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0일 수밤
김동민2025-12-10조회 15추천 2
2025년 12월 10일 수밤
찬송: 74장
본문: 이사야 58장 13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주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제목입니다. 굳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 것은 강조를 한 겁니다. 말씀이 지식인데, 하나님의 지식이라고 할려고 하다가, 말씀이라는 표현이 더 비중이 무겁고 강도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제목을 붙여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는대로, 아는 만큼 행할 수도 있고 일도 할 수 있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시험답안을 적으면 아는 만큼 적을 수 있습니다. 모르면 찍습니다. 대충 그건 아는 게 아닙니다. 아는 만큼 답을 적을 수 있습니다. 아는 길을 갑니다. 신앙 생활은 아는 대로 갑니다. 히브리서 보면 믿음의 조상들은 알 바를 알지못하고 갔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인도를 알고 따라가는데 그 길에 무슨 일 만날련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지 모른다는 거지, 가는 길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신앙 생활은 길을 가다가 모르면 그 자리에서 안 가는 겁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알고 가는 겁니다. 알고 가는데 대충대충 자기 생각대로 큰일나는 겁니다. 걸어가다가, 모르면 그 자리에 서는 겁니다. 서서 기도하고 모르겠나이다, 한 달이 지나고 모르면 안되는 겁니다. 평생 모르면 거기 있는 겁니다. 그게 신앙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향해 갈 때 구름기둥 불가둥 갈 때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따라 갔습니다. 1년을 머무르면 그 정도 있었습니다. 신앙입니다. 신앙 걸음은 알고 가는 겁니다. 모르면 안 가는 게 신앙 생활입니다. 우리 예배당은 짓기를 간절하게 소원합니다. 길을 안 보여주십니다. 못 짓는 겁니다. 우리 장로님 김 집사님 생전에 예배당 짓는 게 소원인데 아직까지는 길을 안 보여주십니다. 못 짓는 겁니다.
다윗이 성전 짓기를 소망했으나 안된다. 알려만 주고 다윗은 성전 보기는 다 봤습니다. 완성된 실물은 못 봤어도 어떻게 지어질 것인지를 전부 알려주셨습니다. 성전의 설계도를 알려주셨습니다. 안 봤지만은 모세도 가나안에 안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전부 보여주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가다가 모르면 서는 것이고 그게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식이라는 것은 그렇지요, 대충대충 아는데 지식이 없으면 모르는 겁니다. 지식이 그런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아는 만큼 아는 만큼 말할 수 있고, 머리가 좋은 아이들은 말이 많습니다. 절대성은 아닙니다. 그런데 말이 많습니다. 머리 속에 들어있는 게 많다는 겁니다. 모르는 것은 안합니다. 안했든 봤든 그런겁니다. 듣고보고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겁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모르면 말 못합니다. 큰든 작든 중요하든 덜 중요하든 알아야할 수 있는 게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은 그런 겁니다. 신앙 생활의 지식은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 지식이 많아서, 그 지식을 배울 수도 없고 담을 수도 없습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담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만 담지. 6천년 세월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담을 수 있겠습니까. 박사라고 해도 다른 사람을 무식하다고 그러면 제가 표현이 무식하다고 하는 것과 다른 겁니다. 누구보고 무식하다고 하겠습니까. 박박사라고 다른 사람을 모른다고 하면 좁은 사람입니다. 세상을 알고 인생을 알고 역사를 알기 때문에, 결코 나타내지 못합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넓으며 얼마나 숫자가 많고 깊고 넓은줄을 아무리 많이 배워도 유식하다 말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아니까 석사다 유식한 분이다 지식층이다 그러지만 본인은 그런 말 못하지요. 신앙 생활은 영상을 두고 넘어가야하는 것은 아는데까지 읽고 듣고 공부해서 알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알려주셨고 알 기회를 주셨고 알 수 있게 해놓으셨는데 자기가 게을러서 몰라서 못행하면 심판을 받는 겁니다. 그래서 공부한다고 성경모르고 세상 지식 받아들인다고 교리 공부 안하면. 성경 연구 못했으면 심판 거리가 되는 겁니다. 다른 공부한다고 뭐한다고 믿는 사람 알아야할 만큼 모르면 책임이 큽니다.
안식일은 몇 번째 계명입니까. 4계명입니다. 이걸 배워알길 뭐라고 합니까. 중심되는 계명이다. 기둥되는 계명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4계명이 중심되는 계명입니까. 1계명이 중요합니까 4계명이 중요합니까. 1계명이 비교 못할 만큼 중요합니다.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사람에 대한 계명입니다. 4계명은 꼴지입니다. 그런데 왜 4계명이 중심입니까. 역할적으로 그렇습니다. 실제 생활에서 살아가는 그런 것이기 때문에, 마치 사람이 있어서 입이 중요합니까 뇌가 중요합니까. 손이 중요합니까 뇌가 중요합니까. 심장이 중요합니까 입이 중요합니까. 그런데 입이 먹어야합니다. 입이 뇌보다 중해서가 아니고 뇌를 살리기 위해서는 입이 움직여줘야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4계명은 바로 지켜야 그런 겁니다. 4계명을 못 지키면 모릅니다. 그래서 역할적으로 4계명이 중심이고 기둥이라고 마치 뇌와 심장이 중요하나, 손이 입으로 집어 음식을 먹어야 것처럼.
가장 좋은 건강법은 자기 체질에 맞는 겁니다. 소식도 해보고 대식도 해보고 운동도 해보고 그래야하지 주일이 중요한 것은 바로 지켜야 모든 계명 지키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주일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은 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다가 중요한데 그 하나를 주셨는데 사람에게는 그 계명과 함께 주실 때 속성적으로 하나님이 닮은 주권성, 자유성을 주셨기 때문에 명령을 하지만은 하나님은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방향 때문에, 법 때문에 속성 때문에 사람에게 강제를 안하시는 겁니다. 기회를 충분히 주시는 겁니다. 주신 기회를 다 주시고 나서는 기회로 안한 만큼 심판이 따라오는 겁니다. 모든 말씀이 다 그런데 첫 글자가 만일, 만일, 불확실한 행동에 대한 어떤 일에 대한 불확실성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이래도 되고 저럴 수 있다 그게 아닙니다. 사람에게 자유성을 주셨다는 겁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갔는데 한국인을 봤는데 바깥 양반이 안에 강의하러 가셔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깥 양반이, 안에 일 보는데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엘리트 여성이 자기 남편을 보고 바깥 양반이 높이는 뜻이 있는 거지요. 보통이 아니구나, 저절로 조심히 되더라고 하지요. 아이들이 아버님 어머님 쓰면 함부로 못합니다. 희롱을 당하면 절대는 아니지만 그럴만하니까 그렇겠지라고 합니다. 자기 스스로 조심하면 함부로 못합니다. 만일 주일은 원래 안식이었습니다. 주일 되기 전에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이면 지금으로 말하면 토요일 안식일인데 바뀌지 않겠느냐, 안식일이 속한 그 시대를 구약시대라고 했습니다. 구자는 오래된 구 자입니다. 옛 구자입니다. 신약은 새로운 신자입니다. 옛날, 우리 박경미 선생님 옛날은 언제인가요. 지금 40 다 되어가고 옛날이면 10대 20대, 이영윤 선생님 옛날은 10살 그것도 옛날이겠지요. 어릴 때입니다.
그때는 그림자 시대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그 시대, 구약시대에 속한 겁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그림자 시대에 속한 겁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안식일은 모형시대에 속한 겁니다. 어린 시대, 육체시대에 속한 겁니다. 그래서 이게 세월이 지나고 자라면 그 다음에 안식일은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으나. 저런 아이가 젖병 물고 있을 때가 구약 시대입니다. 젖병 물고 있을 때 구약 시대, 그림자 시대 그때가 모형 시대. 어릴 때다 이 뜻입니다. 안식일은 말하자면 젖병 물고 있을 때입니다. 그 날이 안식일입니다. 그날에 제사 지냈고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전부 젖병 물고 있을 때 제사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몽학선생이다. 그게 율법입니다. 안식일은 거기서 속한 겁니다. 그런데 4천년이 지났으니까 자라야하고 밝아져야하고 알아야하고 그리 되어야겠지만요. 그때가 되니까 주님 오셔야하고 그러니까 엘리야가 먼저 왔습니다. 맞습니까. 구주 메시아 오기 전에 엘리야가 왔습니다. 그 엘리야가 누구지요.
성경을 알아야 이게 이해가 되지요. 엘리야가 세례 요한이 엘리야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나타났고 오신 주님 신약에 중보 역할, 그래서 중매쟁이입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연결시켜주는 중매쟁이가 세례요한이고, 나는 일하러 온 사람이다. 원형이 오셨으니까. 옛날 것은 다섯 살 되면 젖병을 떼고 밥을 먹어야하죠. 아직도 10살에 젖병 물고 있으면 안되는 거지요. 안식교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젖병 물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젖병 물고 있던 시대입니다. 그래서 신약 시대는 원형 시대고 실상 시대고 장성한 시대고 신령한 시대고, 천국에서 어린 아이라도 세례요한보다 크다고 했습니다. 여인으로 난 자 중에서 여인으로 한 사람 중에서 가장 큰 사람이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이 위대할지 구약의 성도들이 위대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주님과 관계 때문에 그런 겁니다. 세례 예수님 앞에 중매쟁이로 마중나온 사람이 세례 요한이고, 그 세례 요한보다도 더 크다. 주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다. 잘 안다. 그리고 그때부터 어릴 때 젖병 물고 있을 때 지키던 안식일이고, 젖병 안 물고 큰 분 계시나요, 그런데 왜 지금은 젖병 안 뭅니까. 지났으니까. 자라가야지, 세월이 지나면 자라는 겁니다. 지금은 왜 옛날처럼 활쏘고 창 던지고 안합니까. 자라니까, 우리는 신앙이라는 것은 인격이 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은 일반적으로 알면 상식인데, 환하게 알고 있어야 설명할 때 필요하니까 성경에 신약시대 때 말씀해놨습니다. 복음이 유대인인데, 뿌리인데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도 오래 전부터 했습니다. 내가 애굽을 사랑한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복음이 유대인 말고 다른 민족에 전파된 건 생각 많이 했습니다.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되었습니다. 주일은 주의 날입니다. 주님이 주일되신 날이다. 주일은 성일입니다. 다른 날과 다르다는 겁니다. 다른 날과 주일은 다릅니다. 같은 말인데 옛날에 소풍가는 날은 아침에 일어나면 느낌도 공기도 다르고 다 다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저도 어릴 때는 소풍 갈 때는 그날은 전날에 잠도 잘 안오고 특히 소풍가는 날은 그렇게 공기도 다르고 뜨는 해도 다르고 다 다릅니다. 믿는 사람에게 주일은 다른 날과 다릅니다.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객관이신 하나님을 상대하며, 그게 구원이고 신앙 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주체가 된 객관화 시켜나가는 겁니다. 타락한 인간의 다른 거 말고. 창조주 하나님을 원형으로 삼아서, 그러기 때문에 신앙 생활은 주관적인 면이 있는 겁니다. 체면적인 면이 있고. 착각은 곤란하고, 자기 추구하는 면이 있는데 그게 맞으면 좋은 겁니다. 영감의 성령의 감동이라는 것은 지식을 통해서 합니다.
주일은 성일이라고 했으니까 다르다고 했으니까 다르구나. 저는 그렇습니다. 공기도 바람도 해도 마음 가짐도 다르고, 그래서 주님 앞에 갔을 때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일 지키는 것만큼은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주일날 과자 사 먹은 적, 텔레비전 본 일이 없습니다. 저는 단정은 못하겠는데 기억을 못합니다. 주일 하나 만큼은 조금 지켰다고 할 수 있겠다. 새벽 기도도 빠지고 했지만 요즘은 하는 편이고, 몇 가지 내놓을 수 있겠지만은. 주일이라는 날은 성일입니다. 다른 날과 다른 날입니다. 이런 느낌을 가져야합니다. 희로애락이 있어야 정상적인 신앙입니다. 실제 객관 역사가 있어서 희로애락이 있는 겁니다. 이게 자기 속에 느껴봐야 신앙입니다. 살아있는 존재끼리, 아기를 데리고 보는데 애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떼를 쓰고 그런 거지요. 거기서 관계가 생기는 건데, 하나님 앞에 관계입니다. 없는 신앙은 자는 신앙이거나 죽은 신앙이거나 문제가 있는 겁니다.
주일은 역할적으로 중심되는 계명입니다. 아니면 무너집니다. 예배가 중심입니다. 아니면 다 무너집니다. 예배생활이 바로 되면 살아납니다. 바로 알고 바로 지키는, 그렇게 되는 겁니다.
기도하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74장
본문: 이사야 58장 13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주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제목입니다. 굳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 것은 강조를 한 겁니다. 말씀이 지식인데, 하나님의 지식이라고 할려고 하다가, 말씀이라는 표현이 더 비중이 무겁고 강도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제목을 붙여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는대로, 아는 만큼 행할 수도 있고 일도 할 수 있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시험답안을 적으면 아는 만큼 적을 수 있습니다. 모르면 찍습니다. 대충 그건 아는 게 아닙니다. 아는 만큼 답을 적을 수 있습니다. 아는 길을 갑니다. 신앙 생활은 아는 대로 갑니다. 히브리서 보면 믿음의 조상들은 알 바를 알지못하고 갔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인도를 알고 따라가는데 그 길에 무슨 일 만날련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지 모른다는 거지, 가는 길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신앙 생활은 길을 가다가 모르면 그 자리에서 안 가는 겁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알고 가는 겁니다. 알고 가는데 대충대충 자기 생각대로 큰일나는 겁니다. 걸어가다가, 모르면 그 자리에 서는 겁니다. 서서 기도하고 모르겠나이다, 한 달이 지나고 모르면 안되는 겁니다. 평생 모르면 거기 있는 겁니다. 그게 신앙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향해 갈 때 구름기둥 불가둥 갈 때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따라 갔습니다. 1년을 머무르면 그 정도 있었습니다. 신앙입니다. 신앙 걸음은 알고 가는 겁니다. 모르면 안 가는 게 신앙 생활입니다. 우리 예배당은 짓기를 간절하게 소원합니다. 길을 안 보여주십니다. 못 짓는 겁니다. 우리 장로님 김 집사님 생전에 예배당 짓는 게 소원인데 아직까지는 길을 안 보여주십니다. 못 짓는 겁니다.
다윗이 성전 짓기를 소망했으나 안된다. 알려만 주고 다윗은 성전 보기는 다 봤습니다. 완성된 실물은 못 봤어도 어떻게 지어질 것인지를 전부 알려주셨습니다. 성전의 설계도를 알려주셨습니다. 안 봤지만은 모세도 가나안에 안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전부 보여주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가다가 모르면 서는 것이고 그게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식이라는 것은 그렇지요, 대충대충 아는데 지식이 없으면 모르는 겁니다. 지식이 그런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아는 만큼 아는 만큼 말할 수 있고, 머리가 좋은 아이들은 말이 많습니다. 절대성은 아닙니다. 그런데 말이 많습니다. 머리 속에 들어있는 게 많다는 겁니다. 모르는 것은 안합니다. 안했든 봤든 그런겁니다. 듣고보고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겁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모르면 말 못합니다. 큰든 작든 중요하든 덜 중요하든 알아야할 수 있는 게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은 그런 겁니다. 신앙 생활의 지식은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 지식이 많아서, 그 지식을 배울 수도 없고 담을 수도 없습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담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만 담지. 6천년 세월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담을 수 있겠습니까. 박사라고 해도 다른 사람을 무식하다고 그러면 제가 표현이 무식하다고 하는 것과 다른 겁니다. 누구보고 무식하다고 하겠습니까. 박박사라고 다른 사람을 모른다고 하면 좁은 사람입니다. 세상을 알고 인생을 알고 역사를 알기 때문에, 결코 나타내지 못합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넓으며 얼마나 숫자가 많고 깊고 넓은줄을 아무리 많이 배워도 유식하다 말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아니까 석사다 유식한 분이다 지식층이다 그러지만 본인은 그런 말 못하지요. 신앙 생활은 영상을 두고 넘어가야하는 것은 아는데까지 읽고 듣고 공부해서 알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알려주셨고 알 기회를 주셨고 알 수 있게 해놓으셨는데 자기가 게을러서 몰라서 못행하면 심판을 받는 겁니다. 그래서 공부한다고 성경모르고 세상 지식 받아들인다고 교리 공부 안하면. 성경 연구 못했으면 심판 거리가 되는 겁니다. 다른 공부한다고 뭐한다고 믿는 사람 알아야할 만큼 모르면 책임이 큽니다.
안식일은 몇 번째 계명입니까. 4계명입니다. 이걸 배워알길 뭐라고 합니까. 중심되는 계명이다. 기둥되는 계명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4계명이 중심되는 계명입니까. 1계명이 중요합니까 4계명이 중요합니까. 1계명이 비교 못할 만큼 중요합니다.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사람에 대한 계명입니다. 4계명은 꼴지입니다. 그런데 왜 4계명이 중심입니까. 역할적으로 그렇습니다. 실제 생활에서 살아가는 그런 것이기 때문에, 마치 사람이 있어서 입이 중요합니까 뇌가 중요합니까. 손이 중요합니까 뇌가 중요합니까. 심장이 중요합니까 입이 중요합니까. 그런데 입이 먹어야합니다. 입이 뇌보다 중해서가 아니고 뇌를 살리기 위해서는 입이 움직여줘야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4계명은 바로 지켜야 그런 겁니다. 4계명을 못 지키면 모릅니다. 그래서 역할적으로 4계명이 중심이고 기둥이라고 마치 뇌와 심장이 중요하나, 손이 입으로 집어 음식을 먹어야 것처럼.
가장 좋은 건강법은 자기 체질에 맞는 겁니다. 소식도 해보고 대식도 해보고 운동도 해보고 그래야하지 주일이 중요한 것은 바로 지켜야 모든 계명 지키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주일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은 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다가 중요한데 그 하나를 주셨는데 사람에게는 그 계명과 함께 주실 때 속성적으로 하나님이 닮은 주권성, 자유성을 주셨기 때문에 명령을 하지만은 하나님은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방향 때문에, 법 때문에 속성 때문에 사람에게 강제를 안하시는 겁니다. 기회를 충분히 주시는 겁니다. 주신 기회를 다 주시고 나서는 기회로 안한 만큼 심판이 따라오는 겁니다. 모든 말씀이 다 그런데 첫 글자가 만일, 만일, 불확실한 행동에 대한 어떤 일에 대한 불확실성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이래도 되고 저럴 수 있다 그게 아닙니다. 사람에게 자유성을 주셨다는 겁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갔는데 한국인을 봤는데 바깥 양반이 안에 강의하러 가셔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깥 양반이, 안에 일 보는데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엘리트 여성이 자기 남편을 보고 바깥 양반이 높이는 뜻이 있는 거지요. 보통이 아니구나, 저절로 조심히 되더라고 하지요. 아이들이 아버님 어머님 쓰면 함부로 못합니다. 희롱을 당하면 절대는 아니지만 그럴만하니까 그렇겠지라고 합니다. 자기 스스로 조심하면 함부로 못합니다. 만일 주일은 원래 안식이었습니다. 주일 되기 전에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이면 지금으로 말하면 토요일 안식일인데 바뀌지 않겠느냐, 안식일이 속한 그 시대를 구약시대라고 했습니다. 구자는 오래된 구 자입니다. 옛 구자입니다. 신약은 새로운 신자입니다. 옛날, 우리 박경미 선생님 옛날은 언제인가요. 지금 40 다 되어가고 옛날이면 10대 20대, 이영윤 선생님 옛날은 10살 그것도 옛날이겠지요. 어릴 때입니다.
그때는 그림자 시대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그 시대, 구약시대에 속한 겁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그림자 시대에 속한 겁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안식일은 모형시대에 속한 겁니다. 어린 시대, 육체시대에 속한 겁니다. 그래서 이게 세월이 지나고 자라면 그 다음에 안식일은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으나. 저런 아이가 젖병 물고 있을 때가 구약 시대입니다. 젖병 물고 있을 때 구약 시대, 그림자 시대 그때가 모형 시대. 어릴 때다 이 뜻입니다. 안식일은 말하자면 젖병 물고 있을 때입니다. 그 날이 안식일입니다. 그날에 제사 지냈고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전부 젖병 물고 있을 때 제사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몽학선생이다. 그게 율법입니다. 안식일은 거기서 속한 겁니다. 그런데 4천년이 지났으니까 자라야하고 밝아져야하고 알아야하고 그리 되어야겠지만요. 그때가 되니까 주님 오셔야하고 그러니까 엘리야가 먼저 왔습니다. 맞습니까. 구주 메시아 오기 전에 엘리야가 왔습니다. 그 엘리야가 누구지요.
성경을 알아야 이게 이해가 되지요. 엘리야가 세례 요한이 엘리야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나타났고 오신 주님 신약에 중보 역할, 그래서 중매쟁이입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연결시켜주는 중매쟁이가 세례요한이고, 나는 일하러 온 사람이다. 원형이 오셨으니까. 옛날 것은 다섯 살 되면 젖병을 떼고 밥을 먹어야하죠. 아직도 10살에 젖병 물고 있으면 안되는 거지요. 안식교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젖병 물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젖병 물고 있던 시대입니다. 그래서 신약 시대는 원형 시대고 실상 시대고 장성한 시대고 신령한 시대고, 천국에서 어린 아이라도 세례요한보다 크다고 했습니다. 여인으로 난 자 중에서 여인으로 한 사람 중에서 가장 큰 사람이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이 위대할지 구약의 성도들이 위대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주님과 관계 때문에 그런 겁니다. 세례 예수님 앞에 중매쟁이로 마중나온 사람이 세례 요한이고, 그 세례 요한보다도 더 크다. 주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다. 잘 안다. 그리고 그때부터 어릴 때 젖병 물고 있을 때 지키던 안식일이고, 젖병 안 물고 큰 분 계시나요, 그런데 왜 지금은 젖병 안 뭅니까. 지났으니까. 자라가야지, 세월이 지나면 자라는 겁니다. 지금은 왜 옛날처럼 활쏘고 창 던지고 안합니까. 자라니까, 우리는 신앙이라는 것은 인격이 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은 일반적으로 알면 상식인데, 환하게 알고 있어야 설명할 때 필요하니까 성경에 신약시대 때 말씀해놨습니다. 복음이 유대인인데, 뿌리인데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도 오래 전부터 했습니다. 내가 애굽을 사랑한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복음이 유대인 말고 다른 민족에 전파된 건 생각 많이 했습니다.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되었습니다. 주일은 주의 날입니다. 주님이 주일되신 날이다. 주일은 성일입니다. 다른 날과 다르다는 겁니다. 다른 날과 주일은 다릅니다. 같은 말인데 옛날에 소풍가는 날은 아침에 일어나면 느낌도 공기도 다르고 다 다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저도 어릴 때는 소풍 갈 때는 그날은 전날에 잠도 잘 안오고 특히 소풍가는 날은 그렇게 공기도 다르고 뜨는 해도 다르고 다 다릅니다. 믿는 사람에게 주일은 다른 날과 다릅니다.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객관이신 하나님을 상대하며, 그게 구원이고 신앙 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주체가 된 객관화 시켜나가는 겁니다. 타락한 인간의 다른 거 말고. 창조주 하나님을 원형으로 삼아서, 그러기 때문에 신앙 생활은 주관적인 면이 있는 겁니다. 체면적인 면이 있고. 착각은 곤란하고, 자기 추구하는 면이 있는데 그게 맞으면 좋은 겁니다. 영감의 성령의 감동이라는 것은 지식을 통해서 합니다.
주일은 성일이라고 했으니까 다르다고 했으니까 다르구나. 저는 그렇습니다. 공기도 바람도 해도 마음 가짐도 다르고, 그래서 주님 앞에 갔을 때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일 지키는 것만큼은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주일날 과자 사 먹은 적, 텔레비전 본 일이 없습니다. 저는 단정은 못하겠는데 기억을 못합니다. 주일 하나 만큼은 조금 지켰다고 할 수 있겠다. 새벽 기도도 빠지고 했지만 요즘은 하는 편이고, 몇 가지 내놓을 수 있겠지만은. 주일이라는 날은 성일입니다. 다른 날과 다른 날입니다. 이런 느낌을 가져야합니다. 희로애락이 있어야 정상적인 신앙입니다. 실제 객관 역사가 있어서 희로애락이 있는 겁니다. 이게 자기 속에 느껴봐야 신앙입니다. 살아있는 존재끼리, 아기를 데리고 보는데 애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떼를 쓰고 그런 거지요. 거기서 관계가 생기는 건데, 하나님 앞에 관계입니다. 없는 신앙은 자는 신앙이거나 죽은 신앙이거나 문제가 있는 겁니다.
주일은 역할적으로 중심되는 계명입니다. 아니면 무너집니다. 예배가 중심입니다. 아니면 다 무너집니다. 예배생활이 바로 되면 살아납니다. 바로 알고 바로 지키는, 그렇게 되는 겁니다.
기도하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