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복되게 듣는 것이 복입니다.
이치영2018-08-17조회 197추천 53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설교를 듣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교인이 있다는 그 자체가 설교자의 잘못입니다.
설사 듣는 분이 오해를 했다 하더라도 그것까지도 설교자는 책임이 있습니다.
설교자가 기도가 부족했든지 하나님 앞에 바로 살지 않고 말만 전하든지...
설교자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부족함을 인정하며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입장을 먼저 생각합니다. 상대방 입장은 그 다음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원죄라고 배웠습니다.
원죄가 없는 사람은 예수님 외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원죄는 있습니다.
사람이 일평생 짓는 모든 죄의 뿌리가 바로 이 원죄입니다.
신앙생활은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자기 변화입니다. 사람을 고쳐가는 것입니다.
그 첫 출발이 자기 중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람을 상대하게 되면 자기보다 다른 사람 입장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에게 일평생이라는 기간을 주신 것은
사람은 누구나 한꺼번에 고쳐지거나 바꾸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루는 구원은 성화구원입니다. 성화라는 '화'는 화할, 될 화(化)입니다.
시간 속에, 세월 속에 점진적으로 점차적으로 그렇게 되어져 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판단하고 처리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글 쓰신 분의 심정을 다는 헤아리지 못하겠지만 충분히 이해하고 남을 것 같습니다.
동시에, 다른 사람을 재는 그 잣대, 그 기준으로 나 자신을 대 보면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동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거의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대속을 베푸셨고, 말씀을 주셨고, 일생을 배워 알고 회개하는 기회로 주신 것입니다.
같은 사물을 봐도 보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 정반대로 보여집니다.
말씀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어떤 경우라도, 상대방이 어떻게 해도 나는 복되게 받아들이는 것이 복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해하려는 중심과 목적으로 말을 하는 것을 뻔히 알아도
그 나쁜 중심과 목적을 본인이 자기 입으로 그렇다고 말하지 않는 이상 나는 좋게 받아들이는 것이 복이며,
상대방이 중심과 목적까지 그렇다고 말까지 해도 나는 거기 피동되지 않는 것이 복입니다.
이것이 '악에게 피동되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자기 복은 자기가 만들고, 자기 불행도 자기가 만듭니다.
내면을 알고 보면 내 생애에 다른 사람은 어떤 결과도 만들지 못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가 문제입니다.
'원망하지 말라, 원망하면 심판을 받으리라'는 말씀이 바로 이런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내게 있고, 따라서 나의 모든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내가 받습니다.
나에 대해 잘못하는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내용인지, 어떤 경우인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혹시 설교가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넓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같은 말씀이라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것 같습니다
>저희 믿는 성도의 자세는 자기입장뿐만 아니라 상대방 입장에서도 생각해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짧은 제 생각이 맞는건지요?
>자기중심, 자기입장에서만 하는 생각들로 타를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지친 나머지 이런 생각또한 갖게 되었는데
>이것도 제 중심의 생각인건지, 이치로써 맞는 것인지 목사님의 고견 듣고싶어 글 남깁니다.
설교를 듣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교인이 있다는 그 자체가 설교자의 잘못입니다.
설사 듣는 분이 오해를 했다 하더라도 그것까지도 설교자는 책임이 있습니다.
설교자가 기도가 부족했든지 하나님 앞에 바로 살지 않고 말만 전하든지...
설교자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부족함을 인정하며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입장을 먼저 생각합니다. 상대방 입장은 그 다음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원죄라고 배웠습니다.
원죄가 없는 사람은 예수님 외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원죄는 있습니다.
사람이 일평생 짓는 모든 죄의 뿌리가 바로 이 원죄입니다.
신앙생활은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자기 변화입니다. 사람을 고쳐가는 것입니다.
그 첫 출발이 자기 중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람을 상대하게 되면 자기보다 다른 사람 입장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에게 일평생이라는 기간을 주신 것은
사람은 누구나 한꺼번에 고쳐지거나 바꾸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루는 구원은 성화구원입니다. 성화라는 '화'는 화할, 될 화(化)입니다.
시간 속에, 세월 속에 점진적으로 점차적으로 그렇게 되어져 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판단하고 처리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글 쓰신 분의 심정을 다는 헤아리지 못하겠지만 충분히 이해하고 남을 것 같습니다.
동시에, 다른 사람을 재는 그 잣대, 그 기준으로 나 자신을 대 보면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동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거의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대속을 베푸셨고, 말씀을 주셨고, 일생을 배워 알고 회개하는 기회로 주신 것입니다.
같은 사물을 봐도 보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 정반대로 보여집니다.
말씀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어떤 경우라도, 상대방이 어떻게 해도 나는 복되게 받아들이는 것이 복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해하려는 중심과 목적으로 말을 하는 것을 뻔히 알아도
그 나쁜 중심과 목적을 본인이 자기 입으로 그렇다고 말하지 않는 이상 나는 좋게 받아들이는 것이 복이며,
상대방이 중심과 목적까지 그렇다고 말까지 해도 나는 거기 피동되지 않는 것이 복입니다.
이것이 '악에게 피동되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자기 복은 자기가 만들고, 자기 불행도 자기가 만듭니다.
내면을 알고 보면 내 생애에 다른 사람은 어떤 결과도 만들지 못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가 문제입니다.
'원망하지 말라, 원망하면 심판을 받으리라'는 말씀이 바로 이런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내게 있고, 따라서 나의 모든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내가 받습니다.
나에 대해 잘못하는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내용인지, 어떤 경우인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혹시 설교가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넓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같은 말씀이라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것 같습니다
>저희 믿는 성도의 자세는 자기입장뿐만 아니라 상대방 입장에서도 생각해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짧은 제 생각이 맞는건지요?
>자기중심, 자기입장에서만 하는 생각들로 타를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지친 나머지 이런 생각또한 갖게 되었는데
>이것도 제 중심의 생각인건지, 이치로써 맞는 것인지 목사님의 고견 듣고싶어 글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