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2일 수밤
김동민2026-04-22조회 6추천 1
2026년 4월 22일 수밤
찬송: 176장
본문: 빌립보서 1장 20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공과 공부가 되겠습니다. 제목은 성도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입니다. 성도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직접으로 말하면 우리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입니다. 우리는 다 성도들입니다. 구별하는 무리, 구별이란 따지는 것이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을 향하여 찾아가는 곳이 구별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목표 목적지는 그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과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최종 인생은 죽음이라는 마지막이 있어서 그때를 생각하고 모든 과정 과정에 하나씩 정해서 나아가는 것이고 죽음 너머는 변동이 없는 죽음이라는 그 시점을 기점으로 해서 준비도 못하고 바꾸지도 못하고 병동없는 그 기점이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그때 그 그것을 최종 목적으로 삼고 거기 도달하기 까지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하고 많은 것이 바뀔 수 있지만은 그 최종 마지막을 위해서 나아가는 겁니다. 마지막 목적지, 죽음 넘어라는 것인데 인생으로 말하면 그 이상이 없기 때문에 무궁세계고 그 무궁세계는 공간으로 말하면 시공간을 초월한 나라지만 우리의 처소로 말하면 더 이상이 없는 최종이고 최후입니다. 궁극이라고 말을 합니다. 궁극, 그 이상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따지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거기 옳도록 좋도록 궁극의 존재는 근본이시고 최종이신 궁극의 근본이고 그 존재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근본이시고 하나님이 마지막이십니다. 하나님이 출발이시고 하나님이 끝인데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예수님을 가르켜서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한 아기가 날 건데 아버지라, 아기가 났는데 아버지랍니다. 삼위일체입니다. 그분이 마지막 영혼까지 모든 존재를 존재하게 하시는 그런 면으로 궁극으로 합니다 .그래서 전부 다 찾은 게 되는 겁니다. 오늘 새벽에 말씀을 드렸는데 시험 점수가 만점이면 몇 점 맞으면 만점됩니까. 100점 맞으면 만점인데 그 이상 점수도 있습니까. 열 과목을 쳤는데 올백을 맞았습니다. 그러면 그 학생은 그 면에 있어서 궁극에 도달한 겁니다. 그 학생은 말하자면 그 면에 있어서 최고가 된 겁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것보다 더 높은 건 없지요. 완전히 도달한 겁니다. 여러 사람마다 다르지만 굉장히 큰 종목은 금메달따면, 지키려고 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최고 권력자는 대통령입니다. 그러면 물러나고 나면 뭐하느냐, 어떤 직업을 가지던가요. 어떤 직분도 안 가집니다. 어른 노릇만 하지요. 최고로 올라갔다. 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하나님을 비유를 하는데 말하자면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과 만났으면 궁극의 존재를 만난 겁니다. 모든 철학들 모든 종교는 그 궁극의 존재를 다 찾아가는 논리들 사람들인데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니 못찾는 겁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전에 계신 분 중에서 석가보다 머리 좋은 사람 있습니까. 공자보다 잘난 사람있을까요. 이 시대에 통틀어서 공자보다, 석가보다 잘난 사람 없을 겁니다. 하나님이 만나주지 않으니까 못 만나는 겁니다. 만나주는 은혜가 있는 겁니다.
보통 사람 중에서 여기 계신 분들 전부는 보통 사람보다 좀 떨어질겁니다. 지금 시대 보통에서 밑으로 가지 보통 이상은 가기 어려울 겁니다. 머리도 노력도 인성도 경제도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궁극의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머리 좋고 명철하고 집중력 있고 파고드는 그런 사람들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못 만납니다. 궁극의 존재입니다. 이 말이 참 중요한 겁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난 겁니다. 장사하는 사람 중에서 옛날에 지금은 그런 장사가 없습니다. 달걀을 이고 다니면서 집집마다 팔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기름 들기름 콩기름, 기름파는 장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채 채소 과일도 이고다니면서 팝니다. 옷도 이고다니면서 팝니다. 시장에서 파는데 국화빵 아시나요. 국화빵 좀 큰 건 잉어빵이고 잉어빵 국화빵 장사하는 사람, 참기를 장사하는 사람, 야채 생선 장사하는 사람, 아주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하고 배운 게 없어서 그거 밖에 못합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밑의 급입니다.
그런데 80년대에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컴퓨터를 대학 행정실에 가서 파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도 붕어빵도 장사입니다. 제가 아는 저와 나이가 같은 신앙 생활 같이 했던 분 어머니가 붕어빵 장사했습니다. 채소 생선 달걀 기름 어머니가 그런 장사하면 우리 어머니 참기름 장사한다 이런 거 말을 못합니다. 이런 걸 말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잘난 사람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비행기 파는 사람이야 BMW 파는 사람이야 높은 겁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무엇을 가지느냐, 궁극의 존재 하나님을 만날 때 그 사람은 마음 속에 베짱이 있습니다. 시험 백점 맞을 때 금메달 땄으니까 목표 도달 한 거지요. 존재로 쓰면 더 이상 크고 높고 실력있고 강하고 더 좋은 분이 없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이 분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진실, 성도는 진실하다 그런 뜻입니다. 궁극을 찾아가는 겁니다. 그 전가지는 계속해서 찾아가는 겁니다. 어느정도 만났는데 대통령을 만나야하는데 국무총리 만났으면, 우리 나라에서는 그거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우리나라 국무총리는 사람에 따라서 허수아비입니다. 대통령이 실제고, 장관을 만났으면 우리 모두 장관상 우습게 봤는데 얼마나 어렵습니까.
사도바울의 전부를 쏟아보는 다른 게 없습니다. 이것만하면 다 되는 겁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 자기로써 다 하고 자기로써 기다리는 게 기대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소망은 좀 멀리 있습니다. 기대는 앞에 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이게 사도 바울에 추구하는 바고 그게 사도 바울의 전부입니다. 간절한 기대와 소망, 그것을 따라 그것을 위해서 그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서 간절한 기대와 소망인데 그걸 이루기 위해서 사도 바울의 지식, 사람은 모든 사람은 다 자기 대로의 이 세상에서 아는 정도의 두 글자로 뭘 가졌습니까. 지식을 가졌습니다. 자기 정도대로 하는 게 있습니다. 아는 것이 있는데 그 아는 것이 자기의 모든 범위가 되는 겁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말을 하던지 생각을 하던지 눈감고 명상을 하던지 활동을 하던지 길을 하던지 일을 하던지, 지식의 범위 안에서 뱅뱅 도는 게 사람입니다.
자기 아는 것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모르는 곳에는 못 갑니다. 모르는 일은 못합니다. 모르는 말도 못 합니다. 자기 아는 것만 할 수 있는 것이 사람, 지식의 범위에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다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고 지식에서 뭐가 생겨지느냐, 가치관이 생겨지는데 지식이란 하나가 아니지요, 그 하나가 아닌 지식에 따라서 가치관이 생겨지는데 가치관이라는 것도 하나가 아닙니다. 음식은 어떤 음식이 가장 맛있습니까. 저는 어릴 때 먹을 게 없어서 개떡을 먹었습니다. 보리가루로 떡을 쪘습니다. 요즘은 개도 줘도 안 먹습니다. 요즘 개 안 먹겠죠. 그런데 저 어릴 때는 그렇게 맛있게 먹었는데 그거 먹고 나서 붕어빵을 먹으면 개떡 못 먹습니다. 개떡보다는 붕어빵이 더 높은 겁니다. 붕어빵보다도 더 맛있는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있겠지요. 먹는 데에도 아는 만큼 먹는 가치관이 생겨집니다. 먹는 가치는 맛, 영양, 건강이겠지요. 음식에 대해서 아는 만큼 유익하고 해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음식에 대한 내용을 모르면 해로워도 먹습니다. 선진국일수록 살 많이 찌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못 사는 나라에는 먹을 게 없어서 똑똑한 사람이 잘난 사람이 많이 먹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경제가 되고 나면 아무거나 안 먹습니다. 그런데 막 그냥 모르는 사람은 먹어재끼니까 그런 거지요. 평균적으로 그런 겁니다. 모르면 맛있으면 먹는 겁니다. 먹으면 다 좋은 겁니까. 모르면 그런 겁니다. 아는 만큼 중요한 거 좋은 유익한 것을 따라가는 겁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입는 것은 맵시를 따라갈 겁니다. 옛날에는 그냥 입고 따시면 되는데 또 입어야 맵시가 나냐 그것입니다. 요즘 티코 자동차 주면 안탈걸요, 포니 자동차 주면 안탈걸요. 일본 사람들은 가치관이 다르니까 그 사람들은 허영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동차도 큰 거 안 산답니다. 자동차 집이 작습니다. 다 절약했습니다. 그게 다 가치관이지요. 뭐든지 다 그렇습니다. 가진 가치관에 따라 그렇게 되는 거지요. 지식에 따라 가치관이 정해집니다. 지식이 있는 만큼 가치관 있는 만큼 정해집니다. 그만큼 소원이 생겨집니다. 소원은 간절함입니다. 그리고 실력이 있는 대로는 달려가는 겁니다.
마라톤 42키로 달리면 한 30 몇키로 정도 가면 한계가 온답니다. 인간의 한계가 온답니다. 그때부터는 자기 의지로 달리지 않고 간다더만요, 사람의 의지를 넘어서는 만큼 그런 달리기를 수십 번 수백 번 하고 나가는 겁니다. 마라톤의 금메달을 위해서 달려가는 겁니다. 자기가 추구하는 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클수록, 중요한 것일수록 그렇습니다. 온갖 멸시 천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거 별별일 다 만나도 부끄럽지 않다 바울은, 궁극을 잡았으니까. 궁극의 존재, 궁극의 나라를 잡았습니다. 아무든지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 궁극의 가치는 이 세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아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겁니다. 신사참배를 안 하는 신앙은 일제 치하에서 그 사람들에게 멸시 받고 조롱받고 핍박받는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거 좋아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부활절 주일 되면 사순절에는 퍼포먼스를 하지요. 예수님 십자가 고난 느껴보겠다고 커다란 십자가 들고. 안하는 것보다 낫지만 장난하고 있는거지요.
그런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일제 치하에는 다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이 궁극의 것인줄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손양원 목사님들은 큰소리 탕탕 친겁니다. 일본식 기독교 믿으면 안되냐,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가느냐, 일본 천황도 지옥간다. 집채만한 바위를 손바닥만한 접시에 올리면 어떻게 되냐. 일본 나라는 사접시입니다. 그러면 깨져버립니다. 어떻게 깨졌습니까. 원자폭탄 두 번 박살나버렸죠. 그런 종들은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하늘나라 붙들었기 때문에 아무 일에던지 부끄럽지 않습니다. 어디까지 내려가도 멸시천대 조롱받아도, 억울한 것이 없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억울하다 안 알아준다, 신앙을 모르는 겁니다.
요셉이 당한 억울함을 말로 하겠습니다. 요셉은 마음 속에 억울한 거 하나도 없었습니다. 억울한 마음 있으면 신앙 아닙니다. 누명을 썼으면 억울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당하면 알고 당하면 힘들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 하나님이 봉시입니까. 바보입니까. 그냥 두게, 그래서 하나님을 붙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억울한 일이 없는 겁니다. 속는 건 바보입니다. 신앙 세계에서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을 이루어 가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을 만나던지 상관 없다는 거지요. 삼년 전에도 2년 전에도 바울은 달려갑니다. 바울이라는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붙든 그 일을 두고는 죽도록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달려가기 전에는 율법, 예수 믿는 사람을 마구 잡아 죽입니다. 사울 입장은 그렇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선례로 알았고, 사울의 지식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지식이 중요한 겁니다. 그리스도를 몰랐으니까, 율법의 진짜를 몰랐으니까. 교회를 그렇게 핍박했는데 원수인데 진실합니다. 그래서 어디있던지 자기로써는 진실해야합니다. 자기로써는 궁극을 찾고 옳은 걸 찾아야합니다. 때가 되니까 나타나셔서 보여주셨습니다. 너가 찾는 게 거기있다. 방향이 틀렸다.
그때부터 달려갑니다. 그리스도를 향해서, 일 년 전에 발견한 그리스도보다 새롭게 발견되니까 더 발견됩니다. 갈수록 그리스도가 새롭게 와닿습니다. 그래서 온전히 담대하여 그리스도는 알아지고 그렇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감사가 많아지고 죄송함이 많아지고 부끄러운 게 많아지고 그런 것이고 간절함이 많아지면 더 그런 것이고 떳떳함이 생겨지고 베짱이 생겨지고 의가 생각나면 탈선을 눈에 앞두고 있는 겁니다. 갈수록 죄송함은 더 커지고 그래서 이게 온전히 담대하여. 살던지 죽던지, 이것보다 더 큰건 없습니다. 빈부 존비 비천 이건 다 상관이 없는겁니다.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고 부자되도 좋고 가난도 상관없고. 살던지 죽던지 귀해지던지 천해지던지 이래도 거기서 그리스도가 존비되게 그렇게 됩니다.
몸이라는 것은 어떤 몸이 됩니까. 무엇에 가치를 두고, 첫째 지식을 가지고 지식 범위 안에서 얼마만큼 자기 시간을 노력을 들여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렇게 되게 됩니다. 마음은 동으로 가고 몸은 서로 가면 어디로 가는 사람이지요. 서쪽가는 사람입니다. 공부해야하는데 숙제해야하는데 하면 눈은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게임하는 사람입니다. 백날 해봐야 몸이 놀고 있으면 그 사람은 노는 사람입니다. 얘야 밭에 갔다오너라, 안갔습니다. 둘째에게 밭에 가라고 했는데 싫습니다. 가는 사람이 순종했습니다. 내 몸이 움직이는대로 사람은 그런 사람이 됩니다. 거짓말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세 번하면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거짓말은 도둑질보다 더 나쁜겁니다. 주일어기는 죄 보다 더 클 수 있습니다. 아주 나쁜 죄입니다. 거짓말하면 안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모든 노력을 성령이 사도 바울에 영을 붙드시고 그걸 마음을 붙들고 보는 거 듣는 거 전부 다가 자기를 참사람 만드는 그리스도 닮은 사람 만드는 거기에 주력을하고, 거기만 전부 다 바쳤습니다. 그리하다보니까 그리스도가 삽니다. 겉은 바울인데 그리스도가 살고 있습니다. 그리되다 보니까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것은 마지막 끝인데 하나님께서 인생의 죽음을 주신 것은 마지막 최후의 마무리, 건물 다 지으면 중공 검사가 되어야 바른 것이 되는 겁니다. 그 도장을 받아야 잘 죽는 죽음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 순교자들의 끝도 그렇습니다.
살아있으면 남은 사람에게 좋은 것이고, 남은 사람들에게, 바울도 사는 것도 좋으니까 죽는 것도 유익하다. 이런 죽음을 소망하고 순생으로 사는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지요. 날마다 죽음으로 사는 겁니다. 그래 살다가 끝나면 완성입니다. 성공, 마무리 되는 죽음, 성도의 간절한 소망, 우리도 이런 소망 가지고 노력해봐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하시겠습니다.
찬송: 176장
본문: 빌립보서 1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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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공부가 되겠습니다. 제목은 성도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입니다. 성도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직접으로 말하면 우리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입니다. 우리는 다 성도들입니다. 구별하는 무리, 구별이란 따지는 것이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을 향하여 찾아가는 곳이 구별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목표 목적지는 그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과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최종 인생은 죽음이라는 마지막이 있어서 그때를 생각하고 모든 과정 과정에 하나씩 정해서 나아가는 것이고 죽음 너머는 변동이 없는 죽음이라는 그 시점을 기점으로 해서 준비도 못하고 바꾸지도 못하고 병동없는 그 기점이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그때 그 그것을 최종 목적으로 삼고 거기 도달하기 까지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하고 많은 것이 바뀔 수 있지만은 그 최종 마지막을 위해서 나아가는 겁니다. 마지막 목적지, 죽음 넘어라는 것인데 인생으로 말하면 그 이상이 없기 때문에 무궁세계고 그 무궁세계는 공간으로 말하면 시공간을 초월한 나라지만 우리의 처소로 말하면 더 이상이 없는 최종이고 최후입니다. 궁극이라고 말을 합니다. 궁극, 그 이상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따지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거기 옳도록 좋도록 궁극의 존재는 근본이시고 최종이신 궁극의 근본이고 그 존재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근본이시고 하나님이 마지막이십니다. 하나님이 출발이시고 하나님이 끝인데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예수님을 가르켜서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한 아기가 날 건데 아버지라, 아기가 났는데 아버지랍니다. 삼위일체입니다. 그분이 마지막 영혼까지 모든 존재를 존재하게 하시는 그런 면으로 궁극으로 합니다 .그래서 전부 다 찾은 게 되는 겁니다. 오늘 새벽에 말씀을 드렸는데 시험 점수가 만점이면 몇 점 맞으면 만점됩니까. 100점 맞으면 만점인데 그 이상 점수도 있습니까. 열 과목을 쳤는데 올백을 맞았습니다. 그러면 그 학생은 그 면에 있어서 궁극에 도달한 겁니다. 그 학생은 말하자면 그 면에 있어서 최고가 된 겁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것보다 더 높은 건 없지요. 완전히 도달한 겁니다. 여러 사람마다 다르지만 굉장히 큰 종목은 금메달따면, 지키려고 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최고 권력자는 대통령입니다. 그러면 물러나고 나면 뭐하느냐, 어떤 직업을 가지던가요. 어떤 직분도 안 가집니다. 어른 노릇만 하지요. 최고로 올라갔다. 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하나님을 비유를 하는데 말하자면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과 만났으면 궁극의 존재를 만난 겁니다. 모든 철학들 모든 종교는 그 궁극의 존재를 다 찾아가는 논리들 사람들인데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니 못찾는 겁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전에 계신 분 중에서 석가보다 머리 좋은 사람 있습니까. 공자보다 잘난 사람있을까요. 이 시대에 통틀어서 공자보다, 석가보다 잘난 사람 없을 겁니다. 하나님이 만나주지 않으니까 못 만나는 겁니다. 만나주는 은혜가 있는 겁니다.
보통 사람 중에서 여기 계신 분들 전부는 보통 사람보다 좀 떨어질겁니다. 지금 시대 보통에서 밑으로 가지 보통 이상은 가기 어려울 겁니다. 머리도 노력도 인성도 경제도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궁극의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머리 좋고 명철하고 집중력 있고 파고드는 그런 사람들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못 만납니다. 궁극의 존재입니다. 이 말이 참 중요한 겁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난 겁니다. 장사하는 사람 중에서 옛날에 지금은 그런 장사가 없습니다. 달걀을 이고 다니면서 집집마다 팔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기름 들기름 콩기름, 기름파는 장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채 채소 과일도 이고다니면서 팝니다. 옷도 이고다니면서 팝니다. 시장에서 파는데 국화빵 아시나요. 국화빵 좀 큰 건 잉어빵이고 잉어빵 국화빵 장사하는 사람, 참기를 장사하는 사람, 야채 생선 장사하는 사람, 아주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하고 배운 게 없어서 그거 밖에 못합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밑의 급입니다.
그런데 80년대에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컴퓨터를 대학 행정실에 가서 파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도 붕어빵도 장사입니다. 제가 아는 저와 나이가 같은 신앙 생활 같이 했던 분 어머니가 붕어빵 장사했습니다. 채소 생선 달걀 기름 어머니가 그런 장사하면 우리 어머니 참기름 장사한다 이런 거 말을 못합니다. 이런 걸 말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잘난 사람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비행기 파는 사람이야 BMW 파는 사람이야 높은 겁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무엇을 가지느냐, 궁극의 존재 하나님을 만날 때 그 사람은 마음 속에 베짱이 있습니다. 시험 백점 맞을 때 금메달 땄으니까 목표 도달 한 거지요. 존재로 쓰면 더 이상 크고 높고 실력있고 강하고 더 좋은 분이 없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이 분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진실, 성도는 진실하다 그런 뜻입니다. 궁극을 찾아가는 겁니다. 그 전가지는 계속해서 찾아가는 겁니다. 어느정도 만났는데 대통령을 만나야하는데 국무총리 만났으면, 우리 나라에서는 그거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우리나라 국무총리는 사람에 따라서 허수아비입니다. 대통령이 실제고, 장관을 만났으면 우리 모두 장관상 우습게 봤는데 얼마나 어렵습니까.
사도바울의 전부를 쏟아보는 다른 게 없습니다. 이것만하면 다 되는 겁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 자기로써 다 하고 자기로써 기다리는 게 기대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소망은 좀 멀리 있습니다. 기대는 앞에 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이게 사도 바울에 추구하는 바고 그게 사도 바울의 전부입니다. 간절한 기대와 소망, 그것을 따라 그것을 위해서 그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서 간절한 기대와 소망인데 그걸 이루기 위해서 사도 바울의 지식, 사람은 모든 사람은 다 자기 대로의 이 세상에서 아는 정도의 두 글자로 뭘 가졌습니까. 지식을 가졌습니다. 자기 정도대로 하는 게 있습니다. 아는 것이 있는데 그 아는 것이 자기의 모든 범위가 되는 겁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말을 하던지 생각을 하던지 눈감고 명상을 하던지 활동을 하던지 길을 하던지 일을 하던지, 지식의 범위 안에서 뱅뱅 도는 게 사람입니다.
자기 아는 것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모르는 곳에는 못 갑니다. 모르는 일은 못합니다. 모르는 말도 못 합니다. 자기 아는 것만 할 수 있는 것이 사람, 지식의 범위에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다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고 지식에서 뭐가 생겨지느냐, 가치관이 생겨지는데 지식이란 하나가 아니지요, 그 하나가 아닌 지식에 따라서 가치관이 생겨지는데 가치관이라는 것도 하나가 아닙니다. 음식은 어떤 음식이 가장 맛있습니까. 저는 어릴 때 먹을 게 없어서 개떡을 먹었습니다. 보리가루로 떡을 쪘습니다. 요즘은 개도 줘도 안 먹습니다. 요즘 개 안 먹겠죠. 그런데 저 어릴 때는 그렇게 맛있게 먹었는데 그거 먹고 나서 붕어빵을 먹으면 개떡 못 먹습니다. 개떡보다는 붕어빵이 더 높은 겁니다. 붕어빵보다도 더 맛있는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있겠지요. 먹는 데에도 아는 만큼 먹는 가치관이 생겨집니다. 먹는 가치는 맛, 영양, 건강이겠지요. 음식에 대해서 아는 만큼 유익하고 해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음식에 대한 내용을 모르면 해로워도 먹습니다. 선진국일수록 살 많이 찌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못 사는 나라에는 먹을 게 없어서 똑똑한 사람이 잘난 사람이 많이 먹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경제가 되고 나면 아무거나 안 먹습니다. 그런데 막 그냥 모르는 사람은 먹어재끼니까 그런 거지요. 평균적으로 그런 겁니다. 모르면 맛있으면 먹는 겁니다. 먹으면 다 좋은 겁니까. 모르면 그런 겁니다. 아는 만큼 중요한 거 좋은 유익한 것을 따라가는 겁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입는 것은 맵시를 따라갈 겁니다. 옛날에는 그냥 입고 따시면 되는데 또 입어야 맵시가 나냐 그것입니다. 요즘 티코 자동차 주면 안탈걸요, 포니 자동차 주면 안탈걸요. 일본 사람들은 가치관이 다르니까 그 사람들은 허영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동차도 큰 거 안 산답니다. 자동차 집이 작습니다. 다 절약했습니다. 그게 다 가치관이지요. 뭐든지 다 그렇습니다. 가진 가치관에 따라 그렇게 되는 거지요. 지식에 따라 가치관이 정해집니다. 지식이 있는 만큼 가치관 있는 만큼 정해집니다. 그만큼 소원이 생겨집니다. 소원은 간절함입니다. 그리고 실력이 있는 대로는 달려가는 겁니다.
마라톤 42키로 달리면 한 30 몇키로 정도 가면 한계가 온답니다. 인간의 한계가 온답니다. 그때부터는 자기 의지로 달리지 않고 간다더만요, 사람의 의지를 넘어서는 만큼 그런 달리기를 수십 번 수백 번 하고 나가는 겁니다. 마라톤의 금메달을 위해서 달려가는 겁니다. 자기가 추구하는 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클수록, 중요한 것일수록 그렇습니다. 온갖 멸시 천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거 별별일 다 만나도 부끄럽지 않다 바울은, 궁극을 잡았으니까. 궁극의 존재, 궁극의 나라를 잡았습니다. 아무든지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 궁극의 가치는 이 세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아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겁니다. 신사참배를 안 하는 신앙은 일제 치하에서 그 사람들에게 멸시 받고 조롱받고 핍박받는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거 좋아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부활절 주일 되면 사순절에는 퍼포먼스를 하지요. 예수님 십자가 고난 느껴보겠다고 커다란 십자가 들고. 안하는 것보다 낫지만 장난하고 있는거지요.
그런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일제 치하에는 다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이 궁극의 것인줄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손양원 목사님들은 큰소리 탕탕 친겁니다. 일본식 기독교 믿으면 안되냐,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가느냐, 일본 천황도 지옥간다. 집채만한 바위를 손바닥만한 접시에 올리면 어떻게 되냐. 일본 나라는 사접시입니다. 그러면 깨져버립니다. 어떻게 깨졌습니까. 원자폭탄 두 번 박살나버렸죠. 그런 종들은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하늘나라 붙들었기 때문에 아무 일에던지 부끄럽지 않습니다. 어디까지 내려가도 멸시천대 조롱받아도, 억울한 것이 없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억울하다 안 알아준다, 신앙을 모르는 겁니다.
요셉이 당한 억울함을 말로 하겠습니다. 요셉은 마음 속에 억울한 거 하나도 없었습니다. 억울한 마음 있으면 신앙 아닙니다. 누명을 썼으면 억울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당하면 알고 당하면 힘들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 하나님이 봉시입니까. 바보입니까. 그냥 두게, 그래서 하나님을 붙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억울한 일이 없는 겁니다. 속는 건 바보입니다. 신앙 세계에서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을 이루어 가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을 만나던지 상관 없다는 거지요. 삼년 전에도 2년 전에도 바울은 달려갑니다. 바울이라는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붙든 그 일을 두고는 죽도록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달려가기 전에는 율법, 예수 믿는 사람을 마구 잡아 죽입니다. 사울 입장은 그렇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선례로 알았고, 사울의 지식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지식이 중요한 겁니다. 그리스도를 몰랐으니까, 율법의 진짜를 몰랐으니까. 교회를 그렇게 핍박했는데 원수인데 진실합니다. 그래서 어디있던지 자기로써는 진실해야합니다. 자기로써는 궁극을 찾고 옳은 걸 찾아야합니다. 때가 되니까 나타나셔서 보여주셨습니다. 너가 찾는 게 거기있다. 방향이 틀렸다.
그때부터 달려갑니다. 그리스도를 향해서, 일 년 전에 발견한 그리스도보다 새롭게 발견되니까 더 발견됩니다. 갈수록 그리스도가 새롭게 와닿습니다. 그래서 온전히 담대하여 그리스도는 알아지고 그렇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감사가 많아지고 죄송함이 많아지고 부끄러운 게 많아지고 그런 것이고 간절함이 많아지면 더 그런 것이고 떳떳함이 생겨지고 베짱이 생겨지고 의가 생각나면 탈선을 눈에 앞두고 있는 겁니다. 갈수록 죄송함은 더 커지고 그래서 이게 온전히 담대하여. 살던지 죽던지, 이것보다 더 큰건 없습니다. 빈부 존비 비천 이건 다 상관이 없는겁니다.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고 부자되도 좋고 가난도 상관없고. 살던지 죽던지 귀해지던지 천해지던지 이래도 거기서 그리스도가 존비되게 그렇게 됩니다.
몸이라는 것은 어떤 몸이 됩니까. 무엇에 가치를 두고, 첫째 지식을 가지고 지식 범위 안에서 얼마만큼 자기 시간을 노력을 들여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렇게 되게 됩니다. 마음은 동으로 가고 몸은 서로 가면 어디로 가는 사람이지요. 서쪽가는 사람입니다. 공부해야하는데 숙제해야하는데 하면 눈은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게임하는 사람입니다. 백날 해봐야 몸이 놀고 있으면 그 사람은 노는 사람입니다. 얘야 밭에 갔다오너라, 안갔습니다. 둘째에게 밭에 가라고 했는데 싫습니다. 가는 사람이 순종했습니다. 내 몸이 움직이는대로 사람은 그런 사람이 됩니다. 거짓말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세 번하면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거짓말은 도둑질보다 더 나쁜겁니다. 주일어기는 죄 보다 더 클 수 있습니다. 아주 나쁜 죄입니다. 거짓말하면 안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모든 노력을 성령이 사도 바울에 영을 붙드시고 그걸 마음을 붙들고 보는 거 듣는 거 전부 다가 자기를 참사람 만드는 그리스도 닮은 사람 만드는 거기에 주력을하고, 거기만 전부 다 바쳤습니다. 그리하다보니까 그리스도가 삽니다. 겉은 바울인데 그리스도가 살고 있습니다. 그리되다 보니까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것은 마지막 끝인데 하나님께서 인생의 죽음을 주신 것은 마지막 최후의 마무리, 건물 다 지으면 중공 검사가 되어야 바른 것이 되는 겁니다. 그 도장을 받아야 잘 죽는 죽음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 순교자들의 끝도 그렇습니다.
살아있으면 남은 사람에게 좋은 것이고, 남은 사람들에게, 바울도 사는 것도 좋으니까 죽는 것도 유익하다. 이런 죽음을 소망하고 순생으로 사는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지요. 날마다 죽음으로 사는 겁니다. 그래 살다가 끝나면 완성입니다. 성공, 마무리 되는 죽음, 성도의 간절한 소망, 우리도 이런 소망 가지고 노력해봐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