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예수님의 고난
사회자2010-04-22조회 562추천 128
예수님의 '대속'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는 하나의 단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원죄도 본죄도 없는 분이십니다.
털끝만한 죄 하나만 있어도 대속은 물거품이 됩니다.
죄가 없는 예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택자들 전부의 모든 원죄와 본죄를 다 짊어지셨습니다.
대신 짊어지신 그 죄의 형벌을 받아 영원한 사망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사망의 고통은 당하셨지만 당신은 죽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죄의 형벌만 받으셨을 뿐입니다.
우리와 꼭 같은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이
우리 택자들 전부의 죄를 다 짊어지신 것도,
그 죄값으로 영원한 사망의 고통을 당하신 것도 인성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인성이 인성의 전부를 먼지 하나 만큼도, 세포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들였을 때
신성이 동참해서 나머지 역사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우리 택자 모두의 죄를 담당하는 우주적인 고난을 당하는데
세포 하나까지도 그 아픔에 기울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님과의 결합에만 다 전부 다 쏟아 부으셨으니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십자가 상에서의 직접적인 고난이 있기 전까지의 사생활 공생활이 얼마나 세밀하고 철저하고 정확했는지,
이 일을 위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우리들로서는 가히 짐작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셨고, 그렇게 해서 인성으로서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 신성이 동참하여 완성하신 것입니다.
세포 하나라도 아픔을 느꼈다면 신경이 그리로 기울어진 것이고 그러면 강제가 되는 것이니 아픔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픔을 느끼지 않았다면 어떻게 우리 대속이 되는가?
고통을 당하고 아픔을 느끼는 것보다
고통을 당할 때 아픔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어렵고 더 고차원의 일일 것입니다.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고통을 당하는데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까지 살아가셨고 다 기울이셨으니
그 차원을 우리가 어떻게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 대속이 된 것입니다.
이 역사는 오늘 우리에게도 같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도 누구든지 자기 전부를 다 들여서 십자가 생활을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데,
자기를 다 들인 증거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역사가 나타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얼핏 보면 십자가 고난이 크지만
알고 보면 십자가 고난보다 더 어렵고 큰 일은 '도성인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다시 사람의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히 인성을 입으신 이 일은
도무지 인간의 상상으로 알 수 없고 인간의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역사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만 알 수 있는데, 성령의 감동은 실제 이대로 사는 만큼 역사하는 것입니다.
김상수 선생님 질문에 답변을 드리면서도, 이번 설명을 드리면서도
지식만 가지고 이대로 살지 못하는 저 자신에 대해서 탄식만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원죄도 본죄도 없는 분이십니다.
털끝만한 죄 하나만 있어도 대속은 물거품이 됩니다.
죄가 없는 예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택자들 전부의 모든 원죄와 본죄를 다 짊어지셨습니다.
대신 짊어지신 그 죄의 형벌을 받아 영원한 사망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사망의 고통은 당하셨지만 당신은 죽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죄의 형벌만 받으셨을 뿐입니다.
우리와 꼭 같은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이
우리 택자들 전부의 죄를 다 짊어지신 것도,
그 죄값으로 영원한 사망의 고통을 당하신 것도 인성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인성이 인성의 전부를 먼지 하나 만큼도, 세포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들였을 때
신성이 동참해서 나머지 역사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우리 택자 모두의 죄를 담당하는 우주적인 고난을 당하는데
세포 하나까지도 그 아픔에 기울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님과의 결합에만 다 전부 다 쏟아 부으셨으니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십자가 상에서의 직접적인 고난이 있기 전까지의 사생활 공생활이 얼마나 세밀하고 철저하고 정확했는지,
이 일을 위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우리들로서는 가히 짐작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셨고, 그렇게 해서 인성으로서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 신성이 동참하여 완성하신 것입니다.
세포 하나라도 아픔을 느꼈다면 신경이 그리로 기울어진 것이고 그러면 강제가 되는 것이니 아픔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픔을 느끼지 않았다면 어떻게 우리 대속이 되는가?
고통을 당하고 아픔을 느끼는 것보다
고통을 당할 때 아픔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어렵고 더 고차원의 일일 것입니다.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고통을 당하는데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까지 살아가셨고 다 기울이셨으니
그 차원을 우리가 어떻게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 대속이 된 것입니다.
이 역사는 오늘 우리에게도 같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도 누구든지 자기 전부를 다 들여서 십자가 생활을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데,
자기를 다 들인 증거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역사가 나타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얼핏 보면 십자가 고난이 크지만
알고 보면 십자가 고난보다 더 어렵고 큰 일은 '도성인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다시 사람의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히 인성을 입으신 이 일은
도무지 인간의 상상으로 알 수 없고 인간의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역사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만 알 수 있는데, 성령의 감동은 실제 이대로 사는 만큼 역사하는 것입니다.
김상수 선생님 질문에 답변을 드리면서도, 이번 설명을 드리면서도
지식만 가지고 이대로 살지 못하는 저 자신에 대해서 탄식만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