨
- 사활의 대속, 죄로 인한 사망을 깨고
- 대속 역사 믿음으로 사망을 이김
3. 홍해바다의 또 다른 의미 '세례'
- 홍해바다의 의미는 크게 2가지
- ① 사망
- ② 세례 (성경해석 상 '홍해바다' = 세례)
애굽은 세상, 바로는 마귀
물에 빠져 죽음으로 물로 인해 다시 살게 됨
- 침례는 물에 완전히 빠져 잠간 죽는 상태
- 성경적으로는 침례가 유익이 많음
- 잠길 浸 한자를 사용할 것, (삭제) 잠간 물 속에 실제 들어가 숨막힘으로 실감이 크게 됨
- 성경속 세례, 주님꼐서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심 , 강물 속에 들어가서 물 속에서 안수 받으심
- 잠겨서 들어가셨을 지는 모를 일, 그러나 주님은 침례가 아닌 세례를 받으심
- 세례식은 곧 장례식
- 죽음으로서 죽음을 이기는 것
- 이를 믿으면 예수님의 죽음을 내 죽음으로 삼는 것
- 죄로 인한 죽음·사망을 기본구원 적으로 깨어버림
-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하여 가나안 땅을 향한 광야생활을 시작
- 광야 = 평생을 통한 교회생활
- 광야생활의 시작이 죽음의 홍해를 주님의 죽으심으로 통과하는 것
- 실질적인 건설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 죽음 곧 세례를 통해 죽음의 홍해바다를 건너
- 육은 죽고 영이 사는 역사 , 죽어야 사는 것
- 세례의 죽음으로 장사지내어 죽어버림
4.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살아야
- 죽음은 곧 아무것도 없는 것
- 어떤 죽음을 의미하는지?
- 새벽예배 참석자 중 세례교인이 대다수, '세례받을 때 죽는다'는 죽음은 어떤 죽음일까
- 그 죽음은 죄 짓는 사람이 죽는 죽음
- 죄 짓는 사람은 곧 옛사람
- 옛사람이 죽음은 곧 육이 죽고 영이 사는 것
- 옛사람이 죽음으로 새사람이 살아남
- 옛사람이 죽음으로 살아나게 된 새사람으로 살아야
- 이가 곧 광야생활·교회생활
- 홍해를 건널 때에 다 죽은 것
-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리심
- 그들의 생명은 더이상 그들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
- 다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정상적인 삶
- 홍해 바다에서 다 죽을 목숨들을 살리신 하나님
- 그러나 죽어야 되었을 그들이 살아서 펄펄 뛰어다님
- 죽어없어져야할 송장이 살아 돌아다님, 이 모든 것이 사망의 역사
-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40일의 정탐
- 죽어없어져야 할 그들이 자꾸 살아있음으로
- 정탐보고를 , 죽은 자는 죽은 것을 보고하고 새사람은 살아있는 것을 보고
- 대부분의 이스라엘은 '죽은 자의 정탐·판단·보고'를 듣고
- 모세·아론·여호수아· 갈렙 만이 살아있는 것을 정탐·판단·보고 하게 됨
- 거의 대부분의 이스라엘이 죽은자의 판단으로 울고 불며 살아있는 자 였던 '모세를 죽이고 돌아가자' 함
- 결국 그들은 가나안을 건너지 못하고 광야에서 실제 다 죽게 됨
- 광야생활은 홍해바다를 건너 죽어야 되나 완전히 죽지는 않고 살아있으니 이를 연습하는 과정, 이의 출발이 됨
-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홍해를 건넌 것이 실제 생활속에서 이어져야
- 진실을 실제 이루어 가는 것이 중요
- 기독교인은 모두 세례받은 사람, 그 속의 죄짓는 것들이 없어지고 새사람으로 살아야
- 광야 생활 속 죽은 사람의 생활을 버려야
- 이렇게 한만큼 가나안으로 바로 갈 수 있게 되는 것
- 홍해를 건넌 역사 = 사활의 대속·세례
- 오늘날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사는 것을 의미
- 죽은 자가 계속 죽어 있어야 (죽어야 되는 자는 죽은 것으로 계속되야)
- 이러한 죽음의 표면적인 모습이 바로 '성찬식'
- 세례식은 일생의 단 한번
- 세례식을 이어가는 것이 바로 성찬식, 둘은 같은 의미
- 이번 양성원 중 '천주교에서 받은 영세도 인정하는가'
문답·교리는 인정하지 않으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은 인정하기에 인정
- 안수는 1번이나, 그 내면은 계속 이어지는 것
-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전 11:26)
- 자주 성찬식을 가지면 좋겠으나 이를 예사로 여길 수 있기에
- 과거 서부교회는 1년에 1번, 총공회에서 1년의 1번 1년에 총 2번을 가짐
- 횟수는 제약이 없으니 유익한 대로 하면 됨 (1년에 1·2·3번)
- 1년에 1번이 가장 유익한 것 같으니 함
- 세례는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 , 이가 이어져야
- 세례 성찬은 곧 홍해에 빠진 우리가 '죽은 자는 죽고', 산 자로 살아가는 것
- 이가 곧 광야생활을 지나서 가나안을 향해 바르게 갈 수 있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