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행2장의 방언과 요엘서 인용 해석에 대해서
함께 연구하는 마음으로 답글을 적어 봅니다.
더 정확하고 자세한 것은 '목회연구소(pkist.net)로 문의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방언의 해석에 대해서
성경에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라고 했기 때문에
사도들이 일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한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일반 교단에서 해석하는 것처럼
성령에 붙들린 사도들이 다른 나라(지방) 말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에 붙들린 사도들이 실제 사용하는 외국어(다른 방언)로 전했다는 해석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공회의 해석으로 다시 생각하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다른 지방(나라)의 언어로만 생각하지 말고
성령이 '사도들 각자에게 깨닫게 해 주신 복음'으로 해석하면 어떤지요?
사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각자 깨달아진 복음을 전할 때
듣는 청중들에게는 성령이 듣는 방언의 능력으로 역사해서 각기 자기 난 곳 방언, 자기 지방(나라) 말로 들리면서 깨달아졌다면?
당시 사도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였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며 전능자시니 사도들을 붙들고 다른 지방(나라)의 언어로 말할 수 있지만,
그래서 듣는 청중들이 각자 자기의 난 곳, 자기 나라(지방) 말로 들렸을 수도 있겠지만
어찌보면 이보다는 성령의 충만함에 붙들린 사도들이 각자에게 깨닫게 해 주신, 세상에 없는 천국 복음을 말하고
듣는 청중들은 듣는 방언의 능력을 받아 각자 자기 나라(지방) 말로 들으면서 깨달아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성경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당시 상황을 추론해 본다면
수많은 청중들(3천명 이상)이 모여 있는 상태에서
열한 사도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그들에게 설교를 하는데
열한 사도가 한꺼번에 와글와글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순서대로 말했을 것 같은데,
같은 내용의 설교를 한 사람은 이 나라 말로 하고, 다음 사도는 저 나라 말로 하고 이런 식이었을지? 아니면
사도들이 각각 성령의 감동시키시는 깨달음(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것, 방언의 능력)을 가지고 같은 언어로 전하는데
성령이 듣는 이들에게 듣는 방언으로 역사해서 자기들의 언어로 들리게 하면서 깨달아지게 했다고 한다면 어떤지요?
그렇다면 공회의 해석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방언은 하나님이신 성령의 능력의 역사인데
언어 번역기가 기능이 더 좋아지고 일반화되면
일반 교단에서 주장하는 방언의 능력은 더 이상 필요없게 될 것이고,
공회의 해석은 어떤 탁월한 기능의 번역기가 나와도 해당이 없을 것 같습니다.
2. 베드로의 요엘서 인용에 대해서
행2:16-21은 오순절(신약시대) 성령의 역사에 대한 요엘 선지의 예언(욜2:28-32)을 베드로가 인용한 것입니다.
당연히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요엘서의 성취'로 설명한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욜2:28-29, 행2:17-18)
자녀들은 예언하고, 젊은이들은 환상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는데,
공회는 이를 육적인 연령대로 해석하지 않고 신앙의 상태로 해석해서
자녀들은 자라나는 아이같이 자라가는 신앙으로, 종은 순종하는 신앙으로
젊은이들은 육신의 자람이 멈춘 것 같이 더 이상 신앙의 성장 발전이 없고 정체된 상태의 신앙을,
늙은이들은 육신의 늙음이 노쇠해지는 것처럼 신앙의 성장 발전은 커녕 퇴보하는 신앙, 과거를 팔아먹는 신앙으로 해석하고,
그 결과로 아이와 종의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예언하는 은혜를 받게 되고,
젊은이처럼 더 이상의 성장과 발전이 없는 신앙 상태가 되면 환상은 보지만 실상은 없는 결과를 맺고
늙은이처럼 과거나 회상하면서 현재는 퇴보하는 신앙 상태가 되면 그 생애는 꿈 속에 사는 허무한 신앙생활을 하게 됨을 말씀합니다.
베드로가 인용한 요엘 선지의 예언은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는 말세인 신약시대에
충만한 그 성령의 임재와 역사하는 그 속에서 있을 신앙의 상태를 요엘 선지는 미리 예언했고,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하는 그 자리, 3천명이 넘는 사람이 회개를 하고 있는 그 중에도 '새 술에 취하였다' 하고 조롱하고 있으니
베드로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을 보면서 요엘 선지의 글을 인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위 본문의 내용을 이렇게 해석하지 않고
예언하고 환상 보고 꿈을 꾸어야 한다고 한다면,
자녀들은 어떤 연령대의, 어떤 자녀들을 말하는 것이며
젊은이 늙은이들은 또한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이며
그들이 보고 한다는 예언과 환상과 꿈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또 그런 것들이 실제 신앙생활과 무슨 상관이 있으며, 그런 것들이 실제 신앙생활에 얼마나 있는 것인지?
신앙의 실제로 들어가서 성경을 해석해 보면
방언이나 요엘 선지의 예언이나 공회의 해석이 더 성경적이며 실질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 방언의 해석에 대하여
>
>사도행전2:4에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
>
>한 언어를 각기 자기 나라의 말로 들은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
>
>우리 공회의 방언 해석과 다른 것 같아 문의 드립니다.
>공회에서는 베드로가 한 언어로 설교하였지만 각 지방 사람들이 자기 언어로 들었다고 하는데
>해당 구절을 여러 번 읽어봐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
>
>일반 보수 교단에서는 방언을 '배운 적이 없는 외국어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하게 되는 현상"이라고 하며
>초대교회에서만 이런 현상이 나타났고 성경 완성 이후에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
>
>
>2. 베드로의 요엘서 인용에 대하여
>
>그리고 사도행전2장 베드로가 인용한 요엘서의 공회 해석도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놀라자 그에 대한 설명으로 요엘2:28-32를 인용한 것이 아닌지요?
>문맥상으로는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요엘서의 성취'로 설명한 것 같습니다.
>
>순복음교단 같은 곳은 요엘서를 인용하며 자기 교단에서 일어나는 '방언, 예언, 환상, 꿈' 등의 현상을
>말세에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것으로 설명하고 오히려 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순복음교단의 가르침이 매우 치우치고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만,
>공회의 '젊은이신앙, 늙은이신앙'에 대한 해석이 매우 은혜가 되지만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고소고발을 많이 하니 설교록이나 백 목사님의 가르침이라고 쓰기가 조심스럽습니다.)
>
>
>================합동 교단의 목사님의 글
>
>성경이 직접적으로 베드로가 방언으로 말했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베드로의 방언 유무를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행2장에서 베드로는 아람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유대인들에게 아람어로 설교하며 복음을 전했고, 나머지 사도들은 아람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자들을 위해서 각 지역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전했다고 본다면, 베드로는 적어도 행2장 상황에서는 방언으로 말하지 않았다고 보아도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
>또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복음을 전할 때, 베드로가 헬라어(또는 라틴어)를 몰랐거나, 이때 통역자를 대동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고넬료가 아람어를 몰랐다면(아마도 고넬료의 집 사람들은 아람어를 몰랐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헬라어, 또는 라틴어 방언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큰 일을 전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서 ‘사도들은 영음(하늘 언어) 방언을 했으나, 듣는 사람들은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으로 들었다’는 일부 오순절주의자들의 주장은 현재 자신들이 하고 있는 영음 방언을 성령의 은사로 둔갑시키려는 거짓말입니다.
>이들은 행2:4(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을 내세워 ‘듣는 방언’을 주장합니다만, 전후문맥을 보시면, 성경은 사도들이 각 지역 방언으로 말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
>(행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2: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
>성경은 분명히 '다른 방언으로'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혹자들이 말하는 '듣는 방언'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
더 정확하고 자세한 것은 '목회연구소(pkist.net)로 문의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방언의 해석에 대해서
성경에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라고 했기 때문에
사도들이 일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한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일반 교단에서 해석하는 것처럼
성령에 붙들린 사도들이 다른 나라(지방) 말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에 붙들린 사도들이 실제 사용하는 외국어(다른 방언)로 전했다는 해석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공회의 해석으로 다시 생각하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다른 지방(나라)의 언어로만 생각하지 말고
성령이 '사도들 각자에게 깨닫게 해 주신 복음'으로 해석하면 어떤지요?
사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각자 깨달아진 복음을 전할 때
듣는 청중들에게는 성령이 듣는 방언의 능력으로 역사해서 각기 자기 난 곳 방언, 자기 지방(나라) 말로 들리면서 깨달아졌다면?
당시 사도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였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며 전능자시니 사도들을 붙들고 다른 지방(나라)의 언어로 말할 수 있지만,
그래서 듣는 청중들이 각자 자기의 난 곳, 자기 나라(지방) 말로 들렸을 수도 있겠지만
어찌보면 이보다는 성령의 충만함에 붙들린 사도들이 각자에게 깨닫게 해 주신, 세상에 없는 천국 복음을 말하고
듣는 청중들은 듣는 방언의 능력을 받아 각자 자기 나라(지방) 말로 들으면서 깨달아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성경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당시 상황을 추론해 본다면
수많은 청중들(3천명 이상)이 모여 있는 상태에서
열한 사도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그들에게 설교를 하는데
열한 사도가 한꺼번에 와글와글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순서대로 말했을 것 같은데,
같은 내용의 설교를 한 사람은 이 나라 말로 하고, 다음 사도는 저 나라 말로 하고 이런 식이었을지? 아니면
사도들이 각각 성령의 감동시키시는 깨달음(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것, 방언의 능력)을 가지고 같은 언어로 전하는데
성령이 듣는 이들에게 듣는 방언으로 역사해서 자기들의 언어로 들리게 하면서 깨달아지게 했다고 한다면 어떤지요?
그렇다면 공회의 해석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방언은 하나님이신 성령의 능력의 역사인데
언어 번역기가 기능이 더 좋아지고 일반화되면
일반 교단에서 주장하는 방언의 능력은 더 이상 필요없게 될 것이고,
공회의 해석은 어떤 탁월한 기능의 번역기가 나와도 해당이 없을 것 같습니다.
2. 베드로의 요엘서 인용에 대해서
행2:16-21은 오순절(신약시대) 성령의 역사에 대한 요엘 선지의 예언(욜2:28-32)을 베드로가 인용한 것입니다.
당연히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요엘서의 성취'로 설명한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욜2:28-29, 행2:17-18)
자녀들은 예언하고, 젊은이들은 환상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는데,
공회는 이를 육적인 연령대로 해석하지 않고 신앙의 상태로 해석해서
자녀들은 자라나는 아이같이 자라가는 신앙으로, 종은 순종하는 신앙으로
젊은이들은 육신의 자람이 멈춘 것 같이 더 이상 신앙의 성장 발전이 없고 정체된 상태의 신앙을,
늙은이들은 육신의 늙음이 노쇠해지는 것처럼 신앙의 성장 발전은 커녕 퇴보하는 신앙, 과거를 팔아먹는 신앙으로 해석하고,
그 결과로 아이와 종의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예언하는 은혜를 받게 되고,
젊은이처럼 더 이상의 성장과 발전이 없는 신앙 상태가 되면 환상은 보지만 실상은 없는 결과를 맺고
늙은이처럼 과거나 회상하면서 현재는 퇴보하는 신앙 상태가 되면 그 생애는 꿈 속에 사는 허무한 신앙생활을 하게 됨을 말씀합니다.
베드로가 인용한 요엘 선지의 예언은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는 말세인 신약시대에
충만한 그 성령의 임재와 역사하는 그 속에서 있을 신앙의 상태를 요엘 선지는 미리 예언했고,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하는 그 자리, 3천명이 넘는 사람이 회개를 하고 있는 그 중에도 '새 술에 취하였다' 하고 조롱하고 있으니
베드로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을 보면서 요엘 선지의 글을 인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위 본문의 내용을 이렇게 해석하지 않고
예언하고 환상 보고 꿈을 꾸어야 한다고 한다면,
자녀들은 어떤 연령대의, 어떤 자녀들을 말하는 것이며
젊은이 늙은이들은 또한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이며
그들이 보고 한다는 예언과 환상과 꿈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또 그런 것들이 실제 신앙생활과 무슨 상관이 있으며, 그런 것들이 실제 신앙생활에 얼마나 있는 것인지?
신앙의 실제로 들어가서 성경을 해석해 보면
방언이나 요엘 선지의 예언이나 공회의 해석이 더 성경적이며 실질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 방언의 해석에 대하여
>
>사도행전2:4에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
>
>한 언어를 각기 자기 나라의 말로 들은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
>
>우리 공회의 방언 해석과 다른 것 같아 문의 드립니다.
>공회에서는 베드로가 한 언어로 설교하였지만 각 지방 사람들이 자기 언어로 들었다고 하는데
>해당 구절을 여러 번 읽어봐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
>
>일반 보수 교단에서는 방언을 '배운 적이 없는 외국어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하게 되는 현상"이라고 하며
>초대교회에서만 이런 현상이 나타났고 성경 완성 이후에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
>
>
>2. 베드로의 요엘서 인용에 대하여
>
>그리고 사도행전2장 베드로가 인용한 요엘서의 공회 해석도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놀라자 그에 대한 설명으로 요엘2:28-32를 인용한 것이 아닌지요?
>문맥상으로는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요엘서의 성취'로 설명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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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복음교단 같은 곳은 요엘서를 인용하며 자기 교단에서 일어나는 '방언, 예언, 환상, 꿈' 등의 현상을
>말세에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것으로 설명하고 오히려 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순복음교단의 가르침이 매우 치우치고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만,
>공회의 '젊은이신앙, 늙은이신앙'에 대한 해석이 매우 은혜가 되지만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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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고발을 많이 하니 설교록이나 백 목사님의 가르침이라고 쓰기가 조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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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 교단의 목사님의 글
>
>성경이 직접적으로 베드로가 방언으로 말했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베드로의 방언 유무를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행2장에서 베드로는 아람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유대인들에게 아람어로 설교하며 복음을 전했고, 나머지 사도들은 아람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자들을 위해서 각 지역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전했다고 본다면, 베드로는 적어도 행2장 상황에서는 방언으로 말하지 않았다고 보아도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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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복음을 전할 때, 베드로가 헬라어(또는 라틴어)를 몰랐거나, 이때 통역자를 대동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고넬료가 아람어를 몰랐다면(아마도 고넬료의 집 사람들은 아람어를 몰랐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헬라어, 또는 라틴어 방언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큰 일을 전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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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서 ‘사도들은 영음(하늘 언어) 방언을 했으나, 듣는 사람들은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으로 들었다’는 일부 오순절주의자들의 주장은 현재 자신들이 하고 있는 영음 방언을 성령의 은사로 둔갑시키려는 거짓말입니다.
>이들은 행2:4(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을 내세워 ‘듣는 방언’을 주장합니다만, 전후문맥을 보시면, 성경은 사도들이 각 지역 방언으로 말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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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2: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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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분명히 '다른 방언으로'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혹자들이 말하는 '듣는 방언'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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