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욥의 자녀들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욥을 연단하시기 위해서 욥의 아들들을 하루아침에 다 데려가셨습니다. 욥의 아들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한꺼번에 다 죽었습니다. 욥은 평소에 그 자녀들을 참 깨끗한 신앙으로 길렀습니다. 깨끗한 신앙의 자녀들이 아버지 때문에 한꺼번에 다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이를 두고 백 목사님은 욥의 자녀들을 순교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종들의 평생소원은 순교입니다. 주와 복음, 형제 구원을 위해서 소유와 몸을 바치고 마지막에 생명까지 바치는 것을 소원합니다. 순교는 아무에게나 주지 않습니다. 순교의 준비는 순생이라고 합니다. 평소 주를 위해서 자기 전부를 다 바치되 원하고 원하는 사람에게 순교를 주신다고 합니다. 주남선 목사님은 그토록 순교를 원하셨지만 순교를 못 하셨습니다. 마지막 돌아가시면서, 하나님께서 당신은 제물로 받을 만큼 깨끗하지 못해서 순교로 받지 않으셨다고 탄식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남선 목사님을 ‘죽지 못한 순교자’라고 합니다.
욥의 아들들이 아무 잘못이 없는데 아버지 때문에 그 깨끗한 신앙들이 젊은, 혹은 어린 나이에 갔으니, 외부적으로만 보면 불행 같지만 순교의 제물로 데려가셨으니 영원을 두고 계산하면 그보다 그 큰 영광과 복이 없을 것입니다.
2. 사울의 자손들이 죄 값을 받은 것은
죄는 사울이 지었는데 죽기는 사울의 자손들이 죽었습니다. 동시에, 죄는 사울이 지었는데 그 값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시대에 물으셨습니다. 다윗이 직접 죄의 값을 받지는 않았지만, 사울의 죄 때문에 다윗이 왕인 시대에 그 값이 왔기 때문에 다윗도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사울이 기브온 족속을 멸하려 한 것이 이스라엘을 향한 열심 때문이었지만 하나님 앞에 맹세한 것을 가볍게 여기고 기브온 족속을 멸하려고 한 것이 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죄는 하나님께서 사울 시대에는 묻지 않으셨다가 다윗의 시대에 물으셨습니다. 사울은 다윗만큼의 신앙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울 시대에는 묻지 않으셨으나 결국 사울의 자손들이 그 값을 받게 되었습니다.
조상이 지은 죄의 값을 받게 된 자손들은 표면적으로 보면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그런 입장이 되면 억울할 것이고 조상이 원망스러울 것입니다.
여기서 욥의 자녀들을 연결시켜 생각해 봅니다. 욥의 자녀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아버지 욥 때문에 죽었습니다. 겉만 보면 불행이지만 그들은 깨끗한 신앙이었기 때문에 순교의 큰 복을 받았습니다. 사울 때문에 죽은 사울의 자손들 역시 표면적으로는 사울 아버지(할아버지)의 죄로 죽었기 때문에 억울하고 불행합니다. 만약 그들 중에 욥의 자녀들처럼 깨끗한 신앙이 있었다면 그들 역시 욥의 자녀들처럼 그렇게 죽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순교자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그렇게 죽은 그 자체만 보면 조상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넓게 보면 그들이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외부적으로 알 수 없는 원인이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그들의 죄의 값으로 죽었는데 그것이 사울의 죄 때문에 죽은 것으로 외부적으로 표시만 그렇게 났을 뿐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만히 생각해 보면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억울하게 죽는 이런 일은 세상에서도 참 많습니다. 그냥 길 가는데 뭐가 떨어져서 죽는다거나, 아무 잘못도 없는데 교통사고로 죽는다거나, 음주운전자 때문에 상대방의 차에 탄 사람들이 죽는 일 같은 이런 일은 허다합니다. 겉으로는 억울하게 죽는 것인데, 공의로 심판하시며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해 보면 사람이 보기에 그렇게 보일 뿐이고 사람이 그 내면을 모를 뿐이지 억울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성경을 바로 깨닫는 종들의 깨달음입니다.
3. 자기의 죄는 자기가 감당함이 원칙
‘그 나라가 굳게 서매 그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저희 자녀는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 율법 책에 기록한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역대하 25:3-4)
위의 말씀대로 원론적으로 말하면, 행한 대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며 심판입니다. 자기가 지은 죄의 값은 자기가 받아야 하고, 자기가 행한 의의 상급도 자기가 받습니다. 부모의 죄 값을 자녀가 대신 받을 수 없고, 자녀의 잘못한 죄의 값을 부모가 대신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 법입니다.
따라서, 사울의 자손들이 죽은 것은 외부로 보면 사울의 죄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것 같지만, 하나님의 공의의 법에 비추어 보면 그들은 그렇게 죽을 만한 근거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만약 그럴 만한 잘못이 없는데 죽었다면 그 죽음 때문에 영원한 복으로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손해될 것은 없는 것입니다.
4. 부모의 죄와 의의 영향
십계명의 2계명은, 부모가 우상을 섬기면 그 죄의 값이 자손의 3, 4대까지 이르고, 부모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면 천대까지 복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부모가 우상 섬긴 죄의 값을 그 자녀가 받는다는 말씀은 ‘죄의 영향’을 말씀합니다. 부모가 죄를 짓게 되면 그 자녀는 그 영향을 받는데 그것이 3, 4대까지 이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계명을 잘 지키면 천 대까지라도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우상을 섬겨도 아들이 그것이 우상 섬기는 죄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끊으면 그 아들의 대로는 다시 복이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켜도 아들이 우상 섬기고 죄를 지으면 그 아들은 죄의 값을 받게 됩니다. 다윗이 그토록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켰지만 솔로몬이 노년에 우상을 섬겨 그 아들 대에 바로 나라가 갈라졌습니다. 자기의 죄는 자기가 감당하는 것이 원칙이며 하나님의 공의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조상들의 죄가 영향은 미쳐도 그 값을 자손들이 직접 대신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5. 소속의 복과 불행
한 가지 더하여, 소속의 복과 불행이라는 면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자기는 별로 한 것이 없는데 옳은 길에 소속되어 있음으로 복을 받고, 자기는 잘못도 없는데 잘못된 곳에 소속되어 있음으로 불행한 일을 당하는 것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에게 소속하여 아브라함을 따랐기 때문에 아브라함 같은 복을 받았습니다. 그 소속을 변경하지 않았다면 신앙적으로도 아브라함 다음가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물질의 복을 받은 후 소속을 바꾸어 소돔 고모라로 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자기는 의인으로 살았지만 그 속에서 날마다 보고 들으면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했고 결국은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알았습니다. 다윗의 신앙도 알았고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시는 것도 알았습니다. 아버지 사울을 이어 자기가 왕이 되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우셔서 다윗이 왕이 될 것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와의 혈육을 끊지 못하여 다윗에게 소속하지 못하고 끝까지 아버지 사울에게 소속되어 있다가 마지막은 좋지 못하게 끝을 맺었습니다.
사울의 자손들은 나서 보니까 그 자손이 되었지만, 어려서 선악을 분간하기 어려웠다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갚으실 것이고, 장성하여 선악을 분간할 수 있는데도 다윗에게 속하지 않고 혈육 때문에 사울에게 그대로 속해 있었다면 잘못된 소속의 화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