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본) 신사참배 굴복과 자살한 성도의 건설구원 영광
원제 : 신사참배 굴복과 자살한 성도의 건설구원 영광
부제 : 신앙건설의 과정과 결실에 대한 질문
안녕하십니까 목사님, 부족하나 하나씩 배워나가는 청년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매 현실 순간순간의 건설구원과
생애 전반을 놓고 보았을 때의 건설구원을 두고서 목사님께 질문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건설구원, 기능구원, 성화구원 교리의 핵심은 "매순간, 즉시, 바로" 라고 생각합니다.
매순간 순간 언행심사의 중심과 판단과 처리와 실제실행을 통하여
건설구원의 기능마련이 실질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pkist "신사참배 굴복 성도"와 관련된 글을 참고하니,
신사참배에 굴복한 성도들은 결과적으로 그들이 믿어온 기간동안
만들어졌어야 했던 신앙의 결실, 결과에 관하여 실패한 성도들이라
다만 그들의 살아온 순간순간 기능마련에는 문제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결론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천국에선 얼마나 영광스러울 것일지 궁금합니다
결과적으로 환란에 굴복한 성도들의 영광이 얼마나 클런지..
일반진영에서는 통상적으로
마치 천주교가 자살자는 천국에 영원히 못 가니 목을 잘라 장례해버듯
자살자가 지옥에 감으로, 천국과는 아예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 말을 하고.
우리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 지라도 택자라면 천국에는 간다는
기본구원 건설구원 교리를 배경에 두고 있습니다.
다만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 그 선택에 따른 수치는 영원토록 이어진다 합니다.
그것이 생애의 전 과정을 부정할 정도로 큰 수치인가
아니면 인생의 결실 면에서만 그런 것인가
신사참배 실패 성도들은, 그들이 평생을 거쳐 맺어야 했던 신앙의 결실에서 실패했고
그럼으로 환란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수치를 영원토록 당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 이전 나름 믿어왔었을 신앙의 기능요소들은
주님 앞에선 별개로 처리 되었습니다.
최근 종종 가롯유다와 요나단에 대해 상고해보면서
비록 일생의 결실은 대단히 좋지 못하였으나
두 사람의 살아온 생애, 그 기간 동안의 건설구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궁금합니다.
그들의 건설구원의 기능요소 면과
결국 극단적 선택을 택한 면을 비교해 보았을 때
결국 기능과 성화의 정도는 필연적으로 영원한 영광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결실의 큰 수치 때문에
생애의 과정 중 성도가 쌓아온 건설구원의 영광이 가려질 정도인지를..
소망교리와 관련된 질문인 것 같습니다만,
생애의 과정과 생애의 결실 (신사참배 굴복, 자살 등) 을 비교해 보는 연구는 필요하지 싶어 말씀 여쭙습니다.
이치영
건설구원 교리를 배우지 못하면 신사참배 한 사람들은 다 지옥 간다고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건설구원을 배운 우리는,
신사참배 한 사람들도 택자면 기본구원 받아 천국 가고, 신사참배를 포함하여 범죄한 심신의 기능만 지옥 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사참배에 패전한 사람이나 승리한 사람이나 천국의 영광은 평생을 통하여 말씀대로 살아온, 천국에 합당한 기능의 정도만큼이 됩니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큰 문제는 승리의 영광 역시 크다 할 수 있겠습니다. 패전이면 수치도 당연히 크겠습니다.
2021-01-01
20:20:26
부제 : 신앙건설의 과정과 결실에 대한 질문
안녕하십니까 목사님, 부족하나 하나씩 배워나가는 청년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매 현실 순간순간의 건설구원과
생애 전반을 놓고 보았을 때의 건설구원을 두고서 목사님께 질문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건설구원, 기능구원, 성화구원 교리의 핵심은 "매순간, 즉시, 바로" 라고 생각합니다.
매순간 순간 언행심사의 중심과 판단과 처리와 실제실행을 통하여
건설구원의 기능마련이 실질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pkist "신사참배 굴복 성도"와 관련된 글을 참고하니,
신사참배에 굴복한 성도들은 결과적으로 그들이 믿어온 기간동안
만들어졌어야 했던 신앙의 결실, 결과에 관하여 실패한 성도들이라
다만 그들의 살아온 순간순간 기능마련에는 문제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결론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천국에선 얼마나 영광스러울 것일지 궁금합니다
결과적으로 환란에 굴복한 성도들의 영광이 얼마나 클런지..
일반진영에서는 통상적으로
마치 천주교가 자살자는 천국에 영원히 못 가니 목을 잘라 장례해버듯
자살자가 지옥에 감으로, 천국과는 아예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 말을 하고.
우리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 지라도 택자라면 천국에는 간다는
기본구원 건설구원 교리를 배경에 두고 있습니다.
다만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 그 선택에 따른 수치는 영원토록 이어진다 합니다.
그것이 생애의 전 과정을 부정할 정도로 큰 수치인가
아니면 인생의 결실 면에서만 그런 것인가
신사참배 실패 성도들은, 그들이 평생을 거쳐 맺어야 했던 신앙의 결실에서 실패했고
그럼으로 환란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수치를 영원토록 당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 이전 나름 믿어왔었을 신앙의 기능요소들은
주님 앞에선 별개로 처리 되었습니다.
최근 종종 가롯유다와 요나단에 대해 상고해보면서
비록 일생의 결실은 대단히 좋지 못하였으나
두 사람의 살아온 생애, 그 기간 동안의 건설구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궁금합니다.
그들의 건설구원의 기능요소 면과
결국 극단적 선택을 택한 면을 비교해 보았을 때
결국 기능과 성화의 정도는 필연적으로 영원한 영광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결실의 큰 수치 때문에
생애의 과정 중 성도가 쌓아온 건설구원의 영광이 가려질 정도인지를..
소망교리와 관련된 질문인 것 같습니다만,
생애의 과정과 생애의 결실 (신사참배 굴복, 자살 등) 을 비교해 보는 연구는 필요하지 싶어 말씀 여쭙습니다.
이치영
건설구원 교리를 배우지 못하면 신사참배 한 사람들은 다 지옥 간다고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건설구원을 배운 우리는,
신사참배 한 사람들도 택자면 기본구원 받아 천국 가고, 신사참배를 포함하여 범죄한 심신의 기능만 지옥 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사참배에 패전한 사람이나 승리한 사람이나 천국의 영광은 평생을 통하여 말씀대로 살아온, 천국에 합당한 기능의 정도만큼이 됩니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큰 문제는 승리의 영광 역시 크다 할 수 있겠습니다. 패전이면 수치도 당연히 크겠습니다.
2021-01-01
20: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