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9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6-04-19조회 11추천 1
2026년 4월 19일 주일 오후
찬송: 16장
본문: 빌립보서 1장 20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머리 좋고 공부 많이하고 글 잘 읽는 사람에게는 뭐라고 합니까. 아버지여 지혜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이 말씀을, 성경을 알아야 답이 나오지요. 숨기시고 지혜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글 잘 읽는 사람에게 구원도리는 숨겨놨습니다. 모릅니다 그 사람들은, 기능이라는 글자, 기능구원할 때 기능 그걸 두고 국문학 교수하고 초등학교 교사하고 붙었는데 어느 기 자가 맞습니까. 국문학 교수가 보는 기자는 틀렸고 초등학교 교사의 기 자는 맞습니다. 백 목사님의 기 자 할 때 기를 모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사람이 읽고 전합니다. 사람이 듣습니다. 그런데 구원도리로 하는 것은 성령의 감동이어야하고 실행을 하는 것은 이 도리로 걸어가는 것은 역시 성령의 능력이라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선천적으로 의지력 절제력 인내심 끈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향도 집요하고 통찰력있고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사도 바울 뿐이겠습니까. 가도 바울이 그런 좋은 타고난 좋은 자질을 가지고 사도 바울이 된 것은 그걸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안 되는 줄 알고 겸손이 갔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머리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닙니다.
여기 앉아 계신 분 중에서 석가모니보다 더 머리 좋은 사람, 세상 눈이 더 넓은 사람이 있습니까. 석가모니 공자 따라가겠습니까. 그런데 석가모니와 공자는 몰랐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그들은 성령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무엇을 읽는다고요. 신들은 신들의 언어가 있겠지요. 사람의 언어와 강아지의 언어는 다릅니다. 훈련을 시키면 알아듣지만 깊은 걸 말하면 강아지에게 이게 건설구원이고 기본구원이란다 도리라 그런단다. 도덕이 없냐, 알아듣습니까. 먹어, 말 들어 이런 것은 알아듣겠지요. 사람의 언어와 강아지 언어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신의 언어는 하나님의 신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의 언어인데 이걸 사람의 말로 기록하신 게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이 읽을 수 있고 전할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는 것은 어떻게 된다고요. 성령의 역사, 그대로 실행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
그래서 설교자들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말 잘하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청산유수로 해도 세상 말은 다 먹히나, 이 말이나 저 말이나 거기서 거기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은 안되는 겁니다. 깨닫는 것도 실행하는 것도 그런 겁니다. 그래서 저도, 구역장들도 반사 선생님들도 간절히 기도하는 거 참된 목자가 되는 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거, 이게 가장 중요한 겁니다. 사도 바울은 간절한 ㄱ기대와 소망을 따라. 간절한 것은 무엇이 간절한 것인가. 뭔가 필요할 때 해야하는데 도움이 필요할 때 뭔가 해야하는데 잘 안될 때 모입니다. 다른 것이 필요없어서가 아니고 이게 참 중요한데 마음이 모이고 생각이 다 모이고 뜻이 다 모이고 간절함이 되는 겁니다. 간절한 소망과 기대는 소망에 따라. 간절함은 기도로 이어집니다. 간절한 소망, 우리 공회 우리 교회에 남녀 청년들을 보고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강팍하여 결혼에 마음 없는 남녀 청년들을 열어주옵소서, 하고 싶지만 못하는 길을 열어놓으소서. 할려고 하는데도 뭔가 잘 안되니까 애가 타는 거지요. 간절히 기도하는 겁니다.
결혼 했는데 아기를 소망하는데 안 주시니까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람 힘으로 안됩니다. 아이를 가졌는데 아이들이 잘 떨어져버립니다. 본인이 느낀만큼 그렇게 되는 겁니다.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는지 목숨이 달린 사람은 살려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할 겁니다. 큰 수술 앞둔 사람이 있으면 그 수술 잘 되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겁니다. 수술합니다, 확률은 반반입니다. 잘못되면 갑니다. 준비는 하십시오. 그럴 때 본인과 가족들은 간절하게 생깁니다. 그걸 간절이라고 합니다. 섞임없이 집중되는 것. 사도 바울이 이런 마음으로 간절한 기대와 소망 기대는 할 일을 다 해놓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해야할 거 안하고 기다리는 것은 허영과 허욕입니다. 사람이 할 일하고, 노력 다하고 한 다음에 할 거는 다 했습니다. 결과는 다 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최선을 다해서 시험을 쳤습니다. 그게 중요한 만큼 간절한 기대가 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이거 끌고가는 주격입니다. 이 말씀이 오는 봉독한 전체 말씀의 주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런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어디서 시작되었느냐, 살아가다보니까 뜻하지 않게 발생이 될 수가 있습니다. 큰일났네, 수습이 되어야할건데, 또 몸이 아픕니다. 어제 들었던 거 오늘 보니까 들으니까 아는 거지요. 그런데 몰랐다가 아는 것 중에서도 정말 중요한 게 있습니다. 비슷한 비유인데, 몸이 아픈데 병원에 아무리 다녀도 수술해도 안되고 뚜렷한 방법이 없는데 인터넷 보니까 뭔가 발견했습니다. 그걸로 보니까 특효약이라고 하는데 그걸 못 구하겠습니다. 그걸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다니겠죠. 언제부터 생겨진거지요. 언제부터 생겨진 겁니까. 그 특효약이 있다는 걸 알고부터 그렇게 된겁니다. 그런 게 있는 줄 알고 나니까 필요하니까 간절함이 되어지는 겁니다. 몰랐는데 알았습니다.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어디서 생겨진 겁니까. 몰랐다가 알았으니까 아는 것에서 생겨졌고 아는 걸 지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간절한 것은 지식에서 생깁니다.
사람의 지식은 뭘로 나타난다고요, 무조건 아닌데,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지식이 뭡니까. 사람의 말입니다. 말은 곧 지식입니다. 모르는 말은 못하는 겁니다. 그 자체는 알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래서 지식은 다 가지고 있는데 각 사람의 나이에 따라 배움에 따라 집중에 따라 받아들임에 따라서 양도 범위도 다릅니다. 다르지만 각각 자기 주관으로 아는 건 압니다. 다 아는 게 있습니다. 꼬맹이들에게 물어보지요. 아는 게 있습니다. 지식이 있습니다. 생활 전체가 다 그런 겁니다. 아는 게 있으면 마음의 소원하는 거 바라보는 거 욕심하는 거, 좋은 것을 노력하게 되어있습니다. 맛있는 걸 알기 전에는 옛날에 중세대 때 고급만 먹을 수 있는 맛있게 먹은 흔한 음식 중 하나가 뭔지 아시나요. 생걸로 먹으면 탈이 나는데 삶아서 구워서 껍질을 벗겨서 먹은 게 맛있는, 그게 뭘까요. 감자입니다. 감자가 그렇게 맛있게 먹었답니다. 수많은 사람을 살렸답니다. 요즘은 맛있는 게 많아서 강아지가 파리바게트를 물고 다닌다고 합니다.
맛있는 게 나오면 맛있는 걸 찾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문제가 많은 거지요. 먹는 거 입는 것도, 80년대 70년대 그때의 이화여대의 여대생들, 옷감을 걸치고 다닌다고 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여학생이 입은 옷을 보고 썩는 냄새가 난다고 휘젓더랍니다. 그 사람들 인성이 다 썩어버렸고 사치하는데 옷 입고 꾸미는데 다 하니까 그런 됩니다. 아주 유명한 분이 한 말입니다. 요즘은 옷을 어떻게 입습니까. 별로 가치를 안 두지요. 하도 많으니까. 먹는 것이든 입는 것이든 자동차도 옛날에는 우리나라 자동차 포니 자동차만 있어도 부자였습니다. 포니 자동차는 지금 티코 모닝보다 훨씬 못합니다. 굴러다니는 깡통이 포니였습니다. 요즘은 그거 희소성 때문에 몰라도 아무도 안 탈걸요. 요즘 일본 사람들, 한 달에 전기세를 50만원을 썼는데 더 비싸던가요. 그랬는데 살고보니까 한 달 살아보니까 30만원 밖에 안 나온답니다. 왜 줄어들었지요. 한국에는 세탁기 일주일에 한 번 건조기 돌리고 다 했는데 일본 사람들 보니까 어지간해서 에어컨 난방 안 튼답니다. 처음에는 불편했는데 적응되었고 그게 일본 사람들입니다. 실속있는 사람들. 한국 사람들은 허영이 꽉 찬 사람들이고.
먹는 거든, 입는 거든 제가 설명하는 방향이 뭡니까. 사람은 지식에 따라서 가치관이 생겨집니다. 아는대로 좋은 것을 찾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곧 소원이 됩니다. 그게 소원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평생 달려가는 주력의 방향이 됩니다. 그거 원한다고 다 그렇게 되지 않으나 지식, 지식에서 가치관, 가치관에서 소원, 소원에서 주력의 방향, 행동이 나오는 겁니다. 사도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알게되는 겁니다. 몰랐는데 알게 되니까 먹을 걸 찾는데 먹으니까 먹을 거 만들어야하고 소화시켜야하고 배설해내야하고 복잡한데 알약을 발명하니까 안 먹어도 됩니다 밥, 그런데 그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루에 알약 하나 먹고 계속 살 수 있다면 살 수 있을까요. 씹는 기능이 없어질 것이고 넘기는 기능, 소화 못 시킬 것이고 문제가 있습니다. 몇 십 년 전에 백 목사님 설교에 나온 말씀입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 좋은 걸 찾게 됩니다. 세상은 흐름이 다 그렇습니다.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하나의 수단으로 그럴 순 있습니다. 요즘은 사법 고시 없어졌으니까. 옛날에 과거 시험인데, 과거 시험 합격하기 위해서 공부하는데 겉으로는 노가다도 다니고 장사도 하고 그래서 막노동판에 가서 노동하는데 그 목적이 노동아닙니다. 그것처럼 현재 자기의 시간과 마음과 노력을 거기에 기울여지면 일반적으로 말하면 하루 생활에서 내 마음이 가장 많이 가는 무엇에 무엇을 위해서 시간이 노력이 그게 주력하는 바고 가치관입니다. 돼지는 뭘 좋아하지요. 먹고 배부르면 됩니다. 그게 돼지의 지식의 범위입니다. 먹을 거 주면 그냥 좋아하는 겁니다. 도살장에 끌려갈 돼지도 먹을 거 주면 좋아합니다. 성경에 돼지 나오지요. 어디 나오지요. 2000마리 되는 돼지떼가, 그게 돼지입니다. 젖먹이 아기는 배부르고 엄마나 아빠 있으면 됩니다. 젖먹이의 지식이고 가치고 본능이니까 그 수준입니다. 재미있는 거 맛있는 거 그것만 찾고 젖먹이와 같고 그런 겁니다.
지능 시대는 본능대로 살아라. 그런 시대입니다. 너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살아라. 보고 싶으면 봐라, 먹고 싶으면 먹어라, 가지고 싶으냐 다 가져라. 그런 시대입니다. 법적으로 그렇게 해놓고 못하게 하면 처벌합니다. 본능은 꺾어야하고 다스려야하는 겁니다. 세 살 즈음 되면 똑똑한 애들은 다스립니다. 일곱 살 여덟 살이 되면 안 아프면 됩니다. 청소년들은 자기계발의 때라서 돌아봐야합니다. 내 나이에 지금 뭘 해야하나. 이런 생각이 들어가야 이 정도 생각이 있어야 보통 수준이 되는 겁니다. 수준이 떨어지는 겁니다. 청년 즈음 되면 이제 높은 걸로 올라가야겠지요. 청년들의 가치는 직장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도 바울이 말하는 가치는 뭐냐, 나의 간절한 소망을 따라. 그러니까 바울이 아는 지식 몰랐던 걸 깨닫고 나서 따져보니까 가장 고상한, 그 이상이 없고 유가 없는 유일한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그걸 깨닫고 간절한 소망 그 소망을 따라 이것을 위해서 목적으로 이게 동기가 되고 목적이 되어서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그걸 하는 노력이 부끄럽지 않고 이루어가는 과정에는 수많은 역경이 있는 거지요. 뭔가 좋은 것을 이루려면 고진감래라고 하지요. 필연적으로 있는 겁니다.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가장 고상한 이걸 성취하려고 하니까 많은 일이 생깁니다. 부끄럽지 않고 부끄러울 수도 있습니다. 조롱 받을 수도 있습니다. 천대 받을 수도 있습니다. 멸시 받을 수도 있습니다. 노가다 하니까 노가다하네, 무식하겠네. 그런데 내가 이래도 사법고시 준비합니다 하면 그렇습니까. 존경하겠지요. 달리봅니다. 그런데 어떤 서부 교회 반사 선생님이 심방을 갔습니다. 부모님 나와서 누구십니까, 선생님이다 했죠. 어느 학교 선생님입니까. 교회 학교 선생님입니다. 학교 선생님이라고 하니까 존경하다가 교회 선생님이라고 하니까 무시로 바뀌어버립니다. 사도 바울이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학교 선생이 아니고 교회 선생입니다. 존경 우러러보는 거 환영 없습니다. 멸시천대 조롱 받습니다. 이런 게 있어야 신앙입니다. 사람에 대한 것도 이런 게 있어야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있고 미혹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바리새파로 있을 때도 진실하고 정직했습니다. 몰랐으니까, 그런데 알고나서 보니까 진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달려가는 겁니다. 온전히 담대하여, 옛날에 담대했으니까 그리스도 만나기 전이라면 담대해서 사람도 때려죽입니다. 그래서 잘못 깨달으면, 이단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가지고 죽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그렇게 지금 전쟁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잘못하면 종교전쟁 생긴다. 전쟁 중아 가장 무서운 게 종교 전쟁입니다. 그래서 바리새파로 있을 때도 죽이면서 충성하는 걸로 알았습니다. 온전히 담대하고 그랬던건데 이제 더 담대하지요. 몰랐을 때 틀린 게 담다했는데 바로 돌아서고 나면 흔들리지 않는 것이고. 우리가 공회가 가는 길을 바로 깨달으면 천하가 뭐라고 하더라도 요동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대로 신앙의 바른 길을 걸어갈 때 요동치지 않음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역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온전히 담대하여 살던지 죽던지 생사 고락 빈부 귀천 존비 상관이 없다는 거지요.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무엇을 연습시키냐는 거에 따라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 연습 어떻게 결정을 하느냐, 성령이 영에게, 영이 마음에 마음이 몸에 몸이 행동으로 일로 이런 순서로 나타는데 하나님께서 알려주셨고 알게 된 다음에는 그렇게 되는 겁니다.
우리들이 가질 간절한 기대와 소망, 여기에서 우리가 지난 주와 다른 각도로 생각해봤습니다.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이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전과 같이 함에도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성령의 영을 통해서 마음이 몸에게 그렇게 살아서 그리스도가 존귀 그리스도도 쫓아다닙니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그렇게 죽는 것도 유익하다. 바울은 살아있는데 이미 완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에 나옵니까. 내가 떠나서 주와 함께 있는 게 더 좋은데, 그리스도 함께 있을 욕망있는 것이 좋으나,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살아생전에 이미 목표 달성, 그런 사람이 있고 대부분 사람은 마지막까지 성공 못하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6장
본문: 빌립보서 1장 20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머리 좋고 공부 많이하고 글 잘 읽는 사람에게는 뭐라고 합니까. 아버지여 지혜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이 말씀을, 성경을 알아야 답이 나오지요. 숨기시고 지혜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글 잘 읽는 사람에게 구원도리는 숨겨놨습니다. 모릅니다 그 사람들은, 기능이라는 글자, 기능구원할 때 기능 그걸 두고 국문학 교수하고 초등학교 교사하고 붙었는데 어느 기 자가 맞습니까. 국문학 교수가 보는 기자는 틀렸고 초등학교 교사의 기 자는 맞습니다. 백 목사님의 기 자 할 때 기를 모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사람이 읽고 전합니다. 사람이 듣습니다. 그런데 구원도리로 하는 것은 성령의 감동이어야하고 실행을 하는 것은 이 도리로 걸어가는 것은 역시 성령의 능력이라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선천적으로 의지력 절제력 인내심 끈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향도 집요하고 통찰력있고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사도 바울 뿐이겠습니까. 가도 바울이 그런 좋은 타고난 좋은 자질을 가지고 사도 바울이 된 것은 그걸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안 되는 줄 알고 겸손이 갔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머리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닙니다.
여기 앉아 계신 분 중에서 석가모니보다 더 머리 좋은 사람, 세상 눈이 더 넓은 사람이 있습니까. 석가모니 공자 따라가겠습니까. 그런데 석가모니와 공자는 몰랐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그들은 성령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무엇을 읽는다고요. 신들은 신들의 언어가 있겠지요. 사람의 언어와 강아지의 언어는 다릅니다. 훈련을 시키면 알아듣지만 깊은 걸 말하면 강아지에게 이게 건설구원이고 기본구원이란다 도리라 그런단다. 도덕이 없냐, 알아듣습니까. 먹어, 말 들어 이런 것은 알아듣겠지요. 사람의 언어와 강아지 언어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신의 언어는 하나님의 신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의 언어인데 이걸 사람의 말로 기록하신 게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이 읽을 수 있고 전할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는 것은 어떻게 된다고요. 성령의 역사, 그대로 실행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
그래서 설교자들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말 잘하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청산유수로 해도 세상 말은 다 먹히나, 이 말이나 저 말이나 거기서 거기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은 안되는 겁니다. 깨닫는 것도 실행하는 것도 그런 겁니다. 그래서 저도, 구역장들도 반사 선생님들도 간절히 기도하는 거 참된 목자가 되는 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거, 이게 가장 중요한 겁니다. 사도 바울은 간절한 ㄱ기대와 소망을 따라. 간절한 것은 무엇이 간절한 것인가. 뭔가 필요할 때 해야하는데 도움이 필요할 때 뭔가 해야하는데 잘 안될 때 모입니다. 다른 것이 필요없어서가 아니고 이게 참 중요한데 마음이 모이고 생각이 다 모이고 뜻이 다 모이고 간절함이 되는 겁니다. 간절한 소망과 기대는 소망에 따라. 간절함은 기도로 이어집니다. 간절한 소망, 우리 공회 우리 교회에 남녀 청년들을 보고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강팍하여 결혼에 마음 없는 남녀 청년들을 열어주옵소서, 하고 싶지만 못하는 길을 열어놓으소서. 할려고 하는데도 뭔가 잘 안되니까 애가 타는 거지요. 간절히 기도하는 겁니다.
결혼 했는데 아기를 소망하는데 안 주시니까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람 힘으로 안됩니다. 아이를 가졌는데 아이들이 잘 떨어져버립니다. 본인이 느낀만큼 그렇게 되는 겁니다.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는지 목숨이 달린 사람은 살려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할 겁니다. 큰 수술 앞둔 사람이 있으면 그 수술 잘 되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겁니다. 수술합니다, 확률은 반반입니다. 잘못되면 갑니다. 준비는 하십시오. 그럴 때 본인과 가족들은 간절하게 생깁니다. 그걸 간절이라고 합니다. 섞임없이 집중되는 것. 사도 바울이 이런 마음으로 간절한 기대와 소망 기대는 할 일을 다 해놓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해야할 거 안하고 기다리는 것은 허영과 허욕입니다. 사람이 할 일하고, 노력 다하고 한 다음에 할 거는 다 했습니다. 결과는 다 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최선을 다해서 시험을 쳤습니다. 그게 중요한 만큼 간절한 기대가 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 이거 끌고가는 주격입니다. 이 말씀이 오는 봉독한 전체 말씀의 주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런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어디서 시작되었느냐, 살아가다보니까 뜻하지 않게 발생이 될 수가 있습니다. 큰일났네, 수습이 되어야할건데, 또 몸이 아픕니다. 어제 들었던 거 오늘 보니까 들으니까 아는 거지요. 그런데 몰랐다가 아는 것 중에서도 정말 중요한 게 있습니다. 비슷한 비유인데, 몸이 아픈데 병원에 아무리 다녀도 수술해도 안되고 뚜렷한 방법이 없는데 인터넷 보니까 뭔가 발견했습니다. 그걸로 보니까 특효약이라고 하는데 그걸 못 구하겠습니다. 그걸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다니겠죠. 언제부터 생겨진거지요. 언제부터 생겨진 겁니까. 그 특효약이 있다는 걸 알고부터 그렇게 된겁니다. 그런 게 있는 줄 알고 나니까 필요하니까 간절함이 되어지는 겁니다. 몰랐는데 알았습니다.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어디서 생겨진 겁니까. 몰랐다가 알았으니까 아는 것에서 생겨졌고 아는 걸 지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간절한 것은 지식에서 생깁니다.
사람의 지식은 뭘로 나타난다고요, 무조건 아닌데,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지식이 뭡니까. 사람의 말입니다. 말은 곧 지식입니다. 모르는 말은 못하는 겁니다. 그 자체는 알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래서 지식은 다 가지고 있는데 각 사람의 나이에 따라 배움에 따라 집중에 따라 받아들임에 따라서 양도 범위도 다릅니다. 다르지만 각각 자기 주관으로 아는 건 압니다. 다 아는 게 있습니다. 꼬맹이들에게 물어보지요. 아는 게 있습니다. 지식이 있습니다. 생활 전체가 다 그런 겁니다. 아는 게 있으면 마음의 소원하는 거 바라보는 거 욕심하는 거, 좋은 것을 노력하게 되어있습니다. 맛있는 걸 알기 전에는 옛날에 중세대 때 고급만 먹을 수 있는 맛있게 먹은 흔한 음식 중 하나가 뭔지 아시나요. 생걸로 먹으면 탈이 나는데 삶아서 구워서 껍질을 벗겨서 먹은 게 맛있는, 그게 뭘까요. 감자입니다. 감자가 그렇게 맛있게 먹었답니다. 수많은 사람을 살렸답니다. 요즘은 맛있는 게 많아서 강아지가 파리바게트를 물고 다닌다고 합니다.
맛있는 게 나오면 맛있는 걸 찾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문제가 많은 거지요. 먹는 거 입는 것도, 80년대 70년대 그때의 이화여대의 여대생들, 옷감을 걸치고 다닌다고 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여학생이 입은 옷을 보고 썩는 냄새가 난다고 휘젓더랍니다. 그 사람들 인성이 다 썩어버렸고 사치하는데 옷 입고 꾸미는데 다 하니까 그런 됩니다. 아주 유명한 분이 한 말입니다. 요즘은 옷을 어떻게 입습니까. 별로 가치를 안 두지요. 하도 많으니까. 먹는 것이든 입는 것이든 자동차도 옛날에는 우리나라 자동차 포니 자동차만 있어도 부자였습니다. 포니 자동차는 지금 티코 모닝보다 훨씬 못합니다. 굴러다니는 깡통이 포니였습니다. 요즘은 그거 희소성 때문에 몰라도 아무도 안 탈걸요. 요즘 일본 사람들, 한 달에 전기세를 50만원을 썼는데 더 비싸던가요. 그랬는데 살고보니까 한 달 살아보니까 30만원 밖에 안 나온답니다. 왜 줄어들었지요. 한국에는 세탁기 일주일에 한 번 건조기 돌리고 다 했는데 일본 사람들 보니까 어지간해서 에어컨 난방 안 튼답니다. 처음에는 불편했는데 적응되었고 그게 일본 사람들입니다. 실속있는 사람들. 한국 사람들은 허영이 꽉 찬 사람들이고.
먹는 거든, 입는 거든 제가 설명하는 방향이 뭡니까. 사람은 지식에 따라서 가치관이 생겨집니다. 아는대로 좋은 것을 찾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곧 소원이 됩니다. 그게 소원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평생 달려가는 주력의 방향이 됩니다. 그거 원한다고 다 그렇게 되지 않으나 지식, 지식에서 가치관, 가치관에서 소원, 소원에서 주력의 방향, 행동이 나오는 겁니다. 사도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알게되는 겁니다. 몰랐는데 알게 되니까 먹을 걸 찾는데 먹으니까 먹을 거 만들어야하고 소화시켜야하고 배설해내야하고 복잡한데 알약을 발명하니까 안 먹어도 됩니다 밥, 그런데 그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루에 알약 하나 먹고 계속 살 수 있다면 살 수 있을까요. 씹는 기능이 없어질 것이고 넘기는 기능, 소화 못 시킬 것이고 문제가 있습니다. 몇 십 년 전에 백 목사님 설교에 나온 말씀입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 좋은 걸 찾게 됩니다. 세상은 흐름이 다 그렇습니다.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하나의 수단으로 그럴 순 있습니다. 요즘은 사법 고시 없어졌으니까. 옛날에 과거 시험인데, 과거 시험 합격하기 위해서 공부하는데 겉으로는 노가다도 다니고 장사도 하고 그래서 막노동판에 가서 노동하는데 그 목적이 노동아닙니다. 그것처럼 현재 자기의 시간과 마음과 노력을 거기에 기울여지면 일반적으로 말하면 하루 생활에서 내 마음이 가장 많이 가는 무엇에 무엇을 위해서 시간이 노력이 그게 주력하는 바고 가치관입니다. 돼지는 뭘 좋아하지요. 먹고 배부르면 됩니다. 그게 돼지의 지식의 범위입니다. 먹을 거 주면 그냥 좋아하는 겁니다. 도살장에 끌려갈 돼지도 먹을 거 주면 좋아합니다. 성경에 돼지 나오지요. 어디 나오지요. 2000마리 되는 돼지떼가, 그게 돼지입니다. 젖먹이 아기는 배부르고 엄마나 아빠 있으면 됩니다. 젖먹이의 지식이고 가치고 본능이니까 그 수준입니다. 재미있는 거 맛있는 거 그것만 찾고 젖먹이와 같고 그런 겁니다.
지능 시대는 본능대로 살아라. 그런 시대입니다. 너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살아라. 보고 싶으면 봐라, 먹고 싶으면 먹어라, 가지고 싶으냐 다 가져라. 그런 시대입니다. 법적으로 그렇게 해놓고 못하게 하면 처벌합니다. 본능은 꺾어야하고 다스려야하는 겁니다. 세 살 즈음 되면 똑똑한 애들은 다스립니다. 일곱 살 여덟 살이 되면 안 아프면 됩니다. 청소년들은 자기계발의 때라서 돌아봐야합니다. 내 나이에 지금 뭘 해야하나. 이런 생각이 들어가야 이 정도 생각이 있어야 보통 수준이 되는 겁니다. 수준이 떨어지는 겁니다. 청년 즈음 되면 이제 높은 걸로 올라가야겠지요. 청년들의 가치는 직장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도 바울이 말하는 가치는 뭐냐, 나의 간절한 소망을 따라. 그러니까 바울이 아는 지식 몰랐던 걸 깨닫고 나서 따져보니까 가장 고상한, 그 이상이 없고 유가 없는 유일한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그걸 깨닫고 간절한 소망 그 소망을 따라 이것을 위해서 목적으로 이게 동기가 되고 목적이 되어서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그걸 하는 노력이 부끄럽지 않고 이루어가는 과정에는 수많은 역경이 있는 거지요. 뭔가 좋은 것을 이루려면 고진감래라고 하지요. 필연적으로 있는 겁니다.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가장 고상한 이걸 성취하려고 하니까 많은 일이 생깁니다. 부끄럽지 않고 부끄러울 수도 있습니다. 조롱 받을 수도 있습니다. 천대 받을 수도 있습니다. 멸시 받을 수도 있습니다. 노가다 하니까 노가다하네, 무식하겠네. 그런데 내가 이래도 사법고시 준비합니다 하면 그렇습니까. 존경하겠지요. 달리봅니다. 그런데 어떤 서부 교회 반사 선생님이 심방을 갔습니다. 부모님 나와서 누구십니까, 선생님이다 했죠. 어느 학교 선생님입니까. 교회 학교 선생님입니다. 학교 선생님이라고 하니까 존경하다가 교회 선생님이라고 하니까 무시로 바뀌어버립니다. 사도 바울이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학교 선생이 아니고 교회 선생입니다. 존경 우러러보는 거 환영 없습니다. 멸시천대 조롱 받습니다. 이런 게 있어야 신앙입니다. 사람에 대한 것도 이런 게 있어야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있고 미혹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바리새파로 있을 때도 진실하고 정직했습니다. 몰랐으니까, 그런데 알고나서 보니까 진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달려가는 겁니다. 온전히 담대하여, 옛날에 담대했으니까 그리스도 만나기 전이라면 담대해서 사람도 때려죽입니다. 그래서 잘못 깨달으면, 이단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가지고 죽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그렇게 지금 전쟁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잘못하면 종교전쟁 생긴다. 전쟁 중아 가장 무서운 게 종교 전쟁입니다. 그래서 바리새파로 있을 때도 죽이면서 충성하는 걸로 알았습니다. 온전히 담대하고 그랬던건데 이제 더 담대하지요. 몰랐을 때 틀린 게 담다했는데 바로 돌아서고 나면 흔들리지 않는 것이고. 우리가 공회가 가는 길을 바로 깨달으면 천하가 뭐라고 하더라도 요동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대로 신앙의 바른 길을 걸어갈 때 요동치지 않음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역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온전히 담대하여 살던지 죽던지 생사 고락 빈부 귀천 존비 상관이 없다는 거지요.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무엇을 연습시키냐는 거에 따라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 연습 어떻게 결정을 하느냐, 성령이 영에게, 영이 마음에 마음이 몸에 몸이 행동으로 일로 이런 순서로 나타는데 하나님께서 알려주셨고 알게 된 다음에는 그렇게 되는 겁니다.
우리들이 가질 간절한 기대와 소망, 여기에서 우리가 지난 주와 다른 각도로 생각해봤습니다.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이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전과 같이 함에도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성령의 영을 통해서 마음이 몸에게 그렇게 살아서 그리스도가 존귀 그리스도도 쫓아다닙니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그렇게 죽는 것도 유익하다. 바울은 살아있는데 이미 완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에 나옵니까. 내가 떠나서 주와 함께 있는 게 더 좋은데, 그리스도 함께 있을 욕망있는 것이 좋으나,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살아생전에 이미 목표 달성, 그런 사람이 있고 대부분 사람은 마지막까지 성공 못하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