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7일 금밤
김동민2026-04-17조회 6추천 1
2026년 4월 17일 금밤
찬송: 103장
본문: 빌립보서 3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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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소망을 하고, 그리스도만 보기 위해 깨닫고 난 다음에 달려간 말씀 기록해놨습니다.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전,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바리새파,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그 당시 가장 잘 믿는 정통 교파입니다. 시대마다 정통은 다 있고 정통에서 벗어나면 이단이 됩니다. 정통은 옳은 것이고 바른 것입니다. 중요한 겁니다, 정통에서 벗어나면 이단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정통이라는 자체만 붙들고 정통은 대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겁니다. 옳고 바른 것이고 옳고 바르기 때문에 비바람이 몰아쳐도 오랜 세월 내려올 수가 있는 겁니다. 원리에 맞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고 세월 속에 없어지거나 오래 갈 수가 없는 건데, 하나님이 내신 세상 원리에 있으면 오래갑니다. 성경 말씀에 맞으니까 꺾이지 않고 내려오는 겁니다. 정통이 있기에 전통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정통만 믿고 그 속에 생명 역사가 이어지지 않으면 썩어버리고 마는 겁니다. 바리새파가, 틀린 것이 아니고 거기서 고여서 썩어서 문제가 되는 겁니다. 탈선되거나 잘못된 것보다도 세월 속에 신앙이나 하나님과 관계된 것이다.
있어야하는 건데 전통과 정토만 의지하고 새롭게 발전되는 생명 역사를 보지 못하고 꺾어버리니까 썩어버리는 겁니다. 창세 이후로 모든 성경 역사가 그렇게 내려왔습니다. 썩어버리고 새로운 게 나오는데 새 생명이 나오면 본 것에서 쳐버립니다. 그래야 그게 유지가 되니까 쫓아내거나 없애버리는데 꺾어지지를 않는 거지요. 바깥으로 쫓겨나거나 거기서 본 줄기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썩어서 전통은 탈선되어버리고 새로 이어져 내려오는 게 우리 역사입니다. 바리새파가 예수님을 바로 영접했다면 거기서 크면은 더 좋은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대개 보면은 세월 속에서 정통으로 자리 잡으면 많은 사람에게 인정 받고 세력이 커집니다. 그래서 거기에 붙들려서 그래서 그걸 끊지 못해서 새 생명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안에서 크면 참 좋은데 그렇지요. 우리 총공회만 두고 본다면 몇 파가 공회가 갈라졌지요 그리고 수가 가장 많은 공회가 대구 공회라고 합니다. 요즘 복잡한 부공2가 그 다음인데 이 사람들이 정통이고 본류입니다.
거기서 백 목사님 노선 이어가면 참 좋은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그러면서 탈선해버리는 거지요. 백 목사님 노선에서 탈선되어버렸습니다. 보면 알지요. 찬송가 바꾸고 예배 순서 바꾸고 전도 방법 바꿔버리고 백 목사님이 생전에 그런 거 했습니까. 그러면서 자기들이 총공회라고 합니다. 총공회지요. 간판 그대로는 이대로 지켜나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항상 이런 식으로 내려온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다가 그런 정통에서 쫓겨나거나 그런 생명 계통이 본류인데 정통인데, 백 목사님 생전에 고신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고신에서 이단이라고 그래서 밑에 목사님 밑에 있는 아는 분들이 이단 감별사 소위 이단을 가장 잘 안다는 분이 탕명환씨라고 있었습니다. 이분에게 가서 따지니까 진짜 고신은 여기 있었네 이러덥니다. 지금도 객관으로 따져보면 다섯 개로 갈라진 총공회 중에 누가 진짜 총공회다, 양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환하게 아는 겁니다. 아무도 반론도 못하고 그러면서 큰소리 치면서 소송하고 앉은 거지요.
거기 따라가는 목사님들 다라고는 못하지만 눈먼 망아지 그렇게 되는 거지요. 우리가 진짜 총공회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못 박아 죽였지요. 바리새파는 스스로 밀려났고 거북한 거지요. 그때부터 바울의 복음이 정통이 되는 겁니다. 천주교 됐고 거기서 또 그러니까 루터 칼빈 종교 개혁했고 천주교는 아예 다른 종교로 탈선되어버렸지요. 총공회가 500년 후에 나온 겁니다. 우리가 진짜 칼빈 주의입니다. 칼빈 주의 말하는 사람들 다 떠납니다. 정통 칼빈 주의에 지금 같은 예배가 있습니까. 우리가 진짜 칼빈 주의입니다. 칼빈 주의라는 사람들이 껍데기는 가지고 있고 알맹이는 가져왔고 그게 이어졌는데 총공회 목사님 가시고 나니까 같은 게 이어져가는 겁니다. 진짜는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가 은혜가 있으면 또 커지면 되풀이 되는 겁니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 왔습니다.
수천년 동안 되풀이 되었는데도 보면 알건데 왜 이걸 모르고 잘못된 길을 서서 같은 걸 하냐는거지요. 예수님 당시에 마태복음 23장에 너희들이 앞서 너희 조상들이 죽인 묘비를 꾸미면서 뭐라고 합니까. 우리 조상들이 왜 위대한 선지자들을 모르고 죽였을까. 우리는 그러지 않을건데, 그러면서 진짜 선지자 예수님 못 박아 죽인겁니다. 과거는 알고 현재는 까먹고, 과거라는 것은 역사라는 것은 오늘을 아는 거울이 되는 것이고 거울을 보면서도 모르는 이유는 기득권 교권 자기 자존심 이건 참고인데 사도 바울은 바리새파입니다. 율법주의입니다. 주님 오시기 전까지는 구원이 없습니다. 건설구원 없습니다. 주님 복음 주의와 반대되는 쪽으로 이단입니다. 주님 오시기 전까지는 거기 구원 계통이었고 이후 율법으로 구원얻지 못한다는 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은 폐할 것이냐, 완성시키러 왔다고 했습니다. 어느 것이든 치우치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의 의로 흠이 없을만큼 달려왔는데 그리스도를 보고는 몰랐다가 알았습니다. 자기 것으로 삼았습니다. 첫째, 몰랐다가 알았습니다. 알고난 다음에 알고난 그 지식을 주격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절제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한 번 작정을 하면 끝까지 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달려가서 사도 바울이 되게 된 겁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 율법을 통해서 구원을 얻고자 하는 그 모든 정부는 알고보니까 해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보니까 그리스도보다 더 나은 거 귀한 거 존귀한 것이 업다, 마치 예를 든 대로, 돌은 가지고 연장삼고 그러다가 더 좋은 청동이 나왔습니다. 좋거든요, 돌 다 버리고 청동가지고 사는 시대가 되다가 청동보다 더 강하고 좋은 철이 나오니까 철로 살다가 전기가 발견되니까 전기로 살다가. 그런데 바울은 그러기 때문에 바리새파가 가장 좋은 줄 알았고 달려왔는데 그리스도를 만나서 발견하고 보니까 더 좋은 게 없는 겁니다. 그리스도 외에는 없는 겁니다. 모든 것은 전부 그리스도를 위해서 잃어버린다. 그리스도를 수입하고 나머지는 다 배설물로 여겼다.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나니까 그 전에 가졌던게 해로웠고 알고 나니까 그 안에 그리스도가 있다는 걸 깨달았고.
나머지는 전부 다 배설물로 여겼다. 바울의 가치는 오로지 이 세상 살아가면서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만나든지 뭐가 되던지 바울은 거기서 그리스도만 얻는 겁니다. 자기가 그리스도화 되고 전부 쏟아붓는 겁니다. 말하자면 자기 성화, 사람 수입. 이보다 더 귀한 거 가치있는 거 고상한 것이 없는 것을 바울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앞에 있는 푯대 향해서 무조건 달려만 갔습니다. 뒤에 있는 건 잊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바로 살아서 칭찬하고 그게 복 있는 사람입니다. 살아오면서 현재를 기점으로 지난 세월에 잘못 산 거 죄 지은 거, 이건 회개하고 바로 살고 바로 살아서 상 받을 것이 있으면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복있는 사람은 진정으로 자기가 잘하는 것은 기억 이 안납니다. 잘못한 것만 기억나니까 늘 죄인입니다. 참 충성한다 충성한다 의인이다 정작 자기는 못하는 거지요. 복 없는 사람은 잘못한 건 다 잊어버리고 잘하는 것만 기억이 납니다.
바리새인과 세리 두 사람이 기도하러 산에 올라갔지요. 바리새인이 저는 저 세리하고 틀립니다. 그렇게 자기를 들어내었고 세리는 하늘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탄식하면서 저는 죄인입니다. 동족 피빨아먹는 죄인입니다. 세리 중에서 제자 된 사람이 마태입니다. 세리장입니다. 또 누가 있지요. 세리 장 중에서 사도는 아닌데 제자된 사람 삭개오. 고개도 못 들고 하나님께 바리새인보다 세리가 더 의롭다고 판정하였습니다. 지난 날 자기 잘한 거 있으면 그런 건 다 잊어버리고 잘못한 거 죄 지은 거 그런 거 찾아서 죄송한 마음 부족한 마음 고치는 자세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디 가든지 무엇을 가든지, 로마 시민권,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써먹었습니다. 베냐민 지파, 히브리인 중에서 히브리인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써먹었지만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말씀하는 겁니다. 그거 외에는 바울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기 살아가는 현실은 상관하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게 바울의 간절한 기대화 소망이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사람 바울을 통해서 알려주셨으니까 그렇게 살아야겠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같은 세상을 삽니다. 뭐든지 종류를 불문하고 좋고 나쁜 걸 불문하고 무엇이든지 간에 이 세상과 세상에는 세월 속에 다 없어지는 겁니다. 이것을 알아서 내 지식으로 살아서, 과연 그러하다. 실제 자기가 느낄 때 그리고 이것이 나를 지배할 때 주격 지식이 되는 겁니다. 이 세상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을 없어질 것을 마련하는 것은 어리석은 거지요. 없어질 건데. 불택자들은 그거 밖에 모르니까 그렇게 사는 겁니다. 재벌회장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재물을 모았습니다. 그들은 어느정도 재물이 쌓이고 나면 재물 욕심은 없을 겁니다. 정주영씨 이병철씨 이런 분들은 재물에 대한 욕심은 벌써 초월했을 겁니다. 보이는 게 전부 돈이니까. 그런데 그들은 그 일 자체를 즐겼고 하면서 나라를 위해서 국민들은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살았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릇이 좀 큰 사람들은 자기 먹고 사는 거 등 따시고 배부른 이건 초월합니다.
자기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더 그릇이 크면 인류를 위해서, 사람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그런 쪽으로 연구하는 그런 가치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잘난 사람들이고 위대한 사람들이지요. 세계적으로 그런 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초월하는 겁니다. 나라 경제 사람들 도움되는 거, 사람이 뭔가 장사를 해도 그런 말이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무슨 장사든지 내가 파는 물건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 유익이 되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장사하면 잘 되게 되어있습니다. 음식을 팔던지 물건을 팔던지 간에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걸 팔잖습니까. 내가 아는 것이 건강이 되는 것이 좋겠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연구하고 장사하고 갈수록 잘 되게 되어있습니다. 뭘 하든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장사를 통해서 돈을 벌겠다, 그 사람은 크지 않습니다. 방향이 다른 겁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뭘 따라간다고요, 사람을 따라갑니다. 그래서 사람이 있으면 돈은 따라옵니다.
내가 하는 직장 생활이 도움이 되도록 쉽게 에어컨을 설치해도 얼른 설치하고 돈 받아야겠다, 그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이 가정이 시원하게 지낼 수 있을까로 하면 돈 잘 법니다. 입장 바꿔서 안 그렇겠습니까. 믿는 사람은 이건 안 믿는 사람들이고 믿는 사람 속에서 어디든지 무엇을 하든지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은 없어질 것들이 있으니까 없어질 것들을 마련하려고 하는 것은 불신자들이 하는 겁니다. 그거는 하나님께 맡겨놓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화 되고 성화되고 나와 관련된 사람들을 참사람 만드는 거기에 가치를 두고 노력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연구하고 노력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가면 하나님께서 보시고 주시는 겁니다. 내가 욕심내서 만들면 안되는 겁니다.
저는 목회자니까 교회를 운영하면 교인이 많아지도록 여기에 목적을 두면 망합니다. 많아져도 줄어들어도 실패입니다. 목회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로 되기를 원하는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기는 참사람은 그게 되는 겁니다. 그게 목적 아닌가요. 수학 학원을 하려면 어떻게 아이를 데리고 와서 돈을 벌까 그러면 망합니다. 그런데 수학 배우러 왔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늘려주고 잘 가르쳐줄까. 그쪽으로 연구하면 자기 수학 실력되는 만큼은 됩니다. 장사는 장사로 그리되고 영어는 영어로 그리되고. 교회는 구령 사업하는 곳입니다. 사람을 참 사람을 만드는 겁니까. 교회 왜 다닙니까. 진리를 배워서 참사람 되려고 그래야 목적입니다. 이걸 잊어버리고 연보 많이해서 뭐하려고요, 본질 본 목적을 잊어버리면 존재 의미가 없어지면 이걸 잊어버린 교회를 가르켜 촛대를 옮겨버리겠다. 교회는 촛대입니다. 등대입니다. 그래서 한국에 세계에 교회 아닌 교회가 꽉 찼습니다. 교회인데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을 것은 없어질 것입니다. 없어질 것들을 왜 노력하나, 없어질 것들을 잊게하려고 믿는 사람이 키우고 넓히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맡기신 일이니까. 그것을 통해서 참사람이 되고 그리스도가 되고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 만드는 그거 때문에 하는 겁니다. 뭘해야합니까. 어릴 때는 공부해라. 공부하면서 공부를 통해서 자기라는 사람을 만들지 않으면 공부 백 날 해봐야 헛된 일입니다. 자기를 어ᄄᅠᆫ 사람 만듭니까. 그리스도 같은 사람, 제사장 선지자 왕 같은 사람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 말씀 순종하는 사람, 그 말씀대로 사는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학생의 본분이다. 한눈 파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학교 수업시간에 열심히 배우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께 맡기는 일이니까. 가정은 가정에서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공부 자체가 목적이 되면 시험 잘 쳐야겠지요. 성경 줄이고 기도 줄이고 그래야 성적이 좋아야지겠지요. 그러면 믿는 사람 아닙니다. 잠을 좀 더 자야하는데 공부 손해봅니다. 밤예배 나가면 주일지키면 손해봅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은 반사도 하고 집회도 가고 그러는 겁니다.
거기서 신앙 생활하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시다가 주실 것이고 필요없으면 안 주실 것이고. 그래서 믿는 사람은 말씀의 어김 없이 자기로써 정직하게 열심히 충성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주시는 대로. 그게 믿는 사람의 생활입니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다 잘되게 되어있습니다. 그 속에서 인내심도 자라고 공부와 직장 속에 그런 게 자라면서 인인관계도 자라고 알게 되고 세상 보는 눈도 자라게 되고. 수많은 존재들 속에서 사람이라면 그 속에서 만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섞여살면서 부딪혀 살면서. 혼자서 외톨이로 먼지 뭍히지 않고 고고한 척 도도한 척 사람 상대하지 않고 천한 거 보지 않고 고급으로 사면 그 사람은 아무짝에도 못쓰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어디서든지 무엇에서든지, 뭘 하든지 믿는 사람은 자기 성화 사람 수익 두 가지만 하는 겁니다. 이 말씀은 들었습니다. 알았습니다. 알았으면 지식을 가지는 겁니다. 들었으니까 알았으니까 보고 듣고 자기 지식이 되어도 주격 지식이 되지 못하면 자기 지식은 아닌 겁니다. 믿음으로 받아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바울의 소망 그리스도를 향한 바울의 소망 이 세상이라는 것은 없어질 겁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을 잊게하고 크게하고 많게하고 다듬어 좋게하고 이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그리스도만 자기 성화 사람 수입 이것만 우리가 할 일입니다. 부족하지만 살아보면 경험과 체험이 되고 자기 지식이 되고 주격 지식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려고 해도 겪아 봤는데도, 그래도 계속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어떤 사람이 아니 하나님을 살아계시는 줄을 몰라서 그렇게 못 살았지 알고 믿는다면 이 길을 달려가지 왜 못달려가겠습니까 라고 하니까 목사님께서 뭐라고 하신다고요, 알아도 안돼. 믿어도 안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안 믿습니까. 안 믿어서 그렇게 우리가 다 못 삽니까. 깨어있어 기도하라, 육신이 약하도다, 깨어있어 기도하다 마음을 소원합니다. 지식을 가졌습니다. 인지 정도 지식이 아닙니다. 경험하고 체험해서 실제 살아보고 수 없이 겪어봐서 이 길이다. 그리스도만 가치다 가장 고상하다. 겪어봤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되면 또 넘어지는 겁니다. 우리 속에 잘못 산 것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렇지요. 어리면 어릴 때 기회가 많을 겁니다. 젊으면 그만큼 기회가 많은 겁니다. 줄어들 겁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하나부터라도 아는대로는 죄는 무조건 끊어버리고 의는 무조건 하고 보고 이렇게 해 나가면 성공이 되는 것이고 미루면 실패하고 마는 거지요.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살아가도록 합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03장
본문: 빌립보서 3장 7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소망을 하고, 그리스도만 보기 위해 깨닫고 난 다음에 달려간 말씀 기록해놨습니다.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전,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바리새파,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그 당시 가장 잘 믿는 정통 교파입니다. 시대마다 정통은 다 있고 정통에서 벗어나면 이단이 됩니다. 정통은 옳은 것이고 바른 것입니다. 중요한 겁니다, 정통에서 벗어나면 이단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정통이라는 자체만 붙들고 정통은 대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겁니다. 옳고 바른 것이고 옳고 바르기 때문에 비바람이 몰아쳐도 오랜 세월 내려올 수가 있는 겁니다. 원리에 맞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고 세월 속에 없어지거나 오래 갈 수가 없는 건데, 하나님이 내신 세상 원리에 있으면 오래갑니다. 성경 말씀에 맞으니까 꺾이지 않고 내려오는 겁니다. 정통이 있기에 전통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정통만 믿고 그 속에 생명 역사가 이어지지 않으면 썩어버리고 마는 겁니다. 바리새파가, 틀린 것이 아니고 거기서 고여서 썩어서 문제가 되는 겁니다. 탈선되거나 잘못된 것보다도 세월 속에 신앙이나 하나님과 관계된 것이다.
있어야하는 건데 전통과 정토만 의지하고 새롭게 발전되는 생명 역사를 보지 못하고 꺾어버리니까 썩어버리는 겁니다. 창세 이후로 모든 성경 역사가 그렇게 내려왔습니다. 썩어버리고 새로운 게 나오는데 새 생명이 나오면 본 것에서 쳐버립니다. 그래야 그게 유지가 되니까 쫓아내거나 없애버리는데 꺾어지지를 않는 거지요. 바깥으로 쫓겨나거나 거기서 본 줄기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썩어서 전통은 탈선되어버리고 새로 이어져 내려오는 게 우리 역사입니다. 바리새파가 예수님을 바로 영접했다면 거기서 크면은 더 좋은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대개 보면은 세월 속에서 정통으로 자리 잡으면 많은 사람에게 인정 받고 세력이 커집니다. 그래서 거기에 붙들려서 그래서 그걸 끊지 못해서 새 생명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안에서 크면 참 좋은데 그렇지요. 우리 총공회만 두고 본다면 몇 파가 공회가 갈라졌지요 그리고 수가 가장 많은 공회가 대구 공회라고 합니다. 요즘 복잡한 부공2가 그 다음인데 이 사람들이 정통이고 본류입니다.
거기서 백 목사님 노선 이어가면 참 좋은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그러면서 탈선해버리는 거지요. 백 목사님 노선에서 탈선되어버렸습니다. 보면 알지요. 찬송가 바꾸고 예배 순서 바꾸고 전도 방법 바꿔버리고 백 목사님이 생전에 그런 거 했습니까. 그러면서 자기들이 총공회라고 합니다. 총공회지요. 간판 그대로는 이대로 지켜나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항상 이런 식으로 내려온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다가 그런 정통에서 쫓겨나거나 그런 생명 계통이 본류인데 정통인데, 백 목사님 생전에 고신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고신에서 이단이라고 그래서 밑에 목사님 밑에 있는 아는 분들이 이단 감별사 소위 이단을 가장 잘 안다는 분이 탕명환씨라고 있었습니다. 이분에게 가서 따지니까 진짜 고신은 여기 있었네 이러덥니다. 지금도 객관으로 따져보면 다섯 개로 갈라진 총공회 중에 누가 진짜 총공회다, 양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환하게 아는 겁니다. 아무도 반론도 못하고 그러면서 큰소리 치면서 소송하고 앉은 거지요.
거기 따라가는 목사님들 다라고는 못하지만 눈먼 망아지 그렇게 되는 거지요. 우리가 진짜 총공회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못 박아 죽였지요. 바리새파는 스스로 밀려났고 거북한 거지요. 그때부터 바울의 복음이 정통이 되는 겁니다. 천주교 됐고 거기서 또 그러니까 루터 칼빈 종교 개혁했고 천주교는 아예 다른 종교로 탈선되어버렸지요. 총공회가 500년 후에 나온 겁니다. 우리가 진짜 칼빈 주의입니다. 칼빈 주의 말하는 사람들 다 떠납니다. 정통 칼빈 주의에 지금 같은 예배가 있습니까. 우리가 진짜 칼빈 주의입니다. 칼빈 주의라는 사람들이 껍데기는 가지고 있고 알맹이는 가져왔고 그게 이어졌는데 총공회 목사님 가시고 나니까 같은 게 이어져가는 겁니다. 진짜는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가 은혜가 있으면 또 커지면 되풀이 되는 겁니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 왔습니다.
수천년 동안 되풀이 되었는데도 보면 알건데 왜 이걸 모르고 잘못된 길을 서서 같은 걸 하냐는거지요. 예수님 당시에 마태복음 23장에 너희들이 앞서 너희 조상들이 죽인 묘비를 꾸미면서 뭐라고 합니까. 우리 조상들이 왜 위대한 선지자들을 모르고 죽였을까. 우리는 그러지 않을건데, 그러면서 진짜 선지자 예수님 못 박아 죽인겁니다. 과거는 알고 현재는 까먹고, 과거라는 것은 역사라는 것은 오늘을 아는 거울이 되는 것이고 거울을 보면서도 모르는 이유는 기득권 교권 자기 자존심 이건 참고인데 사도 바울은 바리새파입니다. 율법주의입니다. 주님 오시기 전까지는 구원이 없습니다. 건설구원 없습니다. 주님 복음 주의와 반대되는 쪽으로 이단입니다. 주님 오시기 전까지는 거기 구원 계통이었고 이후 율법으로 구원얻지 못한다는 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은 폐할 것이냐, 완성시키러 왔다고 했습니다. 어느 것이든 치우치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의 의로 흠이 없을만큼 달려왔는데 그리스도를 보고는 몰랐다가 알았습니다. 자기 것으로 삼았습니다. 첫째, 몰랐다가 알았습니다. 알고난 다음에 알고난 그 지식을 주격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절제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한 번 작정을 하면 끝까지 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달려가서 사도 바울이 되게 된 겁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 율법을 통해서 구원을 얻고자 하는 그 모든 정부는 알고보니까 해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보니까 그리스도보다 더 나은 거 귀한 거 존귀한 것이 업다, 마치 예를 든 대로, 돌은 가지고 연장삼고 그러다가 더 좋은 청동이 나왔습니다. 좋거든요, 돌 다 버리고 청동가지고 사는 시대가 되다가 청동보다 더 강하고 좋은 철이 나오니까 철로 살다가 전기가 발견되니까 전기로 살다가. 그런데 바울은 그러기 때문에 바리새파가 가장 좋은 줄 알았고 달려왔는데 그리스도를 만나서 발견하고 보니까 더 좋은 게 없는 겁니다. 그리스도 외에는 없는 겁니다. 모든 것은 전부 그리스도를 위해서 잃어버린다. 그리스도를 수입하고 나머지는 다 배설물로 여겼다.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나니까 그 전에 가졌던게 해로웠고 알고 나니까 그 안에 그리스도가 있다는 걸 깨달았고.
나머지는 전부 다 배설물로 여겼다. 바울의 가치는 오로지 이 세상 살아가면서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만나든지 뭐가 되던지 바울은 거기서 그리스도만 얻는 겁니다. 자기가 그리스도화 되고 전부 쏟아붓는 겁니다. 말하자면 자기 성화, 사람 수입. 이보다 더 귀한 거 가치있는 거 고상한 것이 없는 것을 바울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앞에 있는 푯대 향해서 무조건 달려만 갔습니다. 뒤에 있는 건 잊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바로 살아서 칭찬하고 그게 복 있는 사람입니다. 살아오면서 현재를 기점으로 지난 세월에 잘못 산 거 죄 지은 거, 이건 회개하고 바로 살고 바로 살아서 상 받을 것이 있으면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복있는 사람은 진정으로 자기가 잘하는 것은 기억 이 안납니다. 잘못한 것만 기억나니까 늘 죄인입니다. 참 충성한다 충성한다 의인이다 정작 자기는 못하는 거지요. 복 없는 사람은 잘못한 건 다 잊어버리고 잘하는 것만 기억이 납니다.
바리새인과 세리 두 사람이 기도하러 산에 올라갔지요. 바리새인이 저는 저 세리하고 틀립니다. 그렇게 자기를 들어내었고 세리는 하늘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탄식하면서 저는 죄인입니다. 동족 피빨아먹는 죄인입니다. 세리 중에서 제자 된 사람이 마태입니다. 세리장입니다. 또 누가 있지요. 세리 장 중에서 사도는 아닌데 제자된 사람 삭개오. 고개도 못 들고 하나님께 바리새인보다 세리가 더 의롭다고 판정하였습니다. 지난 날 자기 잘한 거 있으면 그런 건 다 잊어버리고 잘못한 거 죄 지은 거 그런 거 찾아서 죄송한 마음 부족한 마음 고치는 자세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디 가든지 무엇을 가든지, 로마 시민권,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써먹었습니다. 베냐민 지파, 히브리인 중에서 히브리인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써먹었지만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말씀하는 겁니다. 그거 외에는 바울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기 살아가는 현실은 상관하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게 바울의 간절한 기대화 소망이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사람 바울을 통해서 알려주셨으니까 그렇게 살아야겠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같은 세상을 삽니다. 뭐든지 종류를 불문하고 좋고 나쁜 걸 불문하고 무엇이든지 간에 이 세상과 세상에는 세월 속에 다 없어지는 겁니다. 이것을 알아서 내 지식으로 살아서, 과연 그러하다. 실제 자기가 느낄 때 그리고 이것이 나를 지배할 때 주격 지식이 되는 겁니다. 이 세상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을 없어질 것을 마련하는 것은 어리석은 거지요. 없어질 건데. 불택자들은 그거 밖에 모르니까 그렇게 사는 겁니다. 재벌회장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재물을 모았습니다. 그들은 어느정도 재물이 쌓이고 나면 재물 욕심은 없을 겁니다. 정주영씨 이병철씨 이런 분들은 재물에 대한 욕심은 벌써 초월했을 겁니다. 보이는 게 전부 돈이니까. 그런데 그들은 그 일 자체를 즐겼고 하면서 나라를 위해서 국민들은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살았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릇이 좀 큰 사람들은 자기 먹고 사는 거 등 따시고 배부른 이건 초월합니다.
자기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더 그릇이 크면 인류를 위해서, 사람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그런 쪽으로 연구하는 그런 가치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잘난 사람들이고 위대한 사람들이지요. 세계적으로 그런 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초월하는 겁니다. 나라 경제 사람들 도움되는 거, 사람이 뭔가 장사를 해도 그런 말이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무슨 장사든지 내가 파는 물건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 유익이 되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장사하면 잘 되게 되어있습니다. 음식을 팔던지 물건을 팔던지 간에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걸 팔잖습니까. 내가 아는 것이 건강이 되는 것이 좋겠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연구하고 장사하고 갈수록 잘 되게 되어있습니다. 뭘 하든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장사를 통해서 돈을 벌겠다, 그 사람은 크지 않습니다. 방향이 다른 겁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뭘 따라간다고요, 사람을 따라갑니다. 그래서 사람이 있으면 돈은 따라옵니다.
내가 하는 직장 생활이 도움이 되도록 쉽게 에어컨을 설치해도 얼른 설치하고 돈 받아야겠다, 그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이 가정이 시원하게 지낼 수 있을까로 하면 돈 잘 법니다. 입장 바꿔서 안 그렇겠습니까. 믿는 사람은 이건 안 믿는 사람들이고 믿는 사람 속에서 어디든지 무엇을 하든지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은 없어질 것들이 있으니까 없어질 것들을 마련하려고 하는 것은 불신자들이 하는 겁니다. 그거는 하나님께 맡겨놓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화 되고 성화되고 나와 관련된 사람들을 참사람 만드는 거기에 가치를 두고 노력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연구하고 노력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가면 하나님께서 보시고 주시는 겁니다. 내가 욕심내서 만들면 안되는 겁니다.
저는 목회자니까 교회를 운영하면 교인이 많아지도록 여기에 목적을 두면 망합니다. 많아져도 줄어들어도 실패입니다. 목회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로 되기를 원하는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기는 참사람은 그게 되는 겁니다. 그게 목적 아닌가요. 수학 학원을 하려면 어떻게 아이를 데리고 와서 돈을 벌까 그러면 망합니다. 그런데 수학 배우러 왔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늘려주고 잘 가르쳐줄까. 그쪽으로 연구하면 자기 수학 실력되는 만큼은 됩니다. 장사는 장사로 그리되고 영어는 영어로 그리되고. 교회는 구령 사업하는 곳입니다. 사람을 참 사람을 만드는 겁니까. 교회 왜 다닙니까. 진리를 배워서 참사람 되려고 그래야 목적입니다. 이걸 잊어버리고 연보 많이해서 뭐하려고요, 본질 본 목적을 잊어버리면 존재 의미가 없어지면 이걸 잊어버린 교회를 가르켜 촛대를 옮겨버리겠다. 교회는 촛대입니다. 등대입니다. 그래서 한국에 세계에 교회 아닌 교회가 꽉 찼습니다. 교회인데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을 것은 없어질 것입니다. 없어질 것들을 왜 노력하나, 없어질 것들을 잊게하려고 믿는 사람이 키우고 넓히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맡기신 일이니까. 그것을 통해서 참사람이 되고 그리스도가 되고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 만드는 그거 때문에 하는 겁니다. 뭘해야합니까. 어릴 때는 공부해라. 공부하면서 공부를 통해서 자기라는 사람을 만들지 않으면 공부 백 날 해봐야 헛된 일입니다. 자기를 어ᄄᅠᆫ 사람 만듭니까. 그리스도 같은 사람, 제사장 선지자 왕 같은 사람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 말씀 순종하는 사람, 그 말씀대로 사는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학생의 본분이다. 한눈 파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학교 수업시간에 열심히 배우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께 맡기는 일이니까. 가정은 가정에서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공부 자체가 목적이 되면 시험 잘 쳐야겠지요. 성경 줄이고 기도 줄이고 그래야 성적이 좋아야지겠지요. 그러면 믿는 사람 아닙니다. 잠을 좀 더 자야하는데 공부 손해봅니다. 밤예배 나가면 주일지키면 손해봅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은 반사도 하고 집회도 가고 그러는 겁니다.
거기서 신앙 생활하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시다가 주실 것이고 필요없으면 안 주실 것이고. 그래서 믿는 사람은 말씀의 어김 없이 자기로써 정직하게 열심히 충성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주시는 대로. 그게 믿는 사람의 생활입니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다 잘되게 되어있습니다. 그 속에서 인내심도 자라고 공부와 직장 속에 그런 게 자라면서 인인관계도 자라고 알게 되고 세상 보는 눈도 자라게 되고. 수많은 존재들 속에서 사람이라면 그 속에서 만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섞여살면서 부딪혀 살면서. 혼자서 외톨이로 먼지 뭍히지 않고 고고한 척 도도한 척 사람 상대하지 않고 천한 거 보지 않고 고급으로 사면 그 사람은 아무짝에도 못쓰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어디서든지 무엇에서든지, 뭘 하든지 믿는 사람은 자기 성화 사람 수익 두 가지만 하는 겁니다. 이 말씀은 들었습니다. 알았습니다. 알았으면 지식을 가지는 겁니다. 들었으니까 알았으니까 보고 듣고 자기 지식이 되어도 주격 지식이 되지 못하면 자기 지식은 아닌 겁니다. 믿음으로 받아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바울의 소망 그리스도를 향한 바울의 소망 이 세상이라는 것은 없어질 겁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을 잊게하고 크게하고 많게하고 다듬어 좋게하고 이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그리스도만 자기 성화 사람 수입 이것만 우리가 할 일입니다. 부족하지만 살아보면 경험과 체험이 되고 자기 지식이 되고 주격 지식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려고 해도 겪아 봤는데도, 그래도 계속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어떤 사람이 아니 하나님을 살아계시는 줄을 몰라서 그렇게 못 살았지 알고 믿는다면 이 길을 달려가지 왜 못달려가겠습니까 라고 하니까 목사님께서 뭐라고 하신다고요, 알아도 안돼. 믿어도 안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안 믿습니까. 안 믿어서 그렇게 우리가 다 못 삽니까. 깨어있어 기도하라, 육신이 약하도다, 깨어있어 기도하다 마음을 소원합니다. 지식을 가졌습니다. 인지 정도 지식이 아닙니다. 경험하고 체험해서 실제 살아보고 수 없이 겪어봐서 이 길이다. 그리스도만 가치다 가장 고상하다. 겪어봤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되면 또 넘어지는 겁니다. 우리 속에 잘못 산 것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렇지요. 어리면 어릴 때 기회가 많을 겁니다. 젊으면 그만큼 기회가 많은 겁니다. 줄어들 겁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하나부터라도 아는대로는 죄는 무조건 끊어버리고 의는 무조건 하고 보고 이렇게 해 나가면 성공이 되는 것이고 미루면 실패하고 마는 거지요.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살아가도록 합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