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5일 수밤
김동민2026-04-15조회 6추천 2
2026년 4월 15일 수밤
찬송: 29장
본문: 빌립보서 3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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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부터 8절 9절 초반까지 그리스도를 이야기하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걸 말씀하시다가 9절 중간에 보니까 의를 말씀합니다. 내가 가진 의는, 의를 말씀하면서 의를 왜 말씀하느냐, 바울이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전에 가졌던 의는 율법의 의였습니다. 의롭다를 받은 의였습니다. 의라는 것은 무죄 위에 의가 됩니다. 죄를 없이하고 죄를 안 짓고 그 다음에 의가 건설이 되게 됩니다. 죄라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게 죄입니다. 일반 교계에서는 의를 굉장히 중요히 여깁니다. 이신칭의 할 때 이 자가 써 이 자입니다. 믿음으로써 의로움을 얻는다. 상식적으로 아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간다, 바울이 율법의 의를 가졌는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다. 아는 율법을 전부 다 행했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행했는데 그리스도를 알고나서 보니까 자기가 행한 그 의를 가지고 천국가는 게 아니더라는거죠.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율법 시대였고 육체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율법주의자였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 게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구약 시대 때도 율법을 바로 읽은 사람들은 준행을 하되 구주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렸기 그 자체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진실이라는 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파고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파고 들어가다보면 실체를 알게 되어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가다가 힘드니까 복잡하니까 가다가 중단하고 말기 때문에 파고 들어가면 나중에 실체를 알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불교 믿는 중 중에도 진실한 사람들은 불교가 한계가 있고 가짜라는 걸 압니다. 모를 수 없습니다. 대충대충하니까 그런 거지. 이게 아닌데 싶은데 불택자면은 들어가다가 막히면 알지만 불택자니까 열어주지 않으니까 모르는 것이고 그때까지 가기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고 평생 그러는 겁니다. 서부교회 묘지에 있는 아주 높은 그 분인데 회개하고 돌아와서 그런 분은 택자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진실은 최고를 찾는 겁니다. 더 이상이 없는 최고, 최고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궁극입니다. 이게 진실입니다.
바울은 그러기 때문에 율법을 붙들고 끝까지 갔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니까 그 안에서 발견들을 한다 그런 사람이 되어서 나타나길 소망을 했고 내가 가진 의는 이때부터 그리스도를 발견한부터 의는 율법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의를 가졌는데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난 후로는 행함의 의가 아니고 믿음을 말미암아 한 의라. 새벽말씀을 살펴봅니다. 이 세상에는 없어질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실제 그러냐, 자기 복음이 됩니다.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될 것은 안 믿는 불신자가 뭐라고 하든지, 내가 생각할 때 어떻게 되던지 성경 말씀이 부탁하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깊이 파고 들어가고 시작은 넓어도 자기를 부인하고 성경을 받아들이는 게 지혜롭습니다. 성경 말씀은 절대 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지막에 이 세상은 불탈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과 세상이 있는 모든 것은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비싼게 뭘까요. 그게 시간이라는 게 있습니다. 시간과 젊음이라는 것은 같은 말이지요. 젊은 사람들은 이 말을 모릅니다. 아이들은 더 모르고. 젊은 사람들은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굉장히 비싼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없어져가는 겁니다. 줄어져 가는 것이고 없어져 가는 것이다. 마음과 몸에 틀어있는 재능들, 보고 듣고 접촉을 하고 익히고 연습하고 지식도 있고 지식으로 인해서 뭐든지 볼 수 있는 시야도 있고 구별성도 있고 이런 것들은 마음을 가지고 몸을 가지고 마련한 내 것들입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요. 많은 걸을 보고 습득해서 지식 속에 담아놓은 사람 그런 거 가지고 활용하는 지혜를 가진 사람.
판단하는 구별성 가지는 사람, 판단력 판별하는 사람, 잘 계산하는 사람 여러 가지 마음의 재능들이 있습니다. 영어를 쓸 줄 알고 말할 줄 알고, 피아노 라든지 그림이라든지 뭐든지 이게 각자 가진 것들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좋은 대학을 가지면 학벌 직장 재물이 들어가면 돈이 되는 거지요. 가족들 과정 이런 관계 이런 것들이 대략적으로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관계인데 마음의 것이든 몸의 기능이든 이건 전부 내가 가진 것들인데 세월 속에 점점 줄어드는 겁니다. 쓰여져 없어지는 겁니다. 우주에 비해서 지구는 아주 먼지만한 것인데, 이 안에 80억이 살고 있고 80억이 살아도 호주같은 나라는 나라가 텅텅 비어있습니다. 얼마나 파먹었는데 아직도 석유 가스 다 있는데 지나고 나니까 바닥이 보인다라고 하지만 물질계 우주에 참 넓은데 그 많은 것들이 점점 줄어들어서 얼마 지나면 끝이 나겠다 그렇게 말을 합니다. 점점 없어지는 것들이다.
그렇게 성경을 말을 하고 생각해봤으니까 그런 거고 세상이 없어질 것이다, 지식이다. 그 지식을 가져도 없어질 것들이니까 어떻게 해야한다는 말인가, 안 믿는 세상 사람들 이 세상은 그들의 전부입니다. 다음이라는 게 그들에게 없습니다. 하루살이는 뭘 모른다고요, 하루살이는 둘이서 놀다가 내일이 뭔데, 그날로 죽어버리니까. 내일을 모릅니다. 불신자들은 죽음 넘어가 뭔데, 모르지요 안 열어주셨으니까. 우리는 아는 겁니다. 일년생 풀들은 내년을 모릅니다. 다년생은 내년을 압니다. 불택자 불신자들은 그래서 이 세상이 그들의 전부 다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어찌되었든 이 세상을 안 보내려고 합니다. 움켜쥡니다. 그리고 그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마련하고 건설하고 키우고 다듬고 빗고 깎고 다듬고, 불택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 속에서 그 모든 것을 누리면서 가는 겁니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거 좋게 만든 거 조그만한 단칸방에 살다가 열심히 땀 흘려서 마련하고 집을 사고 내 집 샀다 그리고 키우고 자동차도 사고 그렇게 점점 키워가고 넓혀가면서 함께 누리면서 사는 게 불택자들의 생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되면 불택자들과 같이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키우기 위해서 살았다면 꼭 같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살았는데 집 사는 게 목표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집을 다 가지고 계시지요. 집을 사는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닙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열심히 사니까 하나님께서 돈을 주시는 겁니다. 그 돈을 주면은 일억이 모였네, 집을 하나 빌라를 하나 사는 겁니다. 일억이 더 모였네 좀 괜찮은 아파트로 바꾸면 되는 겁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그거 좀 써야겠다 하시면 바칠 줄도 알아야합니다. 이런 설교는 제가 잘 안하지요. 백 목사님은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자기 것이 없는 겁니다. 내가 마련했는데 키웠는데 내 것인데, 하나님의 것으로 그렇게 가지고 살면 빼앗아 갑니까. 예배당 짓는데 집을 파십시오 그러니까 쉽지요 가난하면. 많이 있는 사람들은 힘들겠지요. 그러면 내 것인데 움켜쥐면 안 믿는 사람과 같습니다.
살아가는데 주시면 거기에 마련하는 겁니다. 그래서 쓰고 가는 것이 하는 일입니다. 없어질 세상 가지고 움켜쥐고 키우고 넓히고 많게하고 좋게 다듬고 이거 하는 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이 아니고 내게 주어진 시간을 실력을 이걸로 마련한 제물을 어떻게 쓰고 갈까. 이게 믿는 사람이 되는 연구가 되어야합니다. 바울의 이름은 사울이었는데 그 전까지는 율법주의였고 자기 지식의 범위 되는 대로 열심히 마련한 것이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것이 없고 바리새인으로써 인정받는 것이었고 그런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예수님과 제자들과 동시대 사람들입니까. 그런데 큰 차이는 안 나지 않을까.
40일 승천하시고 나서 그들이 예수님 승천하시고 목숨걸고 기도하고 오순절 강림했고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때 사울은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하거든요 복음은 퍼트려 나가는데 사울은 예수믿는 사람을 잡아죽이는 일을 하는 겁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알았고 복음을 듣고 알았지만 안 그것이 자기가 안 그것을 자기 것으로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불교를 깊이 몰라도 압니다. 그들은 무아지경 이런 거 압니다. 우리 걸로 안 받아들입니다. 사울은 예수님과 전하는 말씀으로 안 받아들이는 겁니다. 아는 게 지식인데, 아는 그 지식을 자기가 인정을 하고 자기 것으로 받아서 내 지식으로 삼고 주관 주격으로 삼을 때 자기 지식이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불교를 말하니까 느낌이 없을지 모르겠으나 성경을 읽어도 같은 걸 봐도 읽어도 자기가 상관 없는 것은 잘 안 들어오고 잘 안 남습니다.
우리 것이지만 이 말씀이 내 주격 지식이 되고 내 주인 지식이 되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주격 지식이란 그 지식이 자기의 모든 언행심사를 지배하는 주인이 되는 겁니다. 원동이 되는 것. 애를 쓰는데 애를 쓰지만은 지식이 있다고 해서 안다고 해서 그 지식이 자신의 주격 지식이라고 해서 살아갈 수 있느냐, 어제 새벽에 말씀드렸지요, 아는 그대로 다 살 수 있느냐. 바울은 깨닫고 나서 그대로 다 잘 살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구주인줄을 알았지요. 예수님께서 전에 말씀드릴 때 죽을 건데 다 도망갈거라고 하니까 다 도망갈지라도 저는 배반하지 않습니다. 함께 죽을지언정 그럽니다. 주격 지식입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이 잡혀 끌려가니까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망쳤습니다. 베드로가 안 믿어서, 아닙니다. 믿어도 안되는 겁니다. 말씀을 순종해본 사람 수 없이 경험을 하니까,
아는 것은 인지 지식이 아닙니다. 2차적인 지식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살려고 하는데도 안되는 겁니다. 자기 속에 그 지식보다 더 강한 자기 속에 습성이 있습니다. 악성 악습이 있습니다. 욕심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것을 꺾을만한 이길만한 절제력이 없습니다. 끈기가 없습니다. 자기를 이길만한 의지력 절제력이 없으면 말씀을 알아도 그대로 못 사는 거지요. 이해가 되시는지요. 그리고 나면 그 사람은 뻔히 아는데 그렇게 하면 안되는 줄을 알고 안 기뻐하실 줄을 알고 원하는데도 의지가 약해서 절제력이 약해서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 고통받아도 그걸 길러놓지 않으면 말씀대로 못 사는 겁니다. 그래서 학생들 자녀들에게 공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의지력을 길러줘야합니다. 절제력을 길러줘야합니다. 이건 기르라면 길러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탕되지 않은 지식은 그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그렇게 말씀을 합니다. 인내는 끈기와 이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없어질 세상입니다. 이 세상 살면서 가진 것도 없어질 것들입니다. 불신자들은 이 세상을 잊게하고 좋게하고 아름답게 하는데 쓰고 가는 게 하는 일이다. 잘못쓰면 형벌이 마련되는데 어떻게 쓰는 게 좋은 건지를 내가 무엇이든지 유익하던 것을 세상 거, 율법을 중심으로 그렇게 마련했고 살았는데 그리스도를 알고나서 보니까 그 전부는 해로운 것이었고 배설물이었고 그리스도만 얻기 위해서 모든 걸 다 쏟아부은 겁니다. 우리가 쓸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쓰는 거지요. 그리스도는 세 가지지요. 세 가지는 자타의 구원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오늘 하루를 돌아보십시다,
오늘 하루 동안 내게 되는 것으로 참사람 만들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내게 주어진 사람이던지 나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구원을 신앙을 하나님을 섬기는 도움되는 것을 몇 시간이 되는가. 생각을 했던지 기도를 했던지 연구를 했던지. 그게 시간입니다. 그래서 그게 조심이 되어서 말조심을 하고 시청각을 조심하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쓴 것이 되는 겁니다. 그게 그리스도식으로 사는 겁니다. 얼마나 사느냐 그거죠. 하루를 사는데 자기 구원도 참사람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 구원도 생각이 없고 그때그때 배고프니까 밥 먹고 목마르니까 물 마시고 피곤하니까 자고 그 현실에 피동되어서 살면 수준 높은, 도야지 생활이 되는 거지요. 고급 도야지 생활. 손양원 목사님이 일본에서 잔뜩 존 거 보여주고 소감이 어떠십니까. 당신은 도야집니까.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도야지가 뭐지요. 돼지입니다.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이 남습니다. 그 사람이 되고 그리소 나서 되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사람이 재주가 많으면 죄를 많이 저지르고 파멸해 버립니다. 사람은 바로 되었는데 실력이 없으면 일은 많이 못합니다만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들이 가서 내놓을 것은 자기 자신 내놓은 거 내놓고 다른 사람을 얼마만큼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그것을 시간을 드리고 근심 걱정을 하고 발로 가고 입으로 말하고 그게 주님 앞의 전부입니다. 그 외에는 가치 있는 게 없습니다. 주님이 직접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사람과 이웃의 사람이 전부다 이게 그리스도직이고 이걸 위해서 쓰는 것이 이 세상에서 쓰고 가는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자기 주격 지식이 되고 살려고 할 때 내 속에서 밖에서 미혹이 올 때 악성, 욕심, 주관, 습성, 꺾을 수 있는 의지력 절제력 인내심 끈기입니다. 아무리 지식이 있어도 주격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의지가 없으면 절제력이 없으면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이라는 것은 절제와 의지력과 신앙이 함께하는 겁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소망을 생각해보시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29장
본문: 빌립보서 3장 7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7절부터 8절 9절 초반까지 그리스도를 이야기하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걸 말씀하시다가 9절 중간에 보니까 의를 말씀합니다. 내가 가진 의는, 의를 말씀하면서 의를 왜 말씀하느냐, 바울이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전에 가졌던 의는 율법의 의였습니다. 의롭다를 받은 의였습니다. 의라는 것은 무죄 위에 의가 됩니다. 죄를 없이하고 죄를 안 짓고 그 다음에 의가 건설이 되게 됩니다. 죄라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게 죄입니다. 일반 교계에서는 의를 굉장히 중요히 여깁니다. 이신칭의 할 때 이 자가 써 이 자입니다. 믿음으로써 의로움을 얻는다. 상식적으로 아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간다, 바울이 율법의 의를 가졌는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다. 아는 율법을 전부 다 행했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행했는데 그리스도를 알고나서 보니까 자기가 행한 그 의를 가지고 천국가는 게 아니더라는거죠.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율법 시대였고 육체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율법주의자였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 게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구약 시대 때도 율법을 바로 읽은 사람들은 준행을 하되 구주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렸기 그 자체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진실이라는 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파고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파고 들어가다보면 실체를 알게 되어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가다가 힘드니까 복잡하니까 가다가 중단하고 말기 때문에 파고 들어가면 나중에 실체를 알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불교 믿는 중 중에도 진실한 사람들은 불교가 한계가 있고 가짜라는 걸 압니다. 모를 수 없습니다. 대충대충하니까 그런 거지. 이게 아닌데 싶은데 불택자면은 들어가다가 막히면 알지만 불택자니까 열어주지 않으니까 모르는 것이고 그때까지 가기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고 평생 그러는 겁니다. 서부교회 묘지에 있는 아주 높은 그 분인데 회개하고 돌아와서 그런 분은 택자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진실은 최고를 찾는 겁니다. 더 이상이 없는 최고, 최고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궁극입니다. 이게 진실입니다.
바울은 그러기 때문에 율법을 붙들고 끝까지 갔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니까 그 안에서 발견들을 한다 그런 사람이 되어서 나타나길 소망을 했고 내가 가진 의는 이때부터 그리스도를 발견한부터 의는 율법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의를 가졌는데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난 후로는 행함의 의가 아니고 믿음을 말미암아 한 의라. 새벽말씀을 살펴봅니다. 이 세상에는 없어질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실제 그러냐, 자기 복음이 됩니다.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될 것은 안 믿는 불신자가 뭐라고 하든지, 내가 생각할 때 어떻게 되던지 성경 말씀이 부탁하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깊이 파고 들어가고 시작은 넓어도 자기를 부인하고 성경을 받아들이는 게 지혜롭습니다. 성경 말씀은 절대 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지막에 이 세상은 불탈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과 세상이 있는 모든 것은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비싼게 뭘까요. 그게 시간이라는 게 있습니다. 시간과 젊음이라는 것은 같은 말이지요. 젊은 사람들은 이 말을 모릅니다. 아이들은 더 모르고. 젊은 사람들은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굉장히 비싼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없어져가는 겁니다. 줄어져 가는 것이고 없어져 가는 것이다. 마음과 몸에 틀어있는 재능들, 보고 듣고 접촉을 하고 익히고 연습하고 지식도 있고 지식으로 인해서 뭐든지 볼 수 있는 시야도 있고 구별성도 있고 이런 것들은 마음을 가지고 몸을 가지고 마련한 내 것들입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요. 많은 걸을 보고 습득해서 지식 속에 담아놓은 사람 그런 거 가지고 활용하는 지혜를 가진 사람.
판단하는 구별성 가지는 사람, 판단력 판별하는 사람, 잘 계산하는 사람 여러 가지 마음의 재능들이 있습니다. 영어를 쓸 줄 알고 말할 줄 알고, 피아노 라든지 그림이라든지 뭐든지 이게 각자 가진 것들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좋은 대학을 가지면 학벌 직장 재물이 들어가면 돈이 되는 거지요. 가족들 과정 이런 관계 이런 것들이 대략적으로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관계인데 마음의 것이든 몸의 기능이든 이건 전부 내가 가진 것들인데 세월 속에 점점 줄어드는 겁니다. 쓰여져 없어지는 겁니다. 우주에 비해서 지구는 아주 먼지만한 것인데, 이 안에 80억이 살고 있고 80억이 살아도 호주같은 나라는 나라가 텅텅 비어있습니다. 얼마나 파먹었는데 아직도 석유 가스 다 있는데 지나고 나니까 바닥이 보인다라고 하지만 물질계 우주에 참 넓은데 그 많은 것들이 점점 줄어들어서 얼마 지나면 끝이 나겠다 그렇게 말을 합니다. 점점 없어지는 것들이다.
그렇게 성경을 말을 하고 생각해봤으니까 그런 거고 세상이 없어질 것이다, 지식이다. 그 지식을 가져도 없어질 것들이니까 어떻게 해야한다는 말인가, 안 믿는 세상 사람들 이 세상은 그들의 전부입니다. 다음이라는 게 그들에게 없습니다. 하루살이는 뭘 모른다고요, 하루살이는 둘이서 놀다가 내일이 뭔데, 그날로 죽어버리니까. 내일을 모릅니다. 불신자들은 죽음 넘어가 뭔데, 모르지요 안 열어주셨으니까. 우리는 아는 겁니다. 일년생 풀들은 내년을 모릅니다. 다년생은 내년을 압니다. 불택자 불신자들은 그래서 이 세상이 그들의 전부 다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어찌되었든 이 세상을 안 보내려고 합니다. 움켜쥡니다. 그리고 그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마련하고 건설하고 키우고 다듬고 빗고 깎고 다듬고, 불택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 속에서 그 모든 것을 누리면서 가는 겁니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거 좋게 만든 거 조그만한 단칸방에 살다가 열심히 땀 흘려서 마련하고 집을 사고 내 집 샀다 그리고 키우고 자동차도 사고 그렇게 점점 키워가고 넓혀가면서 함께 누리면서 사는 게 불택자들의 생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되면 불택자들과 같이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키우기 위해서 살았다면 꼭 같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살았는데 집 사는 게 목표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집을 다 가지고 계시지요. 집을 사는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닙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열심히 사니까 하나님께서 돈을 주시는 겁니다. 그 돈을 주면은 일억이 모였네, 집을 하나 빌라를 하나 사는 겁니다. 일억이 더 모였네 좀 괜찮은 아파트로 바꾸면 되는 겁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그거 좀 써야겠다 하시면 바칠 줄도 알아야합니다. 이런 설교는 제가 잘 안하지요. 백 목사님은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자기 것이 없는 겁니다. 내가 마련했는데 키웠는데 내 것인데, 하나님의 것으로 그렇게 가지고 살면 빼앗아 갑니까. 예배당 짓는데 집을 파십시오 그러니까 쉽지요 가난하면. 많이 있는 사람들은 힘들겠지요. 그러면 내 것인데 움켜쥐면 안 믿는 사람과 같습니다.
살아가는데 주시면 거기에 마련하는 겁니다. 그래서 쓰고 가는 것이 하는 일입니다. 없어질 세상 가지고 움켜쥐고 키우고 넓히고 많게하고 좋게 다듬고 이거 하는 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이 아니고 내게 주어진 시간을 실력을 이걸로 마련한 제물을 어떻게 쓰고 갈까. 이게 믿는 사람이 되는 연구가 되어야합니다. 바울의 이름은 사울이었는데 그 전까지는 율법주의였고 자기 지식의 범위 되는 대로 열심히 마련한 것이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것이 없고 바리새인으로써 인정받는 것이었고 그런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예수님과 제자들과 동시대 사람들입니까. 그런데 큰 차이는 안 나지 않을까.
40일 승천하시고 나서 그들이 예수님 승천하시고 목숨걸고 기도하고 오순절 강림했고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때 사울은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하거든요 복음은 퍼트려 나가는데 사울은 예수믿는 사람을 잡아죽이는 일을 하는 겁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알았고 복음을 듣고 알았지만 안 그것이 자기가 안 그것을 자기 것으로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불교를 깊이 몰라도 압니다. 그들은 무아지경 이런 거 압니다. 우리 걸로 안 받아들입니다. 사울은 예수님과 전하는 말씀으로 안 받아들이는 겁니다. 아는 게 지식인데, 아는 그 지식을 자기가 인정을 하고 자기 것으로 받아서 내 지식으로 삼고 주관 주격으로 삼을 때 자기 지식이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불교를 말하니까 느낌이 없을지 모르겠으나 성경을 읽어도 같은 걸 봐도 읽어도 자기가 상관 없는 것은 잘 안 들어오고 잘 안 남습니다.
우리 것이지만 이 말씀이 내 주격 지식이 되고 내 주인 지식이 되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주격 지식이란 그 지식이 자기의 모든 언행심사를 지배하는 주인이 되는 겁니다. 원동이 되는 것. 애를 쓰는데 애를 쓰지만은 지식이 있다고 해서 안다고 해서 그 지식이 자신의 주격 지식이라고 해서 살아갈 수 있느냐, 어제 새벽에 말씀드렸지요, 아는 그대로 다 살 수 있느냐. 바울은 깨닫고 나서 그대로 다 잘 살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구주인줄을 알았지요. 예수님께서 전에 말씀드릴 때 죽을 건데 다 도망갈거라고 하니까 다 도망갈지라도 저는 배반하지 않습니다. 함께 죽을지언정 그럽니다. 주격 지식입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이 잡혀 끌려가니까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망쳤습니다. 베드로가 안 믿어서, 아닙니다. 믿어도 안되는 겁니다. 말씀을 순종해본 사람 수 없이 경험을 하니까,
아는 것은 인지 지식이 아닙니다. 2차적인 지식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살려고 하는데도 안되는 겁니다. 자기 속에 그 지식보다 더 강한 자기 속에 습성이 있습니다. 악성 악습이 있습니다. 욕심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것을 꺾을만한 이길만한 절제력이 없습니다. 끈기가 없습니다. 자기를 이길만한 의지력 절제력이 없으면 말씀을 알아도 그대로 못 사는 거지요. 이해가 되시는지요. 그리고 나면 그 사람은 뻔히 아는데 그렇게 하면 안되는 줄을 알고 안 기뻐하실 줄을 알고 원하는데도 의지가 약해서 절제력이 약해서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 고통받아도 그걸 길러놓지 않으면 말씀대로 못 사는 겁니다. 그래서 학생들 자녀들에게 공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의지력을 길러줘야합니다. 절제력을 길러줘야합니다. 이건 기르라면 길러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탕되지 않은 지식은 그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그렇게 말씀을 합니다. 인내는 끈기와 이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없어질 세상입니다. 이 세상 살면서 가진 것도 없어질 것들입니다. 불신자들은 이 세상을 잊게하고 좋게하고 아름답게 하는데 쓰고 가는 게 하는 일이다. 잘못쓰면 형벌이 마련되는데 어떻게 쓰는 게 좋은 건지를 내가 무엇이든지 유익하던 것을 세상 거, 율법을 중심으로 그렇게 마련했고 살았는데 그리스도를 알고나서 보니까 그 전부는 해로운 것이었고 배설물이었고 그리스도만 얻기 위해서 모든 걸 다 쏟아부은 겁니다. 우리가 쓸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쓰는 거지요. 그리스도는 세 가지지요. 세 가지는 자타의 구원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오늘 하루를 돌아보십시다,
오늘 하루 동안 내게 되는 것으로 참사람 만들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내게 주어진 사람이던지 나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구원을 신앙을 하나님을 섬기는 도움되는 것을 몇 시간이 되는가. 생각을 했던지 기도를 했던지 연구를 했던지. 그게 시간입니다. 그래서 그게 조심이 되어서 말조심을 하고 시청각을 조심하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쓴 것이 되는 겁니다. 그게 그리스도식으로 사는 겁니다. 얼마나 사느냐 그거죠. 하루를 사는데 자기 구원도 참사람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 구원도 생각이 없고 그때그때 배고프니까 밥 먹고 목마르니까 물 마시고 피곤하니까 자고 그 현실에 피동되어서 살면 수준 높은, 도야지 생활이 되는 거지요. 고급 도야지 생활. 손양원 목사님이 일본에서 잔뜩 존 거 보여주고 소감이 어떠십니까. 당신은 도야집니까.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도야지가 뭐지요. 돼지입니다.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이 남습니다. 그 사람이 되고 그리소 나서 되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사람이 재주가 많으면 죄를 많이 저지르고 파멸해 버립니다. 사람은 바로 되었는데 실력이 없으면 일은 많이 못합니다만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들이 가서 내놓을 것은 자기 자신 내놓은 거 내놓고 다른 사람을 얼마만큼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그것을 시간을 드리고 근심 걱정을 하고 발로 가고 입으로 말하고 그게 주님 앞의 전부입니다. 그 외에는 가치 있는 게 없습니다. 주님이 직접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사람과 이웃의 사람이 전부다 이게 그리스도직이고 이걸 위해서 쓰는 것이 이 세상에서 쓰고 가는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자기 주격 지식이 되고 살려고 할 때 내 속에서 밖에서 미혹이 올 때 악성, 욕심, 주관, 습성, 꺾을 수 있는 의지력 절제력 인내심 끈기입니다. 아무리 지식이 있어도 주격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의지가 없으면 절제력이 없으면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이라는 것은 절제와 의지력과 신앙이 함께하는 겁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소망을 생각해보시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