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5일 주일오후
김동민2020-03-15조회 212추천 26
2020년 3월 15일 주일오후
찬송: 29장, 117장
본문: 로마서 12장 1절 ~ 2절
기본적으로 사람이라면 사람의 최소한의 도리가 있고 생각이라던지 그런 것들이 있는 것인데 오전에 말한 그 부부는 사람으로써 할 수가 없는 짓을 한 것입니다.
어쨌든 다 잘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그런 것들을 가져야하는데
게임 만드는 회사가 우리나라 회사의 대기업인데, 이게 연봉도 높다고 그럴 건데, 그러면 다른 분들도 있겠지만 사람을 버려놓고 그런게 심합니다.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면 여러 가지로 위험합니다.
옛날에서는 담배가 돈을 엄청 버니까 나라에서 운영했습니다.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팔았습니다. 요즘에는 공익광고라고 하면서 하지말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안 그랬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기본적으로 알아야합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우리에게 닥칠 현실도 되지만 전체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 지난 주에 이어서 예배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주는 예배의 시간의 상황이 그러니까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봤고, 오늘은 알고있지만 깊은 걸로 공부를 합니다.
기독교 생활의 주요한 것은 말씀을 따져서 보다 더 아름답고, 가치있고, 영광스러운 것을 잡는 것이 신앙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사대주의인 동시에, 영리주의인 동시에 이건 최고로 좋은 것을 지향해 나가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봉사처럼, 비영리처럼 말하지만 기독교는 영리주의입니다.
기독교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이고, 이타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입니다.
하나님은 이타 주의가 아니라 철두철미한 이기주의입니다. 완전자이기 때문입니다.
완전자 하나님을 내 속에 모십니다. 그래서 독재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주교의 교황제도는 바울로 시작되었을 것이고 전해졌을 겁니다.
신천지에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거기 있는 거 아닙니다. 전부 자기들이 원해서 가는 겁니다.
백목사님 초기에 가정이 파괴된 게 얼마나 많습니까. 안 믿는 남편들이 막 예배당 찾아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 백 목사님은 은혜로운 것만 나오고, 저쪽은 깊이가 얕으니까 보니까 드러나 버리니까 흩어져버렸지요.
초등학교는 학습을 할 때 요즘에는 변질되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원래대로라면 거의 완벽하게 통제를 해야합니다. 중등까지도 통제가 많지요. 고등에는 자율학습이 많습니다.
대학교가면 통제는 거의 안하죠.
어릴수록 모든 것은 다 통제를 해야합니다. 통제는 무엇의 반대말입니까? 자유를 빼앗는 것이 통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이 사람 만들어 가는 자연의 논리입니다. 이것을 어기면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외국에는 서 너살 되면 혼자 재우는데 그것도 통제입니다. 모든 것이 나오고 보니 통제인 겁니다.
나라도 미개할 때는 독재자가 독재를 해야지 되는 겁니다. 그때 자유롭게 풀어놓은 필리핀같은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못 삽니다.
민주화 투사들이 어떻고 저쩌고 하는데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국민성보면 자유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어차피 자본주의 국가니까 어느정도 되면 풀리게 되어있습니다. 지금도 그러잖습니까. 그래서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유성으로 맡겨 놨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목회자가 목회를 제대로 하려면 오래 해야하고, 편하게 한다면 판하게 하는 것이 목회자입니다. 특히 우리 공회 교인들은 알아서 다 맡겨 놓으니까 살펴보면서 간섭도하고 하기는 하겠지만 교역자가 다 맡겨놓으면 편합니다.
그런데 제대로 하려고 하면 백 목사님, 홍 목사님, 서 목사님 같은 분.. 서른 아홉에 가신 분. 그때는 얼마나 젊은 건지 몰랐습니다. 그 때 서른 아홉이 얼마나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고 충성을 하신 건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교역자들이 그렇게 충성하다보면 목숨을 걸기도 하고 안 그러면 자유롭게 하기도 하는데 자유로운 것은 언제나 책임이 따릅니다.
목회하다가 뭐가 가장 어렵습니까 하면 나를 다스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회의 모든 개인공회라는 것이 들어있는 것이 공회입니다. 가장 강한 통제면서 자유로운 곳이 우리 공회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위에 총회있고 뭐 있고 뭐 있어서 일반계 교인이 위로 가서 하면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법으로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심지어 주일학생 하나까지도 우리교회 주일학생이 실질적이면서 그런데 아마 우리 공회 주일학생이 신풍 목사님께 가서 보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잘 모르는 사람은 우리 교인이 그러는 것이 수치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자격미달이라고도 합니다.
백 목사님보다 높으신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죠.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바로 되어있으면 어떤 것도 생기지 않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생겨도 예수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원망 책임을 돌리는 것은 죄이고 예외는 없습니다.
원망하면 심판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걸 깨달아야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어지는 겁니다. 이래서 산 제사라는 말이 있는데 이걸 좀 생각해 봐야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여기에 하나님의 주권이 나와있습니다.
예배를 말씀하면서 앞에 하나님을 말하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생각해야겠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그는 영이시다.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시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높은 걸 볼 때 마다 하나님이 높은 생각을 하고, 큰 걸 볼때마다 하나님이 높으신 걸 생각을 하고..
하나님을 아는 만큼이 신앙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생각을 하는겁니다. 이런 분 앞에 예배를 드리니까..
형제들아. 동등성입니다. 너도나도 같은 동등성. 실질적으로 보면 부자, 사제가 다르지만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은 다 같고.. 우린 여기서 굉장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동시에 조심해야합니다.
백 목사님과 우리가 신앙적으로 형제다라고 하는데 동등하다는 겁니다. 나도 백 목사님처럼 될 수 있는 것이고 될 수 있었는데 되지 못한 것이고, 나도 만약에 세월 속에 저 분처럼 살았다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되지 못한 이유가 뭘까.
그렇게 들어가보면 다 내 탓이지 남 탓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 사도 바울은 사도 바울이 되는데 왜 나는 나 밖에 되지 못하는가.
요셉은 서른 살에 총리가 되었는데 왜 나는 그렇게 되지 못하는가.
형제들아 여기서 생각을 해 보고..
사도 바울의 뭔지 아십니까? 성령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백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지능을, 사람이 끌어 쓸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전지를 전능을, 사랑을 자비하심을 그것은 초월하지 않은 것이니 내가 가져올 수 있습니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것은 사도 바울만큼 가져왔습니다.
형제를 위해,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자기를 바쳤습니까.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긍휼 그런 것들을 가져온겁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글을 쓰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쓰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안에는 하나님의 것인데 겉으로는 사도 바울의 것이 됩니다.
산 제사라니. 제물은 기본적으로 잡아 죽여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게 무엇인가, 무엇을 바치고 잡기를, 꺾기를 원하실까. 그 말이죠.
그게 거룩한 것입니다. 산 제사.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현실에 따라 필요한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무도 안 걸렸죠. 한 사람이 걸렸다. 그러면 그 사람 대로, 가족대로, 우리 교회가 다 걸렸으면 우리대로, 실제로 다 올라가면 하나님의 주권 섭리인데.
인위적인 것도 있고, 고의적인 것도 있고 실수도 있고, 현실이 발생이 되어집니다.
자연적으로 발생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가정이 잘못되어서 가정이 문제가 되었으면 우리 남편이 문제라고 그렇게 했으니까 그렇게 되었다고 그러겠지요. 어ᄄᅠᆫ 가정은 자식 때문에 다 말아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권이고 섭리인데.
궁극에 들어가보면 그건 전부, 가족들, 한 사람에게 그렇게 만드신 분이 계십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를 하나 하면 십중팔구로 네가 해라 이렇게 합니다.
가정에 어려움울 주신 것은 그 중에서 가장 간절하게 느끼는 사람. 교리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런 현실 속에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요구가 나한테 있다는 것을 깨닫고 믿으면 됩니다. 어떤 것이든지 예외가 없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합니다. 제사는 자기를 잡아들인 것인데, 그 자기를 잡아들인 것이 제사입니다. 알아야 그분의 뜻을 맞출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산 제사이고 영적 예배입니다.
오늘은 산 제사 영적 예배를 생각해봤습니다.
초타: 김동민
찬송: 29장, 117장
본문: 로마서 12장 1절 ~ 2절
기본적으로 사람이라면 사람의 최소한의 도리가 있고 생각이라던지 그런 것들이 있는 것인데 오전에 말한 그 부부는 사람으로써 할 수가 없는 짓을 한 것입니다.
어쨌든 다 잘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그런 것들을 가져야하는데
게임 만드는 회사가 우리나라 회사의 대기업인데, 이게 연봉도 높다고 그럴 건데, 그러면 다른 분들도 있겠지만 사람을 버려놓고 그런게 심합니다.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면 여러 가지로 위험합니다.
옛날에서는 담배가 돈을 엄청 버니까 나라에서 운영했습니다.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팔았습니다. 요즘에는 공익광고라고 하면서 하지말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안 그랬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기본적으로 알아야합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우리에게 닥칠 현실도 되지만 전체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 지난 주에 이어서 예배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주는 예배의 시간의 상황이 그러니까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봤고, 오늘은 알고있지만 깊은 걸로 공부를 합니다.
기독교 생활의 주요한 것은 말씀을 따져서 보다 더 아름답고, 가치있고, 영광스러운 것을 잡는 것이 신앙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사대주의인 동시에, 영리주의인 동시에 이건 최고로 좋은 것을 지향해 나가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봉사처럼, 비영리처럼 말하지만 기독교는 영리주의입니다.
기독교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이고, 이타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입니다.
하나님은 이타 주의가 아니라 철두철미한 이기주의입니다. 완전자이기 때문입니다.
완전자 하나님을 내 속에 모십니다. 그래서 독재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주교의 교황제도는 바울로 시작되었을 것이고 전해졌을 겁니다.
신천지에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거기 있는 거 아닙니다. 전부 자기들이 원해서 가는 겁니다.
백목사님 초기에 가정이 파괴된 게 얼마나 많습니까. 안 믿는 남편들이 막 예배당 찾아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 백 목사님은 은혜로운 것만 나오고, 저쪽은 깊이가 얕으니까 보니까 드러나 버리니까 흩어져버렸지요.
초등학교는 학습을 할 때 요즘에는 변질되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원래대로라면 거의 완벽하게 통제를 해야합니다. 중등까지도 통제가 많지요. 고등에는 자율학습이 많습니다.
대학교가면 통제는 거의 안하죠.
어릴수록 모든 것은 다 통제를 해야합니다. 통제는 무엇의 반대말입니까? 자유를 빼앗는 것이 통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이 사람 만들어 가는 자연의 논리입니다. 이것을 어기면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외국에는 서 너살 되면 혼자 재우는데 그것도 통제입니다. 모든 것이 나오고 보니 통제인 겁니다.
나라도 미개할 때는 독재자가 독재를 해야지 되는 겁니다. 그때 자유롭게 풀어놓은 필리핀같은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못 삽니다.
민주화 투사들이 어떻고 저쩌고 하는데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국민성보면 자유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어차피 자본주의 국가니까 어느정도 되면 풀리게 되어있습니다. 지금도 그러잖습니까. 그래서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유성으로 맡겨 놨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목회자가 목회를 제대로 하려면 오래 해야하고, 편하게 한다면 판하게 하는 것이 목회자입니다. 특히 우리 공회 교인들은 알아서 다 맡겨 놓으니까 살펴보면서 간섭도하고 하기는 하겠지만 교역자가 다 맡겨놓으면 편합니다.
그런데 제대로 하려고 하면 백 목사님, 홍 목사님, 서 목사님 같은 분.. 서른 아홉에 가신 분. 그때는 얼마나 젊은 건지 몰랐습니다. 그 때 서른 아홉이 얼마나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고 충성을 하신 건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교역자들이 그렇게 충성하다보면 목숨을 걸기도 하고 안 그러면 자유롭게 하기도 하는데 자유로운 것은 언제나 책임이 따릅니다.
목회하다가 뭐가 가장 어렵습니까 하면 나를 다스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회의 모든 개인공회라는 것이 들어있는 것이 공회입니다. 가장 강한 통제면서 자유로운 곳이 우리 공회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위에 총회있고 뭐 있고 뭐 있어서 일반계 교인이 위로 가서 하면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법으로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심지어 주일학생 하나까지도 우리교회 주일학생이 실질적이면서 그런데 아마 우리 공회 주일학생이 신풍 목사님께 가서 보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잘 모르는 사람은 우리 교인이 그러는 것이 수치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자격미달이라고도 합니다.
백 목사님보다 높으신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죠.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바로 되어있으면 어떤 것도 생기지 않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생겨도 예수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원망 책임을 돌리는 것은 죄이고 예외는 없습니다.
원망하면 심판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걸 깨달아야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어지는 겁니다. 이래서 산 제사라는 말이 있는데 이걸 좀 생각해 봐야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여기에 하나님의 주권이 나와있습니다.
예배를 말씀하면서 앞에 하나님을 말하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생각해야겠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그는 영이시다.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시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높은 걸 볼 때 마다 하나님이 높은 생각을 하고, 큰 걸 볼때마다 하나님이 높으신 걸 생각을 하고..
하나님을 아는 만큼이 신앙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생각을 하는겁니다. 이런 분 앞에 예배를 드리니까..
형제들아. 동등성입니다. 너도나도 같은 동등성. 실질적으로 보면 부자, 사제가 다르지만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은 다 같고.. 우린 여기서 굉장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동시에 조심해야합니다.
백 목사님과 우리가 신앙적으로 형제다라고 하는데 동등하다는 겁니다. 나도 백 목사님처럼 될 수 있는 것이고 될 수 있었는데 되지 못한 것이고, 나도 만약에 세월 속에 저 분처럼 살았다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되지 못한 이유가 뭘까.
그렇게 들어가보면 다 내 탓이지 남 탓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 사도 바울은 사도 바울이 되는데 왜 나는 나 밖에 되지 못하는가.
요셉은 서른 살에 총리가 되었는데 왜 나는 그렇게 되지 못하는가.
형제들아 여기서 생각을 해 보고..
사도 바울의 뭔지 아십니까? 성령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백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지능을, 사람이 끌어 쓸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전지를 전능을, 사랑을 자비하심을 그것은 초월하지 않은 것이니 내가 가져올 수 있습니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것은 사도 바울만큼 가져왔습니다.
형제를 위해,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자기를 바쳤습니까.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긍휼 그런 것들을 가져온겁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글을 쓰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쓰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안에는 하나님의 것인데 겉으로는 사도 바울의 것이 됩니다.
산 제사라니. 제물은 기본적으로 잡아 죽여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게 무엇인가, 무엇을 바치고 잡기를, 꺾기를 원하실까. 그 말이죠.
그게 거룩한 것입니다. 산 제사.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현실에 따라 필요한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무도 안 걸렸죠. 한 사람이 걸렸다. 그러면 그 사람 대로, 가족대로, 우리 교회가 다 걸렸으면 우리대로, 실제로 다 올라가면 하나님의 주권 섭리인데.
인위적인 것도 있고, 고의적인 것도 있고 실수도 있고, 현실이 발생이 되어집니다.
자연적으로 발생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가정이 잘못되어서 가정이 문제가 되었으면 우리 남편이 문제라고 그렇게 했으니까 그렇게 되었다고 그러겠지요. 어ᄄᅠᆫ 가정은 자식 때문에 다 말아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권이고 섭리인데.
궁극에 들어가보면 그건 전부, 가족들, 한 사람에게 그렇게 만드신 분이 계십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를 하나 하면 십중팔구로 네가 해라 이렇게 합니다.
가정에 어려움울 주신 것은 그 중에서 가장 간절하게 느끼는 사람. 교리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런 현실 속에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요구가 나한테 있다는 것을 깨닫고 믿으면 됩니다. 어떤 것이든지 예외가 없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합니다. 제사는 자기를 잡아들인 것인데, 그 자기를 잡아들인 것이 제사입니다. 알아야 그분의 뜻을 맞출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산 제사이고 영적 예배입니다.
오늘은 산 제사 영적 예배를 생각해봤습니다.
초타: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